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38장

이 장의 자리 · 37–50장 · 요셉과 이집트

이것이 누구 것인지 알아보세요

창세기 38장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한 여자가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한 남자에게 물건 세 가지를 내보이는 장면입니다.

도장과 끈, 그리고 지팡이.

그녀는 그 물건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직접 이름을 말하지 않습니다. 물건의 주인인 유다는 그것들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뜻밖의 말을 합니다.

「다말이 나보다 옳다.」

조금 전까지 그는 며느리 다말을 불태우라고 명령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그녀보다 옳지 못했다고 인정합니다.

무엇이 그의 판단을 뒤집었을까요?

이 질문을 따라가면 창세기 38장은 단순히 유다와 다말 사이에 일어난 기이한 성적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던 사람이 그 책임을 인정하게 되는 이야기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838장 본문 읽기 →

형제들을 떠난 유다에게도 가정이 생겼다

창세기 38:1–6 본문 →

이야기는 짧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 무렵 유다는 형제들이 있는 곳을 떠나 내려가서, 히라라는 아둘람 사람에게로 갔습니다.창세기 38:1 · 두루새김

앞장에서 요셉은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이집트로 팔려 갔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동은 다릅니다. 요셉은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가지만, 유다는 스스로 형제들을 떠나 아둘람 사람 히라와 관계를 맺습니다.

「그 무렵」이라는 표현은 요셉이 팔린 사건과 유다의 이야기를 연결하지만, 이 장의 모든 사건이 요셉이 팔린 직후부터 정확한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혼과 세 아들의 출생, 성장, 결혼과 자녀의 탄생까지 상당한 기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수아라는 가나안 사람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그에게는 세 아들이 태어납니다. 에르, 오난, 셸라.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구할 때 가나안 사람들의 딸 가운데서 아내를 얻지 않도록 종에게 당부했습니다(창세기 24:3–4). 이삭과 리브가도 에서의 헷 사람 아내들 때문에 근심했습니다(창세기 26:34–35). 그러므로 유다의 결혼은 조상들의 결혼 선택과 비교해 볼 만합니다.

그러나 이 장은 유다가 가나안 여자와 결혼했다는 사실 자체를 죄라고 규정하지 않습니다. 뒤에서 두 아들이 죽는 이유를 어머니의 출신과 연결하지도 않습니다.

세 아들이 태어나자 유다는 맏아들 에르에게 아내를 맞아 줍니다. 그 여자의 이름은 다말입니다. 이름은 짧게 소개되지만, 곧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됩니다.

앞부분에서는 유다가 가족을 이루는 사람으로 이야기를 이끌지만, 이후에는 그가 마련한 가족 질서 안에서 다말이 어떤 처지에 놓이는지가 중심 문제가 됩니다.

형의 후손을 세워 주어야 할 사람이 그 가능성을 가로막다

창세기 38:7–11 본문 →

에르와 다말의 결혼 뒤 이야기는 갑자기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유다의 맏아들 에르는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에르를 죽이셨습니다.창세기 38:7 · 두루새김

성경은 에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에르의 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본문을 넘어섭니다.

이 죽음 이후 다말은 남편을 잃은 여자가 됩니다. 에르는 후손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유다는 둘째 아들 오난에게 말합니다.

유다가 오난에게 말했습니다. 「네 형수와 잠자리를 같이하고, 남편의 형제로서 해야 할 일을 해라. 네 형의 뒤를 이을 자손을 낳게 해라.」창세기 38:8 · 두루새김

이것은 훗날 신명기 25:5–10에서 규정되는 형사취수의 의무와 관련된 관습입니다. 형사취수는 남자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을 때 그의 형제가 남겨진 아내와 결혼하여 죽은 형의 계보를 이어 주는 제도입니다.

그 목적은 단순히 아이를 낳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죽은 형제의 이름과 가족의 계보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동시에 남편을 잃은 여자가 남편 집안과 맺고 있는 관계와 앞으로 살아갈 기반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오난은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습니다.

오난은 태어날 아이가 자기 자식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형수와 잠자리를 같이할 때마다 씨를 땅에 흘려, 형의 뒤를 이을 아이가 생기지 않게 했습니다.창세기 38:9 · 두루새김

오난은 형제의 의무를 겉으로는 수행하면서 실제로는 그 의무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합니다. 그는 형수와의 성적 관계는 가지면서도 그녀가 그 관계를 통해 얻어야 할 결과를 일부러 막습니다.

전통적으로 이 구절은 피임이나 사정 행위 자체에 관한 보편적인 금지 규정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직접 제시하는 이유는 더 구체적입니다. 오난은 죽은 형의 뒤를 이을 아이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모든 상황에서의 피임 행위를 한꺼번에 판단하는 규정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난이 한 일은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오난도 죽이셨습니다.창세기 38:10 · 두루새김

에르의 죄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았지만, 오난의 죄는 분명하게 설명되었습니다. 오난은 자신에게 맡겨진 가족의 의무를 자기 이익 때문에 저버렸습니다.

그 결과 다말은 두 번째 남편마저 잃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시아버지 유다가 그녀를 자기 아버지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 셸라가 자랄 때까지 다시 결혼하지 말고 네 아버지 집에서 지내라.」 유다는 셸라도 형들처럼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다말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지냈습니다.창세기 38:11 · 두루새김

겉으로는 셸라가 자라면 다말과 결혼시키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는 유다의 속마음을 알려 줍니다. 여기서 그의 두려움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아들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에르와 오난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다말과의 관계 속에서 셸라의 죽음을 염려합니다. 그는 다말에게 기다리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약속을 지킬 뜻이 없었을 가능성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다말은 기다립니다.

오난은 형의 뒤를 이을 아이가 생기는 것을 일부러 막았고, 유다는 아들의 죽음을 두려워하여 다말에게 후손이 생길 길을 막고 있습니다. 두 행동은 다르지만, 다말이 가족의 미래를 이어 갈 기회를 잃고 있다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다말은 아직 유다의 집안에 속한 며느리입니다. 그러나 실제 생활은 친정에서 남편을 잃은 여자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약속된 미래는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다말이 과부의 옷을 벗은 이유

창세기 38:12–14 본문 →

오랜 시간이 흐릅니다.

그동안 유다의 아내도 죽습니다. 본문은 유다가 위로를 받은 뒤 양털을 깎는 사람들이 있는 팀나로 올라갔다고 말합니다. 그 소식이 다말에게 전해집니다.

그리고 다말은 행동을 시작합니다.

다말은 셸라가 다 자랐는데도 자신과 결혼시키지 않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잃은 여자가 입는 옷을 벗고,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감싼 뒤, 팀나로 가는 길에 있는 에나임 어귀에 앉았습니다.창세기 38:14 · 두루새김

그런데 다말은 왜 굳이 남편을 잃은 여자가 입는 옷을 벗습니까? 그 옷은 그녀의 사회적 처지를 나타냅니다. 다말은 에르의 아내였지만 남편이 죽었습니다. 오난과의 관계에서도 후손을 얻지 못했습니다.

셸라를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지만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계속 남편을 잃은 여자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말은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벗어나 직접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녀가 선택한 방식에는 속임수가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시아버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합니다.

여기서 인물들의 위치가 뒤바뀝니다.

유다는 가족의 어른으로서 아들들의 결혼을 결정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다말은 그 결정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자, 다말이 먼저 계획을 세웁니다.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되찾기 위해 행동합니다. 하지만 그 행동은 자신이 처한 불공정한 상황을 정식으로 해결하는 길이 아니라, 시아버지를 속여 임신하는 길입니다. 그녀가 다른 현실적인 선택지를 얼마나 가지고 있었는지는 본문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말이 반드시 이 방법밖에 없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고, 그녀에게 아무 제약도 없었는데 부도덕한 방법을 선택했다고 쉽게 평가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은 그녀가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 행동했다는 사실을 먼저 알려 줍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곧 유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사건으로 발전합니다.

유다는 다말을 보았지만 알아보지 못했다

창세기 38:15–23 본문 →

유다는 길가에 앉아 있는 여자를 봅니다.

유다는 얼굴을 가린 다말을 보고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여자라고 생각했습니다.창세기 38:15 · 두루새김

이때 얼굴을 가렸다는 사실만으로 당시 돈을 받고 몸을 파는 모든 여자가 얼굴을 가렸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유다가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설명할 뿐입니다.

그는 다말에게 다가가 잠자리를 같이하자고 합니다. 그러자 다말은 대가를 묻습니다. 유다는 염소 새끼 한 마리를 보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말은 즉시 대가를 받는 대신 물건을 맡겨 달라고 요구합니다.

유다가 물었습니다. 「어떤 물건을 맡기면 될까요?」 다말이 대답했습니다. 「도장과 끈, 그리고 손에 들고 계신 지팡이를 주세요.」 유다는 그 물건들을 다말에게 주고 잠자리를 같이했습니다. 다말은 유다의 아이를 임신했습니다.창세기 38:18 · 두루새김

도장은 고대 사회에서 문서나 물건에 소유자 또는 권한자의 표시를 남기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도장과 연결된 끈, 그리고 지팡이는 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인적인 물건들입니다.

겉으로는 약속한 염소 새끼를 받을 때까지 맡아 두는 물건들입니다. 하지만 이후의 사건을 보면 이 물건들이 유다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증거가 됩니다. 다말이 처음부터 그것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은 큽니다. 다만 본문은 그녀가 장차 유다에게 어떤 방식으로 증거를 제시할지까지 계획했다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뒤 그녀는 얼굴과 몸을 가렸던 천을 벗고 다시 남편을 잃은 여자가 입는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사회적 신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증명할 수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유다는 염소 새끼를 보내 맡겨 둔 물건을 돌려받으려 합니다.

친구 히라가 그 여자를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찾지 못합니다. 지역 사람들은 그런 여자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히라는 결국 맡겨 둔 물건을 돌려받지 못하고 돌아옵니다.

유다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그 물건들은 그 여자가 그냥 갖게 두자. 나는 이 염소 새끼를 보냈는데 네가 그 여자를 찾지 못했잖아.」창세기 38:23 · 두루새김

그는 맡겨 둔 물건을 잃는 것보다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을 걱정합니다. 그는 약속한 염소 새끼를 보냈다는 사실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유다는 낯선 여자에게 약속한 염소 새끼를 실제로 보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자기 며느리에게 약속했던 셸라와의 결혼은 이루어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약속은 지키려 했고, 다른 약속은 외면했습니다.

이 차이는 곧 유다 자신의 입으로 밝혀집니다.

조금 더 깊이

히라는 그 지역 사람들에게 에나임 길가에 있던 케데샤가 어디 있는지 묻습니다. 케데샤(⁨קְדֵשָׁה⁩)는 「거룩하다」는 뜻의 어근과 관련된 말이지만, 이 문맥에서 반드시 성소에 소속되어 종교 의식으로 성매매를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종교적 역할을 가진 여자를 가리키는 명칭이었는지, 지역에서 사용하는 다른 호칭이었는지는 불확실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고대 가나안에 특정한 성전 매춘 제도가 존재했다는 확실한 증거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 여자를 끌어내어 불태워라」 —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며느리에게는 엄격하다

창세기 38:24 본문 →

석 달쯤 지난 뒤 유다는 며느리 다말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석 달쯤 지났을 때, 누군가 유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며느리 다말이 음행을 했어요. 그 일로 임신까지 했어요.」 유다가 말했습니다. 「그 여자를 끌어내어 불태워라.」창세기 38:24 · 두루새김

유다는 자신이 앞서 길가의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했던 일을 떠올리거나, 다말에게 약속한 결혼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먼저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유다가 다말에게 죽음을 명령할 만큼 강한 권한을 행사하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길가의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했을 때 그는 그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져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자 곧바로 그녀에게 극단적인 처벌을 명령합니다.

그녀는 남편 에르를 잃은 여자이며, 유다의 말에 따라 셸라와의 결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유다의 집안과 맺은 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임신은 유다의 집안에서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관계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책임에는 유다 자신도 깊이 관여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지금 다말에게 묻는 것은 그녀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아직 묻지 않은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다말에게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리고 다말은 바로 그 질문을 유다에게 돌려줍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명령이 당시 사회에서 어떤 법적 권한에 근거했는지, 실제로 어떤 절차를 통해 집행될 수 있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훗날 레위기의 규정을 그대로 끌어와 유다의 명령이 정식 법률에 따른 판결이었다고 해석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알아보세요」 — 속임수의 언어가 진실을 밝히는 언어가 되다

창세기 38:25–26 본문 →

다말은 끌려 나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다말은 유다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말을 먼저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려 주는 물건들을 보냅니다.

다말은 끌려 나가던 중 시아버지에게 말을 전했습니다. 「저는 이 물건들의 주인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어요. 이 도장과 끈들과 지팡이가 누구 것인지 알아보세요.」창세기 38:25 · 두루새김

창세기 37:32에서 형제들은 아버지에게 요셉의 옷을 내밀며, 아버지 아들의 옷인지 아닌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앞장에서는 피 묻은 옷이 진실을 감추는 도구였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도장과 끈과 지팡이가 진실을 드러내는 도구가 됩니다.

앞장에서는 아버지 야곱이 물건을 알아보았지만 그 물건이 어떻게 피에 젖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유다가 물건을 알아보는 순간 자신이 감추고 있던 일까지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녀는 「아이의 아버지는 당신입니다」라고 직접 말하는 대신, 물건들을 보여 주며 확인하도록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유다가 자기 입으로 진실을 인정할 자리가 만들어집니다.

유다가 그 물건들을 알아보고 말했습니다. 「다말이 나보다 옳다. 내가 다말을 내 아들 셸라와 결혼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다는 다시는 다말과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습니다.창세기 38:26 · 두루새김

이 문장에서 이야기가 뒤집힙니다.

그는 다말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만 문제 삼지 않습니다. 그 속임수가 일어나게 된 배경에 자신의 책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유다가 다말이 자기보다 옳다고 말했다고 해서 그녀가 선택한 모든 수단이 언제 어디서나 정당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의 성적 관계를 이상적인 방식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다는 다말이 자기보다 옳다고 인정한 뒤 다시는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이 그의 삶 전체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증거는 아직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사건에서는 자신에게 불리한 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감추던 사람이, 이제 자신에게 불리한 진실 앞에서 잘못을 인정합니다.

조금 더 깊이

두 구절에서 알아보라고 요청하는 말은 히브리어에서 같은 표현이며, 바로 뒤에 알아보는 행동을 나타내는 같은 어근의 동사가 이어집니다(창세기 37:32–33; 38:25–26). 창세기 43:9에서 유다는 동생 베냐민을 이집트에 데려가기 위해 아버지에게 자신이 그를 책임지겠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창세기 44:33에서 유다는 베냐민 대신 자신이 종으로 남겠다고 제안합니다. 한때 다른 사람의 미래를 책임지지 않았던 유다가, 훗날 다른 형제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보증인으로 내놓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먼저 나온 손과 나중에 태어난 아이

창세기 38:27–30 본문 →

유다의 인정으로 이야기가 끝날 것 같지만, 창세기는 다말의 출산까지 기록합니다.

다말은 쌍둥이를 임신했습니다.

다말이 아이를 낳는 중에 한 아이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이 낳는 일을 돕던 여자가 붉은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묶으며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먼저 나왔어요.」창세기 38:28 · 두루새김

고대 가족 사회에서 출생 순서는 맏아들의 지위와 가족 안의 권리 문제와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아이 가운데 먼저 나오는 아이를 확인하는 일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 아이가 손을 도로 넣자, 다른 아이가 나왔습니다. 아이 낳는 일을 돕던 여자가 말했습니다. 「네가 이렇게 틈을 뚫고 나오다니!」 그 아이는 베레스라고 불렸습니다.창세기 38:29 · 두루새김

아이 낳는 일을 돕던 여자가 한 말과 아이의 이름 사이에는 분명한 말놀이가 있습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름은 세라입니다. 세라는 손에 붉은 실을 묶었던 아이입니다.

여기에는 창세기에서 반복되어 온 출생 순서의 문제가 다시 등장합니다. 에서는 먼저 태어났지만, 야곱이 맏아들의 권리와 축복을 얻었습니다. 이제 세라가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베레스가 먼저 태어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약속과 미래는 언제나 인간이 예상하는 맏아들 중심의 질서만을 따라 진행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장은 베레스가 먼저 태어난 이유를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베레스가 장차 중요한 인물의 조상이 될 것이라는 예언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베레스(페레츠)는 「틈을 뚫음」, 「돌파」라는 뜻을 가진 말과 연결됩니다. 룻기 4:12에서는 보아스와 룻을 축복하면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 준 베레스의 집안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룻기 4:18–22는 베레스에게서 시작해 다윗에게 이르는 계보를 기록합니다. 마태복음 1:3 역시 유다와 다말에게서 태어난 베레스를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포함합니다. 그러나 이런 후대의 연결을 근거로 창세기 38장에서 유다와 다말이 한 모든 행동이 하나님의 승인을 받았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다말의 아이들에게 남은 이름

창세기 38:1–30 본문 →

다말의 이름도 그 속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녀는 단지 유다의 며느리로 남지 않습니다. 베레스와 세라의 어머니로 기억됩니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모든 잘못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에르와 오난의 악행은 여전히 악행입니다. 유다가 다말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도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다말이 처한 위험 역시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이유로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말이 한 행동을 모두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처럼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유다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을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체적인 처벌의 과정으로 확정해서도 안 됩니다. 본문이 직접 밝히는 하나님의 판단은 에르와 오난의 악행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받은 집안에 속한다는 사실이 그 집안 사람들의 행동을 자동으로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다말의 사회적 지위가 약하고 그녀의 행동이 비난받을 수 있는 방식이었다는 이유로, 유다가 그녀에게 저버린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장에서 다말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자신의 미래가 막혀 있는 여자로 등장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남겨진 자리를 벗어나 행동했고, 결국 유다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창세기 38장은 사람들이 저버린 책임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잘못에 대한 인정이 이루어진 뒤, 이야기는 다시 태어나는 생명으로 끝납니다.

그 아이의 손목에는 붉은 실이 없습니다. 아이 낳는 일을 돕던 여자가 먼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베레스가 먼저 세상에 나와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