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풀어 읽기 · 5장

이 장의 자리 · 5–8장 · 왕 앞에 나선 에스더

금 지팡이와 나무 기둥

에스더 5장에서는 두 사람이 다음 날을 기다립니다.

에스더는 내일 다시 열릴 잔치에서 왕에게 자신의 부탁을 밝히겠다고 말합니다. 하만은 내일 아침 왕에게 모르드개를 죽이도록 허락받고, 저녁에는 기쁜 마음으로 왕후의 잔치에 참석하려 합니다.

두 사람 모두 왕에게 무엇인가를 요청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에스더가 준비하는 부탁은 자기 민족을 살리기 위한 것이고, 하만이 준비하는 부탁은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입니다.

에스더는 원하는 것을 말할 기회를 얻고도 기다립니다. 하만은 원하는 것을 거의 다 가지고도 기다리지 못합니다.

그 차이가 이 장 전체를 관통합니다.

읽는 시간 15분소단락 75장 본문 읽기 →

왕후의 옷을 차려입고 금 지팡이 앞에 서다

에스더 5:1–2 본문 →

사흘째 되는 날, 에스더는 왕후의 옷을 차려입고 왕궁 안뜰로 나아가 왕이 있는 건물 맞은편에 섰습니다. 왕은 그 건물 안에서 입구를 마주한 채 왕좌에 앉아 있었습니다.에스더 5:1 · 두루새김

사흘째 되는 날이라는 시간 표현은 앞 장에서 에스더가 요청한 금식과 이어집니다. 에스더는 수산의 유다인들에게 자신을 위해 금식하도록 부탁했고, 자신과 시녀들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 준비의 시간이 지나고 실제 행동의 순간이 왔습니다.

본문은 에스더가 어떤 마음으로 왕궁 안뜰에 들어갔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두려워했는지, 자신감을 느꼈는지, 어떤 기도를 드렸는지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에스더는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왕후의 지위를 드러내는 모습으로 왕 앞에 섭니다.

그러나 왕후의 지위가 그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도 안뜰에 들어와 있습니다. 왕이 금 지팡이를 내밀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에스더는 왕에게 자신의 뜻을 말하기도 전에 왕의 판단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의 운명은 왕이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왕이 에스더를 봅니다.

왕은 뜰에 서 있는 에스더 왕후를 보고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왕이 손에 들고 있던 금 지팡이를 내밀자, 에스더는 가까이 가서 지팡이 끝에 손을 댔습니다.에스더 5:2 · 두루새김

여기서 왕이 에스더를 보고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라는 표현은 에스더가 앞서 궁중에서 사람들의 호의를 얻었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합니다(2:9, 15, 17). 에스더는 다시 왕의 호의를 얻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순히 좋은 대우를 받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 호의는 에스더가 살아서 왕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합니다.

그는 자기 목숨을 지키며 왕 앞에 나아가는 첫 관문을 통과했을 뿐입니다. 유다인을 모두 없애라는 명령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에스더를 향해 금 지팡이를 내민 왕은 동시에 유다인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승인했던 왕입니다. 그가 에스더에게 친절하다고 해서 이미 내린 명령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에스더는 왕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왕의 판단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바틸바쉬 에스테르 말쿠트는 문자적으로 「에스더가 왕권을 입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왕후의 옷을 차려입고」라고 옮겼습니다. 원문의 표현은 단순히 아름다운 옷을 입었다는 사실 이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라의 절반까지 주겠다는 왕에게 에스더가 요청한 것

에스더 5:3–5 본문 →

왕이 에스더에게 말했습니다. 「에스더 왕후, 무슨 일이냐?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네게 주겠다.」에스더 5:3 · 두루새김

왕의 반응은 에스더에게 유리합니다.

「나라의 절반까지라도」라는 말은 왕이 실제로 제국의 절반을 나누어 주겠다는 구체적인 법적 약속이라기보다,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겠다는 왕실의 과장된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왕은 에스더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이 이미 승인한 유다인 학살 명령과 에스더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따라서 그의 호의적인 말이 그 명령을 거두어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곧바로 그 사실을 밝히지 않습니다.

에스더가 대답했습니다. 「왕께서 좋게 여기신다면, 오늘 제가 왕을 위해 마련한 잔치에 하만과 함께 와 주십시오.」에스더 5:4 · 두루새김

바로 그 하만입니다. 유다인들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고, 왕의 도장 반지를 받아 학살 명령을 알린 사람입니다.

왜 에스더는 하만을 초대했을까요?

그를 왕 앞에서 고발하기 위해 직접 불러들였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왕과 하만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문제를 제기하려는 계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본문은 에스더의 구체적인 의도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에스더는 왕에게 부름을 받아야만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왕에게 자기 잔치에 와 달라고 요청하고, 왕이 그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에스더의 말대로 하도록 하만을 서둘러 데려오너라.」 왕과 하만은 에스더가 마련한 잔치에 갔습니다.에스더 5:5 · 두루새김

앞에서는 에스더가 왕의 허락을 기다렸습니다. 이제는 왕이 에스더의 말이 이루어지도록 신하들에게 명령합니다.

그는 왕의 부름을 기다리는 사람에서 왕을 자신의 잔치로 초대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 책에서 잔치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자리가 아닙니다. 왕이 자신의 위엄을 드러내고, 사람들을 만나며,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에스더는 바로 그 공간을 자기 요청을 전할 자리로 삼습니다.

두 번이나 물은 왕과 두 번이나 기다리게 하는 왕후

에스더 5:6–8 본문 →

왕과 하만이 잔치에 참석합니다.

잔치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왕이 에스더에게 물었습니다.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네게 주겠다. 부탁할 일이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을 달라고 해도 들어주겠다.」에스더 5:6 · 두루새김

이번에는 「바라는 것」과 「부탁할 일」을 나란히 묻고, 주고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독자는 그의 부탁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의 질문을 들을 때 자연스럽게 에스더가 이제 유다인의 위기를 밝힐 것이라고 예상하게 됩니다.

에스더도 마침내 대답을 시작합니다.

에스더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바라고 부탁드리는 것은 이렇습니다.」에스더 5:7 · 두루새김

앞서 왕이 물었던 「바라는 것」과 「부탁할 일」을 에스더가 「제가 바라고 부탁드리는 것」이라고 받아서 말합니다. 이제 그 내용이 밝혀질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다음에 나오는 것은 유다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왕께서 저를 좋게 보신다면, 또 제 바람과 부탁을 들어주시는 일을 좋게 여기신다면, 제가 두 분을 위해 마련할 잔치에 하만과 함께 와 주십시오. 내일은 왕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에스더 5:8 · 두루새김

앞서 왕은 에스더가 바라는 것을 주고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에스더는 그 말을 다시 왕에게 돌려줍니다. 자신의 부탁을 말하기 전에 왕이 했던 약속을 떠올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결정적인 순간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하루 뒤로 미루어집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하루 동안 하만이 매우 중요한 일을 벌입니다.

에스더가 자신의 부탁을 밝히지 않은 채 남겨 둔 시간에,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일 준비를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에스더가 왕의 호의를 더욱 확실하게 얻고 싶었을 수 있습니다. 왕과 하만을 한자리에 모아 자신이 원하는 상황을 마련하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실제로 왕에게 말할 적절한 순간을 기다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어떤 이유 때문에 에스더가 하루를 더 기다리기로 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 번째 잔치를 치밀하게 계산된 정치적 전략의 완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에스더가 겁이 나서 결정을 미루었다고 말할 근거도 없습니다. 특히 「내일은 왕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라는 표현은 여전히 여지를 남깁니다. 히브리어 키드바르 함멜렉은 「왕의 말대로」라는 뜻입니다. 이는 왕이 거듭 물은 바람과 부탁에 내일 대답하겠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더 넓게는 왕의 뜻에 따르겠다는 표현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맥상 에스더가 내일 자신의 부탁을 밝히겠다는 기대를 만드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정확히 어디까지를 약속하는지는 원문이 자세하게 풀어 주지 않습니다.

왕후의 초대보다 더 중요해진 모르드개의 태도

에스더 5:9–10 본문 →

그날 하만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잔치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왕궁 문에 있는 모르드개가 자기 앞에서 일어나지도 떨지도 않는 것을 보자, 모르드개를 향한 분노로 가득 찼습니다.에스더 5:9 · 두루새김

그는 왕국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왕후가 마련한 특별한 잔치에 왕과 함께 초대받았습니다. 더욱이 내일 열릴 두 번째 잔치에도 다시 초대되었습니다.

3:2에서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도, 엎드려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5:9에서는 그가 하만 앞에서 「일어나지도 떨지도」 않는다고 표현합니다.

하만이 다가와도 모르드개는 움직이거나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이 모르드개가 마음속으로 전혀 두렵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서술자가 보여 주는 것은 겉으로 나타난 행동입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의 존재 앞에서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습니다.

바로 그 장면이 하만을 분노하게 합니다.

그가 가진 재산도, 높은 지위도, 왕후의 특별한 초대도 그 분노를 막지 못합니다. 문제는 자신이 원하는 한 가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하만은 화를 참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는 사람을 보내 친구들과 아내 세레스를 불러오게 했습니다.에스더 5:10 · 두루새김

이 행동만 보면 하만에게 자신을 다스리는 힘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장면을 읽으면 그 힘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분노 자체를 내려놓은 것이 아닙니다.

왕궁 문 앞에서 행동하지 않았을 뿐, 집으로 돌아가 모르드개를 죽일 방법을 마련합니다. 하만이 화를 참았다고 해서 분노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분노가 더 계획적인 행동으로 바뀔 시간을 제공합니다.

즉각적인 행동을 미루었다는 사실과 분노를 다스렸다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지점에서 잠언 16:32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분노를 더디 내는 사람이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성읍을 빼앗는 사람보다 낫다는 가르침입니다. 하만은 왕궁 문 앞에서 잠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합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마음을 바꾸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 같지 않은 사람

에스더 5:11–13 본문 →

하만은 집으로 돌아와 사람을 보냅니다.

그는 친구들과 아내 세레스를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자신이 누리는 부와 영예를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하만은 그들에게 자기 재산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야기했습니다. 또 왕이 자기를 높여 준 일들과, 다른 높은 관리들과 왕의 신하들보다 윗자리에 올려 준 일을 모두 말했습니다.에스더 5:11 · 두루새김

이 목록은 하만이 가지고 누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 줍니다. 재산과 자손, 정치적 지위는 모두 고대 사회에서 한 사람의 풍요로운 삶과 사회적 위치를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만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만이 말했습니다. 「게다가 에스더 왕후가 자기가 마련한 잔치에 왕과 함께 오라고 부른 사람은 나뿐이야. 내일도 왕과 함께 왕후의 잔치에 초대받았어.」에스더 5:12 · 두루새김

그의 말에는 특별히 「왕과 함께 오라고 부른 사람은 나뿐이야」라는 표현이 강조됩니다. 에스더는 자신이 어떤 부탁을 왕에게 전할지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만은 왕후가 자신을 특별히 인정한다고 생각하며 기뻐합니다.

하만은 에스더가 유다인이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가 없애려고 하는 민족에 왕후도 속해 있다는 사실 역시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왕후의 초대를 자기 영광의 증거로 받아들이는 하만의 태도에는 극적인 역설이 생깁니다.

그런데 하만의 자랑은 예상 밖의 결론에 이릅니다.

「하지만 유다인 모르드개가 왕궁 문에 앉아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아무 소용이 없어.」에스더 5:13 · 두루새김

그는 실제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많은 것을 가졌지만, 자신이 원하는 한 가지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진 것 전체를 아무 소용 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의 재산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그의 지위를 빼앗지도 않았습니다.

왕후의 초대를 방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존경과 두려움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하만은 자신의 모든 영광이 무너진 것처럼 느낍니다.

하만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높은 지위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높은 지위를 인정하고,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만은 이미 얻은 것을 기뻐하기보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한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의 기쁨은 모르드개의 행동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은 하만의 마음을 보여 주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 마음이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통해 어떻게 행동으로 바뀌는지 보여 줍니다.

아침에는 죽이고, 저녁에는 즐겁게 잔치에 가라는 조언

에스더 5:14 본문 →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가 하만에게 말했습니다. 「높이가 50큐빗인 나무 기둥을 만들게 해. 아침에 왕께 말해서 모르드개를 거기에 매달아 처형하게 해. 그러고 나서 왕과 함께 즐겁게 잔치에 가.」 하만은 그 말이 마음에 들어 나무 기둥을 만들게 했습니다.에스더 5:14 · 두루새김

여기서 하만의 아내와 친구들은 왕이 허락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 왕의 허락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먼저 처형에 사용할 구조물을 만들라고 권합니다.

하만은 모르드개 한 사람을 죽이려고 거대한 구조물을 세웁니다.

이미 그는 제국 전체의 유다인을 모두 없애라는 명령을 받아 냈습니다. 그 명령이 실행될 날도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만은 그날까지 기다리지 못합니다.

그는 유다인 전체를 없애려는 명령을 제국의 이익이라는 말로 포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집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여전히 모르드개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모르드개의 죽음은 하만이 잔치를 즐겁게 누리기 위한 준비가 됩니다.

그의 기쁨을 되찾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재산이나 영예를 더 깊이 누리는 방법을 찾지 않습니다.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을 없애서 만족을 얻으려 합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와 친구들은 그 판단을 막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제안한 해결책은 하만의 분노를 구체적인 살해 계획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해 주는 사람들만 곁에 있다면, 분노는 더욱 위험한 확신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좋게 여겨진다는 사실이 그 일이 실제로 선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왕은 에스더에게 호의를 베풉니다. 이것은 에스더가 살아남고 자기 민족을 위해 행동할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그러나 하만은 모르드개를 처형하라는 조언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그 판단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려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이 곧 그 사람의 행동이 옳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나무 기둥의 높이는 50큐빗입니다. 상당히 높은 구조물입니다. 본문은 왜 그렇게 높게 만들라고 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처형의 모습을 널리 보이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추측할 수 있지만, 그것을 본문에 밝혀진 동기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처형 방식 역시 자세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본문은 나무 기둥에 「매달아 처형하게 해」라고 말할 뿐, 목을 매다는 방식인지 몸을 찔러 매다는 방식인지까지 밝히지 않습니다. 이 장면을 사무엘상 25장에 등장하는 다윗과 아비가일의 이야기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다윗은 나발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여겨 분노하고, 그의 집안 사람들을 죽이려 합니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다윗을 만나 그가 직접 피를 흘리는 일을 막도록 설득합니다(사무엘상 25:23–35). 에스더 5장의 세레스와 친구들은 정반대의 역할을 합니다.

맺음말 — 금 지팡이는 이미 내밀어졌고, 나무 기둥은 이미 세워졌다

에스더 5:1–14 본문 →

금 지팡이와 나무 기둥은 모두 왕의 권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에스더는 왕이 금 지팡이를 내밀기를 기다렸습니다. 하만은 왕이 아직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나무 기둥부터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자신의 계획이 어떻게 끝날지 완전히 통제하지 못합니다.

에스더 5장에도 하나님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에스더가 하나님이 준비하신 정확한 때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를 기다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나무 기둥을 만든 것은 하만 자신의 악한 선택입니다. 두 사람의 행동은 각각 그들이 가진 의도와 책임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제 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에스더는 내일 다시 열릴 잔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만은 내일 아침 왕에게 모르드개를 죽이도록 요청할 생각입니다.

왕은 아직 에스더의 진짜 부탁을 모르고, 하만은 자신이 초대된 잔치의 의미를 모릅니다.

금 지팡이는 이미 내밀어졌습니다.

나무 기둥도 이미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내일 왕이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