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15장
이 장의 자리 · 8–15장 · 첫 왕이 된 사울
왕은 누구의 목소리를 듣는가
사울은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적군을 무너뜨렸고, 적의 왕을 사로잡았으며,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수행했다고 믿거나, 적어도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그를 찾아왔을 때, 사울의 승리를 무너뜨린 것은 적군의 반격도, 사무엘의 긴 책망도 아니었습니다. 양과 염소의 울음소리였습니다.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흔히 생각하듯 ‘제사’가 아니라 ‘듣다’일지도 모릅니다. 이야기는 「이제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순종하여라」라는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왜 여호와야훼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사무엘상 15장은 한 번의 불순종 때문에 왕이 벌을 받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왕이 된 사람이, 왕으로서 얻은 권한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판단 아래 두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왕에게 다시 주어진 말씀
사무엘은 사울에게 새로운 명령을 전하기 전에 먼저 그의 왕권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상기시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했다. 「여호와야훼께서 너에게 기름을 부어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라고 나를 보내셨다. 이제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순종하여라.」사무엘상 15:1 · 본디새김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지만, 이스라엘은 사울의 소유가 아닙니다. 사울의 왕권은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백성을 다스리도록 맡기신 권한입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했을 때, 여호와야훼는 사무엘에게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왕을 세우는 일이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셨습니다(사무엘상 8:7–9). 왕정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분이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주어진 명령은 아말렉을 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말렉과 이스라엘의 적대 관계는 출애굽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출애굽기 17:8–16에는 아말렉이 르비딤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25:17–19는 그때의 일을 더욱 구체적으로 기억합니다. 이스라엘이 지치고 피곤할 때 아말렉은 뒤처진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아말렉에 대한 심판은 단순한 영토 확장이나 사울의 전쟁 욕구로 소개되지 않습니다. 출애굽 길에서 일어난 폭력에 대한 오랜 심판의 문제로 제시됩니다.
그러나 3절은 여기서 독자를 멈춰 세웁니다.
「『이제 너는 가서 아말렉을 쳐라. 너희는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진멸하여라. 너는 아말렉을 아끼지 말고, 남자부터 여자까지, 어린아이부터 젖먹이까지, 소부터 양과 염소까지, 낙타부터 나귀까지 죽여라.』」사무엘상 15:3 · 본디새김
이 명령의 참혹함을 지워서는 안 됩니다. 출애굽 당시 아말렉의 공격이 부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어린아이와 젖먹이까지 죽이라는 명령이 제기하는 도덕적 질문은 그대로 남습니다.
본문은 심판의 이유를 말하지만, 어린아이들의 죽음에 관한 모든 질문에 답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고대 이스라엘의 특정한 전쟁 명령을 후대의 사람들이 다른 민족이나 집단을 폭력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허가로 읽을 근거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무거운 명령을 받은 사울은 이제 전쟁터로 나아갑니다. 본문은 그가 명령을 이해했는지보다, 이해한 명령을 실제로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 주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이러한 명령을 고대 이스라엘의 전쟁과 심판의 언어 속에서 전합니다. ‘진멸하다’는 단순히 적을 군사적으로 격파한다는 뜻을 넘어,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일반적인 인간의 사용에서 제외하여 하나님께 온전히 넘기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전쟁에서는 그것이 파괴와 죽임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명령의 특징은 단순히 얼마나 많은 적을 죽이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아말렉에게 속한 것을 이스라엘의 이익을 위한 전리품으로 삼을 수 없다는 데에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개념이 무고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윤리적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누구는 살리고 무엇은 남겼는가
사울은 대규모 군대를 소집하여 아말렉을 공격합니다. 군사 작전은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이 전쟁 이야기에는 서로 대조되는 두 번의 ‘살려 둠’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겐 사람들입니다.
사울이 겐 사람들에게 말했다. 「가거라. 아말렉 사람들 가운데서 물러나 내려가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들과 함께 너희까지 쓸어 없앨 수도 있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올라올 때 그들 모두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그래서 겐 사람들은 아말렉 가운데서 물러났다.사무엘상 15:6 · 본디새김
겐 사람들은 모세의 장인과 관련된 집단으로도 등장합니다(사사기 1:16). 이들의 구체적인 도움을 이 장이 모두 설명하지는 않지만, 사울의 말은 이스라엘이 오래전 받은 호의를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여호와야훼는 아말렉의 오래전 악행을 기억하셨고, 사울은 겐 사람들의 오래전 호의를 기억했습니다. 같은 출애굽의 기억이 한쪽에는 심판의 이유가 되고, 다른 쪽에는 보호의 이유가 됩니다. 겐 사람들이 아말렉과 함께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운명을 맞도록 하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날 무렵 두 번째 ‘살려 둠’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사울과 백성은 아각과 가장 좋은 양과 염소와 소, 두 번째 등급의 가축과 숫양 새끼, 그 밖의 좋은 것을 모두 아껴 두고 진멸하려 하지 않았다. 보잘것없고 쓸모없는 것은 모두 진멸했다.사무엘상 15:9 · 본디새김
3절에서 여호와야훼는 「아끼지 말고」라고 명령하셨습니다. 9절은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좋은 가축들을 「아껴 두고」라고 말합니다. 앞에서 금지한 행동이 뒤에서 그대로 실행된 것입니다.
사울과 백성은 모든 생명을 가엾게 여겨 살려 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가축은 남기고, 보잘것없고 쓸모없는 것은 없앴습니다. 그들이 긋는 경계는 생명의 존엄이나 보편적인 자비의 원칙이 아니라, 무엇이 가치 있고 무엇이 가치 없는지에 대한 판단과 맞닿아 있습니다.
아각을 살려 둔 정확한 이유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포로로 잡힌 적국 왕이 승리의 상징이나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었다는 설명은 가능하지만, 그것을 사울의 확정된 동기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아각이 명령의 예외가 될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울은 그 예외를 만들었습니다.
사울은 명령을 전면적으로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명령 안에서 자신들이 받아들일 부분과 받아들이지 않을 부분을 선택했습니다.
이 점에서 그의 불순종은 외형상 더욱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는 전쟁을 수행했고, 적군을 격파했으며, 명령의 상당 부분을 실행했습니다. 바깥에서 보면 성공적인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은 승리의 규모보다 남겨 둔 것에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승전 기념물과 밤새 부르짖는 예언자
전쟁이 끝난 뒤 이야기는 두 사람의 전혀 다른 반응을 나란히 놓습니다.
사울은 갈멜에 자신을 위한 기념물을 세웁니다.
반면 사무엘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고 밤새 그분께 부르짖습니다.
「나는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 그가 나를 따르다가 돌아섰고 내 말을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무엘은 화가 나서 밤새 여호와야훼에게 부르짖었다.사무엘상 15:11 · 본디새김
본문은 사울의 불순종을 단순한 절차상의 위반보다 깊은 문제로 설명합니다. 말씀을 실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관계에서 돌아섰다는 것과 연결됩니다.
그는 사울의 실각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격해져 밤새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습니다. 본문은 그의 격한 감정이 정확히 누구를 향했는지 분명히 밝히지 않지만, 적어도 사울을 향한 심판의 소식이 사무엘에게 가볍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음 날 아침 사무엘은 사울을 만나러 나섭니다. 그런데 사울은 이미 승리의 흔적을 남긴 뒤 다른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마침내 두 사람이 만납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가자 사울이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여호와야훼께 복을 받으신 분입니다. 저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실행했습니다.」사무엘상 15:13 · 본디새김
사무엘이 말했다. 「그러면 내 귀에 들리는 이 양과 염소의 소리는 무엇이며, 내가 듣는 소의 소리는 무엇이냐?」사무엘상 15:14 · 본디새김
사울이 자신의 순종을 설명하기도 전에 독자는 이미 9절에서 그가 무엇을 남겼는지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울의 선언은 독자에게 처음부터 어긋난 말로 들립니다.
사울이 행동으로 남긴 결과가 그의 입으로 하는 주장을 반박하는 셈입니다.
사울이 말했다. 「그들이 아말렉 사람들에게서 끌고 온 것입니다.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제물로 잡아 바치려고 가장 좋은 양과 염소와 소를 아껴 두었습니다. 나머지는 우리가 진멸했습니다.」사무엘상 15:15 · 본디새김
좋은 가축을 남긴 주체는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나머지를 진멸한 일에는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또한 남겨 둔 가축에는 제물이라는 종교적 목적을 부여합니다.
사울이 처음부터 거짓으로 제사 계획을 꾸며 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제사를 드릴 생각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그의 내면을 단정하는 대신, 그가 제시한 이유가 명령에 대한 불순종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했다. 「그만하여라. 간밤에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하신 말씀을 너에게 알려 주겠다.」 사울이 그에게 말했다. 「말씀하십시오.」사무엘상 15:16 · 본디새김
이제 사울이 자신의 행동을 해석하는 시간이 끝나고,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그 행동을 해석하는 시간이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상 7:12에서 사무엘은 블레셋을 물리친 뒤 돌을 세우고 에벤에셀이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셨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번에는 사울이 기념물을 세웁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가 그것을 ‘자신을 위해’ 세웠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은 승리의 기억을 하나님의 도움에 연결했고, 다른 사람은 자기 자신의 업적에 연결했습니다.
순종의 기준을 바꾼 왕
사무엘의 책망은 예상 밖의 말로 시작합니다.
사무엘이 말했다. 「네 눈에 네가 하찮아 보이더라도, 너는 이스라엘 지파들의 우두머리가 아니냐? 여호와야훼께서 너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셨다.」사무엘상 15:17 · 본디새김
사울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와 관계없이, 여호와야훼는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게는 왕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너는 여호와야훼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고 전리품에 달려들어,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느냐?」사무엘상 15:19 · 본디새김
9절에서 사울과 백성이 남긴 것은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절에서 사무엘은 그것을 남긴 행동이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한 결과가, 하나님 앞에서는 악한 일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이 평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말했다. 「저는 분명히 여호와야훼의 목소리에 순종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저를 보내신 길로 갔고, 아말렉 왕 아각을 데려왔으며, 아말렉은 진멸했습니다.」사무엘상 15:20 · 본디새김
바로 그 아각을 산 채로 데려온 것이 명령을 완전히 실행하지 않았다는 증거인데, 사울은 그것을 자신의 순종을 설명하는 말 속에 넣고 있습니다.
그에게 순종은 명령의 주요 부분을 수행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쟁을 이기고 아말렉을 격파했다면, 왕 하나와 가축 일부를 남긴 것이 전체 성과를 무효로 만들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다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사무엘이 말했다. 「여호와야훼께서 번제와 희생제물을 여호와야훼의 목소리에 순종하는 것만큼 기뻐하시겠느냐? 보아라, 순종하는 것이 희생제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사무엘상 15:22 · 본디새김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 전체를 부정하는 선언이 아닙니다. 제사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예배의 방식이었습니다. 문제는 제사 자체가 아니라, 제사를 명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이유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판단이 충돌할 때, 자신의 판단에 종교적인 이름을 붙여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제사가 불순종을 순종으로 바꾸어 주지는 않습니다.
사무엘은 ‘순종’과 ‘귀를 기울임’을 나란히 놓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단지 소리를 인식하거나 명령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응답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반역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은 죄악과 드라빔과 다름없다. 네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거부했으므로, 그분도 너를 거부하여 왕으로 있지 못하게 하셨다.」사무엘상 15:23 · 본디새김
사무엘이 사울에게 실제로 점술이나 드라빔 숭배를 했다고 고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반역과 완고함의 성격을 그러한 행위에 비유합니다.
점술이나 우상 숭배의 문제는 하나님과 무관한 다른 권위에 의존한다는 데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울은 여호와야훼의 말씀보다 다른 판단을 우선했습니다.
겉으로는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부르고 제사를 준비하지만, 실제 선택의 자리에서는 다른 권위가 작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것과 하나님이 사울의 왕권을 거부하신 것이 직접 연결됩니다. 사무엘상 13:13–14에서 사울은 이미 자신의 왕조가 계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선언을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판결이 더욱 직접적으로 사울 자신의 왕권에 적용됩니다.
왕이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을 거부한 셈입니다.
조금 더 깊이
사울은 처음 왕으로 부름받았을 때 자신이 작은 지파와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을 내세웠습니다(사무엘상 9:21). 왕을 뽑는 자리에서는 짐 꾸러미 사이에 숨어 있기도 했습니다(10:22). 그 때문에 17절을 사울이 과거에 스스로를 작게 여겼던 시절을 회상하는 말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사울이 스스로를 하찮게 여긴다고 하더라도 그는 이미 이스라엘의 지도자라는 양보의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어 문장은 두 읽기를 모두 허용합니다. 드라빔은 고대 이스라엘과 주변 문화에서 가정의 신상이나 점술과 관련하여 등장하는 물건입니다(창세기 31:19, 에스겔 21:21).
백성의 목소리를 두려워한 왕
사무엘의 책망을 들은 뒤 사울은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말했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여호와야훼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제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목소리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사무엘상 15:24 · 본디새김
그동안 사울은 백성이 제사를 위해 가축을 남겼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데 ‘두려움’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왕은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백성의 지지를 잃을까 두려워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운다면, 왕권은 겉으로 유지되더라도 그 권한을 행사하는 기준은 뒤바뀌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했을 때, 여호와야훼는 사무엘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8:7–9, 22). 하나님은 그들이 왕을 요구하는 선택의 결과를 경고하시면서도, 그 요구를 허용하셨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왕 사울은 이제 백성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다고 고백합니다. 사무엘은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라 백성의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사울은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거스르면서 백성의 요구를 따랐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누구의 말이 최종적인 권위를 갖느냐에 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자신과 함께 돌아가 달라고 요청합니다. 사무엘은 거절합니다.
그때 사울이 떠나려는 사무엘의 겉옷 자락을 붙잡고, 옷이 찢어집니다.
사무엘이 그에게 말했다. 「여호와야훼께서 오늘 이스라엘의 왕권을 네게서 찢어 내어 너보다 나은 네 이웃에게 주셨다.」사무엘상 15:28 · 본디새김
왕권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사울의 손에 찢어진 옷자락을 사용하여, 그에게 일어난 일을 눈에 보이도록 만듭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영광이신 분은 거짓을 말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으신다. 그분은 사람이 아니시므로 후회하지 않으신다.」사무엘상 15:29 · 본디새김
이 문맥에서 ‘후회하지 않으신다’는 말은 특히 하나님이 이미 내리신 판결을 사울의 요구 때문에 뒤집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사울이 말했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부디 제 백성의 장로들과 이스라엘 앞에서 저를 존중해 주십시오. 저와 함께 돌아가 주십시오. 제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엎드려 경배하겠습니다.」사무엘상 15:30 · 본디새김
사무엘이 함께 돌아가 준다면 백성 앞에서 자신의 지위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 요청을 근거로 사울에게 진정한 후회가 전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판결 못지않게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과 지위가 어떻게 보일지를 염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왕이 된 뒤에도 사울의 판단을 좌우하는 것은 사람들의 평가였습니다.
사무엘은 결국 사울을 따라 돌아가고, 사울은 여호와야훼께 엎드려 경배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함께 돌아갔다고 해서 왕권 박탈의 선언이 철회된 것은 아닙니다. 사무엘은 그 판단을 바꾸지 않았고, 곧이어 사울이 끝내 실행하지 않은 일을 직접 처리합니다.
조금 더 깊이
겉옷의 주인이 사무엘인지 사울인지 히브리어 대명사만으로는 완전히 확정할 수 없지만, 이야기 흐름에서는 떠나려는 사무엘의 옷을 사울이 붙잡았다는 이해가 자연스럽습니다. 29절에서는 후회하지 않으신다고 말하지만, 불과 몇 절 앞에서 여호와야훼는 사울을 왕으로 세운 일을 후회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5:11). 그리고 장 마지막에서도 같은 표현이 반복됩니다(15:35). 히브리어에서는 이 세 자리에 모두 나함(נָחַם)이라는 동사가 쓰입니다. 문맥에 따라 후회하다, 마음을 돌이키다, 위로하다 등의 의미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방금 사울의 왕권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시겠다는 여호와야훼의 판결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그 판결이 거짓이 아니며, 사람이 말을 바꾸듯 쉽게 번복될 것도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반면 11절과 35절은 사울이 하나님을 떠난 일에 대한 여호와야훼의 반응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세우신 왕이 돌아선 일을 무관심하게 바라보지 않으십니다. 다만 이것으로 모든 긴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다른 곳에서 여호와야훼께서 선언하신 재앙을 돌이키시는 장면도 전합니다(출애굽기 32:14). 그러므로 29절을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뜻을 바꾸지 않으신다는 보편적인 철학 명제로 단순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 장은 하나님의 후회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사용하면서도, 인간의 변덕과 하나님의 신실함을 구별합니다. 그 긴장을 그대로 남겨 두는 것이 본문의 표현을 존중하는 읽기입니다.
살아남은 아각과 끝나지 않은 전쟁
사무엘이 아각을 데려오라고 명령하자 아각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이 말했다. 「아말렉 왕 아각을 내게 데려오너라.」 아각은 기쁜 기색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아각이 말했다. 「분명 죽음의 쓰라림이 지나갔구나.」사무엘상 15:32 · 본디새김
아말렉의 다른 사람들은 죽었지만 자신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왕이었고, 사울은 그를 산 채로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안도하는 순간 사무엘이 말합니다.
사무엘이 말했다. 「네 칼이 여자들을 자식 잃게 했듯이, 여자들 가운데서 네 어머니도 자식을 잃을 것이다.」 사무엘은 길갈에서 여호와야훼 앞에 아각을 토막 냈다.사무엘상 15:33 · 본디새김
사무엘은 아각이 단지 아말렉 왕이라는 이유만을 들지 않습니다. 그의 칼이 여자들에게서 자식들을 빼앗았다고 말합니다. 아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져온 상실이 이제 그 자신의 집안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사무엘의 이 말 밖에서 아각의 개별적인 범죄 행위를 따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안에서 그의 죽음은 전쟁 포로를 임의로 처형하는 사건이 아니라, 그가 저지른 폭력에 대한 심판으로 제시됩니다.
이 장면의 폭력성을 완곡하게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실제로 끔찍한 죽음을 묘사합니다. 아말렉에 대한 심판은 여기서도 독자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했다고 두 차례나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아각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그의 말을 반박했습니다. 마지막에 사무엘이 직접 아각을 죽인다는 것은 사울의 승리가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온전히 수행한 승리로 인정되지 않았음을 다시 보여 줍니다.
전쟁을 지휘한 사람은 사울이었습니다. 군대를 모으고 적을 격파한 사람도 사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른 마지막 행동을 수행하는 사람은 왕이 아니라 사무엘입니다.
사울은 왕으로서 자신의 군사적 능력을 보여 주었지만, 본문이 요구하는 왕의 가장 중요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디새김은 아각이 기쁜 기색으로 나아왔다고 번역합니다. 아각의 걸음걸이를 표현하는 히브리어는 해석이 어려워, 편안하거나 기쁜 모습으로 다가왔다고 볼 수도 있고, 결박된 채 움직이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길갈은 사울에게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사무엘상 11:14–15에서 이스라엘은 길갈에 모여 사울의 왕권을 새롭게 확립하고 여호와야훼 앞에서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제 같은 길갈에서 사울은 왕으로 있지 못하게 되었다는 선언을 듣습니다. 사울의 왕권을 기념하던 장소가 그의 왕권에 대한 심판을 확증하는 장소가 된 것입니다.
왕을 잃은 예언자, 왕을 세운 일을 후회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인간이 따라야 할 외적인 규칙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맺으신 관계 안에서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거부하는 일은 단순히 명령 하나를 어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말씀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거스르는 일이 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단순히 ‘무조건 명령에 복종하라’는 교훈으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이 장에 등장하는 진멸 명령을 오늘날의 폭력이나 무비판적인 권위 복종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본문의 질문은 고대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와야훼께 받은 특정한 명령과 그 왕권의 책임에서 출발합니다.
마지막 장면은 매우 조용합니다.
사무엘은 라마로 갔고, 사울은 사울의 기브아에 있는 자기 집으로 올라갔다.사무엘상 15:34 · 본디새김
조금 전까지 사울은 사무엘을 붙잡고 자신과 함께 돌아가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사무엘은 한때 그를 따라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두 사람은 각자의 집으로 향합니다.
이 단순한 이동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죽는 날까지 다시는 사울을 보지 않았다. 그러나 사무엘은 사울을 두고 애도했다. 여호와야훼는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했다.사무엘상 15:35 · 본디새김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더 이상 양과 소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사울의 승전 기념물도 보이지 않습니다.
라마로 돌아가는 사무엘과 기브아로 돌아가는 사울의 모습만 남습니다.
한때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던 예언자는 이제 그와 헤어집니다. 그러나 마음에서는 그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애도합니다.
사울의 실패가 얼마나 깊었는지는 그가 잃어버린 왕권뿐 아니라, 그를 두고 애도하는 사무엘과 그를 세운 일을 후회하시는 여호와야훼의 모습에서 드러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