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18장

이 장의 자리 · 18–23장 · 홀로 남은 유다

무엇을 믿고 자신합니까?

열왕기하 18장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놀랍게도 이스라엘의 예언자가 아니라 아시리아의 사절에게서 나옵니다.

아시리아의 사절 랍사게는 예루살렘 성벽 앞에 서서 히스기야를 조롱합니다. 이집트를 믿는다면 어리석은 일이고, 군사력을 믿는다면 아시리아를 상대할 힘이 없으며, 여호와야훼를 믿는다고 해도 그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구해 주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앞부분에서 서술자는 히스기야가 누구를 믿었는지 밝힙니다. 뒷부분에서 아시리아의 사절은 바로 그 믿음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실제로 아시리아는 유다의 요새 성읍들을 점령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아시리아 왕에게 항복의 뜻을 전하고 막대한 은과 금을 바쳤습니다. 그런데도 아시리아의 군대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믿기에 아직도 버티고 있습니까?

이 장은 믿음이 현실의 위협을 얼마나 쉽게 제거하는지 보여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의 위협이 믿음의 근거를 어떻게 흔드는지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24분소단락 1118장 본문 읽기 →

모세가 만든 청동 뱀까지 부순 왕

열왕기하 18:1–4 본문 →

히스기야는 스물다섯 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스물아홉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는 자기 조상 다윗이 한 모든 일처럼 여호와야훼의 눈에 옳은 일을 했다.열왕기하 18:3 · 본디새김

아버지 아하스는 다윗과 달리 여호와야훼의 눈에 올바른 일을 하지 않았다고 평가받았습니다(16:2). 그런데 그 아들은 다윗이 한 일처럼 올바른 일을 했다고 평가받습니다.

그는 산당들을 없애고 기둥들을 부수고 아세라 상을 베어 버렸다. 또 모세가 만든 청동 뱀을 산산이 부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에게 제물을 태워 바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느후스단이라고 불렀다.열왕기하 18:4 · 본디새김

산당과 기둥과 아세라 상을 없앤 행동은 이전 왕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중요한 개혁입니다. 여러 유다 왕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도 산당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등장하는 청동 뱀은 다른 것들과 성격이 다릅니다.

이 뱀은 가나안의 우상을 본떠 만든 물건이 아닙니다. 모세가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셨던 물건을 왜 부수었을까요?

청동 뱀의 이야기는 민수기 21:4–9에 나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자 뱀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물었습니다. 백성이 죄를 인정하고 도움을 구했을 때,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뱀의 형상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청동으로 뱀을 만들었고, 뱀에게 물린 사람이 그것을 바라보면 살았습니다. 그 청동 뱀이 히스기야 시대까지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18장에서 사람들은 청동 뱀 자체에 제물을 태워 바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셨던 수단이 사람들의 종교적 경배를 받는 대상으로 바뀐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이 물건이 모세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이유로 보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로 그 물건까지 부수었습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사용하신 것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경배받기 시작한다면 더는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히스기야의 개혁은 단순히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적 관습을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신성한 의미를 갖게 된 물건조차, 그것을 사용하는 현재의 방식에 따라 판단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느후스단(⁨נְחֻשְׁתָּן⁩)은 뱀과 청동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표현과 소리상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따라서 이 이름에는 청동으로 된 뱀이라는 성격을 강조하는 말놀이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흔히 「청동 조각에 불과한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하지만, 이름의 형태만으로 히스기야가 정확히 어떤 뉘앙스를 담아 불렀는지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히스기야의 특별함은 무엇이었습니까?

열왕기하 18:5–8 본문 →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믿었다. 그의 뒤에 온 유다의 모든 왕 가운데 그와 같은 사람은 없었고, 그보다 앞선 왕들 가운데도 없었다.열왕기하 18:5 · 본디새김

랍사게는 히스기야에게 무엇을 믿느냐고 묻습니다. 이집트를 믿고 있다면 부러진 갈대 지팡이에 기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를 의지하지 말라고 백성에게 외칩니다.

히스기야를 칭찬하는 데 사용된 단어가 적의 공격을 통해 다시 등장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야훼에게 굳게 붙어」

그는 여호와야훼에게 굳게 붙어 그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지 않았고,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명령한 계명들을 지켰다.열왕기하 18:6 · 본디새김

그는 여호와야훼를 자신의 삶이 의지할 분으로 삼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바로 뒤에 계명들을 지켰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믿음과 순종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특히 「그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지 않았다」는 표현은 북이스라엘 왕들을 평가하는 반복적인 문장과 대조됩니다. 그 왕들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북이스라엘 왕들이 죄의 길을 떠나지 않은 반면, 히스기야는 여호와야훼를 따르는 길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같은 지속성이지만 전혀 다른 방향입니다.

성공과 반역

여호와야훼가 그와 함께했으므로 그는 어디로 나아가든 성공했다. 그는 아시리아 왕에게 반역하고 그를 섬기지 않았다.열왕기하 18:7 · 본디새김

앞 장의 아하스는 아시리아 왕에게 자신을 종이며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16:7). 이제 그의 아들은 아시리아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8절에는 블레셋 지역에서 거둔 군사적 성과도 기록됩니다. 히스기야는 가자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이 기록들은 히스기야가 왕국의 독립성을 회복하려 했으며, 상당한 정치적·군사적 성과를 거두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13절에서 아시리아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하여 요새 성읍들을 점령합니다. 따라서 7절의 성공을 어떤 위협도 받지 않거나, 모든 전쟁에서 손실 없이 승리한다는 의미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열왕기는 히스기야를 특별히 신뢰하는 왕으로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의 통치 시대에 유다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신뢰하는 왕의 시대에도 위기가 옵니다.

두 왕국의 운명이 나란히 놓입니다

열왕기하 18:9–12 본문 →

9절부터는 다시 사마리아의 함락을 기록합니다.

아시리아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를 포위했고, 세 해 만에 점령했습니다. 이스라엘 주민들이 아시리아로 유배되었습니다.

앞 장에서 사마리아 함락은 북이스라엘 역사의 결말이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같은 사건이 남유다 히스기야의 이야기를 둘러싼 배경이 됩니다. 이스라엘이 강대한 아시리아 앞에서 무너졌다는 사실을 독자가 알고 있을 때, 곧이어 유다에 접근하는 아시리아의 군대가 훨씬 더 위협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군사적 위협 이상의 대조가 있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그의 계약, 곧 여호와야훼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듣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았다.열왕기하 18:12 · 본디새김

히스기야는 여호와야훼의 계명을 지켰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의 목소리를 듣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대조는 두 왕국의 군사력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아시리아의 사절은 예루살렘 백성에게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명령할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고 아시리아 왕의 말을 들으라고 외칠 것입니다.

이제 예루살렘에는 서로 다른 두 목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성공했던 왕이 성전의 문을 뜯어냅니다

열왕기하 18:13–16 본문 →

13절은 독자를 갑자기 다른 현실로 데려갑니다.

히스기야 왕 십사 년째에 아시리아 왕 산헤립이 유다의 모든 요새 성읍을 치러 올라와 그곳들을 점령했다.열왕기하 18:13 · 본디새김

히스기야의 믿음에 대한 높은 평가가 이 현실을 가리지 않습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에 있는 아시리아 왕에게 전갈을 보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에게서 물러나 주십시오. 제게 지우시는 것은 무엇이든 감당하겠습니다.」 아시리아 왕은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부과했다.열왕기하 18:14 · 본디새김

여기서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은 아시리아 왕에 대한 자신의 반역을 인정하는 외교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야훼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한 기도와는 구별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꺼내 갔던 성전의 은과 금

히스기야는 여호와야훼의 집과 왕궁 보물창고에 있는 은을 모두 주었다.열왕기하 18:15 · 본디새김

아하스는 아시리아 왕의 도움을 얻으려고 여호와야훼의 집과 왕궁의 은과 금을 보냈습니다(16:8). 히스기야 역시 아시리아 왕을 물러나게 하려고 성전과 왕궁의 재물을 바칩니다.

아하스는 군사적 도움을 요청하며 아시리아 왕에게 종속적인 관계를 자청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아시리아에 반역했다가 군사적 패배를 겪은 뒤 압박을 받아 조공을 약속했습니다. 두 사건의 정치적 맥락과 동기는 다릅니다.

그럼에도 독자에게 남는 장면은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두 왕 모두 아시리아와의 관계 때문에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재물을 꺼냅니다.

그리고 히스기야의 경우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때 유다 왕 히스기야는 여호와야훼 성전의 문짝들과 자기가 덧입혀 놓은 문기둥들을 잘라 내어 아시리아 왕에게 주었다.열왕기하 18:16 · 본디새김

히스기야는 자신이 성전을 위해 마련했던 것을 아시리아 왕에게 넘겨야 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조공을 바쳤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신앙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그가 위대한 신앙의 왕이라는 이유로 조공과 굴복의 장면을 아무 의미 없는 일로 취급해서도 안 됩니다. 본문은 신뢰하는 왕이 실제 역사 속에서 심각한 위기를 겪고, 후퇴하고, 큰 대가를 치르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위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유다가 아시리아를 상대로 얼마나 심각한 군사적 위기를 겪었는지는 산헤립의 고대 왕실 기록에서도 확인됩니다. 산헤립은 유다의 요새 성읍들을 점령하고 히스기야를 예루살렘에 가두어 놓았다고 주장합니다. 그 기록은 아시리아 왕의 승리를 선전하기 위한 문헌이므로 그대로 중립적인 전황 보고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시리아가 유다의 여러 성읍을 공격했고 히스기야가 심각한 군사적 압박을 받았다는 큰 역사적 상황은 열왕기의 기록과 부합합니다. 16절은 히스기야가 성전에 덧입혔던 금속 장식을 떼어 내어 조공으로 바친 것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문장 자체는 문짝과 문기둥을 잘라 냈다고도 읽힙니다.

바로 그 수로 곁에서 — 아버지에게 말씀이 전해졌던 장소

열왕기하 18:17–18 본문 →

17절에서 산헤립은 세 명의 고위 관리를 큰 군대와 함께 예루살렘에 보냅니다.

다르단, 랍사리스, 랍사게라는 명칭은 아시리아의 고위 관직 또는 직책을 나타내는 칭호로 이해됩니다. 이들 가운데 이후 연설을 주도하는 사람은 랍사게입니다.

아시리아 왕은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를 큰 군대와 함께 라기스에서 예루살렘의 히스기야 왕에게 보냈다. 그들은 올라와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그렇게 올라와 도착한 뒤, 세탁공의 밭으로 가는 큰길에 있는 위쪽 못의 수로 곁에 섰다.열왕기하 18:17 · 본디새김

이사야 7:3을 보면 여호와야훼는 예언자 이사야에게 아들 스알야숩을 데리고 아하스를 만나러 나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만나야 할 장소가 바로 위쪽 못의 수로 끝, 세탁공의 밭으로 가는 큰길입니다. 두 본문은 같은 지리적 표현을 사용합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가 아람과 이스라엘의 침략을 두려워하던 때, 여호와야훼는 그곳에서 이사야를 통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사야 7:3–9).

그런데 이제 히스기야의 시대에 아시리아의 사절들이 같은 수로 곁에 섭니다.

아버지에게는 이곳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전해졌습니다. 아들에게는 같은 곳에서 믿지 말라는 외침이 들려옵니다.

포위된 성읍에서 물은 생존에 직결되는 자원입니다. 성읍 밖의 수로와 물 저장 시설은 공격하는 군대와 방어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본문이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은 아시리아의 사절들이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들릴 수 있는 장소에 군대를 대동하고 섰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왕에게 외교 문서만 전달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성읍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장면은 전투가 아니라 말로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랍사게가 이사야와 아하스의 과거 사건을 의식해 일부러 같은 장소를 골랐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에게 의도적인 상징 행위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히스기야는 다윗의 자손입니다. 여호와야훼는 다윗에게 그의 뒤를 이을 왕조에 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사무엘하 7:12–16). 그런데 다윗 왕조의 왕좌가 외국 제국의 위협을 받는다는 것은 그 약속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묻게 만듭니다.

「무엇을 믿느냐」 — 랍사게의 첫 번째 공격

열왕기하 18:19–25 본문 →

랍사게는 유다의 관리들에게 히스기야를 향한 말을 전합니다.

랍사게가 그들에게 말했다. 「히스기야에게 이렇게 전해 주시오. 위대한 왕, 아시리아 왕이 이렇게 말하오. 『네가 무엇을 믿고 그렇게 자신하느냐?』」열왕기하 18:19 · 본디새김

여기서 자신을 「위대한 왕」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시리아 왕실의 권위를 과시하는 표현입니다. 그에 비해 히스기야는 위대한 왕의 말을 들어야 하는 작은 나라의 통치자로 취급됩니다.

「『너는 전쟁을 치를 계략과 힘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입으로만 하는 말이다. 이제 네가 누구를 믿기에 나에게 반역했느냐?』」열왕기하 18:20 · 본디새김

아시리아에 반역하려면 충분한 군사적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다는 그럴 힘이 없습니다. 따라서 히스기야의 자신감은 현실적인 근거가 없는 말뿐이라는 것입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정치적 판단을 무너뜨린 다음, 그가 의지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차례로 공격합니다.

이집트는 부러진 갈대 지팡이입니다

「『보아라, 지금 너는 부러진 갈대 지팡이인 이집트를 믿고 있다. 사람이 거기에 기대면 그것이 손바닥에 박혀 손을 꿰뚫는다. 이집트 왕 파라오는 자기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그와 같다.』」열왕기하 18:21 · 본디새김

갈대 지팡이는 사람이 몸을 지탱하려고 붙잡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부러져 있다면 몸을 지탱하지 못할 뿐 아니라, 기대는 사람의 손을 찌르게 됩니다.

의지하던 것이 도리어 자신을 해치는 것입니다.

이집트에 의지하는 정책은 실제로 위험한 선택일 수 있었습니다. 이사야 30:1–5와 31:1–3에서도 여호와야훼는 이집트의 군사력에 기대는 유다의 태도를 비판하십니다.

다만 이 구절에서 히스기야가 이집트와 맺은 구체적인 군사 협정의 내용까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랍사게의 주장은 아시리아 측의 비난이므로, 그가 묘사한 의존 관계를 그대로 사실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야훼는 믿을 수 있습니까?

히스기야가 없앤 산당은 여호와야훼의 것이 아니었습니까?

「너희가 내게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믿는다.』라고 말한다면, 히스기야가 없앤 산당들과 제단들이 바로 그 신의 것이 아니냐? 히스기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너희는 예루살렘에 있는 이 제단 앞에서 엎드려 절해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았느냐?」열왕기하 18:22 · 본디새김

랍사게는 히스기야가 산당들을 없애고 예루살렘의 제단을 중심으로 예배하도록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행동을 여호와야훼께 대한 불경한 일처럼 해석합니다.

산당 가운데 일부는 실제로 여호와야훼를 예배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랍사게의 주장은 단순히 아무런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지어낸 말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인 점을 놓치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히스기야의 개혁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모든 종교적 시설을 최대한 많이 보존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방식에 따라 예배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2:5–14는 이스라엘이 자기 마음대로 장소를 선택하여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신 곳을 중심으로 예배하도록 요구합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개혁을 하나님께 불순종한 행동으로 뒤집어 해석합니다. 그는 단지 아시리아의 군사력을 과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유다의 신앙 자체를 이해하는 사람처럼 말하면서, 히스기야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쳤다고 주장합니다.

믿음을 무너뜨리는 가장 교묘한 말은 때때로 믿음의 언어를 사용하는 말입니다.

말 이천 마리를 주겠다

「이제 내 주 아시리아 왕과 어디 내기를 해 보아라. 네가 말에 태울 사람들을 마련할 수 있다면, 내가 네게 말 이천 마리를 주겠다.」열왕기하 18:23 · 본디새김

유다의 군사력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조롱하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24절도 같은 논리입니다. 유다는 아시리아의 보잘것없는 총독 한 명조차 상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시리아는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유다는 이미 여러 요새 성읍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랍사게의 조롱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허풍만은 아닙니다.

그런데 25절에서 랍사게는 마침내 하나님에 관한 주장을 직접 내놓습니다.

「지금 내가 여호와야훼 없이 이곳을 멸망시키려고 올라왔겠느냐? 여호와야훼가 내게 『이 땅을 치러 올라가서 멸망시켜라.』라고 말했다.」열왕기하 18:25 · 본디새김

열왕기하 18장은 여호와야훼가 실제로 랍사게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확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말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의 연설에서 중요한 것은 여호와야훼가 실제로 무엇을 말씀하셨느냐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아시리아의 승리를 이미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군사적 위협을 종교적 정당성으로 바꾸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랍사게는 이제 그 주장을 왕의 관리들에게만 전달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런데 아시리아가 하나님의 심판과 전혀 관계없는 세력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성경 전체의 관점과 맞지 않습니다. 이사야 10:5–15에서 아시리아는 하나님의 심판에 사용되는 도구로 묘사되지만, 동시에 자기 힘을 자랑하는 교만 때문에 책망받습니다.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어떤 나라를 사용하실 수 있다는 사실과, 그 나라의 통치자가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대변한다고 주장할 자격이 있다는 것은 다릅니다.

누구에게 말할 것인가 — 성벽 위 사람들을 향한 심리전

열왕기하 18:26–28 본문 →

26절에서 유다의 관리들이 랍사게에게 요청합니다.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말했다. 「부디 당신의 종들에게 아람말로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가 알아듣습니다. 성벽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서 저희에게 유다 말로 말씀하지 마십시오.」열왕기하 18:26 · 본디새김

아람말은 당시 서아시아에서 외교와 행정에 널리 사용되던 언어였습니다. 유다의 관리들도 이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외교적 대화를 관리들 사이에서 진행하고 싶어 했습니다. 성벽 위의 백성에게까지 아시리아의 위협이 직접 전달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랍사게는 정확히 그 반대의 행동을 합니다.

포위된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인가?

랍사게가 그들에게 말했다. 「내 주께서 이 말을 전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네 주인과 네게만이겠느냐? 너희와 함께 자기 똥을 먹고 자기 오줌을 마시게 될, 성벽 위에 앉아 있는 저 사람들에게 보내신 것이 아니겠느냐?」열왕기하 18:27 · 본디새김

그는 포위가 오래 지속되면 성읍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포위당한 도시는 외부에서 식량을 공급받기 어렵습니다. 물도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상황이 심각해지면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극단적인 고통을 겪게 됩니다.

열왕기하 6:24–29에서 사마리아가 포위되었을 때 벌어진 참상은 그런 상황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보여 줍니다. 랍사게는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그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위협합니다.

왕과 관리들은 정치적인 결정을 할 수 있지만, 포위로 인한 고통은 성벽 위에 서 있는 일반 백성들도 겪게 됩니다. 랍사게는 그 백성들에게 직접 말하려 합니다. 그들에게 두려움을 심어 주고, 왕의 판단을 의심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전쟁의 무기가 된 언어

랍사게가 서서 유다 말로 큰 소리로 외쳤다. 그가 말했다. 「위대한 왕, 아시리아 왕의 말을 들어라.」열왕기하 18:28 · 본디새김

그의 군대는 성벽 밖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성벽 안으로 들어갑니다.

군사적 공격이 성벽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면, 랍사게의 연설은 성읍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신뢰와 결속을 무너뜨리려는 공격입니다. 이후 랍사게는 히스기야를 거치지 않고 백성에게 직접 아시리아 왕의 제안을 전달합니다.

백성이 자기 왕의 말을 들을 것인지, 적의 말을 들을 것인지 결정하도록 압박받는 상황이 됩니다.

「살아라. 그러면 죽지 않을 것이다」 — 유배를 구원처럼 말하다

열왕기하 18:29–32 본문 →

랍사게의 연설은 이제 예루살렘 주민들을 직접 겨냥합니다.

「왕이 이렇게 말한다. 『히스기야가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그는 너희를 아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해 낼 수 없다.』」열왕기하 18:29 · 본디새김

여기까지는 왕의 군사적 능력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런데 곧바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히스기야가 『여호와야훼가 반드시 우리를 구해 낼 것이며, 이 성읍은 아시리아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해도, 그 말을 믿고 여호와야훼를 의지하지 마라.」열왕기하 18:30 · 본디새김

이제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능력뿐 아니라 그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까지 공격합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의 약속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마라. 아시리아 왕이 이렇게 말한다. 『나와 화친하고 내게로 나와라. 저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자기 무화과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고, 저마다 자기 물 저장 구덩이의 물을 마셔라.』」열왕기하 18:31 · 본디새김

앞에서는 포위당하면 자기 똥을 먹고 오줌을 마시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항복하면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고, 자기 물 저장 구덩이에서 물을 마실 수 있다고 약속합니다.

랍사게는 두려움과 안심을 번갈아 사용합니다.

이스라엘의 문학에서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살아간다는 표현은 평안하고 안정된 삶의 모습과 연결됩니다. 열왕기상 4:25는 솔로몬 시대의 평안을 설명하면서 유다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안전하게 살았다고 기록합니다. 미가 4:4에서도 사람들이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고 아무도 두렵게 하지 않는 평화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의 약속에는 다음 문장이 붙습니다.

「『내가 와서 너희를 너희 땅과 같은 땅,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 빵과 포도밭의 땅, 기름 나는 올리브나무와 꿀의 땅으로 데려갈 때까지 말이다. 살아라. 그러면 죽지 않을 것이다.』 히스기야가 『여호와야훼가 우리를 구해 낼 것이다.』라고 말하며 너희를 꾀더라도 그의 말을 듣지 마라.」열왕기하 18:32 · 본디새김

아시리아 왕은 유다 사람들이 영원히 자기 포도나무 아래에서 살게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그렇게 살도록 한 다음, 다른 땅으로 데려가겠다는 것입니다.

「너희 땅과 같은 땅」

랍사게는 아시리아가 데려갈 곳을 「너희 땅과 같은 땅」이라고 부릅니다. 그곳에는 곡식이 있고, 새 포도주가 있고, 포도밭과 올리브나무와 꿀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묘사는 신명기 8:7–9에서 이스라엘이 들어가 살게 될 좋은 땅을 설명하는 표현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신명기는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좋은 땅으로 인도하신다고 말합니다. 그곳은 물이 있고, 곡식과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와 올리브나무와 꿀이 있는 땅입니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신명기에서 그 땅은 여호와야훼가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땅입니다. 랍사게가 제안하는 곳은 아시리아 왕이 그들을 옮겨 보낼 땅입니다. 그는 다른 땅으로 강제로 옮겨지는 일을 마치 더 좋은 삶을 얻는 기회처럼 제시합니다.

아시리아는 실제로 정복한 나라의 사람들을 다른 지역으로 옮겼습니다. 따라서 랍사게의 제안은 단순히 평화롭게 새로운 땅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시리아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제국의 이주 정책에 따르라는 요구입니다.

랍사게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약속하면서, 그들이 누구의 백성으로 어디에서 살아갈 것인지는 아시리아 왕이 결정하도록 요구합니다.

그는 유다 사람들이 구원이라고 부르는 것의 의미를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마리아를 구해 냈느냐?」 —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이용하다

열왕기하 18:33–35 본문 →

랍사게의 연설은 이제 절정에 이릅니다.

「민족들의 신들이 저마다 자기 땅을 아시리아 왕의 손에서 정말 구해 냈느냐?」열왕기하 18:33 · 본디새김

그는 아시리아가 정복한 나라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사마리아까지 끌어들입니다.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스발와임과 헤나와 이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구해 냈느냐?」열왕기하 18:34 · 본디새김

사마리아는 실제로 아시리아에 함락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을 여호와야훼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아시리아의 공격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모든 땅의 신들 가운데 누가 자기 땅을 내 손에서 구해 냈기에, 여호와야훼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구해 내겠느냐?」열왕기하 18:35 · 본디새김

그는 여호와야훼를 다른 민족들의 신들과 같은 범주에 넣습니다. 다른 신들이 아시리아의 힘을 이기지 못했으므로 여호와야훼도 이기지 못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마리아가 멸망한 이유를 누가 제대로 알고 있는가?

열왕기하 17장은 사마리아가 왜 멸망했는지 오랫동안 설명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야훼가 아시리아보다 약하셨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구원하신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분과 맺은 계약을 저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랍사게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전혀 다르게 해석합니다. 아시리아가 승리한 것은 아시리아의 힘이 다른 모든 신보다 강하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같은 역사적 사건을 두고 전혀 다른 해석이 등장합니다.

열왕기는 사마리아의 멸망을 여호와야훼와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 속에서 이해합니다. 랍사게는 그 멸망을 아시리아의 절대적인 힘을 입증하는 사례로 사용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다는 사실은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능력이 없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아시리아가 여러 나라를 정복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에서 여호와야훼가 예루살렘을 구하실 수 없다는 결론이 자동으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말이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고 해서 그 말의 전체 논리까지 옳은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어떤 주장이 믿음에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모든 현실적 지적을 거짓이라고 취급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장은 아직 그 주장에 대한 하나님의 답을 들려주지 않습니다.

랍사게의 마지막 질문이 끝난 뒤, 예루살렘 성벽 위에는 침묵만 남습니다.

「그에게 대답하지 마라」 — 무너뜨리지 못한 침묵

열왕기하 18:36–37 본문 →

백성은 잠잠히 있었고 그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왕이 「그에게 대답하지 마라.」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열왕기하 18:36 · 본디새김

백성이 아무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침묵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 침묵을 곧바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승리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랍사게는 관리들이 아람말로 말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거절했습니다. 그는 일부러 유다 말로 외쳤습니다. 성벽 위 사람들에게 직접 말하고, 그들의 마음을 흔들고, 히스기야의 통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대했던 직접적인 응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의 연설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자리에서 백성이 왕의 명령을 어기고 아시리아 사절의 호소에 반응하는 장면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침묵은 랍사게가 열어 놓으려던 대화가 중단되는 장면입니다.

옷을 찢고 돌아온 세 사람

왕궁을 맡은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기록관 아삽의 아들 요아가 옷을 찢은 채 히스기야에게 와서 랍사게의 말을 전했다.열왕기하 18:37 · 본디새김

고대 이스라엘에서 옷을 찢는 행동은 큰 슬픔과 충격, 두려움, 모욕을 표현할 때 나타납니다. 이들이 정확히 어떤 마음으로 옷을 찢었는지 한 가지 감정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말을 평범한 외교적 요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들은 나라의 운명이 걸린 위협을 들었습니다. 또한 아시리아의 사절이 여호와야훼를 다른 민족들의 신들과 같은 수준에 놓으며 구원의 능력을 부정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옷을 찢고 돌아온 사람들

열왕기하 18:1–37 본문 →

이 장에서 믿음은 위협이 사라진 자리에 서 있지 않습니다. 위협의 말이 모두 들린 뒤에도 무엇을 신뢰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신뢰는 자신이 의지하는 대상에 대한 확신이지, 앞으로 겪을 모든 사건의 결과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보장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직 승리의 소식은 없습니다.

예루살렘을 포위하려는 군대는 여전히 성읍 밖에 있습니다. 아시리아 왕의 사절은 여호와야훼가 이 성읍을 구하실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옷을 찢은 세 사람이 그 말을 가지고 히스기야 앞에 섭니다.

아시리아의 말은 길었습니다. 예루살렘 백성의 대답은 없었습니다.

이제 히스기야가 그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