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21장

이 장의 자리 · 16–27장 · 다윗의 등장

골리앗의 칼을 들고 도망치는 다윗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릴 때 칼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무릿매와 돌 하나로 상대를 쓰러뜨린 뒤, 골리앗 자신의 칼을 사용하여 승리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21장에서 다윗은 바로 그 골리앗의 칼을 다시 손에 넣습니다.

이번에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살아남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먹을 것이 없어 제사장에게 빵을 구하고, 무기도 없이 도망쳐 와서 칼을 달라고 부탁합니다. 한때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거대한 전사의 칼이 이제 다윗의 손에 들립니다. 그러나 그 칼을 얻었다고 해서 다윗이 안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장에서 다윗은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담대하게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선포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사장에게 사실과 다른 설명을 하고, 적국 왕을 두려워하며, 사람들 앞에서 침을 수염에 흘립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믿음을 잃어버린 것일까요? 아니면 믿음 있는 사람도 극심한 위협 속에서는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일까요?

본문은 그 질문에 간단한 평가를 내리지 않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는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지만, 다윗 자신은 왕의 모습에서 점점 더 멀어집니다.

사무엘상 21장은 왕이 될 사람의 영광스러운 전진이 아니라, 살아남으려는 한 도망자의 불안한 발걸음을 따라갑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721장 본문 읽기 →

혼자 온 다윗을 보고 떨었던 제사장

사무엘상 21:1–4 본문 →

이 장은 짧은 이별로 시작합니다.

다윗은 일어나 떠났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갔다.사무엘상 21:1 · 본디새김

요나단은 성읍으로 돌아갑니다. 그에게는 여전히 아버지와 왕궁, 그리고 자신이 속한 자리가 있습니다.

다윗은 떠납니다.

그가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언제 돌아올 수 있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더 이상 사울의 보호 아래 살아가는 신하가 아닙니다. 왕의 명령을 받아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지휘관도 아닙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어디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찾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놉으로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렀다. 아히멜렉은 떨며 다윗을 맞아 그에게 말했다. 「어찌하여 함께 있는 사람도 없이 혼자 오셨소?」사무엘상 21:2 · 본디새김

그가 정확히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다윗이 왕의 신하로 알려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수행원 없이 혼자 나타난 일을 이상하게 여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히멜렉이 사울의 살해 계획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그가 혼자 온 이유는 왕의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왕에게 쫓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말했다. 「왕께서 제게 일을 명령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보내는 일과 네게 명령한 일에 관해서는 누구도 아무것도 알아서는 안 된다.』 젊은이들에게는 이러이러한 곳을 알려 두었습니다.」사무엘상 21:3 · 본디새김

다윗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감추기 위해 왕의 권위를 빌립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왕이 자신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아히멜렉이 제사장으로서 다윗의 요청을 받아들이기에 그럴듯한 이유를 다윗이 제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젊은이들이 실제로 어디에 있었는지, 이때 다윗에게 동행자가 있었는지는 본문이 확인해 주지 않습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이 혼자 왔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젊은이들이 따로 있는 듯 말합니다. 독자는 이 둘 사이의 빈틈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요청은 매우 구체적이고 절박합니다.

「이제 가지고 계신 것이 무엇입니까? 빵 다섯 개를 제 손에 주십시오. 아니면 있는 것이라도 주십시오.」사무엘상 21:4 · 본디새김

이 말은 다윗이 지금 선택의 여유가 많지 않은 처지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는 정해진 분량의 식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전에는 군대의 지휘관이었던 사람이 이제 제사장에게 빵을 구합니다.

본문은 그의 거짓말을 하나님께서 승인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장면에서 다윗을 책망하는 말씀을 기록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그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험이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을 자동으로 정당화한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다윗이 왕에게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아히멜렉에게 숨겼다는 점은 뒤에 중요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무엘상 22:14–15에서 아히멜렉은 사울 앞에서 다윗을 충성스러운 신하로 알고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가 다윗을 도운 일이 어떤 정치적인 의미를 지니는지 알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다윗은 살아남기 위해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돕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에 휘말리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거룩한 빵을 도망자에게 주다

사무엘상 21:5–7 본문 →

아히멜렉에게는 다윗이 요구한 보통 빵이 없었습니다.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했다. 「내게는 보통 빵은 없고 거룩한 빵만 있소. 다만 그 젊은이들이 여자와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면 말이오.」사무엘상 21:5 · 본디새김

레위기 24:5–9에는 여호와야훼 앞에 놓는 빵에 관한 규정이 나옵니다. 고운 밀가루로 빵 열두 개를 만들어 성소의 상 위에 놓고, 안식일마다 새 빵으로 바꾸도록 했습니다. 이 빵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 앞에 지속적으로 드리는 예물과 관계되어 있었습니다. 상에서 물려 낸 빵은 제사장들에게 주어졌으며, 그들이 거룩한 곳에서 먹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빵을 줄 수 없다고 곧바로 거절하지 않습니다.

이 조건은 성관계 자체가 죄라거나 더러운 행위라는 뜻이 아닙니다. 레위기 15:18에서는 성관계 후에 일시적인 제의적 부정 상태에 놓이는 규정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19:15에서도 하나님을 만나는 일을 준비하면서 성관계를 삼가도록 하는 지시가 등장합니다. 이처럼 일상적인 행위가 특정한 거룩한 의례와 관련하여 일시적인 정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했다. 「물론 저희는 여자와 잠자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전에도 제가 길을 나설 때면 그랬습니다. 평범한 길일 때에도 젊은이들의 장비는 거룩했습니다. 오늘은 장비가 더더욱 거룩할 것입니다.」사무엘상 21:6 · 본디새김

자신과 젊은이들은 정결의 조건을 지켜 왔으며, 따라서 그 거룩한 빵을 받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그에게 거룩한 빵을 주었다. 그곳에는 여호와야훼 앞에 놓았다가 물려 낸 빵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빵을 물려 낸 것은 그날 따뜻한 빵을 놓기 위해서였다.사무엘상 21:7 · 본디새김

정해진 예배의 절차에 따라 이전 빵을 물려 낸 뒤, 그것을 다윗에게 제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빵은 여전히 일반적인 빵이 아닙니다. 레위기의 규정에 따르면 제사장들에게 속한 거룩한 빵입니다.

그는 빵의 거룩함을 인정하면서도 굶주린 사람에게 그것을 제공합니다.

물론 아히멜렉이 다윗의 실제 도피 상황을 알고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가 어떤 신학적 원칙을 근거로 예외를 허용했는지도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면을 제사장이 ‘모든 율법보다 인간의 필요가 언제나 우선한다’는 일반 원칙을 선언한 사건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빵이 굶주린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사용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장면을 다시 말씀하신 이유

마태복음 12:3–7, 마가복음 2:25–28, 누가복음 6:3–5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제자들이 곡식을 먹는 일을 두고 논쟁하시면서, 다윗이 배고팠을 때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거룩한 빵을 먹었던 일을 상기시키십니다. 특히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자비를 원하시고 제사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호세아 6:6의 말씀도 함께 제시하십니다. 이 연결은 거룩함의 규정을 해석할 때 인간의 필요와 자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했던 모든 말까지 예수님께서 정당화하셨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핵심은 배고픈 다윗이 거룩한 빵을 먹었던 사건이며, 다윗이 왕의 비밀 임무를 수행한다고 설명했던 부분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21장 6절의 히브리어는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의 장비’로 번역된 표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가 문제입니다. 실제 물품이나 여행 장비를 가리킨다고 읽을 수 있고, 문맥에서 사람의 몸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뒤따르는 말의 문장 구조도 여러 방식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물품을 가리키는 의미를 따라 ‘장비’로 옮겼습니다.

성소에 함께 있었던 한 사람

사무엘상 21:8 본문 →

거룩한 빵을 주는 장면이 끝나자 서술자는 갑자기 다른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날 사울의 신하 하나가 그곳에서 여호와야훼 앞에 붙들려 머물고 있었다. 그는 에돔 사람 도엑이었고, 사울의 목자들 가운데 우두머리였다.사무엘상 21:8 · 본디새김

그는 아히멜렉과 다윗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말하지도 않습니다. 다윗의 요청을 막지도 않고, 제사장이 빵을 주는 일에 개입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서술자는 그를 지나가는 인물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그의 이름과 출신, 직책까지 알려 줍니다. 다윗은 사울에게서 도망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사울에게 속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도엑이 이때 무엇을 얼마나 보고 들었는지는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뒤의 사무엘상 22:9–10에서는 도엑이 자신이 놉에서 다윗과 아히멜렉을 보았다고 사울에게 보고합니다.

다윗은 제사장에게 자신의 실제 상황을 숨겼지만, 그가 받은 도움은 사울에게 알려질 수 있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 짧은 구절은 당장의 생존을 위해 선택한 행동이 뜻하지 않은 다른 사람의 삶과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다만 본문은 아직 그 결과를 말하지 않습니다. 도엑은 그곳에 머물러 있고, 다윗은 다시 아히멜렉에게 무언가를 요청합니다.

이번에는 빵이 아니라 무기입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도엑이 왜 그곳에 머물러야 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종교적인 의무나 의례적인 사정 때문이었다고 추측할 수는 있지만, 어느 이유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본문이 확실히 알려 주는 것은 도엑이 그날 성소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골리앗의 칼을 다시 만나다

사무엘상 21:9–10 본문 →

다윗은 묻습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말했다. 「혹시 여기 가지고 계신 창이나 칼이 없습니까? 왕의 일이 급해서 제 칼도 장비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사무엘상 21:9 · 본디새김

다윗이 가지고 있었던 지위와 역할은 그에게 더 이상 안전한 기반이 되지 못합니다. 사울의 군대에서 활동할 때는 왕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왕의 명령을 피해 움직여야 합니다. 그는 자신이 속했던 체제 안에서 제공받던 보호와 자원을 사용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히멜렉에게는 칼 하나가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말했다. 「당신이 엘라 골짜기에서 쳐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있소. 보시오, 그 칼이 겉옷에 싸여 에봇 뒤에 있소.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져가시오. 여기에는 그것 말고는 다른 칼이 없소.」 다윗이 말했다. 「그만한 칼은 없습니다. 그것을 제게 주십시오.」사무엘상 21:10 · 본디새김

사무엘상 17장에서 골리앗은 강력한 무장을 갖춘 거대한 전사였습니다. 다윗은 그 앞에서 여호와야훼께서 칼과 창으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때 서술자는 다윗에게 칼이 없었다는 사실을 특별히 강조했습니다(17:50).

여기서는 그가 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사울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무기가 필요합니다.

한때 적국의 용사를 쓰러뜨리던 무기가 이제 왕에게 쫓기는 도망자의 손에 들립니다.

그의 용기와 전투 능력도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전쟁에서 명성을 얻는 일이 아니라, 다음 날까지 살아남는 일입니다.

과거의 승리를 증언하던 칼이 현재에는 다윗이 얼마나 위태로운 처지에 놓였는지를 보여 줍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이길 때 하나님을 신뢰했고, 이제 칼을 구하므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렸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사무엘상 17장에서 다윗도 무릿매라는 실제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인간이 아무런 도구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그 칼이 다윗에게 무엇을 해결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먹을 것을 얻었고, 무기도 얻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다시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훌륭한 칼이라 해도, 자신의 이름이 불러오는 위험까지 막아 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골리앗의 칼이 어떻게 제사장의 손에 들어왔고, 왜 에봇 뒤에 보관되어 있었는지 자세한 경위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에봇은 제사장의 직무와 관련된 의복 또는 물품입니다. 여기서는 골리앗의 칼이 제사장에게 속한 공간에 보관되어 있음을 알려 주는 역할을 합니다. 다윗은 「그만한 칼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다윗은 골리앗의 칼이 뛰어난 무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수 있습니다. 그가 직접 그 칼을 사용하여 골리앗의 머리를 잘랐다는 경험 때문에 특별하게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승리를 상기시키는 무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다윗이 어느 이유로 그 칼을 높이 평가했는지 확정하지 않습니다.

골리앗의 고향으로 도망치다

사무엘상 21:11–13 본문 →

다윗은 그날 사울을 피해 도망칩니다.

다윗은 그날 일어나 사울을 피해 도망쳐 가드 왕 아기스에게 갔다.사무엘상 21:11 · 본디새김

가드는 블레셋의 주요 성읍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골리앗의 고향이기도 합니다(사무엘상 17:4). 다윗은 골리앗을 죽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가 골리앗의 고향으로 들어갑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안에서 사울에게 쫓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직접적인 통치권 밖으로 피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왜 여러 장소 가운데 가드를 선택했는지, 아기스에게 어떤 보호를 기대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봅니다.

아기스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닙니까? 사람들이 춤추며 이 사람을 두고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사울은 수천을 쳐 죽이고, 다윗은 수만을 쳐 죽였다.』」사무엘상 21:12 · 본디새김

그러나 이것은 다윗이 실제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서술이 아닙니다. 아기스의 신하들이 하는 말입니다. 다윗의 명성이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그들이 다윗을 얼마나 중요한 인물로 여겼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 노래는 사무엘상 18장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여자들이 전쟁에서 돌아오는 군대를 맞으며 부른 노래였습니다. 그러나 그 노래를 듣고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같은 노래가 블레셋 사람들의 입에서 나옵니다.

다윗을 유명하게 만든 승리의 노래가, 이스라엘에서는 왕의 질투를 불러왔고 블레셋에서는 그의 정체를 드러내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 말들을 마음에 담아 두었고, 가드 왕 아기스를 몹시 두려워했다.사무엘상 21:13 · 본디새김

앞서 놉에서는 그가 배고프다는 사실을 직접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에게 빵을 구하는 행동으로 그 필요가 드러났습니다. 또한 무기가 없어 칼을 찾는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그때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 두려움은 그의 이름이 알려졌다는 사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사울에게서 도망쳤다는 사실만으로 가드에서 환영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군대를 위해 싸웠지만, 이스라엘의 왕에게 쫓깁니다. 그는 블레셋을 무찌른 사람이지만, 이제 블레셋 왕 앞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행동을 바꿉니다.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사람이 되다

사무엘상 21:14–16 본문 →

다윗은 아기스의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미친 사람 행세를 시작합니다.

그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행동을 바꾸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미친 사람 행세를 했다. 성문 문짝들에 끼적거리고 침을 수염에 흘렸다.사무엘상 21:14 · 본디새김

골리앗 앞에 섰던 다윗은 자신이 누구의 이름으로 싸우는지 분명하게 선언했습니다. 그는 상대방의 위협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그러나 가드에서는 다르게 행동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적어도 사람들이 자신을 위험한 전사로 여기지 않도록 만들려 합니다.

그는 무기를 잘 다루는 전사입니다. 골리앗을 죽인 사람이고, 여러 차례 블레셋과 싸워 승리한 지휘관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능력을 보이면 위험합니다.

그가 가드에서 살아남는 길은 반드시 적을 이기는 데 있지 않습니다. 적이 자신을 공격할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만드는 길도 있습니다.

다윗은 지금 그 방법을 선택합니다.

본문은 그가 이때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기록도 없지만, 기도하지 않았다고 확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또한 그의 행동이 지혜로운 선택이었다고 직접 평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면을 ‘다윗은 믿음이 약해져 미친 척했다’는 교훈으로 단순화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다윗이 영리하게 행동했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속임수를 사용해도 된다’는 결론도 정당하지 않습니다.

아기스가 자기 신하들에게 말했다. 「보아라. 이 사람이 미친 짓을 하고 있다. 왜 그를 내게 데려오느냐?」사무엘상 21:15 · 본디새김

아기스는 다윗을 위험한 군사 지도자로 다루기보다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판단합니다.

「내게 미친 사람이 모자라서, 너희가 이자를 데려다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자가 내 집에 들어와야 하느냐?」사무엘상 21:16 · 본디새김

본문은 그가 다윗을 직접 석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다윗이 그 자리를 어떻게 벗어났는지는 다음 장에서야 이어집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장의 마지막에서 아기스는 다윗을 자신의 궁정에 받아들일 만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원했던 반응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기스가 그를 위험한 전사로 인식하지 않고 물리치려 한다면, 다윗에게는 살아남을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이름을 높였던 능력을 감추고, 아무도 자신을 높이 평가하지 않도록 행동함으로써 살아남으려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행동의 구체적인 형태는 완전히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히브리어 표현은 그가 문짝에 표시를 남기거나 낙서를 하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무엇을 사용했고 어떤 내용을 남겼는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왕이 될 사람에게 남아 있는 것

사무엘상 21:1–16 본문 →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신 하나님의 선택은 그가 놉에서 빵을 구한다고 해서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가 가드에서 두려워한다고 해서 그를 통해 이어질 이야기가 끝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의 모든 행동을 올바른 것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곧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지만, 선택받은 사람의 모든 판단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골리앗 앞에서 용감하게 행동했던 사람도 다윗입니다. 가드 왕을 두려워하며 살아남을 길을 찾던 사람도 다윗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실제로 두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이것을 앞선 신앙이 거짓이었다는 증거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드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은 그 칼보다 먼저 다윗의 이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은 다윗이 수만을 죽였다는 노래를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두려워졌습니다. 그리고 성문 문짝에 끼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렸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이름 때문에 위험에 빠졌지만, 이번에는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그 위험을 벗어나려 합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영웅은 이제 골리앗의 고향에서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손에 골리앗의 칼이 있었지만, 그가 살아남기 위해 사용한 것은 그 칼이 아니었습니다.

이 장은 바로 그 낯선 모습의 다윗을 남겨 둔 채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