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24장
이 장의 자리 · 10–28장 · 둘로 갈라진 나라
성전을 고친 왕이 그 뜰에서 예언자를 죽이다
요아스는 무너진 성전을 훌륭하게 고친 왕이었습니다. 그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에게 성전 수리를 서두르라고 재촉했고, 헌금을 모으는 방식을 개선했으며, 일꾼들을 고용해 건물을 튼튼하게 세웠습니다. 공사가 끝난 뒤에는 남은 돈으로 예배에 필요한 기구들까지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왕이 훗날 하나님의 성전 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돌로 쳐 죽이게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많은 일을 했던 사람이 어떻게 그 성전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거부하게 되었습니까?
이 장은 성전이 고쳐지는 과정과 왕의 삶이 무너지는 과정을 나란히 보여 줍니다. 건물은 제 모습을 되찾았지만, 그 건물을 고친 왕은 점점 여호와야훼에게서 멀어집니다.
한 왕의 통치를 설명하는 결정적인 조건
요아스는 일곱 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마흔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앞 장에서 그는 아달랴의 학살을 피해 살아남은 어린 왕자였습니다. 여호야다와 여호사브앗의 보호를 받았고, 일곱 살에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했습니다.역대하 24:2 · 두루새김
저자는 단순히 요아스가 평생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라고 말합니다. 문장의 표현만으로도 독자는 여호야다가 죽은 뒤에 무언가 달라질 수 있음을 예상하게 됩니다.
한 왕의 생애를 하나의 평가로만 정리하지 않고, 그가 어떤 시기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구별합니다. 요아스의 통치 전체가 처음부터 악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가 행한 성전 수리는 실제로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오랫동안 옳은 일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마지막까지 같은 길을 걸으리라고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3절에서는 여호야다가 요아스에게 아내 둘을 얻어 주었고, 요아스가 자녀들을 낳았다고 기록합니다. 아달랴의 학살로 왕위 계승이 끊어질 뻔했지만, 이제 요아스에게 아들들과 딸들이 태어났습니다. 위태로웠던 다윗 왕조에 다음 세대가 생겨난 것입니다.
동시에 여호야다의 역할이 왕위를 잇도록 돕는 데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요아스가 왕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도 중요한 보호자이자 조언자였습니다.
왕이 성전의 무너진 곳을 보수하려 하다
그 뒤에 요아스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을 새로 고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역대하 24:4 · 두루새김
완전히 다른 성전을 새로 짓는다는 뜻이 아니라, 손상된 건물을 본래의 상태로 되돌리려는 것입니다.
악한 여자 아달랴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부수었기 때문에 성전을 고쳐야 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거룩하게 바친 물건들도 모두 바알들을 섬기는 데 써 버렸습니다.역대하 24:7 · 두루새김
이 구절에서 성전이 손상된 것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낡아서 생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배경을 고려하면 요아스의 성전 수리는 건축 공사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여호와야훼께 속한 것을 다시 여호와야훼께 돌려놓는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요아스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모아 유다 성읍들에서 해마다 성전을 고칠 돈을 모으도록 명령합니다. 특히 「이 일을 서둘러라」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레위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왜 늦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왕은 여호야다를 불러 직접 묻습니다.
왕은 제사장들의 우두머리인 여호야다를 불러 말했습니다. 「너는 왜 레위 사람들에게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돈을 거두어 오라고 요구하지 않았느냐? 여호와야훼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의 모임이 증언의 천막을 위해 바치도록 정한 돈 말이다.」역대하 24:6 · 두루새김
요아스는 광야에서 증언의 천막을 위해 재물을 드렸던 전통을 예루살렘 성전 수리와 연결합니다. 광야의 성막과 예루살렘 성전은 형태와 시대가 다르지만, 모두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장소라는 점에서 이어집니다.
여기서 요아스는 성전 수리에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는 왕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단순히 공사를 명령한 뒤 결과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일이 늦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책임자를 불러 이유를 묻고, 새로운 방법을 마련합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30:11–16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소를 위해 속전, 곧 자기 생명을 위한 돈을 드리는 규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38:25–28에는 실제로 모인 은이 성막을 만드는 데 사용된 사실이 나옵니다. 다만 역대하 24장에서 내도록 정한 돈이 출애굽기 30장의 속전 규정을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적용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특히 6절의 원문에서는 모세와 이스라엘의 모임이 그 돈을 내도록 정하는 일과 맺는 문법적 관계에도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상자 하나가 공동체의 기쁨을 모으다
요아스는 성전 문 바깥쪽에 상자를 놓게 합니다.
이전에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성읍을 다니며 돈을 모으도록 했지만, 일이 늦어졌습니다. 이제 성전 입구에 상자를 마련하고 사람들이 직접 돈을 가져오게 합니다.
모든 지도자와 백성은 기뻐하며 돈을 가져와 상자에 넣었습니다. 돈 모으는 일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렇게 했습니다.역대하 24:10 · 두루새김
왕이 명령을 내렸지만 공사에 필요한 돈은 왕실의 재산에서만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분명히 모세가 내도록 정한 돈을 가져오라고 널리 알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의무를 지키는 사람들의 반응이 단순한 억지나 두려움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역대상 29:6–9에서도 다윗이 성전 건축을 준비할 때 지도자들과 백성이 기쁜 마음으로 예물을 드립니다. 성전을 위한 재물을 드리는 일이 공동체의 기쁨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두 장면은 닮아 있습니다.
여기서 성전은 왕이 혼자 유지하는 시설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는 장소로 나타납니다.
레위 사람들이 상자를 왕의 관리들에게 가져가 확인을 받습니다. 상자에 돈이 많이 모여 있으면 왕의 기록 담당 관리와 제사장들의 우두머리 밑에서 일하는 관리가 함께 상자를 비웁니다. 그런 다음 다시 원래 자리에 돌려놓습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많은 돈이 모입니다.
요아스와 여호야다는 모인 돈을 공사 담당자들에게 주었습니다. 담당자들은 돌을 다듬는 일꾼들과 나무를 다루는 일꾼들, 철과 청동을 다루는 일꾼들을 고용했습니다.
일꾼들이 일하면서 성전 수리가 차츰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원래 모습대로 고쳐 튼튼하게 세웠습니다.역대하 24:13 · 두루새김
원문에서는 성전이 마치 상처 입은 몸처럼 제 모습을 되찾는다고 읽을 수 있는 표현입니다. 손상되기 전의 구조와 기능을 회복하려는 공사였습니다.
공사를 마친 뒤, 그들은 남은 돈을 왕과 여호야다에게 가져왔습니다. 왕은 그 돈으로 여호와야훼의 성전에서 쓸 기구들을 만들게 했습니다. 성전에서 섬기며 제물을 바치는 데 쓸 기구들과 대접들과 금과 은으로 만든 기구들이었습니다.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여호와야훼의 성전에서는 번제물을 꾸준히 바쳤습니다.역대하 24:14 · 두루새김
성전은 잘 보존된 아름다운 건물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께 제사를 드리고 예배하는 일이 계속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공사는 끝났지만 예배는 계속되어야 했습니다.
2절에서는 요아스가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옳은 일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14절에서는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번제물을 꾸준히 바쳤다고 말합니다. 두 문장 모두 여호야다의 생애를 시간적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 반복은 다음 장면을 준비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하 12:4–16에도 요아스의 성전 수리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기록의 상자 설치 장소와 담당자에 관한 세부 표현은 다릅니다. 열왕기하는 제단 곁에 놓인 상자와 제사장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역대기는 왕의 명령으로 성전 문 바깥에 놓인 상자와 지도자 및 백성의 참여를 강조합니다. 두 본문의 모든 세부 사항을 억지로 하나의 절차로 합칠 필요는 없습니다.
왕이 아닌 사람이 왕들의 무덤에 묻히다
여호야다는 백삼십 살에 죽었다고 기록됩니다.
그는 아달랴의 통치 아래에서 왕자를 보호했고,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는 일을 이끌었으며, 여호와야훼의 백성이 되겠다는 언약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성전의 예배 질서를 회복하고, 요아스의 성전 수리 사업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는 왕이 아니었지만 왕조의 생존과 왕국의 예배에 깊이 관여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여호야다를 다윗 성에 왕들과 함께 묻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좋은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역대하 24:16 · 두루새김
왕들의 무덤에 묻히는 일은 단순히 시신을 묻는 장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왕의 지위가 없었던 사람이라도 왕국 전체에 중요한 도움을 준 사람에게 특별한 영예가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가 죽자 상황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달라집니다.
왕이 누구의 말을 듣느냐에 따라 나라의 방향이 바뀌다
여호야다가 죽은 뒤에 유다의 지도자들이 와서 왕에게 몸을 굽혀 절했습니다. 그때 왕은 그들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역대하 24:17 · 두루새김
저자는 그들이 어떤 말로 왕을 설득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단지 왕이 그들의 말을 받아들였다는 사실과 이어지는 결과를 기록합니다.
왕과 지도자들은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성전을 버리고, 아세라 나무 기둥들과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그들의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분노가 닥쳤습니다.역대하 24:18 · 두루새김
성전 건물이 무너졌다고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앞부분에서 성전은 이미 수리되었고 튼튼하게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고쳐졌지만, 사람들은 그 성전이 가리키는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요아스가 성전을 고쳤다는 업적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업적이 이후에 여호와야훼를 버린 행동까지 정당화하지는 못합니다.
본문은 여기서 지도자들의 영향력을 강조합니다.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요아스가 옳은 일을 했지만, 그가 죽고 다른 지도자들의 말을 받아들이게 되자 통치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 변화에 대해 여호와야훼께서는 즉시 마지막 심판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이 자신에게 돌아오도록 예언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예언자들은 그들에게 경고했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역대하 24:19 · 두루새김
여기서 하나님의 목적은 단순히 죄를 찾아내어 고발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이 돌아오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의 경고는 언약 관계가 아직 회복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기회였습니다.
이것은 역대하 7:14에서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과 연결됩니다. 백성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면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하시며 그 땅을 고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역대하 24장에서도 회복의 가능성은 단지 성전 건물을 수리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 돌아오는 데 있습니다.
이제 이야기의 중심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스가랴를 옷처럼 입다
하나님의 영께서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싸셨습니다. 스가랴는 백성보다 높은 곳에 서서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왜 여호와야훼의 명령들을 어기느냐? 너희는 잘되지 못할 것이다. 너희가 여호와야훼를 버렸으므로 그분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다.』」역대하 24:20 · 두루새김
지도자들은 왕에게 절하며 자신들의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스가랴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일어나 백성에게 말씀을 전합니다.
왕이 듣고 싶어 하는 말과 하나님이 전하게 하시는 말이 서로 충돌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버렸으므로」와 「버리셨다」에 되풀이되는 ‘버리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무 이유 없이 백성을 떠나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언약을 저버린 사람들에게 그들이 선택한 관계의 단절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선언하는 말입니다.
19절에서 이미 여호와야훼께서 예언자들을 보내신 목적이 밝혀졌습니다. 백성을 자신에게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20절의 날카로운 경고는 돌아올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문맥에서 읽어야 합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듣고 돌아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절에서 그들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합니다.
조금 더 깊이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영이 스가랴를 입으셨다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도록 그 영에게 사로잡히고 능력을 받는 모습을 강조합니다. 아사 왕 시대에 하나님의 영이 임한 아사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여호와야훼와 함께하면 여호와야훼도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여러분이 그를 찾으면 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를 버리면 그도 여러분을 버릴 것입니다.」 (역대하 15:2) 아사랴는 조건을 설명했습니다. 스가랴는 그 조건을 어긴 결과를 선언합니다.
고친 성전의 뜰에서 스가랴를 죽이다
그들은 스가랴를 해치려고 함께 모의했습니다. 그리고 왕의 명령에 따라 여호와야훼의 성전 뜰에서 스가랴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역대하 24:21 · 두루새김
여기서 요아스는 단순히 지도자들의 잘못된 행동을 막지 못한 왕이 아닙니다. 스가랴의 죽음에 왕의 명령이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요아스는 하나님의 성전을 고쳤지만, 그 성전에서 자신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역대하 23장에서 여호야다는 아달랴를 여호와야훼의 성전에서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23:14). 아달랴는 성전 밖으로 끌려 나가 처형되었습니다. 그런데 역대하 24장에서 요아스는 스가랴를 바로 여호와야훼의 성전 뜰에서 죽이게 합니다.
여호야다가 지키려 했던 거룩한 장소가 그의 죽음 이후 그 아들이 피 흘리는 장소가 된 것입니다.
요아스 왕은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스가랴는 죽으면서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 일을 보시고 책임을 물으시기를 바랍니다.」역대하 24:22 · 두루새김
여호야다가 요아스에게 베푼 것은 한 번의 도움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요아스의 생명을 지키고 왕으로 세웠으며, 오랜 세월 그의 통치를 도왔습니다.
스가랴는 왕에게 직접 복수할 힘이 없었습니다. 백성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왕은 그의 죽음을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스가랴는 마지막 판단을 여호와야훼께 맡깁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스가랴는 그 일이 하나님의 눈에 감추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이야기는 인간의 배신과 하나님의 판단 사이에 멈추어 섭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은혜」로 옮긴 히브리어는 헤세드(חֶסֶד)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친절을 넘어 관계 안에서 베푸는 신실한 사랑과 호의, 충실한 도움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역대하 16:7–10에서 선견자 하나니는 아사가 여호와야훼보다 아람 왕을 의지했다고 꾸짖었습니다. 아사는 그 말씀을 듣고 돌이키기보다 선견자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없애려는 행동이 왕들의 이야기 속에서 반복되는 것입니다.
적은 군대가 많은 군대를 무너뜨리다
아람 군대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들어옵니다.
그들은 백성의 지도자들을 모두 죽이고, 빼앗은 물건들을 다마스쿠스 왕에게 보냅니다. 여호야다가 죽은 뒤 요아스를 찾아와 절하고 그에게 조언했던 사람들이 유다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24:17). 그들의 말을 받아들인 뒤 왕과 지도자들은 여호와야훼의 성전을 버렸습니다.
본문은 17절에 등장한 지도자들과 23절에 죽임당한 지도자들을 한 사람씩 짝지어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같은 지도층이 앞에서는 왕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세력으로, 뒤에서는 적군의 공격으로 무너지는 대상으로 등장합니다.
그들의 권세는 왕을 움직일 수 있었지만, 외부의 공격에서 그들을 보호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람 군대는 적은 수의 군사로 쳐들어왔지만, 여호와야훼께서는 아주 큰 유다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람 군대는 요아스에게 벌을 내렸습니다.역대하 24:24 · 두루새김
역대기 저자는 그 이유를 군사 전략이나 무기의 차이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서 스가랴가 선포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를 버렸고, 여호와야훼께서도 그들을 버리셨습니다.
여호사밧 시대에는 유다가 큰 연합군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여호사밧은 두려워하며 여호와야훼를 찾았고,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20:3–24). 그런데 요아스 시대에는 반대의 일이 벌어집니다. 유다에 많은 군사가 있었지만 적은 수의 아람 군대에게 패합니다.
역대기 저자는 유다의 안전이 단지 군사적 힘에 달려 있지 않으며, 여호와야훼와의 관계가 그 왕국의 운명에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를 모든 시대의 전쟁 결과에 적용하여 승리한 쪽은 하나님의 편이고 패배한 쪽은 죄를 지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역대하 24장은 특별히 요아스와 유다의 불순종, 예언자들의 경고, 스가랴의 죽음, 아람 군대의 침략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스가랴가 죽으면서 여호와야훼께 책임을 물어 달라고 기도한 뒤, 본문은 아람 군대가 요아스에게 「벌을 내렸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요아스의 죽음은 아람 군대의 손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언자를 죽이려고 공모한 왕이 신하들의 공모로 죽다
아람 군대는 요아스를 몹시 병든 상태로 남겨 두고 떠납니다.
아람 군대는 요아스를 몹시 병든 상태로 남겨 두고 떠났습니다. 그러자 요아스의 신하들이 그를 해치려고 함께 모의했습니다.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신하들은 침대에 누워 있던 요아스를 죽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다윗 성에 묻었지만, 왕들의 무덤에는 묻지 않았습니다.역대하 24:25 · 두루새김
처음에는 왕의 명령을 받아 사람들이 예언자를 죽이려고 함께 모의했습니다. 이제는 왕의 신하들이 왕을 죽이려고 함께 모의합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기 위한 모의를 승인했던 왕이 마침내 자신을 죽이려는 모의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이 대조가 신하들의 살해 행위 자체를 하나님이 직접 명령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24절은 아람 군대의 공격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25절은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아들들을 죽였기 때문에 신하들이 모의했다고 설명합니다. 두 사건은 이어지지만,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각 사건에 직접 붙인 설명은 구분해야 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생명을 지켜 주었기에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죽을 때는 자신의 신하들이 그를 죽입니다.
그가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왔던 여호야다의 집안을 배신했고, 마지막에는 그 자신이 왕궁 안에서 배신당합니다.
26절에서는 요아스를 해치려고 모의한 신하들의 이름과 어머니의 출신이 기록됩니다. 사밧의 어머니 시므앗은 암몬 여자였고, 여호사바드의 어머니 시므릿은 모압 여자였습니다. 이들의 어머니가 다른 민족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밝혀져 있지만, 그 출신 때문에 왕을 죽였다고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암몬이나 모압 사람들의 성품에 관한 판단으로 확대할 수 없습니다.
27절은 요아스에 관한 다른 일들이 『왕들의 책』을 풀어 쓴 기록에 남아 있다고 언급한 뒤, 그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왕은 죽었지만 왕위 계승은 이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앞에서는 스가랴 한 사람의 죽음이 기록되었는데, 여기서는 여호야다의 「아들들」이라는 복수 표현이 사용됩니다. 본문은 스가랴 외에 다른 아들들도 죽었다고 직접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복수형이 여러 아들의 죽음을 가리키는지, 집안 전체에 대한 표현인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성전을 회복한 사람에게 더 중요했던 것은 무엇인가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성전을 위한 일을 하는 것과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일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고 지도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그는 그 조언이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지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잘못을 꾸짖는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고 그를 죽이도록 명령했습니다.
성전 건물을 고칠 때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보려 했던 왕이, 자신의 통치가 잘못되었음을 알려 주는 말씀 앞에서는 귀를 닫은 것입니다.
한 사람은 왕을 살렸고, 왕조를 지켰으며, 성전의 예배를 회복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그 도움을 받아 왕이 되었고, 성전을 고쳤지만, 마침내 그 사람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여호야다는 왕들의 무덤에 묻혔습니다.
요아스는 다윗 성에 묻혔지만 왕들의 무덤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회복했던 왕의 이야기는, 결국 그 성전을 위해 살아간 제사장이 왕보다 더 큰 영예를 받았다는 사실로 마무리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