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24장
이 장의 자리 · 16–27장 · 다윗의 등장
죽일 수 있는 힘과 죽이지 않을 자유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온 이스라엘에서 뽑은 군사 삼천 명을 데리고 광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정작 사울의 생명을 손에 넣은 사람은 다윗입니다.
그것도 전투에서 이긴 결과가 아닙니다. 사울이 아무런 경계 없이 동굴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고 겉옷 자락만 잘라 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고 나서 마음이 찔립니다.
왜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왕의 목숨을 살려 주고도, 그의 옷자락을 자른 일을 후회했을까요?
이 장은 단순히 원수를 용서한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 이루려 하는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그리고 정당한 권리를 가진 사람이 왜 스스로 자신의 손을 멈추는가를 묻는 이야기입니다.
동굴 속에 들어온 왕 — 힘의 관계가 뒤집히는 순간
다윗은 엔게디의 요새들로 이동합니다. 엔게디는 사해 서쪽의 험한 지역으로, 바위 절벽과 골짜기, 동굴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의 자연환경은 몸을 숨기기에 알맞았지만,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집은 아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을 뒤쫓다가 돌아온 사울은 다시 다윗을 쫓습니다.
사울은 온 이스라엘에서 뽑은 군사 3,000명을 데리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을 찾으러 산염소 바위 일대로 갔습니다.사무엘상 24:3 · 두루새김
삼천 명은 적은 병력이 아닙니다. 사울은 온 이스라엘에서 뽑은 군사들을 이끌고 한 사람을 찾아 나섭니다.
반면 다윗은 부하들과 함께 동굴 깊숙한 곳에 숨어 있습니다.
사울이 길가의 양 우리들에 이르렀는데, 그곳에 동굴이 있었습니다. 사울은 볼일을 보려고 동굴에 들어갔습니다. 다윗과 부하들은 그 동굴 깊숙한 곳에 앉아 있었습니다.사무엘상 24:4 · 두루새김
사울은 무장한 군대를 이끌고 다윗을 찾으러 왔습니다. 그러나 동굴에 들어온 순간만큼은 그 군대가 그를 직접 보호해 주지 못합니다.
왕의 권력과 왕의 약한 모습이 한 장면 안에 겹쳐집니다.
동굴의 깊숙한 곳에 앉아 있는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사울을 볼 수 있지만, 사울이 그들을 알아보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사울은 다윗을 쫓았고 다윗은 사울을 피해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 두 사람의 처지가 뒤집힙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다윗의 부하들이 상황을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왕이 「볼일을 보려고」 동굴에 들어갔다는 설명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원문의 표현은 그대로 옮기면 「발을 덮다」(סָכַךְ)라는 뜻입니다. 이 문맥에서는 용변을 보는 일을 돌려 말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오늘이 바로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날이에요」 — 좋은 기회는 곧 하나님의 명령인가
다윗의 부하들이 말합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이 바로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날이에요. 『내가 네 원수를 네 손에 넘겨주겠다. 네가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그에게 해라』 하고 말씀하셨잖아요.」 다윗은 일어나 사울의 겉옷 자락을 몰래 잘라 냈습니다.사무엘상 24:5 · 두루새김
다윗은 이미 기름 부음을 받아 장차 왕이 될 사람으로 선택되었습니다. 사울은 그를 죽이려고 뒤쫓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울이 아무런 경계 없이 다윗이 숨어 있는 동굴에 들어왔습니다. 부하들의 눈에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기회를 마련해 주신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본문은 부하들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인용한다고 기록하지만, 실제로 여호와야훼께서 그런 말씀을 주셨다고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확인해 주지는 않습니다. 「네가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그에게 해라」라는 말은 다윗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앞뒤 상황을 보면 부하들이 기대하는 선택은 분명합니다. 사울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행동을 하나님의 뜻과 연결하고 있습니다.
사울 역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보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자기 손에 넘겨주셨다고 확신했습니다(23:7).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주지 않으셨다는 사실은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분명히 밝혔습니다(23:14).
어떤 일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이, 그 일을 해도 된다는 뜻일까요?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을 허락하셨다고 해서 그 상황에서 가능한 모든 행동까지 승인하셨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윗도 나중에는 여호와야훼께서 사울을 자기 손에 넘겨주셨다고 말합니다(24:11). 그러나 그 만남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르게 판단했습니다.
사울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보여 줄 증거를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옷자락 하나를 잘랐는데 — 다윗의 마음은 왜 찔렸는가
그 뒤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을 잘라 낸 일 때문에 마음이 찔렸습니다.사무엘상 24:6 · 두루새김
다윗은 사울을 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은 자신을 쳤습니다.
다윗이 부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 앞에서 나는 여호와야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내 임금님께 결코 손을 대서는 안 된다. 그분은 여호와야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분이기 때문이다.」사무엘상 24:7 · 두루새김
다윗은 사울이 여전히 여호와야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부당하게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조금 뒤에는 그 잘못을 사울 앞에서 직접 지적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왕권을 존중하면서도 사울의 악한 행동을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자신의 판단과 힘으로 없애는 일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그 거부는 사울 한 사람을 향한 행동에 그치지 않습니다.
다윗은 이 말로 부하들을 호되게 꾸짖어 사울을 공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울은 일어나 동굴에서 나와 길을 갔습니다.사무엘상 24:8 · 두루새김
다윗이 직접 죽이지 않더라도 부하들이 죽인다면 결과는 같습니다. 사울은 죽고 다윗에게 왕위로 나아갈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길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기 손을 멈추었을 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 움직이려는 다른 사람들의 손도 멈추게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상 15장에서 사울은 사무엘이 떠나려 할 때 그의 겉옷 자락을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옷이 찢어졌습니다. 사무엘은 그 사건을 사울의 왕권과 연결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 왕국을 사울에게서 떼어 내어 다른 사람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사무엘상 15:27–28). 두 사건을 나란히 읽으면 옷자락을 자르는 행동이 단순한 장난이나 옷을 조금 망가뜨린 일이 아니라 왕권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다만 다윗이 실제로 이 상징을 의식하고 옷자락을 잘랐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분명한 행동의 이유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원문은 다윗이 부하들을 「말로 찢었다」(שָׁסַע)는 강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호되게 꾸짖어」라고 옮겼습니다. 그가 단순히 부드럽게 타이른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을 강하게 막았음을 보여 줍니다.
동굴 밖으로 나온 다윗 — 죽일 수 있었음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사울은 아무 일도 모른 채 동굴을 나갑니다.
그 뒤 다윗도 일어나 동굴에서 나와 사울의 뒤에서 외쳤습니다. 「저의 임금님!」 사울이 뒤돌아보자 다윗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했습니다.사무엘상 24:9 · 두루새김
동굴 안에서 다윗은 사울의 생명을 자신의 판단에 맡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굴 밖에서 다윗은 사울 앞에 몸을 낮추며 자신이 그 힘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설명합니다.
「아버님, 보십시오. 제 손에 있는 아버님의 겉옷 자락을 보십시오. 저는 옷자락을 잘라 내고도 아버님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가 악한 짓이나 반역을 하지 않았고, 아버님께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그런데도 아버님은 제 목숨을 빼앗으려고 저를 쫓고 계십니다.」사무엘상 24:12 · 두루새김
「아버님」이라는 호칭은 다윗과 사울이 왕과 신하의 관계만이 아니라 장인과 사위의 관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딸 미갈과 결혼했습니다(사무엘상 18:27).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에게 여전히 존중하는 말로 이야기합니다. 동시에 그가 자신에게 저지르고 있는 잘못을 숨기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잘라 낸 옷자락을 사울에게 보여 줍니다. 조금 전 그에게 양심의 가책을 일으켰던 바로 그 물건입니다. 그것은 다윗이 사울에게 다가가 옷을 망가뜨렸다는 증거이면서, 동시에 그보다 훨씬 큰 해를 끼칠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여기서 다윗의 말은 사울을 향한 반역이나 죽일 뜻이 없다는 것을 밝히는 말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가 자신의 모든 행동에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고 선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이미 옷자락을 자른 일로 마음이 찔렸습니다.
따라서 다윗의 행동을 권력자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경건이라는 교훈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부당한 권력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미 그에게서 도망쳤습니다. 이제 그 권력자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지적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죄를 인정하면서도, 그 죄를 자신의 폭력을 허락하는 근거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저와 임금님 사이의 옳고 그름을 가려 주시고」 — 복수하지 않는 것은 정의를 포기하는 일인가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더욱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저와 임금님 사이의 옳고 그름을 가려 주시고, 저를 위해 임금님께 원수를 갚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임금님께 손을 대지 않겠습니다.」사무엘상 24:13 · 두루새김
다윗에게 중요한 것은 정의가 이루어지는가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누가 정의를 이루어 낼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원수를 갚아 주시기를」 바란다는 말은 사울에게 반드시 특정한 형태의 재앙이 내려져야 한다는 구체적인 예언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이 겪은 부당한 일을 여호와야훼께서 바로잡아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는 그 방법과 시기를 스스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신명기 32:35에서 복수와 보응이 하나님께 속한다는 선언과 같은 주제로 연결됩니다. 즉, 다윗이 자신을 절제하는 것은 정의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을 자신의 폭력으로 대신하지 않으려는 선택입니다.
악한 자들에게서 악이 나온다
다윗은 옛 속담을 인용합니다.
「옛 속담에 『악한 사람에게서 악한 일이 나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임금님께 손을 대지 않겠습니다.」사무엘상 24:14 · 두루새김
「악한 사람에게서 악한 일이 나온다」라는 속담은 앞뒤 흐름에서 다윗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는 사울을 죽이지 않은 자신의 행동이 자신에게 악한 짓이나 반역을 할 뜻이 없다는 증거가 된다고 주장합니다.
악한 행동은 악한 성향을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실제 행동을 보고 사람의 뜻을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죽은 개와 벼룩 한 마리
「이스라엘의 왕께서는 누구를 잡으러 나오셨습니까? 누구를 뒤쫓고 계십니까? 죽은 개 한 마리, 벼룩 한 마리를 뒤쫓고 계십니다.」사무엘상 24:15 · 두루새김
「죽은 개 한 마리」와 「벼룩 한 마리」는 모두 보잘것없는 존재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다윗이 자신을 벼룩이라고 부를 때, 사울의 행동은 더욱 이치에 맞지 않게 보입니다.
삼천 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벼룩 한 마리를 잡으려는 왕.
이 과장된 그림은 사울이 자신의 권력을 어디에 사용하고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해야 할 일은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왕권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다윗을 없애는 데 힘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직접 조롱하거나 모욕하는 말 대신,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왕의 행동이 얼마나 지나친지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다시 여호와야훼의 재판을 요청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재판관이 되셔서 저와 임금님 사이의 옳고 그름을 가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 사정을 살피시고 제 편에서 이 일을 다투어 주시며, 저를 위해 판결하여 임금님의 손에서 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사무엘상 24:16 · 두루새김
여기에는 법정에서 사용하는 말이 이어집니다. 「재판관」, 「옳고 그름을 가려」, 「제 사정을 살피시고」, 「제 편에서 이 일을 다투어 주시며」, 「판결하여」라는 표현이 모여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과의 갈등을 단순히 두 사람이 서로 싫어하는 문제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부당하게 쫓기는 사건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 판단을 구할 일로 바라봅니다.
왕이 자신을 부당하게 대할 때, 왕보다 높은 재판관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왕이므로 다윗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자신도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왕의 권위를 모두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왕의 권력에 절대적인 지위를 주지 않는 태도입니다.
사울은 여전히 왕입니다.
그러나 사울이 최종 재판관은 아닙니다.
「내 아들 다윗아」 — 사울의 눈물이 보여 주는 것과 보여 주지 않는 것
다윗의 말이 끝나자 사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이 말을 마치자, 사울이 말했습니다. 「내 아들 다윗아, 이게 네 목소리냐?」 사울은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사무엘상 24:17 · 두루새김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을 아버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사울은 그를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나보다 옳다. 너는 나를 선하게 대했는데, 나는 너를 악하게 대했으니 말이다.」사무엘상 24:18 · 두루새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어떻게 판단할지 몰라 하나님의 재판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자신이 다윗의 결백을 인정합니다.
다윗이 보여 준 행동의 증거를 사울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누가 자기 원수를 만나고도 무사히 제 길을 가게 놓아주겠느냐? 오늘 네가 내게 한 일을 여호와야훼께서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시기를 바란다.」사무엘상 24:20 · 두루새김
사울 자신은 다윗을 죽이려고 해 왔기 때문에, 다윗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 준 행동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다윗의 행동이 자신이 했던 행동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이제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되리라는 것을 안다. 이스라엘 왕국은 네 다스림 아래 굳게 설 것이다.」사무엘상 24:21 · 두루새김
사울이 다윗을 뒤쫓아 온 까닭은 다윗이 자기 왕권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사무엘은 사울의 왕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제 사울은 그 다른 사람으로 등장한 다윗 앞에서 다윗의 왕권을 인정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네가 나보다 옳다」는 표현은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다윗이 모든 면에서 사울보다 완전한 사람이라는 일반적인 선언이라기보다,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이 사건을 놓고 다윗이 사울보다 옳게 행동했다는 판단입니다.
「내 이름을 없애 버리지 않겠다고」 — 사울이 마지막으로 두려워하는 것
사울은 다윗에게 맹세를 요구합니다.
「그러니 이제 여호와야훼를 두고 내게 맹세해라. 내 뒤에 남을 내 자손을 없애지 않고, 내 아버지 집안에서 내 이름을 없애 버리지 않겠다고 말이다.」사무엘상 24:22 · 두루새김
사울의 관심은 자신의 생명에서 자신의 후손으로 옮겨갑니다.
고대에 왕이 다스리던 나라에서 왕조의 교체는 단지 왕 한 사람의 자리만 바뀌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왕이 이전 왕가의 후손들을 앞으로 자신과 경쟁할 사람으로 여긴다면 그들의 생명도 위협받을 수 있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자손과 이름은 한 사람의 집안이 세대를 넘어 계속 존재한다는 사실과 관련됩니다. 자손을 없앤다는 것은 단지 가족 구성원이 줄어든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집안과 이름이 앞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동굴에 들어가기 전까지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자신이 죽이려고 했던 사람에게 자기 자손을 살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기대하는 것은, 자신이 다윗에게 베풀지 않았던 자비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맹세했습니다. 사울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다윗과 부하들은 요새로 올라갔습니다.사무엘상 24:23 · 두루새김
그런데 왜 두 사람은 함께 돌아가지 않는가
두 사람은 함께 돌아가지 않습니다.
다윗은 여전히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하는 도망자입니다. 그가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과 사울이 다윗의 행동이 옳다고 인정했다는 사실이, 곧바로 두 사람 사이의 신뢰를 완전히 회복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사울의 고백이 거짓이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백이 참되었다고 해도, 그동안 쌓인 위험과 불신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장은 용서와 화해, 안전과 신뢰가 반드시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사울의 생명을 살려 주는 것과 사울이 더 이상 자신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그 차이를 마지막 두 사람의 이동으로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다윗이 사울의 후손도 없애지 않겠다고 한 이 약속은 사무엘상 20:14–17에서 요나단과 맺었던 언약을 떠올리게 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자신과 자기 집안에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푸는 이야기(사무엘하 9장)는 이러한 약속들에 뒤따르는 이야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24장 자체에서는 앞으로 사울의 모든 후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장이 보여 주는 것은 다윗이 사울의 요청을 받아들여 여호와야훼 앞에서 맹세했다는 사실입니다.
결말 — 다윗의 손에 남은 옷자락
다윗은 그 옷자락을 잘라 낸 일조차 마음에 찔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왕을 죽이는 길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것이라는 사실과 다윗이 어떤 수단을 써서든 왕위에 올라야 한다는 주장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이미 주어진 약속을 어떤 방식으로 기다릴 것인지가 이 사건에서 드러난 것입니다.
사무엘상 24장의 마지막 장면은 승리의 행진이 아닙니다.
사울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은 다시 요새로 올라갑니다. 사울은 여전히 왕입니다. 다윗은 아직 왕이 아닙니다. 다윗에게는 여전히 집으로 돌아갈 자유가 없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인정한 것은 다윗이 왕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왕의 생명을 빼앗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물건은 왕의 창도, 삼천 명의 군대가 가진 무기도 아닙니다. 다윗의 손에 들려 있던 작은 옷자락입니다. 그 옷자락은 다윗이 사울에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를 보여 줍니다. 동시에 그가 거기서 멈추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동굴 안에서 다윗은 사울의 생명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그의 손에 남아 있던 것은 한 조각의 겉옷 자락뿐이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