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1–9장 · 시나이에서 센 사람들
열두 번의 예물과 하나님의 음성
같은 예물의 목록이 열두 번 반복됩니다.
첫째 날에 한 지도자가 은 접시와 은 대접과 금 그릇을 가져오고, 번제와 정화 제물과 친교 제물을 바칩니다. 둘째 날에도 다른 지도자가 정확히 같은 예물을 가져옵니다. 셋째 날에도, 넷째 날에도 똑같습니다. 열두째 날까지 내용은 거의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글쓰기라면 첫째 날의 예물만 자세히 설명하고, 나머지 지도자들도 같은 것을 바쳤다고 한 문장으로 정리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민수기 7장도 마지막에 모든 예물의 총계를 정리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각 지도자의 이름을 부르며 같은 목록을 열두 번 기록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열두 지파의 예물이 모두 기록된 뒤, 이야기는 갑자기 모세가 만남의 천막에 들어가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사람들이 드린 예물과 하나님이 들려주신 음성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그 답을 찾으려면 이 장을 단순한 봉헌물의 명단이 아니라, 성막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삶 속에서 자리를 잡아 가는 이야기로 읽어야 합니다.
이야기는 성막이 세워진 날로 돌아간다
모세가 성막을 다 세운 날의 일입니다. 그는 성막과 거기에 딸린 모든 도구에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구별하고, 제단과 거기에 딸린 모든 도구에도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구별했습니다.민수기 7:1 · 두루새김
민수기 7장은 앞선 장들의 시간보다 이전으로 돌아가는 듯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출애굽기 40:17에 따르면 성막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온 지 이 년째 첫째 달 초하루에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1:1은 이 년째 둘째 달 초하루를 배경으로 합니다. 따라서 성막을 세우고 거룩하게 구별한 일을 다루는 7장은 앞선 여섯 장 이후에 일어난 새로운 사건만을 순서대로 기록한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민수기의 첫 부분은 모든 사건을 일어난 날짜순으로 배열하지 않습니다. 먼저 광야를 이동할 공동체의 조직과 성막에서 하는 일을 설명하고, 이제 성막이 세워졌을 때의 봉헌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우리는 이미 레위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운반하고 어떤 일을 맡아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실제로 사용할 운반 수단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곧 아버지 집안의 우두머리들이 예물을 바쳤습니다. 그들은 지파의 지도자들이며, 인원 조사에 등록된 사람들을 이끌던 이들이었습니다.민수기 7:2 · 두루새김
그들은 이전에 인원 조사와 진영 편성에서 등장한 지파의 지도자들입니다. 이 장에서는 그들이 인원을 지휘하거나 집계하는 것이 아니라, 성막을 위해 예물을 바칩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 앞에 예물로 덮개가 있는 수레 여섯 대와 소 열두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지도자 두 사람마다 수레 한 대씩, 한 사람마다 소 한 마리씩이었습니다. 그들은 이것들을 성막 앞에 바쳤습니다.민수기 7:3 · 두루새김
수레는 성막을 운반하는 데 쓰일 것입니다. 이 장의 첫 예물은 제단에서 태워지는 희생 제물이 아니라, 성막의 일을 실제로 가능하게 만드는 운반 수단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덮개가 있는 수레」라는 번역에는 원어상의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덮개를 갖춘 수레일 수도 있고, 짐을 싣기 위한 특정한 형태의 수레일 수도 있습니다.
왜 여섯 대의 수레를 세 집안에 똑같이 나누지 않았을까?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도자들이 가져온 수레와 소를 받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들에게서 수레와 소를 받아 만남의 천막에서 하는 일에 쓰게 하여라. 레위 사람들에게 저마다 맡은 일에 맞게 나누어 주어라.」민수기 7:5 · 두루새김
모세는 여섯 대의 수레를 레위 지파의 세 집안에 똑같이 두 대씩 나누지 않습니다.
레위 세 집안의 운반 수단
| 집안 | 맡은 물건 | 수레 | 소 | | --- | --- | --- | --- | | 게르손 | 천, 덮개, 휘장 | 2대 | 4마리 | | 므라리 | 판자, 기둥, 받침 | 4대 | 8마리 | | 그핫 | 거룩한 물건 | 0대 | 0마리 |
민수기 4장에서 므라리 자손에게는 성막의 판자와 가로대, 기둥과 받침 같은 구조물들이 맡겨졌습니다. 게르손 자손은 주로 천과 덮개와 휘장을 맡았습니다. 므라리 자손에게 수레가 더 많이 주어진 것은 그들이 운반할 구조물의 성격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각 물건의 무게를 계산하여 제시하지 않지만, 물건의 종류와 나누어 준 양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핫 자손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은 이유는 본문이 직접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핫 자손에게는 수레와 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물건을 맡아 그 물건들을 어깨에 메어야 했기 때문입니다.민수기 7:9 · 두루새김
그들은 증언의 궤와 상과 등잔대와 제단 같은 거룩한 물건을 맡았습니다. 그 물건들은 정해진 방식으로 운반해야 했습니다. 특히 증언의 궤에는 운반채가 있었고, 출애굽기 25:12–15는 그것을 운반할 수 있도록 채를 마련하라고 명령합니다.
똑같이 나누는 것과 맡은 일에 맞게 나누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성막의 거룩함은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으로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거룩함을 유지하는 일에는 실제로 수레와 소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성막의 일을 명령하시면서 그 일을 수행하는 현실적인 수단을 배제하지 않으십니다.
누군가에게 맡겨진 일이 있다면,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것도 공동체의 중요한 참여 방식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실제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피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제 본문은 성막을 옮기는 수단에서 제단을 바치는 예식을 위한 예물로 넘어갑니다.
왜 열두 명이 한꺼번에 바치지 않고 하루에 한 사람씩 바칠까?
제단에 기름을 바른 날, 지도자들은 제단을 하나님께 바치는 예식을 위해 자기들의 예물을 가져와 제단 앞에 바쳤습니다.민수기 7:10 · 두루새김
본문은 이제 성막 전체가 아니라 특별히 제단의 봉헌을 다룹니다.
두루새김이 「제단을 하나님께 바치는 예식」으로 풀어 옮긴 자리에는 히브리어 하누카(חֲנֻכָּה)가 쓰였습니다. 이 말은 어떤 장소나 물건을 특정한 용도로 처음 사용하도록 구별하거나 봉헌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물을 바칠 순서를 직접 정하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도자들은 제단을 바치는 예식을 위해 하루에 한 사람씩 차례로 자기 예물을 바쳐야 한다.」민수기 7:11 · 두루새김
원문에서는 「하루에 한 사람씩」에 해당하는 표현이 두 번 반복됩니다. 열두 지도자가 모두 예물을 준비했지만, 그들은 한꺼번에 제단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각 사람에게 하루가 주어집니다.
이것은 단순한 순서 배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제물을 한꺼번에 처리하지 않도록 하는 실제적인 이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굳이 같은 예물의 목록을 열두 번 기록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 순서는 이야기를 풀어 가는 데도 중요합니다.
성막을 위한 수레와 소는 지도자들이 함께 마련하고, 필요에 따라 레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제단 봉헌에서는 지도자들이 하루에 한 사람씩 예물을 가져옵니다. 두 장면 모두 이스라엘 전체가 성막을 위해 참여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지만, 참여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성막을 만들기 위해 많은 예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성막의 구조와 도구와 배치는 백성의 자유로운 상상에 맡겨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 주신 양식과 명령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출애굽기 25:9, 40). 민수기 7장에서도 같은 원칙이 이어집니다.
지도자들은 성막을 위해 예물을 가져오지만, 그 사용과 봉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맨 먼저 나오는 유다 — 봉헌의 순서가 진영의 질서를 따른다
첫째 날에 예물을 바친 사람은 유다 지파에 속한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었습니다.민수기 7:12 · 두루새김
민수기 2장에서 유다 진영은 동쪽에 자리했고, 이동할 때 맨 먼저 출발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 진영에는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 속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7장의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 예물을 바치는 순서를 보면 정확히 같은 세 지파가 등장합니다.
그다음에는 르우벤과 시므온과 갓이 나오고, 이어서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베냐민이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단과 아셀과 납달리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민수기 2장의 진영과 출발 순서에 정확히 대응합니다.
이 장은 이스라엘이 성막을 중심으로 이루는 질서를 제단 봉헌에서도 따라갑니다.
다만 이 사실만으로 실제 봉헌 순서가 진영 배치보다 나중에 처음 정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이 장의 시간적 배경은 성막을 세운 시점으로 돌아갑니다.
나손은 은 접시 하나와 은 대접 하나, 금 그릇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은 접시는 130셰켈이고, 은 대접은 70셰켈입니다. 두 그릇에는 기름을 섞은 고운 가루가 들어 있습니다. 금 그릇은 10셰켈이며, 그 안에는 향이 들어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번제와 정화 제물과 친교 제물이 나옵니다. 번제로는 어린 수소 한 마리, 숫양 한 마리, 한 살 된 어린 숫양 한 마리를 바칩니다. 정화 제물로는 숫염소 한 마리를 바칩니다.
친교 제물로는 소 두 마리, 숫양 다섯 마리, 숫염소 다섯 마리, 한 살 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를 바쳤습니다. 이것이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 바친 예물이었습니다.민수기 7:17 · 두루새김
번제는 제물을 제단에서 태워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제사입니다. 정화 제물은 성소의 정결과 속죄에 관련된 제사이고, 친교 제물은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친교의 제사입니다. 이러한 제물의 종류는 레위기 1–4장과 7장에서 각각 설명됩니다.
제단 봉헌에는 단순히 값비싼 물건을 바치는 행위만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에서 중요한 여러 종류의 제물이 함께 등장합니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놀라운 반복이 시작됩니다.
똑같은 예물을 왜 열두 번이나 기록했을까?
둘째 날에는 잇사갈의 지도자 느탄엘이 예물을 바칩니다.
그가 가져온 예물은 나손의 예물과 정확히 같습니다. 그릇의 무게도 같습니다. 안에 들어 있는 곡식 제물과 향도 같습니다. 번제와 정화 제물과 친교 제물의 종류와 수량도 모두 같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것을 간단히 요약하지 않습니다.
나손에게 사용했던 문장들을 거의 그대로 반복합니다. 셋째 날 스불론의 엘리압에게도 같은 방식이 적용됩니다. 넷째 날 르우벤의 엘리추르, 다섯째 날 시므온의 셸루미엘, 여섯째 날 갓의 엘리아삽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곱째 날부터 열두째 날까지도 내용은 바뀌지 않습니다.
같은 제단 앞에서 누구도 더 많이 바치지 않는다
유다는 군사 인원이 가장 많은 지파였고, 므낫세는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그러나 제단 봉헌에서 유다가 므낫세보다 더 많은 예물을 바치지는 않습니다. 진영에서 맡은 자리와 규모는 달라도, 하나의 제단을 봉헌하는 일에는 열두 지파가 같은 방식으로 참여합니다.
이것은 제단이 어느 특정한 지파만의 제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열두 지파는 서로 다른 집안과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 자기 제단을 만들지 않습니다. 제단 봉헌은 열두 지파가 각각 자신들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경쟁이 아니라, 모두가 한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지도자들의 예물은 오늘날의 일반적인 헌금과 동일한 제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성막 제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체적인 사건입니다. 따라서 지도자들이 같은 양을 바쳤다는 사실을 근거로 오늘날 모든 사람이 반드시 같은 금액을 헌금해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 수도 없습니다. 본문은 그런 명령을 하지 않습니다.
같은 예물이어도 각 사람의 예물은 따로 기록된다
예물의 내용은 같지만, 예물을 바친 지도자의 이름은 계속 바뀝니다. 매번 그 사람의 지파와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고, 마지막에는 그가 바친 예물이었다고 확인합니다.
열두 사람의 예물을 하나의 총계로만 기록했다면 독자는 예물의 전체 규모를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어느 날에 자신의 예물을 바쳤는지는 흐릿해졌을 것입니다. 반대로 이 장에서는 전체 수량을 알기 전에 먼저 열두 사람의 참여를 하나씩 보게 됩니다.
첫째 날은 나손의 날입니다.
둘째 날은 느탄엘의 날입니다.
셋째 날은 엘리압의 날입니다.
그렇게 열두째 날 아히라에 이르기까지 각 사람의 예물이 별도로 기록됩니다. 그들이 동일한 예물을 드렸다는 사실이 오히려 반복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동일하다는 사실이 각자의 참여를 지워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의 공동체가 같은 일을 수행하면서도 그 안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반복 자체가 만들어 내는 시간
독자는 첫째 날의 긴 목록을 읽습니다. 둘째 날에도 같은 목록을 읽습니다. 셋째 날에도 다시 읽습니다.
이 반복은 현대 독자에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속에서 예물을 드리는 일도 하루 만에 끝나지 않습니다. 하루에 한 사람씩, 열두 날 동안 이어집니다.
반복된 기록은 그 기간을 압축하지 않고 펼쳐 놓습니다.
독자가 같은 예물의 목록을 다시 만나는 동안, 본문 속에서는 새로운 하루가 지나갑니다. 그것은 열두 지파가 하루에 한 사람씩 제단 앞으로 나아왔다는 사건을 서술하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열두 날이 지나고 나서야 이야기는 전체 봉헌의 결과를 하나로 모읍니다.
열두 지파의 예물이 하나의 총계가 되다
제단에 기름을 바른 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제단을 바치는 예식을 위해 가져온 예물은 이러했습니다. 은 접시 열두 개, 은 대접 열두 개, 금 그릇 열두 개였습니다.민수기 7:84 · 두루새김
제단 봉헌 예물의 총계
| 예물 | 전체 수량 또는 무게 | | --- | --- | | 은 접시 | 12개 · 1,560셰켈 | | 은 대접 | 12개 · 840셰켈 | | 금 그릇 | 12개 · 120셰켈 | | 번제 | 어린 수소 12, 숫양 12, 한 살 된 어린 숫양 12마리 | | 정화 제물 | 숫염소 12마리 | | 친교 제물 | 어린 수소 24, 숫양 60, 숫염소 60, 한 살 된 어린 숫양 60마리 |
은의 총무게는 2,400셰켈(1,560+840), 금의 총무게는 120셰켈입니다. 성소에서 쓰는 셰켈을 기준으로 한 무게이며 곡식 제물과 향 등의 무게는 여기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예물이 각 지도자에게 속해 있었습니다. 이제 그 예물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함께 바친 제단 봉헌 예물로 정리됩니다.
개별적인 봉헌이 공동체 전체의 봉헌으로 묶이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5:21–29에서는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이 성막의 건축과 봉사를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옵니다. 민수기 7장에서는 이미 세워지고 거룩하게 구별된 성막과 제단을 위해 예물을 가져옵니다. 두 본문은 같은 사건을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막을 마련하는 과정과 그 성막을 봉헌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백성의 참여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기름을 바른 날」과 「기름을 바른 뒤」
84절은 「제단에 기름을 바른 날」에 제단을 바치는 예식을 위해 가져온 예물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88절은 「제단에 기름을 바른 뒤」에 그 예식을 위해 가져온 예물이라고 말합니다. 이 차이는 본문이 앞에서 열두 날에 걸쳐 봉헌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한 사실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만약 「기름을 바른 날」을 모든 예물이 정확히 하루에 바쳐졌다는 뜻으로만 읽으면, 하루에 한 사람씩 예물을 바쳤다는 기록과 충돌합니다. 따라서 그 표현은 제단에 기름을 바르고 봉헌하기 시작한 시점이나 그 봉헌의 때를 전체적으로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는 본문 안에 서로 다른 시간 표현이 나란히 보존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열두 지도자가 하루에 한 사람씩 예물을 드렸다는 명시적인 기록을 지워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긴 봉헌 기록이 끝납니다.
그런데 아직 마지막 절이 남아 있습니다.
제단 앞의 예물에서 증언의 궤 위의 음성으로
민수기 7장의 마지막 구절은 앞의 여든여덟 절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모세가 여호와야훼와 이야기하려고 만남의 천막에 들어갔을 때, 자기에게 말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은 증언의 궤 위에 놓인 속죄판 위, 두 커룹 사이에서 들려왔습니다. 이렇게 여호와야훼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민수기 7:89 · 두루새김
이 표현은 출애굽기 25:22와 직접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증언의 궤 위에 있는 속죄판 위, 두 커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내릴 모든 명령을 네게 말하겠다.」 (출애굽기 25:22의 내용)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아직 성막이 완성되기 전에, 그곳에서 모세와 만나 말씀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7장의 마지막에서 모세는 바로 그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겠다고 정하신 장소에서 실제로 말씀이 들려옵니다.
왜 제단이 아니라 궤 위에서 음성이 들려오는가?
7장 대부분의 예물은 제단 앞에 바쳐졌습니다. 이제 독자는 성막의 가장 안쪽, 증언의 궤를 향해 시선을 옮깁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제단 봉헌의 결과로 새로운 장소에서 처음 하나님이 말씀하시게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성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출애굽기 25:22에서도 말씀하실 장소를 정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드린 예물은 중요하지만, 하나님과의 만남을 예물의 양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제단 앞에 많은 것을 가져왔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습니다.
두 커룹 사이에서 들려오는 음성
증언의 궤 위에는 속죄판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5:17–22에 따르면 속죄판 위에는 두 커룹이 서로 마주 보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민수기 7:89는 두 커룹이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는 형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시는 대신 말씀으로 모세와 관계를 맺으십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구체적인 말씀 내용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이 장이 독자에게 마지막으로 보여 주려는 것은 새로운 명령의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곳에서 말씀하신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7:89의 마지막에는 한 가지 해석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마지막을 바예다베르 엘라브, 곧 「그가 그에게 말했다」라는 구조로 마무리합니다. 여기에는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명사로 다시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문법적으로는 앞에서 들려온 음성의 주체가 모세에게 말씀하셨다고 이해할 수도 있고, 모세가 그분에게 말했다고 읽을 여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앞에 모세가 자신에게 말하는 음성을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출애굽기 25:22에서 하나님께서 바로 그 장소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겠다고 하셨으므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읽기는 문맥상 자연스럽습니다.
맺음 — 열두 날의 예물 뒤에 들려온 음성
각 지파의 이름은 따로 기록되지만, 제단은 하나입니다. 인간의 봉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방향을 얻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장면을 놓음으로써, 그 공동체의 중심이 단지 제단이나 예물 자체가 아님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민수기 7장의 마지막 장면은 제단 앞에 쌓인 예물이 아닙니다.
모세가 만남의 천막에 들어갑니다. 그 안에는 증언의 궤가 있고, 궤 위에는 속죄판이 있으며, 그 위에는 서로 마주한 두 커룹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음성이 들려옵니다.
수많은 예물의 목록이 끝난 뒤, 성경은 그 음성이 들려왔다는 사실만을 기록합니다. 열두 지파는 제단 앞에 예물을 가져왔고, 하나님께서는 그 성막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광야 한가운데 세워진 성막은 이제 봉헌되었습니다. 수레와 소는 성막을 옮길 준비가 되었고, 제단은 열두 지파의 예물로 봉헌되었습니다.
그리고 만남의 천막 안에서는 모세가 듣고 있습니다.
두 커룹 사이, 증언의 궤 위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민수기 7장은 그렇게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