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풀어 읽기 · 5장

이 장의 자리 · 5–10장 · 예루살렘과 언약궤

다윗 앞에서 먼저 걸어가시는 하나님

다윗은 마침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오랫동안 그를 쫓던 사울은 죽었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도 살해당했습니다. 사울 집안의 군사력을 지탱했던 아브넬마저 사라졌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으로 찾아와 다윗을 자신들의 왕으로 인정합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5장을 자세히 읽으면, 왕위에 오른 다윗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력이 누구에게서 왔고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를 깨닫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앞에는 다윗이 서 있지만, 다윗 앞에는 여호와야훼께서 서 계십니다.

읽는 시간 22분소단락 95장 본문 읽기 →

「저희는 왕의 뼈와 살입니다」

사무엘하 5:1–3 본문 →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와서 말했다. 「보십시오. 저희는 왕의 뼈와 살입니다.」사무엘하 5:1 · 본디새김

사무엘하 5장은 전쟁이나 왕의 명령이 아니라 사람들이 찾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앞서 유다만 다윗을 왕으로 인정했던 상황이 바뀌고 있습니다. 뼈와 살은 한 몸을 이루는 가장 구체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가까운 혈연관계나 공동체적인 결속을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

창세기 29:14에서 라반은 야곱을 만난 뒤 그를 자기 뼈와 살이라고 부릅니다. 사사기 9:2에서도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들의 뼈와 살이라는 사실을 내세웁니다. 다만 아비멜렉의 경우에는 그 관계를 권력 획득에 이용한다는 점에서, 같은 표현이 언제나 선한 정치적 행동을 보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은 오랫동안 싸웠습니다. 기브온에서는 서로 다른 왕을 따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상대를 죽였습니다. 그들을 갈라놓았던 것은 정치적인 충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장로들은 그보다 오래되고 깊은 관계를 먼저 말합니다.

우리는 같은 뼈와 살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왕을 사이에 두고 서로 싸웠던 사람들이, 이제 왕을 맞이하면서 자신들이 본래 한 백성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친족 관계의 확인이 아닙니다. 다윗의 통치가 같은 백성에 대한 통치여야 한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왕을 선택하는 세 가지 근거

장로들은 이어서 다윗을 왕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지난날 사울이 저희를 다스리는 왕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이끌고 나가고 이끌고 들어오신 분은 왕이셨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왕께 『네가 목자로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돌볼 것이며, 네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사무엘하 5:2 · 본디새김

첫째는 앞서 말한 공동의 소속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한 뼈와 살을 가진 사람입니다.

둘째는 이미 보여 준 지도력입니다. 「이끌고 나가고 이끌고 들어오다」는 말은 단순히 사람들을 이동시켰다는 뜻이 아닙니다.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고 귀환하는 지도자의 역할을 나타냅니다. 사무엘상 18:5, 13–16에서는 다윗이 전쟁에서 성공을 거두고 백성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 반복됩니다.

셋째는 여호와야훼의 선택입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다윗의 출신과 능력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마지막 근거로 제시합니다.

다윗의 왕권은 백성과의 관계에서 정당성을 얻고, 그가 보여 준 지도력으로 인정받으며, 궁극적으로는 여호와야훼의 뜻에 근거합니다.

왕에게 주어진 이름은 목자였다

장로들은 다윗이 군대를 이끌었던 능력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직분을 설명할 때는 전쟁 영웅이나 정복자라는 표현이 아니라 목자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목자는 양 떼의 주인이 요구하는 일을 수행하면서 양을 인도하고 보호하는 사람입니다. 위험으로부터 양을 지키고,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돌보는 책임을 집니다.

다윗 자신도 목자였습니다.

사무엘상 17:34–37에서 다윗은 사울 앞에 섰을 때, 자신이 아버지의 양을 지키면서 사자와 곰에 맞서 싸웠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양을 돌보는 일이 무엇인지 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이제 이스라엘이라는 백성이 맡겨집니다.

물론 사람을 양에 비유한다고 해서 백성이 생각 없이 왕을 따라야 하는 존재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비유의 중심은 백성의 무력함보다 지도자에게 주어진 돌봄의 책임에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자기 백성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주인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을 맡아 돌보는 사람입니다.

시편 78:70–72에서는 하나님께서 양 떼를 돌보던 다윗을 택하여 자기 백성 야곱을 돌보게 하셨다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온전한 마음과 능숙한 손으로 백성을 인도했다고 평가합니다. 백성을 돌보는 왕에게는 올바른 마음뿐 아니라 실제로 이끌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다윗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자기 아래 두게 되었는가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가 먼저 주어진 기준입니다.

세 번째 기름부음과 언약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있는 왕에게 왔다. 다윗 왕은 헤브론에서 여호와야훼 앞에서 그들과 언약을 맺었다.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사무엘하 5:3 · 본디새김

다윗에게는 이것이 세 번째 기름부음입니다.

첫 번째는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던 때입니다(사무엘상 16:13). 그때 다윗은 아직 왕좌에 앉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유다 사람들이 헤브론에서 그를 유다의 왕으로 삼았을 때입니다(사무엘하 2:4). 세 번째는 이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그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하는 장면입니다.

다윗은 장로들과 「여호와야훼 앞에서」 언약을 맺습니다. 왕권이 단순히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복종시키는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맺는 약속의 관계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 언약에 어떤 구체적인 조항이 담겼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의 권위는 백성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왕과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관계를 맺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졌던 왕위 경쟁의 결말이 적대자의 시신 위에서 이루어지는 즉위식이 아니라, 백성과 왕 사이의 언약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마흔 해의 통치

사무엘하 5:4–5 본문 →

이어서 다윗의 통치 기간이 요약됩니다.

그는 서른 살에 왕이 되었고, 마흔 해 동안 다스렸다고 기록됩니다. 헤브론에서 유다를 다스린 기간은 일곱 해 여섯 달,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린 기간은 서른세 해였습니다.

각 기간을 단순히 더하면 마흔 해 여섯 달이 됩니다. 따라서 4절의 마흔 해는 전체 통치 기간을 연 단위로 요약한 수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이 이 여섯 달을 어떤 방식으로 계산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처음부터 온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것이 아닙니다.

유다만을 다스린 시기가 있었고, 이후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리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시기를 구별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습니다. 왕도입니다.

처음에는 헤브론이었습니다. 이제는 예루살렘이 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아직 다윗의 성읍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여부스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된 다윗은 이제 그 왕국의 중심이 될 성읍을 얻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승리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불편한 표현 하나가 등장합니다.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던 성읍

사무엘하 5:6–10 본문 →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여호수아 15:63은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의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기록합니다. 사사기 1:21에서는 베냐민 자손도 그들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에도 예루살렘에는 여부스 사람들의 거점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곳은 유다와 베냐민의 경계 지역에 위치합니다. 헤브론이 유다의 전통적인 중심지였다면, 예루살렘은 유다만의 기존 거점과는 다른 장소였습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뒤 그곳을 새로운 왕도로 삼았다는 점에서, 예루살렘 선택은 통합 왕국의 새로운 중심을 형성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다만 본문은 다윗이 지파 사이의 정치적 균형을 계산하여 그곳을 골랐다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읍의 주민들은 다윗의 공격을 비웃습니다.

왕과 그의 부하들은 그 땅에 사는 여부스 사람들을 치러 예루살렘으로 갔다. 여부스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했다. 「너는 이곳에 들어오지 못한다. 눈먼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조차 너를 물리칠 것이다.」 이는 「다윗은 이곳에 들어오지 못한다」 하는 뜻이었다.사무엘하 5:6 · 본디새김

이 말의 핵심은 예루살렘이 얼마나 든든한 요새인지를 과시하는 데 있습니다. 여기에는 당시 사람들이 신체적 장애를 약함과 무력함의 이미지로 사용하던 차별적인 인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여부스 사람들의 말은 실제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성읍의 방어를 맡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지 않습니다. 그들조차 다윗을 막을 수 있다는 조롱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그들의 자신감이 무너집니다.

그러나 다윗은 시온 요새를 점령했다. 그곳이 다윗 성이다.사무엘하 5:7 · 본디새김

이 장에서 시온은 먼저 다윗이 점령한 구체적인 요새를 가리킵니다. 뒤이어 성전과 예루살렘 전체에 연결되는 신학적으로 풍부한 이름이 되지만, 여기서는 아직 그 후대의 의미를 모두 담아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통일 왕권이 이제 한 장소에 구체적인 거점을 갖게 된 것입니다.

「눈먼 이와 다리 저는 이」는 누구인가?

그날 다윗이 말했다. 「누구든 여부스 사람을 치려거든 물길에 다다라, 다윗이 마음으로 미워하는 다리 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을 쳐라.」 그래서 사람들은 「눈먼 이와 다리 저는 이는 그 집에 들어오지 못한다」 하고 말하곤 했다.사무엘하 5:8 · 본디새김

앞서 여부스 사람들이 사용한 조롱의 표현이 다윗의 공격 명령에 다시 등장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다리 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은 여부스 사람들이 자신들의 요새를 과시하며 내세운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만으로 본문의 거친 표현을 없었던 일처럼 처리해서도 안 됩니다.

본디새김의 읽기대로라면 미움의 주체는 다윗입니다. 본문은 그를 향해 호의적인 의미로만 읽히지 않는 말을 실제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곧바로 다윗이 모든 장애인을 혐오했고 예루살렘에서 그들을 실제로 학살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러한 학살 사건을 별도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 집」이 구체적으로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요새나 왕의 집과 관련된 말일 수 있고, 후대에 성전과 연결하여 이해하는 읽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만으로 하나님께서 장애인에게 성전 출입을 금지하셨다는 규정을 세우셨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사무엘하 9장에서 다윗은 두 발에 장애가 있는 므비보셋을 자기 식탁에 앉혀 함께 음식을 먹게 합니다(9:7, 13). 적어도 5:8을 다윗의 궁정에서 장애인 전체가 언제나 배제되었다는 보편적 규정으로 읽는 것은 이어지는 이야기와 맞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고대의 전쟁과 승리의 기억 속에 남은 모욕적인 표현을 전합니다. 그 역사적 맥락을 살피는 것과 그 표현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성경은 다윗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왕으로 소개하지만,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을 무조건 모범으로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다윗의 성이 되다

다윗은 그 요새에 살면서 그곳을 다윗 성이라 불렀다. 다윗은 밀로에서 성 안쪽까지 둘레를 따라 건축 공사를 했다.사무엘하 5:9 · 본디새김

점령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밀로」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불확실합니다. 성을 지탱하는 축대나 보강 구조물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본문만으로 구체적인 형태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윗은 점령한 요새를 통치의 중심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은 단순히 전쟁에서 빼앗은 장소가 아닙니다. 왕이 거주하며 왕국의 일을 수행하는 도시가 됩니다.

다윗은 점점 강성해졌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가 그와 함께했다.사무엘하 5:10 · 본디새김

「만군」이라는 호칭은 여호와야훼께서 모든 군대와 능력을 다스리시는 분임을 나타냅니다. 다윗이 많은 군사를 거느리는 왕이 되었지만, 그보다 높으신 분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조금 더 깊이

「물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친노르(⁨צִנּוּר⁩)입니다. 이 단어가 구체적으로 어떤 시설을 가리키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수로 또는 물과 관련된 통로를 나타내는 말로 이해할 수 있지만, 다윗의 부하들이 오늘날 알려진 특정 지하 수로를 통해 침입했다고 확정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또한 히브리어 본문 자체도 문장 구조가 매끄럽지 않습니다. 공격 명령의 조건과 이어지는 표현의 관계를 여러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대상 11:6은 같은 예루살렘 점령 사건을 전하면서 요압이 먼저 올라가 여부스 사람들을 쳤고, 그 결과 지휘관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물길을 이용한 구체적인 작전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누구를 위해 왕국이 높아졌는가

사무엘하 5:11–12 본문 →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을 보냅니다.

그들은 백향목 목재와 목수들과 석공들을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다윗을 위해 집을 짓습니다.

두로는 지중해 연안에 있던 페니키아의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특히 레바논 지역의 백향목과 목재를 이용한 건축, 해상 교역과 관련하여 알려져 있었습니다. 백향목은 내구성과 향기로 귀하게 여겨지는 건축 재료였습니다.

다윗에게 그런 목재와 전문 기술자들이 제공되었다는 것은 그의 왕권이 국제적인 관계 속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음을 보여 줍니다. 앞에서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다윗을 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제는 이웃 왕국의 왕이 다윗에게 사절과 건축 자원을 보냅니다.

다윗은 여호와야훼가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굳게 세웠다는 것과, 여호와야훼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다윗의 왕권을 높였다는 것을 알았다.사무엘하 5:12 · 본디새김

이것이 2절의 목자라는 말과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이었고, 이제는 다윗이 스스로 이해하게 된 왕권의 목적입니다.

다윗이 높아진 것은 이스라엘이 그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이스라엘을 위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성읍을 얻고 왕궁을 갖게 된 일은 그의 개인적인 영광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가 돌보아야 할 백성이 안전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왕권은 목적이 아니라 맡겨진 책임을 수행하는 수단입니다.

예루살렘은 다윗이 거주하는 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도시는 왕 개인을 기념하기 위한 장소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중심이어야 합니다. 블레셋과의 전투도 다윗의 군사적 명성을 높이는 일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외적의 위협 아래 있던 이스라엘을 지키는 일과 연결됩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히람이 어떤 정치적 조건으로 이를 제공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11절의 왕궁 건축이 이 장 뒤에 나오는 블레셋 전쟁보다 반드시 먼저 일어났다고 볼 필요도 없습니다. 이 장은 여러 사건을 배열하여 다윗 왕국의 성립과 강화를 보여 주고 있으며, 모든 세부 사건의 연대를 명시하지는 않습니다.

번성하는 왕실과 남겨진 질문

사무엘하 5:13–16 본문 →

이어서 다윗의 가족이 다시 소개됩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온 뒤에 예루살렘에서 후궁들과 아내들을 더 맞아들였다. 다윗에게 아들들과 딸들이 더 태어났다.사무엘하 5:13 · 본디새김

헤브론에서 다윗에게 여섯 아들이 태어났다는 사실은 3:2–5에서 이미 기록되었습니다. 본문에는 삼무아, 소밥, 나단, 솔로몬을 비롯한 열한 아들의 이름이 나열됩니다. 딸들도 태어났다고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이곳에서 기록하지 않습니다.

고대 왕국에서 많은 자녀를 두는 것은 왕조의 지속과 관련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여러 혼인 관계는 왕실의 세력과 정치적 연결을 확장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다윗이 아내와 후궁을 더 맞아들인 모든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서 다윗은 왕권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높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왕의 아내들과 후궁들이 늘어났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신명기 17:17은 왕이 자신을 위해 아내를 많이 두어 마음이 돌아서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혼인 관계가 확대되는 일을 단순히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은 증거로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사무엘하 5장 자체는 다윗의 혼인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잘못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어느 혼인이 율법을 어떻게 위반했다고 개별적으로 판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솔로몬은 이후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고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나단 역시 다윗 왕가의 계보와 관련하여 뒤에 중요한 이름으로 등장합니다(누가복음 3:31). 그러나 이 장은 아직 그들의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단지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다윗의 자녀들 가운데 그들의 이름을 기록할 뿐입니다.

그 왕권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이스라엘을 향한 외부의 위협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이 찾아오고, 블레셋도 찾아오다

사무엘하 5:17–19 본문 →

17절에서 이야기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블레셋 사람들이 모두 다윗을 찾아 올라왔다. 다윗은 그 소식을 듣고 요새로 내려갔다.사무엘하 5:17 · 본디새김

이 구절은 1절과 인상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1절에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다윗에게 왔습니다. 그들은 그를 왕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 찾아온 목적은 다윗의 왕권을 인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맞서기 위해서입니다.

같은 왕권의 성립이 두 집단에게 전혀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 몸을 의탁한 적이 있었습니다(사무엘상 27:1–7). 아기스는 다윗이 자신에게 충성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블레셋 지휘관들은 다윗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사무엘상 29:1–11).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블레셋에게 다윗은 더 이상 자기 땅에 머무르는 도망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이끄는 왕이었습니다. 사울이 길보아에서 패배한 뒤 블레셋이 누리던 군사적 우위도 다윗의 통합 왕권으로 인해 도전받을 수 있었습니다.

18절은 그들이 르바임 골짜기에 널리 퍼졌다고 기록합니다. 르바임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서쪽 일대와 관련된 지역입니다. 그곳에 블레셋 군대가 펼쳐져 있다는 것은 다윗의 새로운 왕도 가까이에서 심각한 군사적 위협이 형성되었음을 뜻합니다.

왕이 되었어도 여전히 묻는다

다윗이 여호와야훼에게 물었다. 「제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맞서 올라갈까요? 당신께서 그들을 제 손에 넘겨주시겠습니까?」 여호와야훼가 다윗에게 말했다.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겨주겠다.」사무엘하 5:19 · 본디새김

그에게는 이미 군대가 있었습니다. 이전에도 블레셋과 싸워 승리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온 이스라엘의 왕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경험이나 왕의 권위만으로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왕위에 오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겠다」는 표현은 전쟁의 결과가 다윗의 군사적 능력만으로 설명되지 않음을 드러냅니다. 다윗이 직접 싸워야 하지만, 그 전쟁의 결과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과 사람이 맡은 책임을 수행하는 일은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듣고 전쟁터로 나아갑니다.

조금 더 깊이

다윗이 내려간 요새가 앞에서 점령한 시온 요새와 동일한 장소인지, 다윗이 과거에 사용하던 다른 거점인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내려갔다」라는 방향 표현을 고려하면, 단순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갔다고 설명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물이 터져 나가듯

사무엘하 5:20–21 본문 →

다윗은 바알브라심에서 블레셋 사람들을 칩니다.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렀다. 다윗은 거기서 그들을 치고 말했다. 「여호와야훼께서 물이 뚫고 나가듯 내 앞에서 내 원수들을 뚫어 무너뜨리셨다.」 그래서 그는 그곳의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불렀다.사무엘하 5:20 · 본디새김

둑이나 장애물에 막혀 있던 물이 갑자기 터져 나가는 모습을 떠올려 봅시다. 한곳이 뚫리면 물이 몰려들고, 그 흐름은 앞을 가로막는 것을 밀어냅니다. 다윗은 블레셋 군대가 무너진 모습을 바로 그런 물의 돌파에 비유합니다.

다윗이 전쟁을 수행했지만, 그는 승리의 궁극적인 주체를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 우상들을 거기에 버렸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그것들을 가져갔다.사무엘하 5:21 · 본디새김

이 장면은 사무엘상 4–5장의 언약궤 이야기와도 흥미로운 대조를 이룹니다. 사무엘상 4장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오면 승리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블레셋에게 패배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물건을 전쟁에 동원한다고 해서 승리가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블레셋은 자신들이 의지하던 우상들을 버렸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의지했던 여호와야훼께 승리의 공로를 돌렸습니다.

그러나 이 승리가 블레셋과의 전쟁을 완전히 끝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올라옵니다.

조금 더 깊이

다윗은 그날의 승리를 설명하면서 지명의 소리와 맞물리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바알브라심이라는 지명에 「바알」이라는 요소가 들어 있다고 해서 다윗이 바알 신에게 승리를 돌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윗의 설명은 승리를 이루신 분이 여호와야훼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여기서 사무엘하 본문은 다윗과 부하들이 우상들을 가져갔다고 기록합니다. 같은 사건을 전하는 역대상 14:12는 우상들을 불태웠다고 기록합니다. 사무엘하 5장 자체는 그 이후 우상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더 설명하지 않습니다.

같은 적, 같은 장소, 그러나 다른 명령

사무엘하 5:22–25 본문 →

22절은 앞의 18절과 거의 같은 상황을 묘사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왔고, 르바임 골짜기에 널리 퍼졌습니다. 다윗은 이미 그들을 상대로 승리한 경험이 있습니다.

다윗은 다시 여호와야훼께 묻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다른 대답을 듣습니다.

다윗이 여호와야훼에게 묻자 여호와야훼가 말했다. 「올라가지 마라. 그들의 뒤로 돌아서 발삼나무들 맞은편에서 그들에게 다가가라.」사무엘하 5:23 · 본디새김

첫 번째 전투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 전투에서는 「올라가지 마라」고 하십니다. 같은 적을 상대하고 같은 지역에서 싸우지만, 하나님의 명령이 다릅니다.

이전의 승리가 다음 행동의 모든 판단을 대신해 주지는 않습니다.

다윗이 전쟁에 능숙한 지도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경험이 쌓였다고 해서 하나님께 물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무 꼭대기에서 들리는 소리

이번에 여호와야훼께서는 공격 방향뿐 아니라 움직여야 할 시점까지 알려 주십니다.

「발삼나무들 꼭대기에서 행진하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 단호히 움직여라. 그때 나 여호와야훼가 블레셋 진영을 치려고 네 앞에 나간 것이기 때문이다.」사무엘하 5:24 · 본디새김

다윗이 먼저 나아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뒤따라오시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아가시고, 다윗은 그 신호를 듣고 움직입니다.

기다림과 행동은 서로 반대가 아니다

다윗은 적의 뒤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정된 장소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고 소리를 들으면 실제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는 준비하고, 기다리고, 듣고, 행동합니다.

여기서 기다림은 수동적인 무기력이 아닙니다. 정해진 시점에 적절한 행동을 하기 위해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는 일입니다.

땅 위에는 다윗의 군대가 있습니다. 나무 꼭대기에서는 행진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윗은 자신이 지휘하는 군대보다 먼저 나아가시는 분이 있다는 사실을 그 소리로 확인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공격합니다.

다윗은 여호와야훼가 그에게 명령한 대로 그렇게 했다. 그는 게바에서 게셀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다.사무엘하 5:25 · 본디새김

앞에서 첫 번째 승리를 묘사할 때는 물이 터져 나가는 것 같은 장대한 비유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승리는 자세한 전투 묘사 없이 끝납니다. 다윗이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했다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조금 더 깊이

발삼나무로 옮긴 나무의 정확한 식물학적 종류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나무가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소리를 냈는지, 그것이 자연적인 바람 소리였는지 또는 다른 현상이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13:21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보다 앞서 가시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사사기 4:14에서는 드보라가 바락에게 전투를 시작하라고 말하면서 여호와야훼께서 그의 앞에 나가시지 않느냐고 선언합니다. 게바에서 게셀까지라는 지리적 표현은 블레셋을 추격하여 물리친 전투의 범위를 보여 줍니다. 다만 역대상 14:16의 평행본문에는 출발지가 기브온으로 기록되어 있어 정확한 지명에는 본문 전승의 차이가 있습니다. 두 기록의 차이를 무리하게 하나로 합쳐 구체적인 이동 경로를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무 꼭대기에서 들려온 행진 소리

사무엘하 5:1–25 본문 →

다윗의 왕권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들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돌보는 책임이었습니다. 왕은 백성 앞에 서 있는 사람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말씀을 듣는 사람입니다.

물론 오늘의 독자가 다윗처럼 전쟁에 관한 직접적인 신탁을 받는다고 전제해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하 5장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던 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합니다.

하지만 본문이 마지막에 보여 주는 다윗의 모습은 왕좌에 앉아 명령을 내리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에 펼쳐져 있습니다. 다윗은 이미 그들을 물리친 경험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싸울 수 있는 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공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적의 뒤로 돌아가 발삼나무들 맞은편에 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무 꼭대기에서 행진하는 소리가 들리면 움직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기다립니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적의 실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아가셨다는 신호입니다.

다윗은 이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입니다. 그러나 그의 앞길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왕관도, 왕궁도, 이미 거두었던 승리도 아니었습니다.

발삼나무들 꼭대기에서 행진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다윗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움직였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