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39장
이 장의 자리 · 37–50장 · 요셉과 이집트
모든 것을 잃어도 함께하시는 하나님
요셉은 주인의 집에서 성공합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출발했지만 주인의 신임을 얻어 집안의 모든 일을 맡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장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순간,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주인의 아내가 요구하는 일을 거절한 대가로 그는 감옥에 갇힙니다.
이 이야기를 단순히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결국 성공한다는 교훈으로 읽으면 중요한 문제가 남습니다. 요셉은 여호와야훼께서 함께하셔서 성공했지만, 정직했기 때문에 감옥에 갔습니다. 그렇다면 이 장에서 말하는 성공은 무엇입니까?
본문은 두 장면에 거의 똑같은 설명을 붙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요셉과 함께하셨습니다.」 요셉의 처지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요셉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설명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팔려 온 사람에게 맡겨진 모든 것
이야기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39장은 요셉이 이집트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요셉은 이집트로 끌려 내려갔습니다. 파라오의 관리이자 경호대장인 이집트 사람 보디발이, 요셉을 그곳으로 데려온 이스마엘 사람들에게서 그를 샀습니다.창세기 39:1 · 두루새김
창세기 37장에서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팔려 갔습니다. 이제 그는 낯선 나라에서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앞날을 결정하는 사람은 요셉 자신이 아니라 그를 사고파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이야기의 중심이 바뀝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요셉과 함께하셨습니다. 요셉은 하는 일이 잘되었고, 이집트 사람인 주인의 집에서 지냈습니다.창세기 39:2 · 두루새김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 온 과정에서 여호와야훼께서 어떻게 개입하셨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형들이 저지른 악행도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인간이 요셉의 처지를 결정했다고 해서 그의 삶에 관한 모든 것이 인간의 손에 달린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요셉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장면은 없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특별한 약속을 받았다는 설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은 이야기하는 사람이 독자에게 알려줍니다.
독자는 요셉이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모두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요셉에게 닥친 사건을 해석할 때 인간의 행동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듣습니다.
이집트 사람의 집까지 미친 복
요셉은 주인의 신임을 얻어 집안 전체를 관리하게 됩니다.
주인이 집안과 가진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긴 때부터, 여호와야훼께서는 요셉 때문에 그 이집트 사람의 집안에 복을 주셨습니다. 집과 들에 있는 그의 모든 것에 여호와야훼의 복이 미쳤습니다.창세기 39:5 · 두루새김
요셉은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가족에게서 태어났지만, 보디발은 이집트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의 복은 이 이집트 사람의 집과 들에까지 미칩니다.
창세기 12:2–3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고 그를 통해 땅의 여러 가족이 복을 받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그 약속의 후손이 노예가 되어 이집트 사람의 집에 들어왔는데, 바로 그를 통해 다른 민족의 집안이 복을 받습니다.
비슷한 일이 앞서 야곱에게도 있었습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신 것이 야곱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창세기 30:27).
하나님의 복은 약속을 받은 사람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낯선 세계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요셉의 경우에는 특별한 역설이 있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이 가져다주는 복을 누리지만, 요셉은 여전히 보디발의 노예입니다.
요셉은 큰 권한을 얻었지만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은 갖지 못했습니다. 이 차이가 곧 이어질 사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맡기다
3–6절에는 특별히 반복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주인은 요셉을 좋게 보았고, 요셉은 주인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주인은 요셉에게 자기 집안을 관리하게 하고, 가진 모든 것도 맡겼습니다.창세기 39:4 · 두루새김
두루새김은 주인이 가진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겼습니다」라고 옮깁니다. 원문에서는 이 대목에 「그의 손에」(יָד)라는 표현이 되풀이됩니다. 여기서 손은 물건을 실제로 쥐는 몸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관리하고 책임지는 권한을 나타냅니다.
요셉을 사들인 사람들은 그를 물건처럼 취급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집에서는 많은 것이 오히려 요셉의 손에 맡겨집니다.
이 손의 이미지는 뒤에 뜻밖의 방식으로 돌아옵니다.
요셉이 주인의 아내를 피해 도망할 때에는 그의 옷이 「그 여자의 손에」 남습니다(39:12). 모든 것을 관리하던 요셉의 손에서 이번에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수도 있었던 물건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감옥에서는 다시 모든 죄수가 요셉에게 맡겨집니다(39:22). 원문에서는 이 대목에도 「요셉의 손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조금 더 깊이
야곱이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던 길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창세기 28:15 참조) 야곱에게 주어졌던 이 약속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특정한 땅이나 익숙한 환경에만 묶여 있지 않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집트가 여호와야훼의 다스림에서 벗어난 곳이 아니며, 요셉이 노예가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도 아닙니다.
허락된 모든 것과 허락되지 않은 하나
요셉의 아름다움이 가져온 위험
6절 마지막에는 앞의 내용과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설명이 나옵니다.
주인은 가진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기고, 자기가 먹는 음식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몸매도 아름답고 얼굴도 잘생겼습니다.창세기 39:6 · 두루새김
원문에서 이 표현은 창세기 29:17에서 요셉의 어머니 라헬을 묘사할 때 사용된 표현과 거의 같습니다. 라헬의 아름다움이 야곱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듯이, 요셉의 아름다움도 이제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는 요소가 됩니다.
그러나 두 이야기의 상황은 다릅니다.
요셉의 아름다움은 그에게 사랑과 결혼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사람의 부당한 요구에 노출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런 일들이 있은 뒤,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길을 주며 말했습니다. 「나와 잠자리를 같이해라.」창세기 39:7 · 두루새김
여자는 주인의 아내이고 요셉은 그 집의 노예입니다. 그녀의 말은 상대의 마음을 묻는 질문이 아니라 명령의 형태입니다.
요셉은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가
요셉은 거절하며 주인의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주인님은 제가 있으니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으시고, 가진 모든 것을 제게 맡기셨습니다.」창세기 39:8 · 두루새김
요셉은 곧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먼저 주인이 자신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설명합니다. 요셉에게 주인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은 단순히 금지된 행동을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겨 준 사람의 신뢰를 배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집에서는 주인님도 저보다 더 큰 권한을 갖고 계시지 않습니다. 주인님이 제게 허락하지 않으신 것은 부인뿐입니다. 부인은 그분의 아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이렇게 큰 악을 저질러 하나님께 죄를 짓겠습니까?」창세기 39:9 · 두루새김
그러나 맡겨진 권한에는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가 있습니다.
주인의 아내는 요셉에게 맡겨진 소유물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그녀는 이미 주인과 부부 관계에 있으며, 요셉에게 맡겨진 권한은 그 관계를 침범할 권리까지 포함하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맡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맡겨진 것이 많을수록 지켜야 할 신뢰의 무게도 커집니다.
그러나 요셉은 인간 사이의 신뢰만 말하고 끝내지 않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잘못하는 것을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과 분리하지 않습니다. 주인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도 악한 일입니다.
여기에는 요셉의 형들이 보여 준 행동과 대조되는 점이 있습니다. 창세기 37장에서 형들은 요셉을 팔아넘기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들은 가족에게 맡겨진 관계와 신뢰를 깨뜨렸습니다.
이제 가족에게 배신당했던 요셉이 자신을 신뢰한 사람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주인의 신뢰가 거절의 중요한 이유이지만, 최종적으로 그의 행동을 판단하는 기준은 하나님입니다.
하루가 아니라 날마다
주인의 아내가 날마다 요셉에게 요구했지만, 요셉은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 곁에 눕지도,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창세기 39:10 · 두루새김
여자의 요구는 한 번의 충동적인 제안이 아닙니다. 본문은 「날마다」라는 시간을 강조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거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가까워지는 것까지 경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요셉은 그 집에서 일해야 합니다. 그는 자유롭게 직장을 그만두거나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단순히 유혹을 피하는 방법에 대한 교훈으로 읽으면 요셉이 놓인 현실을 충분히 보지 못합니다. 요셉은 권력을 가진 사람의 반복적인 요구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의 거절은 한순간의 결단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계속되는 저항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첫 문장은 주인과 요셉의 권한을 비교하는 말로 읽을 수도 있고, 집안에서 요셉보다 높은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이 집에서는 주인님도 저보다 더 큰 권한을 갖고 계시지 않습니다」라고 옮겨, 두 사람의 권한을 비교하는 쪽으로 풀었습니다.
요셉이 버리고 간 옷, 여자가 붙잡은 이야기
아무도 없는 집
사건이 벌어진 날, 요셉은 평소처럼 일을 하러 들어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이 일을 하려고 집에 들어갔는데, 집안의 다른 남자는 아무도 그 안에 없었습니다.창세기 39:11 · 두루새김
본문은 요셉이 여자를 만나려고 들어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하러 왔습니다.
그때 그녀가 그의 옷을 붙잡습니다.
주인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붙잡으며 말했습니다. 「나와 잠자리를 같이해라.」 요셉은 옷을 그 여자의 손에 남겨 둔 채 밖으로 달아났습니다.창세기 39:12 · 두루새김
여기서는 더 이상 말로만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요셉의 옷을 붙잡아 그의 움직임에 직접 개입합니다.
하지만 여자는 바로 그 행동을 뒤집어 이용합니다.
거짓말은 사실을 완전히 바꾸지 않아도 된다
13–18절에서 그녀는 두 차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먼저 집안사람들에게 말하고, 다음에는 남편에게 말합니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실제 일어난 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셉의 옷이 그녀에게 남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요셉이 밖으로 달아났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정적인 원인을 바꿉니다.
실제로는 자신이 요셉의 옷을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설명에서는 요셉이 자신과 잠자리를 같이하려고 다가왔다가 자신이 소리치자 달아난 사람이 됩니다.
거짓 고발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모든 요소가 거짓이어서가 아닙니다. 일부 사실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 사실들이 가리키는 의미를 뒤집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결백을 보여 주는 행동이 오히려 그에게 불리한 증거로 사용됩니다.
37장에서 형들은 요셉의 옷에 피를 묻혀 아버지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야곱은 그 옷을 보고 요셉이 맹수에게 찢겨 죽었다고 판단했습니다(37:31–33).
이번에도 요셉의 옷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 옷을 손에 쥔 사람이 요셉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과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두 사건에서 요셉은 자신의 옷을 둘러싼 이야기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신분
집안사람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보아라. 주인이 우리를 욕보이게 하려고 히브리 남자를 데려왔구나. 그자가 나와 잠자리를 같이하려고 내게 왔기에 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창세기 39:14 · 두루새김
그녀는 요셉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그녀가 내세우는 표현은 「히브리 남자」입니다.
또한 남편을 가리키며 「주인이 우리를 욕보이게 하려고 히브리 남자를 데려왔구나」라고 말합니다. 자기에게 일어난 문제를 집안 전체에 대한 모욕으로 확대하고, 그 책임을 남편에게까지 돌립니다.
17절에서 남편에게 말할 때에는 표현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그 여자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욕보이려고 내게 왔어요.」창세기 39:17 · 두루새김
두 설명 모두 요셉이 낯선 민족 출신의 종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녀는 집안사람들과 남편이 자신의 편을 들 수 있도록 요셉의 신분을 이용합니다.
여기서 고발의 내용은 단순히 성적으로 해치려 했다는 주장에 그치지 않습니다. 집안의 질서를 어지럽힌 외국인 종이라는 인상까지 만들어 냅니다.
반대로 요셉 자신에게는 변명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설명이 없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독자는 요셉의 진실을 알고 있지만, 집안사람들과 남편이 듣는 것은 여자의 말뿐입니다.
이 차이가 이후의 비극을 만듭니다.
올바른 일을 하고도 감옥에 들어가다
요셉의 주인은 아내가 「당신의 종이 내게 이런 짓을 했어요」라고 하는 말을 듣고 몹시 화가 났습니다.창세기 39:19 · 두루새김
확실한 것은 그의 결정입니다.
주인은 요셉을 데려다가 왕의 죄수들이 갇혀 있는 감옥에 넣었습니다. 요셉은 그 감옥에서 지냈습니다.창세기 39:20 · 두루새김
그동안 요셉이 쌓아 온 신뢰와 성실은 그를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가 하는 일을 잘되게 하셨다면, 어째서 요셉은 이런 일을 겪습니까? 본문은 그 질문에 곧바로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가는 일을 하나님이 명령하셨다는 말도 없고, 그를 고난으로 단련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사건을 일으키셨다는 설명도 없습니다.
여자의 행동은 여자의 행동으로, 주인의 결정은 주인의 결정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뜻밖의 문장이 나타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요셉과 함께하시며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간 것은 악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악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가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시거나 벌하신다는 표시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여호와야훼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요셉이 부당한 고난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증으로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과 인간이 부당한 고난을 겪는다는 것은 이 이야기 안에서 동시에 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본문은 주인이 「몹시 화가 났습니다」라고 말하지만, 그 분노가 정확히 누구를 향한 것인지 직접 밝히지는 않습니다. 요셉에게 화가 났다고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곧이어 요셉을 감옥에 넣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아내의 거짓말을 어느 정도 의심했는지, 또는 진실을 알고도 집안의 체면 때문에 요셉을 처벌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그의 속마음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감옥에서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집에서 일어난 일이 감옥에서 반복되다
21–23절을 읽으면 앞의 2–6절을 다시 읽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 보디발의 집 (39:2–6) | 감옥 (39:21–23) | | --- | --- | | 여호와야훼께서 요셉과 함께하셨습니다 | 여호와야훼께서 요셉과 함께하셨습니다 | | 주인이 요셉을 좋게 보았습니다 | 간수장이 요셉을 좋게 보았습니다 | | 주인이 가진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 간수장이 모든 죄수를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 | 주인은 집안일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 간수장은 맡긴 일을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 | 여호와야훼께서 요셉의 일을 잘되게 하셨습니다 | 여호와야훼께서 요셉의 일을 잘되게 하셨습니다 |
두 장소에서 요셉은 자신의 신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맡겨진 일을 해내는 그의 능력과 성실은 다시 인정받습니다.
간수장은 요셉에게 맡긴 일을 하나도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며 그가 하는 일을 잘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창세기 39:23 · 두루새김
문맥에서 「잘되게 하셨다」는 요셉이 맡은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요셉에게 일이 잘된다는 것은 그의 삶 전체가 편안하거나 그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집에서도 하는 일이 잘되었고, 감옥에서도 하는 일이 잘되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성공이 요셉을 감옥에서 보호하지 못했고, 두 번째 성공도 아직 그를 감옥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합니다.
이야기는 성공의 범위를 신중하게 제한합니다.
친절은 고난의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나타난다
21절에는 앞부분과 조금 다른 표현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요셉과 함께하시며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또 감옥을 책임지는 간수장이 요셉을 좋게 보게 하셨습니다.창세기 39:21 · 두루새김
두루새김이 「사랑을 베푸셨습니다」라고 옮긴 자리의 히브리어는 헤세드(חֶסֶד)입니다. 문맥에 따라 자비, 신실한 사랑, 변함없는 호의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요셉이 감옥에 갇힌 뒤에도 하나님이 그를 외면하지 않으셨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즉시 감옥에서 꺼내 주시지 않으십니다. 대신 간수장이 요셉을 좋게 보게 하시고, 그곳에서 살아가며 일을 맡을 수 있게 하십니다.
감옥 안에서 관리할 권한을 얻었다고 해서 억울하게 갇힌 일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간수장의 신임을 받았다고 해서 잃어버린 자유가 회복된 것도 아닙니다.
본문은 요셉이 여전히 고난 가운데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그에게 선하게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함께 보여줍니다.
조금 더 깊이
훗날 요셉은 형들에게 그들이 자신을 해치려고 했으나 하나님은 그 일을 선을 이루는 방향으로 바꾸셨다고 말합니다(창세기 50:20). 그 고백은 요셉 이야기 전체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이 장을 읽으면서 이후의 행복한 결말을 미리 가져와 지금의 억울함을 가볍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39장이 먼저 가르치는 것은 모든 일을 이해하게 되어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요셉은 자신의 성실함으로 모든 위험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올바른 선택을 했는데도 다른 사람의 거짓말 때문에 삶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런 요셉을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셨다고 증언합니다.
창세기 39장의 마지막 장면은 감옥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모든 것을 관리하던 요셉은 이제 갇힌 사람입니다. 주인의 아내에게 빼앗긴 옷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의 결백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감옥 안에서 다시 한 사람이 요셉을 신뢰합니다. 간수장은 죄수들과 그곳의 일을 요셉에게 맡깁니다.
요셉이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는 감옥 문을 열고 나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줄 사람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바로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끝냅니다.
처음에는 낯선 주인의 집에서, 마지막에는 감옥에서 같은 말이 들립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요셉과 함께하셨습니다.
감옥 문은 여전히 닫혀 있지만, 요셉과 함께하시는 여호와야훼의 이야기는 닫히지 않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