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25장

이 장의 자리 · 10–28장 · 둘로 갈라진 나라

말씀을 듣고 이긴 왕, 듣지 않고 무너지다

아마샤는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에게서 뜻밖의 명령을 듣습니다. 이미 많은 돈을 주고 고용한 군대를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는 돈이 아까웠지만 결국 말씀을 따릅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그런데 승리하고 돌아온 아마샤는 이번에도 예언자를 만납니다. 예언자는 왕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마샤가 그의 말을 끊어 버립니다. 말을 멈추지 않으면 맞을 것이라고 위협하기까지 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자신의 계획을 바꾸었던 왕이, 나중에는 자신의 계획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그러나 이 장을 단순히 순종하면 승리하고 불순종하면 패배한다는 공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첫 번째 전쟁의 승리 속에서도 끔찍한 살육이 벌어지고, 왕이 돌려보낸 병사들은 유다를 습격합니다. 아마샤의 선택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순하지 않습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825장 본문 읽기 →

옳은 일을 했지만 온전한 마음은 아니었다

역대하 25:1–4 본문 →

아마샤는 스물다섯 살에 왕이 되어 스물아홉 해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의 아버지 요아스는 신하들이 함께 꾸민 일로 살해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마샤는 아버지가 살해된 왕실을 물려받은 셈입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했지만,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역대하 25:2 · 두루새김

역대기에서 온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여호와야훼를 향한 충실하고 나뉘지 않은 태도와 관련됩니다. 역대하 16:9에서는 여호와야훼의 눈이 온 땅을 두루 살피며 자신을 향해 마음이 온전한 사람들을 위해 힘을 나타내신다고 말합니다. 역대하 19:9에서는 여호사밧이 재판관들에게 여호와야훼를 경외하고 충실하게, 온전한 마음으로 일하라고 명령합니다.

그에게는 실제로 순종한 일이 있었지만, 그 순종이 삶 전체를 한결같이 이끌지는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이어지는 사건은 그가 처음에 어떤 점에서 옳은 일을 했는지 보여 줍니다.

아마샤는 왕으로서 지위가 굳어지자 아버지를 살해한 신하들을 죽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아들들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책에 적힌 율법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아버지를 자식의 죄 때문에 죽여서는 안 되고, 자식을 아버지의 죄 때문에 죽여서도 안 된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벌할 때에는 그 사람 자신의 죄만을 이유로 삼아야 한다.」역대하 25:4 · 두루새김

이 말씀은 신명기 24:16에 나오는 규정입니다. 고대에 왕의 자리를 둘러싸고 권력을 다툴 때에는 반역자를 제거할 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 함께 처벌하여 보복할 가능성을 없애려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습니다.

왕은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그들의 자녀들까지 같은 죄의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신명기 24:16이 말하는 법적 책임의 원칙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행동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그 죄의 책임을 떠넘겨 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한 왕조의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변화도 보입니다. 앞선 여호람은 왕으로서 지위를 굳힌 뒤 자신의 형제들을 죽였습니다(21:4). 그러나 아마샤는 왕으로서 지위가 굳어졌을 때 살해범들의 자녀들까지 죽이지 않고 율법에 정해진 경계를 지켰습니다.

아마샤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지불한 돈을 포기할 수 있는가

역대하 25:5–10 본문 →

아마샤는 유다와 베냐민의 군대를 조직합니다.

스무 살 이상으로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을 조사하니 삼십만 명이었습니다. 그는 여기에 북이스라엘에서 용맹한 군사 십만 명을 더 고용합니다. 그 대가로 은 백 달란트를 지급합니다.

그런데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임금님, 이스라엘 군대가 임금님과 함께 전쟁에 나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 곧 에브라임의 모든 자손과 함께하지 않으십니다.」역대하 25:7 · 두루새김

역대기에서 북왕국의 군사적 도움을 의지하는 일은 이전에도 문제로 등장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아합과 동맹하여 전쟁에 나섰다가 예언자에게 악한 자를 도왔다는 책망을 들었습니다(역대하 19:2). 아사도 어려운 상황에서 여호와야훼를 의지하기보다 외국 왕의 군사적 도움을 구했다는 책망을 받았습니다(16:7–9).

여기서 「이스라엘, 곧 에브라임의 모든 자손」이라는 표현은 북왕국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을 북쪽 지파 출신의 모든 개인에게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하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넓혀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언자는 지금 아마샤가 고용한 북왕국의 군대를 전쟁에 데려가려는 결정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과 함께 나아가시겠다면, 힘을 내어 싸워 보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임금님을 적 앞에서 쓰러뜨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도우실 능력도, 쓰러뜨리실 능력도 있습니다.」역대하 25:8 · 두루새김

마치 왕에게 용감하게 싸워 보라고 권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앞뒤 문맥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나가지 말라는 명령을 무시한다면 아무리 용감하게 싸워도 패배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그런데 이 엄중한 말씀을 들은 아마샤의 첫 번째 질문은 뜻밖에도 돈에 관한 것입니다.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이스라엘 부대에 준 은 100달란트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의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임금님께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주실 수 있습니다.」역대하 25:9 · 두루새김

아마샤는 하나님의 명령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명령을 따르면 생기는 손실이 마음에 걸린 것입니다. 이것은 순종의 어려움을 막연한 원칙이 아니라 실제로 치러야 하는 비용의 문제로 드러냅니다.

예언자는 반드시 은 백 달란트가 두 배로 돌아온다거나, 전쟁에서 그 이상의 전리품을 얻게 된다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주실 능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아마샤는 결국 고용한 병사들을 돌려보냅니다.

자신의 군사 수를 줄이고 이미 지불한 돈을 포기하면서까지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10절은 이 순종이 곧바로 평안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돌려보낸 병사들은 몹시 화를 냅니다. 본문은 그들이 왜 그렇게 분노했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전투에 참여할 기회를 잃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모욕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전리품을 얻을 기대가 사라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것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두 방향으로 나뉩니다. 아마샤는 에돔을 향해 전쟁에 나가고, 돌려보낸 북이스라엘 병사들은 돌아가는 길에 유다를 공격합니다.

전쟁에서 이겼지만 그 승리에는 끔찍한 장면이 있었다

역대하 25:11–13 본문 →

아마샤는 힘을 내어 자기 군대를 이끌고 소금 골짜기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세일 사람 1만 명을 쳐 죽였습니다.역대하 25:11 · 두루새김

아마샤는 북이스라엘의 지원군 없이 전쟁에 나섭니다.

여기서 「힘을 내어」라는 표현은 앞서 하나님의 사람이 사용한 말과 연결됩니다. 예언자는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싸운다면 아무리 힘을 내어도 쓰러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역대하는 그 전쟁에 관해 더 끔찍한 장면을 덧붙입니다.

유다 군사들은 또 1만 명을 산 채로 사로잡았습니다. 그들을 바위 벼랑 꼭대기로 끌고 가 아래로 내던져 모두 죽였습니다.역대하 25:12 · 두루새김

본문은 이 두 사건을 구별합니다. 뒤에 나오는 사람들은 전투 중에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포로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자는 아마샤가 승리한 사실과 포로들을 죽인 사실을 기록하지만, 포로들을 벼랑에서 던져 죽이는 행동을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 행위 자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셨다고 평가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승리가 하나님의 도움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유로 포로 학살까지 옳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13절에서는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납니다.

아마샤가 돌려보낸 북이스라엘 병사들이 유다의 성읍들을 습격합니다. 그들은 삼천 명을 죽이고 많은 물건을 빼앗습니다. 앞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돌려보낸 병사들이 이제 유다 사람들을 해친 것입니다.

아마샤는 에돔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승리의 기록에는 많은 사람의 죽음과 유다의 피해가 함께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전쟁에서 돌아온 뒤, 이야기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소금 골짜기는 사해 남쪽의 에돔과 관련된 지역으로 이해됩니다. 에돔은 과거 유다의 지배 아래 있다가 여호람 시대에 독립했습니다(21:8–10). 열왕기하 14:7도 아마샤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죽이고 셀라를 점령했다고 기록합니다. 「바위 벼랑」은 열왕기하 14:7에 등장하는 에돔의 성읍 셀라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지만, 역대하 25:12만으로 그 장소가 정확히 어디였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13절의 「사마리아에서 벧호론에 이르는 유다의 성읍들」이라는 지리적 표현은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사마리아가 북왕국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이것을 습격당한 유다 성읍들의 단순한 범위로 읽으면 지리적인 어려움이 생깁니다. 병사들이 이동한 경로를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지만, 원문은 이를 분명히 구별해 주지 않습니다.

자신이 이긴 민족의 신들을 섬기는 왕

역대하 25:14–16 본문 →

아마샤는 에돔 사람들을 무찌르고 돌아온 뒤, 세일 사람들의 우상들을 가져와 자기 신들로 세웠습니다. 그는 그 앞에 엎드려 절하고 제물을 태워 바치곤 했습니다.역대하 25:14 · 두루새김

전쟁에 이긴 왕이 패배한 민족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아마샤에게 분노하여 예언자를 보내셨습니다. 예언자가 말했습니다. 「그 백성의 신들은 자기 백성조차 임금님의 손에서 구해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 신들을 찾으셨습니까?」역대하 25:15 · 두루새김

예언자는 신들의 능력을 막연하게 논쟁하지 않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벌어진 전쟁의 결과를 근거로 왕의 행동이 얼마나 모순되는지 지적합니다.

그런데 아마샤의 반응은 더욱 심각합니다.

예언자가 말하고 있을 때 왕이 끼어들었습니다. 「우리가 너를 왕의 조언자로 세웠느냐? 그만두어라. 왜 매를 맞으려 하느냐?」 예언자는 이렇게 대답한 뒤 말을 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임금님을 멸망시키기로 정하셨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임금님께서 이런 일을 하시고 제 조언을 듣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역대하 25:16 · 두루새김

자신이 공식적으로 임명한 조언자가 아니라면 왕에게 이런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왕이 임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보내신 사람이었습니다.

아마샤는 왕으로서 명령할 권한을 내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입을 막으려 합니다. 왕이 자신을 향한 책망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여기서 예언자는 단순히 다른 신들을 섬긴 행위만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왕이 자신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도 심판의 이유로 제시합니다.

여호와야훼는 아마샤가 군사를 고용했을 때 그를 곧바로 쓰러뜨리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경고하셨습니다. 아마샤가 에돔의 신들을 섬겼을 때도 곧바로 전쟁에서 패하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먼저 예언자를 보내 그 행동이 얼마나 모순되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승리한 나라가 패배한 나라의 신상이나 종교 의식에 쓰는 물건을 전리품으로 가져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다른 민족의 신들을 정치적·종교적 이유로 받아들이는 일도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반적인 관습을 근거로 아마샤가 어떤 생각으로 에돔의 신들을 섬겼는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조언을 거절하고 다른 조언을 구하다

역대하 25:17–20 본문 →

유다 왕 아마샤는 의논한 뒤, 예후의 손자이자 여호아하스의 아들인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말을 전했습니다. 「나와 한번 맞붙자.」역대하 25:17 · 두루새김

자신의 행동을 책망하는 예언자의 말은 거부했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의논했습니다. 17절은 그가 누구와 의논했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조언자들이 아마샤를 부추겼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문맥상 두 왕이 전쟁터에서 맞서자는 도전입니다. 여기서 아마샤가 왜 북이스라엘에 싸움을 걸었는지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습니다. 앞서 북이스라엘의 고용된 군사들이 유다를 습격했으므로 그 사건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에돔에 대한 승리로 자신감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주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대답은 전쟁 준비가 아니라 짧은 비유입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답을 보냈습니다. 「레바논의 가시나무가 레바논의 백향목에게 말을 전했다. 『네 딸을 내 아들의 아내로 다오.』 그런데 레바논의 들짐승 한 마리가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다.」역대하 25:18 · 두루새김

백향목은 레바논을 대표하는 높고 웅장한 나무입니다. 반면 가시나무는 작고 쉽게 짓밟힐 수 있는 식물입니다. 고대 왕실에서 혼인은 서로의 지위와 정치적 관계를 나타내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비유 속 가시나무는 백향목과 자신이 대등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가시나무가 스스로 생각하는 지위와 실제로 가진 힘 사이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너는 『내가 에돔을 무찔렀다』라고 하며 우쭐해져서 명예를 얻으려 한다. 이제 네 집에 가만히 있어라. 왜 재앙을 불러들여 너도 쓰러지고 유다도 너와 함께 쓰러지게 하려 하느냐?」역대하 25:19 · 두루새김

여기서 「네 집에 가만히 있어라」는 단순히 안전을 위한 소극적인 충고가 아닙니다. 전쟁을 통해 더 큰 명예를 얻으려 하지 말고 이미 거둔 승리에 만족하라는 말입니다.

왕이 자신의 명예를 위해 전쟁을 시작해도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왕 혼자만이 아닙니다. 그의 백성도 함께 피해를 입습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듣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셨습니다. 그들이 에돔의 신들을 찾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적의 손에 넘기려 하셨습니다.역대하 25:20 · 두루새김

20절은 이 선택들이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아마샤는 자신의 승리를 기억했지만, 승리에 앞서 자신이 왜 군대를 돌려보냈는지는 행동으로 이어 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도우실 능력도 쓰러뜨리실 능력도 있다는 말씀을 들었던 왕이었습니다.

이제 그 말씀의 뒷부분을 경험하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16절의 「조언자」와 「조언」, 17절의 「의논한 뒤」에는 모두 야아츠라는 어근이 사용됩니다. 16절에서는 예언자가 왕에게 자신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어 17절에서는 왕이 의논한 뒤 북이스라엘 왕에게 전쟁을 청합니다. 20절에서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을 분명하게 밝히지만, 그 심판이 인간의 마음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했는지를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아마샤에게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서 아마샤는 스스로 에돔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야훼가 예언자를 보내셨지만 그 말을 거절했습니다. 이후 북이스라엘 왕의 경고도 듣지 않았습니다.

얼굴을 마주 보자던 왕이 포로가 되다

역대하 25:21–24 본문 →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군대를 이끌고 올라옵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왔습니다. 그와 유다 왕 아마샤는 유다에 속한 벳세메스에서 맞붙었습니다.역대하 25:21 · 두루새김

아마샤가 원했던 대결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가 기대했던 것과 다릅니다.

유다 군대는 이스라엘 군대에게 패배했고, 군사들은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달아났습니다.역대하 25:22 · 두루새김

전투의 과정은 길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에돔과의 전쟁에서는 군대 조직, 고용된 군사들의 문제, 예언자의 경고, 포로들의 처형까지 자세하게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는 실제 전투를 설명하는 내용이 한 절에 불과합니다.

저자의 관심은 싸우는 방법보다 결과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벳세메스에서 유다 왕 아마샤를 붙잡았습니다. 아마샤는 여호아하스의 손자이자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그를 예루살렘으로 데려와, 에브라임 문에서 모퉁이 문까지 예루살렘 성벽 400큐빗을 허물었습니다.역대하 25:23 · 두루새김

그는 에돔을 정복하고 많은 포로를 잡았던 왕이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다른 왕에게 붙잡혀 자기 수도로 끌려옵니다.

성벽은 성읍을 보호하는 시설이었습니다. 그 성벽을 허물었다는 것은 예루살렘이 적을 막아 낼 힘을 약화시키는 행동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오벳에돔이 맡고 있던 금과 은과 기구들을 모두 빼앗고, 왕궁의 보물도 가져갔습니다. 또 인질들을 데리고 사마리아로 돌아갔습니다.역대하 25:24 · 두루새김

요아스는 손상된 성전을 복구했고, 백성이 드린 재물로 성전에서 사용할 기구들을 마련했습니다(24:8–14). 그러나 아마샤 시대에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재물이 빼앗깁니다. 아버지 시대에 복구된 성전의 질서가 아들의 시대에 다시 위협받는 것입니다.

아마샤가 더 큰 명예를 얻으려고 시작한 전쟁은 결국 그가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까지 잃게 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17절과 21절의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두 구절에 같은 라아 파님, 곧 ‘얼굴을 보다’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두루새김은 전쟁을 청하는 말과 그 전쟁이 벌어진 장면을 모두 ‘맞붙다’로 옮겼습니다. 역대상 26:4–8에는 성전의 문지기와 봉사에 관련된 오벳에돔의 집안이 등장합니다. 역대하 25:24의 오벳에돔을 바로 그 시대의 인물과 같은 사람으로 볼 수는 없지만, 성전의 보물 관리와 관련된 이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금과 은과 기구들을 「오벳에돔이 맡고 있던」 것으로 풀어 옮겼습니다. 다만 원문은 그 물건들이 오벳에돔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패배 후에도 오래 살았지만 끝내 공모로 죽다

역대하 25:25–28 본문 →

23–24절의 사건만 보면 아마샤의 통치가 곧바로 끝났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요아스의 아들인 유다 왕 아마샤는 여호아하스의 아들인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죽은 뒤에도 15년을 더 살았습니다.역대하 25:25 · 두루새김

본문은 그 십오 년 동안 아마샤가 어떤 정치적 지위에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가 실제로 권력을 어느 정도 유지했는지, 그동안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의 죽음은 다른 사람들이 함께 꾸민 일로 이루어집니다.

아마샤가 더는 여호와야훼를 따르지 않게 된 때부터,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그를 해치려고 모의했습니다. 아마샤는 라기스로 달아났지만, 그들은 라기스까지 사람들을 보내 그곳에서 그를 죽였습니다.역대하 25:27 · 두루새김

아마샤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은 전쟁에서 패한 순간보다 먼저 있었습니다. 그가 에돔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하고,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을 때 이미 그의 통치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마샤의 시신을 말들에 실어 옮겨 와, 유다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묻었습니다.역대하 25:28 · 두루새김

아마샤는 승리한 왕으로 전쟁터에서 돌아올 때와 달리, 마지막에는 죽은 몸으로 돌아옵니다.

조금 더 깊이

요아스는 다윗 성에 묻혔지만 왕들의 무덤에는 묻히지 못했다고 기록되었습니다(24:25). 아마샤에 대해서는 조상들과 함께 묻혔다고 기록합니다. 본문은 왕들의 무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그의 장례 장소를 그보다 더 구체적으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남는 질문

역대하 25:1–28 본문 →

아마샤가 승리할 때와 패배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아마샤의 태도였습니다. 그가 행한 순종은 실제로 순종이었습니다. 그러나 특정한 시기의 순종이 이후의 모든 선택을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뒤에도 살아남았지만 결국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그를 해치려고 모의하자 라기스로 달아났습니다. 그곳에서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왕을 말들에 실어 조상들이 묻힌 곳으로 데려왔습니다.

한때 다른 왕에게 「나와 한번 맞붙자」라고 당당하게 전갈을 보냈던 왕은, 마지막에는 다른 사람들의 손에 실려 돌아왔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