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23장

이 장의 자리 · 10–28장 · 둘로 갈라진 나라

하나님의 집에서 왕이 되다

왕위를 되찾으려면 무엇부터 해야 합니까?

군대를 모아 왕궁을 장악하고, 왕좌에 새 왕을 앉히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역대하 23장에서 여호야다는 전혀 다른 순서로 움직입니다.

역대하 23장에서 왕권의 회복은 단순히 다윗의 후손이 다시 왕좌를 차지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 왕과 백성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일입니다.

이 장의 중심에는 두 공간이 있습니다. 하나는 왕궁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아달랴는 왕궁을 지배했지만, 요아스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보호받았습니다. 이제 요아스가 왕궁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시작됩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923장 본문 읽기 →

여섯 해의 침묵이 끝나고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다

역대하 23:1–3 본문 →

일곱째 해에 여호야다는 용기를 내어 백 명씩을 이끄는 지휘관들을 불러 자기와 언약을 맺게 했습니다. 그들은 여로함의 아들 아사랴, 여호하난의 아들 이스마엘, 오벳의 아들 아사랴, 아다야의 아들 마아세야, 시그리의 아들 엘리사밧이었습니다.역대하 23:1 · 두루새김

앞 장 마지막에서 요아스는 하나님의 성전에 숨어 여섯 해를 지냈습니다. 그동안 아달랴가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일곱째 해에 이르러 여호야다가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용기를 내어」는 단순히 마음속에 용기가 생겼다는 뜻을 넘어, 어려운 일을 실행하기 위해 자신을 굳게 세우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여호야다는 여섯 해 동안 숨겨 온 왕자를 이제 공개하려 합니다. 아달랴가 통치하는 상황에서 이는 실패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혼자 행동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가 언약을 맺은, 백 명씩을 이끄는 지휘관 다섯 사람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그들의 아버지 이름까지 함께 적혀 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 사건이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리에 의해 갑자기 일어난 반란이 아니라, 구체적인 지도자들이 참여한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첫 번째 언약이 등장합니다. 여호야다는 지휘관들과 언약을 맺습니다. 이 첫 언약은 계획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에 맺어진 결속입니다.

지휘관들은 유다 전역을 다니며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의 가문 우두머리들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데려옵니다. 왕위 회복을 위한 계획이 소수 지도자의 결심에서 공동체의 행동으로 넓어지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남왕국 유다의 왕위를 회복하는 사건이지만, 역대기 저자는 참여자들을 이스라엘의 가문 우두머리들이라고 부릅니다. 역대기에서 이스라엘은 때때로 북왕국만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언약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입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다윗 왕조의 회복을 단순한 유다 왕실의 내부 문제보다 넓은 언약 공동체의 일로 제시합니다. 다만 실제로 북왕국의 모든 지파에서 대표들이 모였다고까지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성전에서 요아스 왕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여호야다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보아라.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의 자손들에 관해 말씀하신 대로, 왕의 아들이 왕이 될 것이다.」역대하 23:3 · 두루새김

여기서 독특한 사실은 요아스가 아직 공개적으로 왕관을 쓰기 전이라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왕좌에 앉은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 아니라, 왕으로 세워질 왕자와 먼저 언약을 맺습니다.

여호야다는 단순히 아달랴보다 요아스가 더 나은 통치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가 내세우는 근거는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의 자손들에 관해 하신 말씀입니다. 다윗에게 주어진 왕조의 약속은 사무엘하 7:12–16과 역대상 17:11–14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약속은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실현되는 운명처럼 취급되지 않습니다. 여호야다는 언약을 믿기 때문에 사람들을 모으고, 행동할 준비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들에게 행동을 멈추게 하는 이유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근거가 됩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무작정 왕궁으로 달려가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왕을 지키면서도 하나님의 집의 질서를 지키다

역대하 23:4–8 본문 →

여호야다는 모인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합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근무조를 나누어 성전 문들과 왕궁, 기초 문을 지키게 합니다. 백성은 여호와야훼의 성전 뜰들에 있도록 합니다. 레위 사람들은 무기를 들고 왕을 둘러싸며, 왕이 움직일 때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군사적인 지시 한가운데 뜻밖의 명령이 나옵니다.

「제사장들과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 사람들만 여호와야훼의 성전 안으로 들어가게 해라. 그들은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들이므로 들어갈 수 있다. 백성은 모두 여호와야훼를 섬길 때 지켜야 할 규정을 따라야 한다.」역대하 23:6 · 두루새김

성전에는 백성이 모일 수 있는 뜰이 있었고, 제사장들의 일을 위해 구별된 안쪽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5절에서 모든 백성이 여호와야훼의 성전 뜰들에 있으라는 명령과, 6절에서 제사장들과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 사람들만 성전 안으로 들어가게 하라는 명령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백성이 모이는 장소와 성전 내부의 거룩한 공간을 구별한 것입니다.

여호야다는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도 여호와야훼의 성전을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왕이 마음대로 사용하는 왕실의 부속 시설이 아닙니다. 왕과 제사장과 백성 모두가 그곳에서 지켜야 할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저마다 무기를 손에 들고 왕을 사방에서 둘러싸라. 허락 없이 성전 안으로 들어오는 자는 죽여야 한다. 왕이 들어올 때나 나갈 때나 함께 있어라.」역대하 23:7 · 두루새김

이 명령은 엄격하고 폭력적입니다. 그러나 앞 절과 연결해서 읽으면 성전에 들어오는 모든 백성을 공격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정해진 경계를 침범하고 왕에게 접근하는 사람을 막으려는 비상 경호 지시입니다.

물론 이러한 조치가 현대의 종교 공동체에 무장한 사람을 배치하거나 침입자를 죽일 권한을 준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고대 유다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특정한 위기와 그에 따른 군사적 조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레위 사람들과 온 유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명령한 대로 모두 했습니다. 지휘관들은 저마다 자기 사람들을 데려왔습니다. 안식일에 근무를 시작하는 사람들과 근무를 마치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근무를 마친 조들도 돌려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역대하 23:8 · 두루새김

당시 성전에서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일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교대되었습니다. 역대상 23–26장은 다윗이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의 일을 조직하고 문지기들의 일을 배정한 사실을 자세히 기록합니다. 본문은 정확히 몇 명이 모였는지 밝히지 않지만, 두 근무조를 함께 남겼다는 설명은 평소보다 많은 인원이 왕자를 보호하는 데 동원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성전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은 평소 예배와 봉사를 위해 조직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조직이 왕실을 보호하는 일에 동원됩니다.

같은 사건을 다루는 열왕기하 11:4–11은 왕의 호위대와 군사 경비를 중심으로 사건을 서술합니다. 반면 역대하 23장은 레위 사람들과 온 유다의 참여를 더욱 앞에 내세웁니다. 같은 사건을 전하면서도 역대기는 왕위 회복에 참여한 예배 공동체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다윗의 무기로 지키고, 증언문과 함께 왕관을 씌우다

역대하 23:9–11 본문 →

여호야다는 백 명씩을 이끄는 지휘관들에게 무기를 나누어 줍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하나님의 성전에 보관되어 있던 다윗 왕의 창들과 두 종류의 방패들을 백 명씩을 이끄는 지휘관들에게 주었습니다.역대하 23:9 · 두루새김

우선 무기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여호야다는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창과 방패를 제공하여 왕자를 보호할 준비를 시킵니다. 다윗의 왕권을 기억하게 하는 물건들이 이제 다윗의 후손을 보호하는 도구가 됩니다.

무장을 갖춘 사람들은 성전의 오른쪽에서 왼쪽까지 제단과 성전 곁에 서서 왕을 사방에서 둘러쌉니다. 이렇게 왕을 지킬 준비가 끝나자 마침내 왕자를 데리고 나옵니다.

그들은 왕의 아들 요아스를 데리고 나와 왕관을 씌우고 증언문을 주어 왕으로 세웠습니다. 여호야다와 그의 아들들은 요아스에게 기름을 붓고 외쳤습니다. 「임금님께서 오래 사시기를 바랍니다!」역대하 23:11 · 두루새김

왕관은 왕의 지위를 보여 줍니다. 증언은 그 왕위가 하나님과의 언약이라는 더 큰 관계 속에 놓여 있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기름 부음은 구약에서 왕을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리에 세우는 중요한 의식입니다. 사무엘은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으며(사무엘상 10:1; 16:13), 솔로몬 역시 왕으로 세워질 때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열왕기상 1:39). 요아스도 이제 그 전통 안에서 왕으로 세워집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아직 왕궁에 들어가기 전에 이루어집니다.

요아스는 왕좌에 앉았기 때문에 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다윗 왕조의 후손으로 인정받고 기름 부음을 받은 뒤에 왕좌로 향합니다.

왕권의 근거와 왕권이 행사되는 장소가 구별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증언」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율법이나 언약의 증언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출애굽기 25:16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실 증언을 언약궤 안에 두라고 명령하시며, 출애굽기 31:18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증언의 두 돌판을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이 때문에 요아스에게 주어진 증언을 하나님의 율법이나 왕의 의무를 담은 문서와 연결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17:18–20도 왕이 왕위에 오르면 율법의 사본을 마련하여 평생 읽고 지키도록 명령합니다. 그 목적은 왕이 자기 형제들보다 마음을 높이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역대하 23:11은 그 증언의 구체적인 형태와 내용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율법 두루마리였는지, 왕의 의무를 기록한 문서였는지, 다른 형태의 왕권 표지였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한쪽에서는 기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반역이라고 외치다

역대하 23:12–13 본문 →

아달랴는 이상한 소리를 듣습니다.

백성이 달려가며 왕을 찬양하는 소리였습니다. 그녀는 소리를 듣고 여호와야훼의 성전으로 갑니다.

아달랴가 보니 왕은 입구에 있는 자기 기둥 곁에 서 있었고, 지휘관들과 나팔 부는 사람들이 왕 곁에 있었습니다. 온 백성은 기뻐하며 나팔을 불었고, 노래하는 사람들은 악기를 연주하며 찬양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아달랴는 자기 옷을 찢으며 외쳤습니다. 「반역이다! 반역이다!」역대하 23:13 · 두루새김

왕을 세우는 일이 이미 공개적인 공동체의 행사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아달랴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이 왕으로 세워졌으므로 반역입니다. 그러나 이 장은 처음부터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의 자손들에 관해 하신 말씀을 근거로 요아스의 즉위를 설명했습니다. 역대기 서술의 관점에서는 아달랴가 왕권을 장악하고 있던 상태가 다윗 왕조의 계승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정치적 반란이 정당하다는 일반적인 주장과는 다릅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 사건의 정당성을 다윗에게 주어진 특별한 언약과 그 왕조의 계승이라는 문맥 안에서 설명합니다.

백성의 기쁨은 아달랴가 죽은 뒤에 처음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요아스가 왕으로 세워지는 순간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감추어져 있던 왕자가 살아 있었고, 그가 왕으로 세워졌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13절의 「기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암무드(⁨עַמּוּד⁩)는 기둥을 뜻하지만, 왕이 서는 정해진 자리나 단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1:14에도 왕이 기둥 곁에 서 있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열왕기하 23:3에서도 요시야가 기둥 곁에 서서 언약을 맺습니다. 따라서 이 장소는 왕이 공식적인 행사에서 서는 자리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기둥 옆에 선 것인지, 마련된 단 위에 선 것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아달랴를 성전 밖으로 끌어내다

역대하 23:14–15 본문 →

여호야다는 군대를 맡은 지휘관들에게 명령합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아달랴를 여호와야훼의 성전에서 죽이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맡은 지휘관들을 불러내어 말했습니다. 「그 여자를 군사들 대열 밖으로 끌어내라. 그 여자를 따라오는 자는 칼로 죽여야 한다.」역대하 23:14 · 두루새김

그녀는 왕궁의 말 문 입구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본문은 이유를 길게 설명하지 않지만, 앞서 6절에서 강조된 성전의 거룩함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호야다는 왕을 보호하기 위해 성전을 사용하고 있지만, 성전이 피를 흘리는 처형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성전의 경계가 다시 한 번 강조되는 것입니다.

누가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있는지, 누가 왕에게 접근할 수 있는지, 누구를 어디로 데려가야 하는지가 세심하게 규정됩니다. 이 대목은 역대기에서 거룩함이 단순한 마음속 태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공간과 행동의 질서로 이해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아달랴가 죽음으로써 왕위 회복을 직접 가로막던 정치적 장애물은 제거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야다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목표가 단순히 아달랴를 제거하고 요아스를 왕좌에 앉히는 것이었다면, 이제 곧바로 왕궁으로 이동해도 되었을 것입니다. 정치적 권력의 문제가 해결된 뒤에 공동체가 여호와야훼와 맺은 관계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왕을 세우는 일에서 여호와야훼의 백성이 되는 일로

역대하 23:16–17 본문 →

여호야다는 자신과 모든 백성과 왕이 함께 여호와야훼의 백성이 되겠다는 언약을 맺었습니다.역대하 23:16 · 두루새김

3절에서는 다윗의 후손을 왕으로 세우는 일이 중심이었습니다. 이제 16절에서는 왕과 백성이 함께 여호와야훼의 백성으로 살아가겠다는 관계가 중심에 놓입니다.

본문은 왕을 백성과 분리된 특별한 존재로 놓지 않습니다. 왕도 백성과 함께 언약에 참여합니다. 왕이 여호와야훼의 백성 밖에 서서 그들을 마음대로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왕 역시 여호와야훼께 속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통치해야 합니다.

왕의 통치가 정당하려면 단순히 다윗의 후손이라는 혈통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왕과 백성이 여호와야훼께 속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결단은 곧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온 백성은 바알의 신전으로 가서 그 건물을 허물고, 제단들과 우상들을 부수었습니다. 또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제단들 앞에서 죽였습니다.역대하 23:17 · 두루새김

아합 집안의 영향력이 유다 왕실에 들어온 뒤, 그와 연결된 종교적 관행도 유다에 자리 잡았습니다. 여호람과 아하시야의 통치에서 역대기는 그 영향력을 반복해서 지적했습니다.

이제 여호야다가 이끄는 공동체는 왕실의 정치적 관계만 바꾸지 않습니다. 예배의 방향까지 바꿉니다. 여호와야훼의 백성이 되겠다고 언약하면서 동시에 다른 신을 섬기는 기존 질서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고 본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언약에 따른 종교 질서 속에서 우상 숭배를 제거하는 행동과 사람을 처형하는 행동이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본문을 적용할 때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은 다른 종교인을 공격하는 행동이 아니라, 본문이 직접 강조하는 언약의 소속과 예배의 방향입니다.

그런데 이 개혁은 무엇인가를 부수는 일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무너뜨린 뒤에 무엇을 다시 세울 것인가

역대하 23:18–19 본문 →

여호야다는 레위 사람인 제사장들에게 여호와야훼의 성전을 관리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이들은 다윗이 성전에서 일하도록 조를 나누어 배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다윗이 정한 대로 기뻐하며 노래하면서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여호와야훼께 번제물을 바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역대하 23:18 · 두루새김

잘못된 예배를 제거하는 것만으로 올바른 예배가 저절로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섬기지 않을 것인지 결정하는 일과, 어떻게 여호와야훼를 섬길 것인지 새롭게 정돈하는 일은 구별됩니다.

여호야다는 두 번째 일을 시작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께 어떻게 제사해야 하는지를 규정한 율법과 연결됩니다. 레위기와 민수기에는 제사와 제사장들의 일에 관한 자세한 규정이 나옵니다. 다윗은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조직과 찬양의 질서를 마련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역대상 23–26장은 다윗이 레위 사람들의 일을 나누고, 노래하는 사람들과 문지기들을 세우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예배의 회복이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과 다윗이 마련한 성전 봉사의 질서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여호야다가 새롭게 정돈하는 예배는 단지 규정을 정확히 지키는 의식이 아닙니다. 기쁨과 노래가 함께하는 예배입니다. 왕위 회복의 순간에 터져 나온 기쁨이 한 번의 축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 드리는 예배의 일상적인 모습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정권은 하루 만에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가 이전에 하던 일을 멈추고 새로운 질서에 따라 살아가려면 그 질서를 실제로 세워야 합니다. 여호야다는 왕을 세우는 데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돌아가라고만 하지 않습니다. 성전에서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시 정합니다.

19절에서는 문지기들을 세워 부정해진 사람이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합니다. 여기서 부정함은 우선 모세의 율법에 나타나는 의례적 정결의 문제와 관련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부정해진 사람이라는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이나 도덕적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표현과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왕자를 보호하기 위해 성전의 문들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성전에서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문지기들을 세웁니다.

같은 문이지만 그 문을 지키는 목적은 달라졌습니다.

왕위 회복을 위한 긴급한 경호 체계가 성전의 일상적인 예배 질서로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두루새김이 옮긴 「레위 사람인 제사장들」이라는 표현에는 문법적으로 달리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하코하님 할레비임으로, 두 명사 사이에 접속사가 없습니다. 두루새김처럼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로 읽을 수도 있고, 문맥상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함께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절에서 언급되는 번제와 노래는 성전의 여러 일과 관련되므로, 어느 한 일만을 말하는 것으로 좁혀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왕궁으로 내려가다

역대하 23:20–21 본문 →

여호야다는 백 명씩을 이끄는 지휘관들과 지위가 높은 사람들과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자들과 온 백성을 데리고, 왕과 함께 여호와야훼의 성전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윗문을 지나 왕궁으로 들어가 왕을 왕좌에 앉혔습니다.역대하 23:20 · 두루새김

요아스는 왕궁에서 성전으로 가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뒤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왕으로 세워진 뒤 왕궁으로 갑니다.

왕궁이 왕권의 출발점이 아니라 도착점으로 묘사되는 것입니다.

여호야다는 처음에 백 명씩을 이끄는 지휘관 다섯 사람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어 레위 사람들과 가문 우두머리들이 모였고, 모인 사람들이 모두 언약에 참여했습니다. 이것은 소수의 지도자가 시작한 행동이 공동체 전체의 참여 속에서 마무리되는 모습입니다.

온 백성은 기뻐했고 성읍은 평온해졌습니다. 사람들이 아달랴를 칼로 죽인 뒤였습니다.역대하 23:21 · 두루새김

「평온해졌습니다」는 말은 단순히 사람들이 조용해졌다는 뜻을 넘어, 소란과 불안이 가라앉은 상태를 나타냅니다. 아달랴가 죽고 요아스가 왕좌에 앉은 뒤에 예루살렘의 상황이 안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기록하는 것은 이 사건이 마무리된 시점의 성읍입니다.

왕의 회복보다 더 깊은 회복

역대하 23:1–21 본문 →

왕이 왕좌에 앉기 전에 왕과 백성이 여호와야훼께 속한 공동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관계에 맞는 예배의 질서를 회복하도록 사건을 배열합니다. 왕좌에 누가 앉는가 하는 문제와 그 왕국이 누구를 섬기는가 하는 문제는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요아스는 마침내 왕궁으로 들어갑니다.

백 명씩을 이끄는 지휘관들과 지위가 높은 사람들과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자들, 그리고 온 백성이 함께합니다. 그들은 윗문을 지나 왕궁으로 들어가 어린 왕을 왕좌에 앉힙니다. 아달랴가 차지했던 자리에 이제 다윗의 후손이 앉아 있습니다.

성전에서는 다시 번제물이 바쳐지고 노래가 울려 퍼지게 되었습니다. 백성은 기뻐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왕위의 위협과 폭력 아래 놓였던 성읍이 마침내 평온해집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