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14장

이 장의 자리 · 8–15장 · 첫 왕이 된 사울

구원의 날, 아들을 죽이려 한 왕

사무엘상 14장에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맹세가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왕이 내린 명령입니다. 「저녁까지, 내가 내 원수들에게 복수할 때까지 음식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두 번째는 그 왕을 따르는 백성이 한 선언입니다. 「그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첫 번째 맹세는 백성을 굶주리게 했고, 결국 왕의 아들이 죽을 위기에 놓이게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맹세는 그 아들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이 두 맹세 사이에 있는 사람이 요나단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이스라엘을 구한 사람을, 왕이 내린 맹세 때문에 죽여야 합니까?

읽는 시간 28분소단락 1014장 본문 읽기 →

왕은 머물러 있고, 왕의 아들은 건너간다

사무엘상 14:1–5 본문 →

요나단의 작은 결단

본문은 요나단의 말로 시작합니다.

어느 날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 무기를 드는 젊은이에게 말했다. 「자, 저 건너편에 있는 블레셋 주둔 부대로 건너가자.」 그러나 자기 아버지에게는 알리지 않았다.사무엘상 14:1 · 본디새김

본문은 그가 왜 알리지 않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울의 반대를 예상했을 수도 있고, 신속하게 움직이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요나단의 행동이 사울의 명령으로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울은 기브아 변두리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에 머물고 있었다. 그와 함께 있는 백성은 육백 명쯤이었다.사무엘상 14:2 · 본디새김

블레셋은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고, 이스라엘은 심각한 전력의 열세에 있었습니다. 사울이 신중하게 진을 유지한 데에는 군사적인 이유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왕은 육백 명과 함께 머물러 있고, 왕의 아들은 한 사람과 함께 움직이려 합니다.

엘리 집안의 제사장이 함께 있었다

3절은 사울 곁에 있는 제사장 아히야를 길게 소개합니다.

그는 아히둡의 아들이며, 아히둡은 이가봇과 형제입니다. 이들은 엘리의 아들 비느하스의 집안에 속합니다.

사무엘상 4장에서 엘리의 아들들이 죽고,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겼습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아들을 낳으면서 그에게 이가봇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영광이 떠났다는 탄식과 연결된 이름이었습니다(4:19–22).

그런데 이제 그 집안의 후손인 아히야가 사울 곁에 있습니다.

본문은 아히야가 조상들의 잘못을 물려받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왕정이 시작되었어도 실로의 제사장 가문과 이어지는 사람이 여전히 이스라엘의 종교적 직무를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있습니다. 에봇은 제사장과 관련된 복장이며, 출애굽기 28:6–30에서는 대제사장의 에봇과 판결 흉패, 우림과 둠밈이 함께 설명됩니다. 이 정보는 뒤에서 사울이 하나님께 묻는 장면을 이해하는 데 필요합니다.

사울 곁에는 제사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요나단이 하려는 일은 그 제사장이나 왕의 지시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건너가려면 손과 발로 기어올라야 한다

요나단이 건너가려는 길은 평탄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두 바위의 이름까지 기록합니다. 보세스와 세네입니다. 하나는 믹마스 쪽, 다른 하나는 게바 쪽에 있습니다.

요나단이 블레셋 주둔대에 접근하기 위해 통과해야 할 길이 좁고 험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13절에서는 그가 실제로 손과 발을 사용하여 바위를 기어오릅니다. 그런 자세에서는 적의 공격을 방어하거나 무기를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요나단은 군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적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위험한 길을 택합니다.

무엇을 믿고 저렇게 움직입니까?

「여호와야훼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실지도 모른다」

사무엘상 14:6–10 본문 →

확신과 불확실성이 함께 있는 믿음

요나단은 무기를 드는 젊은이에게 말합니다.

요나단이 자기 무기를 드는 젊은이에게 말했다. 「자, 저 할례받지 않은 자들의 주둔 부대로 건너가자. 여호와야훼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실지도 모른다. 여호와야훼께서 많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 적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 막을 것은 없기 때문이다.」사무엘상 14:6 · 본디새김

요나단은 자신의 계획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행동하기만 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이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번 상황에서 정확히 무엇을 하실지는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자신의 계획에 대한 확신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약하다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수가 적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능력까지 제한하지는 않는다고 믿습니다.

이 점에서 사사기 7장의 기드온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기드온의 군대를 줄이시면서, 이스라엘이 자기 힘으로 승리했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사사기 7:2).

두 사건은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기드온에게는 군대를 줄이라는 구체적인 명령이 있었지만, 요나단에게는 그러한 명령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힘이 병력의 규모에 달려 있지 않다는 주제는 두 본문을 연결합니다.

「할례받지 않은 자들」이라는 표현

요나단은 블레셋 사람들을 ‘할례받지 않은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에서 할례는 아브라함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을 나타내는 표지였습니다(창세기 17:9–14). 따라서 요나단의 표현에는 자신들이 언약의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할례를 받았다는 사실이 이스라엘의 모든 행동을 자동으로 정당화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요나단의 근거는 이스라엘이 본래 블레셋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에 있지 않습니다.

그가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여호와야훼의 구원 능력입니다.

무기를 드는 젊은이의 대답

요나단의 말을 들은 젊은이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무기를 드는 젊은이가 그에게 말했다. 「마음에 두신 대로 다 하십시오. 원하시는 쪽으로 향하십시오. 저는 당신 뜻대로 당신과 함께하겠습니다.」사무엘상 14:7 · 본디새김

이 젊은이는 이름이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요나단에게는 자신의 뜻을 함께 감당하려는 동료가 있었습니다.

또한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명령과 복종으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요나단은 먼저 자신의 믿음과 판단을 설명합니다. 그 말을 들은 젊은이는 기꺼이 동행하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적군에게 모습을 드러내기로 합니다.

요나단은 어떻게 표징을 정하는가

요나단은 블레셋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행동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가만히 기다리라고 하면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올라오라고 하면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것을 여호와야훼께서 블레셋을 자신들의 손에 넘기셨다는 표징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합니다.

요나단은 이미 받은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을 확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젊은이가 적군에게 접근하는 과정에서 어떤 반응을 표징으로 삼을지 정합니다. 하나님이 그 표징을 반드시 승인하시겠다고 미리 말씀하신 기록은 없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적군이 올라오라고 말하는 것 자체는 군사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은 두 사람을 얕보고 자신들의 위치로 올라오라고 조롱했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공격했는데 온 진영이 떨기 시작하다

사무엘상 14:11–15 본문 →

블레셋의 조롱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블레셋 사람들은 말합니다.

두 사람이 블레셋 주둔 부대에 모습을 드러내자 블레셋 사람들이 말했다. 「보아라, 히브리 사람들이 숨어 있던 굴에서 나온다.」사무엘상 14:11 · 본디새김

앞 장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 군대가 몰려오자 동굴과 바위틈에 숨어 있었습니다(13:6). 블레셋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그들에게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피해 숨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주둔 부대 사람들이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드는 젊은이에게 소리쳐 말했다. 「우리에게 올라오너라. 너희에게 한 가지 알려 주겠다.」 요나단이 자기 무기를 드는 젊은이에게 말했다. 「나를 따라 올라오너라.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다.」사무엘상 14:12 · 본디새김

이 말은 적을 얕보는 도전이나 조롱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말이 요나단에게는 행동할 근거가 됩니다.

블레셋에게는 우월감의 표현이지만, 요나단에게는 앞으로 나아갈 신호입니다.

손과 발로 기어오르는 사람의 승리

요나단은 손과 발로 기어오릅니다.

무기를 드는 젊은이가 그 뒤를 따릅니다. 14절에서는 그들이 첫 공격으로 스무 명쯤을 쓰러뜨렸다고 기록합니다. 공격이 이루어진 장소도 넓지 않습니다. 본문은 소 한 쌍이 가는 밭의 반 이랑 정도로 그 규모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 전혀 다른 규모의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에게서 온 떨림

진영과 들판에서,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떨림이 일어났다. 주둔 부대와 약탈 부대도 떨었다. 땅도 흔들렸다.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떨림이었다.사무엘상 14:15 · 본디새김

그러나 본문 전체는 이 혼란을 여호와야훼의 구원 활동과 연결합니다. 23절에서 서술자는 그날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고 명시합니다.

두 사람이 시작한 공격이었지만, 두 사람이 가진 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원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요나단의 믿음에 대한 본문의 응답입니다.

조금 더 깊이

소 한 쌍이 가는 밭의 반 이랑이 정확히 어느 길이나 면적을 나타내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대적인 길이와 넓이로 정확하게 환산할 수는 없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떨림을 나타내는 표현들을 반복하면서 마지막에 헤르다트 엘로힘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는 ‘하나님에게서 온 떨림’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는 히브리어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강도를 나타내는 표현에 사용되는 경우를 고려하여 ‘극심한 떨림’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전쟁에 뒤늦게 합류하는 왕과 백성

사무엘상 14:16–23 본문 →

사울은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사울의 파수꾼들은 블레셋 진영이 무너져 흩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사울은 곧바로 공격을 명령하지 않습니다. 먼저 인원을 세어 누가 사라졌는지 확인하라고 합니다. 그 결과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드는 젊은이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요나단이 시작한 행동의 결과는 이제 사울의 군대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사울이 아히야에게 말했다. 「하나님의 궤를 가까이 가져오시오.」 그날 하나님의 궤는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었다.사무엘상 14:18 · 본디새김

사울은 하나님께 묻는 절차를 시작하려 합니다.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하는 동안 블레셋 진영의 소란은 점점 더 커졌다.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했다. 「손을 거두시오.」사무엘상 14:19 · 본디새김

이것은 진행 중이던 종교적 절차를 중단하라는 명령으로 이해됩니다. 사울이 왜 중단시켰는지 본문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진영의 혼란이 커지고 있었다는 설명이 바로 앞에 있으므로, 사울이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전투에 참여하기로 판단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반드시 불순종이라고 판정할 명시적인 선언은 이곳에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 이 장에서 반복될 사울의 모습을 이해할 하나의 단서가 됩니다.

그는 하나님께 물으려 하지만, 자신이 보기에 상황이 이미 행동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면 그 절차를 중단합니다.

숨어 있던 사람들까지 싸움에 나서다

사울과 백성이 전투 장소에 도착했을 때, 블레셋 진영은 큰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사울과 그와 함께 있는 온 백성이 모여 전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동료에게 칼을 휘두르고 있었고, 혼란이 몹시 컸다.사무엘상 14:20 · 본디새김

이 모습은 사사기 7:22에서 기드온의 군대가 나팔을 불자 미디안 진영 사람들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었던 장면과 닮았습니다. 여기서도 이스라엘이 적군을 전부 직접 쓰러뜨린 것이 아닙니다. 적군 내부에서 혼란과 충돌이 일어나며 군대가 무너집니다.

이전에 블레셋 편에 서 있던 히브리 사람들이 이스라엘 편에 합류합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숨어 있던 사람들도 블레셋이 도망친다는 소식을 듣고 나와 싸움에 참여합니다.

왜 어떤 히브리 사람들이 블레셋 편에 있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강제로 동원되었을 수도 있고, 블레셋의 지배 아래 복무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인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는 과정은 사울이 모든 병력을 완벽하게 조직한 결과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요나단의 공격과 블레셋 진영에 일어난 혼란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앞서 두려움 때문에 흩어졌던 사람들이 이제는 블레셋을 뒤쫓습니다.

서술자가 내리는 최종적인 평가

23절은 이 전투의 의미를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그날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구원했다. 전투는 벧아웬을 지나 이어졌다.사무엘상 14:23 · 본디새김

요나단이 용감하게 행동한 것은 사실입니다. 무기를 드는 젊은이가 충실하게 함께 싸운 것도 사실입니다. 사울과 그의 군대, 새롭게 합류한 사람들도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행동을 하나로 묶어 최종적으로 설명하는 주어는 여호와야훼입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사무엘상 14장은 요나단의 믿음과 여호와야훼의 구원을 찬양하는 승리의 이야기로 마무리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술자는 그날에 관한 또 하나의 사실을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그날, 백성은 심하게 압박받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블레셋만이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18절의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는 ‘하나님의 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 칠십인역의 사무엘상 14:18은 ‘에봇’이라고 읽습니다. 에봇은 앞서 3절에서 아히야가 입고 있던 것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또한 사무엘상 23:9와 30:7에는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 물으려고 에봇을 가져오게 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이 자리에서 사울이 에봇을 가져오라고 했다는 읽기는 문맥상 자연스럽습니다. 반면 마소라 본문의 ‘하나님의 궤’를 따를 경우, 앞서 궤가 기럇여아림에 머물렀다는 기록(사무엘상 7:1–2)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설명이 필요합니다. 어느 형태가 원문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본디새김은 마소라 본문을 따라 하나님의 궤라고 번역했습니다.

구원의 날에 백성을 지치게 한 왕의 맹세

사무엘상 14:24–30 본문 →

「내가 내 원수들에게 복수할 때까지」

23절에서 서술자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심하게 압박받았다. 사울이 백성에게 「저녁까지, 내가 내 원수들에게 복수할 때까지 음식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맹세를 지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 가운데 아무도 음식을 맛보지 않았다.사무엘상 14:24 · 본디새김

여기서 백성을 압박한 것은 적군의 공격이 아니라 사울이 내린 명령입니다.

「내가 내 원수들에게 복수할 때까지」라는 표현만으로 사울이 오직 개인적인 복수심 때문에 명령을 내렸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왕이 자신이 싸우는 적을 ‘내 원수’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반드시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로 앞절과 나란히 읽으면 시선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의 이야기 속에 왕 자신의 목표와 맹세가 강하게 끼어듭니다. 그 결과 백성은 승리를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굶주림에 시달리게 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적은 사람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셨는데, 사울은 더 큰 승리를 얻으려는 과정에서 자기 백성의 힘을 소진시키고 있습니다.

먹을 수 있는 꿀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숲에 들어갑니다.

백성이 숲으로 들어가 보니 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손을 입에 대지 않았다. 백성이 그 맹세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사무엘상 14:26 · 본디새김

음식이 없어서 굶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 내린 명령 때문에 먹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요나단이 나타납니다.

꿀을 먹자 눈이 밝아지다

요나단은 아버지가 백성에게 맹세를 지울 때 듣지 못했다. 그는 손에 든 지팡이 끝을 내밀어 벌집에 찍고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그의 눈이 밝아졌다.사무엘상 14:27 · 본디새김

요나단은 오랫동안 싸우고 있었고, 음식은 그에게 실제적인 힘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사울의 맹세를 알려 주자 요나단은 말합니다.

요나단이 말했다.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경에 빠뜨리셨구나. 좀 보아라. 내가 이 꿀을 조금 맛보고 눈이 밝아졌다.」사무엘상 14:29 · 본디새김

요나단은 아버지의 명령이 가져온 결과를 자기 몸으로 확인했습니다.

「오늘 백성이 찾아낸 원수들의 전리품을 실컷 먹었더라면 얼마나 더 나았겠느냐. 그랬다면 지금쯤 블레셋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쓰러뜨리지 않았겠느냐?」사무엘상 14:30 · 본디새김

요나단의 말은 단순히 배가 고프다는 불평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명령이 오히려 전쟁을 수행할 백성의 능력을 약화시켰다는 판단입니다.

요나단이 실제로 더 많은 블레셋 사람을 쓰러뜨릴 수 있었을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의 판단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 판단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사실을 반복해서 기록합니다. 백성이 지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신뢰하면서도,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음식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믿음이 현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27절에서 눈이 밝아졌다는 표현은 히브리어 본문의 케레 읽기에 따른 것입니다. 여기서 눈이 밝아졌다는 말은 요나단이 앞을 보지 못하다가 시력을 회복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꿀을 먹고 기운을 되찾은 모습을 나타낸다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왕이 죄를 막으려 했는데, 그의 맹세가 죄의 배경이 되다

사무엘상 14:31–35 본문 →

참을 수 없는 굶주림

전투는 믹마스에서 아얄론까지 이어집니다.

아얄론은 믹마스보다 서쪽에 있으므로, 블레셋을 추격하는 전투가 상당한 거리에 걸쳐 진행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날 그들은 믹마스에서 아얄론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다. 백성은 몹시 지쳤다.사무엘상 14:31 · 본디새김

24절에서 백성은 압박받았습니다. 28절에서도 지쳐 있었습니다. 이 반복은 사울의 맹세가 가져온 결과를 독자가 잊지 않게 합니다.

백성은 전리품에 달려들어 양과 염소와 소와 송아지를 끌어다가 땅바닥에서 도살했다. 백성은 피째 먹었다.사무엘상 14:32 · 본디새김

레위기 17:10–14와 신명기 12:16, 23–25에서 이스라엘은 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특히 레위기 17:11은 생명이 피에 있다는 원칙을 밝힙니다. 따라서 백성이 피째 먹은 것은 율법을 어긴 행위입니다.

사울의 맹세로 백성이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못했고, 그 결과 몹시 지친 상태에서 전리품에 달려든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에는 실제적인 잘못이 있습니다. 동시에 그 잘못이 발생한 배경에는 왕의 명령이 있습니다.

사울의 대응은 잘못된 것인가

백성이 피째 먹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사울은 말합니다.

사람들이 사울에게 알렸다. 「보십시오, 백성이 피째 먹어 여호와야훼께 죄를 짓고 있습니다.」 사울이 말했다. 「너희가 신의를 저버렸다. 오늘 큰 돌 하나를 내게 굴려 오너라.」사무엘상 14:33 · 본디새김

그리고 사람들에게 가축을 그곳으로 가져와 잡도록 명령합니다. 백성이 피째 먹지 않도록 도살 과정을 바로잡으려는 것입니다.

백성은 실제로 율법을 어겼고, 사울은 그 일을 중단시키려 합니다. 그는 왕으로서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명령이 지켜지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는 사울이 맹세를 거두거나 그 명령이 과도했다고 인정하는 장면이 없습니다. 그는 백성의 죄를 바로잡지만, 그 죄가 발생하게 된 상황을 만든 자신의 명령까지 되돌아보지는 않습니다.

사울이 백성의 죄를 지적한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 그의 지도 방식 전체가 옳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으로 쌓은 제단

사울은 여호와야훼를 위해 제단을 쌓았다. 이것은 그가 여호와야훼를 위해 처음 쌓은 제단이었다.사무엘상 14:35 · 본디새김

사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 자체에 무관심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제단을 쌓고, 백성이 피째 먹는 일을 막으며,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하나님께 전쟁의 방향을 묻습니다.

본문은 왕의 종교적 열심과 백성을 향한 책임이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제단을 쌓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왕에게는 그 제단 앞에 서는 백성의 형편을 살피는 일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자, 왕은 죄인을 찾기 시작한다

사무엘상 14:36–42 본문 →

이번에는 제사장이 사울을 멈춘다

사울은 밤에도 블레셋을 추격하려 합니다.

사울이 말했다. 「밤에 블레셋 사람들을 뒤쫓아 내려가 동이 틀 때까지 그들을 약탈하고, 한 사람도 남겨 두지 말자.」 백성이 말했다. 「좋다고 여기시는 대로 다 하십시오.」 제사장이 말했다. 「여기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시다.」사무엘상 14:36 · 본디새김

앞에서는 사울이 제사장에게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라고 했다가 전투의 소란이 커지자 절차를 중단했습니다. 이번에는 사울이 곧바로 전투를 이어 가려 하는데, 제사장이 하나님께 묻자고 제안합니다.

사울이 하나님에게 물었다. 「제가 블레셋 사람들을 뒤쫓아 내려갈까요? 당신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시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날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다.사무엘상 14:37 · 본디새김

본문은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 직접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울은 곧바로 누군가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울의 판단입니다.

사울은 이미 죄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사울은 백성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읍니다.

사울이 말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모두 이리 가까이 오너라. 오늘 이 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보고 살펴보아라.」사무엘상 14:38 · 본디새김

그는 하나님의 침묵을 공동체 안에 있는 죄와 연결합니다. 하나님이 사울에게 누군가 죄를 지었으므로 그 사람을 찾아내라고 명령하셨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범인을 찾기도 전에 처벌부터 선언합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여호와야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 이 죄가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더라도 그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온 백성 가운데 아무도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다.사무엘상 14:39 · 본디새김

그는 공정하게 판단하겠다는 의도로 자기 아들까지 예외로 두지 않는다고 말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밝혀지기도 전에 죽음을 맹세했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이제 그는 사실을 알아내는 일뿐 아니라, 자기 입으로 선언한 맹세를 지켜야 한다는 문제까지 떠안게 됩니다.

제비뽑기는 무엇을 밝혔는가

사울은 백성과 자신 및 요나단을 두 편으로 나누어 제비를 뽑습니다.

먼저 사울과 요나단이 뽑히고, 다음에는 요나단이 뽑힙니다. 제비뽑기를 통해 요나단이 드러났다는 사실과, 그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사울의 결론은 구별해야 합니다.

요나단은 실제로 아버지의 맹세가 금지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맹세를 듣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이 사울에게 그러한 금식 명령을 내리셨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단이 제비에 뽑혔다는 사실만으로 그가 하나님 앞에서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호수아 7장에서 이스라엘은 아이 성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뒤, 아간이 여호와야훼께 온전히 바쳐진 물건을 가져간 사실을 밝혀냅니다. 여호수아 7장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다고 직접 말씀하십니다(7:10–15). 반면 사무엘상 14장에서는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셨다는 사실만 기록됩니다. 그런데 41절에는 중요한 본문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마소라 본문은 사울이 여호와야훼께 ‘온전한 것을 주소서’라는 취지로 간구한 짧은 문장만 전합니다. 본디새김은 이를 「온전한 답을 주십시오」라고 옮겼습니다. 반면 칠십인역에는 더 긴 기도가 나옵니다. 사울은 왜 응답하지 않으셨는지 묻고, 잘못이 자신이나 요나단에게 있다면 우림으로, 백성에게 있다면 둠밈으로 응답해 달라는 취지로 기도합니다. 우림과 둠밈은 출애굽기 28:30에 나오는 제사장의 판결 도구입니다. 정확한 작동 방식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판결을 구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칠십인역의 긴 읽기를 따르면 제비뽑기의 두 단계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다만 마소라 본문에서 그 문장들이 어떻게 빠지게 되었는지, 또는 칠십인역에 어떻게 더해졌는지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왕은 죽이려 하고, 백성은 구해 낸다

사무엘상 14:43–46 본문 →

요나단의 대답

사울은 요나단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묻습니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말했다.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내게 말하여라.」 요나단이 그에게 말했다. 「제가 손에 든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본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저는 죽게 되었습니다.」사무엘상 14:43 · 본디새김

그저 그가 한 행동과 그에게 닥친 결과를 나란히 보여 줍니다.

사울이 말했다. 「요나단아,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큰 벌까지 내리시기를 바란다.」사무엘상 14:44 · 본디새김

처음에는 전쟁을 위한 명령이었지만, 이제 그 명령을 유지하는 일이 전쟁에서 구원을 이루어 낸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해진 듯합니다. 사울은 자신의 맹세를 어기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 맹세가 본래 섬겨야 했을 백성을 해치려 합니다.

백성이 요나단을 위해 나서다

바로 그때 백성이 사울에게 말합니다.

백성이 사울에게 말했다.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루어 낸 요나단이 죽어야 합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그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오늘 하나님과 함께 이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백성이 요나단을 구해 내어 그는 죽지 않았다.사무엘상 14:45 · 본디새김

그들은 요나단이 왕의 아들이기 때문에 살려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구원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말합니다.

사울에게 중요한 것은 요나단이 자신의 맹세를 어겼다는 사실입니다. 백성에게 중요한 것은 요나단이 하나님과 함께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공했다고 해서 그가 한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는 서술자 자신이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고 선언했고, 요나단의 행동이 그 구원의 시작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따라서 백성이 요나단의 구원을 주장한 데에는 본문의 흐름 안에서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이 장에서 ‘구원하다’라는 말이 바뀌는 순간

처음에는 요나단이 이스라엘의 구원에 참여했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요나단을 죽음에서 구해 냅니다.

구원에 참여했던 사람이 이번에는 구원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더욱 뜻밖인 것은 그를 죽음의 위기에 빠뜨린 사람이 외국의 적군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왕에게서 요나단을 구해 낸 사람들은 그 왕을 따르던 백성입니다.

이 장면을 오늘날의 정치 제도나 저항권에 대한 직접적인 규정으로 바꾸어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왕의 말이 공동체의 모든 판단을 끝내는 최종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두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백성은 하나님이 실제로 이루신 일을 근거로 그 맹세의 집행을 막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한 말이라고 해서, 그 말이 하나님의 구원 목적에 언제나 부합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울은 왜 추격을 멈추었는가

46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을 뒤쫓기를 그치고 올라갔고,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들의 땅으로 갔다.사무엘상 14:46 · 본디새김

앞서 사울은 밤새 블레셋을 뒤쫓아 한 사람도 남겨 두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맹세는 백성을 지치게 했고, 그의 또 다른 맹세는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할 뻔했으며, 결국 전투는 끝났습니다.

조금 더 깊이

요나단의 「이제 저는 죽게 되었습니다」라는 마지막 말이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인지, 부당한 결과를 지적하는 말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요나단의 말에 특별한 감정이나 어조를 덧붙이지 않습니다. 45절의 ‘구해 내다’는 ‘되찾다’, ‘속량하다’, ‘대가를 치르고 풀어 주다’라는 의미를 지닌 파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본문은 백성이 실제로 어떤 대가를 지불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요나단을 죽음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사울이 요나단을 구하려는 백성의 요구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추격을 멈추었는지, 이미 전투를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사울은 계속 사람들을 모은다

사무엘상 14:47–52 본문 →

실패한 왕으로만 끝나지 않는 사울의 이야기

46절에서 블레셋과의 전투가 끝난 뒤, 본문은 사울의 통치를 요약합니다.

사울은 모압과 암몬, 에돔, 소바의 왕들, 블레셋과 싸웠습니다. 아말렉도 쳤으며, 이스라엘을 약탈하는 자들의 손에서 백성을 구해 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그가 왕으로 세워진 목적과 연결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사울을 자기 백성의 지도자로 세워 적들에게서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사울은 그 일의 일부를 실제로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군사적으로 성공했다는 사실이 앞에서 드러난 문제를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왕의 군사적 능력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충실함은 구별해서 평가해야 합니다.

「원수들을 벌했다」는 표현의 어려움

47절 마지막에는 해석이 갈리는 동사가 나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권을 장악하고 사방의 모든 원수와 싸웠다. 그 원수들은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들이었다. 그는 어디로 향하든 원수들을 벌했다.사무엘상 14:47 · 본디새김

히브리어 야르시아(⁨רָשַׁע⁩)는 악하게 행동한다는 뜻으로도, 어떤 대상을 유죄로 판정하거나 처벌한다는 뜻으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 문장에는 목적어가 명시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울이 원수들을 공격하여 벌했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고, 그가 가는 곳마다 악하게 행동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로 읽을 여지도 있습니다.

앞에서 여러 적국과 싸운 일을 열거하는 문맥을 고려하면 본디새김처럼 ‘원수들을 벌했다’고 이해할 근거가 있습니다. 반면 사울의 행동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읽는 경우에는 이 요약 자체에 그의 통치를 향한 비판이 담기게 됩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적들과 싸워 성과를 거둔 왕입니다. 동시에 자신의 명령 때문에 백성을 지치게 하고, 구원에 참여한 아들을 죽이려 했던 왕입니다.

본문은 이 두 모습을 함께 남겨 둡니다.

왕의 집안과 끝나지 않는 전쟁

이어 사울의 가족이 소개됩니다.

아들 요나단과 이스위와 말기수아, 딸 메랍과 미갈, 아내 아히노암, 군대 지휘관 아브넬이 등장합니다. 사울에게는 가족과 친족이 있고,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왕의 통치는 가정과 군사 조직을 중심으로 체계를 갖추어 가고 있습니다.

특히 요나단은 이 장 앞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의 구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지도자로 등장했습니다. 따라서 이 가족 목록 속의 요나단은 앞으로 사울의 집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게 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사울이 사는 동안 내내 블레셋 사람들과 치열한 전쟁이 이어졌다. 사울은 힘센 사람이든 용맹한 사람이든 보이는 대로 자기 곁으로 불러 모았다.사무엘상 14:52 · 본디새김

군대를 모으는 행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왕에게는 이스라엘을 방어할 군사력이 필요합니다. 요나단의 말은 병력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병력이 구원의 궁극적인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사울은 계속 군대를 모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군대의 힘이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백성을 위한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일과 사람이 지키려 한 일

사무엘상 14:1–52 본문 →

사무엘상 14장에서 사울이 끝까지 지키려 했던 것은 자신이 내린 맹세였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의 생명을 지킨 사람들은, 그 맹세보다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전투는 끝났지만 블레셋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힘센 사람들과 용맹한 사람들을 계속 모읍니다. 그에게는 여전히 왕의 책임이 있고, 이스라엘에는 여전히 구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독자는 이미 이 장의 첫머리에서 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좁고 험한 고갯길 앞에 두 사람이 서 있습니다. 그들은 블레셋의 거대한 군대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요나단은 승리를 보장받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무기를 드는 젊은이에게 말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실지도 모른다. 여호와야훼께서 많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 적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 막을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건너갑니다.

사무엘상 14장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은 왕이 자기 힘을 과시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힘이 작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호와야훼께서 구원하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건너간 두 사람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