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45장

이 장의 자리 · 37–50장 · 요셉과 이집트

형제들이 팔았으나 하나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마침내 자신이 누구인지 밝힙니다.

그들이 오래전에 팔아넘긴 동생이 지금 이집트를 다스리는 사람이 되어 자신들 앞에 서 있습니다. 요셉에게는 형제들을 처벌할 권한이 있고, 형제들에게는 그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요셉을 이집트로 팔아넘긴 사람들은 형제들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이 이집트에 오게 된 일을 하나님이 먼저 보내신 사건으로도 이해합니다.

하나의 사건 안에 인간이 저지른 악과 하나님이 이루시는 선이 함께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형제들의 잘못을 없었던 일로 여기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선을 이루셨으니 형제들이 저지른 악도 결국 필요한 일이었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요셉은 인간의 행동보다 더 넓은 시야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까?

읽는 시간 23분소단락 845장 본문 읽기 →

「모두 내 곁에서 나가게 하라!」 — 마침내 사라진 가면

창세기 45:1–4 본문 →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던 요셉

요셉은 곁에 서 있는 사람들 앞에서 더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외쳤습니다. 「모두 내 곁에서 나가게 하라!」 요셉이 형제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밝힐 때, 곁에는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창세기 45:1 · 두루새김

창세기 44장의 마지막에서 유다는 베냐민 대신 자신이 노예로 남겠다고 요청했습니다. 이집트를 다스리는 사람과 가나안에서 곡식을 사러 온 사람들이라는 공적인 관계가 잠시 뒤로 물러납니다. 이제 요셉은 형제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려 합니다.

요셉이 소리 높여 울자 이집트 사람들이 들었고, 파라오의 집안에도 전해졌습니다.창세기 45:2 · 두루새김

앞서 요셉은 형제들의 죄책감 어린 말을 듣고 몸을 돌려 울었고(42:24), 베냐민을 다시 만났을 때에도 방에 들어가 혼자 울었습니다(43:30). 그때에는 눈물을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릅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물러가게 했지만, 자신의 울음을 조용히 억누르지는 못합니다. 요셉은 더 이상 형제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숨기며 이집트를 다스리는 사람의 역할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요셉이에요」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요셉이에요. 아버지는 아직 살아 계세요?」 형제들은 요셉 앞에서 겁에 질려 대답하지 못했습니다.창세기 45:3 · 두루새김

요셉은 앞서 형제들에게 아버지가 잘 계신지 물었고, 형제들은 살아 계신다고 대답했습니다(43:27–28). 오랫동안 헤어졌던 아들이 이제 자신의 이름으로 아버지가 살아 계신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 그는 이집트를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가나안의 늙은 아버지에 관한 정보를 물었습니다. 이제는 그 아버지의 아들 요셉으로서 묻습니다.

같은 질문이지만, 질문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나면서 그 의미도 달라집니다.

오랫동안 자신들이 팔아넘긴 동생이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입니다. 더욱이 그는 자신들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권력자가 되어 있습니다. 형제들은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일이 이제 자기들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가까이 부른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제게 가까이 와 주세요.」 그들이 가까이 오자 요셉이 말했습니다. 「저는 형님들의 동생 요셉이에요.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요셉이에요.」창세기 45:4 · 두루새김

과거에 형제들은 요셉을 자신들에게서 멀리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그를 구덩이에 넣고 이집트로 팔아넘겼습니다.

이제 요셉은 그 거리를 좁히려 합니다.

처음에는 「저는 요셉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저는 형님들의 동생 요셉이에요」라고 합니다. 그의 이름만이 아니라 관계가 밝혀집니다.

요셉은 형제들이 과거에 저지른 일을 감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말하는 방식은 형제들을 위협하기 위한 고발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과거의 진실을 지워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을 인정한 상태에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려 합니다.

조금 더 깊이

그가 왜 모든 사람을 내보냈는지는 직접 설명되지 않습니다. 형제들이 과거에 저지른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으려 했을 수도 있고, 가족끼리만 이야기하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팔아넘긴 사람과 보내신 하나님

창세기 45:5–8 본문 →

같은 사건을 가리키는 두 동사

요셉은 이어서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말을 합니다.

「이제 저를 이곳으로 팔았다고 해서 마음 아파하거나 스스로에게 화내지 마세요. 생명을 살리려고 하나님께서 저를 형님들보다 먼저 보내셨어요.」창세기 45:5 · 두루새김

여기서 「팔았다고」와 「보내셨어요」라는 서로 다른 동사가 등장합니다. 이 두 동사가 가리키는 사건은 같지만,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릅니다.

형제들은 요셉을 없애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요셉이 자신들에게 절하게 될 것이라는 꿈을 미워했고, 그를 가족에게서 떼어 놓으려고 했습니다(창세기 37:18–28).

반면 요셉은 지금 자신이 이집트에 먼저 온 결과를 바라봅니다.

그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흉년에 대비할 수 있었고, 이제 형제들과 아버지의 생명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계획하지 않았던 결과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더 큰 목적을 이루셨다고 고백합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팔아넘긴 행동은 여전히 악한 행동입니다. 그들이 그 일을 할 당시 가족의 생명을 구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요셉이 이제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했다고 해서 형제들의 과거 행동이 선한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악한 행동을 넘어 선한 결과를 이루셨다는 것과, 그 악한 행동 자체가 선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주장입니다.

왜 요셉은 형제들에게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하는가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그 잘못 때문에 영원히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이 과거에 저지른 행동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행동이 지금 그들의 삶 전체를 결정하는 마지막 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이미 벌어진 일에 관하여 하나님이 이루신 새로운 결과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형제들이 보기를 원합니다.

두 해가 지났고, 아직 다섯 해가 남았다

「이 땅에 흉년이 든 지 벌써 2년이 되었어요. 앞으로도 5년 동안은 밭을 갈지도 수확을 거두지도 못할 거예요.」창세기 45:6 · 두루새김

형제들이 요셉을 알아보았다고 해서 가나안에 곡식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요셉이 그들을 용서하려 한다고 해서 흉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요셉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상처를 다루는 일만이 아닙니다. 그는 형제들과 아버지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큰 구원」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나님께서 저를 형님들보다 먼저 보내신 것은 형님들의 가족이 이 땅에 살아남게 하고, 큰 구원으로 형님들의 목숨을 지켜 주시려는 거예요.」창세기 45:7 · 두루새김

여기서 「구원」은 먼저 실제로 생명을 지키는 일을 가리킵니다. 흉년 가운데 굶어 죽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 살아남게 되는 일입니다.

이를 곧바로 죄 사함이나 영원한 구원과 같은 것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요셉이 말하는 것은 자신이 처한 구체적인 역사적 위기에서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후손이 번성하고, 그를 통해 땅의 여러 가족이 복을 받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12:2–3; 17:6–8). 그런데 흉년 때문에 야곱의 가족이 사라진다면 그 약속을 이어 갈 후손들도 위태로워집니다. 성경 전체의 흐름에서 보면 요셉을 통해 생명이 지켜진 일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어지는 과정과 깊이 연결됩니다.

다만 45장의 요셉은 아브라함 언약의 모든 내용을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는 자신과 형제들의 삶에 일어난 일을 먼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세요」

요셉은 세 번째로 하나님의 보내심을 말합니다.

「그러니 저를 이곳으로 보내신 분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세요. 하나님께서 저를 파라오의 아버지로, 파라오의 온 집안을 맡은 주인으로, 이집트 온 땅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세우셨어요.」창세기 45:8 · 두루새김

요셉은 사건의 최종적인 의미를 어디에서 찾는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집트에 오게 된 일을 인간의 배신이라는 한 장면에 가두지 않고, 하나님이 생명을 지키신 더 넓은 결과 속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형제들의 악은 요셉이 이집트에 오게 된 원인이지만, 요셉은 그 악이 자신의 삶의 마지막 목적까지 결정하도록 두지 않습니다.

여기서 「파라오의 아버지」라는 표현은 실제로 피가 이어진 가족 관계를 뜻하지 않습니다. 왕에게 중요한 조언을 하고 높은 권한을 행사하는 지위를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정확히 어떤 이집트 관직명을 번역한 것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고난을 당한 사람에게 그 고난이 사실은 좋은 일이었다고 말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45장에서 요셉은 악을 악으로 부르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삶에 관한 마지막 말은 아니었다고 고백합니다.

누군가 부당한 일을 겪었다면 그 고통을 하나님이 더 좋은 결과를 이루시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게 하셨다고 쉽게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요셉은 자신의 삶에 실제로 나타난 결과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고백합니다. 그의 고백을 근거로 모든 고난의 의미를 미리 확정하는 것은 본문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형님들의 가족이 이 땅에 살아남게 하고」와 「큰 구원」으로 옮긴 원문 표현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펠레타 역시 재앙에서 벗어나 살아남는 일이나 살아남은 사람들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을 큰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살아남은 큰 무리가 지켜진다는 뜻에 더 가깝게 읽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창세기 50:20에서 더욱 분명하게 표현됩니다. 그곳에서 요셉은 형제들이 자신을 해치려 했으나 하나님은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선한 결과를 이루셨다고 말합니다.

높은 지위가 무엇을 위해 주어졌는가

창세기 45:9–11 본문 →

요셉은 하나님이 자신을 어떤 자리에 세우셨는지 설명합니다.

큰 권한이 있기 때문에 아버지와 형제들을 이집트로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곡식을 마련하고 가족에게 먹을 것을 대 줄 수 있습니다. 흉년이 계속되는 동안 그들이 살아남을 장소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지위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을 통해 사람들의 생명이 지켜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데려오라는 명령

「서둘러 아버지께 올라가서, 아버지의 아들 요셉이 이렇게 말한다고 전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저를 온 이집트를 다스리는 사람으로 세우셨어요. 지체하지 마시고 제게로 내려오세요.』」창세기 45:9 · 두루새김

특히 그는 자신을 「아버지의 아들 요셉」이라고 소개합니다. 조금 전 요셉은 형제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밝혔습니다. 이제 그는 아버지에게도 자신이 누구인지 전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전할 말에는 요셉의 이집트 지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요셉이 살아 있다는 사실만 알아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를 데려올 방법이 있으며, 이집트에서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조건도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전하려 합니다.

왜 고센 땅인가

「『아버지는 고센 땅에서 사시게 될 거예요. 아버지와 아들들과 손자들, 양과 염소 떼와 소 떼, 아버지께 속한 모든 것이 제 가까이에 있게 될 거예요.』」창세기 45:10 · 두루새김

고센은 나일강 삼각주 동부 일대와 연결되는 지역으로 이해되지만, 고대 지명과 오늘날의 정확한 위치를 완전히 일치시키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는 아버지가 단지 이집트 어딘가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과 가까이 살기를 원합니다.

요셉의 계획은 가족 구성원 몇 사람을 잠시 피신시키는 수준이 아닙니다. 야곱의 집안 전체가 흉년을 견딜 수 있도록 생활 터전을 옮기는 일입니다.

요셉에게 고센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가족이 다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장소로 제시됩니다.

기근은 화해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직 흉년이 5년 더 남아 있어요. 아버지와 온 집안, 아버지께 속한 모든 것이 먹고살 길을 잃지 않도록 제가 그곳에서 먹을 것을 대 드릴게요.』」창세기 45:11 · 두루새김

요셉은 젊은 시절 아버지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족의 갈등 때문에 아버지에게서 떨어져 이집트로 팔려 갔습니다.

이제는 그가 아버지를 돌볼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호하던 자리에서, 이제는 아들이 늙은 아버지에게 먹을 것을 대 주려 합니다. 그리고 요셉은 자신이 가진 것을 그 일을 위해 사용하려 합니다.

여기서 가족의 회복은 말이나 감정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과 아버지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모든 사람이 요셉처럼 자신에게 악을 행한 사람들을 즉시 받아들이고 먹을 것을 대 주어야 한다는 명령을 끌어내서는 안 됩니다.

그는 형제들의 과거 행동을 알고 있으며, 현재 그들보다 큰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흉년 속에서 가족을 살릴 실제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그가 선택한 행동은 그의 구체적인 처지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제가 직접 이렇게 말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어요」

창세기 45:12–15 본문 →

통역 없이 마주하는 형제들

요셉은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형님들도, 제 동생 베냐민도 제가 직접 이렇게 말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어요.」창세기 45:12 · 두루새김

앞서 창세기 42:23에서 형들은 요셉이 자신들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통역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요셉은 자신이 누구인지뿐 아니라 언어에 관한 사실도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직접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형제들은 요셉이 누구인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를 눈앞에서 보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아버지에게 전해야 할 것은 단순한 소문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직접 보고 들은 사실입니다.

눈물보다 먼저 침묵이 있었다

요셉은 동생 베냐민의 목을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베냐민도 요셉의 목에 안겨 울었습니다.창세기 45:14 · 두루새김

앞서 요셉이 혼자 울던 장면들과 다릅니다. 그다음 요셉은 다른 형제들에게도 다가갑니다.

요셉은 모든 형제에게 입을 맞추고 그들을 안고 울었습니다. 그 뒤에 형제들은 요셉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창세기 45:15 · 두루새김

형제들은 요셉이 자신을 밝힌 직후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자신들의 과거 행동을 분명하게 지적하면서도 생명을 지키신 하나님의 뜻을 설명하고, 가까이 부르고, 안고 울자 비로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본문은 형제들이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실제로 창세기 50:15–21에서는 아버지가 죽은 뒤 형제들이 다시 요셉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의 만남이 오랜 두려움을 한순간에 모두 없애 버린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동안 요셉은 형제들과 대화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감추었고, 형제들은 그가 누구인지 모른 채 대답했습니다. 이제 양쪽 모두 자신들이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압니다.

관계의 회복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확신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두려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다시 서로에게 말을 건넬 수 있게 되는 데서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자신의 입이 형제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표현을 씁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제가 직접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옮겼습니다. 이 표현만으로 그가 반드시 통역 없이 히브리어로 말하고 있었다고 문법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앞선 통역 장면을 기억하면, 이 말은 요셉이 더 이상 자신을 낯선 통치자로 숨기지 않고 형제들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읽힙니다.

가족의 재회가 이집트 왕궁에까지 미치다

창세기 45:16–20 본문 →

파라오는 왜 기뻐하는가

요셉의 형제들이 왔다는 소식이 파라오의 집안에 전해집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왔다는 소식이 파라오의 집안에 전해졌습니다.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은 그 소식을 기뻐했습니다.창세기 45:16 · 두루새김

왜 기뻐했는지는 직접 설명되지 않습니다. 요셉이 이집트를 위해 한 일 때문에 그의 가족을 환영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유일한 이유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파라오가 요셉의 가족을 이집트로 초대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력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요셉에게 형제들을 가나안으로 보내 아버지와 온 가족을 데려오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이집트 땅의 좋은 것들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수레를 가져가라

「너에게 명령한다. 네 형제들에게 이렇게 하게 하라. 『이집트에서 너희 아이들과 아내들을 태울 수레를 가져가라. 너희 아버지를 태우고 오너라.』」창세기 45:19 · 두루새김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옮겨 오는 일은 젊은 남자 몇 사람이 여행하는 것과 다릅니다. 노인과 어린아이, 아내들과 많은 가족 구성원이 함께 이동해야 합니다.

「『너희 물건들을 아까워하지 마라. 이집트 온 땅의 좋은 것들이 너희 것이기 때문이다.』」창세기 45:20 · 두루새김

이것은 오래 살아온 집과 물건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말입니다. 이집트에 오면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가나안 땅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가족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흉년을 피해 이집트로 내려가려 합니다. 이것은 약속의 땅을 떠나는 일이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을 포기하는 것과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브라함도 흉년 때문에 이집트로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창세기 12:10). 이삭은 흉년 때에 하나님에게서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26:1–3). 그러므로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이집트로 가야 한다거나, 반대로 반드시 남아 있어야 한다는 한 가지 규칙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야곱이 실제로 이집트로 내려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창세기 46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등장합니다. 45장 자체는 그 이동이 가능해지는 구체적인 조건들을 보여줍니다.

복을 받는 가족과 복을 나누는 이집트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에는 그를 통해 땅의 여러 가족이 복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12:3). 요셉은 이미 이집트가 흉년을 견디도록 도왔습니다. 이제 이집트 왕은 요셉의 가족에게 호의를 베풉니다.

이처럼 서로 돕는 관계를 통해 생명이 지켜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가족이 다른 민족과 완전히 끊어진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민족 가운데서 복을 나누고 도움을 받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본문은 이 호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다시 등장한 옷, 그리고 길에서의 마지막 당부

창세기 45:21–24 본문 →

모든 형제에게 주어진 옷

요셉은 형제들에게 수레와 길에서 먹을 것을 줍니다.

요셉은 형제들 모두에게 각자 갈아입을 옷을 주었습니다. 베냐민에게는 은 300셰켈과 갈아입을 옷 다섯 벌을 주었습니다.창세기 45:22 · 두루새김

옷은 요셉 이야기에서 여러 차례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창세기 37장에서 야곱이 요셉에게 만들어 준 특별한 옷은 형제들의 미움을 더욱 크게 만들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에게서 그 옷을 벗기고, 나중에는 피를 묻혀 아버지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창세기 39장에서는 요셉이 주인의 아내에게 옷을 남겨 두고 도망쳤고, 그 옷이 거짓 고발에 사용되었습니다. 창세기 41장에서는 파라오가 요셉에게 고운 아마포 옷을 입혀 새로운 지위를 드러냈습니다.

이제 요셉은 형제들에게 옷을 줍니다.

처음에 옷은 미움과 상실의 이야기 속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형제들이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선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베냐민에게는 왜 다섯 벌인가

그런데 요셉은 베냐민에게 더 많은 것을 줍니다.

앞서 43장의 식사에서도 베냐민은 다른 사람의 다섯 배에 해당하는 몫을 받았습니다(43:34). 이제는 옷 다섯 벌을 받습니다. 요셉이 친동생 베냐민을 특별하게 대한다는 사실이 다시 드러납니다.

요셉은 다른 형제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미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제 베냐민이 특별한 대우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야기가 형제들의 질투나 공격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가는 길에 서로 다투지 마세요」

요셉은 형제들을 보내면서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떠나보내며 말했습니다. 「가는 길에 서로 다투지 마세요.」 형제들은 길을 떠났습니다.창세기 45:24 · 두루새김

요셉은 형제들을 가나안으로 보내면서 그들이 무사히 아버지에게 도착하기를 바랍니다. 요셉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이집트로 데려와야 합니다.

형제들 사이에서 일어난 놀라운 변화가 이제 아버지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는 은 삼백의 단위가 직접 나와 있지 않지만, 두루새김은 「은 300셰켈」로 옮겼습니다. 히브리어 동사 라가즈(⁨רָגַז⁩)는 문맥에 따라 떨거나 마음이 흔들리는 것, 화를 내거나 불안해하는 것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여행길에서 두려워하거나 마음이 흔들리지 말라는 뜻일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형제들끼리 다투지 말라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요셉을 팔자고 했는지, 누가 막지 않았는지, 누구에게 더 큰 책임이 있는지를 두고 서로 다툴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실제로 형제들이 그런 다툼을 시작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요셉의 명령을 반드시 과거의 잘못을 두고 서로 비난하지 말라는 뜻으로만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요셉이 아직 살아 있어요」 — 믿을 수 없는 소식

창세기 45:25–28 본문 →

좋은 소식이 곧바로 기쁨이 되지는 않는다

형제들은 가나안으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그들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요셉이 아직 살아 있어요! 게다가 이집트 온 땅을 다스리고 있어요.」 야곱은 마음이 멍해졌습니다. 아들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창세기 45:26 · 두루새김

야곱은 오랫동안 요셉이 죽었다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그 믿음은 한순간의 오해가 아니었습니다. 형제들이 피 묻은 옷을 가져왔을 때 그는 요셉이 맹수에게 찢겨 죽었다고 판단했습니다(창세기 37:31–33).

더구나 그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은 바로 예전에 요셉이 죽었다고 믿게 된 사건과 관련된 아들들입니다. 그들이 과거의 일을 어떻게 설명했는지 본문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기쁜 소식이라고 해서 그것을 듣는 사람이 언제나 곧바로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야곱에게 이 소식은 자신이 오랫동안 믿어 온 현실 전체를 뒤집는 말입니다. 그는 그 말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말과 수레

그들은 요셉이 자기들에게 한 말을 모두 아버지에게 전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자기를 태워 오려고 보낸 수레들을 보고 기운을 되찾았습니다.창세기 45:27 · 두루새김

여기서 수레는 단순한 이동 수단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요셉이 살아 있으며 아버지를 이집트로 데려오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물건입니다. 그 수레는 파라오의 명령에 따라 요셉이 제공한 것입니다.

그때 형제들은 요셉의 피 묻은 옷을 아버지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야곱은 그 옷을 보고 요셉이 죽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번에는 요셉이 보낸 수레를 아버지에게 보여 줍니다. 야곱은 그 수레를 보고 요셉이 살아 있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물건은 거짓된 결론으로 이끌었습니다. 두 번째 물건은 참된 소식을 믿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멍해진 마음과 되찾은 기운

26절과 27절은 야곱의 변화를 서로 대조되는 표현으로 보여 줍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멍해집니다.

그다음에는 기운을 되찾습니다.

요셉은 실제로 살아 있습니다. 야곱은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삶의 기운을 되찾습니다.

오랫동안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이, 아버지의 마음에도 새로운 생기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제 됐다」

마침내 야곱이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말했습니다. 「이제 됐다. 내 아들 요셉이 아직 살아 있구나!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 애를 보겠다.」창세기 45:28 · 두루새김

형제들은 요셉이 이집트 온 땅을 다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마지막 말은 그 지위나 재산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요셉이 이집트 온 땅을 다스리게 되었다는 사실보다, 아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아버지에게는 더 중요합니다. 그는 아들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죽기 전에 그를 만나고 싶습니다.

이야기는 아직 그들이 실제로 다시 만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자신의 입으로 아들을 보러 가겠다고 말하는 순간, 오랫동안 멈추어 있었던 가족의 이야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27절의 「기운을 되찾았습니다」는 말 그대로 옮기면 「야곱의 영이 살아났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살아나다」는 실제로 죽었다가 다시 생명을 얻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야곱이 충격과 믿지 못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다시 기운을 얻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원문에서는 「살다」라는 말이 두 사람에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적용됩니다. 요셉은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죽었다고 여겨졌지만 살아 있었던 사람입니다. 다만 죽었다고 여겼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된다는 주제는 누가복음 15:24, 32의 잃었다가 되찾은 아들에 관한 이야기와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이것은 창세기 45장의 직접적인 인용이나 분명하게 밝혀진 성취가 아니라, 잃었던 가족을 다시 얻는 기쁨을 둘러싼 주제적 연결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은 인간의 상처를 건너뛰지 않는다

창세기 45:1–28 본문 →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발견한 요셉은 과거의 진실을 지우는 대신, 그 진실을 인정한 자리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창세기 45장에서 섭리와 용서가 만나는 자리입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늙은 야곱이 등장합니다.

오랫동안 그는 요셉이 죽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아들이 살아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데려오려고 수레까지 보냈습니다.

야곱은 그 수레를 바라본 뒤 말합니다. 「이제 됐다. 내 아들 요셉이 아직 살아 있구나!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 애를 보겠다.」

이 말에는 요셉의 높은 지위에 관한 감탄도, 이집트에서 누리게 될 넉넉한 삶에 관한 기대도 없습니다. 단지 살아 있는 아들을 다시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마음이 있습니다.

요셉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을 살리는 일이었고, 야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아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창세기 45장은 두 사람을 아직 만나게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쪽에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데려올 수레를 보내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버지가 그 수레를 보고 다시 살아갈 기운을 얻습니다.

오랫동안 끊어진 것처럼 보였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이제 오갈 길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 길을 따라가 아들을 보겠다고 말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