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20장

이 장의 자리 · 17–21장 · 언약과 전쟁, 성전 터

왕관을 쓴 다윗과 거인들을 쓰러뜨린 신하들

역대상 20장은 두 종류의 승리를 기록합니다.

앞부분에서는 요압이 암몬의 수도 랍바를 함락하고, 다윗이 그 나라의 왕관과 전리품을 차지합니다. 뒷부분에서는 블레셋의 강력한 전사들이 차례로 등장하지만, 그들을 쓰러뜨리는 사람들은 다윗이 아니라 그의 신하들입니다.

다윗은 적국의 왕관을 차지하지만, 이어서 암몬의 주민들에게 끔찍한 폭력을 행사합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앞 장들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으로 등장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왕조를 굳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고, 그가 가는 곳마다 승리를 주셨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두 장면을 함께 읽으면 역대상 20장은 단순한 영웅담보다 복잡한 왕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읽는 시간 15분소단락 720장 본문 읽기 →

왕들이 출전할 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었다

역대상 20:1 본문 →

20장은 계절의 변화로 시작합니다.

해가 바뀌어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자, 요압은 군대를 이끌고 암몬 자손의 땅을 황폐하게 했다. 그는 랍바로 가서 그곳을 포위했다. 그동안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요압은 랍바를 쳐서 무너뜨렸다.역대상 20:1 · 본디새김

「해가 바뀌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의 해가 돌아오는 때를 가리키며, 일반적으로 겨울의 우기가 지난 봄철의 군사 활동과 연결하여 이해됩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날씨와 도로 상태, 식량 확보 등이 군사 활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왕들이 출전할 때」라고 말하면서 실제로 군대를 이끌고 나간 사람은 요압이라고 기록합니다.

이 사실만으로 다윗이 왕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왕이 모든 원정에 직접 참여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군대 지휘관에게 전쟁을 맡기는 일 자체가 잘못이라고 할 근거는 이 절에 없습니다.

역대기가 기록하지 않은 이야기

사무엘하 11:1도 거의 같은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사무엘하는 바로 그 상황에서 밧세바와 우리아의 이야기를 전개합니다(사무엘하 11:2–27).

다윗은 밧세바와 동침하고, 그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를 감추려 합니다. 결국 우리아가 전쟁터에서 죽도록 요압에게 지시합니다. 이어지는 사무엘하 12장에서는 나단이 다윗의 죄를 책망하고, 그 이후의 일들이 기록됩니다.

그런데 역대상 20장은 이 이야기를 모두 건너뜁니다.

사무엘하 11:1에서 시작하여 12:26–31에서 끝나는 랍바 전쟁의 기록을 거의 직접 연결한 것처럼 서술합니다. 사무엘하에서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다윗의 범죄와 나단의 책망이 역대상 20장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역대기 저자는 다윗의 죄를 의도적으로 감추려고 했을까요?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역대기가 다윗의 죄에 관한 모든 기록을 제외한 것도 아닙니다. 역대상 21장에는 다윗의 인구 조사와 그로 인한 심판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하는 이 시기에 다윗의 왕권과 가정에서 일어난 심각한 도덕적 위기를 상세하게 보여줍니다. 반면 역대상 20장은 암몬과의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를 중심으로 서술합니다. 따라서 역대상 20장을 읽으면서 사무엘하의 이야기를 모르는 것처럼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역대기가 직접 말하지 않은 내용을 이 장의 숨은 의도라고 확정해서도 안 됩니다.

랍바는 암몬의 수도로 알려진 성읍이며, 오늘날 요르단 암만 지역과 연결됩니다. 앞 장에서 암몬은 이스라엘과 전쟁을 시작했고, 아람의 군사적 지원까지 동원했으나 패배했습니다.

이제 전쟁은 암몬의 중심지를 공격하는 단계로 진행됩니다.

금 한 달란트의 왕관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역대상 20:2 본문 →

랍바가 함락된 뒤 다윗은 왕관을 차지합니다.

다윗은 그들의 왕의 머리에서 왕관을 벗겨 내고, 그 무게가 금 한 달란트임을 확인했다. 그 왕관에는 보석이 있었고, 그 왕관이 다윗의 머리에 놓였다. 그는 그 성읍에서 전리품을 매우 많이 가져왔다.역대상 20:2 · 본디새김

왕관은 단순히 값비싼 장신구가 아닙니다. 통치권과 왕의 지위를 드러내는 물건입니다. 따라서 적국의 왕관을 차지하는 행동은 그 나라의 왕권이 다윗 앞에 굴복했음을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빼앗은 것이 실제 암몬 왕이 쓰던 왕관인지, 암몬의 신상과 관련된 왕관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갈립니다. 본디새김은 「그들의 왕」이라는 읽기를 따릅니다. 어느 쪽으로 읽든 다윗이 암몬의 권위를 상징하는 귀중한 왕관을 차지했다는 점은 같습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왕관의 실용성이 아니라 왕권의 이전입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절에서 이 승리의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왕관의 화려함과 쉽게 조화시키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말캄은 「그들의 왕」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지만, 암몬의 신인 밀곰의 이름과 연결하여 읽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성경 전통에는 밀곰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읽기가 나타납니다. 암몬 사람들이 섬기던 밀곰은 열왕기상 11:5, 33 등에 등장합니다. 고대의 달란트는 무게 단위이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금 한 달란트는 대략 30킬로그램을 넘는 상당한 무게로 이해됩니다. 본문은 그 왕관이 다윗의 머리에 놓였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그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쓰고 있었는지, 왕관의 전체 구조가 어떠했는지, 혹은 의식에서 일시적으로 머리에 올려놓았는지까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전리품의 화려함 바로 뒤에 놓인 잔혹한 장면

역대상 20:3 본문 →

3절은 이 장에서 가장 불편하고 어려운 구절입니다.

그는 그곳에 있던 주민들을 끌어내어 톱과 날카로운 쇠 도구와 여러 톱으로 그들을 잘랐다. 다윗은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읍에 이와 같이 했다. 그런 다음 다윗과 온 백성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역대상 20:3 · 본디새김

이 내용을 강제 노동으로 읽어도, 주민들에게 가해진 폭력과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동시에 구체적으로 몇 명이 죽었는지, 주민 전체가 같은 방식으로 처형되었는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읍에 이와 같이 했다」는 기록도 다윗이 암몬의 다른 성읍들에 유사한 조치를 취했다는 뜻이지, 암몬 사람 모두가 예외 없이 죽었다는 통계적인 진술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행동이라면 정당한 것인가

다윗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왕조를 굳게 세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3절의 행동도 하나님이 승인하신 일이라고 보아야 할까요?

본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 장에는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에게 암몬 주민들을 그렇게 처벌하라고 명령하셨다는 말이 없습니다. 이 폭력적인 행동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는 선언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세우셨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행한 모든 일을 하나님이 승인하셨다는 주장은 서로 다릅니다.

물론 역대상 20장 자체가 다윗의 행동을 명시적으로 정죄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자는 그 행동을 기록하지만, 그 자리에서 별도의 도덕적 평가를 덧붙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장에 명시적인 정죄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없고, 정죄가 없으므로 그 행동이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역대상 22:8에서 여호와야훼는 다윗이 많은 피를 흘리고 큰 전쟁들을 치렀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위한 집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역대상 28:3에도 같은 이유가 나옵니다. 그 말씀을 곧바로 역대상 20:3의 특정 행동만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22장의 말씀은 다윗이 치른 전쟁과 피 흘림을 더 넓게 가리킵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왕이지만, 그 자신은 많은 피를 흘린 왕이기도 합니다.

구약에서 왕은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왕은 하나님 아래에 있으며, 그분의 말씀과 판단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신명기 17:18–20은 이스라엘의 왕이 율법을 읽고 지켜야 하며, 자기 형제들 위에 마음을 높이지 말아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이 명령은 왕이 아무리 강력해져도 자신의 권력을 궁극적인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승리자의 관점으로 쓰인 기록

2절에서는 다윗의 머리에 놓인 왕관과 그가 가져온 많은 전리품을 기록합니다. 3절에서는 암몬 주민들이 당한 일을 기록합니다. 같은 전쟁의 결과지만 한쪽에는 권력과 부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폭력과 고통이 있습니다.

본문의 서술은 승리한 다윗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암몬 주민들의 이름이나 말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느꼈고 어떤 저항을 했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자가 기록한 승리의 결과를 이해하면서도, 그 승리가 정복당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완전히 알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성경이 다윗의 승리를 기록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 고통을 외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무거운 기록 뒤에서 이야기는 갑자기 다른 전쟁들로 넘어갑니다.

조금 더 깊이

역대상 20:3에는 바야사르라는 동사가 사용됩니다. 이 표현은 톱으로 자르는 행위와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디새김처럼 주민들을 톱과 쇠 도구로 잘랐다는 뜻으로 읽는 것은 히브리어 문면에 근거한 해석입니다. 그러나 병행 본문인 사무엘하 12:31에는 다른 동사 바야셈, 곧 「두었다」라는 표현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무엘하의 문장을 주민들에게 도구를 사용하게 하는 강제 노동으로 이해하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두 본문의 동사와 도구 목록에는 실제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겼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모든 번역상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불확실성을 이유로 역대상 20:3의 잔혹한 표현을 없애 버려서도 안 됩니다.

이제 블레셋의 강한 전사들을 쓰러뜨리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역대상 20:4–5 본문 →

4절에서는 새로운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 뒤에 게셀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이 벌어졌다. 그때 후사 사람 십브개가 르바임의 자손 가운데 하나인 십배를 쳐 죽였고, 블레셋 사람들은 굴복했다.역대상 20:4 · 본디새김

십브개는 역대상 11:29에서 다윗의 용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역대상 27:11에서는 군대의 지휘관으로도 기록됩니다.

르바임이라는 말은 구약에서 특별히 큰 체격이나 강한 전사들과 연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명기 2:10–11, 20–21과 3:11에는 르바임과 관련된 고대 민족들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역대상 20장에서는 블레셋 전사들의 특별한 출신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본문의 관심은 그들의 신체적 특징 자체보다, 그런 강력한 전사들도 이스라엘의 용사들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골리앗의 이름이 다시 등장하다

다음 절에서는 더욱 익숙한 이름이 등장합니다.

다시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이 벌어졌다.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형제 라흐미를 쳐 죽였다. 라흐미의 창 자루는 베 짜는 이들의 베틀 가로대 같았다.역대상 20:5 · 본디새김

골리앗은 이미 사무엘상 17장에서 다윗에게 패배한 블레셋 전사입니다. 「베틀 가로대」라는 표현은 사무엘상 17:7에서 골리앗의 창 자루를 묘사할 때도 사용됩니다. 단순히 창이 컸다고 말하지 않고, 베를 짜는 데 사용하는 기구의 굵은 가로대에 비유합니다. 이것은 전사의 무기와 힘을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문학적인 표현입니다.

이 표현이 반복됨으로써 독자는 이전에 다윗이 상대했던 골리앗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골리앗과 관련된 강한 전사를 다윗이 아니라 엘하난이 쓰러뜨립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제 더 특이한 신체적 특징을 가진 전사를 소개합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하 21:19의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을 죽였다고 읽힙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17장에서는 다윗이 골리앗을 죽입니다. 역대상 20:5는 엘하난이 죽인 사람이 골리앗의 형제 라흐미라고 기록합니다. 특히 사무엘하 21:19에서는 엘하난의 출신을 「베들레헴 사람」으로 읽는 부분이 있는데, 역대상 20:5에는 「라흐미」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히브리어의 두 표현은 글자와 배열에서 서로 연관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사무엘하에서 엘하난의 아버지 이름에는 「베 짜는 사람들」이라는 뜻과 연결될 수 있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같은 절 끝에 나오는 베틀 가로대의 표현과도 관련되어 본문 전승상의 문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한쪽에서는 사무엘하의 본문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글자나 단어의 배열에 문제가 생겼고, 역대상이 더 명확한 기록을 보존하고 있다고 이해합니다. 다른 쪽에서는 서로 다른 전승이 존재했으며, 역대상이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다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와 조화를 이루도록 서술했다고 이해합니다. 어느 설명이 정확한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스물네 개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가진 전사

역대상 20:6–7 본문 →

6절에는 가드 출신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다시 가드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그곳에는 몸집이 큰 사람이 있었는데, 손가락과 발가락이 손과 발마다 여섯 개씩 모두 스물네 개였다. 그도 라파의 자손이었다.역대상 20:6 · 본디새김

이 전사는 이름이 기록되지 않습니다. 대신 그의 신체적 특징이 자세히 기록됩니다. 이 장의 문맥에서는 그 전사가 보통의 전사와 다른 인상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런 신체적 특징이 그의 도덕적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이 그에 대해 직접 부정적으로 말하는 행동은 다음 절에 나타납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조롱하자, 다윗의 형제인 시므아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쳐 죽였다.역대상 20:7 · 본디새김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블레셋 전사의 모습은 사무엘상 17장에서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때 골리앗은 이스라엘 진영을 향해 도전했고, 다윗은 그의 말을 듣고 나아가 싸웠습니다(사무엘상 17:10, 26, 45–47).

그러나 이번에는 다윗이 직접 그 전사와 싸우지 않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조카에 해당합니다. 사무엘상 16:9에도 다윗의 형제 삼마가 등장하며, 역대상 2:13은 시므아라는 이름을 기록합니다. 이런 가족 관계가 언급되면서 다윗의 친족 가운데서도 용사들이 활약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사를 두렵게 만드는 신체적 특징은 이야기의 앞부분에 길게 묘사되지만, 그를 쓰러뜨리는 일은 한 문장으로 끝납니다. 이것은 본문이 외형적인 강함을 어떻게 상대화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강력한 몸과 무기를 가진 전사라도 패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신체적으로 남다른 특징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께 미움을 받았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전사의 신체적 특징은 그의 힘과 인상적인 외모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과 대적하여 싸웠다는 사실은 별도의 행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본문은 그 두 사실을 기록하지만, 신체적인 차이 자체를 죄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러한 특징은 오늘날 의학적으로 다지증이라고 부르는 선천적인 신체 특징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사람의 정확한 의학적 상태나 유전적인 배경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많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가 보통 사람과 전혀 다른 종류의 존재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윗의 손과 그의 신하들의 손」이라는 마지막 문장

역대상 20:8 본문 →

이 장의 마지막 절은 앞에서 등장한 전사들을 한데 묶습니다.

이들은 가드에서 태어난 라파의 자손들이었다. 그들은 다윗의 손과 그의 신하들의 손에 쓰러졌다.역대상 20:8 · 본디새김

4절에서 십배를 쓰러뜨린 사람은 십브개였습니다. 5절에서 라흐미를 쓰러뜨린 사람은 엘하난이었습니다. 7절에서 몸집이 큰 전사를 쓰러뜨린 사람은 요나단이었습니다.

여기서 「다윗의 손」은 다윗이 앞의 전사들을 모두 직접 죽였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다윗과 그의 신하들이 함께 이룬 군사적 승리를 요약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하들이 거둔 승리는 다윗의 통치 아래 이루어진 승리이기도 합니다.

이 구절은 왕의 역할과 신하들의 역할을 분리하지 않으면서도 각각의 이름을 남깁니다.

이 점에서 역대상 20장은 사무엘상 17장의 다윗 이야기와 흥미로운 대조를 이룹니다. 그때 다윗은 아직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울 왕의 군대 앞에 나타난 블레셋의 강력한 전사 골리앗과 맞섰습니다.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던 적을 젊은 다윗이 쓰러뜨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윗은 이미 왕입니다.

블레셋의 강력한 전사들이 다시 등장하지만, 이제 그들을 상대하는 사람은 다윗 한 사람이 아닙니다. 십브개가 있고, 엘하난이 있고, 요나단이 있습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리던 다윗의 이야기가, 여러 용사가 강력한 적들을 쓰러뜨리는 왕국의 이야기로 넓어집니다.

이 사실은 역대상 11장에서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을 기록한 장면과도 연결됩니다. 역대기는 다윗이 왕으로 세워진 과정을 기록하면서 그를 도운 사람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왕권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지만, 그 왕국을 지키는 일은 여러 사람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왕관을 쓴 다윗과 이름을 남긴 용사들

역대상 20:1–8 본문 →

다윗이 강력한 왕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행사한 폭력에 대한 질문을 없애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약속받은 왕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이 장이 오직 협력의 아름다움만을 말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같은 왕권 아래에서 전쟁의 승리도 있었고, 정복당한 주민들에 대한 심각한 폭력도 있었습니다.

왕관은 다윗의 머리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지킨 모든 손이 다윗의 손만은 아니었습니다.

본문은 다윗의 왕권을 인정하면서도, 그 왕 곁에서 싸운 사람들의 손을 잊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왕의 머리에 놓인 왕관이 보였지만, 마지막에는 왕과 그의 신하들의 손이 남습니다.

한 왕의 통치 아래에서 이루어진 승리였지만, 그 역사를 실제로 만들어 간 사람들은 왕 혼자만이 아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