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1–4장 · 헤브론에서 왕이 되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져온 살인의 증거

이스보셋의 머리를 들고 온 두 사람은 자신들이 다윗에게 큰 선물을 가져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울 왕가의 마지막 왕을 죽였습니다. 이제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데 걸림돌이 하나 사라졌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하나님의 뜻으로 설명합니다.

어떤 일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일어났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신 선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두 살인자는 자신들의 행동을 여호와야훼의 복수라고 주장합니다. 다윗은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을 구원하신 분이라고 고백하면서도 그들의 살인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하지만, 그 이름으로 설명되는 사건의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읽는 시간 15분소단락 84장 본문 읽기 →

아브넬이 죽자 왕의 두 손에 힘이 풀렸다

사무엘하 4:1–3 본문 →

사울의 아들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는 말을 듣고 두 손에 힘이 풀렸다. 온 이스라엘도 두려움에 휩싸였다.사무엘하 4:1 · 본디새김

사무엘하 4장은 왕의 이름이 아니라 「사울의 아들」이라는 호칭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이스보셋입니다. 아브넬이 사울의 죽음 이후 왕으로 세웠던 사람입니다. 두려움과 낙담 때문에 행동할 힘을 잃은 모습을 나타냅니다.

아브넬은 단순한 군대 지휘관이 아니었습니다. 사울 왕가의 군사력을 유지했고,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으며, 사울 집안에서 자기 세력을 강화했던 사람입니다(2:8–9; 3:6).

왕이라는 명칭은 이스보셋에게 있었지만, 왕권을 지탱하는 실질적인 힘은 상당 부분 아브넬에게 있었습니다.

더구나 아브넬은 다윗에게 돌아서려다가 다윗의 부하 요압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이스보셋으로서는 군대를 이끌던 장수를 잃었을 뿐 아니라, 그 장수가 이미 자신의 왕권을 떠나려 했다는 사실까지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본문은 곧바로 그 두려움을 온 이스라엘로 확대합니다.

아브넬이 살아 있을 때에는 다윗 집안과의 오랜 전쟁 속에서도 이스라엘을 이끌 지휘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사라졌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알 수 없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던 왕권은 그 사람이 사라졌을 때 공동체 전체를 두려움 속에 빠뜨렸습니다.

이어서 서술자는 사울의 아들에게 두 명의 부대 지휘관이 있었다고 소개합니다. 레갑과 바아나입니다. 두 사람은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들이며 베냐민 자손이었습니다.

베냐민은 사울의 출신 지파입니다(사무엘상 9:1–2). 이스보셋을 지지하는 왕권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집단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베냐민 출신의 군대 지휘관들이 뒤에서 이스보셋을 죽입니다.

왕을 지키고 그의 명령을 수행해야 할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왕을 배반하는 이야기입니다.

브에롯이 베냐민에 속한다는 설명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여호수아 18:25는 브에롯을 베냐민의 성읍 가운데 하나로 기록합니다. 또한 여호수아 9:17에 따르면 브에롯은 기브온 사람들의 성읍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3절은 브에롯 사람들이 깃다임으로 달아나 그곳에서 나그네로 살았다고 덧붙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언제, 어떤 이유로 달아났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이주 사실을 레갑과 바아나의 살인 동기와 직접 연결할 근거도 없습니다.

왕권을 지탱해야 할 내부의 힘이 이제 왕권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도망치다가 다친 아이

사무엘하 4:4 본문 →

그런데 본격적인 암살 이야기로 들어가기 직전, 서술자는 갑자기 다른 인물을 소개합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는 두 발에 장애가 있는 아들이 있었다. 사울과 요나단에 관한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왔을 때 그는 다섯 살이었다. 그의 유모가 그를 안고 달아났는데, 그녀가 서둘러 달아나는 동안 아이가 떨어져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므비보셋이었다.사무엘하 4:4 · 본디새김

이스보셋이 죽더라도 사울의 혈통이 완전히 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요나단의 아들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므비보셋은 나중에 사무엘하 9장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그때 다윗은 요나단과 맺었던 언약을 기억하며 므비보셋을 찾습니다.

본문은 므비보셋의 이름만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떻게 장애를 갖게 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날 므비보셋은 왕이 되려는 정치적 결정을 내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섯 살 어린아이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울 왕가가 무너지자 그 아이도 위험을 피해 달아나야 했습니다.

아이의 장애는 그의 잘못이나 하나님의 징벌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전쟁과 왕권 붕괴의 두려움 속에서 발생한 사고의 결과로 제시됩니다.

아브넬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스보셋의 손에 힘이 풀리고 온 이스라엘이 두려워했습니다. 그보다 앞서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한 유모가 아이를 안고 달아났습니다.

두 장면 모두 죽음의 소식이 사람들을 움직입니다.

하지만 움직임은 서로 다릅니다.

이스보셋은 두려움 때문에 행동할 힘을 잃었습니다. 유모는 두려움 때문에 서둘러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가 평생 영향을 받게 될 상처를 입었습니다.

왕의 죽음은 왕궁 안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 소식 하나로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의 삶까지 바뀔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는 왕권의 흥망을 기록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 또 한 번 왕권이 무너지는 사건이 시작됩니다.

한낮의 침실에서 일어난 살인

사무엘하 4:5–7 본문 →

레갑과 바아나는 이스보셋의 집으로 향합니다.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는 길을 떠나 한낮의 더위가 한창일 때 이스보셋의 집에 도착했다. 그는 한낮의 휴식을 취하며 누워 있었다.사무엘하 4:5 · 본디새김

이 장면에는 전투의 긴박함이 없습니다.

이스보셋은 무장을 하고 싸우는 중이 아닙니다. 적군을 공격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집 안에서 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두 군대 지휘관이 집 안으로 들어옵니다.

6절은 그들이 밀을 가지러 집 안쪽까지 들어가 이스보셋의 배를 찔렀다고 기록합니다. 그에게는 자신을 방어하거나 도망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보호해야 할 관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살해당한 것입니다.

왜 머리를 잘랐는가?

두 사람은 이스보셋을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의 머리를 잘라 내어 가지고 갑니다. 고대 전쟁에서 적의 머리를 취하는 행위는 상대를 죽였다는 사실을 증명하거나 승리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4장에서 잘린 머리는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은 적의 머리가 아닙니다.

자기 집 침상에서 쉬다가 살해당한 왕의 머리입니다.

레갑과 바아나는 그 머리를 가지고 밤새 아라바 길을 걸어 다윗에게 향합니다. 이 밤길은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스보셋의 죽음을 어떤 사건으로 바꾸려 했는지는 곧 분명해집니다.

그들은 살인을 다윗에게 바칠 공로로 제시하려 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의 6절 첫머리에는 여성 복수형 표현이 나오는데, 뒤이어 행동하는 사람들은 두 남자입니다. 또한 「밀을 가지러」라는 표현도 그들이 집에 들어온 목적을 나타내는지,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칠십인역에는 문지기가 밀을 다루다가 졸아 잠들었고, 두 형제가 들키지 않고 들어왔다는 식의 다른 읽기가 전해집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침실에 들어갔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밀을 가지러 왔다고 속였을 가능성은 있지만, 본디새김 본문 자체가 그들의 기만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6절과 7절은 살해 행위를 겹쳐 서술합니다. 이를 서로 다른 두 차례의 공격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두 구절은 같은 사건의 진행과 결과를 이어서 보여 줍니다. 사무엘상 17:51에서 다윗은 골리앗의 머리를 벱니다. 사무엘상 31:9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머리를 베어 자신들의 승리를 알립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원수를 갚아 주셨습니다」

사무엘하 4:8 본문 →

레갑과 바아나는 이스보셋의 머리를 헤브론으로 가져옵니다.

그들은 이스보셋의 머리를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가져와 왕에게 말했다. 「보십시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입니다. 사울은 왕의 목숨을 노리던 왕의 원수였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오늘 제 주인이신 왕을 위해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원수를 갚아 주셨습니다.」사무엘하 4:8 · 본디새김

본문은 이스보셋이 다윗의 목숨을 직접 노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윗과 대립하는 왕권의 주인이었고, 그의 군대는 다윗 편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했던 행동을 그대로 이스보셋 개인의 죄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레갑과 바아나는 아버지의 적대 관계를 아들에게 적용합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근거로 자신들의 살인을 정당화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스보셋을 죽였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행동의 궁극적인 주체를 여호와야훼로 제시합니다.

이 말은 레갑과 바아나의 주장입니다.

서술자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스보셋을 죽이라고 명령하셨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의 행동을 승인하시는 장면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다윗에게 유리한 결과가 하나님의 복수를 증명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행동이 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해서, 그 행동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같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혀 다른 대답을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8:17–18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자기 능력과 힘으로 재물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하나님의 은혜와 분리하여 자기 성취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반대 방향의 위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행동 자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레갑과 바아나는 바로 그 위험을 드러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려는 뜻을 가지셨다는 사실과, 이스보셋을 자기 침상에서 살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주장은 별개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인간에게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한 모든 수단을 허락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 목숨을 모든 곤경에서 건져 내신 여호와야훼」

사무엘하 4:9–10 본문 →

다윗의 대답은 맹세로 시작됩니다.

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했다. 「내 목숨을 모든 곤경에서 건져 내신 여호와야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사무엘하 4:9 · 본디새김

그는 사울에게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도망자가 되어 여러 지역을 떠돌았고, 블레셋 땅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약탈했을 때에는 가족과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런 곤경들을 지나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구원은 누군가가 자기 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을 죽이는 행위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자기 집 침상에 누워 있는 사람을 살해한 뒤, 그 행동을 하나님께서 이루신 복수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나에게 『보십시오, 사울이 죽었습니다』 하고 알린 자는 스스로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여겼지만, 나는 그를 붙잡아 시글락에서 죽였다. 그것이 그가 전한 좋은 소식에 대해 내가 그에게 준 보상이었다.」사무엘하 4:10 · 본디새김

다윗은 사무엘하 1장의 아말렉 사람을 언급합니다. 그 사람은 사울의 죽음을 알리면서 자신이 사울을 죽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윗은 그가 여호와야훼께서 기름 부으신 이를 죽였다고 자기 입으로 증언했다는 이유로 처형했습니다(1:14–16).

이 표현에는 뚜렷한 반어가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한 대가로 받은 것이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레갑과 바아나도 자신들이 좋은 소식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죽음을 자기에게 유리한 소식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듯이, 이스보셋의 죽음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이 이전 사건보다 더욱 무겁다고 말합니다.

누구의 피에 책임이 있는가

사무엘하 4:11 본문 →

다윗은 두 사람에게 이스보셋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말합니다.

「하물며 악한 자들이 의로운 사람을 그의 집 안에 있는 그의 침상 위에서 죽였으니, 이제 내가 그의 피에 대한 책임을 너희에게 묻고 너희를 이 땅에서 없애 버리지 않겠느냐?」사무엘하 4:11 · 본디새김

이스보셋은 정말 의로운 왕이었는가?

하지만 다윗의 말을 이스보셋의 통치 전체에 대한 도덕적 평가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 장의 문맥에서 중요한 것은 이스보셋이 두 살인자에게 죽임당할 만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다윗은 이스보셋이 자신과 정치적으로 대립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스보셋이 사울 왕가의 왕이었다는 사실도 지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 대립이 살인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고 판단합니다.

자신의 왕권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는 사실과 죽임당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판단은 전혀 다릅니다.

레갑과 바아나는 이 두 가지를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이스보셋은 사울의 아들이며 다윗의 왕권을 가로막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죽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가 먼저 자기 집에서 쉬고 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봅니다. 그가 정치적으로 누구의 편이었는가보다, 그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위에 의해 죽었는가를 판단의 근거로 삼습니다.

레갑과 바아나는 이스보셋의 죽음을 여호와야훼의 복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이 그들의 손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한 일을 하나님께 돌렸지만, 다윗은 그들에게 그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고 해서 인간의 책임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여호와야훼께서 원수를 갚으셨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에게 어떤 허락이 주어졌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것도 아니고, 이스보셋의 범죄에 대한 정당한 재판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피에 대한 책임을 묻다」라는 표현은 구약의 중요한 사법적·도덕적 개념과 연결됩니다. 창세기 9:5–6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명을 해친 자에게 그 피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35:33에서는 무고한 피가 땅을 더럽힌다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살인은 피해자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그 땅에 책임을 남기는 행위로 이해됩니다.

죽인 사람의 머리는 묻고, 죽인 자들은 매달다

사무엘하 4:12 본문 →

이 장은 두 처분을 나란히 기록하면서 끝납니다.

다윗이 부하들에게 명령하자 그들은 두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손과 발을 잘랐다. 그리고 그들을 헤브론의 못가에 매달았다. 이스보셋의 머리는 가져다가 헤브론에 있는 아브넬의 무덤에 묻었다.사무엘하 4:12 · 본디새김

헤브론의 못가는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였을 것입니다. 그곳에 시신을 매단 것은 그들의 범죄와 처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행동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다윗의 처형 명령을 오늘날에도 따라야 할 형벌의 모범으로 곧바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두 사람의 살인이 악하다는 판단과 다윗이 내린 처벌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시신의 손발을 자르고 공개적으로 매다는 행위를 시대를 초월한 형벌의 표준으로 명령하지 않습니다.

이 장에서 다윗은 살인자들의 주장에 반대하여 무고한 생명의 가치를 옹호합니다. 동시에 자신이 가진 왕권을 사용하여 극히 가혹한 처벌을 집행합니다.

살인자들은 자신들이 베어 온 머리를 다윗에게 바쳤습니다. 그들은 그 머리를 자기들의 공적을 입증하는 물건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것을 보상받을 만한 물건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은 사람의 일부로 여기고 무덤에 묻게 합니다.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 죽은 뒤 그를 마하나임으로 데려가 왕으로 삼았고, 오랫동안 그의 왕권을 지탱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보셋과 갈등을 일으킨 뒤 다윗에게 돌아섰으며, 헤브론에서 요압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왕을 세운 사람의 무덤에 그 왕의 머리가 들어간 것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갈등으로 끝났습니다.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떠나 다윗에게 왕권을 넘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죽음 이후 두 사람은 같은 무덤에 연결됩니다.

이것을 두 사람이 죽어서 화해했다는 뜻으로 읽을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구조에서는 분명한 의미를 갖습니다.

사울 왕권을 지탱했던 두 핵심 인물의 죽음이 하나의 무덤에서 만납니다.

3장에서 다윗은 아브넬을 위한 장례 행렬을 따라갔고, 무덤 앞에서 울었습니다. 4장에서는 이스보셋의 머리를 그 무덤에 묻게 합니다.

다윗에게 왕권이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죽은 적대자들의 시신은 전리품이 아니라 장사해야 할 죽은 사람의 몸으로 다루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장의 처음에는 이스보셋의 두 손에 힘이 풀렸습니다. 4절에서는 므비보셋의 두 발에 장애가 생긴 이야기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살인자들의 손과 발이 잘립니다. 이 반복이 의도적인 문학적 구성을 이룬 것인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장 전체에 나타나는 인간의 무력함과 폭력의 흔적을 서로 연결해 생각하게 합니다. 왕권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사람의 몸은 두려움과 상처와 처벌을 겪습니다.

헤브론에 묻힌 머리

사무엘하 4:1–12 본문 →

레갑과 바아나는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들에게 그 머리는 다윗의 원수가 제거되었다는 증거였습니다. 자신들이 보상받을 만한 일을 했다는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보셋을 죽인 것은 다윗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왔을 수 있지만, 그래서 옳은 일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을 하나님의 복수라고 부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가의 왕권은 사실상 끝나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장의 마지막 장면은 승리한 다윗이 왕관을 쓰는 모습이 아닙니다.

헤브론의 못가에는 살인자들의 시신이 매달려 있고, 아브넬의 무덤에는 이스보셋의 머리가 묻혀 있습니다. 다윗에게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죽었고, 그들이 죽인 사람은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살인자들이 하나님의 복수라고 불렀던 사건은 그렇게 끝납니다.

그들이 들고 온 머리는 왕권을 얻기 위한 선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죽은 사람의 머리로 돌아가 무덤에 묻혔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