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23장
이 장의 자리 · 10–28장 · 둘로 갈라진 나라
하나님의 집에서 왕이 되다
왕위를 되찾으려면 무엇부터 해야 합니까?
군대를 모아 왕궁을 장악하고, 왕좌에 새 왕을 앉히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역대하 23장에서 여호야다는 전혀 다른 순서로 움직입니다.
이 장의 중심에는 두 집이 있습니다. 하나는 왕궁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아달랴는 왕궁을 지배했지만, 요아스는 하나님의 집에서 보호받았습니다. 이제 요아스가 왕궁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됩니다.
여섯 해의 침묵이 끝나고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다
칠 년째에 여호야다가 용기를 내어 백인대장들을 데려와 그들과 언약을 맺었다. 그들은 여로함의 아들 아사랴, 여호하난의 아들 이스마엘, 오벳의 아들 아사랴, 아다야의 아들 마아세야, 시그리의 아들 엘리사밧이었다.역대하 23:1 · 본디새김
앞 장 마지막에서 요아스는 하나님의 집에 숨어 여섯 해를 지냈습니다. 그동안 아달랴가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칠 년째에 이르러 여호야다가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야다는 여섯 해 동안 숨겨 온 왕자를 이제 공개하려 합니다. 아달랴가 통치하는 상황에서 이는 실패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혼자 행동하지 않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 사건이 익명의 무리에 의해 갑자기 일어난 반란이 아니라, 구체적인 지도자들이 참여한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아직 백성과 왕 사이의 공식적인 언약도, 여호와야훼의 백성이 되겠다는 공동체의 언약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첫 언약은 계획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에 맺어진 결속입니다.
백인대장들은 유다 전역을 다니며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의 가문 우두머리들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데려옵니다. 왕위 회복을 위한 계획이 소수 지도자의 결심에서 공동체적인 행동으로 넓어지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남왕국 유다의 왕위를 회복하는 사건이지만, 역대기 저자는 참여자들을 이스라엘의 가문 지도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역대기에서 이스라엘은 때때로 북왕국만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언약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입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다윗 왕조의 회복을 단순한 유다 왕실의 내부 문제보다 넓은 언약 공동체의 일로 제시합니다. 다만 실제로 북왕국의 모든 지파에서 대표들이 모였다고까지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온 회중이 하나님의 집에서 왕과 언약을 맺었다. 여호야다가 그들에게 말했다. 「보아라,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의 자손들에 관해 말씀하신 대로 왕의 아들이 왕이 될 것이다.」역대하 23:3 · 본디새김
여기서 독특한 사실은 요아스가 아직 공개적으로 왕관을 쓰기 전이라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왕좌에 앉은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 아니라, 왕으로 세워질 왕자와 먼저 언약을 맺습니다.
다윗에게 주어진 왕조의 약속은 사무엘하 7:12–16과 역대상 17:11–14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야다는 바로 그 약속을 근거로 왕의 아들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들에게 행동을 멈추게 하는 이유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근거가 됩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무작정 왕궁으로 달려가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왕을 지키면서도 하나님의 집의 질서를 지키다
여호야다는 모인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합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근무조를 나누어 문과 왕궁, 기초 문을 지키게 합니다. 백성은 여호와야훼의 집 뜰들에 있도록 합니다. 레위 사람들은 무기를 들고 왕을 둘러싸며, 왕이 움직일 때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군사적인 지시 한가운데 뜻밖의 명령이 나옵니다.
「제사장들과 봉사하는 레위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여호와야훼의 집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들은 거룩하므로 들어가도 된다. 모든 백성은 여호와야훼에 대한 의무를 지켜야 한다.」역대하 23:6 · 본디새김
성전에는 백성이 모일 수 있는 뜰이 있었고, 제사장들의 직무를 위해 구별된 안쪽 공간이 있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동일하게 성전 내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5절에서 모든 백성이 여호와야훼의 집 뜰들에 있으라는 명령과, 6절에서 제사장들과 봉사하는 레위 사람들 외에는 집 안에 들어가지 말라는 명령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백성이 모이는 장소와 성전 내부의 거룩한 공간을 구별한 것입니다.
여호야다는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도 여호와야훼의 집을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왕이 마음대로 사용하는 왕실의 부속 시설이 아닙니다. 왕과 제사장과 백성 모두가 그곳에서 지켜야 할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무기를 들고 왕을 사방에서 에워싸야 한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자는 죽여야 한다. 왕이 들어올 때나 나갈 때나 왕과 함께 있어라.」역대하 23:7 · 본디새김
이 명령은 엄격하고 폭력적입니다. 그러나 앞 절과 연결해서 읽으면 성전에 들어오는 모든 백성을 공격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정해진 경계를 침범하고 왕에게 접근하는 사람을 막으려는 비상 경호 지시입니다.
레위 사람들과 온 유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명령한 대로 모두 행했다. 저마다 자기 사람들, 곧 안식일에 근무하러 들어오는 사람들과 근무를 마치고 나가는 사람들을 함께 데려왔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근무조들을 돌려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역대하 23:8 · 본디새김
당시 성전에서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직무가 정해진 순서에 따라 교대되었습니다. 역대상 23–26장은 다윗이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의 직무를 조직하고 문지기들의 일을 배정한 사실을 자세히 기록합니다.
본문은 정확히 몇 명이 모였는지 밝히지 않지만, 두 근무조를 함께 남겼다는 설명은 평소보다 많은 인원이 왕자를 보호하는 데 동원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성전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은 평소 예배와 봉사를 위해 조직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조직이 왕실을 보호하는 일에 동원됩니다.
병행 본문인 열왕기하 11:4–11은 왕의 호위대와 군사 경비를 중심으로 사건을 서술합니다. 반면 역대하 23장은 레위 사람들과 온 유다의 참여를 더욱 전면에 내세웁니다. 같은 사건을 전하면서도 역대기는 왕위 회복에 참여한 예배 공동체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다윗의 무기로 지키고, 증언문과 함께 왕관을 씌우다
여호야다는 백인대장들에게 무기를 나누어 줍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하나님의 집에 있던 다윗 왕의 창들과 두 종류의 방패들을 백인대장들에게 주었다.역대하 23:9 · 본디새김
이 사건의 목적은 다윗 왕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여호야다가 내세운 근거도 다윗의 자손들에 관한 여호와야훼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윗의 무기가 그 후손을 보호하는 데 사용됩니다.
무장을 갖춘 사람들은 성전의 양쪽에 서서 제단과 하나님의 집 주변에서 왕을 에워쌉니다. 이렇게 왕을 지킬 준비가 끝나자 마침내 왕자를 데리고 나옵니다.
그들은 왕의 아들을 데리고 나와 그에게 왕관을 씌우고 증언문을 주어 왕으로 세웠다. 여호야다와 그의 아들들이 그에게 기름을 붓고 말했다. 「왕께서 오래 사시기를.」역대하 23:11 · 본디새김
왕관은 왕의 지위를 보여 줍니다. 증언은 그 왕위가 하나님과의 언약이라는 더 큰 관계 속에 놓여 있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아직 왕궁에 들어가기 전에 이루어집니다.
요아스는 왕좌에 앉았기 때문에 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다윗 왕조의 후손으로 인정받고 기름 부음을 받은 뒤에 왕좌로 향합니다.
왕권의 근거와 왕권이 행사되는 장소가 구별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말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율법이나 언약의 증언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출애굽기 25:16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실 증언을 언약궤 안에 두라고 명령하시며, 출애굽기 31:18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증언의 두 돌판을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이 때문에 요아스에게 주어진 증언을 하나님의 율법이나 왕의 의무를 담은 문서와 연결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17:18–20도 왕이 왕위에 오르면 율법의 사본을 마련하여 평생 읽고 지키도록 명령합니다. 그 목적은 왕이 자기 형제들보다 마음을 높이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역대하 23:11은 그 증언의 구체적인 형태와 내용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율법 두루마리였는지, 왕의 의무를 기록한 문서였는지, 다른 형태의 왕권 표지였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한쪽에서는 기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반역이라고 외치다
아달랴는 이상한 소리를 듣습니다.
사람들이 달리고, 왕을 찬양하는 소리였습니다. 그녀는 소리를 듣고 여호와야훼의 집으로 갑니다.
그가 보니 왕이 입구에 있는 자기 기둥 곁에 서 있었고, 지휘관들과 나팔수들이 왕 곁에 있었다. 그 땅의 모든 백성은 기뻐하며 나팔을 불었고, 노래하는 이들은 악기로 찬양을 이끌고 있었다. 아달랴는 자기 옷을 찢으며 말했다. 「반역이다. 반역이다.」역대하 23:13 · 본디새김
아달랴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이 왕으로 세워졌으므로 반역입니다. 그러나 이 장은 처음부터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의 자손들에 관해 하신 말씀을 근거로 요아스의 즉위를 설명했습니다. 역대기 서술의 관점에서는 아달랴가 왕권을 장악하고 있던 상태가 다윗 왕조의 계승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정치적 반란이 정당하다는 일반적인 주장과는 다릅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 사건의 정당성을 다윗에게 주어진 특별한 언약과 그 왕조의 계승이라는 문맥 안에서 설명합니다.
백성의 기쁨은 아달랴가 죽은 뒤에 처음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요아스가 왕으로 세워지는 순간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감추어져 있던 왕자가 살아 있었고, 그가 왕으로 세워졌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13절의 「기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암무드(עַמּוּד)는 기둥을 뜻하지만, 왕이 서는 정해진 자리나 단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1:14에도 왕이 기둥 곁에 서 있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열왕기하 23:3에서도 요시야가 기둥 곁에 서서 언약을 맺습니다. 따라서 이 장소는 왕이 공식적인 행사에서 서는 자리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기둥 옆에 선 것인지, 마련된 단 위에 선 것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아달랴를 성전 밖으로 끌어내다
여호야다는 군대를 지휘하는 백인대장들에게 명령합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군대를 지휘하는 백인대장들을 불러내어 그들에게 말했다. 「그 여자를 대열 밖으로 끌어내라. 그 여자를 따라오는 자는 칼로 죽여야 한다.」 제사장이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그 여자를 죽이지 마라.」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역대하 23:14 · 본디새김
그녀는 왕궁의 말 문 어귀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본문은 이유를 길게 설명하지 않지만, 앞서 6절에서 강조된 성전의 거룩함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호야다는 왕을 보호하기 위해 성전을 사용하고 있지만, 성전이 피를 흘리는 처형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대목은 역대기에서 거룩함이 단순한 내면의 태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공간과 행동의 질서로 이해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역대기는 이것을 다윗 왕조 회복 과정에서 이루어진 정치적·종교적 심판으로 서술합니다. 그러나 그 서술을 오늘날 다른 신앙이나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명령으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아달랴가 죽음으로써 왕위 회복을 가로막던 직접적인 정치적 장애물은 제거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야다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목표가 단순히 아달랴를 제거하고 요아스를 왕좌에 앉히는 것이었다면, 이제 곧바로 왕궁으로 이동해도 되었을 것입니다. 정치적 권력의 문제가 해결된 뒤에 공동체가 여호와야훼와 맺은 관계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왕을 세우는 일에서 여호와야훼의 백성이 되는 일로
여호야다는 자기와 모든 백성과 왕 사이에 여호와야훼의 백성이 되기로 언약을 맺었다.역대하 23:16 · 본디새김
3절에서는 다윗의 후손을 왕으로 세우는 일이 중심이었습니다. 이제 16절에서는 왕과 백성이 함께 여호와야훼의 백성으로 살아가겠다는 관계가 중심에 놓입니다.
본문은 왕을 백성과 분리된 특별한 존재로 놓지 않습니다. 왕도 백성과 함께 언약에 참여합니다. 왕이 여호와야훼의 백성 밖에 서서 그들을 마음대로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왕 역시 여호와야훼께 속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통치해야 합니다.
왕의 통치가 정당하려면 단순히 다윗의 후손이라는 혈통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왕과 백성이 여호와야훼께 속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열왕기하는 여호와야훼와 왕과 백성 사이의 언약, 그리고 왕과 백성 사이의 언약을 기록합니다. 역대하는 여호야다와 백성과 왕 사이에 맺어진 언약을 기록하면서 그 목적을 여호와야훼의 백성이 되는 것으로 요약합니다. 두 기록 모두 왕권의 회복을 여호와야훼와의 관계 속에 두며, 공동체 전체가 여호와야훼의 백성이 되겠다는 결단을 강조합니다.
이 결단은 곧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모든 백성이 바알의 집으로 가서 그 집을 헐고, 그 제단들과 형상들을 부수었다. 또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제단들 앞에서 죽였다.역대하 23:17 · 본디새김
아합 집안의 영향력이 유다 왕실에 들어온 뒤, 그와 연결된 종교적 관행도 유다에 자리 잡았습니다. 여호람과 아하시야의 통치에서 역대기는 그 영향력을 반복해서 지적했습니다.
이제 여호야다가 이끄는 공동체는 왕실의 정치적 관계만 바꾸지 않습니다. 예배의 방향까지 바꿉니다. 여호와야훼의 백성이 되겠다고 언약하면서 동시에 다른 신을 섬기는 기존 질서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고 본 것입니다.
이 장면을 이해할 때도 바알의 제사장 맛단이 죽었다는 사실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언약적 종교 질서 속에서 우상 숭배를 제거하는 행동과 사람을 처형하는 행동이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개혁은 무엇인가를 부수는 일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무너뜨린 뒤에 무엇을 다시 세울 것인가
여호야다는 다윗이 여호와야훼의 집에 나누어 배치했던 레위 사람 제사장들에게 그 집을 감독하는 일을 맡겼다. 그들이 다윗의 지시에 따라 기뻐하며 노래하면서,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여호와야훼에게 번제를 바치게 하려는 것이었다.역대하 23:18 · 본디새김
잘못된 예배를 제거하는 것만으로 올바른 예배가 저절로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섬기지 않을 것인지 결정하는 일과, 어떻게 여호와야훼를 섬길 것인지 새롭게 정돈하는 일은 구별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께 어떻게 제사해야 하는지를 규정한 율법과 연결됩니다. 레위기와 민수기에는 제사와 제사장들의 직무에 관한 상세한 규정이 나옵니다.
다윗은 성전 봉사자들의 조직과 찬양의 질서를 마련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역대상 23–26장은 다윗이 레위 사람들의 직무를 나누고, 노래하는 사람들과 문지기들을 세우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예배의 회복이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과 다윗이 마련한 성전 봉사의 질서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여호야다가 새롭게 정돈하는 예배는 단지 규정을 정확히 지키는 의식이 아닙니다. 기쁨과 노래가 함께하는 예배입니다. 왕위 회복의 순간에 터져 나온 기쁨이 일회적인 축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 드리는 예배의 일상적인 모습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19절에서는 문지기들을 세워 부정한 사람이 여호와야훼의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합니다. 여기서 부정함은 우선 모세의 율법에 나타나는 의례적 정결의 문제와 관련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부정한 사람이라는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이나 도덕적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표현과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왕자를 보호하기 위해 성전의 문들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성전에서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문지기들을 세웁니다.
같은 문이지만 그 문을 지키는 목적은 달라졌습니다.
여호야다의 개혁은 잘못된 것을 무너뜨리는 데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공동체가 앞으로 어떻게 예배하고 살아갈 것인지를 다시 세울 때 비로소 구체적인 형태를 갖춥니다.
그리고 이제 왕이 들어갈 자리가 준비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본디새김이 옮긴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라는 표현에는 약간의 문법적 여지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하코하님 할레비임으로, 두 명사 사이에 접속사가 없습니다. 이를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로 읽을 수도 있고, 문맥상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함께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절에서 언급되는 번제와 노래는 성전의 여러 직무와 관련되므로, 어느 한 직무만을 말하는 것으로 좁혀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왕궁으로 내려가다
그는 백인대장들과 유력자들과 백성을 다스리는 이들과 그 땅의 모든 백성을 데리고, 왕을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내려오게 했다. 그들은 윗문을 지나 왕궁으로 들어가 왕을 왕좌에 앉혔다.역대하 23:20 · 본디새김
요아스는 이미 11절에서 왕관을 썼고, 기름 부음을 받았으며, 왕으로 선포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왕좌에 앉는 일은 20절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집니다. 그 사이에 아달랴의 죽음, 언약의 체결, 바알의 집의 파괴, 성전 예배의 정비가 있었습니다.
요아스는 왕궁에서 성전으로 가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뒤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집에서 왕으로 세워진 뒤 왕궁으로 갑니다.
왕궁이 왕권의 출발점이 아니라 도착점으로 묘사되는 것입니다.
그 땅의 모든 백성이 기뻐했고 성읍은 평온해졌다. 사람들이 아달랴를 칼로 죽인 뒤였다.역대하 23:21 · 본디새김
「평온해졌다」는 말은 단순히 사람들이 조용해졌다는 뜻을 넘어, 소요와 불안이 가라앉은 상태를 나타냅니다. 아달랴가 죽고 요아스가 왕좌에 앉은 뒤에 예루살렘의 정세가 안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왕의 회복보다 더 깊은 회복
역대하 23장에서 왕권의 회복은 단순히 다윗의 후손이 다시 왕좌를 차지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 왕과 백성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일입니다. 왕이 왕좌에 앉기 전에 왕과 백성이 여호와야훼께 속한 공동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관계에 맞는 예배의 질서를 회복하도록 사건을 배열합니다.
요아스는 마침내 왕궁으로 들어갑니다.
백인대장들과 유력자들과 백성을 다스리는 이들, 그리고 그 땅의 모든 백성이 함께합니다. 그들은 윗문을 지나 왕궁으로 들어가 어린 왕을 왕좌에 앉힙니다. 아달랴가 차지했던 자리에 이제 다윗의 후손이 앉아 있습니다.
성전에서는 다시 번제가 드려지고 노래가 울려 퍼지게 되었습니다. 백성은 기뻐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왕위의 위협과 폭력 아래 놓였던 성읍이 마침내 평온해집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