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23장
이 장의 자리 · 16–27장 · 다윗의 등장
하나님은 그를 넘겨주지 않으셨다
다윗은 한 성읍을 구합니다. 그런데 그 성읍은 다윗을 지켜 주지 못합니다. 다윗과 같은 유다 지역 사람들은 그를 사울에게 넘기려 하고,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는 사울의 아들은 오히려 다윗을 찾아와 그가 왕이 될 것이라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울이 다윗을 거의 붙잡으려는 순간, 뜻밖에도 블레셋 사람들의 공격이 다윗을 살리는 계기가 됩니다.
이 모든 사건을 하나로 묶는 표현이 있습니다.
‘손에 넘겨주다’라는 말입니다.
여호와야훼는 블레셋 사람들을 다윗의 손에 넘겨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23:4). 사울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자기 손에 넘겨주셨다고 확신합니다(23:7). 그일라 주민들이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는 응답도 나옵니다(23:12). 십 사람들 역시 다윗을 왕의 손에 넘기겠다고 약속합니다(23:20).
누가 다윗을 자기 손에 넣을 수 있습니까. 그것을 결정하는 분은 누구입니까. 사무엘상 23장은 이 질문을 따라 읽을 때 그 깊은 의미가 드러납니다.
그일라의 타작마당 — 도망자가 이스라엘을 구하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급한 소식을 전합니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알렸다. 「보십시오,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공격하며 타작마당들을 약탈하고 있습니다.」사무엘상 23:1 · 본디새김
그일라는 유다 지역의 성읍입니다. 타작마당은 추수한 곡식을 타작하고 곡물과 겨를 분리하는 장소입니다. 그곳을 약탈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빼앗는 일이 아닙니다. 농부들이 애써 거둔 수확을 빼앗고 주민들의 식량과 생계를 위협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이야기는 군사적 요충지나 왕의 명예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생존이 위협받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다윗이 여호와야훼에게 물었다. 「제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칠까요?」 여호와야훼가 다윗에게 말했다.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해라.」사무엘상 23:2 · 본디새김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구원하다(יָשַׁע)’라는 동사의 완료형에 와우가 붙어 명령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동일한 동사가 다시 등장하여 다윗이 실제로 그일라 주민들을 구했다고 기록합니다.
명령과 성취가 서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요구할 때 내세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왕이 자신들 앞에 나가 싸워 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사무엘상 8:20). 사울이 처음 왕으로 선택되었을 때도 여호와야훼는 그가 자신의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무엘상 9:16). 따라서 블레셋의 공격으로부터 이스라엘 성읍을 구하는 일은 왕에게 맡겨진 중요한 책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왕이 아닙니다.
왕에게 쫓기는 다윗입니다.
다윗은 왜 같은 질문을 두 번 하는가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들었으니 곧바로 출정할 것 같지만, 다윗의 사람들은 반대합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말했다. 「저희는 여기 유다에서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전열에 맞선다면 얼마나 더 두렵겠습니까?」사무엘상 23:3 · 본디새김
그들은 이미 사울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입니다. 유다 땅 안에서도 안전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제 블레셋의 정규 전열과 싸우러 가야 합니다. 그일라를 구하기 위한 전투에 실패하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더 이상 도망칠 곳조차 얻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들의 두려움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다시 여호와야훼에게 물었다. 여호와야훼가 그에게 대답했다.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겨주겠다.」사무엘상 23:4 · 본디새김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두 번째에는 그 싸움의 결과를 약속하십니다. 본문의 순서를 보면 그의 재질문은 동료들이 두려움을 표현한 뒤에 나옵니다.
그는 자신의 결단만으로 사람들을 위험에 밀어 넣지 않습니다. 함께 싸워야 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상황에서 다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합니다. 그 결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무찌르고 주민들을 구합니다.
이 첫 장면에서 다윗은 두 가지 책임을 함께 감당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성읍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성문과 빗장 — 구원받은 성읍이 구원자를 위협하다
그일라가 구원받은 뒤, 이야기는 제사장 아비아달이 다윗에게 도망쳐 오면서 에봇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앞 장에서 아비아달은 놉의 학살을 피해 살아남았습니다. 이제 그가 가지고 온 에봇은 다윗이 여호와야훼의 뜻을 구하는 다음 장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에봇은 제사장 직무와 관련된 물건이며, 이 본문에서는 하나님께 묻는 절차와 연결됩니다. 출애굽기 28:30의 우림과 둠밈을 떠올릴 수 있지만, 사무엘상 23장은 실제로 어떤 도구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여 응답을 받았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소식이 사울에게 전해집니다.
다윗이 그일라에 왔다는 소식이 사울에게 전해졌다. 사울이 말했다. 「하나님께서 그를 내 손에 넘겨주셨다. 그가 성문과 빗장이 있는 성읍으로 들어가 스스로 갇혔기 때문이다.」사무엘상 23:7 · 본디새김
그일라의 성문과 빗장은 본래 주민들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시설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것을 다윗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수단으로 바라봅니다.
주민들을 지켜 준 성읍의 방어시설이, 그 주민들을 구한 사람에게는 위험이 됩니다.
그는 단순히 다윗을 붙잡을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자신의 손에 넘겨주셨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사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과 실제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구별해야 합니다.
사울의 말은 신앙적 언어로 표현되어 있지만, 그 자체로 하나님이 사울을 돕고 계시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그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상황을 하나님의 승인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울은 그일라로 내려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포위하려고 온 백성을 전쟁에 소집했다.사무엘상 23:8 · 본디새김
그일라를 공격하던 블레셋 사람들은 이미 패배했습니다. 그가 공격하려는 대상은 블레셋 군대가 아니라 그일라를 구해 준 다윗입니다. 더구나 다윗은 사울이 자신 때문에 성읍을 파괴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23:10).
앞 장에서 사울은 이미 제사장들의 성읍 놉을 파괴한 바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한 성읍에 어떤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일라가 블레셋의 공격에서 벗어난 직후, 이번에는 이스라엘 왕의 공격 위험에 놓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미래는 왜 일어나지 않았는가
다윗은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게 한 뒤 여호와야훼께 두 가지를 묻습니다.
사울이 정말 그일라로 내려올 것입니까? 그일라 주민들이 자신을 사울에게 넘겨줄 것입니까? 먼저 여호와야훼는 사울이 내려올 것이라고 대답하십니다.
다윗이 물었다. 「그일라의 주민들이 저와 제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겨주겠습니까?」 여호와야훼가 말했다. 「그들이 넘겨줄 것이다.」사무엘상 23:12 · 본디새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일라 주민들은 다윗에게 목숨과 생계를 구원받았지만, 왕의 군대가 성읍을 위협한다면 다윗을 보호하기보다 자신들과 가족의 생존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일라 주민들은 실제로 다윗을 넘겨주지 않았습니다.
육백 명쯤 되는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데면 어디든 돌아다녔다. 사울은 다윗이 그일라에서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출동을 그만두었다.사무엘상 23:13 · 본디새김
본문은 사울이 내려오고 다윗이 그일라에 남아 있을 경우 벌어질 일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장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 경고에 따라 떠났기 때문에, 알려 주신 상황 자체가 현실로 진행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일라가 공격받을 때 다윗은 싸워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싸우라고 하시자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싸웠습니다. 이번에는 사울이 공격하려 할 때 어떻게 될지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위험을 듣고 그는 싸우지 않고 떠났습니다.
그는 모든 문제를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싸우는 것이 옳고, 어떤 상황에서는 떠나는 것이 옳습니다. 그 기준은 단순히 용감해 보이는 행동을 선택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어떤 책임을 감당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지금 무엇을 알려 주시는지를 분별하는 데 있습니다.
또한 다윗이 떠남으로써 그일라 주민들도 사울에게 포위당할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그는 그일라를 구해 준 공로를 내세워 주민들에게 자신을 보호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남아 있음으로써 성읍이 위험해지는 상황을 피합니다.
이 장에서 다윗이 보여 주는 지도자의 모습은 그일라 주민들을 구한 용기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자신을 지켜 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 성읍을 해치지 않고 떠나는 행동까지 포함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대목은 하나님의 예지와 인간의 자유에 관한 더 큰 신학적 질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23장 자체가 그 문제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미래에 관한 추상적인 지식보다 그 지식에 대한 다윗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넘겨주지 않으셨다 — 사울의 확신을 뒤집는 한 문장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다시 광야로 들어갑니다.
앞 장에서 사백 명쯤이었던 사람들이 이제 육백 명쯤 되었다고 기록됩니다. 다윗을 따르는 사람이 늘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정확히 언제 어떤 사람들이 합류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늘어났지만 안정된 거처는 없습니다.
다윗은 광야의 요새들에 머물렀고, 십 광야의 산지에 머물렀다. 사울은 날마다 그를 찾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사울의 손에 넘겨주지 않았다.사무엘상 23:14 · 본디새김
이 문장은 7절에서 사울이 했던 말과 정확히 충돌합니다. 7절에서는 사울이 자기 상황을 해석합니다. 14절에서는 서술자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의 의미를 밝혀 줍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그의 확신은 하나님의 실제 행동과 반대됩니다.
다윗을 향한 사울의 추격은 집요합니다. ‘날마다’라는 표현은 그가 단 한 번의 수색으로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 반복적인 추격을 가로막는 주체로 본문은 하나님을 지목합니다.
그는 여전히 도망쳐야 하고, 안전한 장소를 찾아야 하며, 사울의 군대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주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곧 다윗의 삶에서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다음 장면에서 그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입니다.
요나단이 강하게 한 손 — 왕의 아들이 왕의 미래를 포기하다
다윗은 십 광야의 호레쉬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찾아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호레쉬에 있는 다윗에게 가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그에게 힘을 북돋워 주었다.사무엘상 23:16 · 본디새김
이 장에서 여러 사람이 다윗을 자기 손에 넣으려는 가운데, 요나단만은 다윗의 손을 강하게 해 줍니다.
사울의 손은 다윗을 붙잡으려는 손입니다.
그일라 주민들의 손은 압박을 받으면 다윗을 넘겨줄 손이 될 수 있습니다.
십 사람들도 곧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을 소유하거나 넘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견딜 힘을 얻도록 돕습니다.
그가 다윗에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너를 붙잡지 못할 것이다. 너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 자리에 있을 것이다. 내 아버지 사울도 그렇게 될 줄 알고 계신다.」사무엘상 23:17 · 본디새김
요나단은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다윗의 미래 아래에 둡니다.
사울은 왕이고, 요나단은 왕의 아들입니다. 왕권이 부자 사이에서 계승된다면 요나단은 가장 유력한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울에게 다윗의 왕권은 반드시 막아야 할 미래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에게 그것은 받아들이고 함께할 미래입니다.
부자는 같은 사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합니다.
요나단은 어떻게 다윗에게 힘을 주었는가
그는 다윗이 누구이며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무엇을 계획하셨는지를 상기시킵니다. 다윗에게 이미 기름 부음의 사건이 있었고(사무엘상 16:13), 요나단도 다윗의 장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지금 그 약속이 실현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 환경에 있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야망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약속을 붙들 용기입니다.
사무엘상 18:3과 20:16–17에서도 두 사람의 언약이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는 다윗의 도피 생활 한가운데서 그 관계를 다시 확인합니다.
두 사람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언약을 맺었다. 다윗은 호레쉬에 머물렀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갔다.사무엘상 23:18 · 본디새김
겉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군대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다윗의 도피 생활이 끝난 것도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을 붙잡으려는 왕의 손보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약속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나단이 한 일은 다윗의 외적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견딜 수 있도록 그의 내적 힘을 북돋워 주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네 다음 자리’는 다윗 다음으로 높은 지위, 곧 다윗을 보좌하는 위치를 뜻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실제로 어떤 직책을 가리키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요나단이 자신이 다윗의 다음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말한 부분은 요나단의 기대와 바람을 포함합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께서 요나단의 장래 직책을 직접 약속하신 것은 아닙니다. 또한 사울도 다윗의 왕권을 알고 있다는 말은 요나단의 발언입니다. 사울이 이전에 자신의 왕권이 다윗에게 넘어갈 가능성을 인식했음을 보여 주는 정황과 연결되지만(사무엘상 20:30–31), 여기서 사울의 모든 생각을 확정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십 사람들의 밀고 — 가까운 사람들이 반드시 같은 편은 아니다
요나단이 떠난 직후, 십 사람들이 사울에게 올라갑니다.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있는 사울에게 올라가 말했다. 「다윗이 저희 지역에, 호레쉬의 요새들에, 황무지 남쪽 하길라 언덕에 숨어 있지 않습니까?」사무엘상 23:19 · 본디새김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입니다. 다윗을 추격하는 왕의 집안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윗을 지키려고 합니다.
반면 십 사람들은 유다 지역의 주민들입니다. 다윗과 같은 유다 지역에 속한 사람들이지만, 그를 사울에게 넘기려고 합니다. 본문은 십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수동적으로 사울의 질문에 답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울에게 찾아가 협력을 제안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왕이시여, 원하시는 대로 이제 내려오십시오. 그를 왕의 손에 넘기는 일은 저희가 맡겠습니다.」사무엘상 23:20 · 본디새김
요나단은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십 사람들은 사울에게 왕이 원하는 일을 이루도록 돕겠다고 말합니다.
이야기는 사람의 선택이 혈연이나 출신 지역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사울은 왜 자신을 가엾이 여겼다고 말하는가
사울이 말했다. 「너희가 나를 가엾이 여겼으니,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복을 주시기를 바란다.」사무엘상 23:21 · 본디새김
사울은 자신을 위협받는 사람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자신을 도와 다윗을 붙잡으려는 사람들에게 여호와야훼의 복을 빕니다. 다윗은 왕을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모은 것이 아니라, 계속 그를 피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다윗에게 가하는 위협보다 다윗이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자기 손에 넘겨주셨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다윗을 잡는 데 협력하는 사람들에게 여호와야훼의 복을 빕니다.
이 장이 보여 주는 위험은 단순히 악한 사람이 종교적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과 구별하지 못할 때,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그분이 하시는 일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모든 은신처를 찾아라
사울은 십 사람들에게 더 자세한 정보를 요구합니다.
「그가 숨는 은신처들을 모두 살펴 알아내고, 확실한 소식을 가지고 내게 돌아와라. 그러면 내가 너희와 함께 가겠다. 그가 그 땅에 있다면, 유다의 모든 씨족을 뒤져 그를 찾겠다.」사무엘상 23:23 · 본디새김
이스라엘의 왕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자기 나라의 씨족들과 마을들을 뒤져 한 사람을 찾아내려 합니다. 그 한 사람은 조금 전 블레셋에게서 이스라엘의 성읍을 구한 사람입니다.
왕의 권력이 국가의 외부 위협을 막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왕이 두려워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데 집중됩니다.
그리고 이 추격은 곧 절정에 이릅니다.
산의 양쪽 — 다윗이 거의 붙잡히는 순간
십 사람들이 돌아간 뒤 사울은 다시 다윗을 추격합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마온 광야의 메마른 평원으로 이동하고, 사울은 그 소식을 듣고 뒤쫓습니다.
사울은 산 한쪽으로 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다른 쪽으로 갔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황급히 달아나고 있었고, 사울과 그의 사람들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붙잡으려고 에워싸고 있었다.사무엘상 23:26 · 본디새김
지금까지 다윗은 여러 차례 위기를 피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매우 급박합니다. 본문은 다윗이 이때 여호와야훼께 새롭게 물었다거나, 어떤 기발한 작전으로 사울을 따돌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도망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때 뜻밖의 전령이 등장합니다.
그때 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말했다. 「서둘러 가십시오. 블레셋 사람들이 이 땅을 습격했습니다.」사무엘상 23:27 · 본디새김
사울은 다윗을 뒤쫓던 길에서 돌아서서 블레셋 사람들과 맞서러 갑니다.
그리고 다윗은 붙잡히지 않습니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뜻밖의 연결
1절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땅을 공격했을 때, 그들에게 맞서 싸운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27절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이스라엘 땅을 공격했을 때, 사울은 그제야 다윗을 추격하던 일을 멈추고 그들과 맞서러 갑니다.
두 번의 블레셋 공격이 이 장의 처음과 끝을 감싸고 있습니다.
첫 번째 공격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행동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공격은 사울이 다윗을 붙잡지 못하고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다윗과 사울이 무엇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는지 보여 줍니다.
다윗에게는 구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울에게는 제거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사울이 왕의 본래 책무인 블레셋과의 전쟁으로 돌아가는 순간, 다윗은 그의 손에서 벗어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셨다는 14절의 진술과 연결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땅을 습격하도록 명령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전령을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직접 밝히지도 않습니다. 이 사건이 14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보호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신학적으로 읽을 수 있지만, 구체적인 사건의 배후를 본문보다 더 자세히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셀라함마흘레코트 — 갈라진 곳에 남은 이름
이야기는 마지막으로 한 장소의 이름을 전합니다.
사울은 다윗을 뒤쫓던 길에서 돌아서서 블레셋 사람들과 맞서러 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을 셀라함마흘레코트라고 불렀다.사무엘상 23:28 · 본디새김
지명의 정확한 어원과 별개로, 본문 속에서 그 장소는 다윗의 도피와 사울의 추격이 갈라진 자리로 남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서 셀라는 ‘바위’를 뜻합니다. 뒤에 오는 함마흘레코트는 해석에 여지가 있습니다. 관련 어근은 나누거나 갈라지는 뜻과 매끄럽거나 미끄러운 상태를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지명을 ‘갈라진 바위’, ‘갈라섬의 바위’와 같은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미끄러운 바위’와 관련지어 이해하는 견해도 가능합니다. 어느 쪽이 원래의 지명 의미인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결말 — 산의 양쪽에서
사울의 확신은 하나님의 뜻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십 사람들의 협력도 하나님의 뜻을 바꾸지 못합니다. 사울의 군대가 다윗을 거의 에워쌌다는 사실조차 최종 결과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이 장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다윗이 겪는 모든 어려움을 없애 주시는 데 있지 않고, 그 어려움 속에서도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사울의 의지에 의해 좌절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사울의 군대가 돌아섭니다.
방금 전까지 산의 한쪽에서는 다윗이 황급히 달아나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사울이 그를 붙잡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추격은 중단되었습니다. 그곳은 셀라함마흘레코트라는 이름으로 남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자기 손에 넣으려고 그곳까지 왔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주지 않으셨습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다윗의 뛰어난 능력을 기념하는 승리의 기념비가 아닙니다.
두 사람이 갈라진 자리, 다윗이 거의 붙잡힐 뻔했으나 끝내 붙잡히지 않은 그 바위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