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새김 · 쉽게 읽는 성경 · V0.9 베타

갈라디아서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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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짐과 각자의 책임

형제자매 여러분, 누군가 잘못에 빠지더라도 성령을 따라 사는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 사람을 바로잡아 주십시오. 여러분도 유혹을 받지 않도록 각자 자신을 살피십시오. 서로의 무거운 짐을 져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의 법을 온전히 이루게 될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줄 안다면,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각자 자기가 한 일을 잘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가 한 일만으로 자랑할 거리를 갖게 될 것입니다. 각자 자기 몫의 짐을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짐을 든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다가와 함께 짐을 받쳐 주는 비유 그림.
서로의 무거운 짐을 져 주기 — 비유를 표현한 그림 · 갈라디아서 6:2

심는 것과 거두는 것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십시오.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조롱당하실 분이 아닙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바로 그것을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육을 위해 씨를 심는 사람은 육에서 멸망을 거둘 것이고, 성령을 위해 씨를 심는 사람은 성령께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되었을 때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합시다. 특히 같은 믿음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사람들에게 그렇게 합시다.

십자가에 대한 자랑과 마지막 인사

내가 여러분에게 손수 얼마나 큰 글씨로 썼는지 보십시오. 겉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박해를 받지 않으려는 것뿐입니다. 할례를 받는 그들 자신도 율법을 지키지 않고, 도리어 여러분의 몸에 있는 할례를 자랑하려고 여러분이 할례를 받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 나에게는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에게는 나도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새 창조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준에 발맞추어 살아갈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있기를 빕니다.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낙인 자국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영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아멘.

6장 해설 모두 보기 9
6:2 서로 짐을 져 주라면서 왜 각자 자기 짐을 질 것이라고 하나요?

1절에서는 잘못에 빠진 사람을 바로잡아 주라고 해요. 이어서 서로 짐을 져 주라고 하면서도,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높이지 말고 자기 일을 살피라고 해요. 5절에서는 각자 자기 몫의 짐을 질 것이라고 말해요. 남을 돕는다고 자기 책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자기 책임이 있다고 도움을 받으면 안 되는 것도 아니에요. 두 절에서 짐을 가리키는 낱말은 다르지만, 무게만으로 나누어 한쪽은 남이 지고 다른 쪽은 혼자 져야 한다고 정하지는 않아요.

6:2 그리스도의 법은 무엇인가요?

바울은 앞 장에서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라고 했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 안에서 율법 전체가 이루어진다고 했어요. 이제 그 사랑을 잘못에 빠진 사람을 돕고 서로의 짐을 지는 일로 이어 가요. 이 문맥에서 그리스도의 법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 따라야 할 사랑의 길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어요.

6:6 가르치는 사람과 무엇을 나누라는 말인가요?

바울은 나눌 것을 하나씩 정하지 않고 ‘모든 좋은 것’이라고 해요. 이 말은 가르치는 사람의 생활을 돕는 물질적인 나눔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다만 가진 재산을 전부 넘기라는 명령이나 일정한 금액을 정한 말은 아니에요.

6:8 육이나 성령을 위해 씨를 심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씨를 심으면 그 씨에 맞는 것을 거두듯이, 사람이 살아가는 방향에도 결과가 따른다는 말이에요. ‘멸망’으로 옮긴 원문 낱말에는 썩어 없어짐이라는 뜻이 있어요. 앞 장의 육과 성령 사이의 대조가 여기서도 이어져요. 7절의 ‘하나님께서는 조롱당하실 분이 아닙니다’라는 말도 자신의 삶과 그 결과가 아무 상관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대할 수 없다는 경고로 읽을 수 있어요. 바울은 이 비유를 좋은 일을 포기하지 말자는 권면으로 이어 가요.

6:11 바울은 왜 큰 글씨를 보라고 하나요?

여기서는 바울이 직접 썼다는 점과 글씨의 크기가 드러나요. 하지만 어느 부분부터 손수 썼는지, 왜 글씨를 크게 썼는지는 밝히지 않아요. 앞서 언급한 몸의 아픔과 연결해 눈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근거도 이 절에는 없어요.

6:14 바울과 세상이 서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바울은 실제로 자기 몸이 십자가에 달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앞에서는 다른 사람의 몸에 있는 할례를 자랑하려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자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해요. 이 흐름에서 보면 세상이 내세우는 자랑과 인정이 더는 바울의 삶을 결정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세상 사람을 돕지 말라는 말은 아니에요. 10절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라고 해요.

6:15 새 창조는 무엇인가요?

‘창조’는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일을 가리켜요. ‘새 창조’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새롭게 되는 것을 포함하지만, 이 표현을 개인의 변화에만 한정할 필요는 없어요. 바울은 무엇이 새로워지는지 이 절에서 길게 풀지 않고, 할례의 유무와 새 창조를 대조해요.

6:16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누구를 가리키나요?

앞의 ‘이 기준에 발맞추어 살아갈 모든 사람’을 다시 가리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전체를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부른다는 읽기가 있어요. 앞의 사람들에 더하여 유대인 신자들을 따로 가리킨다는 읽기도 있어요. ‘그리고’로 옮긴 연결말을 덧붙이는 말로 볼지, 앞의 대상을 다시 설명하는 말로 볼지가 이 문제와 연결돼요.

6:17 예수의 낙인 자국은 무엇인가요?

바울은 자기 몸에 남은 자국을 예수의 것이라고 불러요. 앞에서 다른 사람의 할례를 자랑하는 이들과 달리, 자신은 예수께 속한 흔적을 몸에 지니고 있다는 말로 읽을 수 있어요. 어떤 상처가 언제 생겼는지는 이 절에 나오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