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풀어 읽기 · 3장

이 장의 자리 · 1–4장 · 헤브론에서 왕이 되다

강해지는 왕국, 약한 왕

사무엘하 3장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문장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첫머리에서 성경은 다윗이 점점 강해졌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다윗 자신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기름 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지만 아직 힘이 약하다.」

다윗의 집안은 강해지고 있는데, 정작 다윗은 자신이 힘이 약하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103장 본문 읽기 →

강해지는 다윗의 집안

사무엘하 3:1–5 본문 →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 사이의 전쟁은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다윗은 점점 강해졌고, 사울 집안은 점점 약해졌습니다.사무엘하 3:1 · 두루새김

앞 장에서 기브온의 전투는 일단 중단되었지만, 그것으로 두 왕가의 갈등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다윗의 형편을 설명할 때 ‘가다’와 ‘강해지다’라는 표현을 결합합니다. 「점점 강해졌고」라는 말은 시간이 흐르면서 세력이 계속 커지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사울 집안에는 반대 방향의 표현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이 뜻밖입니다.

전쟁의 진행 상황이나 군사적 승리의 기록이 나오는 대신, 다윗에게 태어난 아들들의 이름이 나열됩니다. 암논, 길르압, 압살롬, 아도니야, 스바댜, 이드르암. 여섯 아들이 각각 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고대 왕국에서 왕의 집안은 단순히 개인적인 가족이 아니었습니다. 왕의 아들들은 왕가가 이어지고 왕의 자리를 물려주는 일과 연결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왕에게 후계자가 있다는 것은 그의 다스림이 한 세대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특히 셋째 아들 압살롬의 어머니 마아카에 대해서는 다른 어머니들과 달리 아버지의 신분까지 기록합니다. 그녀는 그술 왕 탈마이의 딸입니다. 그술은 갈릴리호 동쪽 또는 북동쪽 일대와 관련된 작은 왕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윗의 아내 가운데 다른 왕가의 딸이 있다는 것은 다윗 집안의 관계가 유다 내부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왕실 사이의 결혼은 정치적 관계와 연결될 수 있었지만, 본문은 이 결혼이 어떤 외교적 약속의 결과였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섯 아들의 이름 가운데 암논과 압살롬과 아도니야는 사무엘하와 이어지는 열왕기상에서 중요한 인물로 다시 등장합니다. 지금은 그저 태어난 아들들의 이름일 뿐이지만, 이들이 훗날 다윗의 집안에 심각한 갈등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아는 독자는 이 명단을 다르게 읽게 됩니다. 다만 아직 3장은 그들의 앞날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왕가가 커지는 것은 왕권의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많고 왕실의 규모가 커진다고 해서 그 집안의 미래까지 평안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사울 집안에서는 다른 종류의 힘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왕을 세운 사람이 왕을 무너뜨리다

사무엘하 3:6–11 본문 →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 사이에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아브넬은 사울 집안에서 자기 세력을 키우고 있었습니다.사무엘하 3:6 · 두루새김

1절에서는 다윗과 사울 집안의 세력이 비교됩니다. 그러나 6절에서는 사울 집안의 왕 이스보셋이 아니라 군대 지휘관 아브넬이 「자기 세력을 키우고 있었습니다」라고 합니다. 이스보셋은 왕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그의 왕권을 실제로 지탱하는 인물은 아브넬이었습니다.

사울에게는 아야의 딸 리스바라는 첩이 있었습니다.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물었습니다. 「왜 내 아버지의 첩과 잠자리를 같이했느냐?」사무엘하 3:7 · 두루새김

죽은 왕의 첩과 관계를 맺는 일은 단순히 개인의 사생활 문제가 아니라 왕의 지위와 권위에 접근하는 행동으로 이해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넬은 이미 사울 집안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사울의 첩과 잠자리를 같이했다면, 이스보셋은 그것을 자기 왕권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넬이 실제로 리스바와 잠자리를 같이했는지는 이 장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이스보셋이 따져 묻는 말을 전할 뿐,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그 행위를 사실로 확인하지 않습니다. 아브넬도 그 행위의 사실 여부를 분명하게 밝히기보다 자신이 받은 대우에 분노합니다.

아브넬은 이스보셋의 말에 몹시 화가 나서 대답했습니다. 「제가 유다 편에 붙은 개 대가리라도 됩니까? 저는 오늘까지 왕의 아버지 사울의 집안과 그분의 형제들과 벗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왔습니다. 왕을 다윗의 손에 넘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여자 일로 제게 죄를 물으십니까?」사무엘하 3:8 · 두루새김

「개 대가리」는 자신이 하찮은 존재처럼 취급되었다는 분노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는 자신이 이스보셋을 다윗에게 넘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이스보셋의 왕권을 유지하는 일이 상당 부분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제가 그를 위해 이루어 주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제게 아무리 무거운 벌을 내리셔도 좋습니다.」사무엘하 3:9 · 두루새김

그는 왕의 자리를 사울 집안에서 다윗에게 넘겨 다윗이 왕으로 다스리게 하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이루겠다는 결정이 자신의 분노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이 장면은 올바른 말을 한다는 것과 올바른 이유로 행동한다는 것이 반드시 같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아브넬의 선언대로 다윗이 왕이 되는 일은 성경이 제시해 온 방향과 일치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아브넬의 동기가 순수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두려워 더 이상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사무엘하 3:11 · 두루새김

그에게 왕관은 있지만, 자신을 왕으로 세운 사람에게 맞설 힘은 없습니다. 이스보셋의 침묵은 단순히 성격이 나약하다는 것을 넘어, 사울 왕국의 권력 구조가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아브넬은 실제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하 16:21–22에서는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의 첩들과 공개적으로 관계를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은 단순한 성적 행동이 아니라 아버지의 왕권에 대한 도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상 15:28에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왕국이 다른 사람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사무엘상 16:13에서는 다윗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사울 자신도 다윗이 왕이 될 것을 인정하는 말을 했습니다(사무엘상 24:20). 아브넬이 그 모든 사건을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었는지는 확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3:9–10에서 그는 다윗이 왕이 되는 일이 여호와야훼의 뜻이라고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본문은 아브넬의 속마음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울 집안에 대한 오랜 충성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자신의 정치적 지위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땅은 누구의 것인가

사무엘하 3:12 본문 →

아브넬은 다윗에게 심부름꾼들을 보냅니다.

아브넬은 자기를 대신할 심부름꾼들을 다윗에게 보내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이 땅이 누구의 것입니까? 저와 언약을 맺으십시오. 제가 왕을 도와 온 이스라엘이 왕을 따르게 하겠습니다.」사무엘하 3:12 · 두루새김

아브넬이 이 땅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곳으로 여기면서 협상에서 자기 힘을 내세우는 말일 수 있습니다. 또는 다윗이 마땅히 이 땅을 다스려야 한다는 뜻을 넌지시 드러내는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이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습니다.

아브넬은 다윗에게 언약을 맺자고 합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이 다윗을 따르게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던 사람이 이제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설득하여 다윗을 왕으로 받아들이게 하겠다고 합니다.

사울 왕가를 지탱했던 힘이 이제 그 왕가를 떠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넬은 이스라엘을 자신이 다윗을 따르게 할 수 있는 정치적 세력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궁극적으로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입니다.

레위기 25:23에서는 땅이 여호와야훼의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땅에 머물러 사는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또한 신명기 17:14–20에서 왕은 하나님의 율법 아래 놓인 사람이지, 백성을 자기 뜻대로 소유할 수 있는 절대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아브넬의 질문에 구약 전체의 관점에서 대답한다면 땅과 백성을 최종적으로 다스릴 권한은 하나님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하 3장에서는 그 대답이 직접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브넬과 다윗이 왕권을 둘러싸고 협상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왕권 협상의 대가가 된 한 여인

사무엘하 3:13–16 본문 →

다윗이 대답했습니다. 「좋다. 너와 언약을 맺겠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나를 만나러 올 때 사울의 딸 미갈을 데려와야 한다. 미갈을 데려오지 않으면 나를 만날 수 없다.」사무엘하 3:13 · 두루새김

미갈은 단순히 사울의 딸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아내이기도 했습니다. 사무엘상 19:11–17에서는 미갈이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계획을 알고 그가 도망치도록 도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도망자로 살아가는 동안 사울은 미갈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습니다(사무엘상 25:44). 그 사람이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도 심부름꾼들을 보내 말했습니다. 「내 아내 미갈을 돌려주십시오. 나는 블레셋 사람 100명을 죽였다는 증표를 주고 미갈과 약혼했습니다.」사무엘하 3:14 · 두루새김

그는 자신의 혼인 관계가 정당하게 이루어졌음을 강조합니다. 또한 미갈이 사울의 딸이라는 사실에도 정치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녀와의 혼인 관계는 다윗이 사울 왕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이스보셋은 미갈을 발디엘에게서 데려오게 합니다.

미갈의 남편은 울면서 바후림까지 미갈을 뒤따라갔습니다. 아브넬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돌아가라.」 그러자 그는 돌아갔습니다.사무엘하 3:16 · 두루새김

그는 정치적인 협상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미갈을 따라가는 것뿐이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발디엘에게는 자기 삶을 결정할 권한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미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녀가 다윗에게 돌아가기를 원했는지, 발디엘과 헤어지기를 원하지 않았는지, 또는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다윗의 요구에 따라 데려와지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14절에서 다윗은 그녀를 「내 아내 미갈」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15–16절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은 발디엘을 그녀의 「남편」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들은 미갈을 둘러싼 상황이 단순히 소유권을 되찾는 문제로 정리될 수 없음을 드러냅니다.

본문은 다윗의 요구를 직접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발디엘의 눈물을 지우지도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상 18:20–27에 따르면 미갈은 다윗을 사랑했고, 사울은 그녀를 다윗에게 아내로 주는 과정에서 블레셋 사람들의 포피 백 개를 결혼의 조건으로 요구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다가 죽기를 기대했지만, 다윗은 오히려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을 죽이고 요구한 것보다 많은 포피를 가져왔습니다. 두루새김은 다윗이 건넨 것을 「블레셋 사람 100명을 죽였다는 증표」라고 풀어 옮겼습니다. 다윗이 백 명을 말하는 것은 사울이 처음 요구했던 조건을 가리킨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다윗이 미갈을 요구한 정확한 동기를 밝히지 않습니다. 그녀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 때문이었는지, 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는지, 또는 두 이유가 함께 있었는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말하는 아브넬

사무엘하 3:17–21 본문 →

아브넬은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말합니다.

아브넬은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전부터 다윗을 왕으로 세우고 싶어 했어요.」사무엘하 3:17 · 두루새김

이 말이 정확히 어느 시기의 어떤 움직임을 가리키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넬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스라엘의 장로들 가운데는 이미 다윗을 왕으로 받아들이려는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하세요.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에게 『내 종 다윗을 통해 내 백성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들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구해 내겠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에요.」사무엘하 3:18 · 두루새김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께 속한 종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입니다. 왕권은 다윗이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 차지하는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해 내시는 일에 사용하시는 수단으로 제시됩니다. 다윗은 구원을 이루시는 궁극적인 분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구해 내시는 일에 사용하시는 사람입니다.

아브넬이 인용하는 이 약속과 정확히 같은 문장이 앞선 사무엘상에 직접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셨다는 선언, 사울에게서 왕권이 떠날 것이라는 말씀,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리라는 기대와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하다고 해서 그 약속을 말하는 모든 사람의 동기가 순수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행동이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방향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그 행동의 수단까지 정당화되는 것도 아닙니다.

아브넬은 장로들뿐 아니라 베냐민 사람들에게도 따로 이야기합니다. 베냐민은 사울의 출신 지파였습니다(사무엘상 9:1–2). 사울 왕가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다윗을 새로운 왕으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일은 다른 지파들을 설득하는 것보다 민감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무 명을 데리고 헤브론으로 가서 다윗을 만납니다. 다윗은 그를 위해 잔치를 베풉니다. 서로 적대하던 편의 지도자들이 한 식탁에 앉는 것입니다.

앞 장에서 아브넬과 요압은 기브온의 못을 사이에 두고 군대를 마주 앉혔습니다. 이제 아브넬은 다윗의 자리에서 함께 음식을 나눕니다. 전쟁을 계속하는 대신 언약을 맺고 새로운 관계를 이루어 갈 가능성이 나타납니다.

아브넬은 온 이스라엘을 모아 다윗과 언약을 맺게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다윗은 그를 보내 줍니다.

세 번 반복된 「평안히」

사무엘하 3:22–27 본문 →

아브넬이 떠난 직후 요압과 다윗의 부하들이 약탈하러 나갔다가 돌아옵니다.

아브넬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가서 온 이스라엘을 제 주인이신 왕께 모아 오겠습니다. 그들이 왕과 언약을 맺으면, 왕께서는 바라시는 모든 곳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다윗이 아브넬을 보내 주자 그는 평안히 떠났습니다.사무엘하 3:21 · 두루새김

22절에서는 아브넬이 이미 다윗 곁에 없으며, 다윗이 그를 보내 주어 평안히 떠났다고 다시 말합니다. 23절에서는 돌아온 요압에게 사람들이 아브넬이 평안히 떠났다고 전합니다. 같은 사실이 서술자의 말로, 그리고 요압에게 전해지는 보고로 거듭 강조됩니다.

아브넬은 다윗과 적대 관계를 끝내고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를 다시 불러들여 죽이는 행위는 단순히 전투 중 상대편 장수를 죽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 됩니다.

요압은 다윗에게 따집니다.

「넬의 아들 아브넬이 어떤 사람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는 왕을 속이려고 온 것입니다. 왕께서 어디로 다니시는지, 무슨 일을 하시는지 모두 알아내려고 온 것입니다.」사무엘하 3:25 · 두루새김

이 말은 요압의 주장이지 서술자가 확인해 준 사실이 아닙니다. 아브넬이 실제로 첩자 노릇을 하려 했다는 증거는 이 장에 제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브넬을 적대할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앞 장에서 아브넬이 그의 동생 아사헬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요압은 다윗에게서 물러나와 아브넬을 뒤따라 심부름꾼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보르핫시라에서 아브넬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다윗은 이 일을 몰랐습니다.사무엘하 3:26 · 두루새김

독자는 이제 다윗이 허락하지도 않은 일이 그의 부하에 의해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자, 요압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려고 그를 성문 안쪽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요압은 거기서 아브넬의 배를 찔러 죽였습니다. 아브넬이 요압의 동생 아사헬을 죽인 데 대한 복수였습니다.사무엘하 3:27 · 두루새김

요압은 아브넬이 다윗을 속이려고 왔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상대를 속여 죽인 사람은 요압이었습니다.

아사헬은 아브넬을 뒤쫓다가 창에 배를 찔려 죽었습니다(2:23). 이제 아브넬도 요압에게 배를 찔려 죽습니다.

그러나 두 사건의 성격은 같지 않습니다.

아사헬은 전투 중 적장을 뒤쫓았고, 아브넬은 그에게 물러나라고 거듭 경고한 뒤 죽였습니다. 반면 아브넬은 다윗과 평화롭게 협상한 뒤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요압은 그를 몰래 불러들여 속이고 죽였습니다.

요압에게는 동생을 잃은 슬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슬픔이 있다고 해서 그 슬픔을 풀기 위해 선택한 모든 행동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조용히」로 번역된 히브리어 바셸리는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조용히 이야기한다는 뜻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따로 이야기한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여호수아 20:7에 따르면 헤브론은 도피성 가운데 하나로 지정된 곳입니다. 도피성은 일부러 죽이려 한 것이 아닌데 사람을 죽인 사람이 피의 보복자로부터 도망하여 사건에 대한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장소였습니다(민수기 35:9–34; 여호수아 20:1–9). 그의 행위가 도피성 규정에 따라 법적으로 어떻게 처리되었어야 하는지는 사무엘하 3장이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브넬이 도피성의 보호를 요청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따라서 요압이 성문 안쪽에서 그를 죽였다는 사실만으로 구체적인 도피성 재판 절차가 어떻게 어겨졌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피의 보복이 무분별하게 이어지지 않도록 마련된 성읍에서 피의 보복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은 왜 요압을 처벌하지 못했는가

사무엘하 3:28–30 본문 →

아브넬의 죽음을 들은 다윗은 즉시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나중에 이 일을 들은 다윗이 말했습니다. 「나와 내 나라는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일에 대해 여호와야훼 앞에서 영원히 죄가 없다.」사무엘하 3:28 · 두루새김

「나와 내 나라」라고 말합니다. 아브넬의 죽음이 자신의 왕권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이 적장을 초대하여 협상한 다음 몰래 죽였다고 의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의심은 다윗의 왕권을 향한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다윗은 요압의 집안을 저주합니다.

「그를 죽인 책임은 요압과 그 아버지의 온 집안에 돌아가기를 바란다. 요압의 집안에 유출병을 앓는 사람과 심한 피부병을 앓는 사람, 실 잣는 막대를 붙드는 사람, 칼에 죽는 사람,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이 끊이지 않기를 바란다.」사무엘하 3:29 · 두루새김

요압은 아브넬을 부당하게 죽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범죄의 책임을 요압 개인에게만 돌리지 않고 그의 집안까지 저주합니다. 본문은 다윗이 이런 말을 했다고 기록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저주를 승인하셨다거나 죄 없는 후손들이 반드시 그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어떤 인물의 말을 기록하는 것과 그 말 전체를 하나님의 판단으로 제시하는 것은 다릅니다.

다윗은 왜 요압을 직접 처벌하지 않습니까?

본문은 여기서 구체적인 이유를 아직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의 마지막에 이르면 다윗 자신이 자신의 처지를 설명합니다. 그는 기름 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지만 아직 힘이 약하며, 스루야의 아들들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3:39).

아브넬을 죽인 요압은 다윗의 부하였습니다. 다윗의 직접적인 지시 없이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를 막지 못했다는 사실은 왕권의 중요한 약점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앞부분의 이스보셋과 다윗이 나란히 보입니다.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두려워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요압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저주했지만, 그를 처벌하지는 못했습니다. 두 왕의 태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둘 다 자기 군대 지휘관의 힘 앞에서 왕권이 제한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왕국에 정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왕이 부당한 힘을 실제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장의 마지막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실 잣는 막대를 붙드는 사람」은 해석상 논의가 있는 표현이지만, 두루새김은 실을 잣는 도구를 붙드는 사람이라는 원문의 모습을 살려 옮겼습니다. 이 목록 전체가 보여 주는 것은 요압의 집안이 여러 형태의 고통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를 바라는 강한 저주입니다.

살해된 적장을 위해 우는 왕

사무엘하 3:31–37 본문 →

다윗은 아브넬의 장례를 명령합니다.

다윗은 요압과 자기 곁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옷을 찢고 거친 베로 만든 옷을 입어라. 아브넬 앞에서 슬퍼하며 울어라.」 다윗 왕은 아브넬의 시신을 나르는 들것 뒤를 따라갔습니다.사무엘하 3:31 · 두루새김

아브넬을 죽인 요압도 그 장례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살인자가 죽은 사람의 장례 행렬을 외면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이어서 다윗은 무덤 앞에서 소리 높여 웁니다.

왕이 아브넬의 죽음을 슬퍼하며 노래했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죽듯 아브넬이 죽어야 했는가?」사무엘하 3:33 · 두루새김

이 문장은 아브넬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는 비난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가 이런 식으로 죽어야 했느냐는 탄식입니다.

「그대의 두 손은 묶이지 않았고, 두 발도 청동 사슬에 묶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악한 자들 앞에서 쓰러지듯 그대는 쓰러졌구나.」 모든 백성이 아브넬을 생각하며 다시 울었습니다.사무엘하 3:34 · 두루새김

이 탄식에는 아브넬의 죽음이 얼마나 부당하고 뜻밖이었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다윗은 아브넬이 상대편의 장수였다는 사실 때문에 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윗이 바라보는 것은 적장이 제거되었다는 정치적인 결과가 아닙니다.

한 사람이 속임수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은 다윗이 울었다고 기록합니다. 또한 그가 해가 지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고 맹세한 사실도 전합니다.

모든 백성은 다윗의 이런 행동을 보고 좋게 여겼습니다. 왕이 하는 모든 일이 그들의 눈에 좋게 보였듯이, 이 일도 그랬습니다.사무엘하 3:36 · 두루새김

그리고 37절에서는 아브넬을 죽인 일이 왕의 뜻이 아니었음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백성의 좋은 평가가 곧 다윗의 모든 행동이 완전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야기는 이미 다윗이 요압을 직접 처벌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백성은 다윗을 좋게 평가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처지를 전혀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아브넬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다윗에게 유리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실제로 백성은 다윗의 행동을 좋게 여겼고, 그의 책임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다윗의 슬픔이 거짓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행동은 백성이 볼 수 있는 공개적인 행동이면서 동시에 실제로 슬픔을 나타내는 행동입니다. 두 측면이 반드시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닙니다.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으나 힘이 약하다

사무엘하 3:38–39 본문 →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자기 부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이스라엘에서 큰 지도자 한 사람이 쓰러졌다는 것을 너희도 알지 않느냐?」사무엘하 3:38 · 두루새김

이 말은 아브넬을 단순한 적군 장수로만 기억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다윗은 그가 이스라엘에서 지녔던 실제적인 영향력과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다윗은 자신을 평가합니다.

「나는 기름 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지만 아직 힘이 약하다. 스루야의 아들들은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거칠다. 여호와야훼께서 악을 행한 자에게 그가 저지른 악에 맞게 갚아 주시기를 바란다.」사무엘하 3:39 · 두루새김

다윗은 왕으로서 자신의 뜻을 이룰 힘이 충분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스루야의 아들들이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거칠다는 것입니다.

두 문장은 서로 다른 차원의 힘을 말합니다.

처음의 힘은 왕국의 세력입니다. 사울 집안과 비교할 때 다윗을 뒷받침하는 정치적·군사적 힘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의 약함은 왕이 자기 주변의 강력한 인물들을 다스리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왕국이 강해지는 것과 그 왕국 안에서 정의를 세우는 능력이 강해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강한 군대가 있다고 해서 그 군대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능한 부하들이 있다고 해서 그들이 언제나 왕의 뜻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을 차지했다고 해서 그 권력 안에 있는 폭력까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께서 악을 행한 자에게 그가 저지른 악에 맞게 갚아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최종적인 정의를 행하실 분이라는 믿음을 나타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심판을 요청했다는 사실은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이 정치적으로 힘을 쓰지 못한 것을 정당화하셨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악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는 태도와, 왕에게 맡겨진 정의의 책임을 실제로 다하는 문제는 별개로 남습니다.

사무엘하 3장은 그 긴장을 해결하지 않습니다.

아브넬의 무덤 앞에서

사무엘하 3:1–39 본문 →

다윗의 약함은 적에게 대항할 힘이 부족하다는 데서 드러난 것이 아닙니다. 자기편의 강한 사람을 다스리지 못한다는 데서 드러났습니다. 왕국의 힘은 커졌지만, 그 힘이 아직 정의와 평화를 지키는 힘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날 헤브론에는 아브넬의 장례가 치러졌고, 왕은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온 백성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러나 장례가 끝난 뒤에도 요압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다윗의 마지막 말은 승리의 선언도, 왕국의 통일을 알리는 선포도 아니었습니다. 「나는 기름 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지만 아직 힘이 약하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힘으로 바로잡지 못한 일을 하나님의 판단 앞에 남겨 두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