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9–10장 · 결혼 문제와 고백

희망의 대가는 누가 치르는가

에스라 10장은 뜻밖의 말로 방향을 바꿉니다.

앞 장에서 에스라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죄를 인정하면서도 용서를 구하지 못했고, 기도는 아무런 해결책 없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 말합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의로우심 앞에서 말을 잃었을 때, 희망을 이야기한 사람은 에스라 자신이 아니라 스가냐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희망의 길은 오늘의 독자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외국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인 사람들이 그 아내들과 자녀들을 내보내자는 것입니다.

첫 장면에는 남자들과 여자들과 아이들이 함께 울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는 외국 여자들과 결혼한 남자들의 이름만 길게 기록됩니다. 그들의 아내들과 아이들은 이름도, 목소리도 남기지 않은 채 이야기에서 사라집니다.

이 장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공동체가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이야기인 동시에, 그들이 선택한 해결책의 무게를 독자에게 남기는 이야기입니다.

읽는 시간 16분소단락 610장 본문 읽기 →

에스라의 눈물이 다른 사람의 말로 이어지다

에스라 10:1–4 본문 →

에스라가 하나님의 집 앞에서 울며 기도하는 동안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집 앞에서 울며 엎드려 기도하고 고백하는 동안, 이스라엘의 남자들과 여자들과 아이들이 아주 큰 무리를 이루어 그에게 모여들었다. 백성이 몹시 울었기 때문이다.에스라 10:1 · 본디새김

에스라는 아직 집회를 소집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명령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은 죄의 문제가 일부 지도자들 사이에서만 논의되는 사안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사건이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때 스가냐가 입을 엽니다.

스가냐가 직접 외국 여자와 결혼했는지도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이름은 마지막 명단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공동체와 분리하지 않고 말합니다.

엘람 자손 가운데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배신하여 이 땅의 민족들에게서 외국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일에 관해서도 이스라엘에 희망이 있습니다.」에스라 10:2 · 본디새김

혼인을 단순한 생활 관습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을 배신한 일로 규정합니다. 이것은 앞 장에서 제기된 죄에 대한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희망은 이미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확신이 아닙니다. 아직 바로잡을 길이 남아 있다는 판단입니다. 에스라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데 머물렀다면, 스가냐의 말은 그 고백에 이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그는 구체적인 행동을 제안합니다.

「그러니 이제 내 주의 권고와 우리 하나님의 명령에 떠는 이들의 권고에 따라, 이 아내들을 모두, 또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을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맺읍시다. 율법대로 시행되게 합시다.」에스라 10:3 · 본디새김

스가냐는 단순히 행정적인 조치를 취하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행동을 바꾸겠다고 엄숙하게 약속하자고 합니다.

혼인을 문제로 판단하는 근거와, 그 혼인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결정은 동일한 문제가 아닙니다.

신명기 7:3–4와 출애굽기 34:15–16은 다른 민족과의 혼인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따르게 되는 일을 경계합니다. 그러나 그 명령들이 이미 이루어진 모든 혼인을 해소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까지 내보내라고 직접 규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가냐는 그러한 율법을 근거로 현재의 상황을 바로잡을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제안이 율법에 따라 시행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그 순간 직접 나타나셔서 아내와 자녀를 내보내라고 명령하시는 장면이 없습니다.

동시에 이 제안을 단지 스가냐 개인의 의견에 불과하다고 축소해서도 안 됩니다. 그는 공동체가 심각한 언약적 위기에 처해 있다고 판단했고, 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약속을 맺자고 제안했습니다.

이 제안이 던지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아내들뿐 아니라 자녀들까지 포함한다는 점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혼인 관계를 선택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스가냐의 제안은 그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본문은 그 자녀들의 나이, 신분, 앞으로 살아갈 곳, 생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침묵을 그들에게 아무런 고통이 없었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스가냐는 자신의 제안을 마친 뒤 에스라에게 말합니다.

「일어나십시오. 이 일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실행하십시오.」에스라 10:4 · 본디새김

에스라는 앞 장에서 옷을 찢고 경악한 채 앉아 있었습니다. 슬퍼하는 자리에서 행동하는 자리로 옮겨 가라는 요청입니다.

에스라 혼자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책임을 함께 지겠다는 선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내 주」는 본디새김 번역처럼 하나님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른 읽기에서는 에스라에 대한 존칭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어느 쪽이든 발언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권고에 따라 행동하자는 것입니다.

언약을 맺었지만 슬픔은 끝나지 않았다

에스라 10:5–8 본문 →

에스라는 스가냐의 제안에 따라 행동합니다.

에스라는 일어나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하겠다고 맹세하게 했다. 그들은 맹세했다.에스라 10:5 · 본디새김

이는 문제 해결을 몇 사람의 결정으로 끝내지 않고 공동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일로 만들려는 조치입니다.

그러나 맹세가 끝난 다음의 장면은 예상과 다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집 앞에서 일어나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갔다. 그는 그곳으로 가서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유배민들의 배신 행위 때문에 슬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에스라 10:6 · 본디새김

공동체가 해결을 약속했다고 해서 죄에 대한 슬픔이 곧바로 끝난 것은 아닙니다.

에스라의 금식은 이 문제를 가볍게 처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맹세는 이루어졌지만, 그 맹세의 실행은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곧이어 예루살렘과 유다 전역에 공고가 내려집니다. 모든 유배민은 사흘 안에 예루살렘으로 모여야 합니다. 그런데 모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강력한 제재가 예고됩니다.

고관들과 장로들의 결정에 따라, 사흘 안에 오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유배민들의 회중에서 제외될 것이었다.에스라 10:8 · 본디새김

앞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모여 울었습니다. 이제는 고관들과 장로들이 정한 기한과 제재에 따라 사람들을 소집합니다. 이 차이를 놓치면 이후 백성의 응답을 모두 자유로운 동의로만 이해하게 됩니다.

본문은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바로잡으려 했다는 사실과 함께, 그 과정에서 지도자들이 강력한 사회적 권한을 행사했다는 사실도 보여 줍니다. 당시 귀환 공동체에서 재산과 회중의 소속은 생활의 기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제재는 상당히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떨고 있는 사람들

에스라 10:9–12 본문 →

아홉째 달 스무날, 유다와 베냐민의 모든 남자가 예루살렘에 모입니다.

유다와 베냐민의 모든 남자가 사흘 안에 예루살렘으로 모였다. 아홉째 달 스무날이었다. 온 백성은 하나님의 집 앞 광장에 앉아 이 일 때문에, 또 비 때문에 떨고 있었다.에스라 10:9 · 본디새김

그들은 몸으로는 비와 추위를 겪고 있고, 마음으로는 자신들에게 닥친 중대한 문제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이 생생한 이유는 두 종류의 떨림이 하나의 모습으로 겹쳐지기 때문입니다.

그들 앞에서 에스라가 일어납니다.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배신 행위를 했습니다. 외국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여 이스라엘의 죄책을 더했습니다.」에스라 10:10 · 본디새김

에스라가 심각하게 받아들인 문제는 바로 이러한 언약적 불신실함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죄를 인정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죄를 고백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십시오. 이 땅의 민족들과 외국인 아내들에게서 자신을 분리하십시오.」에스라 10:11 · 본디새김

에스라는 말로 죄를 인정하는 것과 행동을 바꾸는 것을 함께 요구합니다. 에스라가 보기에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공동체를 바로 세우는 길입니다. 하지만 혼인 관계를 맺었던 여성들과 그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이 연설에서 다뤄지지 않습니다.

동시에 그 행동을 현대 사회의 모든 국제결혼이나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의 혼인에 곧바로 적용할 수도 없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이 직면했던 문제는 바벨론 포로 생활 이후 언약 공동체로서 어떻게 살아남고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하는 역사적 상황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백성은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온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말대로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에스라 10:12 · 본디새김

그러나 곧이어 백성은 한 가지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죄를 고백하고」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토다(⁨תּוֹדָה⁩)와 관련된 표현입니다. 이 말은 문맥에 따라 감사와 찬양에도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구약에는 외국 출신 사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따르며 공동체 안에 들어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룻은 모압 여인이었지만 나오미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였습니다(룻기 1:16). 그의 이야기는 그가 이스라엘 안에서 살아가며 다윗의 조상이 되는 데까지 이어집니다(룻기 4:13–22). 또 에스라서 자체에서도 주변 민족들의 부정한 행위에서 떠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귀환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킵니다(에스라 6:21). 이러한 본문들은 외국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 하나님께 속할 가능성이 영원히 차단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 줍니다. 그렇다고 룻의 이야기만으로 에스라 10장의 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에스라 10장은 실제로 외국인 아내들과의 분리를 명령하고, 공동체가 그 일을 실행하기 위한 절차를 마련했다는 사실을 기록합니다.

하루나 이틀에 끝낼 일이 아니다

에스라 10:13–17 본문 →

백성의 대답은 단순한 찬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백성이 많고 비가 오는 철이어서 밖에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또 이 일은 하루나 이틀에 끝낼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일에서 너무나 많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에스라 10:13 · 본디새김

그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제안합니다. 이 문제를 그 자리에서 한 번의 선언으로 처리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스가냐가 모든 아내와 자녀를 내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실행 단계에서는 각 성읍의 장로들과 재판관들이 함께 참여하는 절차가 제시됩니다.

「이 일에 관한 우리 하나님의 타오르는 분노를 우리에게서 돌이킬 때까지, 우리의 고관들이 온 회중을 대신하여 나서게 해 주시고 우리 성읍들에 있는 사람 중 외국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인 사람은 모두 정해진 때에 각 성읍의 장로들과 재판관들과 함께 오게 해 주십시오.」에스라 10:14 · 본디새김

이것은 집단적인 결정과 개별적인 조사를 구별하려는 방식입니다. 혼인 문제가 공동체 전체의 문제라는 판단은 이미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누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한 사람씩 확인해야 했습니다.

다만 개별 조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당사자의 사정을 충분히 살피고 공정하게 처리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에는 조사 기준이나 구체적인 심문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히 아내들과 자녀들의 진술이 조사 과정에 포함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문장이 등장합니다.

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그와의 아들 야하시야가 이 일에 반대하여 나섰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그들을 도왔다.에스라 10:15 · 본디새김

이 구절은 해석이 갈리는 자리입니다. 요나단과 야하시야가 이 계획에 반대했다는 읽기가 있고, 이 일을 맡아 수행하는 데 나섰다는 읽기도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앞의 읽기를 따릅니다.

16–17절에서는 실제 조사가 시작됩니다.

에스라와 가문별 우두머리들이 따로 뽑히고, 그들의 이름이 확인됩니다. 열째 달 초하루에 조사가 시작되어 첫째 달 초하루에 마무리됩니다. 달력상으로 약 세 달에 걸친 과정입니다.

앞에서 백성이 말한 「하루나 이틀에 끝낼 일이 아닙니다」라는 판단이 실제로 확인됩니다. 사흘 안에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했던 긴급한 소집과 달리, 개별 조사는 여러 달 동안 이루어집니다.

공동체는 문제를 미루지 않았지만, 모든 사건을 한순간에 끝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아메두 알 조트(⁨עָמַד⁩)는 문자적으로는 ‘이 일에 맞서 섰다’ 또는 ‘이 일에 관하여 섰다’는 구조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가 정확히 무엇을 향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외국인 아내들을 내보내는 일 자체에 반대한 것인지, 아니면 고관들과 장로들에게 사건을 맡기는 절차에 반대한 것인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여성과 아이들을 보호하려 했던 사람들로 묘사할 근거는 없습니다. 반대로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악한 사람들이었다고 단정할 근거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름이 기록된 남자들과 이름이 없는 여자들

에스라 10:18–44 본문 →

18절부터는 외국 여자들과 결혼한 남자들의 명단이 이어집니다.

제사장 자손 가운데 외국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인 이들이 드러났다.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들의 자손 가운데서는 마아세야, 엘리에셀, 야립, 그달랴였다.에스라 10:18 · 본디새김

예수아는 초기 귀환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대제사장입니다(에스라 3:2; 5:2). 그의 가문에 속한 사람들의 이름이 명단 첫머리에 등장합니다. 이것은 앞 장에서 고관들과 지도자들이 불신실함에 앞장섰다는 보고와 연결됩니다.

제사장이라는 이유로 명단에서 제외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먼저 언급됩니다.

그들은 손을 내밀어 아내들을 내보내겠다고 약속했다. 또 죄가 있었으므로 자기들의 죄책을 위한 제물로 양 떼에서 숫양 한 마리를 바쳤다.에스라 10:19 · 본디새김

손을 내미는 행동은 맹세와 약속을 나타내는 몸짓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 5:14–19와 6:1–7에는 잘못에 대한 죄책제와 관련된 규정이 나옵니다. 에스라서에서 숫양을 바치는 행위는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였음을 보여 줍니다.

19절은 그들이 아내들을 실제로 모두 내보냈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내보내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합니다. 제물을 바쳤다는 사실은 기록하지만, 그 뒤에 각 가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후 명단은 제사장 가문들에서 레위 사람들, 노래하는 사람들, 문지기들, 일반 이스라엘 사람들로 이어집니다. 성전과 관련된 직무를 맡은 사람들부터 공동체의 여러 가문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에스라 8장의 명단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사람들의 이름이었습니다. 그 명단은 공동체가 다시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반면 에스라 10장의 명단은 공동체 안에서 문제가 드러난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돌아온 것만으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고 있다는 사실까지 보장되지는 않았습니다.

명단에는 결혼한 남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속한 가문이 나옵니다. 그러나 외국인 아내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의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고대의 계보나 행정 기록에서 남자와 가문을 중심으로 이름을 기록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실 하나만으로 기록자가 의도적으로 여자들과 아이들을 멸시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의 아내였고, 누군가의 어머니였고, 누군가의 자녀였습니다. 본문이 구체적인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 절이 그 점을 더욱 선명하게 만듭니다.

이들은 모두 외국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들 중에는 그 아내들과의 사이에 아들들을 둔 이들도 있었다.에스라 10:44 · 본디새김

에스라서는 여기서 끝납니다.

따라서 스가냐의 제안은 아직 형성되지 않은 혼인을 막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가정을 해체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44절은 이 아내들과 자녀들이 실제로 모두 떠났는지, 어디로 갔는지, 어떤 보호를 받았는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16–17절에서 조사가 마무리되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든 혼인 관계의 해소와 자녀들의 이동까지 완전히 이루어졌다는 상세한 보고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고 말하지 않는 결말

에스라 10:1–44 본문 →

이처럼 이야기는 눈물에서 말로, 말에서 약속으로, 약속에서 행동으로 이동합니다. 이 점에서 에스라 10장은 죄를 인정하는 일과 삶을 바로잡으려는 일이 분리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에스라 10장은 죄를 바로잡으려는 공동체의 결단을 기록하면서, 그 결단이 닿은 모든 삶의 결말까지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신실함을 요구하신다는 사실과, 인간이 그 신실함을 실천하기 위해 내리는 모든 구체적인 판단이 동일하게 옳다는 것은 서로 다른 주장입니다. 성경의 서술이 어떤 행동을 기록한다고 해서 그 행동의 모든 측면을 영원한 규범으로 승인한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이 사실은 공동체의 행동을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선언하는 근거도 아니고, 무조건 옳았다고 선언하는 근거도 아닙니다.

마지막에는 이름들이 남습니다.

마아세야, 엘리에셀, 야립, 그달랴를 비롯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여러 가문에 속한 남자들의 이름이 차례로 기록됩니다. 그리고 명단이 끝나는 자리에 짧은 설명이 붙습니다. 「그들 중에는 그 아내들과의 사이에 아들들을 둔 이들도 있었다.」

여기에는 스가냐가 처음에 말했던 희망의 성취를 축하하는 선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결정을 기쁘게 받으셨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책의 마지막 줄에 남은 것은 귀환의 환호도, 완성된 회복의 선언도 아닙니다.

이름이 기록된 남자들과,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