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8장
이 장의 자리 · 8–15장 · 첫 왕이 된 사울
왕을 달라는 백성, 그들의 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합니다. 그들의 말에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무엘은 늙었고, 그의 아들들은 뇌물을 받으며 재판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새로운 지도 체제를 요구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는 이 요청을 자신에 대한 거부로 받아들이십니다.
여호와야훼는 백성이 자신을 거부했다고 선언하시면서도, 사무엘에게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무엘은 왕을 세우면 백성이 무엇을 잃게 될지 경고하지만, 결국 왕을 세우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사무엘상 8장의 질문은 단순히 왕을 세우는 일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왕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으며, 그 기대 속에서 여호와야훼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왕을 요구하는 말로 시작해서 왕을 세워 주라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그 사이에서 달라지는 것은 왕을 요구하는 백성의 태도가 아니라, 독자가 그 왕의 의미를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재판의 실패가 왕을 요구하게 하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왜 중요한가
본문은 사무엘의 노년에서 시작합니다.
사무엘은 늙자 자기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재판관으로 세웠다.사무엘상 8:1 · 본디새김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평생 다스린 재판관이었습니다. 앞서 사무엘상 7:15–17은 그가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를 돌며 재판하고, 라마로 돌아와서도 이스라엘을 재판했다고 전합니다. 백성에게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 그의 중요한 직무였습니다.
그런데 아들들은 아버지의 길을 걷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그의 길을 걷지 않았다. 그들은 부당한 이익을 좇아 뇌물을 받고 재판을 왜곡했다.사무엘상 8:3 · 본디새김
재판관은 힘없는 사람이 힘센 사람에게 부당하게 당하지 않도록 정의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아들들에게 재판은 이익을 얻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돈을 가진 사람이 재판의 결과까지 좌우할 수 있다면, 백성은 누구에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요?
신명기 16:19는 재판을 왜곡하거나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명령합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바로 이 원칙을 어겼습니다. 따라서 장로들이 재판 체제의 변화를 요구하는 데에는 실제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제사장의 지위를 이용해 제물을 함부로 다루었고, 아버지의 권위 아래에서 저지른 잘못이 결국 엘리 집안의 몰락으로 이어졌습니다(사무엘상 2:12–17, 29; 4:11–18). 엘리의 뒤를 이어 등장한 사무엘은 충실한 지도자였지만, 이번에는 그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무엘이 아들들의 부패를 알면서도 방치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충실했던 아버지의 권위가 아들의 충실함까지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사무엘 자신이 아들들에게 직무를 맡겼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정의롭게 재판할 능력까지 주지는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도자의 다음 세대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 서 있습니다.
정당한 문제에서 나온 위험한 해결책
이스라엘 장로들은 라마로 모여 사무엘에게 말합니다.
그들이 사무엘에게 말했다. 「보십시오. 당신은 늙으셨고, 아들들은 당신의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이제 모든 민족처럼 저희를 다스릴 왕을 세워 주십시오.」사무엘상 8:5 · 본디새김
앞부분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입니다. 사무엘은 늙었고 아들들은 부패했습니다. 그러나 뒷부분은 그 현실에서 반드시 도출되는 결론은 아닙니다.
왜 부패한 재판관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왕을 세우는 것이어야 할까요?
장로들은 새로운 재판관을 세워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었습니다. 재판을 바로잡을 방법을 요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통치 체제 자체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장로들은 정의로운 왕의 조건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먼저 내세우는 기준은 주변 민족들과 같은 왕을 갖는 것입니다.
신명기 17:14–20에도 이스라엘이 주변 민족들처럼 왕을 세우려 할 상황이 나옵니다. 그 본문은 왕의 존재 자체를 일률적으로 금지하지 않고, 여호와야훼가 선택하시는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하며 왕 역시 율법에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왕이라는 제도 자체보다 그 제도가 차지할 자리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주변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국가를 통합하고 재판하며 군대를 이끌 지도자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 왕이 여호와야훼의 통치 아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들의 요구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습니다.
거부당한 하나님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신다
사무엘이 기도하자 드러난 또 하나의 문제
사무엘은 왕을 달라는 요구를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사무엘은 그들이 「저희를 다스릴 왕을 주십시오.」라고 한 말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사무엘은 여호와야훼에게 기도했다.사무엘상 8:6 · 본디새김
사무엘은 장로들의 요구에 즉시 대답하지 않습니다. 왕을 세우겠다고 약속하지도 않고, 자신의 권위로 그 요구를 묵살하지도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가 사무엘에게 말했다. 「백성이 네게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의 목소리에 순종하여라. 그들은 너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나를 거부하여 내가 그들 위에서 왕으로 다스리지 못하게 한 것이다.」사무엘상 8:7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는 곧바로 이집트에서부터 이어진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다. 그동안 그들이 해 온 모든 일과 똑같이, 지금 너에게도 그렇게 하고 있다.」사무엘상 8:8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가 자신들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다른 신들과 다른 의지처를 향해 돌아서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백성은 자신들을 구원해 오신 여호와야훼보다 눈에 보이는 왕의 통치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8절은 왕을 요구하는 행위를 다른 신을 섬기는 일과 정확히 동일한 행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는 과거의 배교와 이번 요구가 같은 관계적 태도에서 나왔다고 해석하십니다. 자신들의 왕이신 여호와야훼를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고 다른 대상을 통치의 중심에 세우려 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7:8–10에서 블레셋이 공격해 왔을 때, 이스라엘은 사무엘에게 자신들을 위해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여호와야훼는 응답하셨고, 큰 천둥으로 블레셋을 혼란에 빠뜨리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 분은 왕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이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에서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처럼 자신들의 전쟁을 이끌 왕을 원합니다. 그들이 구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얻지 못했던 구원이 아닙니다. 이미 경험한 구원을 다른 방식으로 확보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순종하여라」
여호와야훼는 7절과 9절에서 사무엘에게 백성의 목소리를 따르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19절에서 백성은 사무엘의 목소리를 따르기를 거절합니다. 마지막 22절에서 여호와야훼는 다시 백성의 목소리를 따르라고 명령하십니다.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데, 하나님은 그 백성의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여호와야훼는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시면서 그 요구가 옳다고 선언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사무엘에게 엄중한 경고를 맡기십니다.
백성이 원하는 길을 허락하시되, 그 길이 어디로 향할지를 먼저 알려 주십니다.
이제 사무엘은 왕이 무엇을 해 줄 것인지가 아니라, 왕이 백성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9절의 ‘반드시 엄중히 경고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같은 어근을 반복하여 경고의 강도를 높이는 표현입니다. 왕을 세우는 일이 가져올 결과를 백성이 충분히 듣게 해야 합니다.
왕의 관행 — 그가 가져갈 것이다
재판을 바로잡으려고 왕을 구했는데
사무엘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말했다. 「여러분을 다스릴 왕의 관행은 이러할 것입니다. 그는 여러분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병거대와 기병대에 배치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의 병거 앞에서 달릴 것입니다.」사무엘상 8:11 · 본디새김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한 출발점은 재판의 실패였습니다. 그들은 올바른 재판을 기대하며 새로운 통치자를 요구했는데, 이제 사무엘은 그들에게 새로운 통치자가 행사할 ‘왕의 관행’을 설명합니다.
백성은 재판의 불의를 해결하려고 왕을 원하지만, 사무엘은 그 왕이 또 다른 불의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누가 재판관이 되느냐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권력을 누구를 위해 행사하느냐입니다.
왕은 무엇을 가져가는가
왕이 백성을 위해 무엇을 줄 것인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대신 그가 무엇을 가져갈 것인지가 길게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아들들입니다.
왕은 군대를 조직하고 병거와 기병을 운용할 것입니다. 주변 나라들의 군사력에 대응하려면 이러한 체계가 필요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들은 백성의 아들들입니다.
특히 병거 앞에서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단순히 전투에 참여하는 군인만을 떠올리게 하지 않습니다. 왕의 위세를 드러내는 행렬에서도 이러한 수행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훗날 압살롬은 자신을 위해 병거와 말들을 마련하고 앞에서 달리는 사람 오십 명을 두었습니다(사무엘하 15:1).
왕이 강해질수록 그의 권력을 드러내고 유지하는 데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해집니다.
12절에서는 아들들이 군대 지휘관으로 임명될 뿐 아니라, 왕의 밭을 갈고 곡식을 거두며 무기를 만드는 일에도 동원됩니다. 국방과 왕실의 경제 활동이 함께 등장합니다.
그리고 딸들도 왕의 일에 동원됩니다.
「여러분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를 만들고 요리하고 빵을 굽는 일을 시킬 것입니다.」사무엘상 8:13 · 본디새김
향료 제조와 요리, 제빵은 왕실의 생활을 유지하는 노동입니다. 왕의 군대뿐 아니라 왕의 집안도 백성의 노동력을 필요로 합니다.
백성은 자신들을 보호할 왕을 원하지만, 왕의 보호 체계는 백성의 자녀들을 왕에게 봉사하는 사람들로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들이 왕의 것이 된다
14절에서 왕의 권력은 사람을 넘어 땅에까지 미칩니다.
「여러분의 좋은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나무들을 가져다가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입니다.」사무엘상 8:14 · 본디새김
고대 이스라엘에서 밭과 포도원은 단순한 수입원이 아닙니다. 가족이 대를 이어 살아갈 경제적 기반이며, 조상에게서 이어받은 상속 재산입니다.
레위기 25:23은 땅이 궁극적으로 여호와야훼의 것이라는 원칙을 제시합니다. 이스라엘은 땅을 여호와야훼께 받은 사람들로서 그 안에서 살아갑니다.
백성에게는 삶을 이어갈 기반이었던 땅이 왕에게는 신하들에게 보상하고 충성을 확보하는 자원이 됩니다. 땅을 가진 사람이 그 땅을 지켜낼 수 있는지보다 왕이 그것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가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이 경고는 훗날 나봇의 포도원 사건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얻습니다. 열왕기상 21장에서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원하지만, 나봇은 조상의 상속 재산을 내줄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결국 이세벨이 꾸민 거짓 고발로 나봇이 죽고, 아합은 그 포도원을 차지합니다.
왕의 욕망이 백성의 상속권보다 앞서면, 백성의 삶을 보호해야 할 통치 권력이 오히려 그 삶을 빼앗는 수단이 됩니다.
15절과 17절에는 곡식과 포도원 소출, 양 떼와 염소 떼에서 십분의 일을 거두는 행위가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십분의 일을 바치는 일은 낯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에도 십일조 규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레위기 27:30–32; 신명기 14:22–29). 그러나 여기서 사무엘이 말하는 것은 왕이 자기 관리들과 신하들을 위해 거두는 몫입니다.
16절에서는 남자 노예와 여자 노예, 좋은 젊은이들, 나귀들까지 왕의 노동력으로 편입됩니다.
백성의 아들과 딸, 밭과 포도원, 곡식과 가축, 종과 젊은이들이 모두 왕을 중심으로 재편됩니다. ‘여러분의 것’이었던 것들이 ‘자기 일’을 위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17절은 그 결과를 짧게 선언합니다.
「여러분의 양 떼와 염소 떼에서 십분의 일을 거둘 것이며, 여러분 자신도 그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사무엘상 8:17 · 본디새김
처음에는 왕이 재산과 노동력을 가져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면 왕이 궁극적으로 차지하는 것은 백성 자신입니다.
자신들을 위해 왕을 세우려던 사람들이, 결국 왕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미슈파트’는 재판, 정의, 규정, 관례 등 문맥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나타냅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이 왜곡한 ‘재판’이 바로 미슈파트입니다. 왕의 관행이 그에게 정당하게 주어진 권리를 의미하는지, 실제로 왕들이 행사하게 될 권력을 묘사하는지는 해석이 갈리는 지점입니다. 히브리어 자체는 두 가능성을 모두 허용합니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 여호와야훼는 사무엘에게 이를 엄중히 경고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어지는 내용도 이상적인 왕이 지켜야 할 규범이 아니라, 왕이 백성의 사람과 재산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사용하는 행위들입니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는 ‘왕의 관행’으로 이해하는 것이 경고의 성격을 잘 드러냅니다. 16절에는 작은 본문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은 바후레켐 하토빔, 곧 ‘여러분의 좋은 젊은이들’이라고 읽습니다. 반면 칠십인역은 이 자리를 좋은 소 떼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읽습니다. 앞뒤에 노예와 나귀가 등장하므로 가축을 뜻한다고 이해할 여지가 있지만, 마소라 본문의 문면은 분명히 사람을 가리킵니다. 어느 읽기를 따르더라도 왕이 백성의 중요한 노동력을 자기 일에 동원한다는 의미는 유지됩니다.
다시 부르짖어야 하는 백성
사무엘의 경고는 왕의 권력이 가져올 결과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결과를 겪는 백성이 다시 누구를 찾게 될 것인지까지 나아갑니다.
「그날 여러분은 자신들을 위해 선택한 왕 때문에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여호와야훼께서는 여러분에게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사무엘상 8:18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면서 고된 노동 때문에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그들의 고통을 보셨으며,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출애굽기 2:23–25; 3:7–8).
그런데 사무엘상 8장에서는 백성이 다시 노예가 되고, 다시 부르짖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 그들을 종으로 만드는 사람은 외국의 파라오가 아니라 자신들이 선택한 왕이라는 점입니다.
출애굽의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는 듯한 장면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이 부르짖음을 들으셨지만, 사무엘상 8:18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앞으로 이스라엘의 어떤 회개에도 응답하지 않으시겠다는 영구적인 선언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사무엘상 12:20–22에서 사무엘은 왕을 요구한 백성에게 여전히 여호와야훼를 섬기라고 권하고, 여호와야훼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8:18은 왕을 선택한 결과로 고통이 찾아올 때, 백성이 그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엄중한 경고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아닙니다. 저희 위에 왕이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이 경고를 마치자 백성은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백성은 사무엘의 목소리에 순종하기를 거절하고 말했다. 「아닙니다. 저희 위에 왕이 있어야 합니다.」사무엘상 8:19 · 본디새김
백성은 사무엘의 경고가 틀렸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이 백성의 자녀를 동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왕이 땅을 가져가거나 세금을 거두는 일을 막을 대책을 제시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저희도 모든 민족처럼 될 것입니다. 저희 왕이 저희를 다스리고, 저희 앞에 나가 저희의 전쟁을 치를 것입니다.」사무엘상 8:20 · 본디새김
처음에 장로들은 부패한 재판관들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원하는 왕의 모습에는 다른 요소가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은 불안정한 상황에서 싸움을 이끌고 승리를 책임질 통치자를 원합니다. 왕이 있다면 나라가 일관된 군사 체계를 갖추고,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강한 지도력 아래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백성은 왕이 자신들 앞에 나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11절에서 사무엘이 묘사한 것은 백성의 아들들이 왕의 병거 앞에서 달리는 장면이었습니다.
누가 누구를 위해 앞서 갑니까?
백성은 자신들을 대신해 싸워 줄 왕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 왕이 전쟁을 치르려면 결국 백성의 아들들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왕이 앞서 싸울 것이라는 기대와 백성의 아들들이 왕 앞에서 달려야 한다는 현실이 한 장 안에서 맞부딪힙니다.
문제는 백성이 왕의 군사적 능력만 바라보면서 그것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희생을 충분히 헤아리지 않는 데 있습니다. 백성이 기대하는 왕의 능력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군사 조직과 궁정, 관리와 노동력, 땅과 소출을 동원하는 권력 위에 세워집니다.
하지만 이 순간 백성은 왕이 여호와야훼에게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묻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왕을 갖는 데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들의 요구가 왜 여호와야훼의 통치에 대한 거부로 해석되었는지 이제 분명해집니다.
마지막까지 듣고 계시는 여호와야훼
본문은 사무엘이 다시 여호와야훼께 나아가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사무엘은 백성의 말을 모두 듣고 여호와야훼에게 그 말을 전했다.사무엘상 8:21 · 본디새김
처음 왕을 요구받았을 때 사무엘은 여호와야훼께 기도했습니다. 이제 백성이 경고를 거부하고 요구를 되풀이하자, 그는 다시 그 말을 여호와야훼께 전합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만으로 왕을 세우거나 거절하지 않습니다. 백성의 요구를 듣고, 그 요구를 여호와야훼 앞에 가져가고, 여호와야훼께 받은 말씀을 다시 백성에게 전합니다.
그렇게 사무엘은 왕이 등장하기 직전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중재자의 직무를 수행합니다.
여호와야훼가 사무엘에게 말했다. 「그들의 목소리에 순종하고 그들에게 왕을 세워 주어라.」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했다. 「각자 자기 성읍으로 가십시오.」사무엘상 8:22 · 본디새김
이 말씀은 7절과 9절에 이미 등장했던 명령을 반복합니다. 이번에는 경고하라는 지시가 덧붙지 않습니다. 경고는 이미 주어졌고, 백성은 그것을 들은 뒤에도 같은 요구를 했습니다.
이제 왕을 세우는 일이 허락됩니다.
백성의 요구를 허락하셨다고 해서 그들의 모든 판단이 정당해진 것은 아닙니다. 동시에 그 요구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끝내신 것도 아닙니다.
왕정은 이스라엘의 요구로 시작되지만, 그 이후의 역사를 백성의 요구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요구한 제도 안에서도 계속 일하십니다. 그 안에서 사람을 선택하시고, 불순종을 심판하시며, 자신의 약속을 이어 가십니다.
사무엘상 8장은 왕정의 문제를 제기하지만 왕정의 미래를 모두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어떤 왕이 세워지고 그 왕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상 12:14–15에서 사무엘은 왕과 백성이 함께 여호와야훼를 따르는 길을 제시합니다. 이는 신명기 17:18–20의 왕에 관한 규정과 맞닿아 있습니다. 왕은 율법을 곁에 두고 읽으며 여호와야훼를 경외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자기 형제들 위에 마음을 높여서는 안 됩니다. 이후 사울은 여호와야훼의 지시에 따라 기름 부음을 받고(사무엘상 9:15–17; 10:1), 다윗도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신 사람으로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사무엘상 16:1, 12–13). 나아가 여호와야훼는 다윗과 그의 집안에 관한 약속을 주십니다(사무엘하 7:12–16).
왕이 아니라, 왕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스라엘이 세울 왕은 여호와야훼를 대신할 구원자가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말씀 아래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백성은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할 왕을 얻는 데 집중한 나머지, 그 왕이 누구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백성의 선택은 그들의 책임으로 남지만, 여호와야훼의 말씀은 그 선택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8장은 뜻밖에도 왕이 등장하지 않은 채 끝납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성읍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왕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왕을 세우라는 여호와야훼의 말씀과, 왕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무엘의 경고가 그들 뒤에 남아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