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27장
이 장의 자리 · 10–28장 · 둘로 갈라진 나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 길을 바로 세운 왕
어떤 왕은 큰 승리로 기억되고, 어떤 왕은 비극적인 실패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요담에게는 그런 극적인 이야기가 거의 없습니다.
그는 성전을 위한 건축 사업을 했고, 성읍과 방어 시설을 세웠으며, 전쟁에서도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역대기는 그에게 특별한 사건을 길게 할애하지 않습니다. 왕이 된 때부터 죽음까지 단 아홉 절입니다.
왕은 한결같이 바른 길을 걸었지만, 백성은 여전히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요담의 신실함은 무엇으로 드러났으며, 그의 올바른 통치는 왜 백성 전체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을까요?
아버지의 좋은 길을 따르되, 잘못은 되풀이하지 않다
요담은 스물다섯 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열여섯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앞 장에서는 웃시야가 차라아트에 걸린 뒤 아들 요담이 왕궁을 맡아 백성을 다스렸다고 기록했습니다(26:21). 따라서 요담은 정식으로 왕위를 물려받기 이전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맡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아버지 웃시야의 본을 따라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했습니다. 다만 아버지처럼 여호와야훼의 성전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백성은 여전히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역대하 27:2 · 두루새김
먼저 요담은 아버지 웃시야의 좋은 통치를 이어받았습니다. 웃시야는 한때 하나님을 찾으며 나라를 강하게 세웠고, 역대기는 그의 초기 통치를 긍정적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요담은 아버지의 모든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웃시야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사장에게 맡겨진 일을 침범했던 것과 달리, 요담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요담이 「여호와야훼의 성전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라는 것은 성전에서 예배하지 않았다는 뜻일까요?
웃시야는 성전 안으로 들어가 향을 피우려다가 심판을 받았습니다. 요담이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설명은 이 사건을 염두에 둔 대조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요담이 성전 예배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보다, 아버지가 침범했던 거룩한 직무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왕위와 나라를 다스리는 방식을 물려받았지만, 아버지의 잘못까지 이어받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왕의 의로움과 백성의 타락은 함께 존재했다
그러나 2절은 요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끝나지 않습니다.
왕이 바뀌었고 왕의 행동은 옳았지만, 백성의 삶에서는 이전부터 이어지던 문제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의 구체적인 행동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같은 시대를 다루는 열왕기하 15:35는 요담 시대에도 산당들이 제거되지 않았고, 백성이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고 향을 피웠다고 밝힙니다. 이는 당시의 종교적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입니다. 다만 역대하 27:2가 말하는 모든 악한 일을 산당 제사 하나로 한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역대기는 요담 개인의 신실함과 공동체의 상태를 구별해서 평가합니다.
한 사람이 옳은 길을 걷는 것과 공동체 전체가 그 길을 걷게 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본문은 그가 백성의 악한 행동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어떤 개혁을 시도했는지, 왜 그 문제가 계속되었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의 통치가 종교 개혁에 충분히 적극적이었는지 판단할 자료도 부족합니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요담은 자신에게 맡겨진 통치를 수행합니다.
성전 문을 세우고, 나라의 경계를 지키다
요담의 업적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되는 것은 성전과 관련된 건축 사업입니다.
요담은 여호와야훼의 성전 윗문을 세우고, 오벨 성벽을 쌓는 공사도 크게 벌였습니다.역대하 27:3 · 두루새김
앞 절에서 요담은 성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그는 성전의 문을 세웁니다.
그는 성전을 위해 일했지만, 성전의 모든 일을 자신의 권한으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윗문은 성전의 출입과 관련된 문이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방향에 있었고 어떤 구조였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지만, 열왕기하 15:35 역시 요담의 대표적인 건축 사업으로 이 문을 언급합니다.
오벨은 예루살렘의 지형과 방어 시설에 관련된 지역입니다. 일반적으로 성전산 남쪽과 다윗 성 사이의 지역과 연결하여 이해합니다. 역대하 33:14에서는 훗날 므낫세가 오벨을 둘러싼 방어 시설을 강화한 일이 언급됩니다.
이어서 건축 사업은 예루살렘 밖으로 확대됩니다.
그는 유다 산지에 성읍들을 세우고, 숲속에는 적의 공격을 막을 시설과 감시 탑들을 세웠습니다.역대하 27:4 · 두루새김
왕의 관심이 수도의 중심부에서 나라의 여러 지역으로 넓어지는 것입니다. 성읍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고, 공격을 막을 시설과 감시 탑은 방어와 감시에 필요한 시설입니다. 산지와 숲이라는 지형에 맞추어 시설을 세웠다는 점에서, 요담은 여러 지역의 안전과 나라를 다스리는 기반을 강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3절과 4절에서는 승리의 환호나 왕의 명성이 강조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세워진 것들이 등장합니다.
요담의 통치는 특별한 사건을 통해서보다 꾸준한 건설과 정비를 통해 묘사됩니다.
한 번의 승리보다 지속된 조공이 말해 주는 것
5절에서는 요담이 전쟁에서 이룬 일이 등장합니다.
요담은 암몬 사람들의 왕과 싸워 그들을 이겼습니다. 그해에 암몬 사람들은 그에게 은 100달란트와 밀 1만 코르, 보리 1만 코르를 바쳤습니다. 둘째 해와 셋째 해에도 같은 양을 바쳤습니다.역대하 27:5 · 두루새김
암몬은 요단강 동쪽에 자리했던 민족으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에서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전투가 어디에서 벌어졌는지, 요담이 어떤 전략을 사용했는지, 얼마나 많은 군사가 참여했는지는 기록하지 않습니다. 대신 조공의 구체적인 품목과 수량을 제시합니다.
은은 귀금속 재산이고, 밀과 보리는 식량 자원입니다. 암몬은 요담에게 상당한 양의 경제적 자원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본문에 따르면 「둘째 해와 셋째 해에도 같은 양을 바쳤습니다」. 이것은 전투의 승리가 일정 기간 정치적 우위로 이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반면 본문은 넷째 해 이후에도 같은 조공이 계속되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 승리가 암몬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이었는지, 그들이 조공을 내기 위해 어떤 부담을 감당했는지는 기록하지 않습니다. 조공 자체를 모두에게 이로운 경제적 성과로 설명해서도 안 됩니다. 본문은 당시 왕국 사이의 군사적·정치적 관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요담이 강했다는 이야기가 끝나자, 역대기 기자는 요담이라는 사람의 강함을 다시 평가합니다.
조금 더 깊이
달란트는 무게 단위이고, 코르는 곡물 등의 부피를 재는 단위입니다. 고대의 무게와 부피 단위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를 현대 단위로 단 하나의 정확한 수치로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요담의 강함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요담은 강해졌습니다. 자기 하나님 여호와야훼 앞에서 한결같이 바른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역대하 27:6 · 두루새김
이 문장은 왕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설명하면서, 그가 무엇을 정복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합니다.
「한결같이 바른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라는 표현
직역하면 요담이 강해졌는데,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 여호와야훼 앞에서 자기의 길들을 확립했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두루새김은 이 자리를 「한결같이 바른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옮깁니다.
요담은 자신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정하고, 그 방향을 굳게 세운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순간적인 감정이나 일시적인 열심보다는 삶의 방향을 꾸준히 바로잡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결정적인 기준은 「여호와야훼 앞에서」이다
왕이 바른 길을 걸었다는 것은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대로 살아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길을 세웠습니다.
왕은 백성 앞에서 지도자였고, 다른 민족의 왕들 앞에서는 군사적·정치적 상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의 행동을 평가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강한 왕이었지만, 그 강함을 판단하는 최종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두지 않았습니다.
이는 신명기 17:18–20에서 왕에게 요구하는 태도와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는 왕이 율법을 읽고 지켜야 하며, 자기 형제들 위에 마음을 높이지 않아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에 더욱 깊이 묶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6절은 요담이 하나님 앞에서 한결같이 바른 길을 걸었기 때문에 강해졌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요담의 통치에 대한 역대기 기자의 평가입니다. 모든 신실한 사람이 반드시 정치적 성공이나 경제적 풍요를 얻는다는 일반 법칙을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가
27장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장면도, 눈에 보이는 기적을 행하시는 장면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전히 이 이야기의 중심에 계십니다.
왕의 행동을 평가하는 기준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은가에 달려 있고, 왕의 강함을 설명하는 기준도 하나님 앞에서 어떤 길을 걸었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특별한 사건에서만 찾을 필요가 없음을 보여 줍니다.
요담이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다는 사실은 그의 통치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전을 어떻게 대했는지, 나라를 어떻게 지켰는지, 주어진 권한을 어떻게 사용했는지가 모두 그의 삶에 속합니다. 특정한 종교 행위를 할 때뿐 아니라, 맡은 책임을 수행하고 결정을 내리며 자신의 삶을 꾸려 가는 과정에서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즉위 기록과 조용한 죽음
요담의 이야기는 간결하게 끝납니다.
요담이 한 나머지 일들과 그가 치른 모든 전쟁, 그가 살아온 길은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책』에 적혀 있습니다.역대하 27:7 · 두루새김
27장은 암몬과의 전쟁만을 자세히 언급했지만, 기록의 마지막에서는 그가 치른 모든 전쟁을 말합니다. 실제로 열왕기하 15:37은 요담 시대에 하나님이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유다에 맞서 보내기 시작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이 기록을 함께 살피면 요담 시대가 외부의 위협이 전혀 없는 평화로운 시기였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7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그가 살아온 길」이라는 말은 6절과도 연결됩니다. 6절에서는 요담이 하나님 앞에서 한결같이 바른 길을 걸었다고 했습니다. 7절에서는 그가 살아온 길이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책』에 적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 세워진 삶의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 속에 남겨진 삶의 발자취입니다.
처음과 끝을 같은 문장으로 묶다
이어지는 8절은 이상할 만큼 익숙하게 들립니다.
그는 25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6년 동안 다스렸습니다.역대하 27:8 · 두루새김
1절에서 시작한 통치 기록이 8절에서 같은 정보로 마무리됩니다. 그 사이에는 요담의 신앙에 대한 평가와 그가 이룬 일들이 놓여 있습니다. 특히 6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짚는 평가는 이 생애 기록의 중심을 이루는 결론처럼 기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요담의 죽음이 기록됩니다.
그저 요담이 죽었고, 사람들이 그를 묻었으며, 그의 아들이 왕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이 장에는 그의 죽음을 둘러싼 반역이나 처벌, 왕권의 갑작스러운 무너짐에 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의 통치는 다음 세대로 이어집니다.
맺음 — 요담이 세운 문과 그가 걸어간 길
요담은 「여호와야훼의 성전 윗문」을 세웠습니다. 그는 그 문이 속한 성전을 위해 실제적인 일을 했지만, 왕이라는 이유로 제사장에게 맡겨진 직무까지 차지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결같이 바른 길을 걷는다는 것은 모든 결과를 자기 뜻대로 만들어 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분명히 알고, 그 책임을 하나님의 뜻 앞에서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왕은 백성을 다스릴 수 있지만, 자신의 충실함을 그대로 백성의 충실함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또한 백성이 계속 악한 일을 저지른다는 사실이 왕의 모든 올바른 행동을 무의미하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성벽은 도시를 지키고, 감시 탑은 주변을 살피며, 성전의 문은 그곳으로 드나드는 길을 표시합니다. 그러나 왕 자신의 삶을 지탱한 것은 그가 쌓은 성벽이나 그가 거느린 군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한결같이 바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열여섯 해의 통치를 마친 뒤, 다윗 성에 묻혔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그의 삶에 더 화려한 결말을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조용히 그가 걸어온 길을 기록하고, 다음 왕의 이름을 남깁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