두루새김 · 쉽게 읽는 성경 · V0.9 베타

창세기 25장

이 장 풀어 읽기

그두라의 자손들

아브라함은 다시 아내를 맞아들였습니다. 그 아내의 이름은 그두라였습니다. 그두라는 아브라함에게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아 주었습니다. 욕산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었습니다. 드단의 자손은 아슈림족과 르투심족과 르움밈족이었습니다. 미디안의 아들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그두라의 자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진 것을 모두 이삭에게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첩들의 아들들에게는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는 아직 살아 있을 때 그들을 아들 이삭 곁에서 떠나보내 동쪽 땅으로 가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죽음

아브라함이 산 햇수는 175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좋은 노년을 누리며 나이 들어 삶에 만족한 가운데 숨을 거두고 죽었습니다. 그는 먼저 죽은 자기 겨레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을 막벨라 굴에 묻었습니다. 그 굴은 마므레 맞은편에 있는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었습니다. 에브론은 초하르의 아들이었습니다. 그 밭은 아브라함이 헷 자손에게서 산 밭이었습니다. 그곳에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가 묻혔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이삭은 브에르 라하이 로이 곁에서 살았습니다.

이스마엘의 후손들

건너뛰며 읽어도 돼요 25장 13–16절

이스마엘의 아들 이름이 이어져요. 처음에는 이들이 열두 우두머리였다고 정리하는 16절을 읽고 이어 가도 돼요.

다음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후손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스마엘은 사라의 종인 이집트 여자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아 준 아들이었습니다. 이스마엘에게서 태어난 아들들의 이름은 이렇습니다. 맏아들 느바욧과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 하다드와 데마와 여두르와 나비스와 게드마였습니다. 이들이 이스마엘의 아들들입니다. 그들의 마을과 야영지에 따른 이름도 이와 같습니다. 이들은 각 부족을 이끄는 열두 우두머리였습니다.

이스마엘이 산 햇수는 137년이었습니다. 그는 숨을 거두고 죽었고, 먼저 죽은 자기 겨레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의 자손들은 하윌라에서 수르까지 살았습니다. 수르는 이집트 맞은편, 아시리아로 가는 길에 있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자기의 모든 형제들과 마주한 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삭과 리브가

다음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그 후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버지였습니다. 이삭은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들일 때 마흔 살이었습니다. 리브가는 밧단 아람 출신 아람 사람 브두엘의 딸이며, 아람 사람 라반의 누이였습니다.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이삭은 아내를 위해 여호와야훼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의 기도를 받아들이셨고, 아내 리브가가 임신했습니다.

뱃속의 두 아이

아이들이 리브가의 뱃속에서 서로 거세게 부딪쳤습니다. 리브가가 말했습니다.

「이렇다면 나는 도대체 왜 이런 처지가 된 걸까?」

리브가는 여호와야훼께 물으러 갔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민족이 네 뱃속에 있다. 네 몸에서 두 백성이 갈라져 나올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할 것이며,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에서와 야곱의 탄생

리브가가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습니다. 뱃속에는 쌍둥이가 있었습니다. 먼저 나온 아이는 붉었고, 온몸이 털옷처럼 털로 덮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아이의 이름을 에서라고 지었습니다. 그 뒤에 동생이 나왔는데,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야곱이라고 불렸습니다. 리브가가 두 아이를 낳았을 때 이삭은 예순 살이었습니다.

두 아들의 생활

두 아이가 자랐습니다. 에서는 사냥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 들에서 지냈고, 야곱은 꾸밈없는 사람으로 천막에서 살았습니다. 이삭은 에서를 사랑했습니다.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즐겨 먹었기 때문입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죽과 맏아들 권리

야곱이 죽을 끓이고 있을 때, 에서가 들에서 돌아왔습니다. 에서는 지쳐 있었습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이 붉은 것, 이 붉은 것 좀 먹여 줘. 내가 지쳤거든.」

그래서 에서는 에돔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야곱이 대답했습니다.

「형의 맏아들 권리를 지금 제게 팔아요.」

에서가 말했습니다.

「나 지금 죽게 생겼는데, 맏아들 권리가 나한테 무슨 소용이야?」

야곱이 말했습니다.

「지금 제게 맹세해요.」

에서는 야곱에게 맹세하고 자기 맏아들 권리를 팔았습니다. 야곱은 에서에게 빵과 렌즈콩 죽을 주었습니다. 에서는 먹고 마신 뒤 일어나 떠났습니다. 이렇게 에서는 맏아들 권리를 하찮게 여겼습니다.

25장 해설 모두 보기 12
25:8 자기 겨레와 함께하게 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히브리어 표현은 ‘자기 겨레에게로 모아졌다’예요. 본문은 이 표현으로 아브라함의 죽음을 말한 뒤, 다음 절에서 막벨라 굴에 묻힌 일을 따로 이야기해요. 따라서 이 말을 모두 같은 무덤에 묻혔다는 뜻으로만 읽기는 어려워요. 죽은 뒤의 모습이나 구체적인 장소는 이 표현만으로 알 수 없어요.

25:22 리브가는 무엇을 묻고 있나요?

히브리어에는 ‘이렇다면, 왜 내가?’라는 짧은 표현이 나와요. 말을 생략한 까닭에 자신의 임신을 묻는지, 삶 자체를 묻는지까지는 분명하지 않아요. 여기서는 둘 중 하나로 좁히지 않고, 현재 처지에 대한 물음으로 옮겼어요.

25:23 뱃속에 두 민족이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여호와야훼의 대답은 리브가가 낳을 두 아이와 그들에게서 나올 두 백성을 함께 바라보아요. 그래서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할 것이라는 말과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라는 말이 이어져요.

25:26 발꿈치를 잡은 일과 야곱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이어지나요?

본문은 동생이 에서의 발꿈치를 붙잡고 나왔다는 장면 바로 뒤에 야곱이라는 이름을 소개해요. 이 소리의 연결은 이름을 들을 때 아이가 태어난 모습을 함께 떠올리게 해요.

25:27 야곱이 꾸밈없는 사람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이 절은 사냥하며 들에서 지내는 에서와 천막에서 사는 야곱을 나란히 소개해요. 다만 야곱을 설명하는 히브리어 낱말을 단순히 집에 머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만 바꿀 수는 없어요. 성품을 어떻게 평가하는 말인지에는 해석의 여지가 남아요.

25:30 에서는 왜 에돔이라고도 불리나요?

에서는 음식을 가리켜 ‘이 붉은 것, 이 붉은 것’이라고 두 번 말해요. 그 말에 이어 에돔이라는 이름이 나와요. 25절에서 먼저 나온 아이를 붉다고 한 표현도 이 소리의 연결을 떠올리게 해요.

25:31 맏아들 권리는 무엇인가요?

야곱은 형이 태어난 순서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맏아들로서 누릴 지위와 권리를 넘겨받으려 해요. 이 대목에서는 재산을 정확히 얼마나 더 받는지나 그 밖의 권리가 무엇인지까지 설명하지 않아요.

25:6 여기서 첩들은 누구를 가리키나요?

1절은 그두라를 아브라함의 아내로 소개하고, 6절은 이름을 적지 않은 채 ‘첩들의 아들들’이라고 해요. 앞서 16장에서는 하갈도 아브라함에게 아내로 주어졌다고 했어요. 이 여성들을 6절의 첩들과 연결하는 것은 문맥을 바탕으로 한 해석이에요. 이 대목이 분명히 구별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가진 것을 모두 주고, 첩들의 아들들에게는 선물을 주어 동쪽으로 보냈다는 점이에요.

25:18 형제들과 마주한 곳에 자리 잡았다는 말은 다르게도 읽나요?

‘자기의 모든 형제들 앞에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은 16:12의 이스마엘에 관한 예고에도 나와요. 이 표현을 장소 관계로 읽으면 ‘마주한 곳에’, 대립 관계로 읽으면 ‘맞서서’가 돼요. 다만 마지막 동사는 달라요. 16:12는 ‘살다’라는 동사를 쓰지만, 여기서는 ‘떨어지다’나 ‘쓰러지다’를 뜻하는 נָפַל을 써요. 이 번역은 앞의 거주 지역 설명과 연결해 ‘자리 잡았다’로 옮겼어요. 앞 절의 죽음 기록과 연결해 ‘형제들 앞에서 죽었다’로 읽는 해석도 있어요.

25:3 이 이름들은 다른 성경에서 어떻게 적나요?

이 절에서 드단의 자손으로 소개되는 세 집단의 이름이에요. 각각 두 표기가 같은 집단을 가리켜요.

25:15 ‘하다드’와 ‘여두르’는 다른 성경에서 어떻게 적나요?

여기서는 이스마엘의 아들들 가운데 두 사람을 가리켜요. 각각 두 표기가 같은 사람을 가리켜요.

25:32 에서는 곧 죽을 지경이었다는 뜻인가요?

히브리어 표현은 ‘나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에 해당해요. 지친 처지를 과장한 말로도, 언젠가 죽을 몸이라는 말로도 읽을 수 있어요. 이 절은 에서의 말을 전하며, 서술자가 그의 목숨이 실제로 위험했다고 확인하는 것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