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21장

이 장의 자리 · 10–28장 · 둘로 갈라진 나라

왕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등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여호람은 왕위에 오르자 자신의 형제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가 왕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벌인 일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지만, 본문은 그의 동기를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왕권을 물려받은 뒤 그 권력을 형제들을 제거하는 데 사용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호람의 통치가 끝날 무렵에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집니다. 이번에는 그의 아들들이 사로잡혀 가고, 왕궁의 재산이 약탈당하며, 왕 자신도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습니다. 왕권을 굳히기 위해 자기 집안을 무너뜨린 사람이 결국 자기 집안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야훼는 여호람의 악행을 심판하시면서도 다윗 집안을 완전히 끊어 버리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다윗 왕조를 지키겠다고 약속하셨다면, 그 왕조를 다스리는 악한 왕은 어떻게 됩니까?

읽는 시간 15분소단락 621장 본문 읽기 →

왕위를 지키려고 형제들을 죽인 왕

역대하 21:1–7 본문 →

여호사밧의 죽음은 평온하게 기록됩니다. 그는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고, 다윗 성에 묻혔습니다. 그의 아들 여호람이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왕조의 질서가 정상적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어지는 2–3절은 여호사밧이 남긴 왕실의 모습을 자세히 보여 줍니다. 여호람에게는 여섯 형제가 있었고, 아버지는 그들에게 은과 금, 귀한 물품과 요새 성읍들을 주었습니다. 왕권은 맏아들인 여호람에게 주었습니다.

여호람은 형제들을 죽여서 왕이 된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왕이 된 뒤 형제들을 죽인 사람입니다.

그가 형제들을 잠재적인 경쟁자로 여겼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요새 성읍을 가진 왕자들이 정치적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음모나 반란이 실제로 있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왕권을 위협하는 익명의 경쟁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아사랴와 여히엘과 스가랴와 아사랴후와 미가엘과 스바댜, 모두 한 아버지의 아들들이었습니다. 독자가 그들의 이름을 알게 된 직후, 본문은 그들이 모두 살해당했다고 전합니다.

또한 여호람은 이스라엘의 고관들 가운데 일부도 죽였습니다. 그의 폭력은 가족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왕권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왕국의 지도층까지 피를 흘리게 한 것입니다.

그는 아합 집안이 한 것처럼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걸었다.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그는 여호와야훼가 보기에 악한 일을 했다.역대하 21:6 · 본디새김

여호람은 아버지의 왕위를 물려받았지만, 아버지가 따랐던 신앙의 길은 버렸습니다.

여호사밧은 아합 집안과 혼인 관계를 맺었습니다(18:1). 여호사밧은 북왕국 아합과 함께 전쟁에 나섰다가 예언자로부터 악한 자를 도왔다는 책망도 받았습니다(19:2). 이미 아버지 시대에 형성된 정치적 결합이 다음 세대에서 더욱 깊은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다만 이를 여호람의 악행이 모두 아내에게서 비롯되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혼인 관계가 아합 집안의 영향력이 유다 왕실에 들어오는 통로였다고 설명하지만, 형제들을 죽이고 악을 행한 주체는 여호람 자신입니다.

여호사밧에게는 두 가지 유산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야훼를 찾고 율법을 가르치며 나라를 다스렸던 신앙의 유산과, 아합 집안과 결혼으로 맺어진 정치적 유산입니다. 여호람은 그 가운데 아합의 길을 자신의 길로 삼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왕조는 어떻게 됩니까?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다윗과 맺은 언약 때문에 다윗 집안을 멸망시키려 하지 않았다. 다윗과 그의 아들들에게 언제나 등불을 주겠다고 말한 대로였다.역대하 21:7 · 본디새김

이 「등불」의 약속은 다윗 집안이 심판을 받더라도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으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윗의 집을 세우겠다는 약속은 사무엘하 7:12–16에 나오며, 열왕기상 11:36과 15:4에서도 왕조가 이어지는 일을 등불의 이미지로 표현합니다.

사무엘하 7:12–16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통해 그의 왕조를 세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동시에 다윗의 후손이 잘못할 때 징계하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언약에는 왕조의 지속에 대한 약속과 왕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함께 있었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여호람이 힘으로 굳혀 놓은 왕권이 실제로 얼마나 견고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여호사밧이 다스린 나라는 남왕국 유다였지만, 히브리어 본문은 이 자리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칠십인역은 「유다 왕」으로 읽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을 분열 이전의 언약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넓은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본래의 표현이 왜 이 자리에 쓰였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왕권은 굳혔지만 나라는 무너져 갔다

역대하 21:8–11 본문 →

여호람이 왕위에 올라 자기 지위를 굳힌 뒤, 그의 시대에는 에돔이 유다의 지배에서 벗어났습니다.

에돔은 사해 남쪽 지역에 자리한 나라였습니다. 다윗 시대부터 유다 왕국과 오랫동안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열왕기상 22:47에 따르면 여호사밧 시대의 에돔에는 독립적인 왕이 없었고, 왕을 대신하는 통치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람 시대에 에돔은 반란을 일으키고 자신들의 왕을 세웠습니다.

여호람은 병거 부대와 지휘관들을 이끌고 직접 출정합니다. 그는 밤에 일어나 자신을 에워싼 에돔 군대와 병거 지휘관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 전투를 분명한 승리로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에돔은 반란을 일으켜 오늘까지 유다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다. 바로 그때 립나도 반란을 일으켜 여호람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그가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버렸기 때문이다.역대하 21:10 · 본디새김

립나는 유다 안에 있는 성읍으로, 여호수아 21:13에서는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성읍 가운데 하나로 기록됩니다. 따라서 립나의 반란은 외부의 속국을 잃은 것과는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유다 안에서도 왕의 통치가 거부당한 것입니다.

다만 립나가 제사장 성읍이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반란을 제사장들이 주도한 종교적 저항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반란의 정치적 과정이나 주도 세력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정치적 사건과 종교적 사건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여호람의 통치가 흔들리는 일을 여호와야훼를 버린 그의 선택과 연결합니다.

이 말은 에돔의 독립이 그 자체로 잘못이었다거나, 모든 정치적 패배가 반드시 지도자의 죄에서 비롯된다는 보편적인 법칙이 아닙니다. 역대기 저자가 특별히 여호람의 통치를 평가하면서 제시하는 신학적 해석입니다.

그는 또한 유다의 산들에 산당들을 만들고, 예루살렘 주민들이 음행하게 했으며, 유다를 그릇된 길로 몰아갔다.역대하 21:11 · 본디새김

여기서 「음행하게 했다」는 표현은 단순히 백성의 도덕적 타락을 지적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을 언약에 대한 불충실함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호람은 백성의 우상 숭배를 방관한 왕이 아니라, 그 길로 이끈 왕으로 묘사됩니다.

여호사밧은 사람들을 유다 성읍들에 보내 율법을 가르치게 했습니다(17:7–9). 또한 재판관들에게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를 위해 재판한다는 사실을 일깨웠습니다(19:5–7).

아버지는 백성에게 여호와야훼의 길을 가르치려 했고, 아들은 그 백성을 다른 길로 이끌었습니다.

역대기에서 왕의 책임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국토를 지키는 일에만 있지 않습니다. 왕이 백성을 누구에게로 이끄는가가 통치의 중요한 기준입니다.

조금 더 깊이

9절에서 공격받은 병거 지휘관들이 어느 편에 속했는지도 문장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최종적인 결과는 명확합니다. 에돔은 독립을 유지했습니다.

아합의 길을 걸은 왕에게 도착한 엘리야의 편지

역대하 21:12–15 본문 →

12절에서 이야기의 방식이 바뀝니다.

지금까지는 왕의 행동과 정치적 사건들이 서술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여호람에게 한 통의 글이 도착합니다. 그 글은 예언자 엘리야에게서 온 것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북왕국에서 아합의 우상 숭배와 불의에 맞섰던 예언자입니다. 열왕기상 18장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했고, 21장에서는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에게 심판을 선언했습니다.

그런 엘리야의 이름이 이제 유다 왕 여호람의 이야기 속에 등장합니다.

예언자 엘리야에게서 그에게 글이 왔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네 아버지 여호사밧의 길과 유다 왕 아사의 길을 걷지 않고,』」역대하 21:12 · 본디새김

7절에서는 여호와야훼가 다윗과 맺은 언약 때문에 왕조를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12절에서는 바로 그 다윗의 하나님이 여호람을 심판하신다고 선언합니다. 다윗의 언약은 여호람에게 주어진 면책 특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윗의 하나님 앞에서 그의 통치를 평가받게 하는 관계였습니다.

아사와 여호사밧 모두 완전한 왕은 아니었습니다. 역대하 16장은 아사의 잘못을 기록하고, 20장은 여호사밧의 잘못된 동맹도 보여 줍니다. 역대기에서 중요한 차이는 여호와야훼를 찾으려는 기본적인 방향입니다. 아사와 여호사밧의 통치에는 그 방향이 분명하게 나타났지만, 여호람은 아합 집안의 길을 자신의 통치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걸으며, 아합 집안이 음행하게 한 것처럼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음행하게 하고, 또 네 아버지 집안에 속한 네 형제들, 너보다 나은 이들을 죽였으므로,』」역대하 21:13 · 본디새김

처음 왕위 계승을 설명할 때 여호람이 맏아들이었다는 사실이 강조되었습니다. 그에게 왕권이 돌아간 것은 출생 순서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왕위 계승에서는 여호람이 형제들보다 앞섰지만, 하나님의 평가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왕위는 정당하게 물려받을 수 있어도 그 왕위를 사용하는 방식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위의 정당성과 행동의 의로움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14–15절은 심판의 내용을 알립니다. 백성과 아들들과 아내들과 모든 재산이 큰 재앙을 당할 것이며, 여호람 자신은 창자의 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예언은 추상적으로 재앙이 올 것이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여호람의 삶을 이루는 여러 영역을 하나씩 지목합니다. 왕으로서 다스리는 백성, 왕가를 이어 갈 자녀들, 왕실의 가족들, 왕권을 뒷받침하는 재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왕 자신의 몸입니다.

여호람이 가장 견고하게 만들려 했던 왕권이 그를 둘러싼 모든 영역에서 무너질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이 선언에는 어려운 문제도 있습니다. 왕의 죄로 인해 백성과 가족들까지 재앙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들이 여호람과 똑같은 죄를 지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고통을 각각의 죄에 대한 정당한 보응이라고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고대 왕국에서 왕의 결정은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전쟁과 종교 정책, 권력 다툼은 백성 전체의 삶을 뒤흔들었습니다. 역대기는 여호람 한 사람의 악행이 그가 책임져야 할 공동체 전체에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엘리야의 글이 언제 작성되었고 어떤 경로로 전달되었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열왕기하 2장의 엘리야가 떠나는 이야기와 여호람의 즉위 시기를 맞추려고, 이 글이 전달된 구체적인 상황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은」이라는 표현은 형제들이 어떤 업적을 세웠는지 구체적으로 비교한 결과가 아닙니다. 그들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여호람의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도덕적 평가 속에서 읽어야 합니다.

한때 조공을 바치던 민족들이 왕궁을 약탈하다

역대하 21:16–17 본문 →

여호와야훼가 블레셋 사람들의 마음과 구스 사람들 곁에 사는 아라비아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겨 여호람을 치게 했다.역대하 21:16 · 본디새김

역대하 17:11에 따르면, 여호사밧 시대에는 블레셋 사람들 일부가 예물과 은을 가져왔고, 아라비아 사람들은 가축을 바쳤습니다. 여호사밧의 왕국이 강성하던 때 주변 민족들이 조공을 바치던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호람 시대에는 같은 민족의 이름들이 정반대의 역할로 등장합니다.

아버지 시대에 재물을 가져오던 민족들이 아들 시대에는 재물을 빼앗으러 오는 것입니다.

여호와야훼는 유다 내부의 왕에게만 관여하시는 분이 아니라, 주변 민족들의 움직임까지 자신의 심판에 사용하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그렇다고 이 서술이 침략자들의 모든 행동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그들의 약탈과 포로로 끌고 가는 행위를 기록하면서, 동시에 그 사건을 여호람을 향한 심판으로 해석합니다.

그들은 유다로 올라와 그 땅을 뚫고 들어갔다. 왕궁에서 찾아낸 재산을 모두 빼앗고, 그의 아들들과 아내들도 사로잡아 갔다. 그에게는 막내아들 여호아하스 말고는 아들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역대하 21:17 · 본디새김

다른 이의 생명을 제거하면서 왕실의 안정을 추구했던 왕이 자기 자녀들의 안전도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호람의 형제들이 살해된 사건과 아들들이 사로잡혀 간 사건을 완전히 동일한 형벌로 계산할 필요는 없습니다. 두 사건의 피해자와 경위는 다르며, 본문은 형제 살해를 아들들의 고난으로 정확히 되갚았다는 식의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흐름만 생각하면 왕실이 완전히 끊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왜 막내아들만 남았는지, 침략자들이 그를 특별히 남겨 두었는지, 어떻게 그가 포로가 되지 않았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오직 한 아들이 남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독자는 앞서 7절에서 다윗 집안의 등불이 꺼지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생존자는 우연한 이름 하나로 지나갈 수 없습니다. 여호람이 가진 것들이 거의 모두 사라진 자리에서, 다윗 집안의 계승 가능성만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은 죽음

역대하 21:18–20 본문 →

전쟁과 약탈이 지나간 뒤에도 여호람의 고통은 끝나지 않습니다.

18절은 여호와야훼가 그를 치셔서 고칠 수 없는 창자의 병에 걸리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형제들을 죽인 사건은 한 절 안에서 끝납니다. 에돔과 립나의 반란도 몇 절에 걸쳐 빠르게 기록됩니다. 침략자들이 왕궁을 약탈하는 일 역시 짧게 서술됩니다.

그런데 여호람의 마지막 고통은 다르게 묘사됩니다.

날이 가고 또 가서 두 해가 끝날 무렵, 병으로 그의 창자가 밖으로 빠져나왔고, 그는 극심한 병고 속에 죽었다. 그의 백성은 그의 조상들을 위해 불을 피웠던 것처럼 그를 위해 불을 피우지는 않았다.역대하 21:19 · 본디새김

이 시간의 흐름은 예언의 성취를 강조합니다. 엘리야의 글에서 선언된 심판이 갑작스럽게 사라진 말이 아니라, 결국 여호람의 몸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의 병과 죽음은 역대기가 특별히 여호와야훼의 심판이라고 밝힌 사건입니다. 이것을 근거로 다른 사람들의 질병이나 오랜 고통까지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 장의 판단은 여호람에 대한 예언과 그 성취라는 명시적인 문맥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저자는 여호람의 죽음 자체보다 그 이후 사람들이 보인 반응을 더 인상적으로 기록합니다.

여기서 불을 피운다는 것은 왕의 장례와 관련된 의식을 가리킵니다. 죽은 왕을 향한 백성의 반응은 그의 통치가 남긴 결과를 압축해서 보여 줍니다.

그는 왕이 되었을 때 서른두 살이었고, 예루살렘에서 여덟 해 동안 다스렸다. 그는 아쉬워하는 이 없이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를 다윗 성에 묻었지만, 왕들의 무덤에는 묻지 않았다.역대하 21:20 · 본디새김

왕위에 올랐을 때의 나이와 통치 기간이 다시 반복됩니다. 역대기에서 왕의 통치 기간을 기록하는 것은 일반적인 서술 방식이지만, 이 장에서는 같은 정보가 이야기의 앞과 뒤를 감쌉니다. 그 사이에는 살육, 반란, 우상 숭배, 심판 선언, 약탈과 질병이 들어 있습니다.

여호람은 여덟 해 동안 왕으로 살았습니다. 그 기간에 왕위를 차지하고 유지할 권력은 있었지만, 자신의 통치가 끝났을 때 사람들에게 남길 만한 존경과 사랑은 얻지 못했습니다.

1절에서 여호사밧은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고 조상들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러나 20절에서 여호람은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는 가운데 죽고, 왕들의 무덤에도 묻히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평온한 죽음으로 시작한 장이 아들의 쓸쓸한 죽음으로 끝납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에서 말하는 병이 현대 의학적으로 어떤 질환에 해당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창자가 밖으로 빠져나왔다는 표현은 질병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로 진행되었는지를 보여 주지만, 그것만으로 특정 병명을 진단할 수는 없습니다. 역대하 16:14에 따르면, 아사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시신을 향료와 여러 향품으로 준비된 자리에 놓았으며 그를 위해 큰 불을 피웠습니다. 예레미야 34:5에서도 왕을 위한 장례의 불이 언급됩니다. 이런 본문들을 함께 보면 향료를 태우는 의식이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역대하 21:19 자체는 무엇을 태웠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호람의 시신을 불태우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한 왕조를 지탱하는가

역대하 21:1–20 본문 →

하나님의 언약은 악한 왕을 심판에서 보호하는 특권이 아닙니다. 동시에 왕의 악행도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무효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악한 왕에게는 실제적인 심판이 임하고, 그럼에도 다윗의 집안에는 미래가 남습니다.

여호람은 여덟 해 동안 예루살렘의 왕이었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왕위에 올랐고, 왕권을 굳히기 위해 형제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자 백성은 조상들에게 행하던 장례의 예우조차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의 몸은 다윗 성에 묻혔습니다. 하지만 왕들의 무덤에는 묻히지 못했습니다.

그토록 지키려 했던 왕위는 끝내 그의 이름을 지켜 주지 못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