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5–11장 · 호렙에서 맺은 언약

하늘의 비를 기다리는 땅

이스라엘이 들어갈 약속의 땅은 좋은 땅입니다. 그러나 신명기 11장에서 모세는 그 땅의 풍요를 설명하면서 뜻밖의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곳은 사람이 원하는 때에 물을 댈 수 있는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하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의 처음에는 이스라엘의 눈이 등장합니다. 모세는 백성이 하나님의 큰일을 직접 보았다고 강조합니다(7절). 중간에는 하나님의 눈이 땅 위에 있다고 말합니다(12절). 그리고 후반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 눈 사이에 두라고 명령합니다(18절).

눈으로 본 것을 기억하고, 자신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말씀을 늘 눈앞에 두라는 흐름입니다.

읽는 시간 23분소단락 811장 본문 읽기 →

직접 본 사람들에게 주어진 책임

신명기 11:1–9 본문 →

「제가 말하는 대상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아닙니다」

1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라고 요구합니다.

「오늘 알아 두십시오. 제가 말하는 대상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의 훈육과 그분의 위대함과 그분의 강한 손과 뻗은 팔도,」신명기 11:2 · 본디새김

모세는 왜 자녀들이 아니라 지금 자기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을 강조할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본 것과 자녀들이 보지 못한 것의 차이에 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표징들, 갈대 바다에서 이집트 군대가 멸망한 일,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차례로 언급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행하신 그 모든 큰일을 본 것은 바로 여러분의 눈입니다.」신명기 11:7 · 본디새김

여기서 모세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실제로 행하신 일을 경험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강한 분이신지 보았습니다. 동시에 그분이 불순종을 얼마나 엄중하게 다루시는지도 보았습니다.

그 모든 경험이 지금 모세가 요구하는 순종의 배경입니다.

갈대 바다에서 땅이 입을 벌리는 사건까지

먼저 이집트에서의 표징들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파라오와 이집트 땅에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어 이스라엘을 뒤쫓던 이집트 군대를 갈대 바다의 물로 멸하신 일이 나옵니다.

이 두 사건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위협하는 세력을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6절에서 심판의 대상이 바뀝니다.

「르우벤의 아들 엘리압의 아들들인 다탄과 아비람에게 행하신 일, 곧 온 이스라엘 한가운데서 땅이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의 집안 사람들과 그들의 천막들과 그들의 발치에 있던 모든 것을 삼킨 일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습니다.」신명기 11:6 · 본디새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내부의 반역에도 무관심하지 않으셨습니다.

앞에서는 바닷물이 이집트 군대를 덮쳤습니다. 이제는 땅이 입을 벌려 반역자들을 삼킵니다. 물과 땅이라는 창조 세계의 요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드러내는 장면에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백성이지만, 그 사실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 것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러므로 여러분은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령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십시오. 이는 여러분이 강해져서, 차지하려고 건너가는 그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이며,」신명기 11:8 · 본디새김

모세는 하나님의 큰일들을 보았으니 이제 그 기억을 순종으로 연결하라고 합니다. 그 목적도 분명합니다. 그들이 강해져서 땅에 들어가고, 그 땅을 차지하고, 오래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강해져서」라는 표현은 앞에서 이야기한 군사적 강함과만 연결해서는 안 됩니다. 문맥은 하나님의 명령에 귀 기울이는 일이 이스라엘이 앞으로의 여정을 감당하는 데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은 과거의 경험을 현재의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행동을 보았던 사람들도 그분을 거역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직접 보지 못한 다음 세대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그분께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모세는 그 대답을 잠시 뒤 자녀 교육에 관한 명령에서 제시합니다. 그러나 먼저 이스라엘이 들어가게 될 땅의 특별한 성격을 설명합니다.

조금 더 깊이

2절의 「훈육」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무사르(⁨מוּסָר⁩)는 가르침과 훈련, 잘못에 대한 징계를 함께 포함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 단락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일뿐 아니라 그들 가운데 반역한 사람들을 심판하신 일까지 언급하므로, 훈육을 단순히 부드러운 가르침이나 처벌 가운데 하나로만 좁힐 수 없습니다. 광야 생활이 사십 년 동안 이어졌으므로, 모세의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출애굽 당시의 사건을 성인으로서 직접 경험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민수기 14:29–31에 따르면 당시의 성인 세대 가운데 상당수는 광야에서 죽었고, 그들의 자녀들이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모세의 말을 모든 청중의 개별적인 목격 이력에 관한 정확한 진술로 읽기보다는, 출애굽과 광야를 경험한 공동체가 다음 세대에 앞서 받은 역사적 책임을 강조하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민수기 16장에서는 고라와 다탄과 아비람 등이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합니다. 그 과정에서 땅이 갈라져 다탄과 아비람과 그들에게 속한 사람들을 삼키는 심판이 일어납니다(민수기 16:23–33). 신명기 11장은 고라를 따로 언급하지 않고 다탄과 아비람에게 일어난 일을 중심으로 회상합니다.

이집트와는 다른 땅

신명기 11:10–12 본문 →

발로 물을 대던 땅

10절은 이스라엘이 들어가게 될 땅을 이집트와 비교합니다.

「당신이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은 여러분이 떠나온 이집트 땅과 같지 않습니다. 거기서는 당신이 씨를 뿌리고 채소밭처럼 당신의 발로 물을 댔습니다.」신명기 11:10 · 본디새김

이집트의 농업은 나일강이라는 거대한 수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강물이 범람하여 토지를 적시고, 필요에 따라 물길을 이용해 농경지에 물을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발로 물을 댔다」는 표현의 정확한 의미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발로 수로의 흙을 옮겨 물길을 조절하는 모습을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고, 발을 이용한 관개 작업이나 사람의 노동으로 물을 옮기는 과정을 넓게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 구체적인 관개 장치를 이 구절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사람이 물을 대는 노동이 강조되고, 약속의 땅에서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강조됩니다. 이집트의 농업도 사람이 나일강의 물 자체를 만들어 낼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은 아닙니다. 또한 가나안에 들어간다고 해서 농사에 필요한 노동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늘의 비를 마시는 땅

「여러분이 차지하려고 건너가는 땅은 산들과 골짜기들의 땅이며, 하늘의 비로 물을 마시는 땅입니다.」신명기 11:11 · 본디새김

산들과 골짜기가 있는 땅은 나일강 주변의 평탄한 관개 농경지와 다릅니다. 비가 내려야 땅이 물을 얻고, 그 땅에서 곡식과 나무가 자랄 수 있습니다.

모세는 땅을 살아 있는 존재처럼 묘사합니다. 농부는 땅을 갈고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땅이 마실 물을 하늘에서 내려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약속의 땅은 이스라엘이 차지할 땅이지만, 그 땅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을 이스라엘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약속의 땅에서는 씨를 뿌린 뒤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하나님께 귀 기울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한 해 내내 그 땅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12절은 그 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밝힙니다.

「그곳은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땅입니다. 한 해의 시작부터 한 해의 끝까지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의 눈이 늘 그 땅 위에 있습니다.」신명기 11:12 · 본디새김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의 깊게 살피신다는 뜻입니다. 「한 해의 시작부터 한 해의 끝까지」라는 표현은 계속되는 돌보심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은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앞으로 살아갈 땅을 하나님이 계속 살피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신뢰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음 단락에서 모세는 비가 내리는 땅의 풍요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제때 내리는 비와 닫힌 하늘

신명기 11:13–17 본문 →

이른 비와 늦은 비

13절에서 모세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령하는 저의 명령들에 참으로 귀를 기울여,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여러분의 온 마음과 온 생명으로 그분을 섬기면,」신명기 11:13 · 본디새김

그다음에는 비와 수확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어집니다.

「『내가 너희 땅에 비를 제때에 주되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겠다. 너는 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갓 짠 기름을 거두게 될 것이다.』」신명기 11:14 · 본디새김

이스라엘 땅의 농업 주기에서 이른 비는 건조한 여름 이후 가을 무렵 시작되어 땅을 적시는 비를, 늦은 비는 봄철 곡식이 자라는 데 필요한 마지막 시기의 비를 가리킵니다. 이른 비가 적절하게 내리면 메말랐던 토지가 적셔지고 파종과 발아에 유리한 조건이 마련됩니다. 늦은 비는 곡식이 자라 결실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모세가 약속하는 것은 단순히 비의 양이 많다는 것이 아닙니다.

「제때에」 비가 내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비라도 농사에 필요한 시기에 내리지 않으면 좋은 수확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돌보심이 계절의 질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 결과로 곡식과 새 포도주와 갓 짠 기름이 주어집니다. 이 세 가지는 신명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농업 생산물의 대표적인 묶음입니다(신명기 7:13, 12:17).

「『내가 네 가축을 위해 네 들에 풀을 주겠다. 너는 먹고 배부르게 될 것이다.』」신명기 11:15 · 본디새김

비는 밭의 곡식뿐 아니라 들의 풀에도 필요합니다. 그 풀은 다시 가축을 먹이고, 가축은 사람들의 생활을 지탱합니다.

모세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공급 안에서 바라보도록 합니다.

마음이 돌아서면 하늘도 닫힌다

그런데 풍요에 대한 약속 직후에 경고가 등장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꾐에 빠져 여러분이 돌아서서 다른 신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절하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조심하십시오.」신명기 11:16 · 본디새김

「꾐에 빠져」는 마음이 유혹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리는 일을 나타냅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에게서 돌아서 다른 신들을 섬기는 행동입니다.

「그러면 여호와야훼의 분노가 여러분을 향해 타올라 그분이 하늘을 닫으시므로 비가 내리지 않고 땅이 그 소출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좋은 땅에서 빨리 멸망할 것입니다.」신명기 11:17 · 본디새김

우상숭배를 통해 풍요를 확보하려는 선택이 오히려 풍요를 잃게 만드는 역설이 제시됩니다. 11절에서 땅은 하늘의 비를 마시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늘이 닫히면 땅은 마실 물을 얻지 못합니다. 앞에서 약속했던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 그리고 가축을 위한 풀이 모두 위태로워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버리는 일은 그들이 살아가는 땅의 생명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모든 가뭄을 불순종의 결과로 볼 수 있는가

17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 안에서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를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모든 시대의 모든 가뭄이 그 지역 사람들의 특정한 죄 때문에 일어났다는 보편적인 공식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성경의 다른 본문들은 고난과 재난을 언제나 개인의 죄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욥기에서 의로운 욥이 겪는 고난은 바로 그런 단순한 설명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들의 삶은 그 땅을 돌보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그분과 맺은 관계를 버리는 일은 단지 종교적 취향을 바꾸는 정도의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삶 전체의 근거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한편 14–15절에서는 「내가」라는 하나님의 일인칭 말씀이 등장합니다. 모세의 연설 속에 직접적인 도입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이어지는 형태입니다. 13절의 명령을 가리키는 일인칭 표현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된다고 읽을 여지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본문의 중심은 비와 수확을 주시는 분이 여호와야훼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가나안의 종교 환경에서는 비와 풍요를 신적 존재들의 활동과 연결하는 신앙이 존재했습니다. 특히 폭풍과 비에 관련된 바알 숭배가 알려져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17–18장에서도 바알 숭배와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나타납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기면서 풍요를 얻으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이 경고를 이해하는 한 가지 역사적 배경이 됩니다.

말씀을 마음에 두고 자녀에게 가르치라

신명기 11:18–21 본문 →

기억은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가

18절은 앞의 경고에 대한 응답처럼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저의 이 말들을 여러분의 마음과 여러분의 생명에 두십시오. 그 말들을 여러분의 손에 표징으로 묶어 두고, 여러분의 두 눈 사이에 이마띠가 되게 하십시오.」신명기 11:18 · 본디새김

여기서 마음은 단순히 감정이 일어나는 곳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마음은 생각과 판단, 의지와 결단이 이루어지는 내면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말씀을 마음에 둔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이 자신의 판단과 행동을 이끌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마음에 두라는 명령만으로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자녀에게 가르치고, 집의 문설주와 성문에 쓰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앞서 신명기 6:6–9에서 주어진 명령과 매우 가깝습니다.

이 명령을 눈과 손에 말씀을 늘 간직하라는 비유적 표현으로 읽을 수 있고, 실제로 몸에 표지를 부착하는 행위까지 포함한 명령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생각을 품으며, 자기 손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가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특정한 종교 의식의 순간에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생각하고 보고 행동하는 삶 전체에 깊이 새겨져야 합니다.

직접 보지 못한 자녀들에게 무엇을 전할 것인가

19절은 이 장의 앞부분과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그 말들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가르치십시오. 당신이 당신의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누울 때나 일어날 때 그 말들을 이야기하십시오.」신명기 11:19 · 본디새김

2절에서 모세는 지금 자기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큰일을 직접 경험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자녀들은 그 모든 일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모세의 대답은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집 안과 집 밖, 쉬는 때와 움직이는 때,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과 마치는 시간이 모두 포함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일상과 분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직접 본 세대의 책임은 자신이 경험한 일을 자랑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일을 보지 못한 세대도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명기 11장에서 기억이 교육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과거에 경험한 모든 것을 함께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고, 그 배움에 따라 지금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은 부모의 삶이 자녀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길게 분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가르치는 장소를 일상의 모든 순간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말씀을 아는 것과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서로 떼어 놓지 않습니다.

집의 문설주와 성문에 쓰라

20절은 가르침의 범위를 다시 넓힙니다.

「그 말들을 당신 집의 문설주들과 당신의 성문들에 쓰십시오.」신명기 11:20 · 본디새김

문설주는 집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경계에 있습니다. 성문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사람들의 왕래뿐 아니라 재판과 거래, 공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룻기 4:1–12에서는 보아스가 성문에 앉아 장로들과 함께 기업 무를 문제를 처리합니다.

따라서 문설주와 성문에 말씀을 기록하라는 명령은 개인의 집과 공동체의 공적 공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되어야 함을 보여 줍니다.

말씀은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손과 눈에도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집과 성문에도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내면에서 시작하여 몸과 가정, 공동체의 공간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이는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신 땅에서 여러분과 여러분 자녀들이 하늘이 땅 위에 있는 날들만큼 오래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신명기 11:21 · 본디새김

「하늘이 땅 위에 있는 날들만큼」이라는 말은 지속성을 강조하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오래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하늘에서 비가 내려 땅이 살아갔습니다. 이제는 하늘이 땅 위에 있는 날들만큼 오래 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늘과 땅은 약속의 땅에서 이어질 삶의 배경이자, 그 삶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표현하는 이미지가 됩니다.

모세가 바라는 것은 지금의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일만이 아닙니다. 그들의 자녀들도 그 땅에서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이마띠」로 옮긴 히브리어 토타포트(⁨טוֹפָפָה⁩)는 정확한 어원과 본래의 물건 형태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후대 유대교에서는 이러한 명령을 실천하면서 성경 구절을 넣은 작은 상자를 팔과 머리에 매는 테필린 전통이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의 본문만으로 그러한 후대 물품의 구체적인 형태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19절에서 히브리어 레다베르 밤은 「그것들에 관하여 말하다」 또는 「그 말들을 이야기하다」라는 뜻입니다. 문법적으로는 누가 말하는지를 명시하지 않는 부정사 형태이므로,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이야기한다는 뜻으로도, 자녀가 스스로 그 말씀을 말하도록 가르친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교육의 목표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보다 넓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음 세대의 언어와 생각, 삶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발바닥이 밟는 땅과 하나님께 붙어 있는 삶

신명기 11:22–25 본문 →

하나님께 굳게 붙어 있으라

22절에서 모세는 다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순종을 강조합니다.

「여러분이 제가 여러분에게 행하라고 명령하는 이 모든 명령을 참으로 지켜,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모든 길을 걸으며 그분께 굳게 붙어 있으면,」신명기 11:22 · 본디새김

여기서 「굳게 붙어 있다」(⁨דָּבַק⁩)는 표현은 신명기 10:20에도 등장했습니다. 이 문맥에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그분과 맺은 관계에 충실하게 머무는 삶을 뜻합니다.

16절에서는 다른 신들에게 마음이 끌려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는 일을 경계했습니다. 이제 22절에서는 하나님께 굳게 붙어 있으라고 합니다.

두 표현은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명령을 지킨다는 것은 여러 규칙을 외적으로 수행하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속해 있고 누구를 신뢰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발바닥이 밟는 모든 곳

23–25절에서 모세는 다시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문제로 돌아옵니다.

「여러분의 발바닥이 밟는 모든 곳이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광야와 레바논에서부터, 그 강 곧 유프라테스강에서 서쪽 바다까지가 여러분의 영토가 될 것입니다.」신명기 11:24 · 본디새김

이 표현은 여호수아 1:3에서도 반복됩니다. 여기서 발바닥은 이스라엘이 실제로 그 땅에 들어가 움직이며 차지하는 행동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앞의 10절에서도 사람의 발이 등장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발로 물을 댔다고 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발로 약속의 땅을 밟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사람의 행동이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23절은 하나님께서 민족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25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두려움을 그 땅에 주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이스라엘은 실제로 땅을 차지하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과 행동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24절은 그 땅의 범위를 광야와 레바논, 유프라테스강과 서쪽 바다까지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서쪽 바다는 지중해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경계는 출애굽기 23:31과 여호수아 1:4의 약속과도 연결됩니다. 다만 이 구절을 이스라엘이 어느 역사적 시점에 그 모든 지역을 실제로 동일한 방식으로 지배했다는 기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앞으로 차지할 땅의 범위를 약속의 언어로 제시합니다.

또한 이 약속은 이스라엘의 특정한 언약 역사 안에서 주어졌습니다. 후대의 어떤 국가나 공동체가 자신들의 영토 확장을 정당화하는 보편적인 허가로 사용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약속의 땅은 그들의 승리나 노력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 선물을 받는 백성에게 요구되는 충실한 응답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복과 저주를 놓습니다

신명기 11:26–28 본문 →

땅에 들어가는 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26절에서 모세의 말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습니다.

「보십시오. 제가 오늘 여러분 앞에 복과 저주를 놓습니다.」신명기 11:26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좋은 땅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땅을 돌보시며, 이스라엘이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비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이 땅에 들어가면 모든 문제가 끝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복은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령하는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의 명령들에 여러분이 귀를 기울일 때 받는 것이고,」 「저주는 만일 여러분이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의 명령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령하는 길에서 벗어나 여러분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뒤따라간다면 받는 것입니다.」신명기 11:27–28 · 본디새김

두 구절에서 중요한 동사는 「귀를 기울이다」입니다. 모세는 복과 저주를 단순히 좋은 일이 생기는가 나쁜 일이 생기는가라는 결과만으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로 나아가는 길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행동을 보는 일은 그분의 말씀을 듣는 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직접 보았다고 해서 반드시 듣는 것은 아닙니다. 광야에서 이미 그런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지금 이스라엘에게 다시 선택을 제시합니다.

복과 저주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 문맥에서 복과 저주는 단순한 감정적 축복이나 개인적인 불행을 뜻하지 않습니다.

신명기에서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충실하게 살아갈 때 누리는 생명과 번영, 그리고 그 언약을 거역할 때 겪는 상실과 심판을 가리킵니다. 이 의미는 신명기 28장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전개됩니다. 그곳에서는 농업과 가정, 사회생활과 국가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복과 저주의 결과가 길게 나열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과 이스라엘의 책임을 함께 제시합니다.

이스라엘은 비가 내리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힘으로 이루어 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신들을 따르지 말라는 요구가 주어집니다.

그들이 책임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길을 따라 살아가는 일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 언젠가 결정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그들 앞에 복과 저주를 놓습니다.

미래의 땅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현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두 산에 새겨질 선택

신명기 11:29–32 본문 →

그리짐산과 에발산

29절에서 모세는 복과 저주를 특정한 장소에 연결합니다.

「여호와야훼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이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으로 당신을 데려가시면, 그리짐산 위에 복을, 에발산 위에 저주를 두십시오.」신명기 11:29 · 본디새김

그리짐산과 에발산은 요단강 서쪽, 세겜 지역에 있는 두 산입니다. 그리짐산은 세겜의 남쪽에, 에발산은 북쪽에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복과 저주라는 언약의 두 방향을 실제 지리적 공간에 연결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 그 땅의 중심부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공동체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신명기 27:11–13에서는 그리짐산에 서서 백성을 축복할 지파들과 에발산에 서서 저주를 선포할 지파들이 구체적으로 지정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8:30–35에서는 여호수아가 에발산에 제단을 쌓고 율법의 말씀을 기록하며, 온 이스라엘 앞에서 복과 저주의 말씀을 읽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차지한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말씀을 다시 듣게 됩니다.

모레의 나무 곁이라는 지리적 기억

30절은 두 산의 위치를 설명하면서 「길갈 맞은편 모레의 테레빈트나무들 곁」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모레라는 이름은 창세기 12:6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그는 세겜의 모레 나무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여호와야훼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자손에게 그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12:6–7).

아브라함에게는 미래의 자손과 땅에 관한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이제 그 자손은 그 땅에 들어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따라 살아갈 책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땅을 차지하고 거기서 살 것입니다

31절은 다시 요단강을 언급합니다.

「여러분은 여호와야훼 여러분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려고 요단을 건너갑니다. 여러분은 그 땅을 차지하고 거기서 살 것입니다.」신명기 11:31 · 본디새김

이 문장은 약속의 확실성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신명기 11장의 마지막 문장은 또 하나의 명령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 앞에 놓는 모든 규정들과 법규들을 지켜 행하십시오.」신명기 11:32 · 본디새김

이것은 신명기의 다음 부분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신명기 12장부터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실제로 어떻게 예배하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들이 길게 제시됩니다.

이스라엘이 땅을 차지하는 것은 이야기의 끝이 아닙니다.

그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일이 이제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왜 이 두 산이 선택되었는지 본문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한쪽 산이 더 비옥하고 다른 쪽 산이 더 메말랐기 때문이라는 식의 상징적 설명도 제안할 수 있지만, 이 구절만으로 그런 이유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길갈이라는 지명은 구약에서 여러 장소를 가리킬 수 있으며, 이 구절의 길갈이 정확히 어느 곳인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해 지는 쪽으로 가는 길 너머」라는 표현도 어느 길을 기준으로 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비를 기다리는 땅 위에 놓인 두 산

신명기 11:1–32 본문 →

과거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면서 현재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이 미래의 세대에도 전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믿음의 기억은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지만, 그 기억이 향하는 곳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 모든 가르침을 마친 뒤 두 산을 가리킵니다.

그리짐산과 에발산입니다. 한 산에는 복이, 다른 산에는 저주가 놓이게 될 것입니다. 두 산은 모두 같은 약속의 땅 안에 있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있고, 같은 땅의 일부입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요단을 건너지 않았습니다.

저편에는 하늘의 비를 기다리는 산들과 골짜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땅 안에는 복과 저주를 선포할 두 산이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백성 앞에 놓여 있습니다.

하늘의 비는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나 그 비를 마시는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맡겨진 응답입니다.

그들은 이제 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살아야 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