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26장

이 장의 자리 · 10–28장 · 둘로 갈라진 나라

강해진 왕이 무너진 자리

웃시야는 성벽을 무너뜨릴 줄 알았고, 성벽을 세울 줄도 알았습니다. 적의 도시를 정복했고, 자기 나라의 방어 시설을 튼튼하게 했으며, 새로운 무기까지 개발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많은 경계를 지키고 넓혔던 왕이 정작 자신이 넘어서서는 안 되는 경계 하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경계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그를 도우셨고, 그 결과 그가 강해졌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도움으로 얻은 힘이 어떻게 하나님을 거스르는 계기가 되었을까요?

읽는 시간 15분소단락 826장 본문 읽기 →

열여섯 살의 왕, 하나님을 찾는 법을 배우다

역대하 26:1–5 본문 →

웃시야의 이야기는 유다 백성의 선택으로 시작합니다.

앞 장에서 아마샤는 전쟁에서 패한 뒤 반역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25:27–28). 불안정한 왕위 계승 속에서 유다 백성은 아직 열여섯 살인 왕자를 왕으로 세웁니다.

웃시야는 쉰두 해 동안 예루살렘을 다스렸습니다. 역대기가 기록하는 유다 왕들 가운데서도 매우 긴 통치 기간입니다. 이야기는 젊은 왕이 왕위에 오른 뒤 엘롯을 다시 세우고 유다의 땅으로 되찾은 일을 기록합니다.

엘롯은 홍해의 아카바만 북쪽에 있던 항구 지역입니다. 열왕기상 9:26에서 솔로몬이 배를 만든 엘롯 근처 에시온게벨이 언급됩니다. 따라서 엘롯의 회복은 단순히 한 성읍을 되찾는 일을 넘어 남쪽 교통로와 교역상의 이익을 확보하는 일과 관련될 수 있습니다.

그의 통치에 대한 첫 평가는 긍정적입니다.

그는 아버지 아마샤의 본을 따라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했습니다.역대하 26:4 · 두루새김

그런데 이 평가는 조금 불안하게 들립니다. 바로 앞 장에서 아마샤는 옳은 일을 했지만 온전한 마음으로 하지는 않았다고 평가되었기 때문입니다(25:2). 웃시야는 아버지의 좋은 출발을 이어 갈 것인가, 아니면 아버지의 실패까지 되풀이할 것인가요?

웃시야는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환상을 이해하던 스가랴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가 여호와야훼를 찾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는 일이 잘되게 하셨습니다.역대하 26:5 · 두루새김

여기서 스가랴는 웃시야의 초기 신앙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젊은 웃시야의 통치에는 하나님을 분별하며 찾도록 이끄는 신앙적 환경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을 한 번 찾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여호와야훼를 찾는 동안 하나님이 그가 하는 일이 잘되게 하셨다는 관계를 표현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을 찾으면 반드시 부자가 되거나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보편적 공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웃시야의 생애에서 실제로 나타난 하나님의 도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왕의 위대함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역대기 기자는 그 위대함의 근원이 왕 자신에게 있지 않았음을 먼저 밝혀 둡니다.

조금 더 깊이

스가랴를 설명하는 말에 히브리어 하메빈이 사용되는데, 이는 이해하고 분별하는 능력과 관련됩니다. 이어지는 표현에는 하나님을 「보는 일」 또는 「환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놓입니다. 다만 원문이 스가랴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데 밝았다는 뜻인지,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도록 도왔다는 뜻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본문은 그가 어떤 가르침을 주었는지도 밝히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농경지까지, 나라를 세운 왕

역대하 26:6–10 본문 →

웃시야의 업적을 기록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폭넓습니다.

먼저 전쟁에서 거둔 성과가 등장합니다. 웃시야는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가드, 야브네, 아스돗의 성벽을 허물고, 그 지역에 새로운 성읍들을 세웠습니다.

이 지역들은 유다의 서쪽에 위치한 블레셋 도시들과 관련됩니다. 성벽을 허물었다는 것은 적의 방어 능력을 무너뜨렸다는 뜻이고, 그곳에 성읍을 세웠다는 것은 단순한 약탈보다 지속적인 영향력의 확대를 보여 줍니다.

다른 민족들과의 싸움에서도 웃시야는 성공합니다. 암몬 사람들이 조공을 바쳤고, 이집트로 들어가는 길목까지 그의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블레셋 사람들, 구르바알에 사는 아라비아 사람들, 므우님 사람들과 싸울 때 도우셨습니다.역대하 26:7 · 두루새김

웃시야가 적을 물리친 사실은 분명하지만, 본문은 승리의 원인을 군사적 능력만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후 웃시야의 관심은 국경에서 예루살렘 내부로 옮겨 갑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모퉁이 문과 골짜기 문, 성벽이 꺾이는 곳에 감시 탑들을 세우고 튼튼하게 합니다. 성벽의 모서리와 출입문은 방어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곳입니다. 웃시야는 정복한 영토를 넓히는 일만큼 수도의 방어에도 힘썼습니다.

그런데 10절에 이르면 이 왕의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는 광야에도 감시 탑들을 세우고, 바위를 파서 물을 저장할 구덩이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에게는 가축이 많았고, 낮은 언덕 지대와 평원에도 가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산지와 기름진 땅에는 그의 농부들과 포도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농사짓기를 좋아했습니다.역대하 26:10 · 두루새김

광야의 감시 탑은 군사 시설인 동시에 넓은 목축 지역을 보호하는 데도 유용했을 것입니다. 바위를 파서 만든 물 저장 구덩이는 비가 부족한 지역에서 사람과 가축의 생존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시설입니다.

그는 나라를 강하게 만든다는 것이 성벽을 높이고 적을 무찌르는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백성이 살아갈 땅을 확보하고, 가축이 물을 마시게 하고,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는 일도 왕국의 힘이었습니다.

여기서 땅은 단순한 영토나 왕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농사짓고 가축을 기르며 살아가는 생활의 터전입니다.

창세기 2:15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두 본문이 서로를 직접 인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땅을 돌보는 일을 인간에게 맡겨진 책임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한 성공이 쌓이면서, 웃시야의 왕권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집니다.

삼십만 군대와 놀라운 발명품

역대하 26:11–15 본문 →

이제 웃시야의 군사 조직이 자세히 소개됩니다.

그에게는 부대별로 전쟁에 나가는 군대가 있었습니다. 기록 담당 관리 여이엘과 관리 마아세야가 군사들의 수를 조사해 부대를 편성했고, 군대는 왕의 지휘관 하나냐 아래 조직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용맹한 군사들을 이끄는 가문의 우두머리는 이천육백 명이었고, 그들의 지휘 아래 있는 군사는 삼십만 칠천오백 명이었습니다. 작은 방패, 창, 투구, 갑옷, 활, 물매에 쓸 돌까지 마련했습니다.

그는 기술자가 설계한 장치들을 예루살렘에 만들었습니다. 이 장치들을 감시 탑과 성벽 모퉁이 위에 놓아 화살과 큰 돌을 쏘게 했습니다. 웃시야의 이름은 먼 곳까지 알려졌습니다. 놀라운 도움을 받아 강해졌기 때문입니다.역대하 26:15 · 두루새김

원문은 생각하고 고안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들을 겹쳐 놓아 이 장치가 사람의 설계와 기술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장치가 실제로 어떤 구조였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후대에 알려진 특정 투석기나 석궁과 동일한 장치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도움을 받아」라는 표현은 웃시야의 모든 업적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앞에서는 「왕을 도와」 싸우는 군대가 등장했습니다(26:13). 이제 그 군대와 왕을 포함한 모든 성취의 뒤에는 그가 받은 놀라운 도움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웃시야의 능력과 수고는 실제였습니다. 그의 조직과 기술도 실제였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그것들을 부정하거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웃시야가 도움을 받는 존재라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성공의 절정에서 마음이 높아지다

역대하 26:16 본문 →

16절은 이 장의 결정적인 전환점입니다.

그러나 웃시야는 강해지자 마음이 교만해져 스스로 파멸을 불러왔습니다. 그는 자기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저버리고, 향을 피우는 제단에서 향을 피우려고 여호와야훼의 성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역대하 26:16 · 두루새김

같은 강함이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도움의 결과로,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의 교만이 일어나는 자리로 등장합니다.

그사이에 다른 사건이 끼어들지 않습니다.

그의 강함 자체가 죄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공을 자기 존재에 대한 잘못된 판단의 근거로 삼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여기서 독자는 질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던 왕이 이제 하나님께 향을 피우려 하는데, 그것이 왜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가요?

겉으로 보면 웃시야가 하려는 일은 우상숭배도 아니고 다른 신에게 제사하는 일도 아닙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에서 여호와야훼를 위한 종교 행위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라도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무시하면서 자신의 권한을 넓힐 수는 없었습니다. 역대기가 문제 삼는 것은 그가 왕이라는 사실을 넘어, 왕권이 성전의 모든 권한까지 포함한다고 행동한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겠다는 의도가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에 대한 순종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 15절은 웃시야가 「강해질 때까지」 도움을 받았다고 끝납니다. 바로 다음 절은 「그가 강해지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또한 원문은 그의 마음이 「높아졌다」고 말합니다. 르호보암도 왕권이 확고해지고 강해졌을 때 여호와야훼의 율법을 버렸습니다(역대하 12:1).

왕 앞에 선 팔십 명의 제사장

역대하 26:17–18 본문 →

웃시야가 성전에 들어가자 제사장 아사랴가 뒤따릅니다.

그와 함께 팔십 명의 제사장도 들어갑니다. 본문은 이들을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앞에서 웃시야의 군대를 설명할 때 사용한 강함과 용맹의 언어가 여기서는 제사장들에게 적용됩니다.

왕에게는 삼십만이 넘는 군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전 안에서 왕의 행동을 막는 사람들은 팔십 명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왕권 앞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려는 일이 이들에게는 용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웃시야 왕을 막아서며 말했습니다. 「웃시야 임금님, 여호와야훼께 향을 피우는 일은 임금님이 하실 일이 아닙니다. 그 일은 향을 피우도록 거룩하게 구별된 아론의 자손, 곧 제사장들이 할 일입니다. 성전에서 나가십시오. 임금님은 여호와야훼를 저버리셨습니다. 이 일로 여호와야훼 하나님께 영광을 얻지는 못하실 것입니다.」역대하 26:18 · 두루새김

제사장들은 왕이 하나님을 예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지적하는 것은 향을 피우는 특정한 성전 봉사가 「거룩하게 구별된 아론의 자손, 곧 제사장들」이 할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왕권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무제한의 권력이 아니었습니다. 왕은 하나님의 뜻을 실행할 책임을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제사장들이 왕에게 맞서는 행동은 왕권 자체에 대한 반란이 아니라, 왕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 아래 있음을 증언하는 행위입니다.

웃시야는 이미 큰 영광을 누리는 왕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멀리 알려졌고, 여러 민족이 그의 힘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얻은 명예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영광은 같지 않습니다. 왕이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 얻으려는 영광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되지 않습니다.

제사장들의 말은 웃시야에게 자신을 바로잡을 기회를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30:7–8은 아론이 향 제단에서 향을 피우도록 규정합니다. 민수기 16장에서 고라 일당의 반역이 일어난 뒤에는 아론의 자손이 아닌 사람이 여호와야훼 앞에 향을 피우러 나아가지 못하도록 경고합니다(민수기 16:40). 고대 유다에서 왕은 성전 건축과 예배 지원에 중요한 책임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봉사에는 각자의 책임과 한계가 있었습니다.

손에는 향로가, 이마에는 차라아트가

역대하 26:19–20 본문 →

웃시야는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의 손에는 향을 피울 그릇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가 제사장들에게 화를 내는 동안, 여호와야훼의 성전 안 향을 피우는 제단 곁에서 그의 이마에 차라아트가 생겼습니다. 제사장들이 보는 앞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역대하 26:19 · 두루새김

그가 실제로 향을 피웠다는 말은 없습니다. 향을 피우려는 순간, 그 행위를 막는 제사장들과 맞서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그의 마음이 교만해졌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 교만한 마음이 자신을 바로잡으려는 사람들 앞에서 분노로 나타납니다.

웃시야의 이마에 나타난 피부 증상은 그의 성전 출입에 결정적인 변화를 일으킵니다.

제사장들의 우두머리인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웃시야를 보니, 그의 이마에 차라아트가 생겨 있었습니다. 그들은 웃시야를 서둘러 그곳에서 내보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에게 병을 내리셨기 때문에 웃시야 자신도 급히 나가려 했습니다.역대하 26:20 · 두루새김

앞에서는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나가라고 명령했지만, 왕은 몹시 화를 냈습니다. 이제 그는 스스로 나가려고 서두릅니다.

본문은 웃시야가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진심으로 회개했는지, 자신의 상태에 놀라 달아나려 했는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행동을 곧바로 회개나 완전한 변화의 증거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말로는 멈추지 않았던 왕이 여호와야훼의 행동 앞에서는 더 이상 자신의 뜻을 밀어붙일 수 없었습니다.

같은 여호와야훼가 왕을 강하게 하셨고, 같은 여호와야훼가 왕이 자신의 자리를 넘어서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했다고 해서 그분의 거룩함을 마음대로 다룰 권리까지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차라아트는 히브리어 차라아트를 옮긴 말입니다. 이것을 오늘날의 한센병과 그대로 같은 병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레위기 13–14장은 차라아트라는 말로 피부의 여러 증상뿐 아니라 옷이나 집에 생긴 이상 현상도 다룹니다. 레위기 13:45–46은 차라아트로 부정하다고 판정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도록 규정합니다.

성전을 세우지 않았지만, 성전에서 배제된 왕

역대하 26:21–23 본문 →

웃시야의 생애는 뜻밖의 방식으로 끝나 갑니다.

웃시야 왕은 죽는 날까지 차라아트를 앓았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병을 앓으며 따로 떨어진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맡아 그 땅의 백성을 다스렸습니다.역대하 26:21 · 두루새김

그는 왕이라는 지위를 잃었다고 명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왕궁을 맡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의 아들 요담이 되었습니다.

원문에서는 하나가 「여호와야훼의 집」이고, 다른 하나가 웃시야가 지내게 된 「따로 떨어진 집」입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에서 허락되지 않은 역할을 차지하려 했습니다. 그 결과 그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26장 전반부에서는 성벽과 감시 탑을 세우는 왕이 등장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보호하고 다른 지역에 성읍들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왕이 머물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제한됩니다.

웃시야는 죽어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는 차라아트에 걸린 사람이다」라고 하여 그를 조상들과 함께 왕들의 묘지에 딸린 밭에 묻었습니다. 그의 아들 요담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역대하 26:23 · 두루새김

그가 왕의 무덤 안에 묻히지 못한 세부적인 이유나 구체적인 매장 시설의 형태까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의 차라아트가 매장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분명히 합니다.

그의 삶에서 가장 슬픈 대조는 이름에 있습니다.

8절과 15절에서 웃시야의 이름은 먼 곳까지 알려졌습니다. 주변 민족들은 그의 강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군사력과 성공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사람들이 그를 두고 「그는 차라아트에 걸린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역대기 기자는 그의 훌륭한 통치와 많은 업적을 자세히 남겼으며, 예언자 이사야도 그가 한 일들을 기록했다고 밝힙니다(26:22). 그러나 장의 끝에서 강조되는 것은 그의 업적이 아니라 차라아트입니다.

이야기의 처음에는 백성들이 열여섯 살의 웃시야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마지막에는 그를 매장하는 사람들이 그의 병을 언급합니다.

쉰두 해의 긴 통치가 이렇게 닫힙니다.

조금 더 깊이

이사야는 그해 성전에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주를 보았고, 스랍들이 그분의 거룩함을 선포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이사야 6:1–3). 이사야 6장이 역대하 26장의 웃시야 사건을 직접 해설하거나 인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대하 26장에서 인간의 왕은 성전의 경계를 넘어선 뒤 그곳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이사야 6장에서는 인간의 왕이 죽던 해에도 참된 왕이신 하나님이 자신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맺음 — 왕이 지키지 못한 마지막 경계

역대하 26:1–23 본문 →

웃시야는 많은 경계를 확장하고 지켜 냈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경계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실제로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도, 그 성공을 잘못 이해하여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도움을 풍성하게 경험한 사람이 그 도움을 자신의 절대적인 권한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은 어떤 사람이 모든 영역에서 옳은 판단을 내린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한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는 사실도 다른 사람에게 맡겨진 책임을 넘볼 자격을 주지는 않습니다.

26장이 마지막으로 보여 주는 왕의 모습은 전쟁터의 승리자가 아닙니다.

향을 피우는 제단 앞에서 그는 손에 향을 피울 그릇을 들고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그에게 나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몹시 화를 냈고, 그의 이마에는 차라아트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던 왕이 성전에서 나가려고 서둘렀습니다.

그 뒤로 그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들어갈 수 없게 되어 따로 떨어진 집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누구보다 강해졌던 왕이,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에게 허락된 자리조차 스스로 넓힐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마주한 것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