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상권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9–12장 · 요나단이 이끈 때

왕의 약속과 찢어진 옷

왕은 약속했습니다.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이제부터 영원히 없던 일로 되돌리지 않을 것이다.」(11:36) 그 약속은 공식 문서에 기록되었고, 예루살렘의 거룩한 산에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두라는 명령까지 내려졌습니다. 유대 민족은 영토와 세금 면제와 종교적 지위를 보장받았습니다.

그런데 같은 장에서 그 왕은 약속을 모두 어깁니다.

11장은 왕들이 얼마나 쉽게 약속을 어기는지를 보여주는 정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외국 왕들의 배신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요나단 역시 그들의 왕국에 깊이 관여합니다. 유대 민족을 보호하려는 그의 행동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지만, 동시에 더 큰 권력 다툼 속으로 그들을 끌어들입니다.

왕들이 주는 영예와 보장이 끊임없이 흔들리는 세계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어디에 자신의 안전을 두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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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말로 시작된 침략

마카베오기 상권 11:1–8 본문 →

이 장을 여는 인물은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 6세 필로메토르입니다. 그가 시리아로 들어올 무렵, 셀레우코스 왕국은 알렉산드로스 발라스와 데메트리오스 2세의 왕위 경쟁으로 불안정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드로스의 장인이었으므로, 그의 군대가 시리아로 들어오는 것은 겉으로는 동맹국의 군사 행동처럼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술자는 처음부터 왕의 실제 목적을 독자에게 알려줍니다.

이집트 왕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군사와 수많은 배를 모았습니다. 그는 속임수로 알렉산드로스의 왕국을 차지하여 자기 왕국에 합치려고 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1:1 · 두루새김

도시 사람들은 성문을 열어 왕을 환영합니다. 알렉산드로스가 장인을 맞이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프톨레마이오스는 그 도시마다 자기 군사들을 둡니다.

환영을 위한 입성이 군사적 점령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아소도 사람들이 프톨레마이오스에게 요나단이 벌인 전쟁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불탄 다곤 신전, 무너진 도시와 마을, 길가에 쌓아 놓은 시신들이 왕 앞에 제시됩니다(11:4–5).

앞 장에서 요나단은 아소도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10:83–85). 그 전투는 유대인들에게 군사적 성취였지만, 여기서는 파괴당한 도시 사람들이 전쟁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서술자는 아소도 사람들이 요나단을 헐뜯으려고 그렇게 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고발 의도와 별개로, 불탄 도시와 죽은 사람들의 시신은 실제 전쟁이 남긴 참혹한 흔적으로 묘사됩니다.

승리한 사람의 이야기와 피해를 입은 사람의 이야기가 같은 장소에서 마주하는 것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의 침묵이 요나단을 좋게 보아서인지, 외교적 계산 때문인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직후 요나단은 욥바에서 왕을 당당한 모습으로 맞이하고, 엘레우테로스라고 부르는 강까지 왕과 함께 갑니다.

독자는 왕이 속임수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지만, 요나단에게는 그 정보가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는 눈앞의 왕과 관계를 맺어야 하지만, 그 왕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두 왕관을 쓴 왕과 오래가지 못한 승리

마카베오기 상권 11:9–19 본문 →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제 자신의 속셈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알렉산드로스의 경쟁자인 데메트리오스에게 사절을 보내 동맹을 제안하고, 자신의 딸을 그에게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 딸은 이미 알렉산드로스의 아내였습니다.

앞서 알렉산드로스가 프톨레마이오스의 딸과 결혼한 것은 두 왕국의 정치적 동맹을 굳게 다지는 사건이었습니다(10:51–58). 그러나 11장에서는 그 결혼이 깨지고, 같은 딸이 경쟁자의 아내가 됩니다. 왕실 혼인은 개인의 관계인 동시에 국가 사이의 계약이었습니다. 본문은 딸 자신의 뜻은 전혀 전하지 않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드로스가 자신을 죽이려 했기 때문에 혼인을 깨뜨린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서술자는 곧바로 다른 설명을 제시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렉산드로스를 헐뜯은 것은 그의 왕국을 탐냈기 때문입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1:11 · 두루새김

프톨레마이오스는 안디옥에 들어가 이집트와 아시아의 두 왕관을 씁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싸움에서 패하고 아라비아로 달아납니다. 아라비아 사람 삽디엘이 알렉산드로스의 목을 베어 죽이고, 그를 죽였다는 증표를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보냅니다.

그런데 프톨레마이오스 자신도 사흘째 되는 날 죽습니다.

두 왕국의 왕관을 머리에 올린 사람이 그 왕관을 오래 누리지 못합니다. 경쟁자가 죽었다는 증표를 받은 왕도 곧 자신의 생명을 잃습니다. 그의 군사들마저 요새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그 결과 왕좌를 차지하는 사람은 두 왕관을 썼던 프톨레마이오스도, 목이 베여 죽은 알렉산드로스도 아닌 데메트리오스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책의 서술자는 적어도 프톨레마이오스의 비난을 왕국에 대한 욕심과 연결하여 해석하도록 독자를 이끕니다. 다만 알렉산드로스가 실제로 그를 죽이려 했는지에 관한 역사적 문제는 이 구절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11장 19절의 「167년」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연호로, 기원전 145년 무렵에 해당합니다. 정치적으로는 데메트리오스 2세의 통치가 시작되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예루살렘 한가운데 남아 있는 적의 성채

마카베오기 상권 11:20–29 본문 →

데메트리오스가 왕이 되자 요나단은 예루살렘의 성채를 공격합니다.

이 성채는 마카베오기 상권의 흐름에서 중요한 장소입니다. 안티오코스 4세 시대에 외국 군대와 유대인 협력자들이 자리 잡은 요새로, 예루살렘을 통제하는 거점이었습니다(1:33–36). 유다 마카베오가 성전을 정화하고 제사를 회복한 뒤에도 성채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회복되었어도, 그 도시의 자유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성채를 공격하자 그의 민족 가운데 몇 사람이 새 왕에게 가서 그를 고발합니다.

서술자는 그들을 「자기 민족을 미워하는 자들, 곧 율법을 어기는 자 몇 사람」이라고 부릅니다(11:21). 이 표현은 중립적인 신원 소개가 아닙니다. 이 책은 유대 사회 내부의 갈등을 율법에 충실한 사람들과 율법을 어기는 사람들의 대립으로 묘사해 왔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전하는 구체적인 사건을 보면 갈등은 종교적인 문제인 동시에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예루살렘의 성채를 유지하려는 사람들과 이를 없애려는 요나단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데메트리오스는 요나단에게 포위를 그만두고 자신에게 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는 포위를 계속하게 합니다.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어른들과 제사장들을 데리고 왕을 만나러 갑니다. 요나단은 자신이 확보한 군사적 압박을 유지하면서 외교적인 해결을 시도합니다.

본문은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나섰습니다」라고 기록합니다(11:23). 요나단에게 왕과의 만남은 안전하게 예의를 갖추는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새 왕은 자신의 지위를 인정해 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를 제거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선물을 가져가 왕이 자신을 좋게 보게 합니다. 당시 왕과 지방 지도자의 관계에서 선물은 외교적 협상의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왕은 요나단이 대제사장 자리를 계속 맡게 하고 그를 으뜸 벗들 가운데 하나로 인정하게 합니다. 여기서 「왕의 으뜸 벗들」은 단순히 친한 사람들을 뜻하지 않습니다. 헬레니즘 왕국에서 왕의 벗들은 왕과 가까운 지위를 가진 궁정의 주요 인사들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이제 유대인의 지도자일 뿐 아니라 왕국의 공식적인 권력 체계 안에서도 높은 지위를 갖습니다.

이것은 실질적인 성취지만, 동시에 중요한 긴장을 낳습니다.

대제사장이라는 종교적 직책의 정치적 지위가 외국 왕의 승인에 의해 보장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이 승인이 하나님 앞에서 요나단의 정당성을 확증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왕이 그의 자리를 인정했다는 사실을 기록할 뿐입니다. 데메트리오스가 배신한 후 다른 왕이 등장하자, 요나단은 그에게서 다시 같은 직책을 인정받기 때문입니다(11:57).

거룩한 산에 게시될 왕의 편지

마카베오기 상권 11:30–37 본문 →

요나단이 얻어 낸 것은 개인적인 영예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데메트리오스는 유대의 영토와 사마리아에서 떼어 더해진 세 지역을 인정하고, 여러 종류의 왕실 세금을 면제하는 문서를 작성합니다. 34절에 등장하는 아파이레마, 룻다, 라마다임은 행정적으로 중요한 지역들입니다. 이 땅들이 유대에 더해진다는 것은 유대 공동체가 다스리는 영역이 넓어지고, 그 지역의 소득과 행정에 관한 권한도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28절의 요청에 있는 「유대와 세 지역과 사마리아」의 관계는 문장만으로 완전히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34절의 공식 문서는 사마리아에서 떼어 유대에 더해진 세 지역을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따라서 이 문서를 사마리아 전체가 유대에 편입되었다는 선언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왕은 땅의 수확물과 나무 열매에서 거두던 세금, 십일조, 소금 호수와 관련된 수입, 왕관 명목으로 바치는 돈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합니다. 특히 본문에 나오는 십일조를 성전 예배를 위해 드리는 모든 십일조와 곧바로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는 왕실이 거두던 수입이 문제입니다.

유대 공동체는 성전과 제사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외국 왕국의 세금 체계 아래 있었습니다. 왕실에 바쳐야 할 돈의 부담이 줄어들면 그만큼 공동체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늘어납니다. 왕의 문서에는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리는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까지 나옵니다(11:34). 이는 왕국이 유대 공동체의 종교적 중심지와 그에 연결된 사람들을 행정적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이제부터 영원히 없던 일로 되돌리지 않을 것이다.』」마카베오기 상권 11:36 · 두루새김

이어 그 문서를 예루살렘의 거룩한 산에 두도록 명령합니다. 거룩한 산은 성전이 자리 잡은 장소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과 예배를 중심으로 자신들이 누구인지 이해하던 곳입니다.

그곳에 외국 왕의 법적 보장 문서가 놓이게 됩니다.

이 장면을 오직 정치적 타협이나 오직 종교적 승리로만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 유대인들이 지켜 온 성전과 공동체의 삶이 이제 왕의 공식적인 인정과도 연결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평온해진 왕국에서 시작된 새로운 반란

마카베오기 상권 11:38–43 본문 →

데메트리오스는 왕국이 평온해지자 군대를 해산합니다.

그는 돈을 주고 모은 외국 군사들은 남겨 두면서, 이전 왕들 때부터 복무해 온 군사들은 고향으로 돌려보냅니다. 처음 읽으면 전쟁이 끝나 군사력을 줄이는 정책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해산된 군대가 왕을 적대하기 시작합니다.

이 혼란을 이용하는 인물이 트리폰입니다.

트리폰은 알렉산드로스의 어린 아들 안티오코스를 새로운 왕으로 세우려 합니다. 그는 데메트리오스에게 불만을 품은 군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왕위를 주장할 수 있는 이름을 제공하고, 불만을 품은 군대는 그 주장을 현실로 만들 힘을 제공합니다.

그 무렵 요나단은 데메트리오스에게 다시 요청합니다.

요나단은 데메트리오스 왕에게 사람을 보내, 예루살렘 성채에 있는 자들을 내쫓고 요새들에 있는 자들도 내쫓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과 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1:41 · 두루새김

앞서 맺은 협정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왕은 요나단의 대제사장 자리와 영토를 인정하면서도, 그가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군사적 문제까지 해결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요나단을 더 크게 높여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와 함께 싸울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면 좋겠다. 내 모든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마카베오기 상권 11:43 · 두루새김

왕은 이제 요나단을 단순히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 지방 지도자가 아니라, 자신이 의지해야 할 군사적 동맹자로 대하고 있습니다. 유대 민족의 정치적 힘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유대 군대가 제국의 내부 전쟁에 동원될 가능성도 커졌습니다.

왕을 구한 삼천 명과 불타는 안디옥

마카베오기 상권 11:44–53 본문 →

요나단은 군사 삼천 명을 안디옥으로 보냅니다.

이들은 왕이 반란을 진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도시 사람들이 왕을 죽이려 하자 왕은 궁전으로 달아나고, 유대 군사들은 왕을 구하기 위해 도시 안으로 들어갑니다. 본문은 도시 사람 십이만 명쯤이 모였고, 유대 군사들이 그날 십만 명쯤을 죽였다고 기록합니다(11:45–47).

그들은 그날 도시를 불태우고 많은 재물을 빼앗았으며, 왕을 구해 냈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1:48 · 두루새김

이 책의 서술은 유대 군사들이 왕을 구하고 높임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높임을 받았다고 기록한다는 사실이 도시에서 벌어진 모든 폭력을 도덕적으로 옳다고 인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소도에서는 요나단의 전쟁 때문에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왕이 지나는 길에 쌓였습니다. 안디옥에서는 요나단이 보낸 군사들이 도시를 불태웠습니다. 유대 민족의 독립을 위해 벌인 전쟁과 외국 왕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벌인 전쟁이 같은 종류의 폭력으로 묘사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두 장면 모두 전쟁이 도시와 주민들에게 남기는 파괴를 보여줍니다.

전투가 끝나자 도시 사람들은 평화를 청합니다. 유대 군사들은 왕과 왕국의 사람들 앞에서 높임을 받고, 빼앗은 재물을 많이 가지고 돌아갑니다.

이제 데메트리오스는 왕좌를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때 서술은 급격하게 뒤집힙니다.

그러나 왕은 자기가 한 말을 모두 어기고 요나단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요나단이 보답으로 자기를 도와주었는데도 그 도움을 갚지 않고, 오히려 그를 몹시 괴롭혔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1:53 · 두루새김

앞서 왕은 유대 민족이 자신의 친구이며 자신에게 해야 할 일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좋은 일을 해 주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11:33). 이제 요나단이 실제로 왕을 구해 주었는데도 왕은 그 관계를 저버립니다. 본문은 왕이 왜 요나단에게 등을 돌렸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은 자신을 구해 준 사람에게 신의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전쟁 서술에는 대규모 인명 피해를 강조하는 수치가 자주 나타나므로, 이를 따로 검증된 정확한 사망자 수로 취급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장만으로 실제 피해 규모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장은 시편이 말하는 왕과 권력에 대한 경계와도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시편 146:3–5는 통치자나 죽을 인간에게 궁극적인 도움을 기대하지 말고, 야곱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합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은 그 말씀을 직접 인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데메트리오스의 약속과 배신, 그리고 요나단의 마지막 기도는 그 오래된 신앙의 질문을 역사적 현실 속에 다시 놓습니다.

새로운 왕의 편지, 더 커진 영예

마카베오기 상권 11:54–62 본문 →

데메트리오스가 약속을 어긴 뒤, 트리폰이 어린 안티오코스를 데리고 나타납니다.

데메트리오스가 해산했던 군대는 안티오코스에게 모여들고, 데메트리오스는 전투에서 패합니다. 트리폰은 안디옥을 차지합니다.

이제 요나단에게 또 하나의 왕실 편지가 도착합니다.

어린 안티오코스는 요나단에게 이렇게 써 보냈습니다. 「나는 네 대제사장 직책을 그대로 인정하고, 네 개 지역을 다스리게 하며, 왕의 벗들 가운데 하나로 삼는다.」마카베오기 상권 11:57 · 두루새김

앞서 데메트리오스가 인정해 주었던 지위가 새로운 왕의 이름으로 다시 확정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요나단의 형제 시몬까지 높은 군사적 지위를 받습니다. 시몬은 두로의 사다리에서 이집트 국경까지 이르는 지역의 군대 사령관으로 세워집니다.

금그릇과 식사 도구들이 주어지고, 금그릇으로 마시고 자주색 옷을 입으며 금 죔쇠를 달 권한도 주어집니다. 왕실과 높은 지위의 인물들에게 허락된 물건과 옷을 사용한다는 것은 궁정에서 인정받은 신분을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금 죔쇠는 앞서 알렉산드로스가 요나단에게 준 영예와도 연결됩니다(10:89). 왕들은 요나단의 충성을 얻기 위해 그를 계속 높여 주고 있습니다.

새 왕의 정치적 기반은 어린 안티오코스의 왕위 주장과 트리폰이 모아 놓은 군대입니다. 왕실의 편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요나단을 인정하지만, 그 인정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요나단은 이 기회를 활용하여 군사 활동에 나섭니다.

아스글론 사람들은 그를 예우하며 맞이하지만, 가자 사람들은 성문을 닫습니다. 요나단은 가자를 포위하고 주변 마을들을 불태웁니다. 가자는 결국 화해를 요청하고, 요나단은 지도자들의 아들들을 볼모로 잡아 예루살렘으로 보냅니다.

여기서도 평화는 전쟁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지도자들의 아들들을 볼모로 보낸다는 사실은 도시의 복종을 확실하게 만들기 위한 조치입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은 이를 요나단의 군사적 성과로 기록합니다. 동시에 본문 자체는 그 평화가 서로를 믿는 마음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화해의 손이 반복되는 이유

마카베오기 상권 11:63–66 본문 →

안디옥 사람들이 왕에게 화해를 요청할 때(11:50), 가자 사람들이 요나단에게 화해를 요청할 때(11:62), 벳술 사람들이 시몬에게 화해를 요청할 때(11:66) 비슷한 말이 사용됩니다. 「화해의 손」은 본래 ‘오른손들’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화해와 안전을 보장하는 손을 내미는 관용적 표현입니다. 서로 오른손을 내미는 행동은 단순한 인사를 넘어 적대 관계를 멈추고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에 등장하는 화해의 손들은 모두 긴박한 군사적 상황 속에서 요청됩니다.

안디옥 사람들은 도시가 공격당하는 가운데 화해를 청합니다. 가자는 포위와 주변 지역의 파괴를 겪은 뒤에 화해를 청합니다. 벳술 사람들도 시몬의 오랜 공격과 봉쇄 끝에 화해를 요청합니다.

더욱이 화해 이후의 상황도 동일하지 않습니다. 안디옥에서는 무기를 버리고 전투가 끝납니다. 가자에서는 지도자들의 아들들이 볼모로 잡혀 갑니다. 벳술에서는 항복한 사람들이 내보내지고 시몬이 도시를 지키는 군사들을 둡니다.

이 장의 화해는 적대 행위의 중단을 뜻하지만, 반드시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서 맺은 평화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데메트리오스에게 조약을 제안했고, 데메트리오스는 요나단에게 영원히 지킬 보장을 약속했습니다. 도시들은 화해의 손을 요청했습니다. 평화가 한 번 이루어진 뒤 지속되는 세계였다면 이렇게 끊임없이 새로운 약속과 화해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11장에서 평화는 완성된 상태라기보다, 전쟁과 갈등 사이에서 사람들이 반복해서 확보해야 하는 불안정한 상태로 나타납니다.

모두 달아났을 때 요나단이 한 일

마카베오기 상권 11:67–74 본문 →

11장의 마지막 전투는 앞서 등장한 요나단의 군사적 성취와 다르게 시작됩니다.

데메트리오스의 지휘관들이 요나단을 몰아내려고 갈릴리의 게데스에 군대를 모았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요나단은 시몬을 남쪽의 작전에 남겨 두고 자신은 북쪽으로 향합니다. 요나단은 게네사렛 물가에 진을 친 뒤 이른 아침 하솔 평야로 나아갑니다.

이 전투에는 매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숨어 있던 적군이 뛰쳐나와 싸움을 벌였습니다. 요나단 곁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달아났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1:69 · 두루새김

다음 절은 두 사람이 남았다고 설명합니다. 압살롬의 아들 마타티아스와 할피의 아들 유다입니다. 이 두 사람은 단순한 숫자로 처리되지 않고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까지 기록됩니다.

앞서 전투에서는 삼천 명의 군대가 왕을 구했고, 십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죽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수많은 군사의 규모보다 끝까지 떠나지 않은 두 사람의 이름이 중요해집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옷을 찢고 머리에 흙을 얹은 뒤 기도합니다.

그는 다시 적들에게 맞서 싸워 그들을 무찔렀습니다. 적들은 달아났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11:72 · 두루새김

요나단은 이전에 왕으로부터 영예를 받았고, 군사 지휘권을 얻었으며, 여러 도시를 굴복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런 권력과 명예가 매복 공격 앞에서 그를 보호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동맹자들이 얼마나 강력한가보다, 모든 동맹과 군사적 힘이 흔들릴 때 그가 어디를 향하는지가 강조되는 장면입니다.

또한 본문은 하나님이 어떤 기적을 일으켜 적들을 물리치셨다고 직접 서술하지도 않습니다. 요나단이 기도했고 다시 싸웠으며, 적이 달아났다는 순서를 전할 뿐입니다. 본문은 요나단의 기도를 보여주지만, 그의 정치적 행보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판결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옷을 찢고 흙이나 재를 머리에 얹는 행위는 슬픔과 절망, 자신의 힘없음을 드러낼 때 나타납니다. 여호수아가 아이 성 전투의 패배 뒤에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썼던 장면도 떠올릴 수 있습니다(여호수아 7:6). 유다는 압도적으로 많은 적군을 앞에 두었을 때 승리가 군사의 수에 달려 있지 않다고 말하며 하늘의 도움을 강조했습니다(3:18–22). 요나단의 전투는 그와 동일한 방식으로 전개되지는 않지만, 군사적으로 불리한 상황과 기도가 한 장면에 놓인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결을 이룹니다. 이사야 31:1은 군사력과 말과 병거를 의지하면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바라보지 않는 태도를 비판합니다. 이 말씀은 모든 외교와 군사적 준비를 금지하는 원칙이 아니라,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는 궁극적인 근거를 어디에서 찾는가를 묻는 예언자의 비판입니다.

맺음 — 왕관 대신 흙을 머리에 얹은 사람

마카베오기 상권 11:1–74 본문 →

11장은 두 왕관을 쓴 프톨레마이오스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머리에 흙을 얹은 요나단의 모습에 가까운 장면으로 끝납니다. 정치적 권력은 공동체의 삶을 보호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그 권력 자체가 공동체의 궁극적인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는 현실의 정치와 경제 속에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의 성취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죽음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이었다거나, 요나단이 왕들에게서 받은 모든 영예가 하나님의 보상이었다고 말할 근거는 본문에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앞서 왕들은 화려한 왕관을 쓰고 자기 권력을 과시했습니다. 요나단은 전쟁터에서 옷을 찢고 흙을 뒤집어썼습니다. 왕의 금그릇과 자주색 옷을 사용할 권한까지 얻었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그 어떤 영예도 내세우지 않은 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11장은 왕의 약속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보여주는 대신, 그 약속이 무너진 뒤에도 한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며 끝납니다.

요나단은 다시 싸웠습니다. 달아났던 군사들이 돌아왔습니다. 적군은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