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22장

이 장의 자리 · 10–28장 · 둘로 갈라진 나라

왕궁에서는 죽이고, 하나님의 집에서는 살렸습니다

역대하 22장은 두 여인의 대조적인 행동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아달랴는 자기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왕실의 자손들을 죽이기 시작합니다. 여호사브앗은 그 죽음의 한가운데서 왕의 아들 하나를 몰래 빼냅니다. 한 사람은 왕실의 권력을 장악하려 하고, 다른 사람은 그 권력으로부터 아이의 생명을 보호합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모두 같은 왕실에 속한 여인들입니다. 아달랴는 죽은 왕 아하시야의 어머니이고, 여호사브앗은 아하시야의 누이입니다. 왕실 내부에서 일어난 학살에 왕실 내부의 누군가가 저항한 것입니다.

이야기는 그 상황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아하시야의 짧은 통치에서 출발합니다.

읽는 시간 15분소단락 822장 본문 읽기 →

왕이 될 사람이 거의 남지 않았다

역대하 22:1–2 본문 →

예루살렘 주민들은 여호람의 막내아들 아하시야를 아버지의 뒤를 이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아라비아 사람들과 함께 진영으로 쳐들어온 부대가 그의 형들을 모두 죽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습니다.역대하 22:1 · 두루새김

앞 장에서는 여호람의 아들들이 침략자들에게 사로잡혀 가고 막내아들만 남았다고 기록했습니다(21:17). 22장은 형들이 죽었다고 설명합니다. 두 기록이 포로로 잡혀 간 뒤의 죽음을 가리키는지, 서로 다른 측면을 짧게 서술하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역대기는 단순히 아하시야가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주민들이 그를 왕으로 세웠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는 데 예루살렘 공동체의 행동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숫자가 나옵니다.

아하시야는 42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오므리의 딸 아달랴였습니다.역대하 22:2 · 두루새김

앞 장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 여호람은 서른두 살에 왕이 되어 여덟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21:5, 20). 따라서 기록된 통치 기간을 그대로 더하면 아버지는 마흔 살에 죽은 셈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마흔두 살에 왕이 되었다고 하면 연대가 맞지 않습니다.

이 짧은 통치에 관해 역대기는 왕이 세운 성읍이나 나라를 다스리며 이룬 업적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가 누구의 말을 들었는지를 자세히 이야기합니다.

그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왕좌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보다, 그 왕좌에서 누구의 조언을 따랐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는 마흔두 살로 기록되어 있지만, 열왕기하 8:26에는 스물두 살로 나옵니다. 일부 칠십인역 사본과 시리아어 역본도 스물두 살을 전합니다. 이 때문에 역대하의 숫자가 전해지는 과정에서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지만, 변화가 일어난 정확한 과정까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왕을 파멸로 이끈 조언자들

역대하 22:3–4 본문 →

2절은 아하시야의 어머니를 소개합니다.

오므리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아합의 아버지였습니다(열왕기상 16:28–29). 아달랴를 오므리의 딸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녀가 오므리 왕조에 속한 사람임을 나타냅니다. 앞 장은 여호람의 아내를 아합의 딸이라고 불렀습니다(21:6). 그러므로 2절의 「딸」은 바로 낳은 딸이라는 의미보다 후손까지 포함하는 왕조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하시야도 아합 집안의 본을 따라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그에게 악한 일을 하도록 조언했기 때문입니다.역대하 22:3 · 두루새김
그는 아합 집안처럼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죽은 뒤에 아합 집안 사람들이 그의 조언자가 되어 그를 파멸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역대하 22:4 · 두루새김

3절에서는 어머니의 조언이 언급되고, 4절에서는 아합 집안 사람들의 조언이 언급됩니다. 이어 5절도 아하시야가 「그들의 조언에 따라」 전쟁에 나갔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세 절에 걸쳐 조언이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이 반복은 아하시야의 통치가 무엇에 의해 움직였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는 왕이었지만, 그가 따르는 방향은 아합 집안의 조언에 의해 정해지고 있었습니다.

본문은 어머니와 아합 집안의 영향력을 강하게 강조합니다. 그러나 아하시야가 그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5절은 그가 실제로 그들의 조언에 따라 행동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영향을 받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선택한 사람입니다.

이 대목은 잠언의 지혜 전통과도 연결됩니다. 잠언 12:5는 의로운 사람의 생각과 악인의 계획을 대조하고, 잠언 13:20은 누구와 함께 걷는가가 삶의 방향을 바꾼다고 말합니다.

아하시야가 아합 집안과 맺은 관계는 단순한 개인적 친분이 아니었습니다. 왕실의 혼인과 정치적 동맹을 통해 이미 연결된 두 왕국의 관계였습니다.

그 관계가 이제 전쟁터로 이어집니다.

병든 왕을 찾아간 방문이 죽음으로 끝나다

역대하 22:5–7 본문 →

아하시야는 아합의 아들인 이스라엘 왕 여호람과 함께 아람 왕 하사엘을 상대로 전쟁에 나섰습니다.

전쟁터는 라못길르앗이었습니다. 라못길르앗은 요단강 동쪽 길르앗 지역의 중요한 성읍이었습니다. 이곳은 이전에도 북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의 분쟁 지역으로 등장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아합과 함께 이곳에서 전쟁을 벌이다가 위험에 빠졌고, 아합은 전투 중 죽었습니다(18:31–34). 그런데 이제 여호사밧의 손자인 아하시야가 아합의 아들 여호람과 함께 같은 지역으로 나갑니다.

두 세대의 왕들이 같은 왕실 동맹을 따라 같은 전쟁 지역에 이른 것입니다.

전투 중 북왕국의 여호람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상처를 치료하려고 이스르엘로 돌아왔습니다. 아하시야가 이스르엘로 간 이유는 북왕국 왕 여호람이 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7절은 그 방문에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합니다.

아하시야가 여호람을 찾아갔다가 몰락한 것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일이었습니다. 아하시야는 그곳에 가서 여호람과 함께 님시의 아들 예후를 만나러 나갔습니다. 예후는 아합 집안을 없애도록 여호와야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사람이었습니다.역대하 22:7 · 두루새김

예후는 북이스라엘 군대의 지휘관이었습니다. 열왕기하 9:1–10에 따르면, 엘리사가 보낸 예언자의 제자가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아합 집안에 대한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아하시야가 여호람을 방문한 곳은 바로 그 심판이 시작되는 현장이었습니다.

아하시야는 아합 집안의 도움을 받으며 왕권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안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을 때 그 자신도 거기에 휘말립니다.

다만 7절의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일」이라는 표현을 하나님이 아하시야에게 악한 조언을 따르도록 강요하셨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3–5절은 아하시야가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 설명하고, 7절은 그 선택이 결국 도달한 사건을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합니다.

또한 예후가 「여호와야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사람」이라고 해서 그가 행한 모든 행동이 무조건 의롭다고 평가되는 것도 아닙니다. 열왕기하 10:30–31은 예후가 아합 집안을 심판한 일을 인정하면서도,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온 마음으로 따르지는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6절에 「라마」라는 지명도 등장하는데, 이는 이 문맥에서 라못길르앗을 줄여 부른 형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6절에는 유다 왕이 「아사랴후」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앞뒤 문맥과 열왕기하 8:29의 같은 사건 기록을 보면 이는 아하시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일부 히브리어 사본과 고대 역본에도 아하시야라는 이름이 전합니다.

아합 집안의 심판이 유다 왕실까지 휩쓸다

역대하 22:8–9 본문 →

예후는 아합 집안을 심판하는 과정에서 유다의 지도자들과 아하시야 형제들의 아들들을 만나 죽였습니다.

여기서 심판의 영향이 북왕국을 넘어 유다 왕실로까지 확대됩니다.

예후는 아하시야도 찾아 나섰습니다. 사람들이 사마리아에 숨어 있던 아하시야를 붙잡아 예후에게 데려와 죽였습니다. 그들은 「그는 온 마음으로 여호와야훼를 찾았던 여호사밧의 자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묻어 주었습니다. 아하시야 집안에는 왕위를 지킬 힘이 없었습니다.역대하 22:9 · 두루새김

아하시야는 「아합 집안의 본을 따라」 살았고,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를 묻어 주는 사람들은 그가 누구의 자손인지를 기억합니다.

아하시야는 자신이 걸어간 길 때문에 몰락했지만, 자신이 걷지 않은 조상의 길 때문에 장례의 예우를 받습니다.

이것은 조상의 의로움이 후손의 악을 지워 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하시야는 이미 심판을 받아 죽었습니다. 다만 여호사밧의 신앙이 그 자손에 대한 기억 속에 남아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아하시야는 오므리 왕조의 후손이라는 관계를 통해 아합 집안의 영향력을 받았습니다. 그 관계는 그의 파멸에 깊이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여호사밧의 자손이었습니다. 그 관계는 그의 마지막 장례에서 기억되었습니다.

두 왕조와 연결된 한 왕의 생애가 여기서 끝납니다.

「왕위를 지킬 힘이 없었습니다」라는 표현은 왕위를 이을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확정하는 말과는 다릅니다. 왕권을 실제로 장악하고 유지할 만한 세력이 그 집안에 남아 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정치적 공백은 곧 더욱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아하시야의 형제들이 이미 죽었는데 그 형제들의 아들들이 등장한다는 것은 모순이 아닙니다. 형제들은 죽었지만 그들의 자녀들이 남아 있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기록된 인물들과 열왕기하 10:12–14에 등장하는 아하시야의 형제들 사이의 정확한 관계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열왕기하는 그들을 아하시야의 형제들이라고 부르고, 역대하는 형제들의 아들들이라고 부릅니다. 왕실 친척들을 넓은 의미에서 형제라고 불렀을 가능성은 있지만, 본문만으로 모든 인물 관계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역대하 22:9는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숨어 있다가 붙잡혀 예후에게 끌려와 죽었다고 기록합니다. 열왕기하 9:27–28은 사건을 다르게 서술합니다. 아하시야가 예후를 피해 달아났으며 므깃도에서 죽었고, 그의 신하들이 시신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묻었다고 전합니다. 두 기록의 장소와 시간 차이를 모두 만족시키는 상세한 이동 경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역대기는 그가 붙잡힌 일과 죽음에, 열왕기하는 도주와 죽음의 장소에 각각 초점을 맞춥니다. 양쪽 기록이 일치하는 것은 아하시야가 예후의 정변 과정에서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다른 아들들을 죽이다

역대하 22:10 본문 →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는 자기 아들이 죽은 것을 알고, 유다 왕실의 자손들을 모두 죽이기 시작했습니다.역대하 22:10 · 두루새김

이어지는 12절에서 아달랴가 그 나라를 다스렸다고 기록하므로, 왕위를 이을 수 있는 사람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하려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어떤 감정과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지, 누구의 도움을 받아 학살을 실행했는지는 본문이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이었는지, 왕권에 대한 야망이었는지를 하나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호람은 왕위에 올라 자기 형제들을 죽였습니다. 이제 아달랴는 아들이 죽자 왕실의 자손들을 죽입니다. 두 사람의 행동은 서로 다른 상황에서 이루어졌지만, 권력을 위해 가족의 생명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아달랴의 행동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일으킵니다.

유다의 왕권은 다윗 집안에 주어져 있었습니다. 역대하 21:7은 하나님이 다윗과 맺으신 언약 때문에 그의 집안을 멸망시키려 하지 않으셨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런데 아달랴는 다윗 왕조의 자손들을 없애려 합니다.

이것을 단순한 궁중 권력 다툼으로만 읽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아달랴의 행동은 다윗 왕조를 이어 가는 일 자체를 위태롭게 만듭니다.

이제 다윗의 집안은 어떻게 됩니까?

아달랴의 행동은 유다 왕실의 거의 모든 미래를 끊어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왕의 딸이 왕의 아들을 훔쳐 내다

역대하 22:11 본문 →

그러나 왕의 딸 여호사브앗은 죽임을 당하던 왕자들 가운데서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몰래 빼냈습니다. 그리고 요아스와 그에게 젖을 먹여 기르던 여자를 침대들이 있는 방에 숨겼습니다. 여호사브앗은 여호람 왕의 딸이자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며, 아하시야의 누이였습니다. 그가 요아스를 아달랴에게서 숨겨 주었으므로, 아달랴는 요아스를 죽이지 못했습니다.역대하 22:11 · 두루새김

이 장에서 가장 극적인 행동은 군사적 승리나 왕의 명령이 아닙니다.

한 여인이 아이 하나를 몰래 데리고 나오는 행동입니다.

여호사브앗은 왕실의 일원이므로 학살의 대상이 된 아이에게 다가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라는 사실은 아이를 하나님의 성전에 숨기는 일과 연결됩니다.

본문은 그가 몇 살이었는지 직접 말하지 않지만, 그를 먹여 기르던 여자가 함께 숨었다는 기록은 아이의 생존을 위해 단지 학살 현장에서 데리고 나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음을 일깨웁니다.

살아남으려면 먹고 자고 보살핌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달랴는 왕실의 자손들을 제거하여 왕권을 장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브앗은 왕권을 차지하려는 행동부터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먼저 한 일은 한 아이를 살리고 돌볼 수 있는 곳에 숨기는 것이었습니다.

왕조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 이 순간에는 왕좌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한 아이가 죽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10절의 「모두 죽이기 시작했습니다」라는 말 뒤에, 11절은 그 죽임에서 벗어난 아이를 보여 줍니다. 아달랴가 왕실의 자손들을 없애려고 했고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했지만, 실제로는 요아스가 살아남았습니다.

이것이 역대하 22장의 결정적인 반전입니다.

조금 더 깊이

「몰래 빼냈습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티그노브(⁨גָּנַב⁩)는 기본적으로 ‘훔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일반적으로 훔치는 행위는 다른 사람의 것을 부당하게 가져가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반대입니다. 여호사브앗은 아이를 빼앗아 죽이려는 세력으로부터 몰래 데리고 나옴으로써 그 생명을 지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방은 히브리어로 하다르 함미토트, 곧 침대들의 방이라는 뜻입니다. 침구를 보관하던 방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정확히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 방이 왕궁 안에 있었는지, 뒤에 나오는 하나님의 성전에 속한 공간이었는지도 본문만으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12절은 요아스가 하나님의 성전에 숨어 지냈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왕궁에서는 아달랴가, 하나님의 집에서는 요아스가

역대하 22:12 본문 →

마지막 절은 두 가지 사실을 나란히 놓습니다.

요아스는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성전에 숨어 6년을 지냈습니다. 그동안 아달랴가 그 나라를 다스렸습니다.역대하 22:12 · 두루새김

역대기에서 성전은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닙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하나님께 바칠 때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장소였고, 백성이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며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는 중심이었습니다(역대하 6–7장).

이제 그곳에 다윗 왕조의 남은 자손이 숨어 있습니다.

본문에 분명히 기록된 하나님의 행동은 7절의 심판입니다. 요아스의 구출은 여호사브앗이 행동한 결과로 기록됩니다. 독자는 다윗의 언약이라는 더 넓은 문맥 안에서 이 사건을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지는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은 그 약속 때문에 인간의 행동이 필요 없어지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한 아이의 생존은 실제로 그를 구해 낸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아하시야는 단 한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요아스는 여섯 해를 숨어 지냈습니다.

한 왕의 통치는 짧게 끝났지만, 감추어진 왕자의 시간은 길게 이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하 7:12–16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통해 그의 왕조를 세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시편 89:30–37도 다윗의 후손이 불순종할 때 징계를 받더라도 하나님이 자신의 언약을 저버리지 않으시리라는 긴장을 드러냅니다. 요아스가 살아남은 것은 다윗 왕조를 이어 갈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다음 장에서 여호야다가 다윗의 자손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약속을 언급하는 것도 이 배경 때문입니다(역대하 23:3). 신약의 마태복음 1:6–11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윗 왕조의 계보 안에 놓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이 역대하 22장의 여호사브앗을 직접 인용하거나 그녀의 행동을 예수님에 관한 사건의 예언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본문 사이의 연결은 다윗 왕조의 계승이라는 성경 전체의 주제에 있습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왕조의 미래

역대하 22:1–12 본문 →

여호사브앗은 왕실의 일원이었지만 왕실의 폭력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왕국을 지배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죽을 위기에 놓인 아이를 살아 있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작은 행동이 다윗 왕조를 이어 가는 데 결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악한 통치가 끝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말로 장을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아달랴는 왕궁에 있고, 요아스는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는 아달랴가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왕실의 아이 하나가 살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아이가 왕좌에 앉을 날이 언제인지는 아직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여섯 해 동안 이어진 숨겨진 삶뿐입니다.

왕궁에서는 아달랴가 다스렸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는 여호사브앗과 여호야다가 한 아이를 숨겨 지켰습니다.

여섯 해 동안, 다윗 집안의 남은 자손은 왕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에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