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31장
이 장의 자리 · 31–34장 · 모세의 마지막 말
모세가 떠난 뒤에도 말씀은 남습니다
신명기 31장은 모세가 움직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모세가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들을 했다.신명기 31:1 · 본디새김
어디로 갔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서 그가 인생의 마지막 문턱에 서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사람입니다. 광야에서 백성을 인도했고,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말씀을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합니다.
하지만 신명기 31장은 곧 예상 밖의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책에 기록하고, 그 책을 정기적으로 온 백성에게 읽어 주라고 명령합니다. 이어 하나님은 백성이 언약을 깨뜨릴 미래를 말씀하시며, 그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노래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동시에 그들을 버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백성이 언젠가 언약을 깨뜨릴 것을 아신다면, 왜 굳이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노래까지 외우게 하십니까?
모세가 사라진 뒤에도 이스라엘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모세는 세 가지를 남깁니다. 자신을 대신할 지도자, 계속 들려야 할 율법, 그리고 훗날 백성의 역사를 증언할 노래입니다.
그러나 이 셋 가운데 어느 것도 모세 자신을 대신하는 절대적인 권위가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미래는 여전히 그들보다 앞서 가시는 여호와야훼께 달려 있습니다.
모세가 건너지 못하는 강을 누가 건너는가
모세의 한계와 하나님의 계속되는 인도
모세는 자신의 나이를 밝힌 뒤 더 이상 「나가고 들어올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저는 오늘 백스무 살입니다. 더는 나가고 들어올 수 없습니다. 또 여호와야훼께서 제게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신명기 31:2 · 본디새김
그의 퇴장은 단순히 늙어서 생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역할의 한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3:23–28에서도 모세는 요단을 건너게 해 달라고 간청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여호수아를 굳세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보다 앞서 건너가십니다. 그분께서 이 민족들을 당신 앞에서 멸망시키실 것이며, 당신은 그들을 몰아낼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당신보다 앞서 건너갑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신명기 31:3 · 본디새김
모세가 건너지 못하지만 여호수아가 건너갈 것이라고 곧장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먼저 하나님이 건너가신다고 선언합니다. 그다음에야 여호수아를 언급합니다.
모세를 대신하는 사람은 여호수아지만, 이스라엘을 실제로 인도하시는 분은 처음부터 여호와야훼였습니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백성을 이끌어 낸 것은 그가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를 통해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사명에는 끝이 있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과 함께하시는 일은 한 지도자의 생애에 갇히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의 근거
모세는 시혼과 옥에게 일어난 일을 상기시킵니다. 요단 동쪽에서 이미 경험한 승리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신뢰할 근거로 제시됩니다.
「굳세고 담대하십시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 앞에서 떨지 마십시오.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놓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신명기 31:6 · 본디새김
백성은 낯선 땅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곳에서 다른 민족들과 맞서야 합니다. 두려워할 만한 현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모세는 그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두려움보다 더 근본적인 사실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놓지 않다’는 말과 ‘버리지 않다’는 말은 서로 의미를 보강합니다. 함께 가시는 하나님은 백성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미래가 그들 자신의 능력에만 달려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물론 3–5절에는 그 땅의 민족들을 멸망시키고 몰아내는 정복 전쟁의 언어가 등장합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특정한 땅과 언약의 역사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오늘날 다른 민족이나 종교 집단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반적인 명령으로 옮길 근거는 없습니다.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여호수아를 세우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부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말했다. 「굳세고 담대하여라. 네가 이 백성과 함께,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신 땅으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그들에게 그 땅을 상속받게 할 것이다.」신명기 31:7 · 본디새김
이는 지도자의 교체가 모세와 여호수아 두 사람 사이의 사적인 합의가 아님을 보여 줍니다. 백성도 여호수아의 역할과 그에게 주어진 책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백성과 운명을 함께하는 사람인 동시에 그들을 인도할 책임을 맡은 지도자입니다. 그는 백성과 분리된 채 그들 위에서만 명령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8절에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도 여호와야훼가 앞서 가시며 함께 계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자리를 이어받지만, 모세가 지녔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신의 권력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역시 자신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모세는 이처럼 백성에게는 새로운 지도자를 신뢰하도록 가르치고, 새로운 지도자에게는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가르칩니다.
백성이 여호수아를 따라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땅에 들어간 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 때문에 모세는 사람을 세운 다음, 말씀을 기록합니다.
조금 더 깊이
‘나가고 들어오다’는 표현을 단순히 걷거나 이동하는 신체적 능력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민수기 27:16–17에서 모세는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세워 달라고 요청하면서, 그 사람이 회중 앞에 나가고 들어오며 백성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신명기 31:2의 표현에는 모세가 더 이상 이전처럼 지도자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나이가 백스무 살이라는 점도 언급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모세의 신체가 완전히 쇠약해졌다는 설명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신명기 34:7은 그가 죽을 때에도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7절에서는 여호수아가 백성과 함께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23절에서는 그 백성을 이끌고 들어갈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지도자는 떠나지만 율법은 계속 들려야 한다
모세가 기록한 말씀을 누구에게 맡기는가?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야훼의 언약 궤를 메는 레위의 자손인 제사장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에게 주었다.신명기 31:9 · 본디새김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모세가 직접 전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세는 그 말씀을 기록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맡깁니다.
‘이 율법’이 정확히 어느 범위의 문서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신명기의 문맥에서는 모세가 지금까지 선포한 언약의 가르침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이 표현만으로 오늘날 오경 전체가 이 순간에 하나의 완성된 책으로 기록되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여호수아에게만 책을 맡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도자의 권한이 어떻게 나뉘는지를 보여 줍니다. 여호수아는 백성을 이끌고 땅에 들어가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약의 말씀을 보존하고 백성에게 전달하는 책임은 공동체의 종교적·사회적 지도자들에게도 맡겨집니다.
모세의 뒤를 잇는 것은 한 사람의 지도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듣고 전해야 하는 공동체 전체입니다.
일곱 해마다 온 백성 앞에서 읽어라
모세는 율법책을 보관하라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명령했다. 「일곱 해가 끝날 때마다, 면제의 해의 정해진 때인 초막절에,」신명기 31:10 · 본디새김
「온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께서 선택하실 곳으로 그분 앞에 나타나러 오면, 당신은 온 이스라엘 앞에서 그들의 귀에 들리도록 이 율법을 읽으십시오.」신명기 31:11 · 본디새김
신명기 15:1–11은 칠 년마다 채무를 면제하는 규정과 가난한 형제를 향한 책임을 다룹니다. 초막절은 한 해의 수확을 거둔 뒤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는 절기로 설명됩니다(신명기 16:13–15). 신명기 31장은 이 두 시기가 만나는 때에 율법을 공개적으로 낭독하라고 명령합니다.
면제의 해에는 경제적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초막절에는 땅에서 얻은 수확과 하나님께 받은 복을 기억합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공동체 전체가 언약의 말씀을 다시 듣습니다.
풍성한 수확을 누리는 사람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도,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함께 섭니다.
특히 모세는 「그들의 귀에 들리도록」 읽으라고 말합니다. 오늘날처럼 누구나 문서를 쉽게 복제하거나 각자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 고대 공동체에서 공개 낭독은 말씀을 함께 전달하고 기억하는 중요한 방식이었습니다. 모세는 백성이 지도자의 기억이나 해석에만 의존하지 않고, 그들에게 주어진 언약의 가르침을 반복해서 들을 수 있도록 합니다.
아직 알지 못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그런데 모세는 공개 낭독에 참석해야 할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지정합니다.
「백성, 곧 남자들과 여자들과 어린아이들과 당신의 성문 안에 있는 거류민을 모으십시오. 그들이 듣도록, 또 배우고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을 주의하여 행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신명기 31:12 · 본디새김
이들은 사회적 역할과 권한이 서로 같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포함됩니다. 여기에는 네 가지 움직임이 이어집니다. 듣고, 배우고, 경외하며,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아무런 내용 없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의 의미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경외하는 태도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모세는 말씀을 듣는 것과 행하는 것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13절에서는 여기에 한 세대를 더합니다.
「또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들도 듣고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요단을 건너가 차지하려는 그 땅 위에서 사는 모든 날 동안 그렇게 될 것입니다.」신명기 31:13 · 본디새김
앞선 세대에게 익숙한 출애굽과 광야의 이야기도, 뒤에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처음 듣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녀도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다는 사실만으로 다음 세대가 그 신앙의 내용을 이해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에 관한 기억은 저절로 유전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세는 다음 세대가 직접 말씀을 들을 자리를 마련하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신명기 6:6–9에서 가정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명령과 연결됩니다. 가정에서 이어지는 가르침과 공동체 전체가 함께 듣는 공개 낭독이 서로 보완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백성과 함께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만 말씀을 듣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가 떠난 뒤에도, 그다음 세대가 태어난 뒤에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14절에서 하나님은 이 모든 준비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드러내십니다.
이스라엘은 말씀을 듣지 못해서만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알고도 그분을 버릴 것입니다.
이제 장면은 백성 앞에서 만남의 천막으로 옮겨집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자리에서 떠나심을 말씀하시다
모세는 눕고, 백성은 일어난다
14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보아라. 네가 죽을 날이 가까워졌다. 여호수아를 부르고, 너희는 만남의 천막에 서라. 내가 그에게 명령하겠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가서 만남의 천막에 섰다.신명기 31:14 · 본디새김
그곳에 구름 기둥이 나타나 천막 입구에 섭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여호수아를 만나시는 이 장면은 지도자의 교체가 단순한 인간적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아래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사명을 설명하시기 전에 모세에게 뜻밖의 미래를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보아라. 너는 네 조상들과 함께 눕게 될 것이다. 이 백성은 일어나, 자신이 들어갈 땅 한가운데서 그 땅의 낯선 신들을 뒤따라 음행할 것이다. 나를 버리고 내가 이 백성과 맺은 내 언약을 깨뜨릴 것이다.」신명기 31:16 · 본디새김
모세는 평생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가 끝난 뒤에도 그들이 하나님께 충실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모세가 평생 백성을 데려가려고 했던 장소가, 그들이 하나님을 저버리는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른 신들을 뒤따르는 행위를 「음행할 것이다」라고 표현한 것도 중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성적인 부도덕을 지적하는 말이 아닙니다. 언약 관계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충성을 바치는 일을 관계적 배신의 언어로 묘사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34:15–16에서도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이 같은 비유로 표현됩니다.
이스라엘에게 우상숭배는 여러 신 가운데 하나를 추가로 섬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들을 구원하시고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야훼를 버리는 일입니다.
「너를 버리지 않겠다」와 「나는 그들을 버리겠다」
앞에서 모세는 백성과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날 내 분노가 이 백성을 향해 타오를 것이다. 나는 그들을 버리고 그들에게서 내 얼굴을 숨길 것이다. 이 백성은 먹잇감이 되고, 많은 재앙과 곤경이 이 백성에게 닥칠 것이다. 그날 이 백성은 『나의 하나님이 내 가운데 계시지 않아서 이 재앙들이 내게 닥친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할 것이다.」신명기 31:17 · 본디새김
6–8절의 약속은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실 것이라는 문맥에서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떠났다는 이유로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반면 16–18절은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언약을 깨뜨리는 미래를 묘사합니다.
하나님은 백성을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이 먼저 하나님을 버릴 것이며, 그 결과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실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가벼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백성의 불순종과 무관하게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성경에서 그분의 임재와 관심, 호의와 관련되어 나타납니다. 민수기 6:24–26에서 제사장의 축복은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얼굴을 백성에게 비추시고 그들을 향해 드시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얼굴을 숨긴다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에게 베푸시던 보호와 호의를 거두시는 심판의 이미지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난 자리에서 하나님은 훗날 자신의 얼굴을 숨기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서 재앙이 닥친 것인가?
백성은 자신들에게 닥친 재앙과 하나님의 부재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난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18절에서 하나님은 다시 자신의 얼굴을 숨기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나는 이 백성이 행한 모든 악 때문에 그날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겠다. 이 백성이 다른 신들에게 돌아섰기 때문이다.」신명기 31:18 · 본디새김
17절은 백성이 겪게 될 하나님의 부재를 말하고, 18절은 그 부재의 이유를 밝힙니다. 백성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아서’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너희가 다른 신들에게 돌아섰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고통의 원인을 하나님의 부재에서 찾는 것과, 그 관계가 왜 깨졌는지를 인정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이 구절을 읽을 때 오늘날의 모든 고난을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신 결과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모세가 전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특정한 언약적 배반과 그에 대한 심판의 경고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미래의 배반과 심판이 예고된 자리에서 하나님은 뜻밖의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 백성을 포기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라는 명령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서 모세가 조상들과 함께 눕는다는 표현은 죽음을 가리킵니다. 이어지는 백성이 일어난다는 표현은 그들이 앞으로 행할 행동을 나타냅니다. 이 두 동사를 의도적인 문학적 대조로 읽을 수 있습니다. 모세가 자신의 일을 마치고 눕는 바로 그 이후, 백성은 일어나 잘못된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다만 ‘일어나다’라는 동사는 히브리어에서 단순히 어떤 일이 시작되거나 사람이 행동에 나서는 것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므로, 이 대비에 특별한 상징적 의미가 반드시 담겨 있다고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31:17의 질문은 회개의 시작입니까? 그렇게 읽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신명기 30:1–2에서는 흩어진 백성이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을 마음에 되새기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장면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31:17의 질문 자체를 완전한 회개의 고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백성은 하나님이 자신들 가운데 계시지 않기 때문에 재앙이 닥쳤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질문만으로는 자신들이 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었는지 충분히 인정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잊어버릴 백성에게 노래를 가르치다
왜 하필 노래인가? (19절)
「그러니 이제 너희를 위해 이 노래를 써 두어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 노래를 가르치고 그들의 입에 두어라. 이 노래가 나를 위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불리한 증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신명기 31:19 · 본디새김
하나님은 이미 모세에게 율법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 율법을 정기적으로 낭독하도록 명령도 주어졌습니다.
왜 하나님은 율법책만으로 충분하다고 하지 않으셨을까요?
본문은 노래라는 형식을 선택하신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노래가 수행할 역할은 분명히 제시합니다. 미래의 백성을 향해 증언할 내용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려 주시고, 그 말씀을 노래로 기록하여 백성이 기억하게 하십니다. 훗날 그들이 언약을 버리고 재앙을 경험할 때, 그 노래는 이미 경고받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증언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역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미리 가르치는 증언입니다.
율법은 기록되어 정해진 때에 공동체 앞에서 낭독됩니다. 그러나 노래는 백성의 「입에」 놓입니다. 이 표현은 그들이 노래를 배우고 되풀이하며 전하도록 하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래에 자신을 저버릴 백성에게도,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알아볼 수 있는 말씀을 남기십니다.
풍요가 어떻게 배반으로 이어지는가 (20절)
하나님은 백성이 어떤 길로 나아갈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백성을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면, 이 백성은 먹고 배부르고 살이 찐 뒤에 다른 신들에게 돌아설 것이다. 그들은 그 신들을 섬기고 나를 업신여기며, 이 백성은 내 언약을 깨뜨릴 것이다.」신명기 31:20 · 본디새김
문제의 출발점이 가난이나 궁핍이 아니라 풍요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신명기 8:12–14의 경고와 이어지는 주제가 있습니다. 백성이 먹고 배부르며 집을 짓고 재산이 많아질 때, 마음이 높아져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31장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풍요가 단순히 감사의 부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야훼를 업신여기며, 언약을 깨뜨리는 일로 이어집니다.
그렇다고 모세가 풍요 자체를 악한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선물입니다. 문제는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이 선물을 주신 분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있습니다.
여기서 ‘살이 찐다’는 표현도 그저 신체적인 변화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문맥에서는 풍족하게 살아가며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에 만족한 상태가 하나님을 저버리는 일로 이어지는 장면을 구성합니다. 뒤의 신명기 32:15에서는 이와 비슷한 표현이 더욱 직접적인 비판으로 발전합니다. 배부르고 살이 찐 이스라엘이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을 버렸다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의 위험은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신 뒤에 백성이 그분을 잊어버리는 데 있습니다.
미래에 노래가 백성에게 대답할 것이다 (21절)
21절에서 노래의 역할이 한층 분명해집니다.
「많은 재앙과 곤경이 이 백성에게 닥칠 때, 이 노래가 이 백성 앞에서 증인으로 응답할 것이다. 이 노래가 그 자손의 입에서 잊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이 백성을 데려가기 전인 오늘, 이 백성이 품고 있는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신명기 31:21 · 본디새김
노래가 ‘응답한다’는 표현은 특별합니다. 마치 미래의 사람들이 어떤 질문을 던지고, 노래가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앞에서 백성은 재앙을 겪으며 하나님이 자신들 가운데 계시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훗날 그들이 자신의 불행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할 때, 이미 배운 노래가 그들 앞에 다시 등장합니다. 노래의 내용은 다음 장에 펼쳐지므로, 31장만으로 그 증언의 모든 내용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노래가 언약의 배반과 재앙의 관계를 증언하도록 주어졌다는 점이 명백합니다.
백성은 하나님을 잊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기억할 수 있는 노래를 남겨 주십니다.
그들은 언약을 저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언약의 말씀 자체는 그들의 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점은 신명기 30장에서 주어진 회복의 약속과도 연결됩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려면 자신이 어디에서 잘못된 길로 들어섰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신명기 31장의 노래는 바로 그 배반을 증언하도록 주어집니다.
그렇다고 노래 자체가 회개를 자동으로 일으킨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노래가 증언한다고 말하지, 모든 사람이 그 증언을 듣고 반드시 돌아온다고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미래의 풍요가 백성을 배반하게 만들 것이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이미 오늘 그들의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그들의 문제를 앞으로 얻을 풍요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습니다. 그 땅에 들어가기 전부터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돌아설 위험이 있었습니다.
배반을 아시면서도 여호수아를 보내신다 (22–23절)
모세는 그날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칩니다.
그리고 23절에서 여호와야훼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며 말했다. 「굳세고 담대하여라. 네가 이스라엘 자손을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데리고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신명기 31:23 · 본디새김
처음에는 여호수아가 백성을 인도할 미래와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약속되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바로 그 백성이 훗날 하나님을 배반할 것이라는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그 모든 것을 말씀하신 뒤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다시 사명을 맡기십니다.
이스라엘의 장래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을 아시면서도, 하나님은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시는 일을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이 앞으로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예상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불순종을 아시면서도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기 위해 여호수아를 보내십니다.
여호수아가 의지해야 할 것은 백성의 변함없는 충성이 아니라, 자신의 사명을 주시고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여호와야훼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의 19절에서는 노래를 쓰라는 명령이 복수형으로 주어지고, 가르치고 입에 두라는 명령은 단수형으로 이어집니다. 이를 모세에게 직접 주어진 가르침의 책임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지만, 문법적 변화만으로 노래를 가르칠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 모두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신명기 31:21의 원문 자체에는 ‘악한’이라는 형용사가 붙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생각을 아신다는 말은 문맥상 그들의 배반과 연결되지만, 모든 사람의 모든 생각이 언제나 악하다는 일반적인 선언으로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미래 배반을 이미 알고 계신다면, 앞 장에서 생명을 선택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신명기 31장은 하나님의 미래에 대한 지식과 인간의 선택이 철학적으로 어떻게 양립하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 둘을 서로 배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이 타락할 것을 아신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여호수아에게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모세는 백성의 반역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에게 율법을 들려주고 노래를 가르칩니다. 미래의 불순종에 대한 경고가 현재의 가르침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율법책은 언약 궤 곁에, 노래는 백성의 입에
언약 궤 곁에 놓인 책 (24–26절)
모세는 율법의 말들을 책에 끝까지 기록한 뒤 레위 사람들에게 명령합니다.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의 언약 궤 곁에 두십시오. 그것이 거기서 당신에게 불리한 증인이 될 것입니다.」신명기 31:26 · 본디새김
노래는 백성의 입에 놓입니다. 율법책은 언약 궤 곁에 놓입니다.
언약 궤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나타내는 중요한 성물입니다. 출애굽기 25:16에서 하나님은 증언판을 궤 안에 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여기서 자신이 기록한 율법책을 궤 ‘곁에’ 두라고 합니다. 본문은 책을 궤 안에 넣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율법책이 「불리한 증인」이 된다는 말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요? 이 표현은 이스라엘이 훗날 언약을 어겼을 때 그들이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를 드러낸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듣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의 길을 이미 전달받았습니다.
율법책은 본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충실하게 살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불순종할 때는 그들의 불순종을 드러내는 증언이 됩니다.
모세의 마지막 확신은 백성의 충성에 있지 않다 (27–29절)
모세는 자신이 왜 율법책을 증인으로 남기는지 설명합니다.
「저는 당신의 반역과 당신의 뻣뻣한 목을 알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제가 아직 여러분과 함께 살아 있는 오늘도 여러분이 여호와야훼께 반역하는데, 하물며 제가 죽은 뒤에는 얼마나 더하겠습니까?」신명기 31:27 · 본디새김
‘뻣뻣한 목’은 고집스럽고 다루기 어려운 태도를 나타내는 비유입니다. 목을 굽히지 않는 동물의 모습처럼,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이 표현은 출애굽기 32:9와 신명기 9:6, 13에서도 이스라엘의 완고함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모세가 죽은 뒤에 백성이 타락하리라는 경고는 단순히 지도자가 사라지면 기강이 무너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의 지도 아래에서도 이미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들을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성의 마음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일까지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문제는 모세 한 사람의 존재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떠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위로하지도 않고, 자신의 뒤를 잇는 여호수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장담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백성의 불순종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들이 앞으로 듣고 기억해야 할 말씀을 남깁니다.
29절에서는 그 배반이 「훗날」 실제로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미래는 모세의 죽음 이후에 이스라엘에게 닥칠 재앙의 때입니다. 이 표현을 곧바로 세상의 마지막 심판이나 특정한 종말의 시점으로 해석할 근거는 없습니다.
세 종류의 증인이 남는다 (28–30절)
모세는 마지막으로 모든 지파의 장로들과 관리들을 모으라고 명령합니다.
「여러분 지파의 모든 장로들과 여러분의 관리들을 제게 모으십시오. 제가 그들의 귀에 이 말들을 들려주고, 하늘과 땅을 그들에 대한 증인으로 세우겠습니다.」신명기 31:28 · 본디새김
하늘과 땅은 신명기 4:26과 30:19에서도 증인으로 등장합니다. 모세는 인간의 지도자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언약의 말씀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부르는 엄숙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율법책은 보존되고 읽혀야 합니다. 노래는 배우고 기억하여 입으로 전해야 합니다. 하늘과 땅은 언약의 증인으로 불려 나옵니다. 모두 모세가 직접 백성 앞에서 말하지 못하는 미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끝맺으며 — 아직 끝나지 않은 모세의 목소리
모세가 떠나도 하나님은 여호수아보다 앞서 가십니다. 백성이 하나님을 저버릴 것을 아시면서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의 말씀을 기록하여 남기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백성의 미래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낙관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하나님의 언약 앞에서 이해하게 하는 진실한 증언입니다.
모세는 곧 말을 멈추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까지 사라지게 하지는 않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온 회중의 귀에 이 노래의 말들을 끝까지 다 들려주었다.신명기 31:30 · 본디새김
백성은 이제 곧 떠날 지도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그 노래가 훗날 자신들의 역사를 증언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신명기 31장은 강을 건너는 장면이 아니라, 떠나는 모세가 백성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장면에서 끝납니다.
그의 발걸음은 요단강 앞에서 멈추겠지만, 그가 가르친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