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20장
이 장의 자리 · 16–27장 · 다윗의 등장
빈자리와 끊어지지 않는 언약
사무엘상 20장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누군가가 등장하는 순간이 아니라, 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순간입니다.
초하루가 되어 왕이 식탁에 앉습니다. 사울은 늘 앉던 자리에 앉고, 군대 지휘관 아브넬도 곁에 앉습니다. 요나단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평소와 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다윗은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살아남습니다. 그러나 그 빈자리 때문에 다시는 예전처럼 왕의 식탁에 앉을 수 없게 됩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왕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모습을 감춥니다. 그런데 그가 왕궁에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순간, 그를 가장 사랑하는 요나단과도 헤어져야 합니다.
이 장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언약을 맺습니다. 그러나 그 언약은 두 사람이 언제까지나 함께 머물 수 있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오히려 함께 있을 수 없게 되더라도 서로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야기는 그 언약이 왜 필요했는지를 보여 주는 절박한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저와 죽음 사이는 한 걸음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윗은 라마의 나욧에서 빠져나와 요나단을 찾아옵니다.
다윗은 라마의 나욧에서 도망쳐 요나단에게 와서 말했다. 「제가 무엇을 했습니까? 제 허물이 무엇입니까? 아버님 앞에서 제 죄가 무엇이기에 그분이 제 목숨을 노리십니까?」사무엘상 20:1 · 본디새김
다윗은 자신이 죽임당할 만한 잘못을 저질렀는지 묻고 있습니다. ‘무엇을 했습니까?’, ‘제 허물이 무엇입니까?’, ‘제 죄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점점 좁혀지면서, 사울이 자신의 생명을 빼앗을 정당한 이유가 없다는 문제를 드러냅니다.
이 질문에는 앞 장에서 요나단이 사울에게 했던 말이 되살아납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죽이려는 아버지에게 왜 죄 없는 피를 흘리려 하느냐고 물었습니다(19:5).
이번에는 다윗 자신이 묻습니다.
요나단이 그에게 말했다. 「그럴 리 없어. 너는 죽지 않을 거야. 내 아버지는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내게 알리지 않고는 하지 않아. 그런데 아버지가 왜 이 일을 내게 숨기겠어? 그런 일은 없어.」사무엘상 20:2 · 본디새김
요나단은 이전에 사울을 설득하여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아냈습니다(19:6). 또한 그는 아버지가 중요한 일을 자신에게 알려 준다고 믿습니다. 그에게 아버지는 아직 자신과 의논하고, 자신이 말하면 설득될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다윗이 다시 맹세하며 말했다. 「아버님은 당신이 저를 좋게 보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요나단이 마음 아파할지 모르니 이 일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신 겁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목숨을 두고 맹세합니다. 저와 죽음 사이는 한 걸음밖에 되지 않습니다.」사무엘상 20:3 · 본디새김
이 말은 사울의 속생각을 전지적 서술자가 확인해 주는 대목이 아닙니다. 다윗이 사울의 행동을 토대로 내린 판단입니다. 사울은 이미 다윗을 죽이려 했고,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요나단에게 사울은 여전히 아버지입니다.
다윗에게 사울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왕입니다.
죽음이 멀리 있는 가능성이 아니라 바로 앞에 다가온 현실이라는 표현입니다. 왕의 창을 피했고, 왕이 보낸 사람들에게 쫓겼으며, 자기 집에서조차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 경험을 겪은 사람에게 죽음은 한 걸음 앞에 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말했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말해. 내가 해 줄게.」사무엘상 20:4 · 본디새김
여기서 두 사람의 대화는 누가 사울을 더 정확히 알고 있는가 하는 논쟁에서 벗어납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판단을 고집하기보다 다윗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습니다. 그는 아직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다윗을 돕겠다는 뜻은 분명히 합니다.
초하루 식탁을 시험의 자리로 삼다
다윗은 계획을 제안합니다.
다음 날은 초하루입니다. 그는 평소라면 왕과 함께 앉아 식사해야 하지만,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고 들에 숨어 있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울이 자신의 부재를 물으면 베들레헴에서 온 집안이 해마다 드리는 제사에 참여하려고 갔다고 설명해 달라고 합니다.
초하루는 이스라엘의 달력에서 새로운 달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었습니다. 민수기 10:10과 28:11–15에서도 초하루의 예배와 제사가 언급됩니다. 사울의 궁정에서도 이때 특별한 식사가 마련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은 왕의 식탁에 참석해야 하는 사람이었고, 그 자리가 비어 있으면 눈에 띌 상황이었습니다.
사울이 그의 부재를 받아들이면 안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같이 화를 낸다면 다윗을 해치기로 작정했다는 뜻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마음을 직접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반응을 통해 그의 의도를 확인하려 합니다.
다윗은 실제로 베들레헴에 간 것이 아니라 들에 숨어 있습니다. 본문은 베들레헴의 가족 제사가 실제로 예정되어 있었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요나단이 전할 설명 전체가 사실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은 사울의 살해 위협 속에서 사실을 숨기고 다른 행선지를 말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본문은 이 행동에 대한 일반적인 윤리 규칙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윗이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그러한 방법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당신의 종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의 종을 당신과 함께 여호와야훼의 언약에 들어가게 하셨으니 말입니다. 제게 허물이 있다면 당신이 직접 저를 죽이십시오. 왜 저를 아버님께 데려가시겠습니까?」사무엘상 20:8 · 본디새김
여기서 다윗은 자신과 요나단 사이의 언약을 근거로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결백하다고 말하면서도 무조건 자신을 보호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실제로 죽을 만한 허물이 있다면 요나단이 직접 책임을 물어도 좋다고 말합니다.
다윗에게 필요한 것은 죄가 있든 없든 자신을 감싸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직하게 알아보고, 부당한 죽음으로 넘겨주지 않을 사람입니다.
요나단은 다시 약속합니다. 아버지가 다윗을 해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반드시 알려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여전히 한 가지가 걱정됩니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거칠게 대답한다면, 그 결과를 누가 자신에게 알려 줄 것입니까?
두 사람은 왕궁의 시선에서 벗어난 들판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단순한 탈출 계획보다 훨씬 오래 지속될 약속을 나눕니다.
왕위를 물려받을 사람이 미래의 왕에게 부탁하다
들판에서 요나단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부르며 맹세합니다.
「아버지가 너를 해치기를 원한다면, 내가 네게 알려 주고 너를 보내 주어 무사히 가게 할게. 그러지 않으면 여호와야훼께서 이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고 또 내리시기를 바라. 여호와야훼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것처럼 너와 함께 계시기를 바라.」사무엘상 20:13 · 본디새김
요나단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고대 이스라엘의 엄숙한 맹세 형식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말에서 이야기의 방향이 뜻밖에 달라집니다.
요나단은 여호와야훼께서 아버지 사울과 함께하셨던 일을 과거의 일로 말합니다. 사울은 여호와야훼의 선택을 받아 왕이 되었고, 하나님의 영을 받아 전쟁을 수행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영은 사울에게서 떠났고 다윗에게 임했습니다(16:13–14).
본문은 요나단이 다윗의 기름부음 사건을 알고 있었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요나단의 말은 사울의 왕권이 영원히 계속되리라는 확신에서 이미 벗어나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께서 다윗과 함께하시기를 바라며, 곧이어 자신과 자기 집안의 미래를 다윗에게 맡기는 말을 꺼냅니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면, 내게 여호와야훼의 호의를 베풀어 내가 죽지 않게 해 주지 않겠어?」사무엘상 20:14 · 본디새김
「내 집안에 베푸는 네 호의를 영원히 끊지 마.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의 원수들을 땅 위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끊어 버리실 때에도 끊지 마.」사무엘상 20:15 · 본디새김
여기서 두 사람의 위치가 뒤바뀝니다.
조금 전까지 다윗은 자신의 목숨을 지켜 달라고 요나단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요나단이 다윗에게 자신의 목숨과 집안을 지켜 달라고 부탁합니다.
현재 다윗은 도망자입니다. 왕에게서 쫓기고 있으며 자신의 생명조차 안전하지 않습니다. 반면 요나단은 왕의 아들입니다. 궁정에 머물 수 있고 왕권을 물려받을 가능성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미래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요나단입니다.
이것은 요나단이 앞으로 권력의 방향이 바뀔 수 있음을 알고 있거나 적어도 진지하게 예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는 다윗이 장차 강한 위치에 서게 될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때 자신의 집안을 해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합니다.
「여호와야훼의 호의」는 무엇인가
‘호의’는 단순한 친절이나 순간적인 호감을 넘어, 관계 안에서 신의를 지키며 지속적으로 베푸는 사랑과 자비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특히 언약의 문맥에서는 서로에게 약속한 관계를 저버리지 않는 신실함이 중요한 의미로 나타납니다.
왕조가 교체될 때 이전 왕실의 사람들이 새로운 왕권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 왕의 아들과 그 자손들은 왕위 계승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나단은 그런 미래를 내다보며 다윗에게 자신의 집안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사울은 다윗이 살아 있으면 요나단의 왕권이 굳게 서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요나단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는 다윗을 살리고, 장차 다윗에게 자신의 집안을 맡깁니다.
여기서 사무엘상 18장의 요나단이 자신의 옷과 무기를 다윗에게 주었던 장면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때는 다윗에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사랑이 두 집안의 미래까지 포함하는 언약으로 발전합니다.
이 약속은 이후 사무엘하 9장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사울의 집안에 베풀 수 있는 호의를 실천합니다. 그때 다윗은 요나단과의 관계를 기억하며 그의 아들을 보호하고 왕의 식탁에서 먹도록 합니다(사무엘하 9:1–13).
한때 사울의 식탁에서 다윗의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훗날에는 다윗의 식탁에 요나단의 아들이 앉게 됩니다. 이 두 장면을 함께 읽으면 언약의 신실함이 얼마나 오래 이어질 수 있는지 보게 됩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하여 그에게 다시 맹세하게 했다. 그는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했다.사무엘상 20:17 · 본디새김
이 사랑의 반복은 단순한 감정 강조가 아닙니다. 요나단이 왜 자신의 미래와 집안을 다윗에게 맡기려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다윗을 자신의 곁에 붙잡아 두려는 마음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윗이 살아갈 수 있도록 보내 주고, 자신들이 떨어져 있더라도 신의를 지키겠다는 약속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화살로 말하기로 하다
언약을 맺은 뒤 두 사람은 구체적인 연락 방법을 정합니다.
다윗은 들에 숨어 있고, 요나단은 왕의 식탁에서 아버지의 반응을 확인할 것입니다. 다윗이 직접 요나단을 만나러 나타났다가 사울의 사람들에게 발각될 수도 있습니다. 요나단이 사람을 보내어 편지를 전하게 하더라도 비밀이 드러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화살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나는 과녁을 겨누듯 그 바위 옆으로 화살 세 개를 쏠게.」사무엘상 20:20 · 본디새김
그는 자신을 따르는 소년에게 화살을 찾도록 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소년에게 외치는 말을 다윗이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봐라, 화살들이 네 이쪽에 있다」고 말하면 안전하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봐라, 화살들이 네 저쪽에 있다」고 말하면 다윗은 떠나야 합니다.
소년에게는 평범한 활쏘기 연습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자신의 생사가 걸린 소식입니다.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은 왕궁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다윗에게 공개적으로 소식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다윗은 살아 있지만 자신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누군가의 목소리를 숨어서 들어야 합니다. 왕의 총애를 받던 지휘관이었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의 이름으로 말을 주고받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너를 보내신 것이니까」
「하지만 내가 그 젊은이에게 『봐라, 화살들이 네 저쪽에 있다』고 말하면 떠나. 여호와야훼께서 너를 보내신 것이니까.」사무엘상 20:22 · 본디새김
그렇다고 본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직접 떠나라는 말씀을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나단은 사울의 반응을 확인한 뒤 다윗이 떠나야 한다면, 그 피할 수 없는 길을 하나님의 다스리심 안에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보호할 수 있지만 사울의 마음을 반드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랑으로 다윗의 모든 위험을 없애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위험 때문에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 삶이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다윗이 떠난다면 요나단은 사랑하는 친구를 잃게 됩니다. 그들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다윗에게 자신의 곁에 남아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위험하다면 떠나라고 말합니다.
「너와 내가 나눈 말에 대해서는, 여호와야훼께서 나와 너 사이에 영원히 계셔.」사무엘상 20:23 · 본디새김
두 사람이 서로의 곁에 있을 수 없더라도, 그들 사이에 맺은 언약이 계속 유효하다는 선언입니다. 그분이 두 사람의 약속을 아시고 그 관계의 증인이 되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서 요나단은 자신이 맹세를 어기면 여호와야훼께서 책임을 물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는 두 사람이 나눈 말의 지속성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연결합니다.
다윗은 숨어 있고, 요나단은 왕의 식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약속은 왕궁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들판에서, 여호와야훼 앞에서 서로에게 신의를 지키기로 했습니다.
이제 그 약속이 실제로 시험받을 때가 옵니다.
비어 있는 자리가 왕의 마음을 드러내다
초하루가 되자 사울은 식탁에 앉습니다.
왕은 늘 하던 대로 자기 자리인 벽 쪽 자리에 앉았다. 요나단은 일어섰고, 아브넬은 사울 곁에 앉았다. 다윗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사무엘상 20:25 · 본디새김
왕궁의 질서는 겉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왕이 앉아 있는 자리와 대조되는 하나의 빈자리가 있습니다.
첫날 사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다윗에게 무슨 일이 생겨 그가 정결하지 않구나. 분명 정결하지 않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둘째 날에도 자리가 비어 있자 사울은 요나단에게 묻습니다.
초하루 이튿날인 그달 둘째 날에도 다윗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사울이 아들 요나단에게 말했다. 「왜 이새의 아들은 어제도 오늘도 식사하러 오지 않느냐?」사무엘상 20:27 · 본디새김
다윗은 왕의 사위이며, 왕에게 충성하며 싸웠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아버지의 이름을 통해 가리킵니다.
요나단은 미리 약속한 대로 대답합니다. 다윗이 베들레헴의 가족 제사에 참석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으며, 그래서 왕의 식탁에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울은 격렬하게 화를 냅니다.
하지만 그 분노는 예상 밖의 방향으로 향합니다.
다윗이 아니라 요나단에게 쏟아집니다.
사울은 요나단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이 뒤틀리고 반항하는 여자의 아들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게 수치가 되고 네 어미의 벌거벗은 몸에도 수치가 되는 줄 내가 모를 것 같으냐?」사무엘상 20:30 · 본디새김
이 욕설은 요나단뿐 아니라 그의 어머니에게까지 수치를 돌리는 표현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배반하기 위해 다윗을 보호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을 죽이는 일이 죄라고 생각했으며, 그 죄를 아버지가 범하지 않도록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요나단의 선택을 왕실의 이해관계에 대한 배반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새의 아들이 땅 위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너도 네 왕권도 굳게 서지 못한다. 그러니 이제 사람을 보내 그를 내게 데려와라. 그는 죽어야 할 자다.」사무엘상 20:31 · 본디새김
여기에는 다윗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에 관한 설명이 없습니다. 그가 왕을 배반했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문제는 다윗의 존재 자체입니다.
사울은 왕권을 지키기 위해 다윗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을 죽이는 방식으로 얻는 왕권을 원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에게 대답했다. 「그가 왜 죽임을 당해야 합니까? 그가 무엇을 했습니까?」사무엘상 20:32 · 본디새김
이 질문은 장의 첫 구절과 연결됩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자신이 무엇을 했기에 사울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제 요나단이 아버지에게 같은 문제를 제기합니다.
사울은 다윗이 살아 있으면 요나단이 왕이 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요나단이 묻는 것은 다윗을 죽일 정당한 이유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울에게 다윗이 살아 있다는 사실은 왕권을 위협하기에 충분합니다. 요나단에게는 다윗이 실제로 죽을 만한 일을 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울은 이 질문에 말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사울은 요나단을 맞히려고 그에게 창을 던졌다. 요나단은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기로 작정했다는 것을 알았다.사무엘상 20:33 · 본디새김
왕은 아들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다윗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그 왕이 바로 그 아들을 죽일 수도 있는 행동을 합니다.
아들의 미래를 지키겠다는 왕이 아들의 생명을 위협한 것입니다.
요나단은 분노하여 식탁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가 다윗 때문에 마음이 아팠으며, 아버지의 모욕으로 고통받았다고 전합니다.
왕의 식탁은 먹을 것으로 차려져 있지만, 요나단은 그 자리를 떠납니다.
처음에는 다윗의 자리만 비어 있었습니다.
이제 요나단도 그 식탁을 떠납니다.
왕권을 지키려는 사울의 분노 때문에, 왕이 가장 가까이 두어야 할 두 사람이 모두 그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스라엘의 제의적 정결 규정에서는 특정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 일시적으로 부정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레위기 15장). 부정은 반드시 도덕적인 죄나 개인의 잘못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고대 이야기에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람을 부르는 일 자체가 반드시 모욕적인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 호칭만으로 사울의 적의를 판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사울이 분노 속에서도 다윗을 다시 ‘이새의 아들’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장에서 그 호칭은 다윗을 자기 가문과 구별하여 대하는 사울의 태도와 연결됩니다. 34절의 히브리어에서는 모욕의 대상이 다윗인지 요나단인지 해석상 갈림이 있습니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직접 욕설을 퍼부었다는 점에서는 요나단이 모욕당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이 다윗 때문에 마음 아파한다는 바로 앞의 표현과 연결하면, 다윗이 모욕당했다고 읽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아버지의 창과 아들의 화살
이튿날 아침 요나단은 다윗과 약속한 들판으로 나갑니다.
그에게는 어린 소년 하나가 함께합니다. 요나단은 소년에게 자신이 쏘는 화살을 찾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소년이 달려가자 그 너머로 화살을 쏩니다.
소년이 요나단이 쏜 화살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요나단이 소년 뒤에서 외쳤다. 「화살이 네 저쪽에 있지 않느냐?」사무엘상 20:37 · 본디새김
다윗은 떠나야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무기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전혀 다릅니다.
사울은 요나단을 해치기 위해 창을 던집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살리기 위해 화살을 쏩니다.
요나단이 소년 뒤에서 외쳤다. 「빨리, 서둘러라. 멈추지 마라.」 요나단의 소년은 화살들을 주워 자기 주인에게 왔다.사무엘상 20:38 · 본디새김
소년에게는 화살을 빨리 주워 오라는 명령입니다. 요나단이 정확히 다윗에게도 서둘러 떠나라는 뜻으로 이 말을 덧붙였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미리 정해진 암호는 화살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알려 주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빨리’, ‘서둘러라’, ‘멈추지 마라’는 외침은 다윗에게도 절박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왕궁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소년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요나단과 다윗만 그 일을 알고 있었다.사무엘상 20:39 · 본디새김
소년은 자신이 누군가의 생사를 가르는 소식을 전달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저 주인이 시킨 일을 합니다. 이것은 두 사람의 언약이 얼마나 비밀스럽고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보여 줍니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지만, 그 신뢰를 자유롭게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화살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소년이 돌아오자 자신의 무기를 맡기고 성읍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이제 들판에는 다시 두 사람만 남습니다. 그리고 암호로 전해야 했던 말이 끝난 뒤, 두 사람은 마침내 얼굴을 마주합니다.
서로를 위해 울면서 헤어지다
소년이 떠나자 다윗이 숨어 있던 곳에서 나옵니다.
소년이 떠나자 다윗은 남쪽에서 일어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세 번 절했다. 두 사람은 서로 입을 맞추고 서로를 두고 울었고, 끝내 다윗이 더욱 크게 울었다.사무엘상 20:41 · 본디새김
다윗은 자신이 죄가 없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요나단도 아버지를 설득할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이미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여기서 두 사람이 서로 입을 맞추고 운다는 표현은 깊은 애정과 슬픔을 나타냅니다. 그들의 관계를 단순한 정치적 동맹으로만 축소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실제로 정서적인 애착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제 자신이 익숙하게 지내던 삶을 떠나야 합니다. 사울의 식탁에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집에서도 안전하게 머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가장 깊이 사랑하며 보호했던 요나단과도 헤어져야 합니다.
본문은 다윗의 내면을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요나단 앞에서 크게 운다는 장면은 말보다 많은 것을 전합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때 두려움 없이 전진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울고 있습니다.
다윗은 위험 앞에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슬픔까지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다윗의 위대함을 감정을 억누르는 능력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용감하게 싸우기도 하고, 도망치기도 하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울기도 합니다.
이 장면에서 요나단도 함께 웁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손에서 창이 날아오는 경험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곁에 남겨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말했다. 「평안히 가. 우리 둘이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여호와야훼께서 나와 너 사이에,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영원히 계실 것이다』 하고 맹세했으니 말이야.」사무엘상 20:42 · 본디새김
그러나 다윗이 가야 하는 길은 편안한 길이 아닙니다. 그는 앞으로 어디에서 지낼지, 누구를 믿고 도움을 청할 수 있을지, 얼마나 오랫동안 도망쳐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요나단이 말하는 평안은 곧바로 안전하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평안히 가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두 사람이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이전처럼 함께 지낼 수 없게 되더라도, 하나님께서 자신들 사이와 자손들 사이에 영원히 계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붙잡아 두는 대신,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을 붙들고 그를 떠나보냅니다.
조금 더 깊이
다윗이 세 번 절하는 행동은 요나단을 향한 존중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나단은 왕의 아들이며, 다윗은 아직 사울의 신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만 서로 입을 맞추고 운다는 표현만으로 두 사람의 관계에 성적인 의미가 있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이야기에서 입맞춤과 울음은 가족과 친구 사이의 깊은 애정과 이별을 표현할 때도 사용됩니다(창세기 29:13; 33:4; 45:15).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두 사람 사이의 사랑과 언약적 신실함, 그리고 헤어짐의 고통입니다. 41절 마지막의 ‘끝내 다윗이 더욱 크게 울었다’는 번역에는 약간의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다윗이 ‘크게 했다’고 말하지만, 무엇을 크게 했는지는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앞에 나오는 울음을 이어받아 다윗의 울음이 더 커졌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나단보다 더 많이 울었다는 비교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다윗의 슬픔이 특별히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은 같습니다.
왕의 식탁보다 오래 남는 약속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누가 보호하고 누가 보호받는지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지켜 주겠다는 언약은 그 변화 때문에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두 사람은 이제 헤어집니다.
요나단은 자신이 떠나보내는 친구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다윗도 언제 다시 요나단을 만날 수 있을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함께할 미래를 보장할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에게 맹세한 말은 남아 있습니다.
들판에는 조금 전까지 화살을 찾던 소년이 있었지만 이제 떠났습니다. 활과 화살도 성읍으로 보내졌습니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서로 입을 맞추고 울었던 두 사람입니다.
요나단은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평안히 가.」
사울의 식탁에는 다윗의 자리가 사라졌지만, 요나단과 다윗 사이의 언약에는 그가 돌아갈 자리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왕궁에 있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서로에게 약속한 말 안에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