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8–15장 · 첫 왕이 된 사울

백성이 흩어질 때 왕이 붙들어야 할 것

사울은 위기에 처했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몰려오고,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워 숨거나 도망칩니다. 사울 곁에 남아 있던 사람들마저 하나둘 흩어집니다. 사무엘이 오기로 한 날까지 기다렸지만, 사무엘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울은 마침내 번제를 바칩니다.

그런데 제사를 마치자마자 사무엘이 도착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어땠을까요? 사무엘은 왜 정해진 때에 오지 않았을까요? 군대가 흩어지는 상황에서 왕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야 했을까요?

본문은 사울의 행동을 명령에 대한 불순종으로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정확히 무엇을 어겼으며, 왜 그 일이 왕권의 미래까지 바꿀 만큼 중대한 문제였을까요?

사무엘상 13장은 어려운 상황에서 종교적인 행동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눈앞의 현실이 충돌하는 듯할 때 왕이 무엇을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가를 묻습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713장 본문 읽기 →

왕이 된 뒤 처음으로 시작된 큰 전쟁

사무엘상 13:1–4 본문 →

「사울은 한 살에 왕이 되었고」

본문의 첫 절은 독자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사울은 한 살에 왕이 되었고, 이스라엘을 두 해 동안 다스렸다.사무엘상 13:1 · 본디새김

이 절은 본문 전승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대표적인 구절입니다. 사울은 이미 아버지의 일을 맡아 여행했고, 이 장에서는 군대를 이끄는 성인이며 아들 요나단도 등장합니다.

문장의 형태는 일반적인 왕의 즉위 나이와 재위 기간을 소개하는 공식과 같습니다. 사무엘하 5:4에서 다윗의 즉위 나이와 통치 기간을 소개하는 방식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나이를 나타내는 숫자는 정상적으로 보존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오래된 칠십인역 사본 가운데는 이 절 전체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부 후대 그리스어 사본에는 서른 살이라는 숫자가 나타나지만, 그것을 원래의 나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신약의 사도행전 13:21은 사울의 통치 기간을 사십 년으로 전하지만, 그 숫자를 13:1의 누락된 부분에 그대로 대입해 원래 문장을 복원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 절에서 사울의 정확한 즉위 나이와 전체 재위 기간을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요나단이 공격했는데 왜 사울의 이름이 알려지는가

사울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삼천 명을 골라 군대를 구성합니다.

이천 명은 사울과 함께 있고, 천 명은 그의 아들 요나단과 함께 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 자기 천막으로 돌아갑니다. 앞서 그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백성을 소집하여 암몬과 싸웠습니다. 이제는 일정한 병력을 선발하여 자신과 아들의 지휘 아래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블레셋을 공격한 사람은 사울이 아닙니다.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주둔대를 쳤고, 블레셋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들었다. 사울은 온 땅에 뿔나팔을 불며 말했다. 「히브리 사람들은 들어라.」사무엘상 13:3 · 본디새김

이스라엘에 퍼진 소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사울이 블레셋 주둔대를 쳤고, 이스라엘도 블레셋 사람들에게 역겨운 존재가 되었다.」라는 소식을 들었다. 백성은 소집되어 사울을 따라 길갈로 모였다.사무엘상 13:4 · 본디새김

사울이 아들의 공적을 가로채려고 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본문은 사울에게 그런 의도가 있었다고 밝히지 않습니다. 보다 직접적인 설명은 이 사건이 사울의 왕권 아래 이루어진 군사 행동으로 알려졌다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사울이 조직한 군대의 일부를 지휘하고 있었으며, 블레셋과의 충돌은 결국 이스라엘 왕 사울이 감당해야 할 일이 되었습니다.

‘역겨운 존재’가 되었다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악취를 풍기게 되었다는 비유에서 나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심하게 미워하거나 적대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제 주둔대에 대한 공격은 단순한 국지적 충돌로 끝나지 않습니다.

왕과 그의 아들이 시작한 행동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전쟁의 위험을 맞게 됩니다. 사울은 뿔나팔을 불어 사람들을 소집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가 예상했을 법한 규모를 훨씬 넘어서는 적군이 몰려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주둔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치브(⁨נְצִיב⁩)는 군사적 주둔 시설이나 주둔 세력, 또는 임명된 관리 등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정확히 무엇을 공격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지만, 이 문맥에서는 블레셋의 지배를 나타내는 거점을 공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닷가의 모래 같은 군대 앞에서 흩어지는 백성

사무엘상 13:5–7 본문 →

블레셋 군대는 얼마나 강했는가

본문은 블레셋 군대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다. 병거가 삼만 대, 기병이 육천 명이었고, 병력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았다. 그들은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을 쳤다.사무엘상 13:5 · 본디새김

특히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았다’는 표현은 구약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여호수아 11:4에서도 북부 가나안 왕들의 연합군을 묘사하는 데 비슷한 표현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현대적인 병력 통계가 아니라 적군의 압도적인 규모를 전달하는 문학적 표현입니다.

믹마스는 베냐민 산지의 전략적인 위치에 있는 지역으로, 주변 고갯길과 연결됩니다. 본문 마지막에 다시 등장하는 ‘믹마스 고갯길’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수적으로 열세일 뿐 아니라 지형적으로도 압박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싸우기도 전에 무너지기 시작한다

블레셋이 전쟁을 준비하자 이스라엘 사람들의 반응이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곤경에 빠진 것을 알았다. 백성이 심하게 압박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성은 동굴과 가시덤불과 바위틈과 땅속 굴과 구덩이에 숨었다.사무엘상 13:6 · 본디새김

이 목록은 이스라엘이 전투 대형을 갖추고 적을 기다리는 상황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백성은 살아남기 위해 숨을 곳을 찾고 있습니다. 7절에서는 사람들이 요단강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달아납니다.

사울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담대하지 않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강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갔다. 사울은 여전히 길갈에 있었고, 온 백성은 떨며 그를 따르고 있었다.사무엘상 13:7 · 본디새김

그는 왕으로서 백성을 이끌어야 합니다. 그러나 백성은 도망가고 있습니다. 왕에게는 군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이 지휘할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울의 입장에서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군대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는 삼만 대라고 되어 있지만, 일부 칠십인역 사본과 시리아어 성경에는 삼천 대로 나타납니다. 고대 군대의 병거 구성과 팔레스타인 산지의 지형을 고려하면 삼만 대라는 수치는 특히 큽니다. 그러나 실제 원문에 어떤 숫자가 있었는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레를 기다린 왕이 마지막에 기다리지 못하다

사무엘상 13:8–12 본문 →

사무엘은 왜 오지 않았는가

본문은 사울이 사무엘을 기다렸다고 말합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때까지 이레를 기다렸다. 그러나 사무엘은 길갈로 오지 않았고, 백성은 사울 곁을 떠나 흩어졌다.사무엘상 13:8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사무엘상 10:8과 연결됩니다. 그때 사무엘은 사울에게 길갈로 내려가 자신이 올 때까지 이레 동안 기다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와서 사울이 해야 할 일을 알려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울이 사무엘이 오기 전에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사울은 왜 번제를 드렸는가

사울은 말합니다.

사울이 말했다. 「번제물과 화목제물들을 내게 가져오너라.」 그러고는 번제를 바쳤다.사무엘상 13:9 · 본디새김

사울은 하나님을 찾으려 했는데, 왜 그 행동이 불순종이 될까요? 그가 사무엘에게 한 해명을 보면 이유를 이해할 실마리가 드러납니다.

사무엘이 말했다. 「무슨 일을 했소?」 사울이 말했다. 「백성이 제 곁을 떠나 흩어지고, 당신은 정해진 때에 오지 않으시고,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모여 있는 것을 보고,」사무엘상 13:11 · 본디새김

이 세 가지는 본문이 실제로 보여 준 상황입니다. 사울이 존재하지 않는 위기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제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올 텐데, 나는 아직 여호와야훼께 은혜를 구하지 않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다그쳐 번제를 바쳤습니다.」사무엘상 13:12 · 본디새김

사울은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 위해 제사를 드렸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려 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다는 사실은 동시에 참일 수 있습니다. 신앙적인 목적을 가졌다는 사실이 그 목적을 이루는 모든 방법을 정당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사울은 제사장이 아니어서 잘못했는가

이 본문에서 자주 제기되는 질문은 사울이 제사장도 아닌데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심판받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왕이 제사장의 직무를 행했기 때문에’라는 이유를 직접 제시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이 명시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13절).

「저 자신을 다그쳐 번제를 바쳤습니다」

사울의 말에는 자신이 본래 원해서 행동했다기보다,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몰아붙여 행동했다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압박을 강조합니다.

사울에게는 행동해야 할 이유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이 묻는 것은 그 이유들이 실제로 존재했느냐가 아닙니다.

그 이유들 때문에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어겨도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왕으로서 그는 실제적인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책임을 감당하는 방식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현실의 압박을 우선시했습니다.

그 결과는 사울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중대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두 본문의 명령이 정확히 같은 사건을 가리키는지, 중간에 별도로 약속이 반복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13장은 사울에게 사무엘이 정한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다고 명시합니다. 그렇다면 사울이 이레째 되는 날이 끝나기 전에 행동한 것일까요? 아니면 약속된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무엘이 나타나지 않아 행동한 것일까요? 본문은 정확한 시각을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무엘이 몇 분 늦었는지, 사울이 몇 분 일찍 제사를 드렸는지를 계산할 수 없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와서 제사를 드리기로 한 상황에서 자신의 판단으로 번제를 바쳤습니다. 따라서 정해진 제의적 절차와 권한을 침해했다는 측면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구약에는 왕이 제사를 드리는 일의 주체로 서술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다윗이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기록된 사무엘하 6:17–18이나 솔로몬이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기록된 열왕기상 8:62–64가 그러합니다. 물론 이 기록들이 왕이 제사의 모든 절차를 직접 집례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따라서 사울이 정확히 어떤 제사장적 권한을 침해했는지보다, 이미 주어진 명령과 사울의 행동이 충돌했다는 사실에 해석의 중심을 두는 편이 본문에 더 가깝습니다.

「당신의 왕권은 지속되지 못할 것이오」

사무엘상 13:13–14 본문 →

사무엘은 왜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는가

사울의 설명을 들은 사무엘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했다. 「어리석은 일을 했소. 당신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당신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않았소. 그 명령을 지켰더라면 지금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당신의 왕권을 영원히 굳게 세우셨을 것이오.」사무엘상 13:13 · 본디새김

여기서 ‘어리석은 일을 했다’는 표현은 단순히 생각이 부족했다거나 지적인 능력이 모자랐다는 평가가 아닙니다. 이것은 사울이 군사적인 상황을 잘못 판단했다는 비판과 다릅니다. 실제로 사울은 블레셋 군대의 규모를 파악하고 있었고, 자기 군대가 흩어지는 문제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현실을 보지 못한 사람이 아닙니다.

왕은 백성이 위기에 처했을 때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에게 요구되는 지혜는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고 효율적인 해결책을 선택하는 능력만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기억하고, 그분의 말씀 아래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사무엘의 책망은 신명기 17:18–20의 왕에 관한 규정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왕은 율법을 곁에 두고 읽으며 여호와야훼를 경외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왕에게는 특별한 권위가 주어지지만, 그 권위가 율법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지켰더라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사울의 불순종은 처음부터 피할 수 없도록 정해져 있었던 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명령을 지킬 책임이 있었고, 그렇게 했다면 다른 결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선언됩니다.

‘영원히 굳게 세우셨을 것’이라는 말은 사울 개인이 죽지 않고 영원히 왕으로 살았을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왕권은 한 사람의 생애를 넘어 집안과 후손에게 이어질 수 있는 지위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사울의 왕권이 지속적으로 확립되고 그의 집안을 통해 이어질 가능성과 연결해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군대가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그 행동으로 인해 자신의 왕권이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눈앞에서 잃어 가는 사람들을 붙잡으려다가, 훨씬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을 잃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른 사람을 찾으셨다

사무엘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의 왕권은 지속되지 못할 것이오. 여호와야훼께서는 자신을 위해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으셨고,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를 자기 백성의 지도자로 지명하셨소. 당신이 여호와야훼께서 명하신 것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오.」사무엘상 13:14 · 본디새김

본문은 아직 그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습니다. 사무엘서의 이야기를 계속 읽으면 다윗이 등장하지만, 이 장을 처음 읽는 독자는 새로운 지도자의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서술자는 그의 이름을 밝히기보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찾으셨는지에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란 누구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통치를 수행할 사람, 그분의 뜻과 말씀을 자신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사람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표현이 그 사람에게 앞으로 죄가 없을 것이라고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사무엘서는 이후 등장할 지도자들 역시 하나님의 판단 아래 놓인 사람들로 그립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셨는가

사무엘은 사울의 왕권이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장은 하나님이 그 순간부터 사울에게 어떤 일도 하지 않으시거나, 그를 통해 더 이상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울은 여전히 왕으로 남고, 블레셋과의 전쟁도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14절은 사울의 즉각적인 폐위보다는 그의 왕권이 장기적으로 확립되지 못할 것이라는 선언으로 읽어야 합니다.

사울에게는 여전히 백성을 보호하고 지휘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지명하셨다는 선언이 그 책임을 없애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선언이 끝나도 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흔히 이 표현을 하나님의 마음과 동일한 성품을 지닌 사람, 또는 누구보다 순수하고 경건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그 의미를 너무 좁게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히브리어 ‘마음’은 감정뿐 아니라 생각과 뜻, 의지와 선택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표현에는 하나님이 자신의 뜻에 맞는 사람을 선택하셨다는 의미가 포함됩니다. 사울은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으셨다고 선언됩니다. 사무엘상 2:35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자신의 마음과 뜻을 따라 행할 충실한 제사장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마음과 뜻은 맡겨진 직무에 대한 충실함과 연결됩니다.

왕권의 미래를 잃은 뒤, 남아 있는 사람은 육백 명

사무엘상 13:15–18 본문 →

사무엘이 떠난 뒤에 드러난 숫자

사무엘은 길갈을 떠납니다.

사무엘은 일어나 길갈에서 베냐민의 기브아로 올라갔다. 사울이 자기와 함께 있는 백성을 세어 보니 육백 명쯤이었다.사무엘상 13:15 · 본디새김

이 숫자는 앞부분의 삼천 명과 대비됩니다. 물론 앞에서 삼천 명은 사울과 요나단에게 나뉘어 배치된 병력이었으므로, 이 차이를 그대로 모두 탈영한 사람의 수라고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사울이 확보한 병력이 매우 적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사울이 번제를 드리기로 결정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흩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사를 바쳤다고 해서 그들이 다시 모였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것은 사울의 행동이 그가 해결하려던 현실적인 문제까지 해결해 주지는 못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여전히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세 갈래로 퍼져 나가는 블레셋의 약탈 부대

16절에서 사울과 요나단은 베냐민의 게바에 머물고, 블레셋은 믹마스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이어 블레셋 진영에서 약탈 부대가 세 무리로 나뉘어 나갑니다. 한 무리는 오브라와 수알 땅 쪽으로, 다른 무리는 벧호론으로 가는 길을 따라, 나머지 무리는 스보임 골짜기가 보이는 경계 지대로 향합니다.

블레셋은 본진을 유지하면서 여러 방향으로 병력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군사적 활동 범위가 넓어지는 동안, 이스라엘은 소수의 병력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왕이 받은 명령에 실패했다고 해서 적군이 공격을 멈추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서술자는 블레셋의 움직임을 전한 뒤, 갑자기 전쟁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기를 어떻게 마련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농기구를 갈기 위해서도 블레셋에게 가야 하는 사람들

사무엘상 13:19–22 본문 →

이스라엘에는 왜 대장장이가 없었는가

19절은 뜻밖의 사실을 전합니다.

이스라엘 온 땅에는 대장장이가 없었다. 블레셋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들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염려된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사무엘상 13:19 · 본디새김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위협했을 뿐 아니라, 무기를 만드는 능력까지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철을 가공하여 칼과 창을 만드는 기술을 통제하면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통제는 전쟁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온 이스라엘은 각자 자기 보습과 쇠날과 도끼와 보습을 갈려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내려갔다.사무엘상 13:20 · 본디새김

이것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얼마나 의존적인 위치에 있었는지 보여 줍니다. 전쟁을 위한 무기뿐 아니라 평소의 경제 활동을 유지하는 데에도 블레셋의 기술과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핌’이라는 작은 단위가 보여 주는 현실

21절에는 낯선 단어가 등장합니다.

보습들과 쇠날들과 세 갈래 쇠스랑과 도끼들의 날을 갈고 소몰이 막대의 촉을 바로 세우는 값은 핌이었다.사무엘상 13:21 · 본디새김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농기구를 손질하기 위해 블레셋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칼과 창은 두 사람에게만 있었다

서술자는 마침내 가장 충격적인 사실을 밝힙니다.

그래서 전투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있는 백성 가운데 누구의 손에서도 칼이나 창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다.사무엘상 13:22 · 본디새김

이러한 현실을 알고 나면 6–8절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이유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백성은 단순히 용기가 부족해서 숨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군사적으로 극심한 열세에 놓여 있었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을 기다리다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독자는 아직 무기 부족에 관한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의 불순종에 대한 선언이 끝난 뒤에야 이스라엘이 얼마나 심각한 곤경에 있었는지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본문은 사울의 불순종을 이해할 수 있는 현실을 충분히 보여 주면서도, 그 현실이 불순종을 정당화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핌’은 구약에서 이곳에만 나타나므로 오랫동안 뜻을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고대 히브리어로 ‘핌’이라고 새겨진 무게추들이 발견되었으며, 이를 통해 이 단어가 무게 단위였을 가능성이 강하게 뒷받침됩니다. 발견된 무게추들의 무게를 비교하면 핌은 대략 셰켈의 삼분의 이 정도에 해당합니다. 다만 21절의 나머지 히브리어 구문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떤 농기구를 가는 데 그 값이 적용되는지, 도구별로 값이 달랐는지를 정확하게 나누어 읽는 데에는 견해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농기구 하나하나의 수리 비용을 확정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칼을 가진 사람은 둘뿐인데, 적군은 고갯길로 나온다

사무엘상 13:1–23 본문 →

칼과 창은 사울과 요나단에게만 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의 주둔대가 고갯길로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 역할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상황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앞세웠습니다. 그 때문에 사무엘은 다른 지도자가 세워질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 장을 오늘의 삶에 연결할 때 ‘무조건 기다리기만 하라’는 교훈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됩니다. 사울에게는 구체적인 명령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사무엘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그가 와서 알려 주는 일을 따라야 했습니다.

오늘날 모든 판단에서 어떤 특별한 신호가 나타날 때까지 행동하지 말라는 일반적인 원칙이 여기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이 이야기는 충분한 정보와 선택지가 있는데도 책임 있는 결정을 미루는 태도를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는 현실의 위험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그 위험을 이유로 자신에게 주어진 윤리적 책임이나 정당한 경계를 마음대로 넘어서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지금은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떠났고, 사울에게는 육백 명 정도의 병력이 남아 있습니다. 칼과 창은 사울과 요나단에게만 있습니다.

블레셋의 병거와 이스라엘의 부족한 무기 사이에서, 사울이 지키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주어진 자리는 여전히 전쟁터 가까이였습니다.

적군은 아직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블레셋의 주둔대가 고갯길로 나오고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