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풀어 읽기 · 1장

이 장의 자리 · 1–4장 · 헤브론에서 왕이 되다

왕관 앞에서 옷을 찢은 다윗

사울이 죽었습니다. 오랫동안 다윗을 죽이려 했던 왕이 사라졌습니다. 다윗은 더 이상 도망자가 아니어도 될지 모릅니다. 이미 사무엘에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그에게 사울의 죽음은 왕위로 나아갈 길이 열렸다는 소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1장에서 다윗이 처음 하는 일은 왕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옷을 찢는 것입니다.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울이 죽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사울이 죽은 다음, 다윗이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입니다.

왕이 되는 길에서 다윗은 자신이 어떤 왕이 될 것인지를 처음으로 드러냅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71장 본문 읽기 →

같은 날의 승리와 패배

사무엘하 1:1–4 본문 →

사무엘하의 첫 문장은 다윗과 사울의 운명을 나란히 놓습니다.

사울이 죽은 뒤, 다윗은 아말렉을 치고 돌아와 있었다. 다윗은 시글락에서 이틀 동안 머물렀다.사무엘하 1:1 · 본디새김

사무엘상 30장에서 다윗은 아말렉 사람들에게 약탈당한 시글락을 되찾기 위해 싸웁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성읍에 불을 지르고 다윗의 가족과 동료들의 가족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절망한 부하들은 다윗을 돌로 치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야훼께 묻고, 추격하라는 응답을 받은 뒤 출전하여 포로와 재산을 되찾습니다(사무엘상 30:1–20).

그다음 장면에서 사울은 정반대의 운명을 맞습니다.

사무엘상 31장에서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패배합니다. 사울의 아들들이 죽고, 사울 자신도 길보아 산에서 죽습니다. 다윗은 빼앗긴 가족을 되찾았지만, 사울은 아들들과 자신의 생명을 잃습니다.

여기에 아말렉이라는 이름이 특별한 울림을 더합니다. 사울은 과거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고, 바로 그 사건을 계기로 사무엘에게 왕권을 잃으리라는 선언을 들었습니다(사무엘상 15:1–29). 그런데 사무엘하가 시작될 때 다윗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돌아왔고, 잠시 뒤 사울을 죽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아말렉 사람으로 밝혀집니다.

이것만으로 그 아말렉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왕권이 흔들리기 시작했던 사건과 그의 죽음을 전하는 장면에 똑같은 민족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독자가 지나치기 어려운 연결입니다.

다윗이 시글락에 머문 지 셋째 날, 한 사람이 찾아옵니다.

그의 옷은 찢겨 있고 머리에는 흙이 묻어 있습니다. 옷을 찢고 머리에 흙을 뒤집어쓰는 행동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비통함과 재난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입을 열기도 전에 패배의 소식을 몸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땅에 엎드려 절합니다. 전쟁에서 도망쳐 온 사람이 다윗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아직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지 않았지만, 이 사람은 다윗을 자신이 찾아가야 할 권위자로 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습니다. 대답은 차례로 무거워집니다.

백성이 도망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사울과 요나단도 죽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소식에는 다윗의 삶에서 서로 정반대의 자리에 있었던 두 사람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사울은 그를 죽이려고 추격했던 사람이고,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의 뜻을 거슬러서까지 그를 지켜 주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편의 사람인 동시에 같은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왕관을 가져온 사람의 이야기

사무엘하 1:5–10 본문 →

젊은이는 자신이 우연히 길보아 산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곳에서 사울이 창에 기대어 있었고, 병거와 기병들이 그를 추격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을 발견하고 불렀으며, 고통 속에서 자기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젊은이는 그 부탁을 실행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 곁에 서서 그분을 죽였습니다. 그분이 쓰러진 뒤에는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분 머리에 있던 왕관과 팔에 있던 팔찌를 집어 이곳으로 제 주인께 가져왔습니다.」사무엘하 1:10 · 본디새김

중요한 것은 사무엘하 1장이 젊은이의 말을 사실로 보증하는 서술이 아니라, 다윗에게 전달된 그의 증언으로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다윗이 그 증언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앞으로의 사건을 결정합니다.

왕관은 사울의 왕위를 상징합니다. 팔찌도 왕의 신분과 위엄을 드러내는 장신구입니다. 젊은이는 사울의 죽음을 증명할 만한 물건들을 다윗에게 내놓고, 그를 「제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어떤 보상을 기대했는지는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전 왕의 상징물을 다윗에게 가져오는 행동에는 왕권의 변화라는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반응은 그가 기대했을 법한 것과 전혀 다릅니다.

조금 더 깊이

9절에서 사울의 상태를 설명하는 「샤바츠가 나를 붙잡았고」라는 표현은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히브리어 샤바츠는 이곳에만 나타나는 말로, 정확한 뜻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어떤 종류의 극심한 신체적 고통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특정한 증상으로 확정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가능한 읽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젊은이가 사울의 시신이나 왕의 소지품을 발견한 뒤, 다윗에게 공을 인정받을 목적으로 자신이 사울의 마지막 순간을 도왔다고 꾸며 냈을 가능성입니다. 사무엘상 31장의 서술을 사건의 실제 경위로 읽는다면 이 해석이 자연스럽습니다. 둘째, 사울이 자기 칼 위에 엎어진 뒤에도 완전히 숨이 끊어지지 않았고, 젊은이가 그를 발견하여 죽였을 가능성입니다. 다만 사무엘상 31장은 무기를 든 부하가 사울의 죽음을 확인했다고 서술하므로, 이 두 설명을 하나의 사건으로 결합하려면 본문에 없는 상황을 추가로 가정해야 합니다. 어느 쪽인지를 확정할 충분한 정보는 없습니다.

기회 앞에서 옷을 찢다

사무엘하 1:11–16 본문 →

젊은이가 왕관을 내놓자 다윗은 자기 옷을 찢습니다.

다윗이 자기 옷을 움켜잡고 찢었다.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했다.사무엘하 1:11 · 본디새김

젊은이는 찢어진 옷을 입고 도착했고, 다윗은 소식을 들은 뒤 직접 옷을 찢습니다. 젊은이의 외적인 애도 표시가 어떤 마음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다윗의 슬픔은 이어지는 행동으로 분명해집니다.

그들은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 여호와야훼의 백성과 이스라엘 집안을 두고 애도하며 울었고, 저녁까지 금식했다.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 여호와야훼의 백성과 이스라엘 집안이 칼에 쓰러졌기 때문이다.사무엘하 1:12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의 백성」과 「이스라엘 집안」이라는 표현은 사울의 죽음을 개인적인 권력 경쟁의 결말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비극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원수였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왕이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의 백성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쓰러진 사람들은 사울의 군사이기 이전에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이었습니다.

다윗에게 사울의 죽음은 자신의 문제가 해결된 사건이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이 큰 상처를 입은 사건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4장에서 다윗은 동굴 안에서 사울을 죽일 기회를 얻었습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은 그 기회를 이용하라고 했지만,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만 잘랐고 그것마저 마음에 걸려 했습니다.

사무엘상 26장에서도 다윗은 잠든 사울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비새가 사울을 창으로 찌르겠다고 나서자 다윗은 이를 막았습니다. 그때 다윗이 제시한 이유는 사울이 선한 왕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사울이 여전히 「여호와야훼께서 기름 부으신 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그에게 말했다. 「네 손을 뻗어 여호와야훼께서 기름 부으신 이를 죽이는 것이 어찌 두렵지 않았느냐?」사무엘하 1:14 · 본디새김

왕이 인간의 권력으로만 세워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을 드러냅니다. 사울이 여호와야훼께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사무엘서는 이미 그의 불순종과 잘못을 여러 차례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의 왕권을 거두시겠다고 선언하셨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선언을 자신의 손으로 사울을 제거해도 된다는 허락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왕권을 주신 하나님이 사울의 왕권을 끝내실 분이기도 하다고 믿었고, 그 결정을 앞질러 자기 손으로 실현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위를 약속하셨다고 해서, 그 왕위를 얻기 위한 모든 수단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젊은이를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이 그에게 말했다. 「네 피에 대한 책임은 네게 있다. 네 입이 『제가 여호와야훼께서 기름 부으신 이를 죽였습니다.』 하고 너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기 때문이다.」사무엘하 1:16 · 본디새김

본문이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다윗이 젊은이의 자기 증언을 결정적인 근거로 삼았다는 사실과, 사울을 죽였다는 행위를 왕위 계승에 도움을 준 공로가 아니라 처벌받을 일로 판단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젊은이의 이야기는 끝납니다.

하지만 다윗에게는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습니다.

그 말은 판결문이 아니라 노래가 됩니다.

조금 더 깊이

다윗은 그가 실제로 사울을 죽였다는 별도의 증거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가 자기 입으로 한 말을 근거로 판결합니다. 따라서 본문을 읽으면서 다윗의 행동을 무조건 정당한 재판이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대로, 젊은이가 거짓말쟁이였으므로 다윗이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고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패배를 기억하는 방법

사무엘하 1:17–21 본문 →

17절에서 이야기의 형식이 바뀝니다.

이제 질문과 대답이 사라지고 시가 시작됩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을 위해 애가를 부릅니다. 앞의 장면에서 다윗은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 사람을 심판했습니다. 이제 그의 관심은 죽은 이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로 옮겨 갑니다.

그는 유다 자손에게 활을 가르치라고 했다. 그것은 야샤르의 책에 기록되어 있었다.사무엘하 1:18 · 본디새김

실제 활쏘기 훈련을 가르치라는 뜻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배한 직후이므로 군사적인 준비를 명령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31:3에서 블레셋의 궁수들이 사울을 공격했다는 사실도 이런 읽기와 연결됩니다.

반면 뒤따르는 애가의 이름이 「활」이었고, 유다 사람들에게 그 노래를 가르치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22절에서 요나단의 활이 노래의 중요한 이미지로 등장합니다. 어느 쪽인지는 원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야샤르의 책은 여호수아 10:13에도 등장합니다. 두 곳의 언급을 보면 이스라엘의 중요한 사건을 기록한 자료였음을 알 수 있지만, 그 책 전체의 내용이나 성격을 자세히 재구성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해석을 따르든 18절은 패배를 그 자리에서 끝나게 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사건에서 무언가를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무기를 다루는 훈련이든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노래이든, 길보아에서 일어난 일은 다음 세대가 기억해야 할 사건이 됩니다.

이어 다윗의 노래가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네 높은 곳에서 죽임을 당했다. 어찌 용사들이 쓰러졌는가.」사무엘하 1:19 · 본디새김

「높은 곳」은 전쟁이 벌어진 산악 지형을 떠올리게 합니다. 노래의 뒤에서는 길보아 산이 직접 등장합니다.

「어찌 용사들이 쓰러졌는가」라는 표현은 25절과 27절에도 반복됩니다. 이 말은 패배의 이유를 질문하는 군사적 분석이 아닙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하는 애통함의 외침입니다.

반복되는 탄식은 노래의 진행에 따라 점점 의미가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의 패배를 가리키고, 중간에서는 요나단의 죽음에 집중하며, 마지막에는 사라진 용사들의 힘과 무기를 애도합니다.

노래는 한 민족의 슬픔에서 시작하여 한 사람을 잃은 다윗의 슬픔으로 좁혀 갑니다.

「가드에 알리지 마라. 아스글론 거리에서 기쁜 소식으로 전하지 마라.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기뻐할까 두렵다. 할례받지 않은 자들의 딸들이 환호할까 두렵다.」사무엘하 1:20 · 본디새김

가드와 아스글론은 블레셋의 주요 성읍들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죽음이 블레셋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사무엘상 31:9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사울의 죽음을 널리 알렸다고 기록합니다. 다윗의 말은 애가 속에서 터져 나오는 소망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적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차마 보고 싶지 않은 마음입니다.

20절에서는 블레셋의 딸들이 기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24절에서는 이스라엘의 딸들에게 사울을 위해 울라고 요청합니다. 같은 죽음이 한쪽에는 승리의 기쁨이고 다른 쪽에는 깊은 슬픔입니다.

이어 다윗은 전쟁터 자체를 향해 말합니다.

「길보아의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기를, 봉헌물을 내는 밭도 없기를. 거기서 용사들의 방패가, 기름을 바르지 않은 사울의 방패가 더럽혀졌기 때문이다.」사무엘하 1:21 · 본디새김

이슬도 내리지 말고 비도 내리지 말라는 말은 실제로 길보아에 영구적인 가뭄이 일어나리라는 예언이 아닙니다. 그 땅이 생명을 기르는 장소로 남아 있는 것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슬프다는 시적인 저주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끊어졌으니 땅의 풍요도 멈추라는 것입니다.

전쟁의 패배가 왕의 권위를 얼마나 무력하게 만들었는지를, 다윗은 버려진 방패 하나로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기름을 바르지 않은 사울의 방패」라는 표현을 왕의 기름부음이 취소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죽 방패에 기름을 발라 관리하는 일은 이사야 21:5에서도 떠올릴 수 있는 관습입니다. 전쟁터에 버려진 방패는 더 이상 기름을 발라 가꿀 사람이 없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다만 시 전체의 문맥에서는 기름이라는 말이 사울의 왕적 신분까지 연상시킵니다. 앞에서 다윗은 사울을 여호와야훼께서 「기름 부으신 이」라고 불렀습니다. 두 표현을 동일한 뜻으로 읽을 수는 없지만, 그 나란함은 인상적입니다.

죽은 왕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사무엘하 1:22–24 본문 →

이제 노래는 사울과 요나단의 생전 모습을 떠올립니다.

「죽임당한 이들의 피에서, 용사들의 기름진 살에서 요나단의 활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고, 사울의 칼은 빈 채로 돌아오지 않았다.」사무엘하 1:22 · 본디새김

이는 두 사람이 전쟁에서 보여 주었던 용맹을 기리는 표현입니다. 지금은 패배했지만, 그들의 삶 전체가 무능하거나 비겁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요나단이 용맹한 전사였다는 사실은 사무엘상 14장에서 이미 잘 드러납니다. 그는 무기를 든 부하 한 사람과 함께 블레셋 진영으로 나아가 싸웠습니다. 그때 요나단은 여호와야훼께서 많은 사람으로든 적은 사람으로든 구원하시는 데 장애가 없다고 고백했습니다(사무엘상 14:6). 사울 역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여러 전쟁을 이끌었습니다(사무엘상 14:47–48).

다윗은 그들이 마지막 전투에서 졌다는 사실 때문에 이전의 모든 용기를 지워 버리지 않습니다.

「살아 있을 때 사랑받고 다정했던 사울과 요나단은 죽어서도 갈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빨랐고, 사자보다 강했다.」사무엘하 1:23 · 본디새김

사울과 요나단은 늘 뜻이 같았던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다윗을 대하는 태도에서 둘은 깊이 갈라졌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했지만, 요나단은 그를 보호했습니다. 사울은 요나단에게 다윗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와 그의 왕권이 굳게 서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기까지 했습니다(사무엘상 20:30–31).

그런데 다윗은 두 사람이 「죽어서도 갈라지지 않았다」고 노래합니다.

애가는 삶의 모든 갈등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문서가 아닙니다. 죽은 사람을 기리면서 그에게서 기억할 만한 것을 선택하여 노래하는 문학입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갈등을 부각하기보다, 마지막 전투에서 함께 쓰러진 아버지와 아들을 한 쌍의 용사로 기억합니다.

사울의 잘못을 기억하는 것과 사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반드시 이상적인 인물로 미화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 사람의 삶을 자신과 맺었던 적대 관계 하나로만 설명하지 않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현실의 악이나 부당함을 모른 체하라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사울에 대한 다윗의 평가에는 분명한 도덕적 판단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울에게서 도망쳤고, 그의 살해 시도가 잘못되었음을 여러 차례 지적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딸들아, 사울을 두고 울어라. 그는 너희에게 진홍빛 옷을 호화롭게 입혔고, 너희 옷에 금장식을 달아 주었다.」사무엘하 1:24 · 본디새김

진홍빛 옷과 금장식은 풍요롭고 영화로운 삶을 나타내는 이미지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통치 아래에서 이스라엘이 누렸던 번영을 떠올립니다.

다윗은 사울의 죽음에 대해 자신이 입었던 피해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이 사울에게서 받은 유익도 기억합니다.

그렇게 노래는 사울을 향한 공동체의 슬픔을 충분히 표현한 뒤, 다윗 개인에게 가장 큰 상실로 다가온 사람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요나단입니다.

왕위보다 소중했던 사랑

사무엘하 1:25–27 본문 →

「어찌 용사들이 싸움 한가운데서 쓰러졌는가. 요나단이 네 높은 곳에서 죽임을 당했다.」사무엘하 1:25 · 본디새김

노래의 처음에 등장했던 탄식이 다시 울립니다.

그러나 이제 이름이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의 영광이 쓰러졌다고 했지만, 이제는 요나단이 쓰러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26절에서 다윗은 처음으로 요나단을 직접 부릅니다.

「내 형제 요나단아, 너 때문에 내 마음이 아프다. 너는 내게 참으로 다정했다. 나를 향한 네 사랑은 여인들의 사랑보다 놀라웠다.」사무엘하 1:26 · 본디새김

사무엘상 18:1–4에서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합니다. 두 사람은 언약을 맺습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겉옷과 군복, 칼과 활과 띠를 다윗에게 줍니다. 그 행동에는 개인적인 우정뿐 아니라 왕자의 신분을 지닌 요나단이 다윗을 어떻게 대했는지가 드러납니다.

사무엘상 20장에서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의 뜻을 거스르면서 다윗을 보호합니다. 두 사람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서로의 집안에까지 이어질 신의를 약속합니다(사무엘상 20:12–17, 42).

사무엘상 23:17에서는 요나단이 다윗에게 더욱 놀라운 말을 합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며 자신은 그의 다음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나단은 왕의 아들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왕위를 이을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윗이 왕이 될 것을 인정하고 그를 지지했습니다.

이것이 요나단의 사랑이 지닌 특별한 무게입니다.

그는 다윗이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곁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을 지지하는 일이 자신의 아버지와 충돌하고 왕위 계승에 대한 기대와도 긴장 관계에 놓일 때에도 다윗을 선택했습니다.

따라서 다윗이 「나를 향한 네 사랑은 여인들의 사랑보다 놀라웠다」고 노래한 것은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극대화한 표현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 특별함에는 개인적인 친밀함과 언약에 대한 충실함, 그리고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넘어선 희생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이제 요나단은 죽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는 날이 가까워졌지만, 그 왕권을 누구보다 기꺼이 인정했던 친구는 그날을 함께 맞이하지 못합니다.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열린 바로 그 순간, 다윗은 왕위보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어찌 용사들이 쓰러지고, 전쟁 무기들이 사라졌는가.」사무엘하 1:27 · 본디새김

여기서 「전쟁 무기들」은 단순히 잃어버린 칼과 활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해 싸웠던 용사들의 사라진 힘을 떠올리게 합니다. 앞에서는 요나단의 활과 사울의 칼이 생생하게 묘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기를 사용하던 사람들은 이제 없습니다.

다윗의 마지막 말은 미래의 계획이 아니라 상실에 대한 탄식입니다.

조금 더 깊이

25절의 「네 높은 곳」에서 「네」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지, 요나단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스라엘의 높은 곳에서 시작한 탄식이 요나단의 죽음으로 되돌아온다는 시적 연결은 분명합니다. 한편으로 본문은 두 사람 사이의 성적 관계를 명시하지 않습니다. 이 구절만으로 그런 관계가 있었다고 확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사랑을 단순한 동료애나 정치적 충성으로 축소할 이유도 없습니다. 다윗의 표현에는 깊은 애착과 친밀함, 그리고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관계를 잃은 고통이 담겨 있습니다. 여인들의 사랑과 비교했다고 해서 모든 남성의 우정이 부부의 사랑보다 우월하다는 보편적인 원칙을 제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에게 요나단의 사랑이 얼마나 특별했는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승리의 노래가 아니라 애가로 시작되는 왕의 이야기

사무엘하 1:1–27 본문 →

다윗의 왕권이 시작되는 문턱에서, 성경은 그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를 먼저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가 누구의 죽음 앞에서 울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 줍니다.

길보아 산에는 사울의 방패가 버려져 있고, 다윗의 손에는 왕관이 도착해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 다윗의 입에서 나온 것은 왕이 되었다는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죽은 이들을 잊지 않겠다는 노래였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