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19장
이 장의 자리 · 16–27장 · 다윗의 등장
죽이려는 왕, 살리시는 하나님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아들에게 명령하고, 신하들에게 명령하고, 직접 창을 던지고, 자객들을 보내고, 마침내 자신이 다윗을 잡으러 나섭니다.
그러나 사울은 끝내 다윗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그는 도망치고, 몸을 피하고, 사람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골리앗 앞에서 자신 있게 나서 싸웠던 다윗은 이번에는 사울에게 맞서 싸우지 않습니다. 창을 들고 반격하지도 않고, 자신의 군대를 모으지도 않습니다.
사무엘상 19장은 다윗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보다, 다윗이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보여 줍니다.
왕은 사람들에게 명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이 반드시 이루어집니까? 왕이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사람의 생명을 빼앗으려 할 때, 그 명령은 어디까지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의 명령을 거부하는 아들
사울은 아들 요나단과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무척 좋아했다.사무엘상 19:1 · 본디새김
첫 문장부터 두 관계가 충돌합니다.
사울은 요나단의 아버지이자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요나단은 아들이면서 동시에 왕의 권위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왕의 명령은 자신의 친구를 죽이라는 것입니다.
앞 장에서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여 언약을 맺었습니다(18:1–4). 이제 그 사랑이 실제로 시험받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알렸다. 「내 아버지 사울이 너를 죽이려 하고 있어. 그러니 아침에는 부디 조심해. 은신처에 머물며 숨어 있어.」사무엘상 19:2 · 본디새김
요나단은 왕이 내린 명령을 알고 있으며, 그 명령이 실행되지 않도록 다윗을 돕습니다. 왕의 아들로서 충돌을 피하기 어려운 선택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다윗을 숨기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아버지에게 직접 말하기로 합니다.
「나는 네가 있는 들로 나가 아버지 곁에 서 있을게. 내가 아버지께 네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되는지 보고 네게 알려 줄게.」사무엘상 19:3 · 본디새김
요나단은 다윗과 사울 사이에 섭니다.
그는 다윗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사울에게 잘못된 행동을 멈출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그는 다윗과 자신이 얼마나 친한지를 먼저 말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에게 다윗을 좋아해 달라고 애원하지도 않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에 관해 좋게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임금님, 임금님의 종 다윗에게 죄를 짓지 마십시오. 그는 임금님께 죄를 짓지 않았고, 그가 한 일들은 임금님께 매우 유익했습니다.」사무엘상 19:4 · 본디새김
이 말에서 요나단은 다윗을 자신의 친구가 아니라 ‘임금님의 종’으로 소개합니다. 그것은 사울에게 다윗이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인지 일깨우는 표현입니다.
다윗은 왕에게 반역한 사람이 아닙니다. 왕을 섬겨 왔고, 왕에게 유익한 일을 했습니다. 따라서 사울이 그를 죽일 정당한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목숨을 걸고 그 블레셋 사람을 쓰러뜨렸고, 여호와야훼께서는 온 이스라엘에 큰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임금님도 이를 보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까닭 없이 다윗을 죽여 죄 없는 피를 흘리는 죄를 지으려 하십니까?」사무엘상 19:5 · 본디새김
요나단은 사울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보여 줍니다. 그는 다윗의 공로를 새롭게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사울이 직접 경험하고 기뻐했던 사건을 기억하게 합니다.
다윗의 승리는 사울에게 위협이 되기 전에 사울도 함께 기뻐했던 이스라엘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울은 그 구원을 가져온 사람을 죽이려 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죽이는 일을 단순히 정치적으로 불리한 행동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 행위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도 ‘죄를 짓다(חָטָא)’와 ‘죄 없는 피’라는 표현이 이어지며, 사울이 하려는 일의 도덕적 성격을 강조합니다.
다윗을 죽여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가 왕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죽임당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왕은 신하에게 명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이라는 이유만으로 죄 없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 정당해지지는 않습니다. 신명기 19:10–13에서도 죄 없는 사람의 피를 흘리는 일은 이스라엘이 경계해야 할 중대한 악으로 다루어집니다.
요나단은 아버지와 왕의 권위를 무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왕이 자신의 권위를 사용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도록 막으려 합니다.
그의 충성은 사울이 내리는 모든 명령을 실행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울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진실을 말하는 데 있습니다.
사울은 요나단의 말을 받아들여 맹세했다. 「여호와야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 그는 결코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사무엘상 19:6 · 본디새김
여기서 6절은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받아들였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어 표현을 직역하면 요나단의 ‘목소리를 들었다(שָׁמַע)’는 뜻입니다. 그의 말을 단순히 귀로 들은 것이 아니라 그 말에 따라 자신의 결정을 바꾸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 맹세는 곧 무너집니다.
여기서 사울이 맹세할 당시부터 거짓말할 생각이었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그 순간에는 실제로 마음을 돌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약속이 이후의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요나단은 아버지의 말을 믿고 다윗을 다시 데려옵니다. 다윗도 왕을 섬기던 자리로 돌아갑니다.
왕의 맹세보다 가까운 왕의 창
다윗은 다시 전쟁터로 나갑니다.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적어도 이 시점에는 왕에게 반역하거나 이스라엘의 전쟁에서 돌아서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군사적 임무를 수행하고 승리합니다.
그러나 승리한 뒤 왕궁에서 벌어지는 일은 앞서의 약속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악한 영이 사울에게 왔다. 사울은 손에 창을 들고 자기 집에 앉아 있었고, 다윗은 손으로 현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사무엘상 19:9 · 본디새김
왕에게는 자신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연주하는 사람이 있고, 그의 손에는 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가 있습니다.
다윗은 왕을 도우려 하지만, 왕은 그를 위협합니다.
사울은 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했다. 그러나 다윗이 사울 앞에서 몸을 피하자, 사울은 창을 벽에 박았다. 다윗은 도망쳐 그날 밤 빠져나갔다.사무엘상 19:10 · 본디새김
그가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맹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손으로 그 맹세를 깨뜨리려 합니다. 사울의 말을 믿고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은 더 이상 아닙니다.
다윗은 이제 단순히 왕의 의심을 받는 신하가 아닙니다. 왕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달아나야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돌아간 집조차 안전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침상에 누워 있는 것은 누구인가
다윗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사울의 추격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사자들을 다윗의 집으로 보내 그를 감시하다가 아침에 죽이도록 했다. 다윗의 아내 미갈이 그에게 알렸다. 「당신이 오늘 밤 달아나 목숨을 건지지 않으면, 내일 당신은 죽임을 당할 거예요.」사무엘상 19:11 · 본디새김
왕궁에서 직접 창을 던졌을 때는 다윗이 피하여 달아났습니다. 이번에는 사람들을 보내 다윗의 집을 감시하게 합니다. 밤새 도망가지 못하게 지키다가 아침에 죽이려는 것입니다.
다윗은 전쟁터에서 강한 적을 상대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제 자기 집에서 잠을 자는 것조차 안전하지 않습니다.
미갈은 창문으로 다윗을 내려보냈다. 다윗은 그곳을 떠나 도망쳐 목숨을 건졌다.사무엘상 19:12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 ‘도망쳐 목숨을 건졌다’는 표현은 단순한 이동을 넘어섭니다. 다윗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적과 싸워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입니다.
사울은 앞 장에서 미갈을 이용하여 다윗을 죽게 하려 했습니다. 미갈과의 결혼이 다윗에게 덫이 되기를 바랐습니다(18:21).
그런데 이제 미갈은 아버지의 계획과 반대로 행동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이용하려 했던 딸이, 실제로는 다윗을 살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앞에서는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살렸습니다.
이번에는 딸 미갈이 다윗을 살립니다.
두 사람 모두 사울의 자녀이지만, 아버지가 내린 살해 명령보다 다윗의 생명을 보호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드라빔과 염소 털 덮개
다윗을 탈출시킨 미갈은 침상에 드라빔을 놓습니다. 머리맡에는 염소 털 덮개를 놓고 그 위에 옷을 덮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잡아 오려고 사자들을 보내자, 미갈이 말했다. 「그는 병이 들었습니다.」사무엘상 19:14 · 본디새김
이 말은 추격을 늦추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의 대답은 더욱 끔찍합니다.
사울은 사자들을 보내 다윗을 보게 하며 말했다. 「내가 죽이게 그를 침상째 내게 데리고 올라와라.」사무엘상 19:15 · 본디새김
요나단이 아버지에게 죄 없는 피를 흘리지 말라고 경고했던 장면을 떠올리면, 사울이 이제 얼마나 멀리 나아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다윗의 생명을 보장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침상째 끌고 오더라도 죽이겠다고 말합니다.
사자들이 방에 들어가 보니 침상에는 다윗이 없습니다. 드라빔과 염소 털 덮개만 있습니다.
사울이 미갈에게 말했다. 「왜 이렇게 나를 속이고 내 원수를 보내 주어 빠져나가게 했느냐?」 미갈이 사울에게 말했다. 「그가 제게 『나를 보내 줘. 내가 왜 너를 죽여야 하겠어?』라고 말했습니다.」사무엘상 19:17 · 본디새김
다윗은 사울의 사위입니다. 사울을 위해 싸웠던 신하이며, 그를 편안하게 해 주려고 현악기를 연주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제 그를 자신의 원수라고 부릅니다.
본문은 다윗이 미갈을 위협했다고 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갈이 먼저 다윗에게 위험을 알려 주고 탈출을 도왔습니다. 그러므로 미갈의 마지막 말은 자신이 다윗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고 아버지에게 설명하는 변명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녀가 아버지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그렇게 말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정확한 동기는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요나단과 미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윗을 보호합니다.
요나단은 아버지에게 직접 진실을 말합니다. 다윗은 죄가 없으며 그를 죽이면 죄 없는 피를 흘리는 것이라고 설득합니다.
미갈은 아버지에게 사실을 숨깁니다. 다윗이 병들었다고 말하고, 침상에 다른 물건을 놓으며, 나중에는 다윗에게 위협당했다고 대답합니다.
본문은 이 차이를 직접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모든 거짓말이 정당하다는 윤리적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왕은 다윗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도망친 다윗을 다시 그 자리에 있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드라빔은 고대 이스라엘과 주변 지역에서 사용되던 신상과 관련된 물건입니다. 창세기 31:19에서 라헬이 아버지 라반의 드라빔을 가져가는 사건이 등장하고, 에스겔 21:21에서도 점술과 관련하여 언급됩니다. 그러나 미갈이 사용한 드라빔이 정확히 어떤 모양과 크기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히브리어의 형태만으로 그것이 한 개였는지 여러 개였는지도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본문은 미갈이 그 물건을 침상에 놓아 누군가 있는 것처럼 꾸몄다고 전할 뿐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 그러한 물건이 존재했음을 보여 주지만, 미갈이나 다윗이 실제로 그것을 숭배했는지는 본문이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앞서 사무엘이 사울의 완고함을 드라빔과 연결하여 책망했던 사실을 떠올리면(사무엘상 15:23), 사울의 집안에서 드라빔이 등장한다는 점은 독자에게 묘한 긴장을 남깁니다. 그러나 여기서 드라빔이 수행하는 역할은 종교 의례가 아니라 속임수입니다.
다윗이 찾아간 사람은 누구인가
다윗은 목숨을 건져 도망친 뒤 사무엘을 찾아갑니다.
다윗은 도망쳐 빠져나온 뒤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한 일을 모두 알렸다. 다윗과 사무엘은 함께 가서 나욧에 머물렀다.사무엘상 19:18 · 본디새김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던 사람입니다(16:13). 동시에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세웠던 사람이기도 합니다(10:1).
그러므로 다윗이 사무엘을 찾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믿을 만한 노인을 찾아갔다는 이야기보다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 일어난 하나님의 선택을 알고 있는 사람, 그리고 사울의 왕권에 내려진 하나님의 판결을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갑니다.
본문은 사무엘이 다윗에게 어떤 조언을 했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어떤 마음으로 그를 찾아갔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사울에게 당한 일을 모두 알렸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사무엘은 두 왕 사이에 벌어진 일을 듣습니다. 자신이 기름을 부었던 사울이, 자신이 새롭게 기름을 부었던 다윗을 죽이려 한다는 것입니다.
나욧이 정확히 어떤 구조를 가진 장소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에 따르면 그곳에는 사무엘과 관련된 예언자들의 무리가 있었으며, 사무엘이 그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곳은 사무엘이 활동하던 예언자 공동체와 관계된 장소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무엘에게는 왕이 행사하는 것과 같은 군사적 권한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다음 장면에서 다윗을 보호하는 결정적인 힘은 군대나 성벽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사건에서 나옵니다.
잡으러 간 사람들이 예언하기 시작하다
사울은 다윗이 라마의 나욧에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잡아 오려고 사자들을 보냈다. 사자들은 예언자 무리가 예언하고 사무엘이 그들을 거느리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사자들 위에 임하자, 그들도 예언했다.사무엘상 19:20 · 본디새김
본문은 그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 전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이 예언을 마친 뒤 어떤 행동을 했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사건에서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임하자, 그들이 왕에게서 받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예언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사울은 소식을 듣고 다른 사람들을 보냅니다.
그들도 예언합니다.
다시 세 번째로 사람들을 보냅니다.
그들도 예언합니다.
처음에는 우연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자 독자는 이 사건이 단순한 방해나 사람들의 선택으로만 설명되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사울은 사람을 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까지 자신의 뜻대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울이 가진 왕권은 실제로 큰 권한입니다. 신하들에게 명령할 수 있고, 사람들을 먼 곳까지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명령의 실행을 막으실 때, 사울은 그것을 관철할 수 없습니다.
이야기는 이제 사울 자신이 직접 나서도록 이끕니다.
사울도 예언자들 가운데 있는가
사울은 직접 라마로 갑니다.
그는 큰 물구덩이에 이르러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는지 묻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나욧에 있다고 알려 줍니다. 사울은 그곳으로 향합니다.
여기까지 보면 사울은 여전히 자신이 직접 행동하면 다윗을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세 차례 보낸 사람들이 다윗을 못 잡자 왕 자신이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사울은 그곳, 라마의 나욧으로 향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도 임했다. 그는 라마의 나욧에 이를 때까지 줄곧 예언하며 걸어갔다.사무엘상 19:23 · 본디새김
사울은 처음부터 나욧에 도착하여 예언자들의 무리와 함께 행동한 것이 아닙니다. 아직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하나님의 영이 임합니다.
그는 예언하기 위해 라마에 온 사람이 아니라 다윗을 붙잡으러 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임하자 왕의 계획과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그도 자기 옷을 벗었다. 그도 사무엘 앞에서 예언하고, 벌거벗은 채 쓰러져 그날 온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누워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울도 예언자들 가운데 있는가?」 하고 말하게 되었다.사무엘상 19:24 · 본디새김
다윗을 죽이려던 왕이 도리어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움직여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사울이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단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다윗을 죽이려던 마음을 완전히 버렸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야기의 흐름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행동을 중단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처음 왕이 되었을 때도 들렸던 질문
「사울도 예언자들 가운데 있는가?」 이 질문은 사무엘상 10:11–12에서 이미 등장했습니다. 그때 사울은 왕으로 선택받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언자들의 무리 가운데서 예언했고, 사람들이 놀라면서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19장에서 같은 질문이 다시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왕으로 세워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이번에는 왕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다윗을 잡으려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이 임합니다.
따라서 같은 질문이지만 그 의미는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사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하는 놀라움이었다면, 이번에는 그가 다윗을 잡으러 갔다가 오히려 예언자들 가운데 쓰러져 있다는 역설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예언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다는 보증은 아닙니다.
사울은 처음에도 예언했고, 이번에도 예언합니다. 그러나 그의 삶 전체를 살펴보면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죄 없는 다윗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특별한 영적 경험과 하나님께 대한 지속적인 순종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영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실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을 경험했음에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과 반대로 자신의 왕권을 사용한 사람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장면에서 그가 정확히 어떤 상태로 예언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의식이 어느 정도 있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왜 옷을 벗었는지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벌거벗은 채’라는 말 역시 실제로 어떤 옷까지 벗었는지를 현대 독자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히브리어 아롬은 벌거벗은 상태를 나타내지만, 문맥에 따라 겉옷이나 평소의 의복을 벗어 신체가 노출된 상태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같은 속담의 기원을 두 장면에서 각각 설명하는 듯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무엘서의 전승이 형성된 과정을 생각할 때 해석상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이야기 안에서 두 장면을 함께 읽으면 매우 선명한 대조가 나타납니다. 사무엘상 2장에서 한나는 여호와야훼께서 사람을 낮추기도 하고 높이기도 하시며, 힘센 자들의 힘을 꺾으시는 분이라고 노래했습니다(2:4–8). 사울은 권력을 가진 왕이지만, 그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다윗은 위협받는 도망자이지만, 그의 생명은 지켜집니다. 이것이 한나의 노래가 말했던 하나님의 통치가 이야기 속에서 나타나는 한 모습입니다.
사울의 마지막 모습이 말하는 것
사울은 왕권을 가지고 있지만 점점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다윗은 왕권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계속해서 살아남습니다. 다윗을 살리는 여러 행동과 사건을 통해, 왕의 권한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장이 다윗을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 아래 있는 사람으로 보여 준다고 해서, 그가 앞으로 위험을 전혀 겪지 않을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윗의 도피 생활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안전한 왕궁이나 자기 집으로 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사울은 라마의 나욧까지 찾아왔습니다. 자신이 보낸 사람들이 모두 다윗을 잡아오지 못하자 직접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다윗을 죽이라는 명령을 실행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없습니다.
사무엘 앞에 쓰러져 있는 사울이 있을 뿐입니다.
그는 왕이지만, 그 순간에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으로 서 있지 못합니다. 온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누워 있습니다.
다윗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이 마지막 장면이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러 왔지만,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사울이 다윗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움직인 끝에, 정작 움직일 수 없게 된 사람은 사울 자신이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