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1–4장 · 헤브론에서 왕이 되다

왕은 세워졌지만 형제들은 칼을 겨누었습니다

사울이 죽은 뒤 다윗은 마침내 유다의 왕이 됩니다. 오랫동안 도망자로 살았던 사람이 자기 백성의 왕좌에 앉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2장은 다윗의 즉위를 축하하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은 왕관도 왕좌도 아닙니다. 한 젊은이의 시신입니다.

그의 이름은 아사헬입니다. 그는 다윗 편의 장수였고, 누구보다 발이 빨랐지만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는 일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을 왕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같은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82장 본문 읽기 →

다윗이 처음으로 한 일 — 여호와야훼께 묻다

사무엘하 2:1–4 본문 →

사무엘하 2장은 짧은 대화로 시작합니다.

그 뒤 다윗이 여호와야훼에게 물었다. 「제가 유다의 성읍들 가운데 한 곳으로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여호와야훼가 그에게 말했다. 「올라가라.」 다윗이 말했다. 「어디로 올라가야 합니까?」 그가 말했다. 「헤브론으로 가라.」사무엘하 2:1 · 본디새김

다윗은 먼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지 않습니다. 유다의 성읍으로 올라가도 되는지부터 묻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올라가라고 허락하시자 그제야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습니다.

다윗은 이미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사무엘상 16:13). 사울이 죽었으므로 정치적으로도 새로운 기회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상황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고 권력을 차지해도 된다는 허락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먼저 여호와야훼께 묻습니다.

이 모습은 사무엘상 30:7–8에서 아말렉 사람들을 추격하기 전에 여호와야훼께 물었던 다윗을 떠올리게 합니다. 위기의 순간뿐 아니라 새로운 기회 앞에서도 다윗은 여호와야훼의 뜻을 구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헤브론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당장 온 이스라엘을 차지하라고 명령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하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모든 단계가 한꺼번에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말씀에 따라 움직입니다.

왜 하필 헤브론인가?

헤브론은 유다 산지에 있는 중요한 성읍이었습니다. 예루살렘보다 남쪽에 있으며, 이스라엘의 오래된 기억이 쌓여 있는 장소입니다.

창세기 23장에서 아브라함은 사라를 장사하기 위해 헤브론 근처 막벨라의 밭과 굴을 삽니다. 창세기 49:29–32에서는 야곱도 자기 조상들이 묻힌 그곳에 장사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또한 여호수아 14:13–15에서는 갈렙에게 주어진 기업으로 등장합니다. 유다 지파의 역사와 깊이 연결된 곳입니다.

다윗 개인에게도 이곳은 낯선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상 30:26–31에 따르면 다윗은 아말렉에게서 되찾은 전리품 일부를 유다의 장로들에게 보냈고, 그 명단에 헤브론도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헤브론은 다윗에게 역사적 의미가 있는 동시에 정치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던 곳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께서 헤브론을 지정하신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혼자 올라가지 않습니다.

두 아내 아히노암과 아비가일을 데리고 가고, 자신과 함께했던 사람들도 저마다 가족과 함께 데리고 갑니다. 시글락에서 헤브론으로 옮겨 간 것은 군사 지휘관 한 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따라다니던 사람들과 가족들이 함께 새로운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사무엘상에서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은 대부분 불안정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사울을 피해 다니면서 여러 곳에 머물렀고, 블레셋 땅의 시글락에서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제 유다의 성읍들에 정착합니다.

본문은 그들이 「헤브론의 성읍들에 살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다윗의 무리가 한곳에 모여 있는 임시 군대에서 지역에 거주하는 공동체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왕이 된다는 것은 군대를 거느리는 것만이 아닙니다. 함께 살아갈 백성과 그들의 삶을 책임지는 자리로 옮겨 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유다 사람들이 와서 그곳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집안의 왕으로 삼았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알렸다. 「사울을 묻은 이들은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입니다.」사무엘하 2:4 · 본디새김

이것은 다윗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름부음입니다. 첫 번째는 사무엘상 16장에서 사무엘이 다윗에게 행한 기름부음이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여전히 아버지의 집에 있던 젊은이였습니다.

첫 번째 기름부음에서는 하나님의 선택이 강조되었습니다. 두 번째 기름부음에서는 유다 공동체의 왕권 인정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아직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분명하게 「유다 집안의 왕」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공동체의 인정 사이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긴장이 남아 있습니다.

새 왕이 처음으로 말을 건넨 사람들

사무엘하 2:5–7 본문 →

다윗이 왕이 된 직후 전해진 소식은 뜻밖입니다.

사울을 묻은 사람들이 야베스 길르앗 주민들이라는 것입니다. 야베스 길르앗은 요단강 동쪽 길르앗 지역에 있는 성읍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사울과 특별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1장에서 암몬 사람 나하스가 야베스 길르앗을 공격했을 때, 사울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소집하여 그들을 구해 냈습니다. 사울이 왕으로서 처음 보여 준 중요한 구원 행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사울의 통치는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에게 추상적인 정치적 권위만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위험에 빠졌을 때 구해 준 사람의 통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죽은 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사울의 시신을 거두었습니다.

사무엘상 31:11–13에 따르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아들들의 시신을 벳산 성벽에 매달았다는 소식을 듣고 야베스 길르앗의 용사들이 밤새 이동해 시신을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하고 금식했습니다.

다윗은 바로 그 일을 칭찬합니다.

다윗은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말했다. 「그대들의 주인 사울에게 이런 인애를 베풀어 그를 묻어 주었으니, 그대들이 여호와야훼께 복을 받기를 바라오.」사무엘하 2:5 · 본디새김

「인애」라는 이 말은 단순한 친절이나 호의를 넘어, 이미 형성된 관계에서 보여 주는 신실한 사랑과 충성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은 죽은 사울에게 더 이상 보상받을 것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사울은 패배했고 왕권은 무너졌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전에 맺어진 관계를 잊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6절에서는 같은 말이 다시 등장합니다.

「이제 여호와야훼께서 그대들에게 인애와 신실함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오. 나도 그대들에게 이처럼 잘해 주겠소. 그대들이 이 일을 했기 때문이오.」사무엘하 2:6 · 본디새김

창세기 24:27에서는 아브라함의 종이 하나님의 인애와 신실함을 찬양할 때 이 두 개념이 함께 등장합니다. 창세기 47:29에서는 야곱이 요셉에게 자기 죽음 이후 해야 할 일을 부탁하며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두 경우 모두 관계를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는 행동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충성한 사람들만 칭찬하지 않습니다. 자신보다 앞선 왕에게 충성했던 사람들의 선한 행동도 존중합니다.

새로운 권력자가 등장하면 이전 권력자에게 충성했던 사람들은 쉽게 의심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정성껏 묻었다는 이유로 그들을 적대하지 않습니다.

7절에서 다윗은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격려하면서 사울이 죽었고 유다 집안이 자신을 왕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새 왕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소개하고 관계를 형성하려는 의도가 읽힙니다.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곧바로 다윗을 왕으로 인정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따라서 이 메시지는 죽은 사울을 기리는 진정한 애도의 연장이면서, 새로운 왕권 아래에서 관계를 맺으려는 정치적 행동이기도 합니다. 두 의미는 반드시 서로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충성했던 사람들을 자신의 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 둡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가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 왕이 세워지다

사무엘하 2:8–11 본문 →

이제 이야기의 무대가 바뀝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으로 세워지는 동안, 사울의 군대 지휘관 아브넬은 다른 곳에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아브넬은 사울의 군대를 지휘했던 인물입니다. 사무엘상 14:50–51에 따르면 그는 사울의 친족이기도 합니다.

사울은 죽었지만 그의 군대 지휘관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사울 왕가의 생존자를 중심으로 왕권을 이어 갈 수 있는 길이 있었습니다.

그가 세운 사람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입니다.

4절에서는 유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9절에서는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왕이 아니라 군대 지휘관이지만, 왕권의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 인물로 등장합니다. 이스보셋의 왕국에서 실제로 행동을 주도하는 사람은 자주 이스보셋 자신보다 아브넬이기 때문입니다.

마하나임에 세워진 또 하나의 왕권

마하나임은 요단강 동쪽에 있는 곳입니다. 창세기 32:1–2에서는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난 뒤 그 장소를 마하나임이라고 부릅니다.

사울이 죽은 길보아 전투 이후 블레셋의 압박이 있었던 상황에서, 요단강 동쪽은 사울 왕가가 세력을 재정비할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다만 본문은 아브넬이 그곳을 선택한 구체적인 전략적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9절은 이스보셋의 통치 영역을 길게 나열합니다. 길르앗과 아슈르 사람들, 이스르엘, 에브라임, 베냐민, 곧 온 이스라엘입니다.

「아슈르 사람들」이 정확히 어느 집단을 가리키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른 집단의 이름으로 이해하려는 읽기들도 있지만, 본문에 있는 이름만으로 지리적 범위를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온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유다와 구별되는 정치적 진영을 가리킵니다. 본문 자체가 곧바로 「그러나 유다 집안은 다윗을 따랐다」고 덧붙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이제 정치적으로 두 진영으로 갈라졌습니다.

이스보셋은 두 해 동안 다스렸고, 다윗은 헤브론에서 일곱 해 여섯 달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본문은 그 차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스보셋의 즉위 시점이 다윗보다 얼마나 늦었는지, 두 왕권의 통치 기간이 정확히 어떻게 겹치는지는 이 숫자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장은 다윗의 왕권을 하나님의 뜻으로 제시하면서 이스보셋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악한 자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사울의 왕가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관계와 충성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사울을 끝까지 지켰다는 사실은 그 충성이 반드시 비난받아야 할 행동이 아님을 이미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왕이 존재한다고 해서 사람들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갈등은 곧 실제 전투로 나타납니다.

「한번 겨루게 합시다」

사무엘하 2:12–17 본문 →

이제 다윗과 이스보셋은 이야기의 전면에서 잠시 사라집니다.

대신 두 군대 지휘관이 등장합니다. 이스보셋 편에는 아브넬이 있고, 다윗 편에는 요압이 있습니다. 아브넬이 마하나임에서 기브온으로 나아가자 요압과 다윗의 부하들도 그곳으로 나옵니다.

기브온은 베냐민 지역에 있는 성읍입니다(여호수아 18:25). 두 진영은 그곳의 못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습니다.

그 순간 아브넬이 먼저 입을 엽니다.

아브넬이 요압에게 말했다. 「젊은이들이 일어나 우리 앞에서 한번 겨루게 합시다.」 요압이 말했다. 「일어나게 하시오.」사무엘하 2:14 · 본디새김

이 짧은 대답으로 싸움이 시작됩니다.

양쪽에서 열두 명씩 나옵니다. 베냐민과 이스보셋 편에서 열두 명, 다윗 편에서 열두 명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참혹합니다.

그들은 저마다 상대의 머리를 움켜잡고 상대의 옆구리에 칼을 찔러 넣어 함께 쓰러졌다. 그리하여 기브온에 있는 그곳을 헬갓핫수림이라고 불렀다.사무엘하 2:16 · 본디새김

한쪽이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가 상대를 죽이면서 자신도 죽습니다.

서로를 적으로 규정한 사람들이 거둔 첫 결과는 승리가 아니라 모두의 죽음이었습니다.

처음의 겨루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제한적인 대결이 양쪽 군대 전체의 전투로 확대됩니다. 본문은 처음 열두 명씩의 대결이 어떻게 전면전으로 번졌는지 세부 과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직후 싸움이 치열해졌다고 기록합니다.

아브넬은 처음에 젊은이들이 겨루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시작한 싸움은 이제 그의 통제를 넘어섰습니다. 그의 군대가 패배하기 시작했고, 다윗 편의 사람들이 그들을 추격합니다.

그러나 승리한 쪽에서도 비극이 일어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겨루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사하크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동사는 놀다, 즐기다, 장난하다 등의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물론 이곳에서 실제로 즐거운 놀이를 제안했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뒤이어 무장한 젊은이들이 서로 맞붙기 때문입니다. 왜 열두 명씩을 선택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열두 지파를 상징한다고 읽을 수도 있지만, 본문은 그런 의미를 밝히지 않습니다. 헬갓핫수림이라는 이 지명의 정확한 뜻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날카로운 무기나 바위처럼 강한 사람들과 관련된 이름으로 풀이할 수 있지만, 어느 해석이 옳은지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사무엘상 8장에서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처럼 왕을 요구했을 때, 사무엘은 왕이 사람들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병거와 말 앞에서 달리게 하고, 자기 전쟁을 위해 동원하며, 그들의 소유를 가져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사무엘상 8:11–18). 그 경고에서 왕권의 위험은 왕이 백성을 보호하기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데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2장의 전투는 그 경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가장 빨리 달렸지만 살아남지 못한 사람

사무엘하 2:18–23 본문 →

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야기의 초점은 한 젊은이에게 집중됩니다.

그곳에는 스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었다. 아사헬은 들판의 가젤처럼 발이 빨랐다.사무엘하 2:18 · 본디새김

스루야는 다윗의 누이로 등장합니다(역대상 2:16). 따라서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은 다윗의 조카들입니다.

성경은 그의 능력을 「들판의 가젤」에 비유합니다. 탁 트인 곳을 빠르게 달리는 가젤처럼, 그는 다른 사람이 따라가기 어려운 속도를 지닌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능력이 그를 위험한 선택으로 이끕니다.

아사헬은 달아나는 아브넬을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19절은 그가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아브넬 한 사람을 목표로 삼고 곧장 달려갑니다.

아브넬은 뒤를 돌아보며 묻습니다. 「네가 아사헬이냐?」 아사헬은 「접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아브넬은 예상 밖의 말을 합니다.

아브넬이 그에게 말했다.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비켜 가서 젊은이들 가운데 하나를 붙잡고, 그가 걸친 것을 벗겨 가져라.」 그러나 아사헬은 그의 뒤를 쫓기를 그만두려 하지 않았다.사무엘하 2:21 · 본디새김

아브넬은 다시 경고합니다.

아브넬이 다시 아사헬에게 말했다. 「내 뒤를 쫓지 말고 돌아서라. 내가 어찌 너를 쳐서 땅에 쓰러뜨려야 하겠느냐? 그러고 나서 어떻게 네 형 요압을 향해 얼굴을 들겠느냐?」사무엘하 2:22 · 본디새김

아사헬에게 아브넬은 붙잡아야 할 적입니다. 그러나 아브넬에게 아사헬은 적군인 동시에 요압의 동생입니다.

그런데 아사헬은 듣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멈춰 선 자리

그가 돌아서기를 거부하자, 아브넬이 창의 뒤끝으로 그의 배를 찔렀다. 창이 그의 등 뒤로 뚫고 나왔고, 그는 그곳에 쓰러져 그 자리에서 죽었다. 아사헬이 쓰러져 죽은 곳에 이르는 사람은 누구나 멈춰 섰다.사무엘하 2:23 · 본디새김

아사헬의 빠른 발은 그를 아브넬에게 가까이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러나 위험 앞에서 멈추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젊은이의 무모함에 대한 교훈으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을 일으킨 지도자들의 결정이 있었고, 아사헬은 그 싸움 속에서 적장을 뒤쫓고 있었습니다.

전투의 속도에 휩쓸려 달리던 사람들이 죽은 사람 앞에서 걸음을 멈춥니다.

그리고 잠시 뒤 요압과 아비새가 아브넬을 추격합니다. 아사헬의 죽음이 남은 두 형제의 추격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전쟁은 개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죽음이 새로운 원한과 추격의 이유가 됩니다.

조금 더 깊이

당시 전쟁에서 적의 옷이나 무장을 빼앗는 것은 전리품을 얻는 행위이면서 승리를 드러내는 행동이기도 했습니다. 아브넬은 다른 사람을 붙잡아 그가 걸친 것을 가져가라고 말함으로써 아사헬에게 자신을 추격하는 대신 얻을 수 있는 다른 전과를 제시합니다. 창의 뒤끝을 사용했다는 사실 때문에 아브넬이 처음부터 죽일 의도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경고가 단순한 속임수였다고 볼 근거도 없습니다. 본문에서 확실한 것은 아브넬이 두 차례 물러나라고 요구했다는 사실과, 아사헬이 끝내 돌아서지 않았으며, 그 결과 아브넬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왜 멈췄는지 본문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시신을 보고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고, 죽은 사람이 중요한 인물임을 알아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칼이 언제까지나 사람을 삼키겠소?」

사무엘하 2:24–28 본문 →

요압과 아비새는 계속 아브넬을 뒤쫓습니다.

해가 질 무렵 요압과 아비새는 암마 언덕에 이릅니다. 베냐민 자손들은 아브넬 뒤로 모여 하나의 무리를 이루고 언덕 꼭대기에 섭니다.

아브넬이 요압에게 외쳐 말했다. 「칼이 언제까지나 사람을 삼키겠소? 끝내 쓰라린 일이 되리라는 것을 그대도 알지 않소? 언제까지 백성에게 자기 형제들을 뒤쫓지 말고 돌아서라고 말하지 않을 셈이오?」사무엘하 2:26 · 본디새김

칼은 원래 사람이 손에 쥐고 사용하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칼이 사람을 먹어 치우는 존재처럼 묘사됩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칼을 듭니다. 그러나 싸움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점점 그 싸움에 끌려 들어갑니다. 처음에 설정했던 목적보다 원한과 보복이 더 큰 힘을 갖게 됩니다.

승리한 사람에게도 쓰라림이 남을 수 있습니다.

다윗 편은 이겼지만 아사헬이 죽었습니다. 그의 형 요압과 아비새는 동생을 잃었습니다. 적군을 물리쳤다는 사실이 그들의 상실을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그는 이제 상대편을 「형제들」이라고 부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이스보셋의 부하들과 다윗의 부하들, 베냐민 사람들과 유다 사람들, 아브넬의 군대와 요압의 군대를 구별하며 진행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지파들은 모두 야곱의 후손이라는 공동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왕을 따르게 되었지만, 같은 백성이라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외적을 물리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있었습니다.

아브넬은 앞에서 젊은이들을 겨루게 하자고 제안했던 사람입니다. 지금 그가 싸움을 멈추자고 외치는 시점은 자신의 군대가 패배하고 추격당하던 때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에는 진정한 통찰과 현실적인 필요가 함께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가 자신들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말하고 있다고 해서 그 말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말만으로 그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아브넬이 지금 말하는 형제라는 사실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도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많은 사람이 죽고 나서야 그 사실을 말합니다.

요압은 왜 추격을 멈추었는가?

요압이 말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오. 그대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백성은 아침부터 저마다 자기 형제를 뒤쫓는 일을 그만두었을 것이오.」사무엘하 2:27 · 본디새김

요압이 뿔나팔을 붑니다.

요압이 뿔나팔을 불자 온 백성이 멈춰 섰다. 그들은 더 이상 이스라엘을 뒤쫓지 않았고, 더 이상 싸우지도 않았다.사무엘하 2:28 · 본디새김

처음에는 죽음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이제는 살아 있는 지휘관의 명령이 더 이상의 죽음을 멈추게 합니다.

요압과 아브넬은 자신들의 결정을 통해 전투를 시작하거나 확대하는 데 관여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의 말과 명령을 통해 그 전투를 멈춥니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처럼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선택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멈추는 일에도 사람들의 선택이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갈라놓은 왕권 경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날 더 많은 형제를 죽이는 일만큼은 멈출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싸움이 멈췄다고 해서 그날의 죽음까지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요압의 대답은 해석이 갈리는 구절입니다. 하나의 읽기는 요압이 14절에서 아브넬이 먼저 싸움을 제안한 일을 지적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브넬이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서로 싸우거나 추격할 일이 없었으리라는 뜻입니다. 다른 읽기는 아브넬이 방금 전 26절에서 추격을 멈추라고 요청한 말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읽을 경우 요압은 아브넬이 말하지 않았더라면 다음 날 아침까지 추격이 계속되었을 것이라고 답하는 셈입니다. 히브리어 문장의 시간 표현과 동사의 연결은 두 읽기를 가르는 데 충분히 명료하지 않습니다. 본디새김은 첫 번째 방향으로 읽으면서도 정확한 시점에는 여지를 남겨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압의 말이 오로지 처음 싸움을 일으킨 책임을 추궁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추격을 멈추게 하는 요청에 응답하는 것인지는 단정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승리의 숫자와 한 사람의 이름

사무엘하 2:29–32 본문 →

전투가 끝난 뒤 본문은 양쪽 군대가 돌아가는 모습을 기록합니다.

아브넬과 그의 사람들은 밤새 걸어서 요단강을 건너 마하나임으로 돌아갑니다. 요압도 추격을 중단하고 자기 사람들을 모읍니다.

요압은 아브넬을 뒤쫓다가 돌아와 온 백성을 모았다. 다윗의 부하들 가운데 열아홉 명과 아사헬이 없었다.사무엘하 2:30 · 본디새김

31절에는 아브넬과 베냐민 편의 전사자가 삼백육십 명이라고 기록됩니다. 숫자만 비교하면 다윗 편의 승리는 분명합니다.

다윗 편의 피해를 「스무 명」이라고 하지 않고 「열아홉 명과 아사헬」이라고 기록합니다. 아사헬을 다른 전사자들과 구별하여 이름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는 단순히 전투 결과에 포함되는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빠르게 달리던 젊은이였고, 요압과 아비새의 동생이었고, 아브넬의 경고에도 돌아서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형제들에게 남을 상실이자 앞으로의 이야기에도 영향을 미칠 사건입니다.

그들은 아사헬을 옮겨 베들레헴에 있는 그의 아버지 무덤에 묻었다. 요압과 그의 사람들은 밤새 걸었고, 그들이 헤브론에 있을 때 날이 밝았다.사무엘하 2:32 · 본디새김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기도 합니다(사무엘상 16:1–13). 아사헬 역시 다윗과 친족 관계에 있었으므로, 그의 시신을 가족의 무덤에 장사하는 장면은 전쟁의 죽음을 한 집안의 상실로 되돌려 놓습니다.

전쟁터에서는 아사헬이 병사였습니다.

하지만 무덤 앞에서 그는 한 가족의 아들이며 형제입니다.

처음에 다윗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고 헤브론으로 올라왔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장의 마지막에서 헤브론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은 승리한 군대의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동료와 형제를 잃은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헤브론은 왕권의 시작을 알리는 장소인 동시에 전쟁의 상처를 안고 돌아오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약속은 이루어지기 시작했지만, 평화는 아직 오지 않았다

사무엘하 2:1–32 본문 →

하나님의 약속은 실제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사람이 평화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다윗 편의 승리를 기록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날의 전투를 직접 명령하거나 승리를 약속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어 가신다는 믿음이, 그 일을 앞당기기 위해 사람들이 선택한 모든 방법까지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과, 그 때문에 이스라엘의 형제들이 서로 죽여야 한다는 주장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다윗이 왕이 된 헤브론에 새벽이 밝았습니다.

새 왕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침을 맞이하기까지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사헬의 형제들은 밤새 길을 걸었습니다. 아브넬도 자기 사람들과 함께 밤길을 걸어 마하나임으로 돌아갔습니다. 두 무리는 각자의 왕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이 싸웠던 이유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한쪽의 승리가 끝났을 때에도, 다른 쪽과 다시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과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헤브론에 아침이 왔습니다.

그러나 아사헬은 그 아침을 보지 못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