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33장

이 장의 자리 · 25–40장 · 성막과 제사장

약속의 땅보다 더 중요한 것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 앞에 천사를 보내시고, 그 땅의 주민들을 몰아내시겠다고도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합니다.

왜 그럴까요?

약속의 땅은 주시지만, 하나님 자신은 그들 가운데 함께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33장은 바로 이 차이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는 것과 하나님 자신이 함께하시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금송아지 사건 이후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심각한 위기가 남았습니다. 이제 문제는 단순히 백성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느냐가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를 지은 그들과 계속 함께하실 수 있느냐입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833장 본문 읽기 →

땅은 주시지만 함께 가지는 않겠다

출애굽기 33:1–3 본문 →

하나님은 모세에게 시나이산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와 네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백성은 이곳을 떠나 올라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네 자손에게 주겠다.』라고 맹세한 땅으로 가라.」출애굽기 33:1 · 두루새김

금송아지 사건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모세의 백성이라고 부르셨습니다(32:7). 모세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다시 말씀드렸습니다(32:11). 이제 33장이 시작되었지만, 하나님은 다시 「네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하나님이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이미 완전히 없애셨다는 선언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같은 문장에서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금송아지 사건으로 손상된 관계가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긴장을 유지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라. 그러나 나는 너희 가운데서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 너희는 고집이 센 백성이므로, 내가 길에서 너희를 없애 버릴까 해서다.」출애굽기 33:3 · 두루새김

우리는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면 언제나 좋은 일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를 고집하는 백성 가운데 계시는 일이 그들에게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거리는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무거운 선언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당장 멸망하지 않게 하는 조치이기도 합니다.

출애굽기 19:12–13에서 하나님은 백성이 산에 함부로 다가가지 못하도록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만나는 일에는 분명한 제한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 더 깊습니다.

시나이산에서는 하나님이 가까이 계셨기 때문에 다가갈 수 있는 경계가 필요했습니다. 이제는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시는 일 자체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성막을 만들라는 명령의 목적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머무시는 것이었습니다(29:45–46). 그런데 바로 그 목적이 금송아지 사건으로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지 시험받는 자리에 놓입니다.

장신구를 벗은 백성

출애굽기 33:4–6 본문 →

백성은 이 나쁜 소식을 듣고 슬퍼했습니다. 아무도 몸을 꾸미는 장신구를 달지 않았습니다.출애굽기 33:4 · 두루새김

여기서 「나쁜 소식」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에 관한 소식 전체를 뜻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반응을 보면,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함께 올라가지 않으시겠다는 선언이 백성에게 심각한 소식으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고대의 장신구는 몸을 꾸미고 재산과 지위를 드러내는 데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장신구를 떼어 내는 행동은 슬픔과 애도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금송아지 사건에서는 백성이 금을 모아 신의 형상을 만들고 축제를 열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장신구를 떼어 내며 슬퍼합니다.

이스라엘은 적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는 일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완전한 회개가 이루어졌다는 확실한 증거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슬퍼하고 장신구를 떼어 냈다고 기록하지만, 모든 사람이 마음을 돌이켜 온전히 순종하게 되었다고 선언하지는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는 고집이 센 백성이다. 내가 한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서 함께 올라가면 너희를 없애 버릴 것이다. 이제 몸에 단 장신구를 떼어 내어라.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지 결정하겠다.』」출애굽기 33:5 · 두루새김

하나님은 그들을 즉시 없애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6절은 이스라엘이 「호렙산에서부터 장신구를 떼어 낸 채 지냈습니다」라고 기록합니다. 원문의 표현은 그 장소에서 떼어 냈다는 뜻으로도, 그때부터 계속 떼어 낸 채 지냈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흔들린 백성의 상태를 장신구 없는 모습으로 보여 줍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야기는 진영에서 멀리 떨어진 한 천막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진영 밖으로 나가야 한다

출애굽기 33:7–10 본문 →

7절부터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백성이 반응하는 사건들이 순서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모세가 평소에 어떻게 천막을 치고, 백성이 어떻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는지를 설명합니다.

모세는 천막을 가져다가 진영 밖, 진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치곤 했습니다. 그는 그 천막을 만남의 천막이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야훼를 찾는 사람은 누구나 진영 밖에 있는 만남의 천막으로 나갔습니다.출애굽기 33:7 · 두루새김

「치곤 했습니다」라는 표현은 반복적인 행동을 나타냅니다. 이어지는 8절의 「나갈 때마다」도 그런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 천막은 앞에서 제작 명령을 받은 성막과 그대로 같은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출애굽기 이야기의 순서에서 성막은 아직 제작되지 않았고, 실제로 세워지는 장면은 40장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겠다는 약속이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는 진영 한가운데가 아니라 진영 밖에 있습니다. 이 공간의 거리는 금송아지 사건 이후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남아 있는 관계의 긴장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야훼를 찾는 사람은 누구나」 그 천막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길이 닫힌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분을 만나려는 사람이 진영 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저마다 자기 천막 입구에서 바라보는 사람들

모세가 천막으로 나가면 온 백성이 일어나 자기 천막 입구에 섭니다. 그들은 모세가 만남의 천막에 들어갈 때까지 그가 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구름 기둥이 내려와 천막 입구에 서고, 하나님이 모세와 말씀하십니다. 백성은 그 구름 기둥을 보고 다시 자기 천막 입구에서 엎드려 절합니다.

이 장면에는 두 종류의 천막 입구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천막의 입구입니다. 다른 하나는 백성이 서 있는 각자의 천막 입구입니다.

백성은 하나님이 모세와 말씀하시는 모습을 구름 기둥을 통해 확인하지만, 그들이 모두 모세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 자리에서 바라보고 절합니다.

금송아지 사건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형상 앞에서 절했습니다. 이제는 구름 기둥이 만남의 천막에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엎드려 절합니다.

이 천막 장면이 중요한 까닭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위기에 놓인 가운데서도 모세와 하나님 사이의 대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1절은 그 대화가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설명합니다.

조금 더 깊이

또한 이 장의 만남의 천막이 진영 밖에 있었다는 사실은 출애굽기 40:34–38에서 성막이 완성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을 채우는 장면과 연결해 읽을 수 있습니다. 성막이 완성된 뒤에도 하나님의 거룩함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며, 모세 자신도 영광이 성막을 채웠을 때 곧바로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40:35).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머무신다는 약속은 그분의 거룩함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얼굴을 마주하고 말하면서도 얼굴을 볼 수는 없다

출애굽기 33:11 본문 →

11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20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얼굴을 볼 수 없다. 사람은 나를 보고도 살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장 안에서 서로 모순되는 말씀이 나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하셨다면,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이 아닐까요?

여호와야훼께서는 사람이 자기 친구와 이야기하듯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모세는 진영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돕던 젊은이 여호수아는 천막 안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는 눈이라는 사람의 아들이었습니다.출애굽기 33:11 · 두루새김

히브리어 파님 엘 파님(⁨פָּנִים⁩)은 글자 그대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사람이 자기 친구와 이야기하듯」이라는 비교 표현도 함께 나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의 관심은 하나님이 어떤 겉모습을 지니셨는지 묘사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모세가 얼마나 직접적이고 가까운 관계에서 대화하셨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구름 기둥이 보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과 직접 말씀을 나눕니다. 민수기 12:6–8에서도 하나님은 모세를 다른 예언자들과 구별하시면서, 그와는 수수께끼 같은 방식이 아니라 분명하게 말씀하신다고 설명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에 있지만, 그분의 영광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모두 볼 수는 없습니다. 친밀한 관계가 하나님의 거룩함과 인간을 넘어서는 크심을 없애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모세는 그 가까움을 자기 혼자 누리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와 함께 가시도록 간청합니다.

모세는 길을 묻지만, 실제로 원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다

출애굽기 33:12–17 본문 →

12절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여호와야훼께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제게 『이 백성을 이끌고 올라가라.』라고 하시면서, 누구를 저와 함께 보내실지는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너를 잘 알고 있으며, 너를 좋게 여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애굽기 33:12 · 두루새김

하나님은 이미 2절에서 천사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왜 누구를 보내실지 알려 주지 않으셨다고 말할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시겠다고 하셨지만 그 천사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시지 않았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또는 모세가 단순히 어떤 천사가 함께하는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함께하실 것인지를 확인하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뒤이어지는 대화에서는 두 번째 문제가 특히 중요해집니다.

「주님께서 저를 좋게 여기신다면, 제가 주님을 알고 주님께서 저를 계속 좋게 여기시도록, 부디 주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제게 알려 주십시오. 또 이 민족이 주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생각해 주십시오.」출애굽기 33:13 · 두루새김

여기서 「주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원문에서는 이 자리를 「당신의 길들」(⁨דֶּרֶךְ⁩)이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까지 가는 지리적인 경로를 알려 달라고만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아는 것이 하나님 자신을 아는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실지만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일하시는 분인지를 알고자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자신에게만 주어진 특권으로 남겨 두지 않습니다.

그 관계를 근거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해 간청합니다.

「내가 직접 가겠다」

여호와야훼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직접 가겠다. 내가 너를 쉬게 하겠다.」출애굽기 33:14 · 두루새김

이를 이스라엘 전체가 제외되었다는 뜻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모세는 곧바로 그 약속을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넓혀 묻습니다.

모세가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가지 않으신다면, 저희를 이곳에서 이끌어 올라가지 마십시오.」출애굽기 33:15 · 두루새김

모세를 개인적으로 좋게 여기신다는 말씀이 공동체 전체를 위한 간청의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별하는 것은 무엇인가

「주님께서 저와 주님의 백성을 좋게 여기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시는 것으로 알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저와 주님의 백성이 땅 위의 모든 백성과 구별될 것입니다.」출애굽기 33:16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백성입니다. 그러나 출애굽의 목적은 단지 그들이 새로운 땅을 차지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 가운데 머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모세는 바로 그 약속의 핵심을 붙듭니다.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는 약속의 땅은 모세가 바라는 여정의 완성이 아닙니다.

모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에 도착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 없이 그 땅에 들어가는 것을 거절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말한 이 일도 내가 하겠다. 내가 너를 좋게 여기고, 너를 잘 알기 때문이다.」출애굽기 33:17 · 두루새김

하나님이 모세를 좋게 여기시고 잘 알고 계신다는 사실이 이 응답의 근거로 다시 등장합니다. 원문에서는 모세를 이름으로 아신다고 표현하며, 두루새김은 이를 「너를 잘 알기 때문이다」(⁨שֵׁם⁩)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이제 더욱 놀라운 것을 요청합니다.

조금 더 깊이

「내가 직접 가겠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내 얼굴이 갈 것이다」라는 표현입니다. 14절에서는 하나님의 얼굴이 간다는 표현이 그분 자신의 함께하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쉬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원문의 「너를」은 단수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제게 보여 주십시오」

출애굽기 33:18–19 본문 →

모세가 말했습니다. 「부디 주님의 영광을 제게 보여 주십시오.」출애굽기 33:18 · 두루새김

모세는 방금 하나님이 함께 가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제 백성의 여정을 이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청할까요?

본문은 모세의 마음속 동기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선 대화와 연결하면 그 요청의 방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자기 백성의 미래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그분을 더욱 깊이 알고자 하는 간청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4:16–17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시나이산에 머물렀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것을 맹렬한 불처럼 보았다고 기록합니다. 모세는 이미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놀랍게 나타나시는 일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예상과 다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나의 모든 선함을 네 앞에 지나가게 하고, 네 앞에서 여호와야훼라는 내 이름을 알리겠다. 나는 내가 은혜를 베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내가 가엾이 여길 사람을 가엾이 여기겠다.」출애굽기 33:19 · 두루새김

하나님의 영광은 압도적인 광채나 장엄한 모습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시는지와도 깊이 관계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고, 그 죄로 멸망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간청에 응답하셨고, 이제 백성과 함께 가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면서 은혜를 베푸시고 가엾이 여기시는 일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은혜를 베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이 표현은 「은혜를 베풀」(⁨חָנַן⁩)과 「은혜를 베풀고」, 「가엾이 여길」(⁨רָחַם⁩)과 「가엾이 여기겠다」처럼 같은 동사를 반복하면서, 은혜를 베푸시고 가엾이 여기시는 일이 하나님 자신의 결정에 속해 있음을 강조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은혜를 간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간청에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 권리처럼 요구하거나, 하나님이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시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은혜는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빼앗아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문장을 하나님이 이유 없이 마음대로 어떤 사람은 사랑하시고 어떤 사람은 버리신다는 선언으로만 읽는 것도 지나치게 좁은 해석입니다. 본문은 바로 앞에서 하나님이 모세의 간청에 응답하셨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또한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을 계속 이끄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자유롭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과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것을 서로 반대되는 성품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원하는 신의 형상을 만들어 눈앞에 세웠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만나는 하나님은 인간이 원하는 방식으로 모습을 만들거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시며, 자신의 뜻에 따라 은혜를 베푸시고 가엾이 여기십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절에서 모세에게 한 가지 분명한 경계를 정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문맥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가엾이 여기시는 일을 말씀하시는 내용과 연결되므로, 하나님의 성품과 베푸시는 선함을 강조하는 읽기가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그 선함이 모세 앞을 지나간다고 표현된다는 점에서 눈에 보이게 나타나시는 측면을 완전히 제외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장의 끝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과 선함을 알리시겠다고 하신 약속은 곧이어 출애굽기 34:5–7에서 구체적으로 펼쳐집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시고, 자비와 은혜, 오래 참으심과 신실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죄를 무조건 벌하지 않으시는 분은 아니라는 사실도 함께 밝히십니다.

볼 수 없는 얼굴과 볼 수 있도록 허락된 뒷모습

출애굽기 33:20–23 본문 →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 얼굴을 볼 수 없다. 사람은 나를 보고도 살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출애굽기 33:20 · 두루새김

앞서 모세는 하나님과 친구처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잘 알고 계시며 좋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사실이 모세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제한 없이 볼 권리를 주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모세가 자신의 영광을 볼 수 있는 방식을 직접 마련하십니다.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 곁에 자리가 있으니, 너는 그 바위 위에 서라.」출애굽기 33:21 · 두루새김
「내 영광이 지나갈 때 내가 너를 바위틈에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내 손바닥으로 너를 덮어 주겠다.」출애굽기 33:22 · 두루새김

하나님은 모세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보여 주시는 대신, 그가 살아 있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함께 올라가지 않으시는 방식으로 백성이 당장 멸망하는 일을 막으려 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모세를 바위틈에 넣으시고 덮어 주시는 방식으로 그가 영광이 나타나는 가운데서도 살아남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한계를 정하시면서도, 그 한계 안에서 자신을 알 수 있는 길을 직접 마련하십니다.

하나님의 뒷모습은 무엇인가

「내가 손바닥을 거두면 너는 내 뒷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얼굴은 보지 못할 것이다.」출애굽기 33:23 · 두루새김

확실한 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 뜻대로 전부 볼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만큼은 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하나님의 행동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몸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히브리어 아호라이(⁨אָחוֹר⁩)는 「나의 뒤」, 「나의 뒷부분」을 뜻합니다. 얼굴은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이 지나가신 뒤에 허락되는 모습은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영광 중 일부만을 본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고,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신 결과나 지나가신 흔적을 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눈에 보이는 모습이 나타나는지, 하나님의 「뒷모습」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약속의 땅보다 하나님 자신을 구하는 사람

출애굽기 33:1–23 본문 →

그는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이 안전하게 진행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가시기를 원했습니다. 모세는 그 특별한 관계를 이스라엘을 위해 사용했고, 하나님은 그의 간청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그분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권한이 아닙니다.

그분을 더 깊이 알도록 초대받는 관계입니다.

모세에게 주어진 경계는 그가 하나님께 사랑받지 못한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가 살아 있을 수 있도록 보호하시는 방법까지 직접 마련하십니다.

출애굽기 33장은 그 장면을 약속하며 끝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붙잡을 수 없지만, 하나님이 마련하신 자리에서 그 영광을 맞이할 수는 있습니다.

그 자리에는 모세가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낸 길이 없습니다. 바위 위에 설 자리를 정하시는 분도, 바위틈에 그를 넣으시는 분도, 손바닥으로 덮어 주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조차, 그 만남이 가능하도록 하나님이 마련하신 보호 안에 서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겠다고 나아가는 대신, 하나님이 그를 어디에 세우시고 어떻게 보호하실 것인지 말씀하시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