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25장

이 장의 자리 · 16–27장 · 다윗의 등장

다윗을 구한 한 여인의 말

사무엘상 25장은 다윗에게 일어날 뻔한 일을 이야기합니다.

다윗은 자기 부하 사백 명쯤에게 칼을 차게 하고 한 집안을 몰살하러 나섭니다. 그런데 그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한 여인이 길을 가로막습니다. 그녀는 군대도 없고 무기도 없습니다. 다만 음식과 지혜로운 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적에게서 구한 것이 아니라, 다윗이 자기 손으로 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구했습니다.

앞 장에서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던 사울을 살려 주었습니다. 그는 왕의 생명을 자기 손으로 빼앗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장에서는 자신에게 모욕을 준 나발을 죽이려 합니다. 그것도 나발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의 집안에 속한 남자들을 모두 죽이려고 합니다.

왜 사울에게는 절제했던 다윗이 나발에게는 이토록 격렬하게 반응할까요?

본문은 다윗의 마음속 동기를 전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사건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사울은 여호와야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이었습니다. 나발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손을 대지 않을 이유로 내세웠던 특별한 왕의 지위가 나발에게는 없습니다. 왕을 죽이지 않는 것은 옳다고 믿으면서, 자신을 모욕한 평범한 사람의 집안을 죽이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사무엘상 25장은 바로 이 지점에서 다윗을 시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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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의 죽음과 한 부자의 등장 — 누가 지혜롭게 판단할 것인가

사무엘상 25:1–3 본문 →

사무엘이 죽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모여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라마에 있는 그의 집에 그를 묻었습니다. 다윗은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갔습니다.사무엘상 25:1 · 두루새김

그는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했을 때 왕이 다스리는 제도의 위험을 경고했습니다.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고, 사울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을 때 그 잘못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도 기름을 부었습니다.

사무엘은 왕을 세우는 일에 관여했지만, 왕의 권력보다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높다는 사실을 계속 일깨우던 인물이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사실은 그의 죽음이 개인의 죽음을 넘어 민족 전체의 사건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의 상황이 안정되었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사울은 여전히 왕이고, 다윗은 광야로 내려갑니다.

나발에게는 양 삼천 마리와 염소 천 마리가 있습니다. 마온에 살고 갈멜에 재산을 둔 그는 매우 부유한 사람입니다. 여기서 갈멜은 북쪽 해안의 갈멜산이 아니라 유다 남부 지역의 갈멜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고,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었습니다. 아비가일은 슬기롭고 아름다웠지만, 나발은 성질이 거칠고 행동이 악했습니다. 그는 갈렙 집안 사람이었습니다.사무엘상 25:3 · 두루새김

아비가일은 「슬기롭고 아름다웠지만」이라고 소개됩니다. 상황을 이해하고 올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나발에게는 막대한 재산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재산이 그에게 올바른 판단력을 주지는 못합니다. 아비가일은 그 재산을 소유한 집안에 속해 있지만, 그녀에게 있는 지혜는 남편의 부유함과 전혀 다른 종류의 자산입니다.

왕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던 사무엘이 이야기에서 물러난 뒤, 다윗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려는 순간 그를 멈추게 하는 사람은 뜻밖에도 한 집안의 여인입니다.

그녀가 사무엘의 예언자 직무를 이어받았다고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그녀가 하는 말은 다윗이 어떤 왕이 되어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내 빵과 내 물」 — 나발은 무엇을 거절했는가

사무엘상 25:4–12 본문 →

다윗은 나발이 양털을 깎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당시 양털 깎기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목축업자에게 중요한 경제적 행사였습니다. 양털은 주요한 생산물이었고, 그 일을 마칠 무렵에는 음식을 준비하고 잔치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본문 자체도 나발이 양털 깎는 일꾼들을 위해 고기를 준비했으며(25:11), 나중에 왕의 잔치 같은 잔치를 벌였다고 기록합니다(25:36).

다윗은 바로 그때 사람들을 보냅니다.

「이렇게 말해라. 『오래 사세요. 당신도, 집안도, 가진 모든 것도 평안하기를 바라요.』」사무엘상 25:6 · 두루새김

다윗은 나발 자신과 그의 집안, 그가 가진 모든 것에 평안이 있기를 빕니다. 그리고 그 평안이 단지 말뿐인 인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나발의 목자들이 다윗의 부하들과 함께 있을 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고, 잃어버린 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일꾼들에게 물어보세요. 그들이 알려 줄 거예요. 좋은 날에 찾아왔으니, 이 부하들을 너그럽게 보아 주세요. 가지고 계신 것을 당신의 종들과 당신의 아들 다윗에게 나누어 주세요.』」사무엘상 25:8 · 두루새김

다윗은 막연히 자신이 선한 일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발의 목자들이 실제로 경험한 일을 근거로 내세웁니다. 여기서 다윗은 정해진 액수나 양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나발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나발을 존중하는 호칭도 사용합니다. 자신을 「당신의 아들 다윗」이라고 부르는 것은 친밀함과 겸손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다윗은 자신과 그의 부하들이 나발의 목자들과 양 떼를 보호해 준 사실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그의 요청에는 그동안 제공한 보호에 대한 답례를 기대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오늘날의 정식 계약에 따른 대금 청구로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에는 다윗과 나발이 미리 보수를 정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또한 무장한 집단이 부유한 목축업자에게 물자를 요청하는 상황이므로, 나발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압박을 느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다만 본문은 그가 실제로 무엇을 두려워하거나 계산했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나발의 대답이 드러내는 경멸

나발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대답했습니다. 「다윗이 누구고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즘은 주인에게서 뛰쳐나가는 종들이 많더구나.」사무엘상 25:10 · 두루새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니는 사정을 알고 있거나 적어도 그와 관련된 소문을 들은 사람이 할 법한 모욕입니다. 다만 나발이 다윗에 관해 어느 정도 정확히 알고 있었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이 호칭은 앞서 사울이 다윗을 부르던 방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울 역시 다윗의 이름 대신 「이새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반복했습니다(사무엘상 22:7–8). 나발이 사울과 공모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다윗을 낮추어 보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나발의 말에는 또 하나의 반복이 있습니다.

「내 빵과 내 물, 양털 깎는 내 일꾼들을 위해 잡은 고기를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라는 말이냐?」사무엘상 25:11 · 두루새김

원문에서는 빵과 물과 고기 모두에 소유를 나타내는 표현이 거듭 붙습니다. 나발은 자신이 가진 것을 전적으로 자기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문제는 자신이 가진 것과 그것을 지켜 준 사람들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의 목자들이 보호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에게 찾아온 사람들의 사정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습니다.

히브리어 나발(⁨נָבָל⁩)은 「어리석은 사람」을 나타내는 말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어리석음은 단순히 지능이 낮거나 지식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지혜 문학에서 어리석음은 흔히 옳고 그름을 가리는 힘이 부족하고 올바른 관계와 책임을 외면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나발은 재산을 어떻게 늘리고 관리하는지 알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모릅니다.

「모두 칼을 차라」 — 다윗이 넘으려 한 선

사무엘상 25:13–17 본문 →

나발의 말을 들은 다윗은 즉시 반응합니다.

다윗이 부하들에게 말했습니다. 「모두 칼을 차라.」 부하들은 저마다 칼을 찼고, 다윗도 칼을 찼습니다. 400명쯤이 다윗을 따라 올라갔고, 200명은 짐 곁에 남았습니다.사무엘상 25:13 · 두루새김

다윗이 나발에게 처음 보낸 부하는 열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백 명쯤 되는 무장한 사람들이 움직입니다. 평안을 비는 인사를 전하려고 보냈던 부하들이 모욕을 당하자, 다윗은 무장한 보복에 나선 것입니다.

앞서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광야에서 이자의 재산을 모두 지켜 준 것은 헛수고였다. 아무것도 잃지 않게 해 주었는데, 그는 내가 베푼 선을 악으로 갚았다.」사무엘상 25:21 · 두루새김

그가 제시하는 이유에는 실제 근거가 있습니다. 나발의 일꾼 역시 다윗의 부하들이 자신들을 보호했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느끼는 부당함이 그가 하려는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그에게 속한 남자를 아침까지 하나라도 살려 둔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원수들에게 무거운 벌을 내리시기를 바란다.」사무엘상 25:22 · 두루새김

문맥상 다윗은 나발의 집안에 속한 남자들을 모두 죽이려는 뜻을 밝힙니다.

나발이 다윗을 모욕한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나발의 종들과 집안 사람들이 그 모욕 때문에 모두 죽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더구나 나발의 일꾼들 가운데는 다윗의 부하들이 자신들을 보호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지켜 주었던 사람들을, 이제 자기 분노 때문에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다윗은 처음에 나발의 목자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신의 선행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발이 그 선행에 적절히 응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집안을 공격하려 합니다.

자신이 베푼 보호가 보복의 근거로 뒤집히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계획한 폭력에 강한 결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선을 행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가할 권리를 주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이 본문의 적용은 피해를 입은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도 분노를 표현하거나 부당함에 맞서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당함에 대응하는 방식 역시 옳고 그름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이 새로운 잘못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나발의 일꾼은 왜 아비가일을 찾아가는가

다윗이 무장한 부하들을 이끌고 움직일 때, 나발의 집안에서도 사건이 벌어집니다. 나발의 일꾼 한 명이 아비가일에게 찾아옵니다.

「우리가 그들 곁에서 양 떼를 돌보는 동안, 그들은 밤낮으로 우리를 둘러싼 성벽이 되어 주었어요.」사무엘상 25:16 · 두루새김

이 증언은 다윗이 주장한 보호가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뒷받침합니다. 광야에서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은 약탈과 공격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실제 성벽이 없는 들판에서 그들이 보호막 역할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성벽은 이제 무너질 위험에 놓였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보호자에서 공격자로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꾼은 아비가일에게 상황을 알리며 말합니다.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하실지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 주인님과 온 집안에 재앙이 닥치게 되었어요. 주인님은 아무도 말을 건넬 수 없을 만큼 못된 분이세요.」사무엘상 25:17 · 두루새김

그는 나발에게 말해 봐야 소용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아비가일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일꾼은 그녀에게는 상황을 설명하고 행동을 요청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야기의 중심이 나발과 다윗에게서 아비가일에게로 옮겨갑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이 「그에게 속한 남자」라고 옮긴 자리에는, 원문에서 남자를 가리키는 「담에 오줌 누는 자」라는 거친 표현이 쓰였습니다. 원문은 저주의 대상을 「다윗의 원수들」이라고 표현하는 특이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두루새김도 이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것을 다윗 자신으로 고쳐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산길에서 마주친 두 사람 — 분노보다 빨랐던 분별력

사무엘상 25:18–24 본문 →

아비가일은 즉시 행동합니다.

아비가일은 서둘러 빵 200개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 요리한 양 다섯 마리, 볶은 곡식 다섯 세아, 말린 포도 100송이, 눌러 뭉친 무화과 200덩이를 준비해 나귀들에 실었습니다.사무엘상 25:18 · 두루새김

다윗의 첫 요청은 나발의 넉넉한 재산 가운데 먹을 것을 나누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발이 거절했던 일을 아비가일이 실행하는 것입니다. 빵 이백 개와 요리한 양 다섯 마리, 여러 종류의 저장 식품은 개인 한 사람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 아닙니다. 그녀는 다윗의 무리 전체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음식은 더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첫 단계입니다. 다윗에게 보낼 것을 보내고, 자신은 직접 그를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남편 나발에게는 알리지 않습니다.

일꾼의 말에 따르면 나발은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다윗의 요청을 모욕적으로 거절했습니다. 아비가일은 남편과 논쟁하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에서 「서둘러」라는 표현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음식을 준비할 때 서두르고, 다윗을 보았을 때도 서둘러 나귀에서 내립니다.

그녀의 신중함은 행동의 느림을 뜻하지 않습니다.

분별력은 언제 기다려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인 동시에, 언제 지체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입니다. 그녀는 산에 가려진 곳으로 내려가다가 다윗과 마주칩니다.

다윗은 나발의 집안에 재앙을 가져오려고 내려옵니다.

아비가일은 그 재앙을 막으려고 내려갑니다.

두 사람의 움직임이 산길에서 만납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발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인님, 이 잘못은 제게, 바로 제게 있습니다. 주인님의 여종인 제가 말씀드리게 해 주십시오.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사무엘상 25:24 · 두루새김

여기서 아비가일이 실제로 나발의 잘못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자라고 고백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녀는 뒤이어 자신이 다윗의 부하들을 보지 못했다고 밝힙니다. 그녀가 한 일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자기 책임으로 떠안는 말을 하여 다윗의 분노를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칼을 차고 내려오는 사람에게 말을 듣게 하는 것.

그것이 그녀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입니다.

아비가일의 말 — 다윗이 장차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사무엘상 25:25–31 본문 →

아비가일의 연설은 단순한 사과보다 훨씬 깊습니다.

그녀는 나발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다윗이 그 잘못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나발의 어리석음에 다윗이 말려들 필요는 없다

먼저 아비가일은 남편을 변호하지 않습니다.

「주인님, 저 못된 사람 나발에게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는 이름 그대로인 사람입니다. 이름이 나발이고, 어리석음이 그에게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의 여종인 저는 주인님께서 보내신 부하들을 보지 못했습니다.」사무엘상 25:25 · 두루새김

하지만 그녀의 목적은 남편을 비난하는 것 자체가 아닙니다. 다윗이 나발의 어리석음 때문에 자기 자신까지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발 같은 사람의 모욕 때문에 다윗이 자신의 앞날을 망칠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주인님, 여호와야훼께서 살아 계심과 주인님의 목숨을 두고 맹세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주인님이 사람을 죽여 죄를 짓지 않도록, 직접 복수하지 않도록 막으셨습니다. 주인님의 원수들과 주인님을 해치려는 자들이 나발처럼 되기를 바랍니다.」사무엘상 25:26 · 두루새김

그런데 이 말을 하는 순간, 다윗은 아직 보복을 포기했다고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아비가일은 마치 이미 일이 해결된 것처럼 말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다윗 앞에 도착하여 그를 설득할 기회를 얻은 바로 이 순간을,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을 죄에서 막으시는 일로 이해하도록 요청합니다. 다윗이 자신의 말을 받아들인다면 이 일은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지금 멈춘다면, 그것은 패배나 굴욕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을 악에서 지켜 주신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집안을 반드시 굳게 세워 주실 것입니다」 — 아비가일은 다윗의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말한다

「주인님의 여종인 제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주인님은 여호와야훼를 위한 전쟁을 치르시니, 여호와야훼께서 주인님의 집안을 반드시 굳게 세워 주실 것입니다. 주인님에게서는 평생 악한 일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사무엘상 25:28 · 두루새김

「집안을 반드시 굳게 세워 주실 것입니다」라는 말은 단지 튼튼한 집이나 부유한 가정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왕권의 약속과 연결해 보면, 오래 이어지는 가문과 왕조를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과 싸웠고,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적들로부터 백성을 구했습니다. 나발은 다윗을 모욕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집안을 몰살하는 일이 이스라엘을 구하는 전쟁은 아닙니다.

그가 감당해야 할 일은 여호와야훼를 위한 전쟁이지, 자기 명예를 위한 복수가 아닙니다.

그녀가 「주인님에게서는 평생 악한 일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부분도 그 흐름에서 읽어야 합니다. 그것은 다윗이 과거부터 미래까지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을 완전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다윗의 미래를 무조건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미래에 걸맞은 행동을 하도록 요청합니다.

생명의 보따리와 무릿매

「누군가 일어나 주인님을 뒤쫓으며 목숨을 노리더라도, 주인님의 목숨은 주인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 곁에서 생명의 보따리에 싸여 있을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주인님의 원수들의 목숨을 무릿매에 담아 던져 버리실 것입니다.」사무엘상 25:29 · 두루새김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싸서 보관하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의 생명이 하나님께 소중히 간직되고 보호받는다는 이미지입니다. 여기서 본문은 죽음 이후의 영혼이 어디에 머무는지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윗을 뒤쫓는 사람이 있는 현재의 위험 속에서, 여호와야훼께서 그의 목숨을 지켜 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반대로 원수들의 목숨은 무릿매의 돌처럼 내던져집니다.

다윗에게 무릿매는 낯선 물건이 아닙니다. 그는 골리앗을 상대할 때 무릿매와 돌을 사용했습니다(사무엘상 17:40–50). 아비가일이 일부러 그 사건을 떠올리게 했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독자에게 무릿매의 이미지는 특별하게 들립니다.

과거에 다윗은 무릿매를 사용하여 적을 물리쳤습니다.

이제 아비가일은 다윗의 원수들을 내던지시는 분이 여호와야훼라고 말합니다.

이 두 이미지의 대조는 하나님의 보호와 심판이 모두 그분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다윗은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자기 손으로 모든 원수를 제거해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미래의 왕에게 남을 마음의 걸림돌

아비가일은 마지막으로 다윗의 미래를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주인님께 약속하신 모든 좋은 일을 이루시고, 주인님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 「주인님은 까닭 없이 사람을 죽이거나 직접 복수한 일 때문에 후회하며 마음 아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주인님께 좋은 일을 베푸시면, 주인님의 여종인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사무엘상 25:30–31 · 두루새김

다윗은 지금 자신이 받은 모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이 장차 왕이 되었을 때를 생각하게 합니다. 지금 나발의 집안을 죽인다면, 다윗은 언젠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 이 사건은 단순히 과거의 승리가 아니라 그의 마음에 걸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자신의 분노를 부정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분노가 자신을 어디까지 끌고 가려 하는지 보라고 합니다.

그녀는 다윗에게 원수를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훗날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하지 않을 방법을 알려 줍니다. 그녀는 다윗이 어떤 왕이 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지금의 행동을 그 미래에 비추어 판단하도록 돕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의 시간 표현은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는 평가와 앞으로의 삶을 내다보는 말로 모두 읽힐 여지가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옮겨 앞으로의 삶을 바라보는 뜻을 드러냅니다. 이 문맥에서 아비가일은 다윗이 앞으로도 악을 저지르지 않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격려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지혜로운 판단에도」 — 다윗은 자기 잘못을 인정한다

사무엘상 25:32–35 본문 →

아비가일의 말을 들은 다윗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그는 처음에 나발의 모욕을 듣고 즉시 칼을 차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아비가일이 자신의 행동을 비판하는 말을 들었을 때도 화를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반응은 다릅니다.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당신을 보내 나를 만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는 찬양받으실 분이에요.」사무엘상 25:32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께서 아비가일을 보내셨다는 말은 이 장의 서술자가 따로 전하는 직접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다윗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믿음으로 해석한 고백입니다.

「당신의 지혜로운 판단에도, 당신에게도 복이 있기를 바라요. 오늘 당신은 내가 사람을 죽여 죄를 짓지 않도록, 직접 복수하지 않도록 막아 주었어요.」사무엘상 25:33 · 두루새김

여기서 다윗은 자신의 계획을 변명하지 않습니다.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사용했던 표현을 다윗 자신이 받아들입니다. 다윗이 자신이 하려던 행동의 성격을 새롭게 판단했다는 뜻입니다.

「내가 당신을 해치지 못하게 막으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해요. 당신이 서둘러 나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면, 아침이 밝을 때까지 나발에게 속한 남자는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을 거예요.」사무엘상 25:34 · 두루새김

이 고백은 다윗의 위험한 계획이 단순히 감정에 휩쓸려 한 말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그는 실제로 그 일을 실행하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나발의 말을 듣고 무장한 사람들을 이끌고 나섰습니다.

이제는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무장한 행동을 멈춥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이 가져온 것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비가일에게 말했습니다. 「집으로 평안히 돌아가세요. 나는 당신의 말을 듣고 부탁을 받아들였어요.」사무엘상 25:35 · 두루새김

여기서 「평안히」라는 말은 이야기의 처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윗은 나발에게 처음 사람들을 보낼 때 평안을 빌었습니다. 하지만 나발의 대답 때문에 그 평안은 깨질 뻔했습니다. 이제 아비가일의 행동과 다윗의 응답을 통해 평안이 회복됩니다.

다윗이 무장한 사람들과 함께 가져가려 했던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그가 아비가일에게 돌려보내는 말은 평안입니다.

왕의 잔치 같은 잔치 — 나발은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가

사무엘상 25:36–38 본문 →

아비가일이 나발에게 돌아오니, 그는 집에서 왕의 잔치 같은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나발은 마음이 들떠 있었고 술에 몹시 취해 있었습니다. 아비가일은 아침이 밝을 때까지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사무엘상 25:36 · 두루새김

그런데 조금 전 그의 집안은 모두 죽임을 당할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나발이 풍요를 즐기는 동안, 그의 아내는 자기 집안을 구하기 위해 위험한 길을 다녀왔습니다. 그녀는 다윗의 칼을 멈추게 했고, 남편과 일꾼들의 목숨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나발은 그 모든 일을 알지 못한 채 술에 취해 있습니다.

그에게는 많은 것을 소유할 능력이 있었지만, 자기 집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릴 지혜는 없었습니다.

다윗은 아직 왕이 아니지만 장차 왕이 될 사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반면 나발은 왕이 아니면서 왕처럼 잔치를 벌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지도자다운 판단을 보여 준 사람은 왕처럼 잔치하는 나발이 아니라, 다윗 앞에서 겸손하게 말하며 재앙을 막은 아비가일입니다.

아비가일은 왜 아침까지 기다렸는가

그녀는 중요한 사실을 언제 말해야 하는지도 판단합니다. 이미 다윗의 위협은 해결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나발에게 모든 일을 알릴 필요는 없습니다. 더구나 술에 취한 사람에게 이 사건을 설명해도 제대로 듣거나 판단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아침이 되어 나발의 술기운이 가시자, 아내가 그에게 있었던 일을 알렸습니다. 나발은 심장이 멎은 듯했고, 돌처럼 굳어 버렸습니다.사무엘상 25:37 · 두루새김

이 표현은 나발의 몸에 심각한 이상이 일어났음을 보여 줍니다.

열흘쯤 뒤에 여호와야훼께서 나발을 치시자 그가 죽었습니다.사무엘상 25:38 · 두루새김

여기서는 서술자가 여호와야훼께서 나발을 치셨다고 직접 밝힙니다. 이제 다윗이 직접 복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발이 죽습니다.

다만 이 사건을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법칙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 악하게 행동하면 반드시 열흘 안에 죽는다는 뜻도 아니고, 의로운 사람이 복수를 포기하면 하나님께서 곧바로 그 원수를 죽여 주신다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약속도 아닙니다. 본문은 나발이라는 특정 인물에게 일어난 일을 기록합니다.

조금 더 깊이

그러나 정확히 어떤 의학적 상태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특정한 질병이나 뇌혈관 질환 등으로 단정하는 것은 본문이 알려 주는 내용을 넘어섭니다.

「그분의 종인 내가 악한 일을 저지르지 못하게 막으셨다」 — 다윗이 깨달은 구원의 의미

사무엘상 25:39 본문 →

다윗은 나발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찬양받으실 분이다. 그분께서 내가 나발에게 당한 모욕을 두고 내 편에서 다투어 주셨고, 그분의 종인 내가 악한 일을 저지르지 못하게 막으셨다. 여호와야훼께서 나발의 악을 나발 자신에게 되돌려 주셨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 아비가일에게 아내로 맞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사무엘상 25:39 · 두루새김

「내 편에서 다투어 주셨고」라는 표현은 법정에서 누군가의 사건을 변호하고 그를 위해 다투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앞 장에서 다윗은 사울에게 자신의 억울한 일을 여호와야훼께서 맡아 판결해 주시기를 요청했습니다(사무엘상 24:16). 이번에는 실제로 자신의 손을 사용하지 않고도 자신의 억울함이 다루어졌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나발이 죽었다는 사실만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죄를 짓지 않도록 보호받았다는 사실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보호는 때로 우리가 당할 악을 막는 데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저지를 악을 막는 데서도 나타납니다.

아비가일의 새로운 삶과 미갈의 상실 — 단순한 행복한 결말은 아니다

사무엘상 25:40–44 본문 →

나발의 죽음 이후 다윗은 사람들을 보내 아비가일에게 청혼합니다.

아비가일은 일어나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주인님의 종들의 발을 씻기는 여종이 되겠어요.」사무엘상 25:41 · 두루새김

고대 사회에서 발을 씻기는 일은 손님을 맞고 섬기는 행동과 관련됩니다. 아비가일은 자신을 낮추는 말로 응답합니다. 그녀가 어떤 개인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비가일이 다윗의 청혼에 응하고 그의 아내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이스르엘 출신 아히노암을 맞아들였습니다.

한편 사울은 자기 딸이자 다윗의 아내인 미갈을 갈림 출신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아내로 주었습니다.사무엘상 25:44 · 두루새김

이는 사울과 다윗 사이의 적대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중요한 정보입니다. 본문은 이 모든 결혼 관계를 신학적으로 해설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여러 아내를 둔 일을 이상적인 가정의 모범으로 제시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왕의 자리를 둘러싼 갈등이 개인적인 결혼 관계와 가족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야기는 다윗이 한 번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보여 주지만, 그의 삶 전체가 안정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왕이 되지 않았고, 왕의 자리를 둘러싼 갈등 속에 있으며, 그 갈등은 가정과 인간관계까지 흔들고 있습니다.

결말 — 두 개의 아침 사이에서

사무엘상 25:1–44 본문 →

사무엘상 25장에는 두 번의 아침이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첫 번째 아침은 다윗이 계획한 학살의 시한이었습니다. 두 번째 아침은 아비가일이 나발에게 사실을 알린 때였습니다.

처음에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는 자신이 저지르려 했던 일을 막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윗은 무장한 400명을 이끌고 나발에게로 향할 만큼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힘을 거두어들이는 일에는 다른 사람의 말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아비가일의 말을 들었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계획을 바꾸었습니다.

그날 아침이 밝았을 때, 나발의 집안에는 다윗이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발이 갑자기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처음부터 올바른 판단을 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한 여인이 서둘러 길을 나섰고, 분노한 사람이 그 여인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5장은 그 길 위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한 집안을 지키시고, 동시에 장차 왕이 될 사람을 그의 잘못된 선택에서 지키셨는지를 보여 줍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