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10–28장 · 둘로 갈라진 나라
왕을 세우려던 백성이 왕을 떠나다
이스라엘 백성은 르호보암을 왕으로 세우려고 세겜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임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는 더 이상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불과 사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역대하 10장은 한 왕이 잘못된 조언을 받아들여 나라를 잃은 이야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깊은 질문이 있습니다.
왕은 백성을 다스리기 때문에 왕인가요, 아니면 백성을 위해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왕인가요?
이 질문은 솔로몬에게도 주어졌던 질문입니다. 앞 장에서 스바 여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에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다고 찬양했습니다(9:8). 그런데 솔로몬의 아들이 맞닥뜨린 첫 번째 문제는 바로 백성이 감당하던 무거운 부담이었습니다.
르호보암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가 누렸던 영광을 재현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영광의 이면에서 백성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듣는 일이었습니다.
이 장에는 하나의 요청과 두 종류의 조언, 왕의 한 차례 대답,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결별이 등장합니다. 그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듣다’와 ‘멍에’입니다.
누구의 말을 듣습니까? 누구의 멍에를 가볍게 합니까? 그 두 질문이 한 나라의 운명을 가릅니다.
세겜에 모인 이스라엘 — 왕권은 이미 확정된 것이 아니었는가?
르호보암은 세겜으로 갔다.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세우려고 세겜에 왔기 때문이다.역대하 10:1 · 본디새김
솔로몬은 예루살렘에서 죽었고, 르호보암이 그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9:31). 그런데 10장은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르호보암은 다윗의 손자이자 솔로몬의 아들이었습니다. 왕조의 계승자라는 사실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전체가 그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세겜은 에브라임 산지에 자리한 오래된 성읍입니다. 창세기 12:6–7에서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장소 가운데 하나이며, 여호수아 24:1에서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불러 모아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확인한 장소로 등장합니다. 여호수아 24:25–27에 따르면 그곳에서 백성은 여호와야훼를 섬기겠다고 다짐했고, 여호수아는 그들의 증언을 기념하는 돌을 세웠습니다.
다만 르호보암의 즉위 모임이 그 역사를 의도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세겜에서 열렸는지는 본문에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세겜의 역사적 의미와 실제 모임 장소를 선택한 구체적인 동기는 구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자리에 한 사람이 돌아옵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은 솔로몬 왕을 피해 달아나 이집트에 있었다. 여로보암은 이 소식을 듣고 이집트에서 돌아왔다.역대하 10:2 · 본디새김
열왕기상 11:26–28에 따르면 그는 에브라임 사람으로, 솔로몬의 관리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여 요셉 집안의 강제 노역을 감독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훗날 솔로몬에게 반기를 들었고, 솔로몬은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여로보암은 이집트로 피신했습니다(열왕기상 11:40).
그런데 그가 돌아왔을 때 백성은 사람을 보내 그를 부릅니다.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이 함께 르호보암 앞에 나아갑니다. 이 장면에서 여로보암은 아직 북이스라엘의 왕이 아닙니다. 백성의 요구를 함께 전달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등장합니다.
르호보암 앞에는 아버지 시대의 통치를 경험한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왕을 맞이하러 왔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과거를 반복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백성이 요구한 것은 왕의 폐지가 아니라 멍에의 경감이었다
「임금님의 아버지께서는 저희에게 고된 멍에를 지우셨습니다. 이제 임금님의 아버지께서 시키신 고된 일과 저희에게 지우신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희가 임금님을 섬기겠습니다.」역대하 10:4 · 본디새김
솔로몬에 관한 앞 장의 이야기와 이 구절 사이에는 뚜렷한 온도 차이가 있습니다.
역대하 9장에서는 은이 돌처럼 흔하고, 백향목이 돌무화과나무처럼 많았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왕보다 부유하고 지혜로운 왕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왕의 통치를 경험한 백성은 이제 ‘고된 멍에’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나라의 풍요와 백성이 감당한 부담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백성은 그 화려함을 유지하는 데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해야 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그 멍에를 ‘고된 일’과 연결합니다. 따라서 백성의 호소를 막연히 세금이 많았다는 이야기로만 좁혀서는 안 됩니다. 노동 동원과 통치의 부담이 함께 문제가 된 것으로 읽는 것이 적절합니다.
역대하 8:7–10은 솔로몬이 강제 노역자를 동원하고 감독관들을 두었다고 기록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자기 공사에 부릴 노예로 삼지는 않았다고 설명하지만, 그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국가적 노동 의무나 다른 부담이 전혀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열왕기상 5:13–14에는 실제로 솔로몬이 이스라엘에서 사람들을 징발하여 레바논의 건축 사업에 동원한 기록이 있습니다.
백성은 왕에게 더 이상 복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계속 왕을 섬길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그들은 다윗 왕조의 지속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었습니다.
백성은 왕을 섬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그 관계가 유지되려면 왕도 백성의 고통을 살펴야 한다고 요청합니다. 왕권은 위에서 아래로만 행사되는 명령이 아닙니다. 백성이 받아들이고 협력해야 지속될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르호보암은 그들의 말에 즉시 대답하지 않습니다.
왕은 중요한 정치적 문제를 앞에 두고 시간을 요청했습니다. 백성도 그 말을 받아들이고 돌아갑니다.
사흘이라는 시간은 새로운 왕에게 기회였습니다.
그는 그동안 백성의 요구를 검토하고, 여러 사람의 조언을 들으며,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나라를 다스릴지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시간이 지혜로운 판단으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원로들은 왕에게 무엇을 조언했는가?
르호보암은 먼저 원로들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르호보암 왕은 자기 아버지 솔로몬이 살아 있을 때 그 앞에서 시중들던 원로들과 의논하며 말했다. 「그대들은 이 백성에게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좋겠다고 보오?」역대하 10:6 · 본디새김
그들이 정확히 어떤 직무를 맡았는지는 설명되지 않지만, 왕 앞에서 일하며 오랫동안 정치적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솔로몬의 번영을 기억했을 뿐 아니라, 그 번영을 유지하는 통치 체계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에게 말했다. 「임금님께서 이 백성을 잘 대해 주시고 그들을 호의로 받아들이시며 그들에게 좋은 말을 해 주시면, 그들은 언제까지나 임금님의 종이 될 것입니다.」역대하 10:7 · 본디새김
특히 ‘호의로 받아들이시며’라는 표현은 단순히 무례하게 굴지 말라는 정도를 넘어섭니다. 원로들은 백성의 요청을 처음부터 반역적인 행동으로 규정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본문은 구체적인 감면 규모나 제도 개혁 방안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원로들의 말이 즉시 강제 노역을 폐지하라는 요구였다고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강한 왕이라고 해서 백성의 충성을 언제나 강제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충성은 백성이 왕을 신뢰할 때 더욱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병행 본문인 열왕기상 12:7은 이 조언의 의미를 한층 선명하게 표현합니다. 그곳에서는 왕이 오늘 백성의 종이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면, 백성이 언제나 왕의 종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역대하 10:7은 ‘백성의 종이 되라’는 표현 대신, 백성을 잘 대해 주고 호의로 받아들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원로들이 생각한 강한 왕권은 백성의 고통을 무시하는 힘이 아니라, 백성의 신뢰를 얻어 오래 지속되는 권위였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이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함께 자란 젊은이들 — 왜 그들의 조언은 달랐는가?
그는 원로들이 해 준 조언을 버리고, 자기와 함께 자라서 자기 앞에서 시중드는 젊은이들과 의논했다.역대하 10:8 · 본디새김
르호보암은 원로들의 조언과 젊은이들의 조언을 모두 들은 뒤 비교하여 한쪽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그가 먼저 원로들의 조언을 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다음에 자신과 함께 자란 젊은이들과 의논합니다.
원로들은 이전 왕의 통치를 가까이에서 경험한 사람들이고, 젊은이들은 새 왕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 온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차이를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은 지혜롭고 젊은 사람은 어리석다는 일반 법칙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젊은이들’이라는 표현이 반드시 경험 없는 어린 사람들을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르호보암과 함께 자란 사람들로 소개되기 때문에, 이들의 특징은 나이 자체보다 왕과 맺어 온 관계에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어떤 조언을 했는가입니다.
르호보암은 그들에게도 같은 문제를 제시합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백성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묻지 않습니다. 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왕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보여 줄 말을 제안합니다.
그와 함께 자란 젊은이들이 그에게 말했다. 「임금님께 『임금님의 아버지께서는 저희 멍에를 무겁게 하셨으니, 임금님은 저희 멍에를 가볍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한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내 새끼손가락은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다.』」역대하 10:10 · 본디새김
이 표현은 작은 것과 큰 것을 극단적으로 대조합니다. 새끼손가락은 몸의 작은 부분이고 허리는 몸통의 큰 부분입니다. 문자적으로 가능한 신체 비교가 아니라, 아버지보다 자신이 훨씬 강한 왕이라는 사실을 과시하는 허세입니다.
그다음 말은 더욱 과격합니다.
「『이제 내 아버지가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웠지만, 나는 너희 멍에에 짐을 더 얹겠다. 내 아버지는 너희를 채찍으로 징계했지만, 나는 전갈로 징계하겠다.』」역대하 10:11 · 본디새김
이것은 단순한 요청 거절이 아닙니다.
백성이 고통스럽다고 호소한 바로 그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겠다는 선언입니다. 이전보다 더욱 가혹하게 징계하겠다는 위협입니다.
두 집단은 모두 왕권의 유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왕권이 무엇으로 유지되는지에 관한 이해가 달랐습니다.
한쪽은 신뢰를 얻으려 하고, 다른 한쪽은 두려움을 일으키려 합니다.
그리고 르호보암은 두려움을 선택합니다.
젊은이들의 조언은 왕의 권력이 실제로 얼마나 강한지 확인한 뒤 나온 분석이 아닙니다. 왕이 백성에게 어떤 말을 해야 강해 보일 것인지를 제안한 것입니다. 말의 위협이 실제 통치 능력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 셈입니다.
그러나 강하게 말하는 것과 실제로 강한 왕이 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전갈’은 이 문맥에서는 채찍과 대조되어 사용됩니다. 따라서 전갈의 독침처럼 더욱 고통스러운 징계를 가리키는 비유일 수도 있고, 특별히 가혹한 채찍이나 형벌 도구를 가리키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형벌 도구의 형태는 본문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사흘 뒤의 대답 — 왕은 누구의 말을 들었는가?
사흘이 지나자 여로보암과 온 백성이 다시 르호보암을 찾아옵니다.
왕의 명령에 따라 사흘을 기다렸고, 정해진 날에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왕이 어떤 대답을 할지 들으려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왕의 대답은 가혹했습니다.
왕은 그들에게 거칠게 대답했다. 르호보암 왕은 원로들의 조언을 버리고,역대하 10:13 · 본디새김
이미 8절에서 그 사실을 기록했는데, 13절에서 반복합니다. 처음에는 조언을 구하는 과정에서 원로들의 말을 버렸고, 이제는 실제로 백성에게 대답하는 자리에서 그 결정이 드러납니다.
젊은이들의 조언대로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 멍에를 무겁게 하겠다. 나는 거기에 짐을 더 얹겠다. 내 아버지는 너희를 채찍으로 징계했지만, 나는 전갈로 징계하겠다.」역대하 10:14 · 본디새김
여기서 본디새김의 번역처럼 ‘내가 하겠다’는 미래의 행동을 가리키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왕은 단순히 아버지의 통치를 변호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자신의 통치 아래에서 백성의 부담을 더욱 무겁게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역대기 기자는 사건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왕은 백성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런 사태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여호와야훼가 실로 사람 아히야를 통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한 말을 이루기 위해서였다.역대하 10:15 · 본디새김
르호보암의 결정은 그의 책임으로 남아 있으며, 그 결정으로 일어난 왕국의 분열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사건으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 사건을 주관하셨다는 진술이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다윗 왕조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왕이 백성을 어떻게 대하든 모든 권력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는 보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권도 하나님의 판단 아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상 11:29–39에는 예언자 아히야가 여로보암을 만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히야는 새 겉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어 그 가운데 열 조각을 여로보암에게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왕국을 나누어 열 지파를 여로보암에게 주시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이유로 솔로몬 시대의 우상 숭배와 하나님의 길을 따르지 않은 일이 제시됩니다(열왕기상 11:33).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주신 약속과 예루살렘의 선택을 기억하시어 다윗 집안에 왕권의 일부를 남겨 두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왕국의 분열에는 심판과 약속의 보존이 함께 나타납니다. 역대하 7:17–22에서 하나님은 솔로몬과 그의 후손들이 자신의 명령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면 왕국과 성전이 심판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이 르호보암에게 가혹한 말을 직접 명령하셨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르호보암의 마음에 특정한 악한 생각을 집어넣으셨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르호보암은 스스로 조언을 구했고, 원로들의 말을 버렸으며, 젊은이들의 위협적인 조언을 채택했습니다. 동시에 역대기 기자는 인간의 잘못된 선택조차 하나님의 말씀과 심판이 이루어지는 역사의 과정 안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렇다고 이 사건 이후 북쪽 이스라엘의 모든 선택이 자동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왕국의 분열을 예고하셨다는 사실과, 분열 이후 각 왕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다윗에게 우리가 무슨 몫이 있느냐?」 — 오래된 외침이 다시 울리다
왕의 대답을 들은 백성은 더 이상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왕이 온 이스라엘의 말을 듣지 않자, 백성이 왕에게 대답했다. 「다윗에게 우리가 무슨 몫이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 우리 유산은 없다. 이스라엘아,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아, 이제 네 집안을 돌보아라.」 온 이스라엘이 자기 천막으로 돌아갔다.역대하 10:16 · 본디새김
여기서 백성은 르호보암의 이름보다 다윗의 이름을 반복합니다. 문제는 이제 르호보암 한 사람의 통치 방식만이 아닙니다. 그가 대표하는 다윗 왕조 전체의 지배를 거부하는 문제로 확대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유산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과 지파들의 몫을 생각하게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다윗 왕조와 정치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표현하는 데 사용됩니다. 백성은 다윗 왕조 안에서 자신들에게 돌아올 몫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사무엘하 20:1에서 세바라는 사람이 다윗에게 반기를 들며 거의 같은 말을 외쳤습니다. 다윗에게 자신들의 몫이 없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에도 북쪽 이스라엘 지파들과 다윗 왕조 사이에는 긴장이 존재했습니다.
솔로몬 시대의 무거운 멍에는 그 긴장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르호보암의 대답은 그 갈등이 드러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왕국 전체를 다스릴 권한을 요구했던 르호보암에게 돌아온 대답은 그가 자기 집안이나 살피라는 말이었습니다.
르호보암은 유다의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다스렸다.역대하 10:17 · 본디새김
여기서 ‘이스라엘 자손’은 북쪽 왕국에 속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유다 지역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백성도 포함합니다. 이후 역대하 11:1은 르호보암이 유다와 베냐민 집안을 소집했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분열 이후의 정치적 구도를 단순히 유다 지파 하나와 나머지 모든 지파의 대립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르호보암은 왕위를 물려받았지만, 아버지가 다스리던 왕국 전체를 물려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르호보암은 여전히 왕으로 행동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가 다음에 내린 결정은 왕국의 분열이 얼마나 심각해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강제 노역 감독관의 죽음 — 왕은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가?
르호보암 왕은 강제 노역을 감독하던 하도람을 보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에게 돌을 던져 그가 죽었다. 르호보암 왕은 서둘러 병거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달아났다.역대하 10:18 · 본디새김
그는 백성이 고통을 호소했던 노동 체계와 직접 연결된 관리였습니다. 본문은 르호보암이 왜 하도람을 보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백성의 반발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는지, 기존의 노동 동원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왕의 명령을 전달하려 했는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을 백성의 행동이 반드시 정당했다는 증거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하도람을 돌로 쳐 죽인 일이 의로운 행동이었다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도람 개인이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죽어 마땅한 책임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왕이 보낸 관리가 백성의 손에 죽었습니다. 이는 르호보암의 명령과 행정 권한이 더 이상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르호보암은 백성을 두려움으로 복종시키려 했지만, 결국 자신이 백성을 두려워하여 달아났습니다.
그는 왕권의 강함을 과시하려 했으나, 실제로는 왕권의 취약함을 드러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다윗 집안에 반역했고, 그 상태가 오늘날까지 이어졌다.역대하 10:19 · 본디새김
이 단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백성의 모든 요구가 부당했다거나, 르호보암의 행동이 정당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앞서 왕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19절의 반역이라는 표현은 왕국 분열의 정치적 결과를 설명하는 말로 읽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오늘날까지’라는 말은 이 기록이 작성되던 시대의 관점에서 분열의 결과가 계속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서술 표현입니다. 현대의 현재까지 동일한 정치 상태가 지속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결론 — 세겜에서 예루살렘으로 달아나는 왕
왕은 백성을 섬기도록 세워졌지만, 르호보암은 백성에게 더 무거운 멍에를 지우는 것으로 자신의 권위를 증명하려 했습니다. 그 순간 왕을 세우려고 모였던 백성은 왕을 떠났습니다.
세겜에 모였던 사람들은 흩어졌습니다.
하도람은 죽었고, 르호보암은 병거를 몰아 예루살렘으로 달아났습니다. 한때 온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다윗의 왕좌는 남아 있었지만, 그 왕좌 아래 모였던 백성은 더 이상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왕국을 갈라놓은 결정적인 말은 왕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내가 너희 멍에를 무겁게 하겠다. 나는 거기에 짐을 더 얹겠다.」 그 말을 들은 백성은 이제 그 왕의 멍에를 지지 않겠다고 결정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