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38장
이 장의 자리 · 37–50장 · 요셉과 이집트
이것이 누구 것인지 알아보십시오
창세기 38장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한 여자가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한 남자에게 물건 세 가지를 내보이는 장면입니다.
인장과 끈, 그리고 지팡이.
그녀는 그 물건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직접 이름을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요청합니다. 「이 인장과 끈들과 지팡이가 누구 것인지 좀 알아보십시오.」
물건의 주인인 유다는 그것들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뜻밖의 말을 합니다. 「그 여자가 나보다 옳다.」
무엇이 그의 판단을 뒤집었을까요?
이 질문을 따라가면 창세기 38장은 단순히 유다와 다말 사이에 일어난 기이한 성적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던 사람이 그 책임을 인정하게 되는 이야기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형제들을 떠난 유다에게도 가정이 생겼다
이야기는 짧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때 유다는 형제들을 떠나 내려가서, 히라라는 아둘람 사람에게로 발길을 돌렸다.창세기 38:1 · 본디새김
앞장에서 요셉은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이집트로 팔려 갔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동은 다릅니다. 요셉은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가지만, 유다는 스스로 형제들을 떠나 아둘람 사람 히라와 관계를 맺습니다.
‘그때’라는 표현은 요셉이 팔린 사건과 유다의 이야기를 연결하지만, 이 장의 모든 사건이 요셉이 팔린 직후부터 정확한 연대순으로 진행되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혼과 세 아들의 출생, 장성, 혼인과 자녀의 탄생까지 상당한 기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수아라는 가나안 사람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그에게는 세 아들이 태어납니다. 에르, 오난, 셸라.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구할 때 가나안 사람들의 딸 가운데서 아내를 얻지 않도록 종에게 당부했습니다(창세기 24:3–4). 이삭과 리브가도 에서의 헷 사람 아내들 때문에 근심했습니다(창세기 26:34–35). 그러므로 유다의 혼인은 조상들의 혼인 선택과 비교해 볼 만합니다.
그러나 이 장은 유다가 가나안 여자와 결혼했다는 사실 자체를 죄라고 규정하지 않습니다. 뒤에서 두 아들이 죽는 이유를 어머니의 출신과 연결하지도 않습니다.
세 아들이 태어나자 유다는 맏아들 에르에게 아내를 맞아 줍니다. 그 여자의 이름은 다말입니다. 이름은 짧게 소개되지만, 곧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됩니다.
그녀는 수아의 딸로 소개되고, 죽을 때에도 수아의 딸이라고 불립니다. 반면 며느리는 다말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앞부분에서는 유다가 가족을 형성하는 사람으로 이야기를 이끌지만, 이후에는 그가 마련한 가족 질서 안에서 다말이 어떤 처지에 놓이는지가 중심 문제가 됩니다.
형의 후손을 세워 주어야 할 사람이 그 가능성을 가로막다
에르와 다말의 혼인 뒤 이야기는 갑자기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유다의 맏아들 에르는 여호와야훼가 보기에 악했다. 여호와야훼는 그를 죽였다.창세기 38:7 · 본디새김
성경은 에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에르의 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본문을 넘어섭니다.
이 죽음 이후 다말은 남편을 잃은 여자가 됩니다. 에르는 후손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유다는 둘째 아들 오난에게 말합니다.
유다가 오난에게 말했다. 「네 형수와 동침하고, 그 여자에게 남편의 형제로서 의무를 다하고, 네 형에게 후손을 세워 주어라.」창세기 38:8 · 본디새김
이것은 훗날 신명기 25:5–10에서 규정되는 형사취수의 의무와 관련된 관습입니다. 형사취수는 남자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을 때 그의 형제가 남겨진 아내와 결합하여 죽은 형의 계보를 이어 주는 제도입니다.
그 목적은 단순히 아이를 낳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죽은 형제의 이름과 가족의 계보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동시에 남편을 잃은 여자가 남편 집안과 맺고 있는 관계와 미래의 생활 기반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다만 창세기 38장의 시대에 훗날 신명기에 기록된 모든 법적 절차가 이미 똑같은 형태로 시행되고 있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에서 확인되는 것은 유다가 오난에게 죽은 형의 후손을 세워 줄 의무를 요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난은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습니다.
오난은 그 후손이 자기에게 속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래서 형수와 동침할 때마다 형에게 후손을 주지 않으려고 정액을 땅에 버렸다.창세기 38:9 · 본디새김
오난은 형제의 의무를 겉으로는 수행하면서 실제로는 그 의무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합니다. 그는 형수와의 성적 관계는 가지면서도 그녀가 그 관계를 통해 얻어야 할 결과를 의도적으로 차단합니다.
전통적으로 이 구절은 피임이나 사정 행위 자체에 관한 보편적인 금지 규정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직접 제시하는 이유는 더 구체적입니다. 오난은 죽은 형에게 후손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모든 상황에서의 피임 행위를 일괄적으로 판단하는 규정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가 한 일은 여호와야훼가 보기에 악했다. 여호와야훼는 그도 죽였다.창세기 38:10 · 본디새김
에르의 죄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았지만, 오난의 죄는 분명하게 설명되었습니다. 오난은 자신에게 맡겨진 가족의 의무를 자기 이익 때문에 저버렸습니다.
그 결과 다말은 두 번째 남편마저 잃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시아버지 유다가 그녀를 자기 아버지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 말했다. 「내 아들 셸라가 자랄 때까지 네 아버지 집에서 과부로 지내라.」 그는 「이 아이도 자기 형들처럼 죽을지 모른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말은 가서 자기 아버지 집에 머물렀다.창세기 38:11 · 본디새김
표면적으로는 셸라가 장성하면 다말을 그의 아내로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독자에게 유다가 알거나 인정하지 않는 중요한 사실도 알려 주었습니다. 에르와 오난은 여호와야훼 보시기에 악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다말과의 관계 속에서 셸라의 죽음을 염려합니다. 그가 다말 자체를 불길하게 여겼는지까지 확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녀에게 새로운 혼인을 허락하면 아들이 죽을 수 있다고 두려워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는 다말에게 기다리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약속을 이행할 뜻이 없었을 가능성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다말은 기다립니다.
오난은 형의 후손이 생기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았고, 유다는 아들의 죽음을 두려워하여 다말에게 후손이 생길 길을 막고 있습니다. 두 행동은 다르지만, 다말이 가족의 미래를 이어 갈 기회를 잃고 있다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다말은 아직 유다의 집안에 속한 며느리입니다. 그러나 실제 생활은 친정에서 과부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약속된 미래는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다말이 과부의 옷을 벗은 이유
많은 날이 흐릅니다.
그동안 유다의 아내도 죽습니다. 본문은 유다가 애도의 시간을 보낸 뒤 양털을 깎는 사람들이 있는 팀나로 올라갔다고 말합니다.
양털 깎는 일은 목축 사회에서 중요한 경제활동이었습니다. 가축에서 얻는 생산물을 모으는 일이었고, 다른 성경 본문에서는 잔치와 모임이 함께하는 시기로 나타나기도 합니다(사무엘상 25:4–8; 사무엘하 13:23–28).
그 소식이 다말에게 전해집니다.
그리고 다말은 행동을 시작합니다.
다말은 과부의 옷을 벗고 너울을 써서 몸을 감싼 뒤, 팀나로 가는 길에 있는 에나임 어귀에 앉았다. 셸라가 자랐는데도 자신이 그의 아내로 주어지지 않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창세기 38:14 · 본디새김
과부의 옷은 그녀의 사회적 처지를 나타냅니다. 다말은 에르의 아내였지만 남편이 죽었습니다. 오난과의 관계에서도 후손을 얻지 못했습니다. 셸라를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지만 혼인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다를 만나기 위해 그 옷을 벗습니다.
다말은 자신에게 부여된 위치에서 벗어나 직접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시아버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합니다.
유다는 가족의 어른으로서 아들들의 혼인을 결정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다말은 그 결정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자신의 책임을 이행하지 않자, 다말이 먼저 계획을 세웁니다.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되찾기 위해 행동합니다. 하지만 그 행동은 자신이 처한 불공정한 상황을 정식으로 해결하는 길이 아니라, 시아버지를 속여 임신하는 길입니다.
그녀가 다른 현실적인 선택지를 얼마나 가지고 있었는지는 본문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말이 반드시 이 방법밖에 없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고, 그녀에게 아무 제약도 없었는데 부도덕한 방법을 선택했다고 쉽게 평가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곧 유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사건으로 발전합니다.
유다는 다말을 보았지만 알아보지 못했다
유다는 길가에 앉아 있는 여자를 봅니다.
유다는 그 여자를 보고 창녀라고 여겼다. 그 여자가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창세기 38:15 · 본디새김
이때 얼굴을 가렸다는 사실만으로 당시 모든 창녀가 얼굴을 가렸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유다가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설명할 뿐입니다.
그는 다말에게 다가가 동침하자고 합니다. 그러자 다말은 대가를 묻습니다. 유다는 염소 새끼 한 마리를 보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말은 즉시 대가를 받는 대신 담보를 요구합니다.
그가 말했다. 「네게 담보로 무엇을 주면 되겠느냐?」 그 여자가 말했다. 「당신의 인장과 끈, 그리고 손에 들고 계신 지팡이요.」 그는 그것들을 그 여자에게 주고 동침했다. 그 여자는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창세기 38:18 · 본디새김
이 세 물건은 이야기의 결정적인 열쇠가 됩니다.
인장은 고대 사회에서 문서나 물건에 소유자 또는 권한자의 표시를 남기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인장과 연결된 끈, 그리고 지팡이는 한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인적인 물건들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약속한 염소 새끼를 받을 때까지 맡아 두는 담보입니다. 하지만 이후의 사건을 보면 이 물건들이 유다의 신원을 밝히는 증거가 됩니다. 다말이 처음부터 그것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은 큽니다. 다만 본문은 그녀가 장차 유다에게 어떤 방식으로 증거를 제시할지까지 계획했다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뒤 그녀는 너울을 벗고 다시 과부의 옷을 입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사회적 신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증명할 수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유다는 염소 새끼를 보내 담보를 돌려받으려 합니다.
친구 히라가 그 여자를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찾지 못합니다. 히라는 그 지역 사람들에게 에나임 길가에 있던 케데샤가 어디 있는지 묻습니다. 지역 사람들은 그런 여자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히라는 결국 담보를 돌려받지 못하고 돌아옵니다. 그때 유다가 말합니다.
유다가 말했다. 「우리가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그 여자가 담보를 그냥 갖게 두게. 보게, 나는 이 염소 새끼를 보냈는데 자네가 그 여자를 찾지 못했네.」창세기 38:23 · 본디새김
그는 약속한 염소 새끼를 보냈다는 사실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유다는 낯선 여자에게 약속한 염소 새끼를 실제로 보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자기 며느리에게 약속했던 셸라와의 혼인은 이루어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약속은 지키려 했고, 다른 약속은 외면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처음 유다가 사용한 ‘창녀’라는 말과 다른 낱말이 등장합니다. 15절의 창녀는 조나이며, 21절의 낱말은 케데샤입니다. 케데샤는 ‘거룩하다’는 뜻의 어근과 관련된 말이지만, 이 문맥에서 반드시 성소에 소속된 의례적 성매매 종사자를 가리킨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종교적 역할을 가진 여자를 가리키는 명칭이었는지, 지역에서 사용하는 다른 호칭이었는지는 불확실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고대 가나안에 특정한 성전 매춘 제도가 존재했다는 확실한 증거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담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라본은 책임을 보증하거나 담보로 맡기는 것을 나타내는 어근과 관련됩니다. 창세기 43:9에서 유다는 동생 베냐민을 이집트에 데려가기 위해 아버지에게 자신이 그를 책임지겠다고 말합니다. 그때 사용되는 표현은 자신이 보증인이 되겠다는 뜻이며, 히브리어에서는 같은 어근이 사용됩니다. 더 나아가 창세기 44:33에서 유다는 베냐민 대신 자신이 종으로 남겠다고 제안합니다. 창세기 38장에서 유다는 자신의 물건을 담보로 맡겼습니다. 훗날에는 동생의 안전을 위해 자기 자신을 책임의 자리에 놓습니다. 물론 이 두 사건 사이의 변화를 전적으로 창세기 38장의 경험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 여자를 불태워라」 —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며느리에게는 엄격하다
석 달쯤 지난 뒤 유다는 며느리 다말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석 달쯤 지났을 때 유다에게 이런 소식이 전해졌다. 「당신의 며느리 다말이 음행을 했습니다. 게다가 보십시오, 음행으로 임신까지 했습니다.」 유다가 말했다. 「그 여자를 끌어내어 불태워라.」창세기 38:24 · 본디새김
유다는 자신이 앞서 길가의 여자와 동침했던 일을 떠올리거나, 다말에게 약속한 혼인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먼저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길가의 여자와 동침했을 때 그는 그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져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자 곧바로 그녀에게 극단적인 처벌을 명령합니다.
그녀는 에르의 과부이며, 유다의 말에 따라 셸라와의 혼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유다의 집안과 맺은 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임신은 유다의 집안에서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관계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책임에는 유다 자신도 깊이 관여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지금 다말에게 묻는 것은 그녀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아직 묻지 않은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다말에게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리고 다말은 바로 그 질문을 유다에게 돌려줍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명령이 당시 사회에서 어떤 법적 권한에 근거했는지, 실제로 어떤 절차를 통해 집행될 수 있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훗날 레위기의 규정을 그대로 끌어와 유다의 명령이 정식 법률에 따른 판결이었다고 해석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유다가 다말에게 죽음을 명령할 만큼 강한 권한을 행사하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알아보십시오」 — 속임수의 언어가 진실을 밝히는 언어가 되다
다말은 끌려 나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다말은 유다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말을 먼저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려 주는 물건들을 보냅니다.
다말은 끌려 나가던 중 시아버지에게 전갈을 보냈다. 「저는 이 물건들의 주인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습니다.」 또 말했다. 「이 인장과 끈들과 지팡이가 누구 것인지 좀 알아보십시오.」창세기 38:25 · 본디새김
창세기 37:32에서 형제들은 아버지에게 요셉의 옷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들의 옷인지 아닌지 좀 알아보십시오.」
앞장에서는 피 묻은 옷이 진실을 감추는 도구였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인장과 끈과 지팡이가 진실을 드러내는 도구가 됩니다. 앞장에서는 아버지 야곱이 물건을 알아보았지만 그 물건이 어떻게 피에 젖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유다가 물건을 알아보는 순간 자신이 감추고 있던 일까지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녀는 ‘아이의 아버지는 당신입니다’라고 직접 말하는 대신, 물건들을 보여 주며 확인하도록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유다가 자기 입으로 진실을 인정할 자리가 만들어집니다.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말했다. 「그 여자가 나보다 옳다. 내가 그 여자를 내 아들 셸라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는 다말과 동침하지 않았다.창세기 38:26 · 본디새김
이 문장에서 이야기가 뒤집힙니다.
그는 다말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만 문제 삼지 않습니다. 그 속임수가 일어나게 된 배경에 자신의 책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유다가 다말이 자기보다 옳다고 말했다고 해서 그녀가 선택한 모든 수단이 언제 어디서나 정당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의 성적 관계를 이상적인 방식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본문은 유다가 다말이 자기보다 옳다고 인정한 뒤 다시는 그녀와 동침하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처음에는 다말의 처벌을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증거를 확인한 뒤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삶 전체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증거는 아직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사건에서는 자신에게 불리한 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감추던 사람이, 이제 자신에게 불리한 진실 앞에서 잘못을 인정합니다.
조금 더 깊이
두 구절의 ‘알아보십시오’는 히브리어에서 같은 표현이며, 바로 뒤에 알아보는 행동을 나타내는 같은 어근의 동사가 이어집니다(창세기 37:32–33; 38:25–26). 이것은 우연히 비슷한 상황이 생겼다는 정도로 지나치기 어려운 문학적 연결입니다. 특히 유다는 앞장에서 형제들에게 요셉을 팔자고 제안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유다는 자신이 관련된 속임수와 닮은 방식으로 자신의 책임을 마주합니다.
먼저 나온 손과 나중에 태어난 아이
유다의 인정으로 이야기가 끝날 것 같지만, 창세기는 다말의 출산까지 기록합니다.
다말은 쌍둥이를 임신했습니다. 출산이 시작되자 한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밉니다.
다말이 아이를 낳는 중에 한 아이가 손을 내밀었다. 산파는 붉은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묶고 말했다. 「이 아이가 먼저 나왔다.」창세기 38:28 · 본디새김
고대 가족 사회에서 출생 순서는 장자의 지위와 가족 안의 권리 문제와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아이 가운데 먼저 나오는 아이를 확인하는 일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 아이가 손을 도로 넣자, 뜻밖에도 그 형제가 나왔다. 산파가 말했다. 「어쩌면 이렇게 스스로 틈을 뚫고 나왔느냐?」 방금 나온 아이의 이름을 베레스라고 불렀다.창세기 38:29 · 본디새김
산파가 한 말과 아이의 이름 사이에는 분명한 말놀이가 있습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름은 세라입니다. 세라는 손에 붉은 실을 묶었던 아이입니다.
여기에는 창세기에서 반복되어 온 출생 순서의 문제가 다시 등장합니다. 에서는 먼저 태어났지만, 야곱이 장자의 권리와 축복을 얻었습니다. 이제 세라가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베레스가 먼저 태어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약속과 미래는 언제나 인간이 예상하는 장자 중심의 질서만을 따라 진행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장은 베레스가 먼저 태어난 이유를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베레스가 장차 중요한 인물의 조상이 될 것이라는 예언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야곱은 형의 발꿈치를 붙잡고 태어났고, 나중에 형의 장자권과 아버지의 축복을 둘러싼 갈등이 벌어졌습니다. 베레스는 출생 과정에서 먼저 나온 손을 제치고 먼저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두 이야기 모두 독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출생 순서가 뜻밖의 방식으로 뒤집힌다는 특징을 공유합니다. 룻기 4:12에서는 보아스와 룻을 축복하면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 준 베레스의 집안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룻기 4:18–22는 베레스에게서 시작해 다윗에게 이르는 계보를 기록합니다. 마태복음 1:3 역시 유다와 다말에게서 태어난 베레스를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포함합니다. 그러나 이런 후대의 연결을 근거로 창세기 38장에서 유다와 다말이 한 모든 행동이 하나님의 승인을 받았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한 가문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기록하면서, 그 가문의 시작에 있었던 잘못과 불편한 사건을 숨기지 않습니다.
다말의 아이들에게 남은 이름
창세기 38장은 다말이 유다보다 옳았다는 선언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뒤에 두 아이의 탄생을 기록합니다. 창세기 38장은 사람들이 저버린 책임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잘못에 대한 인정이 이루어진 뒤, 이야기는 다시 태어나는 생명으로 끝납니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모든 잘못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에르와 오난의 악행은 여전히 악행입니다. 유다가 다말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도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다말이 처한 위험 역시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이유로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이 장에서 다말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자신의 미래가 막혀 있는 여자로 등장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남겨진 자리를 벗어나 행동했고, 결국 유다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예상했던 출생 순서를 뒤집고 먼저 세상에 나옵니다.
성경은 그 아이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산파가 놀라고, 아이에게 이름이 붙습니다.
베레스.
‘틈을 뚫고 나온 아이.’
그 아이의 손목에는 붉은 실이 없습니다. 산파가 먼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베레스가 먼저 세상에 나와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