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12장

이 장의 자리 · 8–15장 · 첫 왕이 된 사울

두려움 속에서도 여호와야훼를 따르는 길

이스라엘은 마침내 왕을 얻었습니다. 사울은 암몬 군대를 물리쳤고, 백성은 길갈에 모여 그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 앞에 제사를 드리며 더없이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의 자리에서 사무엘이 뜻밖의 말을 꺼냅니다.

왕을 요구한 일이 여호와야훼 보시기에 큰 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밀을 거두는 계절에 천둥과 비가 내리자, 백성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왕을 얻어 기뻐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죄 때문에 죽게 될까 봐 떨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사무엘은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무엘은 백성의 죄를 조금도 가볍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들이 악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합니다. 그러면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어떻게 두 말이 동시에 참일 수 있을까요?

사무엘상 12장은 인간이 이미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읽는 시간 23분소단락 812장 본문 읽기 →

사무엘은 왜 자신의 결백부터 확인하는가

사무엘상 12:1–5 본문 →

새로운 왕 앞에서 옛 지도자가 묻는 질문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에게 말합니다.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말했다. 「보십시오. 나는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고 여러분이 내게 한 모든 말대로 여러분 위에 왕을 세웠습니다.」사무엘상 12:1 · 본디새김

이어서 자신의 나이가 많아졌으며, 젊었을 때부터 이스라엘을 이끌어 왔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제 백성을 이끄는 왕이 따로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여기서 은퇴를 선언하거나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백성에게 자신을 고발할 기회를 줍니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 여호와야훼 앞에서, 또 그분이 기름 부으신 이 앞에서 나에 대해 증언하십시오.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습니까?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습니까? 누구를 착취했습니까? 누구를 짓눌렀습니까? 누구에게서 뇌물을 받고 그 때문에 눈을 감았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에게 돌려주겠습니다.」사무엘상 12:3 · 본디새김

그는 여호와야훼와 기름 부음 받은 왕 앞에서 백성의 증언을 요구합니다. 자신의 지도력을 평가하는 자리에 하나님뿐 아니라 자신을 이어 백성을 다스릴 사울까지 증인으로 세운 것입니다.

사무엘은 자신의 권위로 백성을 심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백성의 심판 앞에 세웁니다.

소와 나귀를 빼앗지 않았다는 말의 의미

사무엘의 질문에는 소와 나귀가 구체적으로 등장합니다. 이것들은 농경 사회에서 중요한 재산이자 노동 수단입니다. 지도자가 이러한 것들을 빼앗는다면 백성은 생계를 유지할 수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사무엘상 8:11–17에서 사무엘은 왕이 백성의 자녀와 땅과 가축을 가져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무엘은 자신이 백성에게서 소나 나귀를 빼앗은 적이 있는지 묻습니다.

앞에서는 왕이 무엇을 가져갈 것인지가 문제였습니다. 여기서는 사무엘이 무엇을 가져갔는지가 문제입니다.

그는 자신의 업적보다 자신이 백성에게 저지른 잘못이 있는지를 먼저 묻습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뇌물을 받고 재판을 왜곡했습니다(8:3). 그러나 사무엘은 자신이 그러한 일을 했는지 공개적으로 확인받습니다. 그렇다고 이 선언이 사무엘의 아들들의 잘못까지 지워 주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부패는 이미 기록되어 있고, 사무엘은 여기서 아들들의 결백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백성이 사무엘을 무죄라고 증언하다

백성은 대답합니다.

그들이 말했다. 「당신은 저희를 착취하지도 짓누르지도 않으셨고, 누구에게서도 아무것도 받지 않으셨습니다.」사무엘상 12:4 · 본디새김

이것은 사무엘이 자신의 결백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과 다릅니다. 사무엘은 이어 여호와야훼와 기름 부음 받은 왕이 이 증언의 증인이라고 선언하고, 백성도 이에 동의합니다.

이제 사무엘의 지도자 생활에 관한 공개적인 확인이 끝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이야기의 방향이 바뀝니다.

앞에서는 사무엘이 백성에게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가 문제였습니다. 이제는 백성이 여호와야훼께 어떻게 응답해 왔는지가 문제가 됩니다. 사무엘은 먼저 자신에 대한 고발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그다음에는 백성이 자신들의 역사를 판단하도록 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증거로 삼다

사무엘상 12:6–11 본문 →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법정의 증거

사무엘은 백성에게 자리를 잡고 서라고 말합니다.

「이제 자리를 잡고 서십시오.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행하신 모든 의로운 일을 들어, 내가 여호와야훼 앞에서 여러분과 시비를 가리겠습니다.」사무엘상 12:7 · 본디새김

사무엘이 지금 하려는 일은 단순한 역사 교육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판단할 증거로 과거의 사건들을 제시하려 합니다. 그 증거가 바로 여호와야훼께서 행하신 ‘의로운 일’입니다. 이 문맥에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행하신 구원의 행동들이 그분의 의로움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분은 고통받는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그들을 건져 내셨으며,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여호와야훼를 잊는 백성과 그들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사무엘의 역사 회고는 네 가지 움직임으로 전개됩니다. 이스라엘의 부르짖음, 하나님의 구원, 이스라엘의 망각, 그리고 다시 부르짖는 백성에게 주어지는 구원입니다.

첫 번째 사건은 출애굽입니다.

「야곱이 이집트에 들어간 뒤 여러분의 조상들이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자,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셨습니다. 그들이 여러분의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이곳에 살게 했습니다.」사무엘상 12:8 · 본디새김

이스라엘의 역사는 도움을 요청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응답하신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백성이 여호와야훼를 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잊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들을 하솔의 군대 지휘관 시스라의 손에,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모압 왕의 손에 팔아넘기셨습니다. 이들이 여러분의 조상들과 싸웠습니다.」사무엘상 12:9 · 본디새김

여기서 ‘잊었다’는 말은 하나님에 관한 정보가 기억에서 사라졌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백성은 여호와야훼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10절). 자신들을 구원하신 분을 알고 있었지만, 그분께 마땅히 드려야 할 충성과 예배를 다른 대상에게 돌린 것입니다.

시스라와 블레셋 사람들, 모압 왕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을 위협했던 세력들과 연결됩니다(사사기 3:12–14; 4:2–3; 10:7). 사무엘은 여기서 사사 시대의 사건들을 정확한 연대순으로 정리하지 않습니다. 그의 관심은 반복되는 역사의 성격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고, 원수들의 지배를 받게 되며, 고통 속에서 다시 부르짖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으며 말했습니다. 『저희가 죄를 지었습니다. 저희가 여호와야훼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들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희를 원수들의 손에서 구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희가 당신을 섬기겠습니다.』」사무엘상 12:10 · 본디새김

이 고백은 사사기 10:10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회개와 매우 가깝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적을 물리쳐 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왜 이런 상황에 놓였는지 고백합니다.

여기서 ‘섬긴다’는 말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백성은 바알들과 아스다롯들을 섬겼고, 이제 여호와야훼를 섬기겠다고 약속합니다. 문제는 도움을 요청할 대상이 부족했던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섬길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셨다

사무엘은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에게 보내신 구원자들을 열거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여룹바알과 베단과 입다와 사무엘을 보내시고, 사방에 있는 원수들의 손에서 여러분을 구해 내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안전하게 살았습니다.」사무엘상 12:11 · 본디새김

여룹바알은 기드온의 다른 이름이며(사사기 6:32), 입다는 암몬 사람들과 싸운 지도자입니다(사사기 11:29–33).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는 베단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사기에 이 이름을 가진 구원자가 분명하게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칠십인역의 사무엘상 12:11은 이 자리에 ‘바락’을 기록합니다. 바락은 사사기 4–5장에서 드보라와 함께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바락으로 읽으면 알려진 구원자들의 목록이 되지만, 마소라 본문의 베단을 누구와 동일시해야 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베단을 다른 인물로 바꾸어 확정하기보다 본문 전승의 차이를 인정하는 편이 신중합니다.

또한 사무엘이 자신의 이름을 구원자들의 목록에 포함하는 것도 특이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7:8–13은 사무엘이 여호와야훼께 부르짖고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받은 사건을 기록합니다. 따라서 그가 자기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반드시 문맥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 목록에서 더 중요한 것은 구원자들의 이름보다 반복되는 주어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보내셨습니다.

모세와 아론도 여호와야훼께서 보내셨고, 사사 시대의 구원자들도 여호와야훼께서 보내셨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시대에 등장했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들의 활동을 하나의 역사로 묶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보내시어 자기 백성을 구하셨다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왕이 없던 시대에도 자기 백성을 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왕이 생긴 뒤에도 구원의 근원이 왕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왕을 요구한 백성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길

사무엘상 12:12–15 본문 →

암몬 왕 나하스와 이스라엘의 선택

사무엘은 과거의 구원 역사에서 현재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여러분을 치러 오는 것을 보고 내게 『아닙니다. 왕이 저희를 다스려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의 왕이신데도 말입니다.」사무엘상 12:12 · 본디새김

앞서 사무엘상 8장에서 장로들은 사무엘의 노년과 아들들의 부패를 언급하며 왕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암몬 왕의 위협이 그 요구와 연결됩니다. 두 설명을 반드시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지도 체제의 불안정과 외부의 군사적 위협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왕을 요구한 일이 왜 하나님에 대한 거부로 평가되었는지 다시 드러납니다. 백성에게는 현실적인 위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협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해 오신 여호와야훼의 통치보다 눈에 보이는 인간 왕을 의지하려 했습니다.

「여러분이 고른 왕」과 「여호와야훼께서 세우신 왕」

사무엘은 사울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제 보십시오. 여러분이 고르고 여러분이 요구한 왕이 여기 있습니다. 보십시오.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 위에 왕을 세우셨습니다.」사무엘상 12:13 · 본디새김

사울은 백성의 요구와 하나님의 선택이 만나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두 행동이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백성은 자신들이 원하는 통치 체제를 요구했고, 여호와야훼께서는 그 요구를 허락하면서 사울을 세우셨습니다. 백성에게는 자신들이 요구한 일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동시에 사울의 왕권은 여호와야훼께서 세우신 질서 안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왕이 세워진 이스라엘에게 앞으로 어떤 길이 남아 있을까요?

왕정이 시작되어도 하나님을 따를 수 있다

「여러분이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목소리에 순종하고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으면, 여러분도 여러분을 다스리는 왕도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사무엘상 12:14 · 본디새김

사무엘은 왕정 자체를 당장 없애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왕이 있는 상태에서도 여호와야훼를 따르는 길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여러분도 여러분을 다스리는 왕도」입니다. 왕이 여호와야훼를 대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이 왕에게 복종하면 자동으로 여호와야훼께 순종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왕 역시 여호와야훼의 말씀 아래에 있습니다.

14절의 히브리어 문장은 조건절과 마지막 구절의 연결을 어떻게 이해할지 조금 모호합니다. 본디새김처럼 마지막을 순종의 결과로 읽을 수 있고, 왕과 백성이 여호와야훼를 따르는 것까지 순종의 조건에 포함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정은 여호와야훼께 대한 순종에서 독립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여호와야훼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고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야훼의 손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조상들을 대적할 것입니다.」사무엘상 12:15 · 본디새김

여기에는 한 가지 본문상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조상들’이라고 읽지만, 칠십인역의 사무엘상 12:15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왕’을 대적한다는 취지로 읽습니다.

칠십인역의 읽기는 바로 앞 절에서 백성과 왕을 나란히 말한 문맥에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반면 마소라 본문의 읽기는 조상들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심판을 현재의 백성과 연결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느 읽기가 더 오래된 형태인지는 이 구절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장의 마지막인 25절에서는 분명히 백성과 왕이 함께 심판받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왕을 얻었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사무엘은 이 사실을 말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행동을 직접 보게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조금 더 깊이

나하스가 야베스 길르앗을 공격한 사건은 11장에서 서술되지만, 사무엘은 여기서 그 위협을 왕을 요구하게 된 계기로 제시합니다. 따라서 나하스의 위협이 왕을 요구하던 시기에 이미 알려져 있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협이 언제 처음 시작되었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밀을 거두는 계절에 내린 천둥과 비

사무엘상 12:16–18 본문 →

왜 하필 밀 수확철인가

사무엘은 백성에게 다시 자리를 잡고 서라고 합니다.

「이제 다시 자리를 잡고 서서,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 눈앞에서 행하시는 이 큰일을 보십시오.」사무엘상 12:16 · 본디새김
「지금은 밀을 거두는 때가 아닙니까? 내가 여호와야훼께 부르짖겠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천둥과 비를 보내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들을 위해 왕을 요구한 것이 여호와야훼 보시기에 얼마나 큰 악인지 보고 깨달으십시오.」사무엘상 12:17 · 본디새김

백성은 평소의 날씨라면 예상하지 않았을 천둥과 비를 보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그것은 사무엘이 여호와야훼께 부르짖겠다고 말한 직후 일어납니다.

천둥과 비는 여호와야훼께서 사무엘의 기도에 응답하셨음을 보여 주는 표징이 됩니다.

이전에는 적에게 울렸던 천둥

사무엘상 7:10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러 왔을 때 여호와야훼께서 큰 천둥을 울리셨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혼란에 빠졌고, 이스라엘은 승리했습니다.

적군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천둥 앞에서 두려워합니다.

똑같이 여호와야훼께서 일으키시는 천둥이지만, 그 천둥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위치가 달라졌습니다. 앞에서는 여호와야훼의 능력이 원수들을 향했습니다. 이제는 자기 백성이 그 능력 앞에서 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이스라엘을 적으로부터 구원하는 데만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백성이 잘못된 길을 걸을 때, 그들을 깨닫게 하는 데에도 나타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의 편이시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든 무조건 정당화해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백성의 목소리를 들었던 사무엘, 하나님의 천둥소리를 듣는 백성

이 장의 처음에서 사무엘은 자신이 백성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1절). 14–15절에서는 백성이 여호와야훼의 목소리에 순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제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사무엘이 여호와야훼에게 부르짖자, 여호와야훼가 그날 천둥과 비를 보냈다. 온 백성이 여호와야훼와 사무엘을 매우 두려워했다.사무엘상 12:18 · 본디새김

앞서 사무엘은 자신을 여호와야훼 앞에 세워 백성의 증언을 구했습니다. 이제 그는 백성을 여호와야훼 앞에 세워 그분이 행하시는 일을 보게 합니다.

이제 그들은 왕을 얻은 기쁨보다 하나님을 거부한 죄의 무게를 더 크게 느낍니다.

조금 더 깊이

이스라엘 땅에서는 대체로 늦가을부터 봄까지 비가 내리고, 밀 수확이 이루어지는 늦봄에는 건기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밀 수확기에 천둥을 동반한 비가 내리는 일은 예상하기 어려운 현상입니다. 잠언 26:1도 여름의 눈과 수확 때의 비를 제자리에 맞지 않는 일의 예로 사용합니다.

「죽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사무엘상 12:19–21 본문 →

백성은 죄를 인정한다

천둥과 비 앞에서 두려워하던 백성이 사무엘에게 말합니다.

온 백성이 사무엘에게 말했다. 「저희가 죽지 않도록 당신의 종들을 위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기도해 주십시오. 저희는 저희의 모든 죄에 더하여, 저희를 위한 왕을 요구하는 악까지 저질렀습니다.」사무엘상 12:19 · 본디새김

왕을 요구할 때 백성은 자신의 필요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이미 죄를 반복해 온 역사 속에서 이번에도 하나님을 거스르는 선택을 했다는 고백입니다.

조상들은 고난 속에서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제 백성도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는 죄를 가볍게 여기는 말이 아니다

사무엘은 대답합니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 모든 악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지 말고, 마음을 다해 여호와야훼를 섬기십시오.」사무엘상 12:20 · 본디새김

그들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이제부터 하나님을 따르는 길이 닫힌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의 말씀은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앞으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권면입니다.

그들은 왕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왕을 얻었습니다. 이제 그 선택을 되돌려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상태에서 여호와야훼를 따를 수는 있습니다.

회개는 과거의 잘못이 일어나지 않았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그 잘못을 인정한 채 하나님께 향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어느 방향으로 향해야 하는가

이 장에는 처음 보면 모순처럼 보이는 두 명령이 있습니다. 20절에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24절에서는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라고 합니다.

20절에서 사무엘이 멈추게 하려는 것은 죄를 깨달은 백성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며 절망하는 상태입니다. 반면 24절에서 요구하는 두려움은 여호와야훼의 권위와 거룩함을 인정하고 그분을 진실하게 섬기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피하려는 두려움에서, 하나님을 따르게 하는 경외로 나아가게 합니다.

헛된 것들은 왜 구원하지 못하는가

사무엘은 이어 말합니다.

「돌아서지 마십시오. 돌아서면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하고 구해 주지도 못하는 헛된 것들을 따르게 됩니다. 그것들은 헛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사무엘상 12:21 · 본디새김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본문이 명시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바알들과 아스다롯들을 섬겼던 역사를 언급했으므로, 다른 신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특정 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구해 주지도 못하는’ 헛된 것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무엘은 역사 회고를 통해 여호와야훼께서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은 실제로 구원할 능력이 없는 대상들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왕이라는 제도 자체가 아무 유익도 없다는 선언으로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사울은 실제로 야베스를 구하는 일에 쓰임받았습니다.

문제는 인간의 지도자나 다른 대상을 여호와야훼의 자리에 놓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하나님을 대신하는 궁극적인 구원자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백성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무엘에게 중보를 요청합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라는 표현에 그들의 두려움과 거리감이 담겨 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호와야훼와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졌다고 선언한 것은 아닙니다. 죄를 깨달은 백성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이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는 이유

사무엘상 12:22 본문 →

이제 사무엘의 말씀이 가장 중요한 근거에 도달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자신의 위대한 이름을 위해 자신의 백성을 저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기꺼이 여러분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사무엘상 12:22 · 본디새김

백성의 충실함보다 앞서는 하나님의 뜻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일은 강요받아 하신 행동이 아닙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은 신명기 7:7–8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 선택된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시기 때문에 선택되었다고 말합니다. 두 본문은 하나님의 선택이 이스라엘의 뛰어남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점을 공유합니다.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여호와야훼께 충실했기 때문에 그분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먼저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그들의 실패 이후에도 관계를 이어 갈 길이 남아 있습니다.

「자신의 위대한 이름을 위해」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단순히 그분을 부르는 호칭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시며 세상 가운데 어떻게 알려지시는가 하는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출애굽기 32:11–14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든 뒤,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그 백성을 이끌어 내신 사실과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근거로 그들을 멸하지 말아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구원과 약속이 백성을 위한 간구의 근거가 됩니다. 사무엘상 12장에서는 그 생각이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고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맺으신 관계에는 여호와야훼 자신의 이름이 걸려 있습니다.

다만 이 약속을 이스라엘이 앞으로 무엇을 하더라도 어떤 심판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마지막 25절에서 사무엘은 백성과 왕이 함께 쓸려 없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22절의 약속과 25절의 경고는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합니다. 22절은 죄를 지은 백성이 이제 하나님께 돌아갈 길이 완전히 막혔는지에 답합니다. 25절은 그들이 계속 악을 행해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지에 답합니다.

이 약속은 죄를 가볍게 만드는 허가가 아니라, 죄를 깨달은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하는 근거입니다.

지도자의 자리는 바뀌지만 기도는 끝나지 않는다

사무엘상 12:23–25 본문 →

사무엘은 무엇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말하는가

사무엘의 말씀은 여기서 또 하나의 뜻밖의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나 역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기를 그만두어 여호와야훼께 죄를 짓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선하고 곧은 길을 가르치겠습니다.」사무엘상 12:23 · 본디새김

사무엘은 백성을 위한 기도를 중단하는 일을 단순히 자신의 개인적인 부족함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 죄를 짓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사무엘은 오랫동안 백성을 위해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어 온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7장에서 백성은 사무엘에게 자신들을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고, 사무엘은 그들을 위해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었습니다(7:8–9). 이번에도 백성은 자신들이 죽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사무엘은 그 요청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백성이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왕을 요구했어도, 그는 백성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왕이 백성을 이끄는 시대가 시작되었지만, 사무엘은 여전히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길을 가르칠 사람입니다.

기도와 가르침이 함께 남는다

사무엘은 기도만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는 백성이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시기를 간구할 것입니다. 동시에 그들이 계속 잘못된 길을 걷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것입니다.

기도만 하고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면 백성은 자신들의 잘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잘못을 지적하고 가르치기만 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사무엘은 백성의 실패를 고발하는 사람으로만 남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은 백성이 옳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잘못했어도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기도를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그가 맡은 역할은 달라지지만, 백성을 향한 책임은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 권면의 중심은 과거를 기억하는 일

사무엘은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다만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고 마음을 다해 그분을 진실하게 섬기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큰일을 하셨는지 보십시오.」사무엘상 12:24 · 본디새김

이 말씀은 7절의 역사 회고와 16절의 천둥과 비를 하나로 연결합니다. 7절에서 백성은 여호와야훼께서 과거에 행하신 의로운 일을 돌아보아야 했습니다. 16절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지금 그들 앞에서 행하시는 큰일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24절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에게 행하신 큰일들을 기억하며 진실하게 섬겨야 합니다.

사무엘이 제시하는 순종의 출발점은 막연한 두려움이나 의무감만이 아닙니다.

자신들을 위해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 아는 것입니다.

왕도 백성도 심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무엘의 마지막 말씀은 다시 경고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참으로 악을 행한다면, 여러분도 여러분의 왕도 쓸려 없어질 것입니다.」사무엘상 12:25 · 본디새김

왕은 백성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그 자신도 여호와야훼의 판단 아래 있습니다. 백성 또한 왕이 있으므로 자신들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외부의 위협을 막을 왕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있다고 해서 여호와야훼의 심판까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왕은 이스라엘을 적의 손에서 구하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을 거스르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손에서 구해 낼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죄를 깨달은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길

사무엘상 12:1–25 본문 →

백성은 이미 왕을 얻었습니다. 그 선택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왕이 있는 삶 속에서 여호와야훼를 따를 수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위대한 이름을 위해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장면을 돌아보면, 밀을 거두는 계절에 천둥과 비가 내렸습니다. 백성은 두려워했고,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인정했습니다. 사무엘은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고 진실하게 섬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의지해야 할 것은 새로 얻은 왕의 힘만도, 자신들의 결백도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을 구원해 오셨고, 죄를 지은 뒤에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뜻을 거두지 않으시는 여호와야훼였습니다.

이제 백성과 왕 앞에는 아직 걸어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의 마지막 말은 그 길의 위험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참으로 악을 행한다면, 여러분도 여러분의 왕도 쓸려 없어질 것입니다.」 천둥과 비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달은 백성에게, 그 경고는 왕을 세우기 전보다 더욱 무겁게 들렸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왕도 함께 여호와야훼를 따라야 합니다.

사무엘상 12장은 왕을 얻은 백성에게, 왕이 있어도 여전히 들어야 할 하나님의 목소리가 있음을 남긴 채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