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25장

이 장의 자리 · 10–28장 · 둘로 갈라진 나라

말씀을 듣고 이긴 왕, 듣지 않고 무너지다

아마샤는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에게서 뜻밖의 명령을 듣습니다. 이미 많은 돈을 주고 고용한 군대를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는 돈이 아까웠지만 결국 말씀을 따릅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그런데 승리하고 돌아온 아마샤는 이번에도 예언자를 만납니다. 예언자는 왕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마샤가 그의 말을 끊어 버립니다. 말하기를 멈추지 않으면 맞을 것이라고 위협하기까지 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자신의 계획을 바꾸었던 왕이, 나중에는 자신의 계획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전쟁에서는 아마샤가 전력을 줄이고도 이깁니다. 두 번째 전쟁에서는 자신감에 차서 싸움을 걸었다가 참패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그러나 이 장을 단순히 순종하면 승리하고 불순종하면 패배한다는 공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첫 번째 전쟁의 승리 속에서도 끔찍한 살육이 벌어지고, 왕이 돌려보낸 병사들은 유다를 습격합니다. 아마샤의 선택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순하지 않습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825장 본문 읽기 →

옳은 일을 했지만 온전한 마음은 아니었다

역대하 25:1–4 본문 →

아마샤는 스물다섯 살에 왕이 되어 스물아홉 해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의 아버지 요아스는 신하들의 공모로 살해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마샤는 아버지가 살해된 왕실을 물려받은 셈입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눈에 옳은 일을 했지만, 온전한 마음으로 하지는 않았다.역대하 25:2 · 본디새김

이 표현을 죄를 한 번도 짓지 않는 완벽한 마음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역대기에서 온전한 마음은 여호와야훼를 향한 충실하고 나뉘지 않은 태도와 관련됩니다.

역대하 16:9에서는 여호와야훼의 눈이 온 땅을 두루 살피며 자신을 향해 마음이 온전한 사람들을 위해 힘을 나타내신다고 말합니다. 역대하 19:9에서는 여호사밧이 재판관들에게 여호와야훼를 경외하고 충실하게, 온전한 마음으로 일하라고 명령합니다.

그에게는 실제적인 순종이 있었지만, 그 순종이 삶 전체를 일관되게 이끌지는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아마샤는 왕권이 확고해지자 아버지를 살해한 신하들을 처형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아들들은 죽이지 않았다. 모세의 책에 있는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여호와야훼는 이렇게 명령했다. 「아버지들은 자식들 때문에 죽어서는 안 되고, 자식들은 아버지들 때문에 죽어서는 안 된다. 오직 각 사람은 자기 죄 때문에 죽어야 한다.」역대하 25:4 · 본디새김

이 말씀은 신명기 24:16에 나오는 규정입니다. 고대 왕권을 둘러싼 권력 투쟁에서는 반역자를 제거할 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 함께 처벌하여 보복의 가능성을 없애려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습니다.

왕은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그들의 자녀들까지 같은 죄의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신명기 24:16이 말하는 사법적 책임의 원칙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행동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형사적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한 왕조의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변화도 보입니다. 앞선 여호람은 왕권을 굳힌 뒤 자신의 형제들을 죽였습니다(21:4). 그러나 아마샤는 왕권이 굳어졌을 때 살해범들의 자녀들까지 죽이지 않고 율법에 정해진 경계를 지켰습니다.

아마샤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이 장면에는 슬픈 역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자녀들에게는 율법이 정한 생명의 경계를 지켰던 왕이, 뒤에 전쟁 포로들에게는 무자비한 살육을 행하는 장면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아마샤의 문제는 처음부터 무엇이 옳은지 전혀 몰랐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알고 있던 옳은 기준이 모든 상황에서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이미 지불한 돈을 포기할 수 있는가

역대하 25:5–10 본문 →

아마샤는 유다와 베냐민의 군대를 조직합니다.

스무 살 이상으로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을 조사하니 삼십만 명이었습니다. 그는 여기에 북이스라엘에서 용맹한 전사 십만 명을 더 고용합니다. 그 대가로 은 백 달란트를 지급합니다.

그런데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그에게 와서 말했다. 「왕이시여, 이스라엘 군대가 왕과 함께 나아가게 하지 마십시오.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 곧 에브라임의 모든 자손과 함께하지 않으십니다.」역대하 25:7 · 본디새김

역대기에서 북왕국의 군사적 도움을 의지하는 일은 이전에도 문제로 등장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아합과 동맹하여 전쟁에 나섰다가 예언자에게 악한 자를 도왔다는 책망을 들었습니다(역대하 19:2). 아사도 어려운 상황에서 여호와야훼를 의지하기보다 외국 왕의 군사적 도움을 구했다는 책망을 받았습니다(16:7–9).

여기서 「이스라엘, 곧 에브라임의 모든 자손」이라는 표현은 북왕국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을 북쪽 지파 출신의 모든 개인에게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하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예언자는 지금 아마샤가 고용한 북왕국의 군대를 전쟁에 동원하려는 결정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왕께서 나아가시겠다면, 행동에 나서고 힘을 내어 싸워 보십시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왕을 원수 앞에 넘어뜨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도울 힘도 넘어뜨릴 힘도 있습니다.」역대하 25:8 · 본디새김

마치 왕에게 용감하게 싸워 보라고 권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앞뒤 문맥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나가지 말라는 명령을 무시한다면 아무리 용감하게 싸워도 패배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전쟁의 결과가 단지 병력의 크기나 인간의 용맹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엄중한 말씀을 들은 아마샤의 첫 번째 질문은 뜻밖에도 돈에 관한 것입니다.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했다. 「그러면 내가 이스라엘 부대에 준 백 달란트는 어떻게 해야 하겠소?」 하나님의 사람이 말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왕에게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주실 수 있습니다.」역대하 25:9 · 본디새김

아마샤는 하나님의 명령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명령을 따르면 발생하는 손실이 마음에 걸린 것입니다. 이것은 순종의 어려움을 추상적인 원칙이 아니라 실제적인 비용의 문제로 드러냅니다.

예언자는 반드시 은 백 달란트가 두 배로 돌아온다거나, 전쟁에서 그 이상의 전리품을 얻게 된다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주실 능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아마샤는 결국 고용한 병사들을 돌려보냅니다.

자신의 전력을 줄이고 이미 지불한 돈을 포기하면서까지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10절은 이 순종이 즉시 평안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돌려보낸 병사들은 몹시 화를 냅니다.

아마샤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고 해서 그 결정에 따른 모든 현실적 갈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옳다고 판단되는 결정을 했지만, 그 결정은 다른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두 방향으로 나뉩니다. 아마샤는 에돔을 향해 출정하고, 돌려보낸 북이스라엘 병사들은 돌아가는 길에 유다를 공격합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그들이 왜 그렇게 분노했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전투에 참여할 기회를 잃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모욕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전리품을 얻을 기대가 사라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것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전쟁에서 이겼지만 그 승리에는 끔찍한 장면이 있었다

역대하 25:11–13 본문 →

아마샤는 힘을 내어 자기 백성을 이끌고 소금 골짜기로 가서 세일 사람 만 명을 쳐 죽였다.역대하 25:11 · 본디새김

아마샤는 북이스라엘의 지원군 없이 전쟁에 나섭니다.

여기서 「힘을 내어」라는 표현은 앞서 하나님의 사람이 사용한 말과 연결됩니다. 예언자는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싸운다면 아무리 힘을 내어도 넘어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소금 골짜기는 사해 남쪽의 에돔과 관련된 지역으로 이해됩니다. 에돔은 과거 유다의 지배 아래 있다가 여호람 시대에 독립했습니다(21:8–10). 아마샤의 전쟁은 그런 역사적 관계를 배경으로 합니다.

열왕기하 14:7도 아마샤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죽이고 셀라를 점령했다고 기록합니다.

역대하는 그 전쟁에 관해 더 끔찍한 장면을 덧붙입니다.

유다 사람들은 또 만 명을 산 채로 사로잡아 바위 벼랑 꼭대기로 끌고 갔다. 그들을 바위 벼랑 꼭대기에서 내던지자, 그들은 모두 몸이 찢어졌다.역대하 25:12 · 본디새김

본문은 이 두 사건을 구별합니다. 후자의 사람들은 전투 중에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포로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자는 아마샤가 승리한 사실과 포로들을 죽인 사실을 기록하지만, 포로들을 벼랑에서 던져 죽이는 행동을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 행위 자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셨다고 평가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승리가 하나님의 도움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유로 포로 학살까지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내린 명령은 북이스라엘 군대를 돌려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쟁 포로들을 집단적으로 죽이라는 명령은 이 장에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듣고 군대를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승리한 뒤에는 포로들에게 잔혹한 일을 행했습니다. 본문은 이 둘을 하나의 행동으로 묶어 칭찬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순종의 장면과 폭력의 장면을 모두 보아야 합니다.

13절에서는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납니다.

아마샤가 돌려보낸 북이스라엘 병사들이 유다의 성읍들을 습격합니다. 그들은 삼천 명을 죽이고 많은 전리품을 빼앗습니다.

아마샤는 에돔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승리의 기록에는 많은 사람의 죽음과 유다의 피해가 함께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전쟁에서 돌아온 뒤, 이야기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하 14:7에 등장하는 에돔의 성읍 셀라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지만, 역대하 25:12만으로 그 장소가 정확히 어디였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13절의 「사마리아에서 벳호론까지」라는 지리적 표현은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사마리아가 북왕국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이것을 습격당한 유다 성읍들의 단순한 범위로 읽으면 지리적인 어려움이 생깁니다. 병사들이 이동한 경로를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지만, 원문은 이를 명확히 구별해 주지 않습니다.

자신이 이긴 민족의 신들을 섬기는 왕

역대하 25:14–16 본문 →

아마샤는 에돔 사람들을 치고 돌아온 뒤, 세일 사람들의 신들을 가져다가 자기 신들로 세웠다. 그는 그들 앞에 엎드려 절하고 그들에게 제물을 태워 연기를 올리곤 했다.역대하 25:14 · 본디새김

전쟁에 이긴 왕이 패배한 민족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왜 아마샤는 이렇게 했을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역대기 저자가 직접 드러내는 것은 그 행동의 모순입니다.

여호와야훼는 아마샤에게 분노하여 그에게 예언자를 보냈다. 예언자가 그에게 말했다. 「자기 백성을 왕의 손에서 구해 내지도 못한 그 백성의 신들을 어찌하여 찾으셨습니까?」역대하 25:15 · 본디새김

예언자는 신들의 능력을 추상적으로 논쟁하지 않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벌어진 전쟁의 결과를 근거로 왕의 행동이 얼마나 모순되는지 지적합니다.

아마샤는 이미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따라 큰 비용을 포기한 경험이 있습니다. 북이스라엘 군대를 돌려보낸 뒤에도 에돔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찾는 대상은 여호와야훼가 아니라 에돔의 신들입니다.

그런데 아마샤의 반응은 더욱 심각합니다.

예언자가 왕에게 말하고 있을 때 왕이 예언자에게 말했다. 「우리가 너를 왕의 조언자로 세웠느냐? 그만두어라. 어찌하여 매를 맞으려 하느냐?」 예언자는 그만두면서 말했다. 「하나님께서 왕을 멸하기로 뜻을 정하셨음을 저는 압니다. 왕께서 이런 일을 하셨고 제 조언을 듣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역대하 25:16 · 본디새김

자신이 공식적으로 임명한 조언자가 아니라면 왕에게 이런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왕이 임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보내신 사람이었습니다.

아마샤는 왕의 명령권을 내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입을 막으려 합니다.

여기서 예언자는 단순히 다른 신들을 섬긴 행위만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왕이 자신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도 심판의 이유로 제시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행동 자체가 문제의 중심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여호와야훼는 아마샤가 군사를 고용했을 때 그를 곧바로 넘어뜨리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경고하셨습니다. 아마샤가 에돔의 신들을 섬겼을 때도 곧바로 전쟁에서 패하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먼저 예언자를 보내 그 행동이 얼마나 모순되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첫 번째 경고는 왕의 계획을 바꾸게 했습니다.

두 번째 경고는 왕의 거부를 드러냈습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근동에서는 승리한 나라가 패배한 나라의 신상이나 성물을 전리품으로 가져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다른 민족의 신들을 정치적·종교적 이유로 받아들이는 일도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반적인 관습을 근거로 아마샤가 어떤 생각으로 에돔의 신들을 섬겼는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조언을 거절하고 다른 조언을 구하다

역대하 25:17–20 본문 →

유다 왕 아마샤는 의논한 뒤, 예후의 손자이자 여호아하스의 아들인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전갈을 보냈다. 「오시오. 우리 서로 얼굴을 마주 봅시다.」역대하 25:17 · 본디새김

16절에서 아마샤는 예언자에게 누가 너를 왕의 조언자로 세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17절은 아마샤가 「의논한 뒤」 행동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조언을 듣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누구의 조언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자신이 결정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책망하는 예언자의 말은 거부했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의논했습니다.

17절은 그가 누구와 의논했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조언자들이 아마샤를 부추겼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시오. 우리 서로 얼굴을 마주 봅시다.」 이것은 친선 방문의 제안이 아닙니다. 문맥상 두 왕이 전쟁터에서 맞서자는 도전입니다.

여기서 아마샤가 왜 북이스라엘에 싸움을 걸었는지는 명시되지 않습니다. 앞서 북이스라엘 용병들이 유다를 습격했으므로 그 사건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에돔에 대한 승리로 자신감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주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직접 밝히는 것은 아마샤가 먼저 대결을 제안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대답은 전쟁 준비가 아니라 짧은 비유입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전갈을 보냈다. 「레바논의 가시나무가 레바논의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 『네 딸을 내 아들의 아내로 다오』라고 했소. 그런데 레바논의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소.」역대하 25:18 · 본디새김

백향목은 레바논을 대표하는 높고 웅장한 나무입니다. 반면 가시나무는 작고 쉽게 짓밟힐 수 있는 식물입니다. 고대 왕실에서 혼인은 서로의 지위와 정치적 관계를 나타내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비유 속 가시나무는 백향목과 자신이 대등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가시나무가 스스로 생각하는 지위와 실제로 가진 힘 사이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대는 『보라, 내가 에돔을 쳤다』고 말했소. 그래서 마음이 우쭐해져 영광을 얻으려 하오. 이제 그대의 집에 머무르시오. 어찌하여 재앙을 자초하여 그대도 쓰러지고 유다도 그대와 함께 쓰러지게 하려 하오?」역대하 25:19 · 본디새김

여기서 「집에 머무르시오」는 단순히 안전을 위한 소극적인 충고가 아닙니다. 전쟁을 통해 더 큰 영광을 얻으려 하지 말고 이미 거둔 승리에 만족하라는 말입니다.

왕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전쟁을 시작해도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왕 혼자만이 아닙니다. 그의 백성도 함께 피해를 입습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듣지 않았다. 이것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들이 에돔의 신들을 찾았으므로 그들을 적의 손에 넘기려는 것이었다.역대하 25:20 · 본디새김

20절은 이 선택들이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첫 번째 전쟁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이 군대를 돌려보내라고 경고했고 아마샤는 그 말을 들었습니다. 두 번째 전쟁에서는 북이스라엘 왕이 전쟁을 피하라고 경고했지만 아마샤는 듣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전한 사람과 경고한 사람의 위치는 달랐지만, 아마샤가 자신의 계획을 수정할 기회를 받았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도울 힘도 넘어뜨릴 힘도 있다는 말씀을 들었던 왕이었습니다.

이제 그 말씀의 후반부를 경험하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을 분명하게 밝히지만, 그 심판이 인간의 마음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했는지를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아마샤에게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서 아마샤는 스스로 에돔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야훼가 예언자를 보내셨지만 그 말을 거절했습니다.

얼굴을 마주 보자던 왕이 포로가 되다

역대하 25:21–24 본문 →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군대를 이끌고 올라옵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왔다. 그와 유다 왕 아마샤는 유다에 속한 벳세메스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역대하 25:21 · 본디새김

17절에서 아마샤가 제안했던 말이 그대로 실현됩니다. 「우리 서로 얼굴을 마주 봅시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가 기대했던 것과 다릅니다.

유다는 이스라엘 앞에서 패배했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달아났다.역대하 25:22 · 본디새김

전투의 과정은 길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아마샤가 어떤 전략을 사용했는지, 어느 쪽이 먼저 공격했는지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문은 패배와 도주라는 결과만을 짧게 전합니다.

에돔과의 전쟁에서는 군대 조직, 고용병의 문제, 예언자의 경고, 포로들의 처형까지 자세하게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는 실제 전투를 설명하는 내용이 한 절에 불과합니다.

저자의 관심은 전술보다 결과에 있습니다.

그리고 왕 자신이 붙잡힙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벳세메스에서 여호아하스의 손자이자 요아스의 아들인 유다 왕 아마샤를 붙잡아 예루살렘으로 데려왔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이나 허물었다.역대하 25:23 · 본디새김

그는 에돔을 정복하고 많은 포로를 잡았던 왕이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다른 왕에게 붙잡혀 자기 수도로 끌려옵니다.

성벽은 성읍을 보호하는 시설이었습니다. 그 성벽을 허물었다는 것은 예루살렘의 방어 능력을 약화시키는 행동입니다.

아마샤는 에돔을 이긴 뒤 더 큰 영광을 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자신의 수도를 보호하는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집에서 오벳에돔이 맡고 있던 금과 은과 모든 기구, 그리고 왕궁의 보물을 모두 가져갔다. 또 인질들을 데리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다.역대하 25:24 · 본디새김

여기서 아마샤의 이야기는 앞선 요아스 시대와 대조됩니다. 요아스는 손상된 성전을 복구했고, 백성이 드린 재물로 성전에서 사용할 기구들을 마련했습니다(24:8–14). 그러나 아마샤 시대에는 하나님의 집에서 재물이 빼앗깁니다.

아버지 시대에 복구된 성전의 질서가 아들의 시대에 다시 위협받는 것입니다.

아마샤가 더 큰 영광을 얻으려고 시작한 전쟁은 결국 그가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까지 잃게 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사백 규빗은 상당한 길이입니다. 정확한 현대식 길이는 당시 적용된 규빗의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성벽의 일부가 크게 파괴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역대상 26:4–8에는 성전의 문지기와 봉사에 관련된 오벳에돔의 집안이 등장합니다. 역대하 25:24의 오벳에돔을 바로 그 시대의 인물과 동일인으로 볼 수는 없지만, 성전의 보물 관리와 관련된 이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패배 후에도 오래 살았지만 끝내 공모로 죽다

역대하 25:25–28 본문 →

23–24절의 사건만 보면 아마샤의 통치가 곧바로 끝났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요아스의 아들인 유다 왕 아마샤는 여호아하스의 아들인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죽은 뒤에도 십오 년을 더 살았다.역대하 25:25 · 본디새김

본문은 그 십오 년 동안 아마샤가 어떤 정치적 지위에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가 실질적인 권력을 어느 정도 유지했는지, 그동안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의 죽음은 다른 사람들의 공모로 이루어집니다.

아마샤가 여호와야훼를 따르는 데서 돌아선 때부터,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그를 해치려고 공모했다. 그가 라기스로 달아나자, 그들은 사람들을 라기스로 보내 그를 뒤쫓게 하고 그곳에서 그를 죽였다.역대하 25:27 · 본디새김

아마샤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은 전쟁에서 패한 순간보다 먼저 있었습니다.

그가 에돔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하고,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을 때 이미 그의 통치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옳은 일을 했지만 온전한 마음으로 하지 않았던 왕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여호와야훼를 따르는 데서 돌아선 왕으로 기록됩니다.

사람들은 그를 말들에 실어 옮겨 와 유다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묻었다.역대하 25:28 · 본디새김

한때 왕권을 굳히고 군대를 조직하며 다른 나라에 싸움을 걸었던 왕이, 이제는 자신을 죽인 사람들의 손에 의해 시신으로 옮겨집니다.

그가 통제하려 했던 정치적 세계는 결국 그를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요아스는 다윗 성에 묻혔지만 왕들의 무덤에는 묻히지 못했다고 기록되었습니다(24:25). 아마샤에 대해서는 조상들과 함께 묻혔다고 기록합니다. 본문은 왕들의 무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그의 장례 장소를 그보다 더 구체적으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남는 질문

역대하 25:1–28 본문 →

아마샤가 승리할 때와 패배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아마샤의 태도였습니다. 그가 행한 순종은 실제로 순종이었습니다. 그러나 특정한 시기의 순종이 이후의 모든 선택을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장의 끝은 한때 승리했던 왕의 귀환으로 마무리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왕을 말들에 실어 조상들이 묻힌 곳으로 데려왔습니다.

한때 다른 왕에게 「우리 서로 얼굴을 마주 봅시다」라고 당당하게 전갈을 보냈던 왕은, 마지막에는 다른 사람들의 손에 실려 돌아왔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