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6장

이 장의 자리 · 1–9장 · 아담에서 이어진 족보

하나님의 집에서 노래하던 사람들의 거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았을까?

예루살렘 성전 안에만 머물렀을까? 제사장의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제사를 드렸을까? 하나님을 섬기는 데 노래하는 사람과 성막의 물건을 관리하는 사람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역대상 6장은 이러한 질문에 뜻밖의 방식으로 답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섬기는가? 그들은 무엇을 하는가? 그리고 그들은 어디에서 살아가는가?

이스라엘의 예배는 제단에서 제물을 바치는 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노래하는 사람과 여러 일을 맡은 레위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살아갈 장소를 내어 준 공동체가 함께 있었습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106장 본문 읽기 →

레위의 세 아들 — 같은 조상이지만 맡은 일은 달랐다

역대상 6:1–4 본문 →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솜과 그핫과 므라리였다.역대상 6:1 · 본디새김

레위의 세 아들은 이 장 전체를 구성하는 출발점입니다.

이 세 이름이 처음 등장한 뒤 각 집안의 후손들이 소개되고, 중간에서는 세 계보에서 나온 노래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마지막에는 다시 이 세 집안에 속한 사람들이 어느 성읍을 받았는지 기록됩니다.

민수기 3–4장을 함께 읽으면 이 세 집안이 광야 시대에 어떤 일을 맡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게르솜 자손은 성막의 휘장과 덮개를 비롯한 천으로 된 부분을 맡았습니다(민수기 3:25–26). 그핫 자손은 언약궤와 상, 등잔대, 제단을 비롯한 성소의 거룩한 기물들과 관련된 일을 맡았습니다(민수기 3:31; 4:4–15). 므라리 자손은 성막의 널판과 기둥, 받침과 같은 구조물을 맡았습니다(민수기 3:36–37).

광야에서 성막은 한곳에 고정된 석조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동할 때는 해체하여 옮겨야 했고, 다시 정착하면 설치해야 했습니다. 각 집안이 맡은 일은 달랐지만 모두 성막이 제 기능을 하도록 하는 데 필요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역할에 동일한 권한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거룩한 기물을 다루는 일에는 엄격한 제한이 있었습니다. 민수기 4:15에 따르면 그핫 자손은 제사장들이 거룩한 물건을 덮은 다음에야 운반할 수 있었고, 거룩한 물건을 직접 만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 안에는 함께 수행해야 할 책임이 있었고, 동시에 지켜야 할 경계가 있었습니다.

사무엘의 계보 — 아버지의 실패가 후손의 이름을 지우지는 않았다

역대상 6:5–15 본문 →

5절부터 세 집안의 후손이 차례로 소개됩니다.

게르솜의 계보가 먼저 나오고, 그핫의 계보에서는 여러 세대에 걸쳐 엘가나라는 이름이 반복됩니다. 그러다가 13절에서 중요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맏아들 와스니와 아비야였다.역대상 6:13 · 본디새김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사사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갈 때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사무엘상 7:15–17; 10:1; 16:13).

그런데 사무엘에게도 아들들과 관련된 어려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8:1–3에 따르면 사무엘은 늙은 뒤 아들들을 재판관으로 세웠지만, 그들은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익을 탐하고 뇌물을 받으며 재판을 굽게 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장로들이 왕을 요구하는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사무엘상 8:4–5).

그러나 역대상 6장은 그들의 잘못을 다시 서술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을 계보에 기록하고, 이후 그의 후손이 예배를 섬기는 사람으로 등장하도록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맏아들의 이름은 와스니인가, 요엘인가

사무엘상 8:2에서는 사무엘의 맏아들을 요엘, 둘째를 아비야라고 기록합니다. 반면 역대상 6:13의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는 ‘맏아들’이라는 말 뒤에 와슈니(⁨וַשְׁנִי⁩)라는 형태가 나옵니다. 본디새김은 이를 와스니라는 이름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 형태를 ‘둘째’라는 표현으로 읽는다면 맏아들의 이름이 빠져 있는 문장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일부 칠십인역 사본과 시리아어역 전승은 이 자리에 요엘이라는 이름을 보존합니다. 같은 장 18절에서도 사무엘의 아들 요엘이 다시 등장합니다.

따라서 사무엘의 맏아들을 요엘로 기록한 전승에는 사무엘상 8:2와 역대상 6:18이라는 본문상의 근거가 있습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13절에 기록된 형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고라의 후손이라는 뜻밖의 연결

그핫의 계보에는 고라라는 이름도 등장합니다(6:7, 22–23). 민수기 16장에 따르면 이스할의 아들 고라는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하는 반역에 참여했습니다. 그 사건에서 고라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민수기 26:11은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않았다고 명시합니다.

고라 집안의 역사는 반역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후손들은 계속 존재했고, 그들 가운데서 예배와 찬양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고라 자손이라는 이름은 시편의 표제에도 등장합니다. 시편 42편, 44–49편, 84–85편, 87–88편 등이 그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고라 자신의 반역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민수기는 그 사건을 분명하게 심판의 이야기로 기록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잘못이 모든 후손의 삶을 동일하게 결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5절에서 므라리의 후손을 소개한 뒤, 족보는 전혀 다른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이름만 이어지던 기록에 이제 노래가 등장합니다.

궤가 머문 자리에서 노래가 시작되다

역대상 6:16–17 본문 →

다음은 궤가 안치된 뒤에 다윗이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노래하는 일을 맡긴 사람들이었다.역대상 6:16 · 본디새김

지금까지는 누가 누구를 낳았는지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의 이름이 특정한 직무와 연결됩니다.

역대상 15–16장에는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궤가 도착하자 다윗은 그것을 위해 마련한 장막 안에 두고, 레위 사람들을 세워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도록 했습니다(역대상 16:1–7).

그들은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여호와야훼의 집을 지을 때까지 만남의 천막인 성막 앞에서 노래로 섬겼다. 그들은 정해진 규례에 따라 맡은 일을 수행했다.역대상 6:17 · 본디새김

찬양은 단지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앞에 나서서 부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명령 아래 특정한 사람들이 직무를 맡았고, 그들은 규정된 방식으로 섬겼습니다.

노래는 제사 사이에 덧붙이는 장식이 아니라, 맡겨진 일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의 직무였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역대상 16:1에 따르면 하나님의 궤는 다윗이 예루살렘에 마련한 장막 안에 놓였습니다. 반면 역대상 16:39–40에는 사독과 제사장들이 기브온 산당에 있는 여호와야훼의 성막 앞에서 번제를 드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에는 궤가 머무는 예루살렘의 장막과 기브온에 있는 성막이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역대상 6:17의 표현을 이 두 장소 가운데 정확히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노래했는지를 설명하는 상세한 공간 기록으로 읽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기 전부터 레위 사람들의 찬양 직무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헤만의 오른쪽에는 아삽, 왼쪽에는 에단

역대상 6:18–32 본문 →

18절부터 세 사람의 이름이 특별히 소개됩니다.

헤만, 아삽, 에단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노래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이름을 나열한 것이 아닙니다. 레위의 세 집안과 각각 연결되어 있습니다.

헤만은 그핫 자손입니다.

아삽은 게르솜 자손입니다.

에단은 므라리 자손입니다.

1절에서 소개된 레위의 세 아들이 이제 하나님의 집에서 노래하는 세 계보로 다시 등장한 것입니다.

헤만 — 사무엘의 후손이 노래하는 자리에 서다

그 일을 맡은 사람들과 그들의 아들들은 다음과 같았다. 그핫 자손 가운데서는 노래하는 사람 헤만이 있었다. 헤만은 요엘의 아들이고, 요엘은 사무엘의 아들이었다.역대상 6:18 · 본디새김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하던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의 후손 헤만에게 주어진 역할은 왕에게 말씀을 전하거나 이스라엘을 재판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는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헤만이 무엇을 노래했는지 이 장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시편 88편의 표제에는 고라 자손과 헤만이라는 이름이 함께 등장합니다. 다만 그곳의 ‘에스라 사람 헤만’을 역대상 6장의 헤만과 반드시 동일 인물로 보아야 하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시편 88편은 깊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시입니다. 찬양의 전통 안에는 기쁨뿐 아니라 고난과 탄식의 언어도 있었습니다.

아삽 — 헤만의 오른쪽에 서다

그의 형제 아삽은 그의 오른쪽에 섰다. 아삽은 베레갸후의 아들이고, 베레갸후는 시므아의 아들이었다.역대상 6:24 · 본디새김

여기서 ‘형제’라는 말은 반드시 두 사람이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레위 계보에 속하므로 같은 레위 집안의 일원이나 함께 직무를 맡은 동료라는 의미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오른쪽이라는 위치가 특정한 서열을 나타내는지, 단순히 배치를 설명하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시편 50편과 73–83편의 표제에는 아삽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특히 시편 73편은 악한 사람들의 형통을 보며 신앙적인 혼란을 겪는 사람의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시편 73:17에서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간 뒤 그들의 마지막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찬양은 이미 모든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만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세상을 다시 이해하려는 사람들의 언어이기도 했습니다.

에단 — 왼쪽에 선 또 하나의 집안

그들의 형제인 므라리의 자손들은 왼쪽에 섰다. 그 가운데 에단은 기시의 아들이고, 기시는 압디의 아들이고, 압디는 말룩의 아들이었다.역대상 6:29 · 본디새김

서로 다른 조상에게서 나온 세 집안이 한 예배를 위해 각각 자리에 섭니다.

광야에서 레위의 세 집안은 성막의 서로 다른 부분을 맡아 운반하고 관리했습니다. 이제 다윗 시대에는 각 집안의 후손이 노래하는 직무를 수행합니다. 성막이 이동하던 시대와 예루살렘에서 예배가 정착되는 시대 사이에 직무의 모습은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여러 집안이 함께 예배를 섬긴다는 구조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역대상 15:16–22에서는 다윗이 레위 지도자들에게 노래하는 사람들을 세우고 악기로 기쁨의 소리를 내도록 명령합니다. 역대상 25:1–7에서는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들이 악기를 사용하며 맡은 일을 수행하는 모습이 더 자세히 기록됩니다.

여두둔과 에단의 이름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본문들 사이에서 명시적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 이름을 아무 설명 없이 동일 인물의 두 이름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들리는 하나의 찬양은 서로 다른 집안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수행한 공동의 섬김이었습니다.

노래하는 사람들, 다른 레위 사람들, 그리고 아론의 제사장들

역대상 6:33–38 본문 →

그들의 형제인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의 집인 성막에서 하는 모든 일을 맡았다.역대상 6:33 · 본디새김

이 문장은 앞서 등장한 노래하는 사람들과 다른 레위 사람들을 구별합니다. 헤만과 아삽과 에단의 가문은 노래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다른 레위 사람들은 성막에서 필요한 여러 일을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는 또 다른 구분이 등장합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번제단과 분향단에서 제물과 향을 태워 연기를 올렸다. 그들은 지극히 거룩한 것들에 관한 모든 일을 맡고 이스라엘을 위해 속죄했으며, 하나님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그대로 따랐다.역대상 6:34 · 본디새김

아론의 자손은 레위 지파에 속하지만, 레위 지파에 속한 모든 사람이 아론의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민수기 18:1–7에서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 직무를 맡고, 다른 레위 사람들은 그들을 도와 성막에서 섬기도록 규정합니다.

제단의 일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34절은 아론의 자손들이 수행한 일을 ‘이스라엘을 위해 속죄했다’는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레위기 16장은 대속죄일의 의식을 설명하면서 이스라엘의 죄와 부정으로 더럽혀진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일과 백성의 속죄를 함께 다룹니다.

이스라엘의 죄는 단순히 개인의 내면에만 머무는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성소와 공동체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다루어졌습니다. 아론의 제사장들은 바로 그 관계를 다루는 의식적 직무를 맡았습니다.

제사장의 권위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제사의 형식과 의미를 결정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방식으로 섬겨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각자가 맡은 일이 있었습니다.

왜 아론의 계보를 다시 기록할까

35–38절에서는 엘르아살에서 시작해 비느하스, 아비수아, 북기, 웃시, 스라히야 등을 거쳐 사독과 아히마아스까지 이어지는 계보가 나옵니다. 이 계보는 앞에서 이미 소개된 제사장 계보의 일부를 다시 기록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포로기까지 모든 세대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사독과 아히마아스에 이르면 멈춥니다.

아론의 자손들이 제단에서 맡은 일을 설명한 뒤, 그 제사장 계보가 사독에게까지 어떻게 이어졌는지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독은 다윗 시대에 제사장으로 활동했고, 솔로몬의 즉위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열왕기상 1:38–39). 따라서 이 짧은 계보는 예루살렘 예배 체계와 관련된 아론 가문의 계승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제사장의 직무와 계보를 설명한 뒤 뜻밖의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그들은 어디에서 살아갔는가?

헤브론은 제사장에게, 주변의 들은 갈렙에게

역대상 6:39–41 본문 →

39절부터는 레위 사람들에게 주어진 성읍들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유다 땅의 헤브론과 그 둘레의 목초지를 주었다. 그러나 그 성읍의 들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은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다.역대상 6:40–41 · 본디새김

언뜻 보면 같은 지역을 서로 다른 사람에게 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성읍과 목초지, 들과 주변 마을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21:11–12에도 같은 구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제사장들이 헤브론에 거주할 수 있었다고 해서 그 지역에 딸린 모든 농경지와 주변 마을을 독점한 것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갈렙에게 주어진 상속지와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거주지의 권리가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제사장에게도 목초지가 필요했다

여기서 ‘그 목초지’라는 표현은 이후 성읍 목록 전체에서 계속 반복됩니다. 왜 역대기는 성읍 이름만 기록하지 않고 목초지를 거듭 언급할까?

레위 사람들도 실제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었고, 가축을 기를 땅이 필요했습니다. 성읍에 거주하며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 했습니다. 민수기 35:1–5에서도 레위 사람들에게 성읍과 그 주변의 목초지를 주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예배 직무를 맡은 사람들의 생계를 공동체가 실제로 뒷받침하도록 하는 규정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디에 살며 어떻게 생활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까지 제도 안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예배를 지속하려면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이 살아갈 실제 장소가 있어야 했습니다.

도피 성읍 — 제사장의 거주지가 누군가의 피난처가 되다

역대상 6:42–45 본문 →

42절에는 특별한 성읍들이 등장합니다.

아론의 자손들에게 도피 성읍들을 주었는데, 헤브론과 립나와 그 목초지, 얏딜과 에스드모아와 그 목초지,역대상 6:42 · 본디새김

본문은 복수형으로 도피 성읍들을 언급한 뒤 여러 성읍을 나열합니다. 그러나 나열된 모든 성읍이 도피 성읍이었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여호수아 20:7–8에서는 이스라엘의 도피 성읍 여섯 곳을 구체적으로 지정합니다. 역대상 6장의 성읍 목록에는 이 여섯 곳이 여러 레위 씨족의 거주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피 성읍은 무엇을 위한 곳이었을까?

민수기 35:9–34와 신명기 19:1–13은 고의가 아닌 살인과 고의적인 살인을 구별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의 친족이 피의 복수를 수행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에는 고의적인 살인과 구별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도피 성읍은 그러한 사람이 피의 복수자에게 즉시 죽임당하지 않고 사건의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장소였습니다. 민수기 35:12는 공동체 앞에서 재판받기 전에 죽임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라고 설명합니다. 고의적인 살인은 도피 성읍에 들어갔다고 해서 무조건 보호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신명기 19:11–13).

예배를 섬기는 사람들의 성읍에 왜 피난처가 있었을까

앞에서는 아론의 자손이 이스라엘을 위해 속죄하는 일을 맡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는 레위 사람들이 거주할 성읍 가운데 일부가 사람을 보호하는 도피 성읍으로 등장합니다.

제사장의 제단 직무와 도피 성읍의 사법적 기능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둘 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생명과 관계를 어떻게 다루도록 명령하셨는지 보여 준다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제단에서는 정해진 규례를 따라야 했고, 도피 성읍에서는 고의적인 살인과 과실로 인한 죽음을 구별해야 했습니다. 그 안에는 생명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사람을 죽게 한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 사건의 사정을 따지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이 죽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도피 성읍은 정의를 없애는 제도가 아니라, 성급한 보복이 정의를 대신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였습니다.

45절에는 아나돗이라는 성읍도 등장합니다. 아나돗은 훗날 예언자 예레미야의 고향으로 소개되는 곳입니다(예레미야 1:1).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읍 목록을 읽는 독자는 제사장 가문의 역사가 예루살렘의 성전 안에서만 이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지방 성읍에서도 계속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마흔여덟 성읍 — 레위 사람들은 한곳에 모여 살지 않았다

역대상 6:46–50 본문 →

이제 역대기는 레위의 각 집안이 받은 성읍의 수를 정리합니다.

아론의 자손인 그핫 계열은 13개, 나머지 그핫 자손은 10개, 게르솜 자손은 13개, 므라리 자손은 12개로, 역대상 6:45–48에 기록된 성읍 수의 합계는 48개입니다. 여호수아 21:41도 레위 성읍을 모두 48개로 기록합니다.

게르솜 자손들은 잇사갈, 아셀, 납달리, 므낫세 지파의 영역에서 성읍을 받았습니다. 므라리 자손들은 르우벤, 갓, 스불론 지파의 영역에서 성읍을 받았습니다. 그핫 자손들도 여러 지파의 땅에 분포했습니다.

레위에게 땅이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민수기 18:20에서 여호와야훼는 아론에게 다른 이스라엘 자손처럼 땅을 상속받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 자신이 그의 몫이자 상속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 13:14와 18:7에서도 레위 지파의 상속은 다른 지파의 상속과 구별됩니다. 그런데 역대상 6장에는 레위 사람들이 실제로 살게 된 성읍들과 목초지가 길게 나열됩니다.

레위 사람들이 상속받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거주지도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른 지파들처럼 하나의 독립적인 지파 영토를 상속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여러 지파가 자기들의 땅에서 성읍과 주변 목초지를 내어 주었습니다.

이것은 레위 지파의 생활이 다른 지파들과 직접 연결되도록 하는 구조였습니다.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를 맡았지만, 그들의 생활은 다른 지파들이 제공한 장소와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성읍 수가 기록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문제

45절에서는 아론의 자손들이 받은 성읍이 모두 열세 개라고 기록하지만, 본디새김의 40절과 42–45절에 실제로 이름이 나오는 성읍을 세면 열한 개입니다. 헤브론, 립나, 얏딜, 에스드모아, 힐레즈, 드빌, 아산, 벧세메스, 게바, 알레멧, 아나돗입니다.

여호수아 21:13–19의 평행 목록에는 역대상에 없는 윳다와 기브온이 추가로 기록되어 열세 개를 이룹니다. 일부 지명은 두 목록 사이에서 표기가 다릅니다.

46절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본문에는 나머지 그핫 자손들이 므낫세 반 지파에서 열 개의 성읍을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뒤의 51–55절에는 에브라임에서 받은 성읍 여섯 개와 므낫세에서 받은 성읍 두 개가 나열됩니다.

여호수아 21:5, 20–26에서는 나머지 그핫 자손들이 에브라임, 단, 므낫세 반 지파에서 성읍 열 개를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역대상 6:46의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여 열 개 모두가 므낫세의 성읍이었다고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차이들은 고대 계보와 지명 목록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일부 항목이 생략되었거나 다르게 전승되었을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정확히 어느 단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까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역대상과 여호수아는 모두 레위 사람들이 여러 지파에게서 성읍과 목초지를 받았다는 큰 틀을 공유합니다. 그 사실은 49절에 명확하게 요약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레위 사람들에게 그 성읍들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를 주었다.역대상 6:49 · 본디새김

여기서 주어는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이것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도록 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성읍들이 흩어질수록 공동체는 서로 연결된다

역대상 6:51–66 본문 →

51절부터는 각 레위 씨족이 받은 성읍의 이름이 더욱 자세히 나열됩니다.

세겜, 게셀, 벧호론, 아얄론이 등장합니다. 므낫세의 성읍들이 나오고, 바산의 골란과 아스다롯이 이어집니다. 잇사갈의 성읍들을 지나 아셀과 납달리의 성읍들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요단강 동쪽 르우벤과 갓 지파의 성읍들이 기록됩니다.

레위 사람들은 예배를 위해 특별한 역할을 맡았지만, 일상에서는 다른 지파 사람들과 같은 지역에 살았습니다.

성읍 이름 뒤에 따라붙는 목초지

이 긴 목록을 읽다 보면 하나의 표현이 거의 모든 성읍 뒤에 따라옵니다.

‘그 목초지.’

세겜과 그 목초지.

게셀과 그 목초지.

골란과 그 목초지.

게데스와 그 목초지.

베셀과 그 목초지.

라못과 그 목초지.

성읍 이름은 사람들이 어디에 살았는지 알려 줍니다. 목초지는 그들이 어떤 생활 기반을 제공받았는지 알려 줍니다.

역대기는 거주지만 기록하고 생계의 조건을 생략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동쪽과 서쪽에 놓인 도피 성읍

헤브론은 유다의 산지에 있었고, 세겜은 에브라임 산지에 있었습니다. 게데스는 북쪽 갈릴리에 있었습니다. 요단 동쪽에는 베셀과 길르앗의 라못, 바산의 골란이 있었습니다(여호수아 20:7–8).

누군가 고의가 아닌 살인으로 인해 보복의 위험에 놓였다면, 한곳에만 있는 피난처보다 여러 지역에 마련된 도피 성읍이 실제로 접근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신명기 19:3은 도피 성읍을 향해 가는 길을 준비하고 땅을 세 구역으로 나누라고 명령합니다. 그 목적은 보호가 필요한 사람이 실제로 도피할 수 있게 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보호 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이나 그 제도에 접근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중요했던 것입니다.

목록의 끝은 요단 동쪽에 있다

63–66절에서는 르우벤과 갓 지파의 성읍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앞 장에서 포로로 끌려갔다고 기록된 지파들입니다. 여기서는 그들이 살았던 지역 가운데 일부가 레위 사람들의 거주지로도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베셀과 야하스, 그데못과 메바앗이 르우벤의 성읍으로 등장합니다. 갓 지파에서는 길르앗의 라못과 마하나임, 헤스본과 야셀이 등장합니다. 이 목록은 레위 지파의 거주지가 요단강을 경계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렇게 레위의 계보는 이스라엘 전체의 땅과 연결됩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성전이 아니라 목초지다

역대상 6:1–66 본문 →

하나님께 드리는 노래는 성소에서 울려 퍼졌지만,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여러 지파의 성읍에 살았습니다. 제사장의 직무는 제단에서 수행되었지만, 그 제사장에게도 거주할 집과 생활의 기반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거룩한 장소에서 이루어졌지만, 그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삶은 이스라엘 곳곳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제 역대기는 예루살렘의 성전을 떠나 요단 동쪽에 이릅니다.

갓 지파에서는 길르앗에 있는 라못과 그 목초지, 마하나임과 그 목초지, 헤스본과 그 목초지, 야셀과 그 목초지를 주었다.역대상 6:65–66 · 본디새김

하나님의 집에서 노래하는 사람들의 계보가 마지막에는 양과 염소를 먹일 땅을 기록하며 마무리됩니다.

마지막 이름은 야셀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목초지가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땅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