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40장
이 장의 자리 · 25–40장 · 성막과 제사장
하나님이 오시자, 모세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성막을 만드는 모든 일이 끝났습니다. 휘장과 널판이 준비되었고, 궤와 상과 등잔대도 완성되었습니다. 제사장이 입을 옷까지 갖추어졌습니다. 이제 모세가 성막을 세우고 기구들을 제자리에 놓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면에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모세는 누구입니까?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백성을 위해 중재했던 사람이며, 여호와야훼와 친밀하게 대화했던 사람입니다. 출애굽기 33:11은 여호와야훼가 모세와 마주하여 말씀하셨다고까지 기록합니다.
그런 모세가 이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만든 천막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막이 잘못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거처를 완성했지만, 그 거처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자신들의 뜻대로 다룰 수는 없었습니다.
출애굽기 40장은 바로 이 역설을 향해 나아갑니다. 처음에는 모세가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놓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구름이 이스라엘의 움직임을 결정합니다.
첫째 달 초하루 — 새로운 시작을 명령하시다
40장은 날짜를 지정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첫째 달, 그달 초하루에 성막, 곧 만남의 천막을 세워라.」출애굽기 40:2 · 본디새김
본문은 이 날짜를 선택한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의 앞부분을 기억하면 이 시점이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출애굽기 12:2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기 전에 그달을 한 해의 첫째 달로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월절과 이집트 탈출의 이야기가 그 달에 시작됩니다.
이제 40:17은 성막이 세워진 날을 더욱 정확히 밝힙니다.
이 년째 첫째 달, 그달 초하루에 성막이 세워졌다.출애굽기 40:17 · 본디새김
이집트를 떠나기 시작한 첫째 달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바다를 건넜고, 광야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받았으며, 시내산에 이르러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그 언약을 어기고 금송아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출애굽기 33:3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이 완고한 백성이므로 그들 가운데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중재 이후 여호와야훼는 자신의 임재가 그들과 함께 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33:14–17).
그 약속을 받은 백성이 이제 성막을 세웁니다.
따라서 첫째 달 초하루라는 날짜는 출애굽의 시작과 성막의 완성을 함께 떠올리게 합니다. 출애굽기 40장이 이 날짜를 새로운 창조나 새로운 시대의 첫날이라고 직접 풀이하지는 않지만, 구원의 여정이 중요한 전환점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나오는 백성이었고, 이제 여호와야훼의 거처를 자기들 가운데 세우는 백성이 됩니다.
성막은 아무렇게나 배치되지 않는다
3–8절에서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기구들을 어디에 놓을지 명령하십니다. 먼저 증언의 궤를 놓고 안쪽 휘장으로 가립니다. 그다음 상과 등잔대를 들여놓고, 향을 피울 금 제단을 증언의 궤 앞에 놓습니다.
성막 입구에는 가림막을 달고, 그 바깥에는 번제 제단을 놓습니다. 번제 제단과 만남의 천막 사이에는 대야를 놓아 물을 담습니다. 마지막으로 뜰을 마련하고 문 가림막을 답니다.
각 기구에는 정해진 역할이 있고, 그 역할에 맞는 자리가 있습니다.
궤는 여호와야훼가 만나 말씀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자리와 연결됩니다(25:22). 상에는 여호와야훼 앞에 빵을 차려 놓고, 등잔대에는 불을 밝힙니다. 번제 제단에서는 제물을 바치고, 대야에서는 성소를 섬기는 사람들이 손과 발을 씻습니다.
이처럼 성막의 공간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이루어질 섬김의 질서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4절은 아직 상 위에 무엇을 차려 놓을지 명시하지 않습니다.
「상을 들여놓고 그 위에 차릴 것을 차려 놓아라. 등잔대를 들여놓고 그 등잔들에 불을 켜라.」출애굽기 40:4 · 본디새김
하지만 23절에서 명령이 실행될 때에는 그것이 빵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명령이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면서 성막의 공간이 하나씩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막을 세우고 기구들을 놓는 일만으로는 준비가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 그 모든 것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성막을 거룩하게 하고, 사람도 거룩하게 하다
9절부터 하나님의 명령은 새로운 단계로 들어갑니다.
「기름부음용 기름을 가져다가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라.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성별하여라. 그러면 성막이 거룩해질 것이다.」출애굽기 40:9 · 본디새김
지금까지 제작자들은 금과 은과 구리, 나무와 실을 사용해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하게 제작되었다고 해도, 물건을 만드는 일과 그 물건을 거룩한 목적을 위해 구별하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성막은 아름답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가 자신을 위한 거처로 정하시고, 그 목적에 따라 구별하도록 명령하셨기 때문에 거룩한 공간이 됩니다. 거룩함은 물건의 재료 자체에서 자동으로 발생하는 성질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와의 특별한 관계와 그분을 위해 구별된 용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0절에서는 번제 제단에 대해 더욱 강한 표현이 사용됩니다.
「번제 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바르고, 그 제단을 성별하여라. 그러면 그 제단이 지극히 거룩해질 것이다.」출애굽기 40:10 · 본디새김
‘지극히 거룩하다’는 문자 그대로는 ‘거룩한 것들 중의 거룩한 것’이라는 강조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성막의 가장 안쪽 공간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성소의 여러 기구나 제물에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번제 제단은 성막 내부의 가장 깊은 곳이 아니라 뜰에 놓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여호와야훼께 제물을 바치는 장소이며, 특별히 거룩하게 구별됩니다. 번제 제단은 구리로 입혀졌지만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구별됩니다.
그 거룩함은 금속의 가치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기구를 거룩하게 한 뒤 사람을 데려오다
12절에서는 명령의 대상이 사물에서 사람으로 바뀝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만남의 천막 입구로 데려오고, 그들을 물로 씻겨라.」출애굽기 40:12 · 본디새김
이어서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기름을 발라 성별하도록 명령하십니다. 아들들에게도 옷을 입히고 기름을 발라 제사장으로 섬기게 해야 합니다. 성막의 기구뿐 아니라 그곳에서 봉사할 사람들까지 구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씻음과 옷 입힘과 기름부음이 함께 나타납니다. 제사장들은 단순히 자신에게 기술이나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여 봉사를 시작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가 정하신 방식으로 준비되고 구별되어야 합니다.
「아론에게 거룩한 옷들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성별하여 나를 위해 제사장 일을 하게 하여라.」출애굽기 40:13 · 본디새김
‘나를 위해’라는 말은 여호와야훼를 위해 봉사한다는 뜻입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역할을 맡지만, 그 직무의 최종 기준은 여호와야훼께 있습니다.
또한 15절에서는 아론의 아들들에게 기름을 바르는 일이 대대로 지속될 제사장직과 연결됩니다. 성막은 지금 한 번 세우면 끝날 물건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이루어질 제사장 봉사 역시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여호와야훼는 건축물뿐 아니라 그 건축물을 사용하는 지속적인 제의 질서까지 마련하십니다.
40:9–15에는 성막과 기구에 기름을 바르는 일, 아론과 아들들에게 옷을 입히고 기름을 바르는 일이 명령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뒤에 이어지는 17–33절의 실행 기록은 이 모든 절차를 하나하나 다시 서술하지 않습니다. 아론과 아들들의 성별 의식은 레위기 8장에서 구체적으로 전개됩니다.
그러므로 40장의 기록에 어떤 행동이 별도로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본문이 기록하지 않은 의식의 구체적인 시점과 절차를 임의로 보충해서도 안 됩니다.
이 장은 이제 성막이 실제로 세워지고 기구들이 제자리에 놓이는 과정에 집중합니다.
모세가 모든 것을 제자리에 놓다
모세는 여호와야훼가 그에게 명령한 모든 것에 따라 했다. 그는 그렇게 했다.출애굽기 40:16 · 본디새김
이어서 17절에서 날짜가 다시 명시되고, 성막이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받침들을 놓고, 널판들을 세우고, 가로대들을 달고, 기둥들을 세웁니다.
그는 성막 위에 천막을 펼치고, 그 위쪽에 천막 덮개를 얹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였다.출애굽기 40:19 · 본디새김
21절에서는 증언의 궤를 놓고 휘장으로 가린 뒤에, 23절에서는 상에 빵을 차려 놓은 뒤에, 25절에서는 등잔에 불을 켠 뒤에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27절에서는 향을 피운 뒤에, 29절에서는 제물을 바친 뒤에, 32절에서는 씻는 일을 설명한 뒤에 또 반복됩니다. 19, 21, 23, 25, 27, 29, 32절에 걸쳐 이 공식적인 표현이 일곱 차례 나타납니다.
성막을 세우는 작업은 사람의 즉흥적인 판단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씩 완성됩니다. 모세의 행동이 여러 단계로 이어지다가, 그 단계마다 하나님의 명령과 일치한다는 확인이 따라붙습니다. 독자는 작업의 진행과 함께 순종의 완성을 지켜보게 됩니다.
그는 성막 안에서 실제로 봉사의 행동을 시작합니다.
상 위에 빵을 놓고, 등잔에 불을 켜다
20–21절에서 모세는 증언을 궤 안에 넣고 속죄판을 놓습니다. 이어서 궤를 성막 안으로 들여놓고 휘장으로 가립니다. 그다음 모세는 상을 성막의 북쪽에 놓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 앞에서 그 상 위에 빵을 줄지어 차려 놓았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였다.출애굽기 40:23 · 본디새김
맞은편인 남쪽에는 등잔대가 놓입니다.
그는 여호와야훼 앞에서 등잔들에 불을 켰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였다.출애굽기 40:25 · 본디새김
26–27절에서는 금 제단이 안쪽 휘장 앞에 놓이고, 모세가 그 위에서 향을 피웁니다. 37장에서는 상과 등잔대, 금 제단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기구들이 본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됩니다. 이 변화는 성막이 단순한 완성품에서 실제로 봉사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빵을 차려 놓는 일도 여호와야훼 앞에서 이루어지고, 등불을 밝히는 일도 여호와야훼 앞에서 이루어집니다. 아직 34절에서처럼 구름이 성막을 덮거나 영광이 가득 차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본문은 이미 그 공간을 여호와야훼 앞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야훼가 그곳에서 만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막의 기구들이 의미를 갖는 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곳을 자기 백성과 만나는 장소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세는 성막 바깥의 기구들을 배치합니다.
제단과 대야, 그리고 모세가 일을 마친 순간
그는 번제 제단을 성막, 곧 만남의 천막의 입구에 놓고, 그 위에 번제와 곡식 제물을 바쳤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였다.출애굽기 40:29 · 본디새김
뒤에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봉사하지만, 성막을 세우는 이 장에서는 모세가 제물을 바치는 행동의 주체로 등장합니다. 이 장은 성막의 설치와 봉사의 시작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모세는 대야를 만남의 천막과 제단 사이에 놓고 물을 담습니다. 그런데 31절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등장합니다.
모세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대야의 물로 자기들의 손과 발을 씻었다.출애굽기 40:31 · 본디새김
여기서 처음으로 모세와 아론, 아론의 아들들이 함께 언급됩니다. 다음 절은 이 씻음이 한 번의 행동으로 끝나는 일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만남의 천막에 들어갈 때와 제단에 가까이 갈 때마다 씻곤 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였다.출애굽기 40:32 · 본디새김
이 문장은 성막을 세우던 하루의 이야기에서 앞으로 반복될 봉사의 모습으로 시선을 넓힙니다. 정결은 한 번 준비했으므로 앞으로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이 아닙니다.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봉사하는 동안 계속 지켜야 할 질서입니다.
그는 성막과 제단 둘레에 뜰을 마련하고, 뜰의 문 가림막을 달았다. 이렇게 모세가 일을 마쳤다.출애굽기 40:33 · 본디새김
출애굽기에서는 모세가 일을 완성한 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따로 등장합니다.
조금 더 깊이
「모세가 일을 마쳤다」는 표현은 창세기 2:2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일을 마치셨다고 기록할 때 사용된 표현과 매우 가깝습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창조의 일을 마치십니다. 여기서는 모세가 성막을 세우는 일을 마칩니다. 이 연결은 출애굽기 39:43에서 모세가 모든 제작물을 살펴보고 백성을 축복했던 장면과도 이어집니다. 두 이야기에는 일을 완성하고, 그 완성을 확인하는 표현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 두 장면의 문학적 유사성은 성막 제작을 창조의 질서라는 더 큰 주제 안에서 생각하게 합니다.
모세가 일을 마치자,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성막을 채우다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성막을 가득 채웠다.출애굽기 40:34 · 본디새김
이 장면은 모세가 계획하거나 실행하는 일이 아닙니다.
앞에서는 모세가 주어였습니다. 그가 받침을 놓고, 널판을 세우고, 휘장을 달고, 기구들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행동의 주체가 달라집니다.
여호와야훼가 먼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5:8에서 그분은 자신을 위한 성소를 만들게 하시며 그들 가운데 거하시겠다는 뜻을 밝히셨습니다. 29:45–46에서는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명령에 따라 거처를 준비했고,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에 따라 그곳에 임하셨습니다.
‘영광이 가득 채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이 장면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실제로 드러나는 그분의 임재와 연결됩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머무시는 장소로 구별되었지만, 성막의 크기가 하나님 존재의 한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출애굽기 24:15–17에서도 구름이 산을 덮고,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는 그 영광이 산꼭대기에서 타오르는 불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40장에서는 구름이 산이 아니라 성막을 덮습니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 도착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그 산에 머물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시내산에서 나타났던 하나님의 임재가, 이스라엘의 여정 가운데 세워질 성막과 연결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만났던 산을 떠나게 되지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가시겠다는 약속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임하셨는데, 왜 모세는 들어갈 수 없을까?
모세는 만남의 천막에 들어갈 수 없었다. 구름이 그 위에 머물렀고,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성막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출애굽기 40:35 · 본디새김
본문은 모세의 죄나 불순종 때문에 출입이 금지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시내산에서도 구름이 산을 덮었지만, 여호와야훼가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24:16–18). 시내산에서 모세가 구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여호와야훼가 그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특별히 가까운 관계를 맺은 모세에게조차 그분의 거룩함은 인간이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곳은 ‘만남의 천막’입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로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차자, 모세는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과, 하나님께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레위기 1:1은 여호와야훼가 만남의 천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말씀하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출애굽기는 모세가 들어갈 수 없는 성막으로 끝나지만, 레위기는 그 성막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는 말씀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는 분이시지만, 동시에 인간을 부르시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과의 만남은 인간이 스스로 확보하는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관계입니다.
이제 출애굽기의 마지막 세 절은 성막을 세운 그날에서 앞으로 이어질 광야의 여정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구름이 올라갈 때에만 떠나다
성막이 완성되고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그곳에 임했습니다.
여기서 출애굽기가 끝났다면, 성막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게 된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의 모든 여정에서, 구름이 성막 위에서 올라갈 때마다 길을 떠나곤 했다.출애굽기 40:36 · 본디새김
이제 성막은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여정의 중심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구름이 올라가지 않으면, 그것이 올라가는 날까지 길을 떠나지 않았다.출애굽기 40:37 · 본디새김
떠나는 것도 구름에 달려 있고, 머무는 것도 구름에 달려 있습니다.
기다리는 것도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일이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으로 가야 하는 백성입니다. 그 여정에는 분명한 방향과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적지가 정해져 있다고 해서 언제든 자기 판단으로 길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름이 머물러 있으면 그들도 머뭅니다.
이 점을 곧바로 오늘날의 모든 개인적인 결정에 적용하여, 어떤 특별한 신호가 나타날 때까지 아무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출애굽기 40장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광야에서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임재를 따라 이동했던 특별한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여정에서 기다림은 목적을 잃은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구름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도 움직이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언제 길을 떠날 것인가뿐 아니라, 언제 그 자리에 머물 것인가도 결정했습니다.
낮에는 구름, 밤에는 불
38절은 출애굽기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이는 그들의 모든 여정에서, 낮에는 여호와야훼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그 구름 안에 불이 있어, 이스라엘 온 집안의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출애굽기 40:38 · 본디새김
출애굽기 13:21–22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 앞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빛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 광야로 나아갈 때 나타난 하나님의 인도였습니다.
이집트를 떠날 때 그들을 인도했던 여호와야훼의 임재가, 이제 성막을 중심으로 그들과 함께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통해 얻게 된 것은 단순히 이집트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관계였습니다. 출애굽기 29:46에서 여호와야훼는 자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분임을 밝히십니다.
조금 더 깊이
40:36–37은 성막이 세워진 바로 그날 이스라엘이 실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여정에서’, ‘올라갈 때마다’, ‘올라가지 않으면’이라는 표현을 통해 앞으로 반복될 행동의 방식을 요약합니다. 실제로 민수기 10:11–12에 가면 이스라엘이 시내 광야에서 구름을 따라 출발하는 구체적인 날짜와 이동 장면이 기록됩니다. 38절에서 ‘그 구름 안에’로 옮긴 히브리어 보는 ‘그 안에’라는 뜻입니다. 이 대명사는 구름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성막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밤의 불이 구름 안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는지, 성막에 나타난 것으로 묘사되었는지를 대명사 형태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출애굽기의 마지막이 보여 주는 구원의 목적
하나님은 인간의 뜻대로 조종할 수 없을 만큼 거룩하시지만, 동시에 인간을 버려두지 않으실 만큼 신실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은 그분을 자기 삶의 한 부분으로 소유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이 삶의 중심이 되시고, 그분의 뜻과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관계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성막은 완성되었고, 구름은 그 위에 머뭅니다. 모세는 그 영광이 가득한 천막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그 앞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마지막 세 절에서 이스라엘 전체가 등장합니다. 구름이 올라가면 길을 떠나고, 구름이 머물러 있으면 함께 머무는 백성입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아직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앞에는 낮의 구름과 밤의 불이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약속의 땅에 도착한 백성의 환호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므로 길을 떠날 수 있고, 하나님이 머물러 계시므로 그 자리에 기다릴 수 있는 백성의 모습으로 끝납니다.
낮에는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그 구름 안에 불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온 집안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