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29장

이 장의 자리 · 25–40장 · 성막과 제사장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머무시기까지

출애굽기 29장은 제사장을 세우는 의식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면 제사장보다 훨씬 중요한 이야기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론과 그 아들들을 씻기고 옷을 입히며, 기름을 바르고 피를 뿌리고 제물을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모든 절차는 엄격하고 복잡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토록 세밀한 의식을 명령하시는 이유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밝혀집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와 부정함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 어떻게 머무실 수 있습니까?

29장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사의 언어로 풀어 갑니다.

이 장의 중심은 결국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방법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까이 오시기 위해 무엇을 마련하시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읽는 시간 15분소단락 929장 본문 읽기 →

제사장은 스스로 제사장이 되지 않는다

출애굽기 29:1–9 본문 →

의식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만남의 천막 입구로 나오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처음 하는 일은 제물을 바치는 것도, 기도를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손에 자신을 맡깁니다.

모세가 그들을 물로 씻기고, 옷을 입히고, 기름을 발라야 합니다. 본문은 이 모든 행동을 모세에게 명령합니다. 아론은 제사장으로 세워질 사람이지만, 아직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스스로 수행하지 않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준비되고 구별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의 자격은 그가 스스로 거룩함을 입증하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시고, 정해진 의식을 통해 제사장 일을 맡기시는 데서 나옵니다.

28장에서 자세하게 설명된 제사장의 옷도 같은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옷은 아론 자신의 영예를 과시하기 위한 개인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드러내는 옷입니다. 따라서 아론은 그 옷을 입는 순간 자신의 뜻대로 행동할 권한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으로 섬길 책임을 받습니다.

7절에서는 아론의 머리에 기름을 붓습니다. 이 기름부음은 그가 특별한 일을 위해 구별된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아들들 역시 의식 전체를 통해 거룩하게 구별되며, 21절에서는 그들과 그들의 옷에도 피와 기름을 뿌리게 됩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띠를 매어 주고, 아들들에게는 모자를 씌워라. 영원한 규정에 따라 제사장 일은 그들이 맡아야 한다. 이렇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제사장 일을 맡겨라.」출애굽기 29:9 · 두루새김

여기서 「제사장 일을 맡겨라」(⁨מָלֵ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은 글자 그대로 풀면 「손을 채우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손을 채우다」라는 관용어와 실제로 손에 예물을 올리는 장면이 서로 비추어 보입니다. 다만 이 관용어가 바로 그 동작에서 유래했다고까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옷을 입고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제사장 자신과 제단 사이에서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사람이 먼저 제물을 바친다

출애굽기 29:10–18 본문 →

하나님은 제사장 위임식을 위해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준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세 동물은 단순히 제물의 양을 늘리기 위해 등장하지 않습니다. 각각 다른 역할을 합니다.

먼저 수소는 정화 제물로 드려집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수소의 머리에 손을 얹고, 모세는 그 수소를 잡아 피 일부를 제단의 뿔에 바르고 나머지는 제단 밑동에 쏟습니다. 내장을 덮은 기름진 부분과 정해진 부분은 제단에서 태워 연기로 올리지만, 고기와 가죽과 배 속의 오물은 진을 친 곳 밖에서 불태웁니다.

제사장은 앞으로 백성을 위해 제물을 다룰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맡는다는 이유만으로 정화와 속죄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 행동 역시 중요합니다. 이 의식은 수소와 두 숫양 모두에서 반복됩니다(10, 15, 19절). 제물을 바치는 사람과 그 제물 사이의 관계를 분명하게 나타내는 행동입니다.

다만 이 행동을 세 경우 모두 죄를 제물에게 옮기는 행위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 의미를 그렇게 한정하지 않으며, 뒤이어 나오는 숫양들은 서로 다른 목적의 제물입니다.

수소 다음에는 첫째 숫양이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피를 제단 사방에 끼얹고, 숫양의 몸을 토막 낸 뒤 내장과 다리를 씻어 고기 토막들과 머리 위에 놓습니다.

「그 숫양 전체를 제단 위에서 태워 연기로 올려라. 이것은 나 여호와야훼에게 바치는 번제이며, 나를 기쁘게 하는 향기다. 나 여호와야훼에게 불로 바치는 제물이다.」출애굽기 29:18 · 두루새김

수소의 제사에서는 일부만 제단에 올리고 나머지는 진을 친 곳 밖에서 불태웠지만, 번제에서는 숫양 전체가 제단 위에서 태워집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향기」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제물을 기쁘게 받으신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제사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둘째 숫양에 이르면 의식의 초점이 제단에서 제사장들의 몸으로 옮겨 갑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의 히브리서 9:11–14은 이러한 제사장과 제물의 언어를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에 연결하여 발전시킵니다. 이는 출애굽기 29장의 직접적인 예언이라기보다,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를 바탕으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설명하는 성경 안의 연결입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29장 자체가 강조하는 것은 먼저 여호와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그들 가운데 머무시겠다는 뜻입니다.

귀와 손과 발에 피를 바르는 까닭

출애굽기 29:19–25 본문 →

둘째 숫양의 피는 앞선 두 제물과 다른 방식으로 사용됩니다.

「너는 그 숫양을 잡아라. 그 피 일부를 가져다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손가락과 오른발 엄지발가락에 발라라. 그 피를 제단의 사방에 끼얹어라.」출애굽기 29:20 · 두루새김

제사장과 제단은 서로 무관하게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위임식 숫양의 피가 제단과 제사장들에게 쓰입니다. 제사장들이 수행할 일과 그 일이 이루어질 장소가 하나의 의식 안에서 연결됩니다.

제단 위의 피 일부와 기름부음에 쓸 기름을 아론과 그의 옷, 아들들과 그들의 옷에 뿌리게 됩니다. 앞에서는 사람을 씻기고 옷을 입혔습니다. 이제는 그 사람과 옷을 함께 거룩하게 구별합니다.

모세는 숫양의 기름진 부분과 오른쪽 다리, 그리고 누룩 없는 빵들을 가져다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손바닥 위에 놓습니다. 그들이 손에 받은 예물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흔들어 바쳐지고, 다시 모세의 손으로 옮겨져 제단 위에서 태워 연기로 올려집니다.

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거룩한 것을 자기 소유로 확보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의 손은 하나님께 바칠 것을 맡아 다루는 손입니다.

의식은 제사장이 무엇을 소유하는지보다 그가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를 몸의 움직임으로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이 세 부위를 선택한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능력, 손은 제사를 수행하는 행동, 발은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삶을 상징한다고 하나하나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징적 읽기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귀와 손과 발은 사람이 듣고, 행동하고, 움직이는 삶의 중요한 부위입니다. 제사장의 몸에 피를 바르는 행동은 그 사람이 맡은 일이 특정한 종교 행위에만 한정되지 않고 삶 전체와 관계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제물을 바칠 뿐 아니라 그것을 먹는다

출애굽기 29:26–34 본문 →

위임식의 다음 장면에서 뜻밖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지금까지 제물은 제단 위에서 태워지거나 진을 친 곳 밖에서 처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물의 일부가 사람의 몫으로 주어지고, 나머지 가운데 정해진 고기는 제사장들이 먹어야 합니다.

26절에서 아론을 위한 위임식 숫양의 가슴 부위는 모세의 몫이 됩니다. 이는 위임식을 진행하는 모세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몫입니다. 곧이어 27–28절은 제사장 일을 맡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계속 돌아갈 몫을 규정합니다.

특히 28절은 이 몫이 이스라엘 자손의 친교 제물에서 나오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 규정은 제사장 일이 공동체 전체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제사장은 백성과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종교적 인물이 아닙니다.

22–25절에서 위임식 숫양의 오른쪽 다리가 태워지는 것과 27–28절에서 다리가 제사장 몫으로 규정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앞부분은 위임식 자체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절차이고, 뒷부분은 이후 이스라엘의 제사에서 계속될 몫을 정하는 규정입니다.

「그 고기와 빵은 그들이 제사장 일을 맡고 거룩하게 구별되도록 속죄에 쓰인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먹어야 한다. 그러나 거룩한 음식이니 제사장이 아닌 사람은 먹어서는 안 된다.」출애굽기 29:33 · 두루새김

우리는 거룩한 예배를 생각할 때 흔히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바치는 장면에 주목합니다. 그러나 이 위임식에서는 하나님께 드린 제물의 정해진 부분을 제사장이 받아먹는 일도 중요합니다.

제사장들은 거룩한 것을 다루는 사람일 뿐 아니라 거룩한 제물에 참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식사는 단순히 허기를 해결하기 위한 식사가 아닙니다. 먹을 수 있는 사람과 장소가 제한되고, 다음 날 아침까지 남은 것은 불태워야 합니다.

여기서 「제사장이 아닌 사람」을 배제하는 기준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인지 외국인인지가 아니라, 이 제물에 참여하도록 구별된 일을 맡았는지가 문제입니다.

이 장에서 거룩함은 막연하게 좋은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된 것이므로 아무나, 아무 곳에서나, 아무 방식으로나 다룰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렇기에 제사장의 식사는 특권이면서 동시에 엄격한 책임 아래 놓인 행위입니다.

아론의 거룩한 옷은 그를 이어 제사장이 되는 아들에게 전해집니다. 뒤를 이을 사람은 그 옷을 입고 기름부음을 받고 제사장 일을 맡으며, 7일 동안 그 옷을 입어야 합니다. 제사장 일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론 개인의 능력이나 생명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 안에서 다음 사람에게 이어집니다.

나중에 레위기 8장은 이 위임식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일을 기록하고, 레위기 9장은 그 이후 제사장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출애굽기 29장은 그보다 먼저, 이러한 일이 어떤 명령에 근거하는지를 밝혀 놓은 본문입니다.

왜 제단까지 속죄해야 하는가?

출애굽기 29:35–37 본문 →

35절에서는 위임식을 7일 동안 치르라고 명령합니다. 이어지는 두 절은 제사장만큼이나 제단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일에 집중합니다.

「속죄를 위해 날마다 수소를 정화 제물로 바쳐라. 제단을 위해 속죄하여 깨끗하게 하고, 제단에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구별하여라.」출애굽기 29:36 · 두루새김

제단은 사람도 아니고 죄를 짓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제단에 속죄가 필요할까요?

출애굽기 29장의 정화 의식은 죄를 저지른 개인에게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이루어질 공간과 기구 역시 깨끗하게 되고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일상적인 인간 세계에 속한 장소가 거룩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장소로 구별되기 위해 정화 의식을 거치는 것입니다.

거룩한 제단이 있다고 해서 아무나 그 위에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구별된 제사장이 있다고 해서 아무 제단에서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사를 진행하는 사람과 제사가 이루어지는 장소 모두 하나님께 속하도록 구별되어야 합니다.

「7일 동안 제단을 위해 속죄하고 거룩하게 구별하여라. 그러면 제단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 될 것이다. 제단에 닿는 것은 모두 거룩해질 것이다.」출애굽기 29:37 · 두루새김

「거룩해질 것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크다쉬(⁨קָדַשׁ⁩)는 접촉의 결과를 말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고, 접촉하는 것에 요구되는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 읽기에서는 제단이 지닌 거룩함이 닿는 대상에도 미친다는 뜻이 됩니다. 두 번째 읽기에서는 제단이 지극히 거룩하기 때문에 그곳에 닿는 것도 거룩해야 한다는 요구가 됩니다.

두 읽기는 거룩함이 접촉을 통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관해 다른 설명을 제시하므로 하나로 합쳐서는 안 됩니다. 다만 어느 쪽으로 읽든, 본문은 제단을 평범한 물건처럼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7일 동안 제사장과 제단을 구별하는 의식이 끝나면, 이제 한 차례의 위임식이 아니라 계속 반복되어야 할 예배가 등장합니다.

특별한 의식이 끝난 뒤에도 남는 것

출애굽기 29:38–41 본문 →

38절에서 본문의 시간 감각이 바뀝니다.

앞부분이 제사장을 세우는 특별한 기간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매일 반복되는 삶으로 시선이 옮겨 갑니다.

「제단 위에는 이것을 바쳐라. 일 년 된 어린 숫양 두 마리를 날마다 거르지 않고 바쳐라.」출애굽기 29:38 · 두루새김

한 마리는 아침에, 다른 한 마리는 「해 질 무렵」에 바칩니다. 원문에서는 후자의 시간을 「두 저녁 사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은 저녁 무렵을 가리키지만, 정확히 어느 시각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또한 각 어린 숫양에 곡식과 기름, 포도주가 함께 바쳐집니다.

제사장을 세우는 의식은 7일 동안 이루어지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는 이스라엘의 세대가 이어지는 동안 매일 반복되어야 합니다. 제사장 위임식은 특별한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제사장 일의 목적은 그 장엄한 출발 순간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도록 섬기는 데 있습니다.

매일 드리는 번제는 아침과 저녁이라는 일상의 시간 속에 자리합니다.

민수기 28:3–8도 이 아침과 저녁의 제사를 다시 규정합니다. 출애굽기에서 처음 주어진 이 예배의 질서가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의무로 남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사의 목적은 만남이다

출애굽기 29:42–44 본문 →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만남의 천막 입구, 나 여호와야훼 앞에서 거르지 않고 바쳐야 할 번제다. 나는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거기서 네게 말하겠다.」출애굽기 29:42 · 두루새김

지금까지 하나님은 무엇을 가져오고, 어디에 피를 바르고, 무엇을 불태우며, 누가 먹어야 하는지를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이 직접 무엇을 하실 것인지 말씀하십니다.

「너희와 만나고」에서 상대는 여러 사람입니다. 반면 「네게 말하겠다」에서 말씀을 듣는 상대는 한 사람입니다. 이 구분을 그대로 읽으면, 만남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하고 말씀은 모세에게 주어집니다.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과 만나겠다. 그곳은 내 영광으로 거룩해질 것이다.」출애굽기 29:43 · 두루새김

앞에서는 사람이 제단을 깨끗하게 하고 기름을 바르며, 제사장들을 씻기고 거룩하게 구별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으로 그곳이 거룩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만남의 천막과 제단을 거룩하게 구별하겠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를 위해 제사장 일을 하게 하겠다.」출애굽기 29:44 · 두루새김

하나님이 명령하셨으므로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의식입니다. 그러나 그 의식은 하나님과 무관하게 스스로 효력을 만들어 내는 독립적인 힘이 아닙니다.

제사장과 제단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43절의 원문은 「거룩해질 것이다」라는 동사의 주어를 밝히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그곳은」으로 풀어 옮겼습니다. 문맥의 장소나 만남의 천막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어느 대상을 정확히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출애굽의 목적이 밝혀지다

출애굽기 29:45–46 본문 →

「나는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머물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출애굽기 29:45 · 두루새김

이 짧은 문장이 성막과 제사장에 관한 긴 명령의 목적을 밝혀 줍니다.

출애굽기 25:8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성소를 만들게 하시면서 자신이 그들 가운데 머무시겠다는 뜻을 밝히셨습니다. 29장 마지막은 그 약속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하나님이 머무시는 장소로 성막이 마련되지만, 그분이 관계를 맺으시려는 대상은 건물 자체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것은 그들 가운데 머물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다.」출애굽기 29:46 · 두루새김

출애굽기 6:7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성막의 제사장 위임 명령이 끝나는 자리에서 그 약속의 목적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이집트의 지배 아래에서 이스라엘은 파라오를 위해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이끌어 내시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 가운데 머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파라오에게 속한 노동력으로만 여겨지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출애굽기 19:6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제사장들의 나라와 거룩한 민족으로 부르신 일도 이 흐름과 연결됩니다. 29장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맡는 제사장 일은 그 백성 전체가 하나님께 속한 공동체로 살아가는 질서 안에 자리합니다.

거룩함은 거리를 만들면서도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출애굽기 29:1–46 본문 →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 마련됩니다. 그 관계의 출발점에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낸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과 함께 머무시겠다고 약속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읽으면 이 장의 마지막 풍경은 처음과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처음에는 만남의 천막 입구에 몇 사람이 서 있습니다. 그들은 씻김을 받고 옷을 입으며, 제물의 피를 몸에 바르고, 손에 올려진 예물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7일 동안 제단이 거룩하게 구별되고, 마침내 매일 아침과 저녁에 번제가 드려질 준비가 갖추어집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제사장들의 모습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섬기도록 마련된 그곳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만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29장은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서도록 준비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머무시겠다는 약속으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