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1–4장 · 헤브론에서 왕이 되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져온 살인의 증거
이스보셋의 머리를 들고 온 두 사람은 자신들이 다윗에게 큰 선물을 가져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울 왕가의 마지막 왕을 죽였습니다. 이제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데 걸림돌이 하나 사라졌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하나님의 뜻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다윗의 반응은 정반대입니다.
그는 그들이 가져온 머리를 보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 사람을 악한 자라고 부르며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죽인 이스보셋의 머리는 정중히 묻게 합니다.
어떤 일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일어났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신 선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브넬이 죽자 왕의 두 손에 힘이 풀렸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운을 잃었습니다. 온 이스라엘도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사무엘하 4:1 · 두루새김
그는 아브넬이 사울의 죽음 이후 왕으로 세웠던 사람입니다. 원문에서는 그의 두 손에 힘이 풀렸다고 표현합니다. 두려움과 낙담 때문에 행동할 힘을 잃은 모습을 나타냅니다.
아브넬은 단순한 군대 지휘관이 아니었습니다. 사울 왕가의 군사력을 유지했고,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으며, 사울 집안에서 자기 세력을 키웠던 사람입니다(2:8–9; 3:6).
왕이라는 이름은 이스보셋에게 있었지만, 왕권을 지탱하는 실제 힘은 상당 부분 아브넬에게 있었습니다.
더구나 아브넬은 다윗에게 돌아서려다가 다윗의 부하 요압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이스보셋으로서는 군대를 이끌던 장수를 잃었을 뿐 아니라, 그 장수가 이미 자신의 왕권을 떠나려 했다는 사실까지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보셋만 두려워한 것이 아닙니다. 그를 왕으로 따르던 사람들도 불안에 빠졌습니다. 아브넬이 살아 있을 때에는 다윗 집안과의 오랜 전쟁 속에서도 이스라엘을 이끌 지휘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사라졌습니다.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기대던 왕권은 그 사람이 사라졌을 때 공동체 전체를 두려움 속에 빠뜨렸습니다.
이어서 서술자는 이스보셋에게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 두 사람이 있었다고 소개합니다. 레갑과 바아나입니다. 두 사람은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들이며 베냐민 지파에 속했습니다.
베냐민은 사울의 출신 지파입니다(사무엘상 9:1–2). 이스보셋을 지지하는 왕권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집단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베냐민 출신의 군대 지휘관들이 뒤에서 이스보셋을 죽입니다.
브에롯이 베냐민의 땅으로 여겨졌다는 설명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여호수아 18:25는 브에롯을 베냐민의 성읍 가운데 하나로 기록합니다. 또한 여호수아 9:17에 따르면 브에롯은 기브온 사람들의 성읍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3절은 브에롯 사람들이 깃다임으로 달아나 그곳에서 이주민으로 살았다고 덧붙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언제, 어떤 이유로 달아났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이주 사실을 레갑과 바아나가 살인한 이유와 직접 연결할 근거도 없습니다.
왕권을 지탱해야 할 내부의 힘이 이제 왕권을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도망치다가 다친 아이
그런데 본격적인 암살 이야기로 들어가기 직전, 서술자는 갑자기 다른 인물을 소개합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는 두 다리에 장애가 있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므비보셋이었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전해졌을 때, 그는 다섯 살이었습니다. 아이를 돌보던 여자가 그를 안고 달아났는데, 서둘러 달아나다가 아이가 떨어져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사무엘하 4:4 · 두루새김
이스보셋이 죽더라도 사울의 핏줄이 완전히 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요나단의 아들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므비보셋은 나중에 사무엘하 9장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그때 다윗은 요나단과 맺었던 언약을 기억하며 므비보셋을 찾습니다.
본문은 므비보셋의 이름만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떻게 장애를 갖게 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날 므비보셋은 왕이 되려는 정치적 결정을 내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섯 살 어린아이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울 왕가가 무너지자 그 아이도 위험을 피해 달아나야 했습니다.
아이를 돌보던 여자가 아이를 떨어뜨린 것은 일부러 한 행동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급히 도망치는 가운데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아이의 장애는 그의 잘못이나 하나님의 벌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전쟁과 왕권 붕괴의 두려움 속에서 일어난 사고의 결과로 제시됩니다.
이스보셋은 두려움 때문에 행동할 힘을 잃었습니다. 아이를 돌보던 여자는 두려움 때문에 서둘러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가 평생 영향을 받게 될 상처를 입었습니다.
왕의 죽음은 왕궁 안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 소식 하나로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의 삶까지 바뀔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는 왕권이 일어서고 무너지는 과정을 기록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 또 한 번 왕권이 무너지는 사건이 시작됩니다.
한낮의 침실에서 일어난 살인
레갑과 바아나는 이스보셋의 집으로 향합니다.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는 길을 떠나, 더위가 한창인 한낮에 이스보셋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스보셋은 낮잠을 자려고 누워 있었습니다.사무엘하 4:5 · 두루새김
기후가 더운 지역에서는 한낮에 활동을 줄이고 쉬는 것이 자연스러운 생활 방식이었습니다. 본문은 그가 자기 침실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장면에는 전투의 긴박함이 없습니다.
이스보셋은 무장을 하고 싸우는 중이 아닙니다. 적군을 공격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집 안에서 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두 군대 지휘관이 집 안으로 들어옵니다.
6절은 그들이 밀을 가지러 집 안쪽까지 들어가 이스보셋의 배를 찔렀다고 기록합니다. 그에게는 자신을 지키거나 도망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보호해야 할 관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살해당한 것입니다.
왜 머리를 잘랐는가?
두 사람은 이스보셋을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의 머리를 잘라 내어 가지고 갑니다. 고대 전쟁에서 적의 머리를 가져가는 행위는 상대를 죽였다는 사실을 증명하거나 승리를 뽐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무엘상 17:51에서 다윗은 골리앗의 머리를 벱니다. 사무엘상 31:9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머리를 베어 자신들의 승리를 알립니다.
그런데 4장에서 잘린 머리는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은 적의 머리가 아닙니다.
자기 집 침대에서 쉬다가 살해당한 왕의 머리입니다. 레갑과 바아나는 그 머리를 가지고 밤새 아라바 길을 걸어 다윗에게 향합니다.
그들은 살인을 다윗에게 바칠 공로로 내세우려 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의 6절 첫머리에는 여성 복수형 표현이 나오는데, 뒤이어 행동하는 사람들은 두 남자입니다. 또한 「밀을 가지러」라는 표현도 그들이 집에 들어온 목적을 나타내는지,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칠십인역에는 문지기가 밀을 다루다가 졸아 잠들었고, 두 형제가 들키지 않고 들어왔다는 식의 다른 읽기가 전해집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침실에 들어갔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6절과 7절은 살해 행위를 겹쳐 서술합니다. 두 구절은 같은 사건의 진행과 결과를 이어서 보여 줍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오늘 저희 주인이신 왕을 위해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원수를 갚아 주셨습니다」
레갑과 바아나는 이스보셋의 머리를 헤브론으로 가져옵니다.
두 사람은 이스보셋의 머리를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가져와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입니다. 사울은 왕의 목숨을 노리던 원수였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오늘 저희 주인이신 왕을 위해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원수를 갚아 주셨습니다.」사무엘하 4:8 · 두루새김
본문은 이스보셋이 다윗의 목숨을 직접 노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윗과 맞서는 왕권의 주인이었고, 그의 군대는 다윗 편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했던 행동을 그대로 이스보셋 개인의 죄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레갑과 바아나는 아버지가 적이었다는 사실을 아들에게 적용합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근거로 자신들의 살인을 정당화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스보셋을 죽였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궁극적으로 하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내세웁니다.
이 말은 레갑과 바아나의 주장입니다.
서술자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스보셋을 죽이라고 명령하셨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의 행동을 승인하시는 장면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 말은 두 살인자가 자기 행동에 종교적인 의미를 붙이는 방식으로 제시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려는 뜻을 가지셨다는 사실과, 이스보셋을 자기 침대에서 살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주장은 별개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인간에게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한 모든 수단을 허락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다윗은 같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혀 다른 대답을 합니다.
「온갖 어려움에서 내 목숨을 구해 주신, 살아 계신 여호와야훼」
다윗의 대답은 맹세로 시작됩니다.
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했습니다. 「온갖 어려움에서 내 목숨을 구해 주신, 살아 계신 여호와야훼를 두고 맹세한다.」사무엘하 4:9 · 두루새김
그는 사울에게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도망자가 되어 여러 지역을 떠돌았고, 블레셋 땅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약탈했을 때에는 가족과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다윗은 그 모든 과정을 돌아보며 자신을 구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구원은 누군가가 자기 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을 죽이는 행위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자기 집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을 살해한 뒤, 그 행동을 하나님께서 이루신 복수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전에 어떤 자가 내게 『사울이 죽었습니다』 하고 알렸다. 그는 자기가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를 붙잡아 시글락에서 죽였다. 그것이 그 소식을 전한 대가로 내가 그에게 준 보상이었다.」사무엘하 4:10 · 두루새김
다윗은 사무엘하 1장의 아말렉 사람을 언급합니다. 그 사람은 사울의 죽음을 알리면서 자신이 사울을 죽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윗은 그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이를 죽였다고 자기 입으로 증언했다는 이유로 처형했습니다(1:14–16).
이 표현에는 뚜렷한 반어가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한 대가로 받은 것이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레갑과 바아나도 자신들이 좋은 소식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죽음을 자기에게 유리한 소식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듯이, 이스보셋의 죽음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이 이전 사건보다 더욱 무겁다고 말합니다.
누구의 피에 책임이 있는가
다윗은 두 사람에게 이스보셋을 죽인 책임을 묻겠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의로운 사람을 그의 집 침대에서 죽인 너희 악한 자들은 더더욱 그냥 둘 수 없다. 내가 그 사람을 죽인 책임을 너희에게 묻고 너희를 이 땅에서 없애 버리지 않겠느냐?」사무엘하 4:11 · 두루새김
이스보셋은 정말 의로운 왕이었는가?
하지만 다윗의 말을 이스보셋의 통치 전체에 대한 도덕적 평가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 장의 흐름에서 중요한 것은 이스보셋이 두 살인자에게 죽임당할 만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자기 집의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두 사람을 공격하지도 않았고 그들과 싸우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의로운 사람」이라는 표현은 이 사건에서 이스보셋이 정당한 이유 없이 살해당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왕권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는 사실과 죽임당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판단은 전혀 다릅니다.
그가 정치적으로 누구의 편이었는가보다, 그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위에 의해 죽었는가를 판단의 근거로 삼습니다. 자신과 맞서는 사람을 비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자신의 반대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권리와 존엄을 잃는 것은 아닙니다.
두루새김의 「그 사람을 죽인 책임을 너희에게 묻고」는 원문에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표현을 풀어 옮긴 것입니다. 이는 구약에서 사람의 생명을 해친 책임을 법과 도덕의 문제로 다루는 중요한 생각과 연결됩니다.
창세기 9:5–6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명을 해친 자에게 그 피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35:33에서는 죄 없는 사람의 피가 땅을 더럽힌다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살인은 피해자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그 땅에 책임을 남기는 행위로 이해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한 일을 하나님께 돌렸지만, 다윗은 그들에게 그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고 해서 인간의 책임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으셨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에게 어떤 허락이 주어졌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것도 아니고, 이스보셋의 범죄에 대한 정당한 재판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들이 판단한 결과를 하나님의 행동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죽인 사람의 머리는 묻고, 죽인 자들은 매달다
이 장은 두 처분을 나란히 기록하면서 끝납니다.
다윗이 부하들에게 명령하자, 그들은 두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들의 손과 발을 자르고 시신을 헤브론의 연못가에 매달았습니다. 이스보셋의 머리는 가져다가 헤브론에 있는 아브넬의 무덤에 묻었습니다.사무엘하 4:12 · 두루새김
헤브론의 연못가는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였을 것입니다. 그곳에 시신을 매단 것은 그들의 범죄와 처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행동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본문은 두 사람의 살인이 악하다는 판단과 다윗이 내린 처벌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시신의 손발을 자르고 공개적으로 매다는 행위를 시대를 넘어 따라야 할 형벌의 표준으로 명령하지 않습니다.
이 장에서 다윗은 살인자들의 주장에 반대하여 죄 없는 생명의 가치를 지킵니다. 동시에 자신이 가진 왕권을 사용하여 극히 가혹한 처벌을 내립니다.
그 두 사실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살인자들은 자신들이 베어 온 머리를 다윗에게 바쳤습니다. 그들은 그 머리를 자기들의 공적을 증명하는 물건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것을 보상받을 만한 물건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은 사람의 일부로 여기고 무덤에 묻게 합니다.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 죽은 뒤 그를 마하나임으로 데려가 왕으로 삼았고, 오랫동안 그의 왕권을 지탱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보셋과 갈등을 일으킨 뒤 다윗에게 돌아섰으며, 헤브론에서 요압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왕을 세운 사람의 무덤에 그 왕의 머리가 들어간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다윗과 맞서는 편에 속했지만, 다윗이 명령한 살인으로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두 사람 모두를 헤브론에 묻게 합니다. 3장에서 다윗은 아브넬을 위한 장례 행렬을 따라갔고, 무덤 앞에서 울었습니다. 4장에서는 이스보셋의 머리를 그 무덤에 묻게 합니다.
다윗에게 왕권이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죽은 적대자들의 시신은 전리품이 아니라 장사해야 할 죽은 사람의 몸으로 다루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이 장의 처음에 이스보셋의 두 손에 힘이 풀렸다고 말합니다. 4절에서는 므비보셋의 두 다리에 장애가 생긴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원문에서는 두 발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살인자들의 손과 발이 잘립니다. 이 반복을 글쓴이가 일부러 구성한 것인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장 전체에 나타나는 인간의 무력함과 폭력의 흔적을 서로 연결해 생각하게 합니다.
헤브론에 묻힌 머리
이스보셋을 죽인 것은 다윗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왔을 수 있지만, 그래서 옳은 일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을 하나님의 복수라고 부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왕위에 가까워지는 동안, 성경은 그가 얼마나 많은 적을 제거했는지를 기록하기보다 제거된 적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울 왕가의 왕권은 사실상 끝나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장의 마지막 장면은 승리한 다윗이 왕관을 쓰는 모습이 아닙니다.
헤브론의 연못가에는 살인자들의 시신이 매달려 있고, 아브넬의 무덤에는 이스보셋의 머리가 묻혀 있습니다. 다윗에게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죽었고, 그들이 죽인 사람은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살인자들이 하나님의 복수라고 불렀던 사건은 그렇게 끝납니다.
그들이 들고 온 머리는 왕권을 얻기 위한 선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죽은 사람의 머리로 돌아가 무덤에 묻혔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