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16장

이 장의 자리 · 13–16장 · 예루살렘으로 온 궤

천막에 머문 궤, 온 땅으로 퍼지는 찬양

하나님의 궤가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다윗은 궤를 위해 마련한 천막 안에 그것을 놓고, 제사를 드리고, 백성을 축복합니다.

그런데 역대상 16장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궤가 안착하는 장면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뒤에 이어지는 긴 찬양입니다.

찬양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조상들이 나그네로 떠돌던 시절, 그들을 지켜 주신 일들을 기억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온 땅을 향해 노래하라고 외칩니다. 민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되기를 바라고, 바다와 들과 숲의 나무들까지 기뻐하도록 부릅니다.

마지막에는 또 뜻밖의 기도가 등장합니다.

「저희를 구원해 주시고 모으시며 민족들에게서 건져 주십시오.」 방금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데 성공했는데, 왜 백성은 흩어진 자리에서 자신들을 모아 달라는 기도를 드리는 것일까요?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816장 본문 읽기 →

하나님 앞에서 드린 제사가 사람들 사이의 식탁으로 이어진다

역대상 16:1–3 본문 →

궤가 천막 안에 놓이자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바칩니다.

번제는 제물을 제단 위에서 태워 드리는 제사이고, 화목제는 그 가운데 일부를 제사장과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제사였습니다(레위기 3장; 7:11–21, 28–34). 두 제사가 함께 등장하는 것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일과 하나님 앞에서 공동체가 교제하는 일이 나란히 놓여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제사를 마친 뒤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합니다.

그는 남자부터 여자까지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둥근 빵 한 개와 과자 한 개와 건포도 과자 한 개씩을 나누어 주었다.역대상 16:3 · 본디새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공적인 대표 역할과 제사 직무는 주로 남성들에게 맡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는 축복의 행사에 참여한 남녀 모두에게 음식을 나누어 줍니다.

궤를 옮기는 일에는 정해진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궤가 도착한 기쁨은 그 일을 맡은 사람들에게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맞이한 공동체의 기쁨은 누군가의 특권으로 남지 않고, 사람들에게 실제로 나누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세 음식의 정확한 재료와 형태는 모두 확실하게 복원할 수 없습니다. 특히 두 번째 음식은 어떤 종류의 과자였는지 불분명합니다.

도착한 궤 앞에 사람들을 남겨 두는 이유

역대상 16:4–7 본문 →

궤를 옮겨 오는 행렬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해야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레위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을 여호와야훼의 궤 앞에서 섬기는 이들로 세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기억하게 하고 그에게 감사하며 찬양하게 했다.역대상 16:4 · 본디새김

히브리어 레하즈키르(⁨זָכַר⁩)는 기억하게 하거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을 가진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는 무엇을 누구에게 기억하게 하는지 목적어가 명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읽기가 가능합니다. 백성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기억해 달라고 아뢰는 제의적인 행위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기념하는 직무와 관련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12절은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일과 판결을 기억하라고 하고, 15절은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라고 합니다. 따라서 적어도 이 장 전체에서 레위 사람들의 찬양은 단지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하나님의 행하심을 잊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5–6절에는 아삽을 중심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과 나팔을 부는 제사장들의 이름이 기록됩니다. 이제 이들은 일회성 행렬의 참여자가 아니라 궤 앞에서 섬기는 사람들로 자리 잡습니다.

그날 다윗은 처음으로 여호와야훼에게 감사하는 일을 아삽과 그의 형제들에게 맡겼다.역대상 16:7 · 본디새김

여기서 「처음으로」라는 말은 다윗이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로 감사 찬양을 만들었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에서 강조되는 것은 이 날 다윗이 감사의 직무를 아삽과 그의 형제들에게 맡겼다는 사실입니다.

앞의 일곱 절이 찬양의 자리를 마련했다면, 8절부터는 그 찬양이 독자에게 직접 말을 겁니다.

찬양은 먼저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라고 부른다

역대상 16:8–14 본문 →

8절부터 36절까지 이어지는 찬양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 노래의 상당 부분은 시편의 세 본문과 대응합니다. 8–22절은 시편 105:1–15과, 23–33절은 시편 96편과, 34–36절은 시편 106:1, 47–48과 연결됩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이 세 시편을 직접 편집하여 하나의 노래를 만들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역대기가 전하는 찬양과 해당 시편들이 문구를 공유한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이 자료들이 형성되고 결합된 정확한 순서는 본문만으로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 아니다

「여호와야훼에게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불러라. 그가 한 일들을 뭇 백성 가운데 알려라.」역대상 16:8 · 본디새김

감사, 이름을 부르는 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리는 일이 한 문장 안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감사가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응답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행한 놀라운 일들, 그의 표징들과 그의 입에서 나온 판결들을 기억하라.」역대상 16:12 · 본디새김

하나님은 백성을 도와주시는 분일 뿐 아니라 세상을 판단하고 다스리시는 분이기도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유익했던 일만 골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판단까지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야훼와 그의 힘을 구하라. 늘 그의 얼굴을 찾아라.」역대상 16:11 · 본디새김

궤를 옮겨 오는 일은 완료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는 일은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기념하는 장소를 마련하는 일과 하나님을 계속 찾는 일은 서로 다릅니다.

이것은 역대기 전체에서 중요한 주제로 이어집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하나님을 찾으면 만날 것이라고 말하고(역대상 28:9), 이후 왕들의 역사에서도 여호와야훼를 찾는지 버리는지가 반복해서 평가의 기준이 됩니다.

땅을 약속받았지만, 그 땅에서 나그네였던 사람들

역대상 16:15–22 본문 →

찬양은 이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시대로 돌아갑니다.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라. 그가 천 세대에 명령한 말을 기억하라.」역대상 16:15 · 본디새김

역대상 16:15의 히브리어는 지크루, 곧 「기억하라」라는 명령형입니다. 반면 시편 105:8의 히브리어는 자카르, 곧 「그가 기억하셨다」라는 서술형입니다. 다만 역대상 16:15을 시편과 같이 읽는 일부 고대 그리스어 사본도 있어, 이 차이의 형성 과정은 확정할 수 없습니다.

시편 105편에서는 하나님이 언약을 기억하신다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역대상 16장에서는 백성이 그 언약을 기억해야 한다는 명령이 앞에 놓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며, 이삭에게 한 그의 맹세다.」역대상 16:16 · 본디새김

이어서 하나님은 야곱에게도 그 언약을 확정하시고, 가나안 땅을 유산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은 창세기 12:7, 15:18–21, 26:3–5, 28:13–15 등에 나타나는 땅의 약속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찬양은 약속을 말한 직후, 그 약속과 정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너희가 손꼽을 만큼 적은 수, 아주 적은 수로 그 땅에 나그네로 머물던 때에,」역대상 16:19 · 본디새김

하나님이 그 땅을 유산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조상들은 그 땅의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이스라엘이 이미 강력한 민족이 되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땅과 군대와 왕권을 갖추기 전에, 아직 약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던 때에 주어졌습니다.

다윗 시대의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왕국을 세워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부르는 노래는 왕국의 위대함이 아니라 나그네였던 조상들의 연약함을 먼저 기억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이 가진 것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이들은 누구인가

「그는 아무도 그들을 억누르지 못하게 했고, 그들을 위해 왕들을 꾸짖었다.」역대상 16:21 · 본디새김
「『나의 기름부음 받은 이들에게 손대지 마라. 나의 예언자들을 해치지 마라.』」역대상 16:22 · 본디새김

「기름부음 받은 이들」이라는 표현을 보면 다윗이나 사울 같은 왕을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비롯한 조상들입니다. 아직 이스라엘에 왕조가 세워지기도 전의 사람들입니다.

또한 조상들이 실제로 기름을 부어 왕이나 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특별히 구별하여 보호하시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20:7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예언자라고 부르십니다.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돌려보내라고 명령하시는 문맥입니다. 창세기 12:17–20과 26:11에도 하나님이 조상들을 다른 통치자들의 위협 속에서 보호하시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다만 이 찬양이 조상들이 실제로 아무런 고통도 겪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자체는 그들의 불안과 위험을 숨기지 않습니다. 찬양은 그 불안정한 삶 속에서도 하나님이 언약의 약속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이렇게 읽으면 22절을 모든 시대의 종교 지도자가 비판이나 책임 추궁으로부터 면제된다는 선언으로 사용할 근거는 없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과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신 일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찬양의 방향이 크게 바뀝니다.

이스라엘의 기억에서 온 세계의 찬양으로

역대상 16:23–33 본문 →

「온 땅아, 여호와야훼에게 노래하라. 날마다 그의 구원을 기쁜 소식으로 전하라.」역대상 16:23 · 본디새김

앞부분에서 찬양이 부르는 청중은 이스라엘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에게 주어진 언약을 기억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런데 23절에서는 청중이 갑자기 넓어집니다.

이스라엘의 특별한 역사가 세계를 향한 증언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언약은 분명 특별합니다. 그러나 그 언약을 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국경 안에 갇힌 분이 아니십니다.

「뭇 백성의 신들은 모두 헛된 것들이지만, 여호와야훼는 하늘을 만들었기 때문이다.」역대상 16:26 · 본디새김

「헛된 것들」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다른 신들의 능력이 여호와야훼보다 조금 약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이 참된 신으로서 지닌 가치와 실재성을 부정하는 표현입니다.

앞부분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보호하신 일을 통해 그분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세계 자체가 존재하는 근거를 통해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만이 경험한 역사에서 시작했지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는 이스라엘만의 경험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분이 온 세계를 창조하셨다면, 그분의 영광을 인정해야 할 대상도 온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처소에는 기쁨이 있다

「위엄과 영화가 그의 앞에 있고, 힘과 기쁨이 그의 처소에 있다.」역대상 16:27 · 본디새김

앞에서 다윗과 백성은 궤가 들어오는 일을 기뻐했습니다. 이제 노래는 힘과 기쁨이 하나님의 처소에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위엄은 기쁨과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거룩하심을 인정하는 가운데 백성은 그분 앞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모든 민족에게 예물을 들고 오라고 하는 이유

28–29절은 「뭇 백성의 가문들」을 직접 부릅니다.

「그 이름에 걸맞은 영광을 여호와야훼에게 돌려라. 예물을 들고 그의 앞으로 나아오라. 거룩한 아름다움으로 여호와야훼에게 엎드려라.」역대상 16:29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려야 합니다. 동시에 다른 민족들도 여호와야훼의 영광을 인정하고 그분 앞에 나아오도록 부름받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 위에 군림하라는 선언과 다릅니다.

찬양의 중심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이십니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기를. 민족들 가운데서 말하기를. 『여호와야훼가 왕으로 다스린다.』」역대상 16:31 · 본디새김

다윗의 왕권이 확립되어 가는 이야기 한가운데서, 노래는 여호와야훼께서 왕으로 다스리신다고 선언합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통치하는 왕국이 세계의 최종적인 권위는 아닙니다.

역대상 14:2에서 다윗은 자신의 왕권이 여호와야훼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높아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16장의 찬양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왕권 자체가 여호와야훼의 더 큰 통치 안에 있음을 선포합니다.

예루살렘에 왕이 있지만, 예루살렘의 왕보다 크신 왕이 계십니다.

왜 나무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기뻐하는가

31절부터는 하늘과 땅뿐 아니라 바다와 들, 숲의 나무들까지 찬양에 참여합니다. 이것은 시적인 의인화입니다. 창조 세계가 마치 살아 있는 예배 공동체처럼 묘사됩니다.

「그때 숲의 나무들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기뻐 외칠 것이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오기 때문이다.」역대상 16:33 · 본디새김

바로 앞의 30절은 하나님 앞에서 온 땅이 떨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은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 두 표현은 하나님이 오시는 일이 단지 세상을 무너뜨리는 사건으로만 묘사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문맥에서 심판은 불의와 혼란을 영원히 방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뜻합니다. 따라서 시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창조 세계가 환영할 사건으로 노래합니다. 시편 96:13은 같은 주제를 더욱 분명하게 풀어, 여호와야훼가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세상을 판단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궤가 안착한 곳은 작은 천막이지만, 그 궤 앞에서 부르는 찬양이 바라보는 세계는 그보다 훨씬 큽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 96:6은 하나님의 성소에 있는 힘과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역대상 16:27은 「힘과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두 본문의 차이가 정확히 어떤 과정을 거쳐 생겼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역대상의 문면에서 「기쁨」이 하나님의 처소를 묘사하는 말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29절의 「거룩한 아름다움」은 거룩한 옷이나 예배에 걸맞은 장엄한 모습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표현 베하드라트 코데시를 특정한 의복으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감사의 절정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구원의 기도

역대상 16:34–36 본문 →

찬양은 다시 익숙한 감사의 선언으로 돌아옵니다.

「여호와야훼에게 감사하라. 그는 선하기 때문이다. 그의 인자함이 영원하기 때문이다.」역대상 16:34 · 본디새김

하나님은 수가 적고 나그네였던 조상들에게 약속하셨고, 그들이 위협받는 가운데서도 그들을 돌보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자함은 일시적인 호의가 아니라, 세대를 넘어 계속되는 신실하심으로 노래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찬양의 분위기가 바뀝니다.

「또 이렇게 말하라. 『저희 구원의 하나님, 저희가 당신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하고 당신께 드리는 찬양을 자랑하도록, 저희를 구원해 주시고 모으시며 민족들에게서 건져 주십시오.』」역대상 16:35 · 본디새김

다윗 시대에 왜 흩어진 백성을 모아 달라고 기도하는가

이 찬양이 놓인 이야기의 시점은 다윗이 예루살렘에 궤를 모셔 온 때입니다. 그런데 「민족들에게서 건져 주십시오」라는 기도는 외국 민족들 가운데 흩어져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처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찬양은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알지만, 여전히 구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지만, 자신들이 모여야 할 자리를 아직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함이 영원하다는 고백은 모든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문제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도 그분의 신실하심을 근거로 구원을 구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들은 다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도록 자신들을 모아 달라고 구합니다. 앞에서는 이스라엘이 온 민족에게 하나님을 알리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여기서는 이스라엘 자신이 그분을 찬양할 수 있는 공동체로 보존되기를 구합니다.

온 세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민족들 가운데서도 그분께 도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아멘」으로 노래가 공동체의 고백이 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받기를.」 그러자 온 백성이 「아멘.」 하고 말하며 여호와야훼를 찬양했다.역대상 16:36 · 본디새김

「아멘」은 앞에 선포된 내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응답입니다. 따라서 이 장면에서는 아삽과 그의 형제들이 맡은 찬양이 온 백성의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노래는 아삽과 그의 형제들에게 맡겨졌지만, 마지막 「아멘」은 온 백성의 것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35절의 기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는 해석이 갈립니다. 다윗 시대에도 외국의 지배나 흩어짐에서 구원받기를 구하는 일반적인 공동체 기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대상 16장의 이야기 자체에서는 다윗이 감사의 노래를 아삽과 그의 형제들에게 맡겼다고 기록합니다. 반면 이 찬양의 시편적 형태와 역대기의 후대 서술 맥락을 고려하면, 포로와 귀환을 경험한 공동체의 기도가 다윗 시대의 찬양 안에 함께 담겼다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기도는 시편 106:47과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시편 106편은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그 결과를 회고하며, 민족들 가운데서 자신들을 모아 달라는 간구로 이어집니다. 역대기는 다윗의 통치를 회고하는 역사 서술입니다. 특히 책의 첫머리에 놓인 긴 족보에는 바벨론 포로 생활과 그 이후의 세대까지 등장합니다(역대상 3:17–24; 9:1–2). 정확한 형성 과정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찬양이 끝난 뒤에도 예배는 계속된다

역대상 16:37–42 본문 →

36절에서 찬양이 끝나자 서술은 다시 다윗의 행정적인 조치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의 궤는 예루살렘에 있지만, 여호와야훼의 성막은 기브온에 있습니다.

다윗은 두 장소에 각각 사람들을 배치합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아삽과 그의 형제들이 궤 앞에서 날마다 섬깁니다. 기브온에서는 사독과 제사장들이 성막 앞에서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립니다.

또 제사장 사독과 그의 형제 제사장들을 기브온 산당에 있는 여호와야훼의 성막 앞에 두어,역대상 16:39 · 본디새김

기브온에 성막이 있었다는 사실은 역대상 21:29과 역대하 1:3–6에서도 확인됩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만들었던 성막과 번제단이 그곳에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상태는 나중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성막과 궤를 옮기는 이야기(역대하 5:2–5)를 통해 새로운 단계에 이릅니다.

한 장소의 성공이 다른 장소의 직무를 없애지 않는다

그는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에 성공했지만, 그 성공을 이유로 기브온의 성막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브온에도 사독과 제사장들을 두어 율법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리게 합니다.

37절에는 「날마다」라는 말이 나오고, 40절에는 「아침저녁으로 늘」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앞부분은 특별한 하루를 기록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특별할 것 없는 수많은 날들을 준비합니다.

기념할 만한 한 사건을 지속적인 감사의 삶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41절에는 헤만과 여두둔을 비롯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인자함이 영원하기 때문에 감사하는 일을 맡습니다. 이것은 앞서 34절에서 부른 「그의 인자함이 영원하기 때문이다」라는 노래와 정확히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인자함이 영원하다는 말은 그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일을 하루의 행사로 끝내지 않을 이유가 됩니다.

이 장에서 영원한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감격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자함입니다.

마지막에 모든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는 이유

역대상 16:43 본문 →

이렇게 긴 찬양과 예배 조직의 설명이 끝난 뒤, 역대상 16장은 소박한 한 문장으로 마무리됩니다.

하나님이 신실하게 행하신 일을 기억하기 때문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구원을 그분께 구할 수 있습니다. 예배하는 공동체는 자신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고, 그분의 성품을 증언하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구원을 함께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 일이 지속되도록 사람들을 세우고, 시간을 정하고, 맡겨진 직무를 이어 갑니다.

온 백성은 저마다 자기 집으로 갔고, 다윗은 자기 집안을 축복하려고 돌아갔다.역대상 16:43 · 본디새김

2절에서 다윗은 제사를 마친 뒤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했습니다. 43절에서는 자기 집안을 축복하러 돌아갑니다. 처음에는 온 백성이 축복의 대상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왕 자신의 집안이 축복의 대상이 됩니다.

역대기는 다윗이 자기 집안에 가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앞과 뒤에 백성을 향한 축복과 집안을 향한 축복을 배치한 것은, 큰 예배 행사가 끝난 뒤에도 하나님 앞에서 받은 기쁨이 사람들의 생활과 분리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장면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길고 장엄한 찬양이 끝나자 백성은 각자 집으로 돌아갑니다. 다윗도 자기 집안을 축복하려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천막 앞에는 아삽과 그의 형제들이 남아 있습니다. 기브온의 성막 앞에는 사독과 제사장들이 남아 있습니다.

백성의 함성은 그쳤지만,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다윗이 마련한 천막에 놓여 있고, 그 앞에서는 다음 날에도 찬양이 이어질 것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