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31장

이 장의 자리 · 28–31장 · 사울의 마지막 싸움

왕이 쓰러진 자리에서 기억된 은혜

사무엘상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전쟁터에서 죽는 이야기로 끝납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왕도, 왕위를 물려받을 사람도 아닙니다. 한때 그 왕에게 구원받았던 성읍의 주민들입니다.

사울의 왕권은 백성을 구한 사건을 통해 굳어졌고, 그의 마지막 이야기는 그 구원을 기억하는 백성의 행동으로 마무리됩니다.

읽는 시간 16분소단락 631장 본문 읽기 →

길보아산에서 무너진 이스라엘

사무엘상 31:1–3 본문 →

한편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싸우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달아났고, 길보아산에서 쓰러져 죽었다.사무엘상 31:1 · 본디새김

앞 장에서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을 추격하고 가족들을 구해 내는 동안, 북쪽에서는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어떻게 공격했고, 사울이 어떤 전략으로 대응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서술자는 전투 과정을 건너뛰어 이미 무너지고 있는 이스라엘 군대를 보여 줍니다.

길보아산은 이스르엘 평야의 남쪽에 있는 산지입니다. 이스르엘 일대는 군대가 이동하고 충돌하기에 중요한 통로였으며, 블레셋 군대가 그곳까지 진출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중심 지역이 위협받고 있음을 뜻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바짝 뒤쫓았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쳐 죽였다.사무엘상 31:2 · 본디새김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이면서도 아버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온 인물입니다. 그는 블레셋 주둔 부대를 공격할 때, 여호와야훼께서 많은 사람으로든 적은 사람으로든 구원하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14:6). 다윗이 사울의 위협을 받을 때에는 그를 보호했고, 다윗이 장차 왕이 될 것을 인정했습니다(20장; 23:17).

그런 요나단도 이 전쟁에서 죽습니다.

사울의 왕권이 무너지는 일에는 앞서 선포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죽은 사람들 각자가 사울과 똑같은 불순종을 저질렀으므로 같은 운명을 맞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요나단의 죽음은 한 지도자의 실패가 그 자신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지도자의 결정과 한 나라의 역사는 그 안에 속한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깊이 영향을 미칩니다.

싸움은 사울에게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활을 쏘는 자들이 그를 찾아냈고, 사울은 그 활잡이들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사무엘상 31:3 · 본디새김

확실한 것은 사울이 더 이상 전투를 주도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사실입니다.

이야기는 점점 좁아져 마침내 사울과 그의 무기를 든 부하 두 사람만 남깁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는 사울이 활잡이들 때문에 매우 심한 고통에 놓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화살에 맞아 치명상을 입었는지, 아니면 활잡이들에게 포위되거나 공격받는 상황에서 극심한 괴로움을 겪었는지는 명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울의 몸에 화살이 몇 발 꽂혔다거나 이미 죽어 가고 있었다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본문을 넘어섭니다.

사울의 마지막 두려움

사무엘상 31:4–6 본문 →

사울은 자기 무기를 든 부하에게 말합니다.

사울이 자기 무기를 든 부하에게 말했다. 「네 칼을 뽑아 그것으로 나를 찔러라. 이 할례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능욕할까 두렵다.」 그러나 무기를 든 부하는 몹시 두려워하여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울은 칼을 잡고 그 위로 몸을 던졌다.사무엘상 31:4 · 본디새김

사울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히 죽음만이 아닙니다. 적에게 붙잡혀 능욕당하는 것입니다. 고대 전쟁에서 패배한 왕을 사로잡거나 그의 시신을 훼손하는 일은 승리한 나라가 패배한 나라의 권위를 꺾고 자신의 승리를 선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울의 죽음은 매우 짧게 서술됩니다.

서술자는 마지막 기도나 후회, 하나님을 향한 원망 같은 말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사울이 죽음을 앞두고 무엇을 생각했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장면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도덕적으로 칭찬하거나 일반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하지도 않습니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한 왕이 맞이한 비극적인 마지막을 기록할 뿐입니다.

그 모습을 본 무기를 든 부하도 자기 칼 위로 몸을 던져 죽습니다. 이어지는 6절은 이 전투에서 사울과 세 아들, 무기를 든 부하, 그리고 그의 부하들이 함께 죽었다고 정리합니다.

여기서 「그의 부하들 모두」라는 표현을 이스라엘 군대 전체가 전멸했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1절과 7절에 이미 도망친 이스라엘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또 사울의 모든 아들이 죽었다는 뜻도 아닙니다. 사무엘하 2장 8–10절에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사울 왕권의 중심이 무너졌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사울의 마지막이 더욱 비극적인 이유

이 죽음은 사무엘상 28장에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선포한 말과 연결됩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고,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28:19). 31장은 그 예고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장면입니다.

사울은 여호와야훼께 선택되어 기름 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영의 능력을 경험했으며, 이스라엘을 적에게서 구해 낸 적도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고, 왕권을 잃을까 두려워 다윗을 죽이려 했으며, 마지막에는 여호와야훼께 대답받지 못한 채 금지된 방법으로 사무엘을 찾았습니다.

사울의 몰락은 하나의 실수에 대한 단순한 처벌로 설명할 수 없는 긴 이야기의 결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장에서 어떻게 일하시는가

이 장에서 여호와야훼라는 이름은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명령을 내리시지도 않고, 예언자를 보내 말씀하시지도 않습니다. 전투에 개입하시는 장면도 없습니다. 앞선 사무엘상 전체에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왕권에 관해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제사와 관련된 일에서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을 때, 사무엘은 그의 왕권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13:13–14).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온전히 수행하지 않았을 때, 사무엘은 여호와야훼께서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신다고 말했습니다(15:26–28).

31장은 그 선언들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습을 기록합니다.

조금 더 깊이

「할례받지 않은 자들」은 이스라엘 사람이 자신들과 언약의 표지를 공유하지 않는 이방 민족을 구별하여 부르는 표현입니다. 요나단은 그들을 「할례받지 않은 자들」이라고 부르면서, 여호와야훼께서 자신들을 위해 일하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반면 지금 사울은 같은 부류의 적을 앞에 두고 자신이 당할 능욕을 두려워합니다. 요나단은 전투를 시작하려는 젊은 전사였고, 사울은 군대가 무너진 가운데 적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둘의 태도를 단순히 용기와 비겁함으로 대비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무기를 든 부하가 두려워한 이유도 본문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을 직접 죽이는 행위가 두려웠을 수도 있고, 그 상황 자체가 두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그가 사울의 요청을 거절한 이유를 왕의 신성한 지위에 대한 존중이라고 확정하거나, 반대로 충성심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울의 행동이 절망에서 비롯되었는지, 적에게 붙잡혀 능욕당하지 않으려는 마지막 선택이었는지, 두 요소가 함께 작용했는지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사무엘하 1장 6–10절에는 자신이 사울을 죽였다고 주장하는 아말렉 젊은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사울이 아직 살아 있어서 자신에게 죽여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합니다. 두 기록은 사울의 최후를 서로 다르게 설명합니다. 사무엘상 31장은 서술자가 사울의 죽음을 직접 전하고, 사무엘하 1장은 한 사람이 다윗에게 보고한 내용을 전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아말렉 사람이 다윗의 환심을 사려고 거짓말했다는 해석이 가능하지만, 본문은 그의 진술이 거짓이라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가 왜 다르게 설명했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왕이 죽자 백성은 성읍을 잃었다

사무엘상 31:7 본문 →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은 뒤 전쟁의 결과는 더욱 넓게 확산됩니다.

골짜기 건너편과 요단강 건너편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달아나고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은 것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달아났다.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그 성읍들에 자리 잡고 살았다.사무엘상 31:7 · 본디새김

전쟁에서 왕을 잃는 일은 궁정의 권력자가 바뀌는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무엘상 8장에서 백성이 왕을 요구했던 이유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들은 다른 민족들처럼 왕을 세워 달라고 요청하며, 그 왕이 자신들을 다스리고 앞서 나가 전쟁을 치러 주기를 바랐습니다(8:19–20). 그런데 사무엘상 마지막 장에서는 그 왕이 전쟁에서 죽고, 백성은 보호받기는커녕 자기 성읍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문제는 왕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백성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한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간구를 들어주신 뒤 찬양하면서, 강한 자의 활이 꺾이고 약한 자가 힘을 얻는다고 노래했습니다(2:4). 또 여호와야훼께서 사람을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며,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고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실 것이라고 노래했습니다(2:6–10). 사무엘상은 누가 힘을 가지고 있는가보다 그 힘이 어디에서 오며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끊임없이 묻습니다. 사울은 처음 왕으로 선택되었을 때 스스로를 작은 지파 출신으로 여겼습니다(9:21). 그는 하나님의 영의 능력을 받아 백성을 구했고, 왕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왕권을 지키려는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나가 노래했던 인간의 강함과 약함의 역전이 사울의 생애에서 비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하나님께서 강한 사람을 싫어하시고 약한 사람을 좋아하신다는 의미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한나의 노래에서 중요한 것은 여호와야훼께서 인간의 힘에 종속되지 않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블레셋이 전한 「기쁜 소식」

사무엘상 31:8–10 본문 →

전투가 끝난 다음 날, 블레셋 군사들은 전사자들의 옷과 물품을 벗기러 나옵니다.

고대 전쟁에서 패전한 군대의 무기와 장비, 귀중품을 가져가는 일은 승리한 군대의 일반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길보아산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사울의 머리를 잘라 내고 그의 무구를 벗겼다. 또 블레셋 땅 사방에 사람을 보내 자기들의 우상 신전에도 백성에게도 기쁜 소식을 알리게 했다.사무엘상 31:9 · 본디새김

그런데 누구에게 기쁜 소식입니까?

이스라엘에게는 왕과 왕자들이 죽고 백성이 성읍을 잃은 날입니다. 그러나 블레셋에게는 가장 큰 적을 물리친 승리의 날입니다.

같은 사건이 한쪽에는 비극이고 다른 한쪽에는 기쁜 소식입니다.

이 대조는 사무엘하 1장 20절의 다윗의 애가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두고 가드에 알리지 말고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하지 말라고 노래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 죽음을 기뻐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울의 머리와 골리앗의 머리

17장에서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그의 머리를 베었습니다(17:51). 그때 블레셋의 대표 전사가 죽자 블레셋 사람들은 도망쳤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추격했습니다.

이제 상황이 반대가 되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추격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이 죽자 그의 머리를 베어 갑니다.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안겨 주었던 사건의 이미지가 이제는 패배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것입니다.

왕의 무구가 우상 신전에 놓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무구를 아스다롯 신전에 두고, 그의 시신을 벧산 성벽에 박아 겁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들에게 승리를 돌리고, 이스라엘 왕을 정복했다는 사실을 종교적으로도 선전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신의 승리라고 주장한다는 것과, 성경 서술자가 실제로 그 신들이 여호와야훼를 이겼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왕의 죽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듯, 블레셋은 그의 시신까지 승리의 표지로 삼습니다. 사울의 마지막 선택은 그가 두려워하던 모욕을 완전히 막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바로 그 모욕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아스다롯은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이 섬기던 신적 존재와 관련된 이름입니다. 사무엘상 7장 3–4절에서는 이스라엘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버리고 여호와야훼만 섬기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이 장면은 사무엘상 4–5장의 언약궤 사건과도 의미 있게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야훼의 궤를 빼앗아 다곤 신전에 두었습니다(5:2). 그러나 뒤이어 다곤의 형상이 여호와야훼의 궤 앞에서 쓰러지고, 블레셋 땅에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그 이야기는 전쟁에서 이겼다는 사실이 곧 승리한 민족의 신이 참된 주권자임을 증명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울의 마지막을 바꾸어 놓은 야베스 사람들

사무엘상 31:11–13 본문 →

여기서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뀝니다.

사울도 죽었고, 그의 아들들도 죽었습니다. 블레셋은 승리를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야베스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왜 하필 야베스입니까?

한때 야베스를 구했던 왕

사울의 통치 초기에 암몬 사람 나하스는 길르앗 야베스를 포위했습니다.

야베스 사람들은 그에게 굴복하여 평화롭게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나하스는 모든 사람의 오른쪽 눈을 뽑는 것을 굴복의 조건으로 제시했습니다. 그 일을 통해 온 이스라엘을 모욕하려 했습니다(11:1–2).

야베스 사람들은 이스라엘 전역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강하게 임하셨고, 사울은 군대를 소집하여 암몬 사람들을 물리쳤습니다(11:6–11). 사울이 왕이 될 자격을 의심하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야베스를 구한 뒤 백성은 그의 왕권을 인정했고 길갈에서 왕권이 새롭게 확립되었습니다(11:12–15).

백성이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죽이자고 요구했을 때, 사울은 그날 아무도 죽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 구원을 이루신 날이기 때문이었습니다(11:13).

사울이 처음 왕으로서 보여 준 중요한 모습은 백성을 구하고, 승리 후에는 내부의 보복을 막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사울의 마지막을 지키러 나섭니다.

사울이 야베스로 갔던 때와 야베스가 사울에게 간 때

용사들이 모두 일어나 밤새 걸어가 사울의 시신과 그의 아들들의 시신을 벧산 성벽에서 거두었다. 그들은 야베스로 와서 거기서 그 시신들을 불태웠다.사무엘상 31:12 · 본디새김

벧산 성벽에서 시신을 거두는 일은 블레셋이 승리를 과시하려고 설치한 표지를 제거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따라서 위험을 감수해야 했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7절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은 것을 보고 성읍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11–12절에서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에게 일어난 일을 듣고 일어나 밤새 걸어갑니다.

사울은 한때 야베스 사람들의 고통을 듣고 군대를 이끌고 나아갔습니다. 이제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에게 일어난 일을 듣고 그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때는 사울이 그들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지금은 그들이 사울의 시신을 적의 모욕에서 되찾아 옵니다.

사울이 왕으로서 베풀었던 구원이 그의 죽음 뒤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의 실패는 실제였습니다. 그러나 야베스를 구한 일도 실제였습니다.

성경은 그 둘을 함께 남겨 둡니다.

시신을 불태우고 뼈를 묻은 이유

그들은 그 시신들의 뼈를 거두어 야베스에 있는 위성류나무 아래 묻고, 이레 동안 금식했다.사무엘상 31:13 · 본디새김

이 금식은 자신들을 구했던 왕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동으로 이해됩니다.

조금 전까지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죽음을 기쁜 소식으로 알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베스에서는 사람들이 먹는 것을 멈추고 애도합니다.

블레셋은 그의 시신을 승리의 전리품으로 취급했습니다. 야베스 사람들은 그를 자신들의 생명을 구했던 왕으로 기억했습니다.

그들에게 사울의 몸은 적에게 과시할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장례를 치러 주어야 할 한 사람의 몸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시신을 매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장례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신을 불태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시신 전체를 태운 화장이었는지, 시신의 일부를 태워 처리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가능합니다. 원문에는 그들을 불태웠다는 말이 있고, 이어서 뼈를 거두어 매장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신이 이미 훼손되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더 이상 모욕당하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불태운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당시 이스라엘에서 왕에게 특별히 화장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확정하거나, 시신이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야베스 사람들의 행동을 하나님께서 직접 명령하셨다고 말할 근거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행동은 사무엘상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구원을 주셨던 한 사건을 다시 기억하게 합니다. 이러한 애도의 태도는 이어지는 다윗의 애가에서도 확인됩니다(사무엘하 1:17–27). 다윗은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조롱하거나 왕위에 가까워진 것을 축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울과 요나단을 위해 애도합니다.

맺음 — 위성류나무 아래에서 끝난 왕의 이야기

사무엘상 31:1–13 본문 →

사울은 자신의 왕권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구했던 사람들은 그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 주었습니다.

물론 존엄하게 대한다는 것이 그의 잘못을 부정하거나 책임을 면제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무엘상 31장은 사울에게 내린 심판을 취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을 인정하는 일과 사울의 시신이 모욕당하는 것을 방치하지 않는 일이 서로 모순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들이 뼈를 묻은 곳은 위성류나무 아래였습니다.

사무엘상 22장 6절에서 사울은 기브아의 위성류나무 아래에 앉아 손에 창을 들고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다윗을 추적하며 자신의 왕권을 지키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다른 위성류나무 아래에서 그의 이야기가 끝납니다.

그의 손에는 더 이상 창이 없습니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도 군사적 명령을 기다리는 부하들이 아닙니다. 그의 뼈를 묻고 슬퍼하는 사람들입니다.

왕권의 영광도, 왕의 두려움도, 자신을 지키려 했던 싸움도 모두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오래전에 한 성읍을 구했던 일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길보아산에서 시작된 비극은 야베스의 위성류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마무리됩니다. 사람들은 그곳에 사울과 아들들의 뼈를 묻고, 이레 동안 금식합니다.

사무엘상은 그 애도의 시간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