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풀어 읽기 · 6장

이 장의 자리 · 2–6장 · 왕들을 섬긴 다니엘

왕이 구하지 못한 사람을 구하신 하나님

다니엘 6장은 사자 굴에서 살아 나온 사람의 이야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읽으면 뜻밖의 사실이 드러납니다. 사자 굴에 던져진 사람은 다니엘이지만, 이야기 내내 더 무력하게 그려지는 사람은 왕입니다.

다리우스는 거대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입니다. 수많은 관리를 임명하고, 누구도 바꿀 수 없다는 법령을 만들고, 사람을 사자 굴에 던지도록 명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살리고 싶은 사람 하나를 구하지 못합니다. 자기 손으로 서명한 법령에 자신이 붙잡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반면 다니엘은 그 법령을 바꿀 힘도,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을 제압할 권력도 없습니다. 그는 그저 이전부터 하던 대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 다니엘은 무엇을 했을까요? 그가 한 일의 핵심은 단 하나, 이전부터 살아오던 방식으로 계속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86장 본문 읽기 →

흠잡을 데 없는 관리가 위험한 사람이 되다

다니엘 6:1–6 본문 →

왕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다니엘

이야기는 정권 교체 직후에 시작됩니다. 앞 장에서 바빌로니아 왕 벨사살은 죽었고(5:30), 메대 사람 다리우스가 왕권을 받습니다(6:1).

다리우스는 나라를 관리하기 위해 태수 백이십 명을 세우고, 그들 위에 세 명의 총감을 둡니다. 다니엘은 그 총감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들 위에는 총감 세 명을 두었는데, 다니엘이 그 가운데 하나였다. 이 태수들이 총감들에게 보고하게 하여 왕이 손해를 입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다니엘 6:3 · 본디새김

다니엘은 바로 그 일을 누구보다 잘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6:4는 다니엘이 다른 관리들보다 뛰어났던 이유를 그 안에 ‘남다른 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표현은 앞서 왕비가 다니엘을 소개하며 사용한 말과 연결됩니다(5:12). 다니엘의 탁월함은 새로운 왕에게 갑자기 발견된 재능이 아닙니다. 그는 여러 통치 체제를 거치면서도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해 온 사람입니다.

본문은 이 영의 신적 기원을 여기서 직접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다니엘서 전체를 읽는 독자는 그가 가진 지혜와 분별력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2:19–23).

그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

다니엘이 온 나라를 다스릴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생기자, 다른 관리들은 그를 제거할 방법을 찾습니다.

처음부터 종교 문제를 꺼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다니엘의 공적인 업무에서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 합니다. 권력 남용이나 부정, 업무상의 잘못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6:5는 같은 사실을 거듭 강조합니다. 어떤 구실도 찾지 못했고, 부정도 발견하지 못했으며, 태만이나 부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충성스러움은 종교생활에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국가의 행정 업무에서도 그의 성실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말했다. 「그의 하나님의 법에서 구실을 찾지 않는 한, 우리가 이 다니엘을 고발할 어떤 구실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다니엘 6:6 · 본디새김

다니엘을 제거하려는 사람들조차 그가 하나님의 법을 얼마나 충실히 따르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의 신앙을 존중하지 않지만, 그 신앙이 그의 삶에서 얼마나 확고한지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의 믿음은 적들조차 그의 다음 행동을 예상할 수 있을 만큼 일관된 삶으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니엘에게 잘못을 저지르게 하는 대신, 다니엘이 평소처럼 행동하기만 해도 범죄자가 되도록 법을 만들기로 합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의 「나보니두스 연대기」는 기원전 539년 바벨론이 고레스의 군대에 넘어갔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현존하는 고대 기록에서 다니엘서의 ‘메대 사람 다리우스’를 같은 이름과 지위로 확실하게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를 고레스와 같은 인물로 보거나, 고레스 휘하의 통치자와 연결하거나, 별도의 메대 왕으로 보는 해석이 있지만 어느 견해도 결정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습니다. 본문은 이 역사적 문제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바꿀 수 없는 법령이 왕을 가두다

다니엘 6:7–10 본문 →

왕이 듣고 싶어 하는 말

관리들은 왕에게 몰려가 먼저 인사합니다.

그러자 이 총감들과 태수들이 왕에게 몰려가 이렇게 말했다. 「다리우스 왕이시여, 영원히 사십시오.」다니엘 6:7 · 본디새김

왕을 향한 관례적인 인사입니다. 하지만 이 장의 결말까지 읽으면 이 말은 특별한 울림을 갖습니다. 영원히 살기를 기원받는 왕은 자기 법령조차 되돌리지 못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나라의 관리들이 모두 의논해 한 가지 법령을 제안하기로 했다고 말합니다. 다니엘 역시 총감 가운데 하나인데, 그가 이 결정에 참여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 법령은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관리들은 자신들의 음모를 국가 전체의 합의인 것처럼 제시합니다. 왕에게는 충성스러운 관리들이 왕권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제안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법령의 내용은 삼십 일 동안 왕 이외의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도 청원을 올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어기는 사람은 사자 굴에 던져집니다.

이 명령을 왕을 신으로 숭배하라는 요구와 정확히 같은 것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이 직접 금지하는 행위는 다른 대상에게 ‘청원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명령은 사람의 요청을 받아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을 왕으로 지정한다는 점에서 왕의 지위를 극단적으로 높입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리들에게 이것은 완벽한 함정입니다.

바꿀 수 없는 법의 역설

관리들은 법령을 문서로 확정하여 메대와 페르시아의 법에 따라 폐기할 수 없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에스더서에도 왕의 이름으로 작성하고 왕의 인장으로 봉인한 문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관념이 등장합니다(에 1:19; 8:8). 따라서 다니엘서의 설정은 성경 안에서 반복되는 페르시아 왕권의 법적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이것이 당시 모든 왕명에 예외 없이 적용되었던 실제 법률 제도였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법령이 변경 불가능한 것으로 취급된다는 사실입니다.

관리들은 왕에게 강한 권력을 부여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왕이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여지를 빼앗고 있습니다.

왕은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법을 만들었지만, 이제 그 법으로 인해 나라를 위해 충실히 일하던 사람을 잃게 됩니다. 왕의 손해를 막기 위해 세워진 행정 조직이 오히려 왕에게 커다란 손해를 끼치게 되는 셈입니다.

자기 권위를 절대화하려던 왕은 그 권위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붙잡힙니다.

이야기는 이제 왕이 서명한 문서에서 다니엘이 매일 기도하던 방으로 이동합니다.

다니엘이 금령을 듣고도 바꾸지 않은 것

다니엘 6:11–12 본문 →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

다니엘은 그 문서에 서명이 된 것을 알고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그의 위층 방에는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들이 열려 있었다. 그는 이전부터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 무릎을 꿇고 자기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감사했다.다니엘 6:11 · 본디새김

그는 법령 때문에 자신의 기도를 바꾸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을까요?

폐허가 된 성읍을 향한다는 것

이 방향에는 이스라엘의 오랜 신앙적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면서 장차 이스라엘이 죄를 짓고 다른 나라에 포로로 끌려갈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포로들이 자신들의 땅과 하나님이 선택하신 성읍을 향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왕상 8:46–50; 대하 6:36–39).

다니엘의 상황은 그 기도에서 예상한 상황과 닮아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지 않습니다. 자기 민족의 땅에서 살아가지도 않습니다. 나라가 무너지고 성전이 파괴된 뒤, 이방 제국의 관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여전히 그가 기도할 때 바라보는 방향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맺으신 관계, 그분의 약속, 그리고 무너진 성읍의 회복을 바라보는 신앙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기도 자체가 하나님이 하늘에서 들으신다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다니엘 역시 이방 땅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왕은 다니엘이 살아가는 땅을 다스리지만, 다니엘이 기도하는 방향까지 결정하지는 못합니다.

감사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 무릎을 꿇습니다. 하루 세 차례의 기도는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시편의 기도와도 연결됩니다(시 55:17).

지금 그는 자신의 지위뿐 아니라 생명까지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 가운데 감사가 있습니다. 본문은 그의 감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가 정확히 무엇을 감사했는지도 알려 주지 않습니다.

다니엘에게 기도는 위험한 순간에만 사용하는 구조 요청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일상적인 관계의 표현입니다. 상황이 좋을 때도, 자기 생명이 위태로울 때도 그는 같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의 적들은 이 일관성을 이용하여 그를 죽이려 합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바로 그 일관성을 통해 다니엘이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를 보여 줍니다.

관리들이 다니엘의 기도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계획이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자신을 방어할 법적 근거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부터 본문은 다니엘보다 오히려 왕의 무력함을 자세히 보여 주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다니엘이 일부러 창문을 새로 열어 사람들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반대로 창문이 금령 이전부터 언제나 열려 있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은 창문이 열린 상태였다는 것과, 다니엘이 이전부터 해 오던 방식으로 기도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니엘의 행동은 공개적인 정치 시위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왕은 구하려 하지만 구하지 못한다

다니엘 6:13–19 본문 →

관리들이 다니엘을 다시 부르는 이름

관리들은 곧바로 다니엘을 고발하지 않습니다.

먼저 왕에게 왕 자신이 법령에 서명했는지를 확인시킵니다. 왕이 법령의 유효성을 인정하자 그제야 다니엘의 이름을 꺼냅니다.

그러자 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했다. 「왕이시여, 유다 포로들 가운데 하나인 다니엘은 왕도, 왕께서 서명하신 금령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에 세 번 자기의 청원을 올리고 있습니다.」다니엘 6:14 · 본디새김

여기서 그들은 다니엘을 ‘총감’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왕이 온 나라 위에 세우려 했던 뛰어난 관리라고도 부르지 않습니다. 다니엘의 능력과 충성을 인정하는 대신 그의 출신을 앞세워 왕에 대한 불충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다니엘이 왕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 앞부분은 그가 왕의 행정에 충실했고 어떤 부정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다니엘은 왕에게 해를 끼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왕의 명령이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충돌할 때, 왕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사자 굴에서 다니엘이 직접 밝히게 됩니다.

해가 질 때까지 애쓴 왕

왕은 그 말을 듣고 몹시 괴로워했다. 그는 다니엘을 구해 내기로 마음먹고, 해가 질 때까지 그를 건져 내려고 힘썼다.다니엘 6:15 · 본디새김

이 구절이 보여 주는 왕의 모습은 단순한 폭군과 다릅니다. 그러나 왕이 실제로 어떤 방법을 시도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모든 노력이 실패했다는 사실입니다.

관리들은 다시 왕에게 몰려가 법령을 바꿀 수 없다고 상기시킵니다. 왕의 뜻과 법령의 효력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왕은 다니엘이 살아남기를 바라지만, 자신이 서명한 법령을 집행하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왕이 명령하자 사람들이 다니엘을 데려다가 사자 굴에 던졌다. 왕이 다니엘에게 말했다. 「네가 한결같이 섬기는 네 하나님, 바로 그가 너를 구해 낼 것이다.」다니엘 6:17 · 본디새김

왕은 다니엘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실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섬김이 지속적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다음 날 아침 왕이 사자 굴 앞에서 다니엘을 부를 때 다시 등장합니다(6:21).

돌로 막고 인장으로 봉인하다

다니엘을 굴에 던진 뒤 사람들은 큰 돌로 입구를 막습니다. 왕은 자신의 인장과 귀족들의 인장으로 돌을 봉인합니다.

그 목적은 다니엘에 관한 일이 변경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봉인은 인간의 개입 가능성을 더욱 좁힙니다.

그날 밤 왕은 궁전으로 돌아갑니다. 음식을 먹지 않고, 즐거움을 가져올 만한 것도 들이지 않으며,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왕은 궁전이라는 가장 안전한 장소에 있습니다. 그에게는 음식과 잠자리와 시중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반면 사자 굴 안에서 일어난 일은 아직 공개되지 않습니다.

독자는 왕과 함께 밤을 보냅니다. 왕이 알지 못하는 것을 독자도 알지 못한 채 아침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야기의 긴장은 사자가 얼마나 사나운지를 묘사함으로써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다니엘을 구할 인간적인 방법이 완전히 막혔다는 사실에서 생겨납니다.

조금 더 깊이

6:17의 「바로 그가 너를 구해 낼 것이다」라는 말이 확신인지 간절한 바람인지는 원문만으로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왕이 자기에게 남아 있는 수단을 다 소진한 상황에서 다니엘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6:19의 ‘악기들’에 해당하는 아람어는 뜻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오락이나 음악과 관련된 것으로 보기도 하고, 먹을거리와 관련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어느 해석을 취하든 왕이 평소 궁전에서 누리던 편안함을 누리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굴의 입을 봉인했지만 사자의 입을 막지는 못했다

다니엘 6:20–24 본문 →

아침에 들려온 질문

날이 밝자 왕은 서둘러 사자 굴로 향합니다.

왕은 굴에 가까이 가서 슬픔에 찬 목소리로 다니엘을 불렀다. 왕이 다니엘에게 말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한결같이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사자들에게서 구해 낼 수 있었느냐?」다니엘 6:21 · 본디새김

이제 다니엘은 ‘유다 포로들 가운데 하나’라는 고발자들의 호칭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호칭으로 불립니다. 왕의 질문은 하나님이 다니엘을 구하셨는가를 묻습니다. 왕 자신에게는 그를 구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굴 안에서 대답이 들립니다.

그러자 다니엘이 왕에게 말했다. 「왕이시여, 영원히 사십시오.」다니엘 6:22 · 본디새김

이 인사는 이야기 앞부분에서 관리들이 왕에게 했던 말과 같습니다(6:7). 관리들은 왕의 권위를 이용해 다니엘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제 다니엘은 왕의 명령으로 사자 굴에 던져졌음에도 왕에게 같은 존중의 인사를 건넵니다.

이 짧은 대답은 앞선 고발이 얼마나 다니엘의 실제 태도와 달랐는지를 보여 줍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충실히 섬기면서도 왕을 적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불복종은 왕에게 해를 끼치기 위한 반란이 아니었습니다.

두 개의 입

다니엘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합니다.

「저의 하나님이 자기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사자들이 저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 앞에서 무죄하다고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또 왕이시여, 저는 왕께도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다니엘 6:23 · 본디새김

사람들은 굴의 입을 돌로 막았습니다. 그러나 굴 안에 있는 사자들의 입까지 다스릴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봉인할 수 있는 것은 굴의 입구였지만, 하나님이 다스리신 것은 그 안에서 다니엘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자들의 입이었습니다.

이 차이는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의 통제 밖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다니엘이 주장한 무죄

여기서 ‘무죄’는 다니엘이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았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야기의 맥락에서 다니엘은 자신에게 제기된 고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왕의 법령을 어겼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이 아니며 왕에 대한 악행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장은 인간의 법적 판정과 하나님의 판단이 충돌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왕의 법령은 다니엘을 범죄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다니엘이 그분 앞에서 무죄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다니엘은 왕을 모욕하거나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증언함으로써 자신의 무죄를 밝힙니다.

믿을 만한 사람과 믿는 사람

왕은 몹시 기뻐하며 다니엘을 굴에서 끌어 올리라고 명령했다. 다니엘이 굴에서 끌어 올려졌는데, 그에게서 어떤 상처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가 자기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다니엘 6:24 · 본디새김

앞서 다니엘은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소개되었습니다(6:5). 여기서는 다니엘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신뢰를 주는 관리였으며, 자신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왕의 일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닙니다. 왕의 일을 충실히 감당했지만, 왕에게 하나님만이 차지하셔야 할 자리를 내어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 두 가지가 다니엘의 삶 안에서 함께 나타납니다.

다니엘의 행동을 무조건적인 복종이나 무조건적인 저항 가운데 하나로 단순화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왕을 존중하지만, 왕을 자신의 궁극적인 주권자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는 제국의 일을 감당하지만, 제국이 자신의 삶 전체를 규정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습니다.

그는 왕에게 충실한 관리였지만, 왕의 소유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둘 사이의 관계를 단순한 성공 공식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반드시 직장에서 인정받고 위기에서도 안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또한 이 장면은 다니엘 3장과 분명하게 연결됩니다. 느부갓네살이 금 신상 앞에 절하도록 강요했을 때, 다니엘의 세 친구는 불타는 화덕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구하셨고, 왕은 하나님이 자신의 천사를 보내셨다고 선언했습니다(3:28). 3장에서는 불이 그들의 몸을 해치지 못합니다. 6장에서는 사자가 다니엘을 해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차이도 있습니다. 3장의 친구들은 왕의 명령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힙니다. 6장의 다니엘은 별도의 선언 없이 평소의 기도를 이어 갑니다. 같은 믿음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니엘 3장에서 세 친구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하실 능력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더라도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3:17–18). 히브리서 11:33은 믿음으로 사자들의 입을 막은 일을 언급하며 다니엘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같은 장은 믿음을 지키면서도 고문과 죽음을 겪은 사람들 역시 말합니다(히 11:35–38).

다니엘은 살아나지만 이야기는 불편한 장면을 남긴다

다니엘 6:25 본문 →

다니엘을 구한 뒤 왕은 고발자들을 사자 굴에 던지도록 명령합니다. 그들의 아들들과 아내들도 함께 던져집니다.

본문은 사자들이 그들을 덮쳐 뼈를 모두 부수었다고 기록합니다. 먼저 이야기의 흐름에서 이 사건은 다니엘의 생존이 사자들이 배가 불렀거나 원래 온순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더 어려운 문제는 고발자들의 가족까지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은 그들의 아내들과 자녀들이 음모에 가담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가족까지 처형하라는 명령이 하나님에게서 나왔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을 던지라고 명령한 사람은 다리우스 왕입니다.

신명기 24:16은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죄 때문에 죽임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에스겔 18:20 역시 아들이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구약 본문들에 비추어 보면 가족까지 처벌하는 다리우스의 행동을 하나님의 정의와 그대로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야기는 다니엘을 해치려 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이 마련한 처벌을 당하는 반전을 보여 주지만, 그 반전 속에 포함된 모든 행위를 하나님이 명령하거나 승인하셨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차이를 놓치면 하나님의 구원을 인간 권력의 보복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을 구하신 일과 왕이 사람들을 처형한 일은 본문 안에서 구별되어야 합니다.

오히려 바로 다음 장면에서 인간 왕의 권력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됩니다.

영원히 살라는 인사를 받던 왕이 영원한 하나님을 말하다

다니엘 6:26–29 본문 →

왕의 조서가 달라지다

다리우스는 온 나라의 백성과 민족,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조서를 보냅니다.

처음 그가 서명했던 법령은 삼십 일 동안 왕 외에 누구에게도 청원하지 말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왕은 자기 나라의 모든 사람이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 떨며 두려워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내가 명령을 내린다. 내 나라의 모든 통치 영역에서 사람들은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 떨며 두려워해야 한다. 그는 살아 있는 하나님이며 영원히 존재하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으며 그의 통치는 끝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다니엘 6:27 · 본디새김

왕이 새로 발견한 것은 단지 다니엘을 구할 수 있는 신적 능력만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다니엘 2:44에서 하나님은 결코 멸망하지 않을 나라를 세우실 분으로 소개되십니다. 다니엘 4:34에서도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통치가 영원하다고 고백합니다.

왕들은 서로 바뀝니다. 바빌로니아의 왕이 사라지고 새로운 왕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영구적으로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어느 왕도 영원히 통치하지 못합니다.

반면 하나님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고 선포됩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의 통치는 한 사람을 죽음의 위협에서 건져 내는 행위로 드러납니다. 왕의 힘은 사람을 굴에 던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 사람을 살아 나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바로 그 구원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자기 나라와 다르다는 사실을 말하게 됩니다.

왕이 찬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다리우스는 계속 말합니다.

「그는 구해 내고 건져 내며, 하늘과 땅에서 표징과 놀라운 일들을 행한다. 그는 다니엘을 사자들의 손아귀에서 구해 냈다.」다니엘 6:28 · 본디새김

이 고백은 추상적인 신학적 선언이 아닙니다. 왕은 자신이 경험한 사건을 근거로 말합니다. 그 사실을 경험한 왕이 하나님의 구원 능력과 영원한 통치를 선포합니다.

그러나 다리우스가 이 조서를 내렸다고 해서 그가 다른 모든 신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예배하게 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왕의 내면이나 이후 신앙생활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 조서로 인간 권력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충돌이 끝난 것도 아닙니다. 다리우스 역시 여전히 왕이고, 다니엘 역시 이방 제국 안에서 살아갑니다.

다니엘의 형통

이 다니엘은 다리우스의 통치 때와 페르시아 사람 고레스의 통치 때에 형통했다.다니엘 6:29 · 본디새김

이 문장은 사건을 다니엘의 생애라는 더 긴 시간 속에 놓습니다. 그는 이 장에서 실제로 죽을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의 성실함이 그를 위험에서 미리 보호해 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삶은 사자 굴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왕권이 무너지고 다른 통치자가 등장했지만, 다니엘은 계속 살아갑니다.

왕들이 바뀌는 동안에도 하나님을 향한 그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다리우스와 고레스의 통치 때를 나란히 말합니다. 두 이름을 같은 인물의 다른 명칭으로 이해하려는 견해도 있지만, 그런 해석을 확정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열린 창문과 봉인된 굴

다니엘 6:1–29 본문 →

다니엘 6장을 처음부터 다시 떠올려 보면 서로 대조되는 두 장면이 남습니다. 하나는 다니엘의 집에 있는 열린 창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자 굴의 입구에 놓인 돌입니다. 다니엘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누구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그 창문이 있는 위층 방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무릎을 꿇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도가 얼마나 위험한 일이 되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전부터 하던 대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합니다.

왕과 귀족들은 그 돌에 인장을 찍습니다. 누구도 다니엘에 관한 일을 바꿀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밤이 지납니다.

날이 밝자 왕은 사자 굴로 달려갑니다. 왕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구하지 못했던 사람을 하나님이 구하셨는지 묻습니다.

그리고 굴 안에서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왕이 내린 법령도, 왕이 찍은 인장도, 사자들의 힘도 그 목소리를 없애지 못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얼마나 용감했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신앙인인지를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단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전합니다. 「저의 하나님이 자기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왕이 막을 수 없었던 사자들의 입을 하나님이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왕이 듣게 된 것은, 자신이 구하지 못했던 사람의 살아 있는 목소리였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