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풀어 읽기 · 8장

이 장의 자리 · 5–10장 · 예루살렘과 언약궤

승리와 왕의 정의

사무엘하 8장은 다윗이 얼마나 강한 왕이 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블레셋과 모압을 굴복시키고, 북쪽의 강력한 아람 세력을 무찌르며, 에돔에 주둔군을 설치합니다. 한때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던 사람이 이제 주변 나라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을 끝까지 읽으면 뜻밖의 문장을 만납니다.

저자는 수많은 전쟁의 승리를 기록한 뒤, 다윗이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했다는 말로 그의 통치를 요약합니다. 승리의 크기를 말하다가 통치의 성격으로 시선을 옮기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왕과 백성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왕은 어떻게 연결됩니까? 그리고 그 모든 승리를 여호와야훼께서 주셨다는 선언은 다윗의 행동 하나하나를 어떻게 평가하게 만듭니까?

읽는 시간 16분소단락 68장 본문 읽기 →

두려워하던 나라를 굴복시키다

사무엘하 8:1–2 본문 →

첫 번째 상대는 블레셋입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오랫동안 군사적 위협이었습니다. 사무엘상 4장에서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하고 하나님의 궤까지 빼앗겼습니다. 사울 시대에도 블레셋의 군사적 압력은 계속되었으며, 결국 사울은 블레셋과 싸우다가 길보아산에서 죽었습니다(사무엘상 31장).

다윗 자신도 블레셋과 복잡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는 골리앗을 쓰러뜨렸지만, 훗날 사울에게 쫓길 때에는 블레셋의 도시 가드로 피신해야 했습니다(사무엘상 27:2–7).

그 뒤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굴복시켰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았다.사무엘하 8:1 · 본디새김

한때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다윗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기까지 했던 블레셋이 이제 다윗에게 굴복합니다. 양쪽의 세력 관계가 뒤집힌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 승리의 분위기는 급격히 어두워집니다.

그는 모압을 치고, 그들을 땅에 눕혀 놓고 줄로 재었다. 두 줄 길이만큼 재어 죽일 사람들을 정하고, 한 줄의 전체 길이만큼 재어 살려 둘 사람들을 정했다. 모압은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쳤다.사무엘하 8:2 · 본디새김

본문에 묘사된 상황에서 패배한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이나 행동에 따라 판단받지 않습니다. 정복자의 명령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집단이 됩니다.

이 장면은 다윗 왕권의 가혹한 면을 드러냅니다.

사무엘상 22:3–4에 따르면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 자기 부모를 모압 왕에게 맡겼습니다. 그때 모압은 다윗의 가족이 머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윗이 모압을 공격하고 대규모 처형을 시행합니다.

그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모압이 먼저 적대적인 행동을 했습니까? 다윗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생겼습니까?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처형을 보복이었다고 단정하거나, 특별한 범죄에 대한 정당한 형벌이었다고 설명할 근거는 없습니다.

또한 뒤에서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에게 승리를 주셨다고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처형 방식까지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셨다고 결론 내릴 수도 없습니다. 본문은 다윗이 행한 일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구분하여 서술합니다. 성경이 어떤 행동을 기록한다는 사실과 그 행동을 도덕적으로 승인한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이렇게 다윗은 서쪽의 블레셋과 동쪽의 모압을 제압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전쟁은 훨씬 넓은 세계를 무대로 펼쳐집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 나오는 ‘메덱암마’는 정확하게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표현은 ‘고삐’를 뜻하는 말과 ‘어머니’ 또는 중심지를 연상시키는 말의 결합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이를 블레셋의 중심 지배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볼 수도 있지만, 특정 지명일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병행 본문인 역대상 18:1은 다윗이 블레셋의 가드와 그 주변 성읍들을 빼앗았다고 기록합니다. 두 기록을 연결하여 메덱암마를 가드 일대의 지배권과 관련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두 표현이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북쪽으로 확장되는 전쟁과 승리의 주체

사무엘하 8:3–6 본문 →

3절에서 다윗의 상대는 소바 왕 하닷에셀입니다.

르홉의 아들인 소바 왕 하닷에셀이 유프라테스강에서 자기 지배력을 되찾으려고 나섰을 때, 다윗이 그를 쳤다.사무엘하 8:3 · 본디새김

소바는 이스라엘 북쪽에 있었던 아람계 왕국입니다. 하닷에셀이 유프라테스강 부근에서 지배력을 되찾으려 했다는 설명은, 이 전쟁이 단순한 국경 분쟁을 넘어 북쪽 지역의 세력 경쟁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전쟁의 규모도 앞선 장면보다 커집니다. 다윗은 하닷에셀의 기병과 보병을 사로잡고, 병거를 끄는 말들의 다리 힘줄을 끊습니다.

병거와 군마는 고대 전쟁에서 중요한 군사 자원이었습니다. 특히 평지에서 병거를 운용할 수 있는 왕국은 보병 중심의 상대에게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조치는 노획한 적의 군마가 다시 전쟁에 쓰이지 못하게 만드는 행동이었습니다. 다만 그 결과는 실제 동물에게 손상을 입히는 것이었다는 점도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한편 다윗은 모든 군마를 무력화한 것이 아니라 병거 백 대에 사용할 말은 남겼습니다. 그는 적의 병거 전력을 무력화하면서 일부는 자기 군사력으로 보유한 셈입니다.

하닷에셀이 공격받자 다마스쿠스의 아람 사람들이 그를 도우러 왔습니다. 다윗은 이 지원군까지 무찌르고 다마스쿠스 지역에 주둔군을 설치합니다.

그런데 이 군사적 성공을 설명하던 서술자가 갑자기 행동의 주체를 바꿉니다.

다윗은 다마스쿠스의 아람 땅에 주둔군을 두었다. 아람은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쳤다. 여호와야훼는 다윗이 가는 곳마다 그에게 승리를 주었다.사무엘하 8:6 · 본디새김

앞부분에서는 계속 다윗이 행동합니다. 다윗이 치고, 사로잡고, 주둔군을 둡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문장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주어가 됩니다.

저자는 다윗의 군사적 능력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실제로 군대를 움직이고 전쟁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다윗 자신도 여호와야훼의 구원을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남들을 굴복시키는 강력한 왕도 하나님 앞에서는 구원받는 사람입니다.

소바를 도우려던 다마스쿠스까지 전쟁에 휘말립니다. 그리고 곧이어 또 다른 나라가 등장하지만, 이번에는 군대를 보내는 대신 선물을 보냅니다.

조금 더 깊이

‘자기 지배력을 되찾으려고’라는 표현의 바탕에 있는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 ‘자기 손(⁨יָד⁩)을 되돌리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여기서 ‘손’은 지배력이나 권세를 가리킵니다. 군마의 다리 힘줄을 끊는 이 장면은 여호수아 11:6–9를 떠올리게 합니다. 거기서도 이스라엘은 적의 말들의 다리 힘줄을 끊고 병거를 불태웁니다. 신명기 17:16은 이스라엘 왕에게 말을 많이 늘리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왕이 군사력의 축적을 통치의 궁극적인 기반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경계입니다. 다윗의 행동을 이 명령과 함께 읽을 수는 있지만, 8장 자체는 다윗이 신명기의 명령을 의식해서 말들을 무력화했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6절의 ‘승리를 주었다(⁨יָשַׁע⁩)’는 원문의 표현을 더 직접적으로 옮기면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을 구해 내셨다’에 가깝습니다. 전쟁의 문맥에서는 이것이 승리를 주셨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전리품이 예루살렘으로 향하다

사무엘하 8:7–12 본문 →

전쟁이 끝나자 다윗은 하닷에셀의 신하들이 지니던 금제 무구들과 여러 성읍에서 얻은 많은 청동을 예루살렘으로 가져옵니다.

이것은 정복이 가져온 경제적 결과를 보여 줍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왕은 영토와 조공뿐 아니라 귀중한 금속과 군사 장비까지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하맛 왕 도이가 등장합니다.

도이는 다윗과 직접 전쟁을 벌인 왕으로 소개되지 않습니다. 그는 하닷에셀과 전쟁을 벌여 왔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아들 요람을 다윗에게 보내 승리를 축하하고 은그릇과 금그릇과 청동 그릇을 전달합니다.

모압과 아람은 패배하여 다윗의 종이 되었고 조공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도이는 사절을 보내 다윗의 안부를 묻고 승리를 축하합니다.

둘 다 귀중품이 이동하는 일이지만 정치적 의미는 같지 않습니다. 앞의 조공은 군사적 굴복의 결과이고, 도이의 선물은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맺으려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귀중품들이 다윗에게 들어왔다는 사실보다, 다윗이 그것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다윗 왕은 그가 정복한 모든 민족에게서 얻어 거룩하게 바친 은과 금과 함께 이것들도 여호와야훼에게 거룩하게 바쳤다.사무엘하 8:11 · 본디새김

여기서 ‘거룩하게 바쳤다’는 말은 그 물건들을 여호와야훼께 속한 것으로 구별했다는 의미입니다. 전쟁으로 얻은 귀중품들이 왕의 사적인 재산과는 다른 지위를 갖게 됩니다.

이 장면은 바로 앞 장과 연결됩니다.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은 자신이 백향목 집에 살면서 하나님의 궤는 천막에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를 위한 집을 세우려 했지만, 여호와야훼께서는 오히려 다윗의 왕조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건축할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8장에서 그는 자신이 확보한 재물을 여호와야훼께 거룩하게 바칩니다.

그 재물의 이후 용도에 대해서는 역대상 18:8이 흥미로운 정보를 덧붙입니다. 거기서는 다윗이 가져온 청동으로 훗날 솔로몬이 성전의 바다와 기둥과 여러 기구를 만들었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사무엘하 8장이 직접 말하지 않는 후대의 결과입니다.

7장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다윗의 왕권이 다윗 자신의 힘으로 생겨난 것이 아님을 알려 주셨습니다. 8장에서 다윗은 자기 손에 들어온 재물을 여호와야훼께 바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승리의 결과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그 승리를 누구의 것으로 이해하는지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전쟁을 성전 재료 확보를 위한 전쟁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8장은 다윗이 재물을 바쳤다고 말할 뿐, 그것을 얻기 위해 치른 모든 전쟁의 동기가 성소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확인시켜 주는 것은 정복 이후의 행동입니다.

다윗이 이름을 얻다

사무엘하 8:13–14 본문 →

13절은 앞선 전쟁 기록들을 마무리하면서 다윗이 얻은 명성을 이야기합니다.

다윗은 소금 골짜기에서 아람 사람 만 팔천 명을 쳐 죽이고 돌아왔을 때 이름을 떨쳤다.사무엘하 8:13 · 본디새김

여기서 ‘이름을 떨쳤다(⁨שֵׁ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은 문자적으로 ‘다윗이 이름을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사무엘하 7:9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다윗에게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처럼 그의 이름을 크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7장의 약속과 8장의 현실이 맞물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실제 전쟁을 치르고 실제 성과를 얻습니다. 그의 이름은 주변 나라들에 알려지고, 왕들은 그에게 사절을 보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윗이 자기 이름을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 모든 성취를 설명하는 가운데 두 차례 같은 선언을 삽입합니다.

그는 에돔에 주둔군을 두었다. 곧 에돔 온 땅에 주둔군을 두었고, 온 에돔이 다윗의 종이 되었다. 여호와야훼는 다윗이 가는 곳마다 그에게 승리를 주었다.사무엘하 8:14 · 본디새김

6절과 14절의 「여호와야훼는 다윗이 가는 곳마다 그에게 승리를 주었다」라는 두 선언은 전쟁 이야기의 중간과 끝에 각각 자리합니다. 따라서 다윗의 이름이 커지는 과정은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에게 승리를 주시는 과정과 함께 읽혀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 이름을 떨쳤지만, 저자는 그를 자기 운명의 유일한 창조자로 그리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다윗의 왕조를 세우겠다고 약속하셨고, 다윗은 그 약속의 역사적 성취를 경험합니다. 다윗이 주변 나라들을 굴복시킬 정도로 강해지는 것은 그 약속이 현실 속에서 드러나는 한 모습입니다.

다만 이 장의 승리들이 그 약속 전체의 완성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약속하신 왕조의 지속과 미래는 아직 이 이야기 밖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는 다시 시선을 돌립니다.

조금 더 깊이

소금 골짜기는 구약의 다른 본문에서 에돔과 연결되는 장소입니다. 열왕기하 14:7은 유다 왕 아마츠야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들을 무찌른 사건을 전합니다. 사무엘하 8:13은 아람 사람들을 쳤다고 기록하지만, 바로 다음 절에서는 다윗이 에돔에 주둔군을 두었다고 말합니다. 더욱이 병행 본문인 역대상 18:12은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무찔렀다고 기록합니다. 시편 60편의 표제도 에돔과의 전투를 언급하지만, 거기서는 요압이 에돔 사람 만 이천 명을 쳐 죽였다고 전합니다. 따라서 이 기록들 사이에는 상대 민족, 지휘관, 병력 수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사무엘하의 ‘아람’이 전승 과정에서 ‘에돔’과 혼동되었다고 볼 수도 있고, 병행 기록들이 같은 전쟁의 서로 다른 부분이나 군사적 책임 관계를 반영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자료만으로 어느 설명이 정확한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본디새김이 사무엘하의 ‘아람’을 그대로 남겨 둔 것은 본문에 존재하는 차이를 성급하게 없애지 않는 선택입니다.

왕의 힘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사무엘하 8:15–18 본문 →

15절은 짧지만 이 장의 방향을 결정하는 문장입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다윗은 자기 백성 모두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했다.사무엘하 8:15 · 본디새김

앞부분의 전쟁 기록에서는 다윗이 다른 나라들에게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이 절에서는 다윗이 자기 백성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가 중심으로 들어옵니다.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분쟁을 바르게 판단하고,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질서를 세우는 일과 관련됩니다. 두 단어가 함께 쓰이면 정의로운 판단과 올바른 통치가 결합된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 구절을 사무엘상 8장과 함께 읽으면 의미가 더욱 뚜렷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무엘에게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때 사무엘은 왕이 그들의 아들들을 군대와 전차에 동원하고, 딸들을 데려가 일하게 하며, 밭과 포도원과 재산을 거두어 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사무엘상 8:11–18).

왕권은 백성을 보호할 수도 있지만, 왕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을 소모할 수도 있습니다.

사무엘하 8장에서 다윗은 이제 실제로 군대를 거느리고, 조공을 받고, 막대한 재물을 관리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경고했던 강력한 왕권의 수단들이 그의 손에 들어온 것입니다.

왕권의 위대함은 다른 사람들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 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도 중요합니다.

시편 72:1–4는 왕이 하나님의 공의로 백성을 재판하고,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사람들을 구원하기를 기도합니다. 사무엘하 8:15의 ‘정의와 공의’는 바로 이 왕권의 이상과 만납니다.

15절은 다윗이 ‘자기 백성 모두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했다고 말합니다. 모압이나 에돔을 비롯한 정복당한 나라들에 대해서까지 동일한 평가를 내리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근거로 2절의 처형까지 정의로운 행동이었다고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정치적 성공이나 종교적 헌신은 정의로운 통치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다윗이 전리품을 여호와야훼께 바친 사실과 자기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한 사실은 서로 구별되는 행동이며, 본문은 둘 다 기록합니다.

이름이 아니라 직책으로 끝나는 이야기

16–18절에는 여러 사람의 이름과 직책이 나열됩니다.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대를 지휘하고, 여호사밧은 기록관이며, 사독과 아히멜렉은 제사장입니다. 스라야는 서기관이고, 브나야와 그렛 사람들 및 블렛 사람들이 언급됩니다.

앞에서는 군대가 이동하고, 적군이 무너지며, 왕들이 굴복합니다. 이제는 기록관과 서기관, 제사장들이 등장합니다.

전쟁에서 나라를 차지하는 것과 차지한 나라를 지속적으로 다스리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군대는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지만, 왕국의 일상은 군대만으로 유지될 수 없습니다. 명령과 기록을 관리해야 하고, 백성의 삶을 조정하는 행정이 필요하며,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제의적 질서도 유지되어야 합니다.

이 명단은 다윗의 왕국이 단순히 한 전사의 개인적인 영향력에 의존하는 집단을 넘어, 여러 직책을 갖춘 왕국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여호사밧과 스라야의 구체적인 업무 범위를 이 본문만으로 상세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기록과 문서 업무를 맡은 관리들이 왕국의 핵심 인물로 제시되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이 있었다. 다윗의 아들들은 제사장이었다.사무엘하 8:18 · 본디새김

앞에서 사독과 아히멜렉을 제사장으로 소개했는데, 왕의 아들들에게도 같은 직책 명칭이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것은 다윗의 아들들까지 왕국의 공식적인 질서 안에서 언급된다는 점입니다.

조금 더 깊이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은 사무엘하의 다른 본문에서 왕을 수행하는 무장 집단으로 등장합니다(15:18; 20:7). 다만 8:18의 문장만으로 브나야가 이들을 지휘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실제로 코하님(⁨כֹּהֵן⁩), 곧 ‘제사장들’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이 표현을 번역 과정에서 다른 직책으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살릴 근거가 충분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아들들이 어떤 의미에서 제사장이었는지는 별도의 문제입니다. 이 구절이 그들이 제단에서 제사를 집례했다는 뜻인지, 왕실과 관련된 특별한 고위 직책을 가리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역대상 18:17은 병행되는 자리에서 다윗의 아들들을 왕 곁에 있는 으뜸가는 사람들로 묘사합니다. 이 때문에 왕실의 고위 관리라는 이해도 가능하지만, 사무엘하의 ‘제사장’이라는 표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세우시는 왕국의 모습

사무엘하 8:1–18 본문 →

다윗 이야기에서 먼저 확인되는 것은 힘의 근원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세우시고 구해 주신 왕이기에, 다윗의 권력은 자기 자신을 높이는 일만을 위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주신 승리는 다윗에게 영광뿐 아니라 다스려야 할 백성과 감당해야 할 책임을 남겼습니다.

이 장이 끝날 때 더 이상 전투의 함성은 들리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전쟁에서 가져온 금과 청동이 있고, 왕국에는 군대와 기록관과 서기관과 제사장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한가운데 다윗이 있습니다.

저자는 그가 얼마나 많은 나라를 이겼는지 이미 충분히 기록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보여 주는 것은, 그가 자기 백성을 향해 정의와 공의를 행했다는 사실입니다.

승리한 왕이 무엇을 얻었는지보다, 승리한 뒤 그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어떻게 다스렸는지가 중요해지는 자리에서 사무엘하 8장은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