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9장
이 장의 자리 · 1–9장 · 솔로몬과 성전 건축
지혜와 금이 모인 왕좌는 누구의 것인가?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에 관한 소문을 듣고 먼 길을 떠납니다. 그는 많은 수행원과 값비싼 선물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왕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을 만나고 그의 왕궁을 살펴본 여왕은 자신이 들었던 소문이 오히려 실제 모습을 충분히 전하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뜻밖의 찬양을 드립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왕으로 칭송받는 솔로몬이 앉아 있는 왕좌가 사실은 하나님의 왕좌라면, 왕의 위대함은 무엇으로 판단해야 할까요?
그런데 이 장에는 두 종류의 왕좌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여왕이 하나님의 왕좌라고 부른 자리이고, 다른 하나는 솔로몬이 상아와 금으로 화려하게 만든 실제 왕좌입니다.
이 두 왕좌는 같은 왕권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보여 줍니다. 하나는 왕권의 근원과 목적을 밝히고, 다른 하나는 왕권의 눈부신 외형을 보여 줍니다.
먼 나라의 여왕은 왜 솔로몬을 시험했는가?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소문을 듣고 수수께끼로 솔로몬을 시험하려고 예루살렘에 왔다. 매우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향료와 많은 금과 보석을 실은 낙타들을 데리고 왔다. 여왕은 솔로몬에게 와서 마음에 품고 있던 모든 것을 그와 이야기했다.역대하 9:1 · 본디새김
이 장은 솔로몬이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여왕이 무엇을 들었는지로 시작합니다.
스바는 일반적으로 아라비아반도 남부의 고대 사바 지역과 연결됩니다. 향료와 귀금속을 싣고 이동하는 낙타 행렬 역시 남부 아라비아와 북쪽 지역을 연결하던 교역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만 성경은 여왕의 이름이나 그가 다스린 나라의 정확한 수도를 밝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스스로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솔로몬을 ‘시험’했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수수께끼’는 답을 바로 알기 어려운 수수께끼나 난해한 질문을 가리킵니다. 사사기 14:12–18에서 삼손이 사람들에게 낸 수수께끼에도 같은 단어가 사용됩니다. 그러나 왕을 시험하는 이 자리에서 반드시 짧은 말장난이나 재치 있는 문제만을 뜻한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지혜와 분별력을 드러내야 하는 어려운 질문들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1절 후반에는 여왕이 솔로몬에게 ‘마음에 품고 있던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알고 싶었던 문제들을 솔로몬 앞에 펼쳐 놓았습니다.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역대기 기자가 관심을 두는 것은 질문의 목록이 아니라 그 질문들에 대한 솔로몬의 응답입니다.
솔로몬은 여왕이 물은 모든 것에 대답했다. 솔로몬에게 감추어져 있어 여왕에게 설명하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역대하 9:2 · 본디새김
‘모든 것’과 ‘하나도 없었다’는 표현이 서로 대응합니다. 이 장면은 역대하 1장에서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지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일의 성취를 보여 줍니다.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하나님께 구한 것은 부나 장수가 아니라 백성을 다스릴 지혜와 지식이었습니다(1:10).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와 지식뿐 아니라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11–12).
여기서 지혜는 단순히 많은 사실을 외우고 있는 능력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제기하는 어려운 문제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역대기 기자는 여왕이 그 대답만 듣고 돌아갔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는 솔로몬의 궁정 전체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말로 들은 지혜보다 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조금 더 깊이
마태복음 12:42과 누가복음 11:31에서 예수는 남방 여왕이 땅끝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왔다고 말씀하시며, 자신에게 주어진 말씀을 듣고도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을 책망하십니다. 예수의 말씀에서 강조되는 것은 스바 여왕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지혜를 구하러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대하 9장을 읽는 일은 그보다 먼저 솔로몬 시대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스바 여왕이 보고 넋을 잃은 것은 무엇인가?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와 그가 지은 집과, 그의 식탁에 오른 음식과 그의 종들이 앉은 자리와 시중드는 이들이 늘어선 모습과 입은 옷, 술잔을 맡은 이들과 그들이 입은 옷, 그가 여호와야훼의 집으로 올라가는 통로를 보고 넋을 잃었다.역대하 9:3–4 · 본디새김
여왕이 목격한 것은 하나의 질서 있게 운영되는 왕궁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공급하고, 각자의 자리를 정하며, 여러 직무를 맡은 사람들을 조직하는 일은 통치의 실제적인 영역에 속합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여왕의 질문에 답하는 말에서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다스리는 궁정의 모습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솔로몬의 왕궁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장소와 분리된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왕의 삶과 통치는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예배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와서 제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의 크나큰 지혜는 그 절반도 제게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임금님은 제가 들은 소문보다 더 뛰어나십니다.」역대하 9:6 · 본디새김
‘절반도’라는 표현은 지혜의 양을 정확히 측정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이 예상했던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는 강한 감탄입니다.
여왕은 처음에 소문을 확인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직접 본 뒤에는 소문이 거짓이라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소문만으로는 충분히 알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다음 여왕은 솔로몬 자신보다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언급합니다.
「임금님의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또 늘 임금님 앞에 서서 임금님의 지혜를 듣는 이 종들은 행복합니다.」역대하 9:7 · 본디새김
이 말은 솔로몬의 지혜가 왕 자신에게만 유익한 것이 아니라, 그 지혜를 가까이에서 듣는 사람들에게도 복이 된다고 여왕이 평가했음을 보여 줍니다. 이후 역대하 10장에서 백성은 솔로몬 시대의 무거운 멍에와 노역을 언급합니다. 따라서 여왕이 감탄한 궁정의 모습과 백성이 경험한 통치의 부담은 반드시 동일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왕은 이제 자신이 본 것에 대해 가장 중요한 해석을 내놓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솔로몬의 ‘올라가는 시설’을 가리키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반면 병행 본문인 열왕기상 10:5는 번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수 있는 표현을 전합니다. 따라서 두 본문을 비교하면 여왕이 성전으로 올라가는 왕의 통로나 계단을 보았다는 읽기와, 왕이 성전에서 드리는 번제를 보았다는 읽기가 갈립니다. 역대하의 문면은 올라가는 시설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정확한 구조물의 형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넋을 잃었습니다’라는 표현의 히브리어 문장은 문자적으로 그에게 더 이상 ‘숨’ 또는 ‘정신’이 남아 있지 않았다는 식으로 표현됩니다. 실제로 의식을 잃었다는 뜻이 아니라, 본 것에 압도되어 할 말을 잃은 상태를 묘사한 것입니다.
외국 여왕이 솔로몬에게 일깨워 준 왕권의 목적
스바 여왕의 마지막 찬양은 이 장의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임금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찬양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임금님을 기뻐하시어 자신의 왕좌에 앉히시고, 임금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위해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임금님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어 영원히 굳게 세우고자 하셨기에, 임금님을 그들 위에 왕으로 세워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습니다.」역대하 9:8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 가장 뜻밖의 표현은 ‘자신의 왕좌’입니다.
다윗 왕조의 왕좌는 왕 개인의 소유물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통치가 인간 왕을 통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솔로몬의 왕좌를 하나님의 왕좌라고 부르는 것은 왕에게 무제한의 권력을 부여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권력이 누구에게서 왔으며, 누구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밝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백성을 굳게 세우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신 근본적인 이유는 솔로몬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왕의 지혜와 권력은 그 사랑이 백성의 삶에 구체적으로 드러나도록 사용되어야 합니다.
‘정의와 공의’ 두 단어가 함께 사용될 때에는 통치자가 사람들을 정당하게 판단하고,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며, 올바른 질서를 세우는 일을 포괄합니다. 왕의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 억울한 일을 겪는 사람들, 자신의 힘으로 권리를 지키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왕권이 어떻게 행사되는가와 관련됩니다.
왕의 지혜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야 할 곳은 왕궁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가 다스리는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지는 정의와 공의입니다.
여왕이 실제로 솔로몬의 모든 재판과 통치 행위를 조사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그의 말은 솔로몬이 완전한 정의를 실현했다는 객관적인 판정이라기보다,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신 목적을 밝히는 찬양으로 읽는 것이 적절합니다.
이 중요한 말을 전하는 사람은 이스라엘의 제사장이나 예언자가 아닙니다. 먼 나라에서 찾아온 외국 여왕입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알아보기 위해 왔던 사람이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역대하 6:32–33에서 솔로몬은 먼 땅에서 온 외국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그분께 나아오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스바 여왕의 방문은 그 기도와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여왕이 이스라엘의 신앙 공동체에 정식으로 속하게 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임금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본문은 그의 개인적인 신앙 변화 과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지혜가 다른 민족에게도 그분을 알리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병행 본문인 열왕기상 10:9에서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히셨다고 표현합니다. 반면 역대하 9:8은 하나님의 왕좌에 앉히셨다고 말합니다. 역대상 29:23에서도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는 장면을 설명하면서 그가 ‘여호와야훼의 왕좌’에 앉았다고 기록합니다. 사무엘하 8:15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했다고 기록합니다. 특히 시편 72편은 왕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받아 백성을 올바르게 다스리고, 먼 나라의 왕들이 예물을 가져오며,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알려지는 모습을 노래합니다. 역대하 9장의 스바 여왕과 여러 나라의 예물은 시편 72편의 왕적 이상과 주제적으로 깊이 연결됩니다. 그러나 두 본문을 동일한 사건에 관한 기록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시편 72편은 왕을 위한 기도와 왕권의 이상을 노래하는 시이고, 역대하 9장은 솔로몬 시대의 사건들을 서술하는 역사 이야기입니다.
스바 여왕이 가져온 선물과 솔로몬이 건넨 선물
여왕은 왕에게 금 백이십 달란트와 매우 많은 향료와 보석을 주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준 그 향료와 같은 것은 없었다.역대하 9:9 · 본디새김
금과 보석도 귀한 물품이지만, 이 구절에서는 특히 향료가 강조됩니다. 고대의 향료는 음식이나 음료, 향유와 향을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는 값비싼 상품이었습니다. 먼 지역에서 운반되어야 했기 때문에 향료의 교역은 중요한 경제 활동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왕이 가져온 선물은 그가 다스리는 나라의 부와 국제적인 교역 능력을 보여 줍니다. 고대 왕실 사이의 방문에서는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정치적 관계와 상호 존중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본문 역시 두 통치자 사이에 선물이 오갔다는 사실을 기록하지만, 구체적인 무역 협정이나 정치적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여왕의 선물을 소개한 뒤에는 앞 장의 오빌 항해 이야기가 다시 등장합니다. 후람과 솔로몬의 종들이 오빌에서 금을 가져오면서 알굼나무 목재와 보석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이 목재는 성전과 왕궁의 통로, 그리고 노래하는 사람들의 악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습니다(9:10–11).
먼 나라에서 들어온 물자가 왕실의 건축과 성전의 예배에 함께 사용된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스바 여왕이 왕에게 가져온 것과는 별도로, 여왕이 바라며 청한 모든 것을 주었다. 여왕은 자기 종들과 함께 발길을 돌려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역대하 9:12 · 본디새김
여왕은 마음에 품고 있던 모든 것을 솔로몬에게 이야기했고, 솔로몬은 그 질문들에 답했습니다. 그리고 여왕이 바라며 청한 것들도 받았습니다.
솔로몬의 지혜에 관한 소문이 스바에 도달했듯이, 이제 여왕의 방문을 통해 솔로몬에 대한 새로운 증언이 다시 먼 나라로 돌아가게 된 셈입니다.
조금 더 깊이
알굼나무가 정확히 어떤 수종인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백단나무일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지만, 본문만으로 특정할 수 없습니다.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 — 풍요를 어떻게 묘사하는가?
스바 여왕의 방문 이야기가 끝나자 역대기 기자는 솔로몬 왕국의 부를 자세히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한 해 동안 솔로몬에게 들어온 금의 무게는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였다.역대하 9:13 · 본디새김
또한 이어지는 14절에서는 행상들과 상인들이 가져온 것을 이 수치에서 제외합니다. 아라비아의 왕들과 총독들도 금과 은을 가져왔습니다. 따라서 본문에 기록된 육백육십육 달란트를 솔로몬의 모든 연간 수입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육백육십육이라는 숫자가 요한계시록 13:18의 숫자를 떠올리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역대하 9장 자체는 이 숫자에 상징적인 해석을 붙이지 않습니다. 솔로몬을 어떤 종말론적 인물과 동일시하거나, 이 숫자 자체가 그의 죄를 암시한다고 해석할 직접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이어지는 구절들은 그 금이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지를 보여 줍니다.
솔로몬 왕은 두드려 편 금으로 큰 방패 이백 개를 만들었다. 큰 방패 하나에는 두드려 편 금 육백 세겔이 들어갔다.역대하 9:15 · 본디새김
그리고 금으로 방패 삼백 개를 더 만들었습니다. 금으로 만든 방패는 일반적인 전투용 장비라기보다 왕의 위엄과 부를 보여 주는 물품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 역시 이 방패들이 전쟁터에서 사용되었다고 말하지 않고, 레바논 숲의 집에 보관되었다고 기록합니다.
레바논 숲의 집은 열왕기상 7:2–5에 등장하는 솔로몬의 왕궁 건축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많은 백향목 기둥이 사용된 건물이었으며, 왕실의 물품을 보관하는 장소로도 나타납니다.
본디새김 9:15–16은 방패에 들어간 금의 양을 세겔로 표현하지만, 히브리어 본문에는 육백과 삼백 뒤에 무게 단위가 직접 적혀 있지 않습니다. 세겔로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보충일 수 있으나, 원문에 명시된 정보와는 구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방패들에 관한 이야기는 이후 역대기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역대하 12:9–10에 따르면 이집트 왕 시삭이 예루살렘에 올라와 왕궁의 보물을 빼앗아 갈 때, 솔로몬이 만들었던 금방패들도 가져갔습니다. 르호보암은 그 대신 청동 방패를 만듭니다. 솔로몬 시대의 눈부신 부를 상징했던 물건들이 다음 세대에는 상실의 증거가 됩니다.
금방패와 청동 방패 사이의 차이는 단순히 재료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사실 이상을 보여 줍니다.
왕국의 영광이 한 세대 만에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상아와 금으로 만든 왕좌 — 여왕이 말한 왕좌와 무엇이 다른가?
이제 이야기의 중심에 솔로몬의 왕좌가 등장합니다.
왕은 상아로 큰 왕좌를 만들고 순금으로 덮었다.역대하 9:17 · 본디새김
상아와 금은 모두 귀한 재료입니다. 왕좌는 단순히 왕이 앉는 의자가 아니라 왕의 권위와 지위를 드러내는 상징적 물건입니다.
여섯 계단이 있고, 금으로 된 발판이 왕좌에 붙어 있습니다. 왕좌 양쪽에는 팔걸이가 있고, 그 곁에는 사자 두 마리가 서 있습니다.
그곳 여섯 계단의 양쪽에는 사자 열두 마리가 서 있었다. 어느 왕국에서도 이처럼 만든 것은 없었다.역대하 9:19 · 본디새김
사자는 고대 왕권의 힘과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널리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성경에서도 사자는 강한 힘과 왕적 위엄을 연상시키는 동물로 나타납니다(창세기 49:9).
열두 마리라는 숫자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떠올리게 한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사자들을 열두 지파의 상징이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의미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왕이 말한 하나님의 왕좌와 솔로몬이 만든 상아와 금의 왕좌가 이 장 안에서 서로 만납니다.
상아와 금으로 만든 왕좌는 솔로몬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왕으로 앉을 수 있는 권한은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금으로 된 왕좌는 왕의 부와 위엄을 보여 주지만, 왕이 왜 존재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화려한 왕좌가 그 자체로 잘못된 물건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그 왕좌를 죄의 증거라고 비판하지 않습니다.
왕좌가 금으로 덮여 있다는 사실보다, 그 왕좌에 앉은 사람이 누구의 뜻을 따라 다스리는가가 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솔로몬 왕이 마시는 데 쓰는 그릇은 모두 금으로 되어 있었고, 레바논 숲의 집에 있는 그릇도 모두 질 좋은 금으로 되어 있었다. 솔로몬 시대에 은은 아무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역대하 9:20 · 본디새김
은이 정말 경제적 가치가 전혀 없는 금속이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금이 너무 흔하고 왕궁의 물품이 지나치게 화려해서 은이 상대적으로 하찮게 여겨질 만큼 부유했다는 과장적 표현입니다.
왕궁의 금그릇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왕의 부를 보여 줍니다.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가 이루어졌는지는 왕의 통치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적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삼 년마다 돌아오는 배와 세계의 왕들
솔로몬의 부는 왕궁 안에 쌓여 있는 금으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왕에게는 후람의 종들과 함께 다시스로 다니는 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스 배들은 삼 년에 한 번씩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 왔다.역대하 9:21 · 본디새김
다시스는 구약에서 먼 바다와 교역을 연상시키는 지명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다시스 배’라는 표현이 언제나 다시스라는 특정 지역으로 항해하는 배를 뜻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먼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대형 상선이나 무역선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여지도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솔로몬의 배들이 정확히 어느 항구까지 항해했는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삼 년이라는 기간이 한 번의 왕복 항해에 정확히 삼 년이 걸렸다는 뜻인지, 삼 년마다 정기적으로 물품이 들어왔다는 뜻인지도 구별해야 합니다. 본문은 삼 년에 한 번씩 배들이 물품을 실어 왔다고 말합니다.
동물들을 가리키는 고대 히브리어 명칭 가운데 일부는 정확한 종을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마지막 동물은 번역 전통에 따라 공작 또는 다른 종류의 원숭이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이 먼 지역에서 들여온 귀하고 낯선 동물들을 통해 솔로몬 왕궁의 부와 국제적 교역 범위를 묘사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솔로몬 왕은 부와 지혜에서 세상의 모든 왕보다 뛰어났다.역대하 9:22 · 본디새김
앞에서는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확인했고, 그다음에 엄청난 부가 상세히 묘사되었습니다. 이제 두 가지가 나란히 놓입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는 다시 지혜가 중심으로 돌아옵니다.
세상의 모든 왕이 하나님이 솔로몬의 마음에 준 지혜를 들으려고 그를 만나고자 했다.역대하 9:23 · 본디새김
여기서 ‘세상의 모든 왕’은 솔로몬의 명성이 매우 넓게 퍼졌음을 나타내는 포괄적인 왕실 표현으로 읽어야 합니다. 당시 지구상의 모든 왕이 실제로 예루살렘을 방문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근거는 없습니다.
이것은 스바 여왕의 방문 장면을 더 넓은 규모로 확장합니다. 처음에는 한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시험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이제 많은 왕이 그 지혜를 들으려고 찾아옵니다.
그들은 해마다 여러 물품을 선물로 가져옵니다. 은그릇과 금그릇, 옷과 무기, 향료와 말과 노새가 언급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군사력에 관한 설명에서는 다시 신명기의 왕에 관한 규정이 떠오릅니다.
솔로몬에게는 말과 병거를 위한 마구간 사천 칸과 기병 만 이천 명이 있었다. 그는 이들을 병거 성읍들과 왕이 있는 예루살렘에 배치했다.역대하 9:25 · 본디새김
그리고 28절에서는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말을 들여왔다고 기록합니다. 이 대목에서 신명기 17:16의 경고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이 자신을 위해 말을 많이 늘리지 말아야 하며, 말을 늘리기 위해 백성을 이집트로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셨습니다.
역대하 9장은 솔로몬의 말 수입을 직접 비판하지 않습니다. 이집트에서 말을 들여왔다는 사실만으로 어떤 거래 방식이 있었는지 모두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두 본문을 나란히 읽으면 왕권의 번영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강력한 군사력과 풍요로운 경제가 왕국을 안정시키는 모습입니다. 다른 하나는 왕이 그 군사력과 부를 자신의 궁극적인 의지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입니다.
국가를 다스리는 왕에게 군사력과 경제적 자원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에게 주신 율법은 그 힘이 왕의 자만이나 무제한적인 축적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합니다.
왕은 예루살렘에서 은이 돌처럼 흔해지게 하고, 백향목이 저지대의 돌무화과나무처럼 많아지게 했다.역대하 9:27 · 본디새김
돌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며, 돌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의 저지대에서 자라는 비교적 흔한 나무였습니다. 반면 은과 백향목은 상당한 가치를 지닌 자원이었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이처럼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진 것들을 나란히 놓아 솔로몬 시대의 풍요를 묘사합니다.
그 풍요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된 모습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역대하 1:12에서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지혜와 지식뿐 아니라 부와 재물과 영광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혜와 부가 함께 주어졌다는 사실은 두 가지가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사용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혜는 부를 다스려야 합니다. 부가 지혜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마구간 사천 칸이라는 숫자는 역대하 9장에 나타나는 군사력의 규모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수치입니다. 다만 열왕기상 4:26의 히브리어 본문에는 사만이라는 다른 수치가 나타나므로, 두 기록의 숫자 차이는 별도로 인정해야 합니다. 숫자가 차이 나는 이유가 필사 과정의 변화 때문인지, 서로 다른 집계 기준 때문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상당한 규모의 병거와 기병을 운용했다는 큰 그림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토록 위대한 왕의 마지막은 세 절뿐이다
솔로몬의 지혜와 부, 국제적인 명성과 군사력에 관한 긴 설명이 끝나자 이야기는 갑자기 그의 생애를 마무리합니다.
솔로몬의 나머지 행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언자 나단의 기록과 실로 사람 아히야의 예언과,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 관한 선견자 예도의 환상 기록에 적혀 있지 않은가?역대하 9:29 · 본디새김
솔로몬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예언자들의 관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29절에는 솔로몬의 아들이 아닌 다른 인물, 곧 여로보암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열왕기상 11장에 따르면 여로보암은 이후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과 깊이 관련되는 인물입니다. 역대하 9장은 그 이야기를 아직 들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생애를 정리하는 마지막 부분에 여로보암이 언급되면서, 독자는 솔로몬 시대의 통일 왕국이 앞으로도 아무 변화 없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온 이스라엘을 예루살렘에서 마흔 해 동안 다스렸다.역대하 9:30 · 본디새김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도 마흔 해였습니다(역대상 29:27). 그리고 31절에서는 솔로몬의 죽음을 기록합니다.
솔로몬은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다. 사람들은 그를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에 묻었다.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그를 이어 왕이 되었다.역대하 9:31 · 본디새김
이 짧은 문장은 앞서 묘사된 솔로몬의 엄청난 부와 영광을 생각하면 뜻밖에 담담합니다. 아무리 큰 지혜와 부를 받은 왕이라도 영원히 왕좌에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세대로 넘어갑니다.
조금 더 깊이
나단은 다윗 시대부터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전했고, 열왕기상 1장에서는 솔로몬의 왕위 계승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히야는 실로 출신 예언자로, 열왕기상 11:29–39에서 여로보암에게 이스라엘 왕국이 나뉘게 될 것을 예고합니다. 예도는 역대기에서 왕실의 역사와 관련된 기록을 남긴 선견자로 언급됩니다(역대하 12:15; 13:22). 본문이 말하는 기록들이 정확히 어떤 형태의 문헌이었는지, 오늘날 전해지는 역사서와 어떤 관계였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열왕기상 11장은 솔로몬의 여러 아내와 우상 숭배,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내리신 경고, 그리고 그의 통치 말기에 일어난 대적들의 문제를 상세히 기록합니다. 반면 역대하 9장은 이러한 내용을 직접 서술하지 않고 솔로몬의 지혜와 영광을 소개한 뒤 그의 죽음으로 넘어갑니다. 두 책은 같은 왕의 역사를 서로 다른 강조점으로 구성합니다. 역대기는 성전 건축과 예배 질서의 확립, 다윗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 하나님의 지혜가 솔로몬의 통치 가운데 나타난 모습을 특별히 부각합니다. 따라서 역대하 9장만 읽을 때는 이 장이 실제로 강조하는 하나님의 선물과 왕국의 번영을 충분히 살펴야 합니다. 동시에 정경 전체를 읽을 때에는 열왕기가 제시하는 솔로몬의 실패 역시 지워 버려서는 안 됩니다.
결론 — 금으로 덮인 왕좌에서 내려온 사람
솔로몬이 앉아 있는 왕좌는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신 것은 왕 자신이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백성 가운데 정의와 공의를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솔로몬의 지혜와 부는 놀라운 선물이었지만, 그 선물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는가보다 그가 맡은 백성을 어떻게 다스렸는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화려한 금그릇과 방패들, 상아와 금으로 만든 왕좌는 남았지만, 그것들을 누리던 왕의 시간은 끝났습니다.
이제 상아와 금으로 된 왕좌에는 다른 왕이 앉게 됩니다.
스바 여왕이 바라보았던 솔로몬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왕좌를 보며 깨달았던 질문은 남습니다.
그 자리에 앉은 왕은 누구를 위해 다스릴 것인가?
르호보암이 왕위를 이어받는 마지막 문장은 그 질문을 다음 세대의 이야기로 넘겨줍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